러시아 혁명사
레온 트로츠키 지음, 볼셰비키그룹 옮김 / 아고라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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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시대 ‘혁명’의 원인과 결과는 ‘자본주의 쇠퇴’이다(1709)
- 러시아혁명 100주년 : 카, [러시아혁명], 라비노비치, [1917년 러시아혁명], 트로츠키, [러시아혁명사]
 

 
"대중이 사회의 운명에 직접 개입하는 것, 이것이 바로 혁명이다… 역사 서술은 혁명 사건들의 뒤에서 일어나는 집단적 의식의 변화들을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운동의 ‘자발성’이라는 자루 속에 모든 것을 처넣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 이 추상적인 말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고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혁명은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 이 말은 혁명 대중이 혁명의 법칙들을 인식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대중의 의식은 우연히 변화하지 않으며 이론적으로 설명 가능한 객관적 필연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 때문에 대중의 의식은 예측 가능하며 지도가 가능하다."
 
- L. 트로츠키, [러시아혁명사], <2권과 3권 서문>, 1932.

 
러시아혁명의 주체 중 하나였던 레온 트로츠키는 1917년 러시아혁명은 억압받는 다수 피지배계급이 낡은 체제를 무너뜨린다는 사회법칙의 필연성을 인식하고 적극 실천했던 볼셰비키라는 정치세력의 ‘지도’에 의해 가능했으며 다수 대중의 ‘자발성’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고 평가한다. 러시아혁명의 ‘비민주성’을 두고 진정한 혁명이 아니라고 판단한 칼 카우츠키와 계급투쟁의 운동방식으로서 대중파업의 ‘자발성’도 중시하는 로자 룩셈부르크와 대립하는 한편, 내부적으로 부르주아와 지주 계급 뿐만 아니라 즉각적 무장봉기에 반대했던 멘셰비키 등과의 투쟁 과정에서 혁명을 성공했고 집권 후에도 혁명을 지키기 위해 외무, 군사인민위원으로서 처절하게 내전을 치른 당사자로서는 당연한 평가일 것이다.
 
2017년은 1917년 러시아혁명 100주년이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30년 만에 다수 대중의 힘으로 독재권력을 종식시킨 역사적인 해이다.
2017년은 30년 전인 1987년 보다 한 발 더 나아가 독재권력을 끌어내리기까지 한 해이다.
우리 사회 동시대 민중들 덕분에 러시아혁명 또한 ‘사회주의’ 이념이나 ‘볼세비키’ 정치세력 중심보다는 ‘소비에트’라는 대중 조직의 ‘자발성’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1917년 10월 러시아 소비에트 혁명 과정을 그 해 2월 혁명부터 7월 봉기를 거쳐 8월 코르닐로프 반혁명, 10월 볼셰비키 혁명까지 르포처럼 엮은 미국의 역사가 알렉산더 라비노비치의 [1917년 러시아혁명 –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다](1976)의 중심에는 거대한 파도와도 같이 거스를 수 없는 다수 대중의 운동이자 권력의 한 축, 즉 ‘소비에트’가 있다.

 
"나의 주목표는 ‘밑으로부터의 혁명’의 발전과 1917년 2월과 10월 사이에 페트로그라드에 존재했던 각급 볼셰비키당 조직의 견해와 활동과 상황을 될 수 있는 대로 충실 하고 정확하게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혁명의 이 두 가지 주요 측면과 볼셰비키의 궁극적 승리 사이의 역동적 관계를 규명하려고 시도했다… 나는 당대의 문서에 나타난 공장 노동자와 병사와 수병들의 열망을 연구하면서 이들의 관심사가 볼셰비키가 내놓은 정치, 경제, 사회 개혁 강령과 가까이 일치했던 데 반해, 다른 모든 주요 정당은 충분히 열의를 다해 의미 있는 대내적 변화와 러시아의 즉각적 종전을 추진하지 않아서 널리 불신을 당하고 있었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 결과, 대중의 이해를 얻음으로써 볼셰비키의 목표는 10월에 대중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2월 혁명 기간 동안에 페트로그라드에는 1905년 혁명기간에 러시아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 잠시 존재했던 기관을 본뜬 노동자∙병사 소비에트(평의회)도 나타났다. 소비에트는 1917년 봄∙여름에 페트로그라드의 각 구에 설치되었으며, 소비에트와 함께 러시아 전역의 도시, 읍, 마을에서 유사한 풀뿌리 민주주의 기구가 생겨났다… 이것은 모두 합치면 임시정부보다 수적으로 더 큰 대표성을 띄었으며, 공장 노동자와 농민, 특히 병사 사이에서 충성심을 얻은 덕분에 잠재적으로는 임시정부보다 더 강력했다."
 
- A. 라비노비치, [1917년 러시아혁명], <프롤로그>, 1976.

 
레닌이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4월 테제]를 수정했든 말든, 볼셰비키가 혁명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를 가장 기민하게 현실에 적용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2017년 ‘혁명’이 보여준 것처럼, 전위가 대중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 대중이 소수 전위를 결국  ‘지도’한다.

 
"사실, 1917년에 볼셰비키의 증대하는 힘과 권위의 주요원천은 ‘평화(전쟁종식)∙토지(무상배분)∙빵(노동자 경영참여)!’과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슬로건에서 구체화된 당 강령이 뿜어낸 자력이었다. 볼셰비키는 페트로그라드의 공장 노동자와 병사, 크론시타트 수병의 지지를 얻으려는 운동을 아주 힘차고 능숙하게 벌였다. 이 집단에서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슬로건은 소비에트 안에 있는 모든 정당과 정파를 대표하고 즉각적 강화와 중요한 내부 개혁과 조속한 헌법제정회의 소집이라는 강령에 헌신하고 사회주의자로만 이루어지는 민주정부를 창출한다는 뜻이었다… 오직 볼셰비키만이 권력투쟁에서 군대가 필연적으로 지니는 결정적 의의를 간파한 듯 하다. 아마 훨씬 더 근본적으로는 볼셰비키의 경이로운 성공은 적잖이 1917년에 당이 띤 성격 덕택으로 돌릴 수 있다. 여기서 내가 염두에 두는 것은 그 역사적 의의를 부정할 수 없는 레닌의 대담하고도 결단성 있는 지도력이나 비록 크게 과장되기는 했지만 흔히 언급되는 볼셰비키 조직의 통일과 규율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 전통적 레닌주의 모델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 내부적으로 비교적 민주적이고 관용적이며 분권화한 당의 구조와 작동 방식,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개방적이고 대중적인 당의 성격을 강조하고자 한다."
 
- A. 라비노비치, [1917년 러시아혁명], <에필로그>, 1976.


트로츠키가 [러시아혁명사]를 맺으며 결론지은 노동자, 병사, 빈농 등 대다수 '모든 사람들'의 열망을 정치적으로 실현한 10월 혁명의 문화적 의의를 보자.


"혁명으로 파멸한 러시아 유산계급은 혁명이 러시아의 문화수준을 하락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0월 혁명이 타도한 러시아 귀족문화는 최종적으로 분석하면 서구의 더 고상한 모델을 피상적으로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러시아 인민은 그것을 향유하지도 못했으며 그 문화는 인류의 문화적 보고에 근본적으로 기여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10월 혁명은 새로운 문화의 기초를 놓았다. 모든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며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즉시 국제적 의의를 획득한 것이 이 새로운 문화다. 불리한 조건과 적대세력의 공격으로 소비에트 체제가 일시적으로 타도될 수 있다고 잠시 가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10월 혁명의 지울 수 없는 자취는 인류 미래의 발전에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 L. 트로츠키, [러시아혁명사], <결론>, 1932.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저술로 보수적인 역사학자들의 허울 뿐인 ‘중립성’에 맞선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러시아 소비에트혁명에 대한 방대한 연구와 저술을 남겼는데 그가 대중서로 편집한 [러시아혁명 1917 – 1929](1979)은 제1장 <1917년 10월>에서 10월 혁명의 과정을 아주 간략하게 정리하고는 혁명 후 반동세력으로부터 혁명을 지켜낸 내전과 신경제정책(NEP)으로 농민의 입장을 지지했던 과정, 일국사회주의 선언과 ‘대약진’을 선포한 5개년 경제개발계획 등의 이야기들을 풀어내면서 ‘혁명’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혁명은 자본주의의 쇠퇴가 낳은 결과인 동시에 쇠퇴를 야기한 원인으로 볼 수도 있다."
 
- E. H. 카, [러시아혁명 1917 - 1929], <1917년 10월>, 1979.

 
이 시대 ‘혁명’의 원인과 결과는 바로 ‘자본주의 쇠퇴’이다.
 
 
(2017년 9월)
 
 
***


1. [E.H.카 러시아 혁명 1917 - 1929], E. H. 카 지음(1979), 유강은 옮김, <이데아>, 2017.
 
2. [1917년 러시아혁명 –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다], A. 라비노비치 지음(1976), 류한수 옮김, <책갈피>, 2017.
 
3. [러시아혁명사], L. 트로츠키 지음(1932), 볼셰비키그룹 옮김, <아고라>,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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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H. 카 러시아 혁명 - 1917-1929
에드워드 H. 카 지음, 유강은 옮김 / 이데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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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시대 ‘혁명’의 원인과 결과는 ‘자본주의 쇠퇴’이다(1709)
- 러시아혁명 100주년 : 카, [러시아혁명], 라비노비치, [1917년 러시아혁명], 트로츠키, [러시아혁명사]
 

 
"대중이 사회의 운명에 직접 개입하는 것, 이것이 바로 혁명이다… 역사 서술은 혁명 사건들의 뒤에서 일어나는 집단적 의식의 변화들을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운동의 ‘자발성’이라는 자루 속에 모든 것을 처넣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 이 추상적인 말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고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혁명은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 이 말은 혁명 대중이 혁명의 법칙들을 인식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대중의 의식은 우연히 변화하지 않으며 이론적으로 설명 가능한 객관적 필연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 때문에 대중의 의식은 예측 가능하며 지도가 가능하다."
 
- L. 트로츠키, [러시아혁명사], <2권과 3권 서문>, 1932.

 
러시아혁명의 주체 중 하나였던 레온 트로츠키는 1917년 러시아혁명은 억압받는 다수 피지배계급이 낡은 체제를 무너뜨린다는 사회법칙의 필연성을 인식하고 적극 실천했던 볼셰비키라는 정치세력의 ‘지도’에 의해 가능했으며 다수 대중의 ‘자발성’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고 평가한다. 러시아혁명의 ‘비민주성’을 두고 진정한 혁명이 아니라고 판단한 칼 카우츠키와 계급투쟁의 운동방식으로서 대중파업의 ‘자발성’도 중시하는 로자 룩셈부르크와 대립하는 한편, 내부적으로 부르주아와 지주 계급 뿐만 아니라 즉각적 무장봉기에 반대했던 멘셰비키 등과의 투쟁 과정에서 혁명을 성공했고 집권 후에도 혁명을 지키기 위해 외무, 군사인민위원으로서 처절하게 내전을 치른 당사자로서는 당연한 평가일 것이다.
 
2017년은 1917년 러시아혁명 100주년이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30년 만에 다수 대중의 힘으로 독재권력을 종식시킨 역사적인 해이다.
2017년은 30년 전인 1987년 보다 한 발 더 나아가 독재권력을 끌어내리기까지 한 해이다.
우리 사회 동시대 민중들 덕분에 러시아혁명 또한 ‘사회주의’ 이념이나 ‘볼세비키’ 정치세력 중심보다는 ‘소비에트’라는 대중 조직의 ‘자발성’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1917년 10월 러시아 소비에트 혁명 과정을 그 해 2월 혁명부터 7월 봉기를 거쳐 8월 코르닐로프 반혁명, 10월 볼셰비키 혁명까지 르포처럼 엮은 미국의 역사가 알렉산더 라비노비치의 [1917년 러시아혁명 –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다](1976)의 중심에는 거대한 파도와도 같이 거스를 수 없는 다수 대중의 운동이자 권력의 한 축, 즉 ‘소비에트’가 있다.

 
"나의 주목표는 ‘밑으로부터의 혁명’의 발전과 1917년 2월과 10월 사이에 페트로그라드에 존재했던 각급 볼셰비키당 조직의 견해와 활동과 상황을 될 수 있는 대로 충실 하고 정확하게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혁명의 이 두 가지 주요 측면과 볼셰비키의 궁극적 승리 사이의 역동적 관계를 규명하려고 시도했다… 나는 당대의 문서에 나타난 공장 노동자와 병사와 수병들의 열망을 연구하면서 이들의 관심사가 볼셰비키가 내놓은 정치, 경제, 사회 개혁 강령과 가까이 일치했던 데 반해, 다른 모든 주요 정당은 충분히 열의를 다해 의미 있는 대내적 변화와 러시아의 즉각적 종전을 추진하지 않아서 널리 불신을 당하고 있었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 결과, 대중의 이해를 얻음으로써 볼셰비키의 목표는 10월에 대중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2월 혁명 기간 동안에 페트로그라드에는 1905년 혁명기간에 러시아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 잠시 존재했던 기관을 본뜬 노동자∙병사 소비에트(평의회)도 나타났다. 소비에트는 1917년 봄∙여름에 페트로그라드의 각 구에 설치되었으며, 소비에트와 함께 러시아 전역의 도시, 읍, 마을에서 유사한 풀뿌리 민주주의 기구가 생겨났다… 이것은 모두 합치면 임시정부보다 수적으로 더 큰 대표성을 띄었으며, 공장 노동자와 농민, 특히 병사 사이에서 충성심을 얻은 덕분에 잠재적으로는 임시정부보다 더 강력했다."
 
- A. 라비노비치, [1917년 러시아혁명], <프롤로그>, 1976.

 
레닌이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4월 테제]를 수정했든 말든, 볼셰비키가 혁명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를 가장 기민하게 현실에 적용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2017년 ‘혁명’이 보여준 것처럼, 전위가 대중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 대중이 소수 전위를 결국  ‘지도’한다.

 
"사실, 1917년에 볼셰비키의 증대하는 힘과 권위의 주요원천은 ‘평화(전쟁종식)∙토지(무상배분)∙빵(노동자 경영참여)!’과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슬로건에서 구체화된 당 강령이 뿜어낸 자력이었다. 볼셰비키는 페트로그라드의 공장 노동자와 병사, 크론시타트 수병의 지지를 얻으려는 운동을 아주 힘차고 능숙하게 벌였다. 이 집단에서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슬로건은 소비에트 안에 있는 모든 정당과 정파를 대표하고 즉각적 강화와 중요한 내부 개혁과 조속한 헌법제정회의 소집이라는 강령에 헌신하고 사회주의자로만 이루어지는 민주정부를 창출한다는 뜻이었다… 오직 볼셰비키만이 권력투쟁에서 군대가 필연적으로 지니는 결정적 의의를 간파한 듯 하다. 아마 훨씬 더 근본적으로는 볼셰비키의 경이로운 성공은 적잖이 1917년에 당이 띤 성격 덕택으로 돌릴 수 있다. 여기서 내가 염두에 두는 것은 그 역사적 의의를 부정할 수 없는 레닌의 대담하고도 결단성 있는 지도력이나 비록 크게 과장되기는 했지만 흔히 언급되는 볼셰비키 조직의 통일과 규율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 전통적 레닌주의 모델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 내부적으로 비교적 민주적이고 관용적이며 분권화한 당의 구조와 작동 방식,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개방적이고 대중적인 당의 성격을 강조하고자 한다."
 
- A. 라비노비치, [1917년 러시아혁명], <에필로그>, 1976.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저술로 보수적인 역사학자들의 허울 뿐인 ‘중립성’에 맞선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러시아 소비에트혁명에 대한 방대한 연구와 저술을 남겼는데 그가 대중서로 편집한 [러시아혁명 1917 – 1929](1979)은 제1장 <1917년 10월>에서 10월 혁명의 과정을 아주 간략하게 정리하고는 혁명 후 반동세력으로부터 혁명을 지켜낸 내전과 신경제정책(NEP)으로 농민의 입장을 지지했던 과정, 일국사회주의 선언과 ‘대약진’을 선포한 5개년 경제개발계획 등의 이야기들을 풀어내면서 ‘혁명’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혁명은 자본주의의 쇠퇴가 낳은 결과인 동시에 쇠퇴를 야기한 원인으로 볼 수도 있다."
 
- E. H. 카, [러시아혁명 1917 - 1929], <1917년 10월>, 1979.

 
이 시대 ‘혁명’의 원인과 결과는 바로 ‘자본주의 쇠퇴’이다.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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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H.카 러시아 혁명 1917 - 1929], E. H. 카 지음(1979), 유강은 옮김, <이데아>, 2017.
 
2. [1917년 러시아혁명 –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다], A. 라비노비치 지음(1976), 류한수 옮김, <책갈피>, 2017.
 
3. [러시아혁명사], L. 트로츠키 지음(1930), 볼셰비키그룹 옮김, <아고라>,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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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러시아 혁명 -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다
알렉산더 라비노비치 지음, 류한수 옮김 / 책갈피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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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시대 ‘혁명’의 원인과 결과는 ‘자본주의 쇠퇴’이다(1709)
- 러시아혁명 100주년 : 카, [러시아혁명], 라비노비치, [1917년 러시아혁명], 트로츠키, [러시아혁명사]
 

 
"대중이 사회의 운명에 직접 개입하는 것, 이것이 바로 혁명이다… 역사 서술은 혁명 사건들의 뒤에서 일어나는 집단적 의식의 변화들을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운동의 ‘자발성’이라는 자루 속에 모든 것을 처넣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 이 추상적인 말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고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혁명은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 이 말은 혁명 대중이 혁명의 법칙들을 인식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대중의 의식은 우연히 변화하지 않으며 이론적으로 설명 가능한 객관적 필연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 때문에 대중의 의식은 예측 가능하며 지도가 가능하다."
 
- L. 트로츠키, [러시아혁명사], <2권과 3권 서문>, 1932.

 
러시아혁명의 주체 중 하나였던 레온 트로츠키는 1917년 러시아혁명은 억압받는 다수 피지배계급이 낡은 체제를 무너뜨린다는 사회법칙의 필연성을 인식하고 적극 실천했던 볼셰비키라는 정치세력의 ‘지도’에 의해 가능했으며 다수 대중의 ‘자발성’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고 평가한다. 러시아혁명의 ‘비민주성’을 두고 진정한 혁명이 아니라고 판단한 칼 카우츠키와 계급투쟁의 운동방식으로서 대중파업의 ‘자발성’도 중시하는 로자 룩셈부르크와 대립하는 한편, 내부적으로 부르주아와 지주 계급 뿐만 아니라 즉각적 무장봉기에 반대했던 멘셰비키 등과의 투쟁 과정에서 혁명을 성공했고 집권 후에도 혁명을 지키기 위해 외무, 군사인민위원으로서 처절하게 내전을 치른 당사자로서는 당연한 평가일 것이다.
 
2017년은 1917년 러시아혁명 100주년이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30년 만에 다수 대중의 힘으로 독재권력을 종식시킨 역사적인 해이다.
2017년은 30년 전인 1987년 보다 한 발 더 나아가 독재권력을 끌어내리기까지 한 해이다.
우리 사회 동시대 민중들 덕분에 러시아혁명 또한 ‘사회주의’ 이념이나 ‘볼세비키’ 정치세력 중심보다는 ‘소비에트’라는 대중 조직의 ‘자발성’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1917년 10월 러시아 소비에트 혁명 과정을 그 해 2월 혁명부터 7월 봉기를 거쳐 8월 코르닐로프 반혁명, 10월 볼셰비키 혁명까지 르포처럼 엮은 미국의 역사가 알렉산더 라비노비치의 [1917년 러시아혁명 –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다](1976)의 중심에는 거대한 파도와도 같이 거스를 수 없는 다수 대중의 운동이자 권력의 한 축, 즉 ‘소비에트’가 있다.

 
"나의 주목표는 ‘밑으로부터의 혁명’의 발전과 1917년 2월과 10월 사이에 페트로그라드에 존재했던 각급 볼셰비키당 조직의 견해와 활동과 상황을 될 수 있는 대로 충실 하고 정확하게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혁명의 이 두 가지 주요 측면과 볼셰비키의 궁극적 승리 사이의 역동적 관계를 규명하려고 시도했다… 나는 당대의 문서에 나타난 공장 노동자와 병사와 수병들의 열망을 연구하면서 이들의 관심사가 볼셰비키가 내놓은 정치, 경제, 사회 개혁 강령과 가까이 일치했던 데 반해, 다른 모든 주요 정당은 충분히 열의를 다해 의미 있는 대내적 변화와 러시아의 즉각적 종전을 추진하지 않아서 널리 불신을 당하고 있었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 결과, 대중의 이해를 얻음으로써 볼셰비키의 목표는 10월에 대중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2월 혁명 기간 동안에 페트로그라드에는 1905년 혁명기간에 러시아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 잠시 존재했던 기관을 본뜬 노동자∙병사 소비에트(평의회)도 나타났다. 소비에트는 1917년 봄∙여름에 페트로그라드의 각 구에 설치되었으며, 소비에트와 함께 러시아 전역의 도시, 읍, 마을에서 유사한 풀뿌리 민주주의 기구가 생겨났다… 이것은 모두 합치면 임시정부보다 수적으로 더 큰 대표성을 띄었으며, 공장 노동자와 농민, 특히 병사 사이에서 충성심을 얻은 덕분에 잠재적으로는 임시정부보다 더 강력했다."
 
- A. 라비노비치, [1917년 러시아혁명], <프롤로그>, 1976.

 
레닌이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4월 테제]를 수정했든 말든, 볼셰비키가 혁명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를 가장 기민하게 현실에 적용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2017년 ‘혁명’이 보여준 것처럼, 전위가 대중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 대중이 소수 전위를 결국  ‘지도’한다.

 
"사실, 1917년에 볼셰비키의 증대하는 힘과 권위의 주요원천은 ‘평화(전쟁종식)∙토지(무상배분)∙빵(노동자 경영참여)!’과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슬로건에서 구체화된 당 강령이 뿜어낸 자력이었다. 볼셰비키는 페트로그라드의 공장 노동자와 병사, 크론시타트 수병의 지지를 얻으려는 운동을 아주 힘차고 능숙하게 벌였다. 이 집단에서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슬로건은 소비에트 안에 있는 모든 정당과 정파를 대표하고 즉각적 강화와 중요한 내부 개혁과 조속한 헌법제정회의 소집이라는 강령에 헌신하고 사회주의자로만 이루어지는 민주정부를 창출한다는 뜻이었다… 오직 볼셰비키만이 권력투쟁에서 군대가 필연적으로 지니는 결정적 의의를 간파한 듯 하다. 아마 훨씬 더 근본적으로는 볼셰비키의 경이로운 성공은 적잖이 1917년에 당이 띤 성격 덕택으로 돌릴 수 있다. 여기서 내가 염두에 두는 것은 그 역사적 의의를 부정할 수 없는 레닌의 대담하고도 결단성 있는 지도력이나 비록 크게 과장되기는 했지만 흔히 언급되는 볼셰비키 조직의 통일과 규율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 전통적 레닌주의 모델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 내부적으로 비교적 민주적이고 관용적이며 분권화한 당의 구조와 작동 방식,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개방적이고 대중적인 당의 성격을 강조하고자 한다."
 
- A. 라비노비치, [1917년 러시아혁명], <에필로그>, 1976.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저술로 보수적인 역사학자들의 허울 뿐인 ‘중립성’에 맞선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러시아 소비에트혁명에 대한 방대한 연구와 저술을 남겼는데 그가 대중서로 편집한 [러시아혁명 1917 – 1929](1979)은 제1장 <1917년 10월>에서 10월 혁명의 과정을 아주 간략하게 정리하고는 혁명 후 반동세력으로부터 혁명을 지켜낸 내전과 신경제정책(NEP)으로 농민의 입장을 지지했던 과정, 일국사회주의 선언과 ‘대약진’을 선포한 5개년 경제개발계획 등의 이야기들을 풀어내면서 ‘혁명’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혁명은 자본주의의 쇠퇴가 낳은 결과인 동시에 쇠퇴를 야기한 원인으로 볼 수도 있다."
 
- E. H. 카, [러시아혁명 1917 - 1929], <1917년 10월>, 1979.

 
이 시대 ‘혁명’의 원인과 결과는 바로 ‘자본주의 쇠퇴’이다.
 
 
(2017년 9월)
 
 
***


1. [E.H.카 러시아 혁명 1917 - 1929], E. H. 카 지음(1979), 유강은 옮김, <이데아>, 2017.
 
2. [1917년 러시아혁명 –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다], A. 라비노비치 지음(1976), 류한수 옮김, <책갈피>, 2017.
 
3. [러시아혁명사], L. 트로츠키 지음(1930), 볼셰비키그룹 옮김, <아고라>,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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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브리치 세계사 즐거운 지식 (비룡소 청소년) 17
에른스트 H. 곰브리치 지음, 클리퍼드 하퍼 그림, 박민수 옮김 / 비룡소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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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독서모임 - 시즌 1 : '곰.세']

우리집 삼남매가 다 모여 독서모임을 하면 좋겠으나,
셋째 애기딸이 클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오빠언니가 이미 부모와 등지는 나이가 될까 우려되어 급시작한 '우리집 독서모임'.

[곰브리치 세계사]를 함께 읽으며 '역사'를 주제로 할 시즌 1 '곰.세'에서 막내 애기딸은 참관인 또는 훼방꾼으로 참여할 듯 한데 일단 8월 첫 모임에서는,

1. 책의 구성과 독서 방식 : '서론-본론-결론' 구조와 목차 먼저 읽기
2. '역사' - 시즌 1 : '변화 및 진화, 상호 발전하는 만물의 운동'이자 '세계를 보는 거울'로서의 '역사'
3. '철학' - 시즌 2 : '만물 운동의 본질 및 법칙과 경향인 진리를 추구하는 사유방식'으로서의 '철학'
4. '역사'와 '철학'을 토대로 어떻게 독서를 할 것인가
5. 향후 '우리집 독서모임' 운영 방안

등에 대한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토론을 하고자 했으나 그딴건 관심없고 머릿속에는 온갖 게임생각만 가득차 한시도 집중 안되시는 첫째 아드님과 자유분방하다 못해 이야기 흐름을 끊기 아니면 그림낙서에 여념 없으신 둘째 언니딸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기만을 기다리고, 셋째 애기딸은 예상대로 훼방꾼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시다.

2017년 8월 5일 (토), 
어쨌든, 
[곰브리치 세계사] 서론격인 1장 <옛날 옛적에>를 간신히 함께 읽고 시즌 1 첫모임을 마무리하다.

***

[곰브리치 세계사](1935) -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간략한 세계사

오스트리아 출신 예술사가 에른스트 요제프 곰브리치가 박사학위를 받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던 1935년에 영어로 된 '어린이를 위한 역사책'의 독일어 번역을 의뢰받았는데, 본인이 더 잘 쓸 수 있다고 판단하여 출간한 어린이 역사책이 [곰브리치 세계사]이다. 

곰브리치가 빈 대학에서 예술사와 고고학 박사학위 내용을 지인의 자녀에게 쉽게 설명하던 것이 동기가 되기도 했다는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쓰게된 루이스 캐럴과 비슷한 모티브라 정겹다.

서장에 해당되는 1장 '옛날 옛적에'는 역사 전반에 대한 이야기, 
2장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가들'은 선사시대,
3장부터 17장까지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인도, 증국, 로마 문명 등 고대,
18장부터 24장까지는 민족대이동과 로마 제국의 몰락 및 중세시대,
25장부터 35장까지 도시의 생성과 시민의 등장, 혁명의 근대,
36장부터 결론이 포함된  39장까지는 현대의 산업혁명과 제국주의, 1차 세계대전 종전까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이 집필되고 첫 출간된 시기는 1935~1936년이었고 곰브리치는 39장에서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과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며 끝을 맺었으나, 이후 2차 세계대전을 겪은 그는 '후기'에 해당하는 40장 '나 자신이 체험한 세계사의 한 부분 - 회고'를 통해 과학의 진보가 더 나은 미래를 담보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세계전쟁이 보여준 점 등의 이야기를 첨부한다.

곰브리치 본인이 서양인이다 보니 유럽사 중심의 세계사라는 한계는 있으나,
어린이와 청소년이 문명 발상과 종교, 이념 등을 포함하여 간략하게 세계 인류의 역사 흐름을 이해하는데 손색이 없는 '어린이 역사책'의 고전이다. 우리 자녀들과 두고두고 한장 한장 곱씹어 읽을 만한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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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 GPE 총서 10
니크 브란달 외 지음, 홍기빈 옮김 / 책세상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책소개)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 [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외 - '우리식 사회민주주의 모델'

"사회민주주의는 자유주의나 마르크스주의처럼 정돈된 사상이나 이념체계가 없다. 본래 모든 종류의 정치적 유토피아주의와 단절하고 의회를 통한 정책과 제도의 개혁이라는 실용주의를 추구해온 것이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인지라 핵심이 되는 사상이나 원리를 찾기 어렵다...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핵심을 파악하려면 구체적 현실에서 사회민주당들이 어떤 고민을 해왔고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 북유럽 나라 사람들이 산업사회의 여러 혼란을 성공적으로 돌파할 수 있었던 근원적인 비결은 바로 자유, 평등, 연대라는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가치와 이를 실현해낸 실용주의의 지혜와 끈기에 있었다."

-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 니크 브란달 / 외이빈 브라트베르그 / 다그 토르센 지음, 홍기빈 옮김, <책세상>, 2014.  '옮김이의 말'

새삼 '사회민주주의 모델'이 떠오른 것은,
2017년 5월 '촛불대선'이 끝난 후였다.

대선전 촛불정국에서는 새누리당으로 집결된 수구세력은 이제 우리 역사에서 퇴장하고 집권 예정인 민주당이 진정한 '보수'로 자리매김하면서 진보정당이 '우리식 사회민주당'이 되었으면 했다.

그런데 오랜만의 민주정부 선한 민주주의자들의 개혁적 행보와 자유한국당 수구적폐 세력의 여전한 활약을 보니,

바로 지금,
'우리식 사회민주주의 모델'이 당장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시장 경제체제에 지배받지 않고 이 경제체제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기여하도록 통제'하는 역할을 오랜만에 '선출된 민주정부'가 해주기를 바란다. 

현실 정치에서 민주당 정부와 '협치 대상'으로 남을 '수구보수'에 대응하여 현 정부가 '우리식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이 땅에 정착시킨다면 진보정당이 할 일이 현실적으로 더욱 명확해질 수도 있겠다.
그 과정에서 우리사회는 어느새 또 한 발 전진하고 있겠지.

조금더 나은 세계를 '현실적'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지금 우리 사회 공동체에 경의를 표한다.

"정치의 힘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야말로 사회민주주의 이념의 본질...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기본 혜안은 사회를 돌보는 일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기관들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체제란 정치적 결정의 산물이며 따라서 정치적 과정들을 통해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는 몰인격적이고 통치불가능한 경제적 힘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집단의 정치행동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이 사회민주주의의 신조이다."

-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 제11장 '정치의 힘'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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