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진보정당 운동사 - 큰 개혁과 작은 혁명들의 이야기
장석준 지음 / 서해문집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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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역시, ‘현대의 군주’인 ‘진보정당’이 다수의 ‘무기’다!
-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 - ‘큰 개혁’과 ‘작은 혁명’들의 이야기], 장석준 지음, <서해문집>, 2019.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18세기 말 ~ 19세기 초의 세계사를 기술하면서 ‘이중혁명’의 시대라 규정했다. 프랑스(대혁명)에서 극적으로 전개된 민주주의 혁명과 영국(산업혁명)에서 본격 시작된 자본주의 혁명, 이 두 혁명이 동시에 전개됐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두 개의 큰 운동은 여전히 민주주의의 전반적인 확산과 자본주의의 끊임없는 갱신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혼란의 밑바탕에는 민주주의 혁명과 자본주의 혁명의 격렬한 충돌이 있다. (진보)좌파정당이란 바로 이 충돌에서 단호히 민주주의 혁명의 편에 서는 정당이다. 민주주의 편에서 자본주의에 맞서고, 타협을 만들어 내더라도  민주주의 원리가 우위에 선 타협을 위해 노력하며, 종국에는 민주주의 혁명이 자본주의 혁명을 제압하고 극복하는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정당이다.”

- 같은책, <서문>

우리 진보정당 운동의 정책과 교육 분야에서 활동하는 장석준 선생의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는 현재의 ‘진보정당’을 이해하기 위해 ‘이론’보다는 ‘역사’를 돌아보는 책이다.
‘역사’를 다루고 있으니 이야기책을 보듯 한 장 한 장 아껴가며 재미있게 읽었는데, 수구 자유한국당과 보수중도를 못 벗어난 민주당의 실질적 양당구도인 우리 정치에서 ‘진보정당’,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기에 강력한 산별노조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강력한 진보정당이 우리 사회를 바꾸는 대다수 민중의 ‘무기’가 되어야 한다는 기대를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21세기 진보정당’ 형태일 수 있는 그리스 ‘시리자(급진좌파연합)’와 스페인 ‘포데모스(할 수 있다)’보다 지난 역사로서 독일 사회민주당이나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브라질 노동자당의 역사를 서술한 장이 더 잘 읽힌 이유일 것이다. 
아마도 현재의 진보정당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논하기 위해 ‘이론’보다는 ‘역사’를 다룬 저자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읽은 것일지는 모르나, 세계 진보정당의 소중한 역사를 저자의 방대한 참고문헌과 연구를 바탕으로 더 넓고 깊게 증보하기를 기대한다.
E.H.카가 ‘러시아혁명사’를 연구하고 방대한 저술로 남겼듯이.

끝날 수 없는 진보정당 운동사의 ‘중간 정리’로서 ‘결론’을 독자로서 다음과 같이 분류해 본다.

‘지금도 반복되는 진보정당의 고뇌’인 ‘작은 개혁’과 ‘큰 혁명’의 관계는 이제 이 책의 부제에 나온 것처럼 ‘큰 개혁’과 ‘작은 혁명’으로 치환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큰 테마다. 민주주의 무대에서 ‘혁명’을 잊지 말고 끊임없이 ‘개혁’하자는 것이 하나의 ‘이론적 결론’이다.

또한, 현재의 진보정당은 진보의 다원성을 강화하고 연대하는 ‘좌파블럭’을 변혁의 주체로 하여 당시 정세에 맞는 ‘진보적 대중연합’(그람시의‘역사적 블록’)을 구축해야 하며, 다수 대중이 이러한 사회변혁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무기’는 여전히 ‘진보정당’이라는 것이 또 하나의 ‘역사적 (잠정)결론’이다.

“소수의 자본 소유자와 다수의 노동대중 사이에는 뿌리 깊은 구조적 차원을 지닌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작동한다. 진보정당운동의 과제는 이 권력관계를 돌이킬 수 없게 역전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일상 시기에 기존 세력균형을 끊임없이 격동시키고 조금이라도 변형하려는 노력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계급 권력관계의 심층에 자리한 구조들에 손을 대는 급진개혁으로 발전해야 한다. 선거를 통한 집권은 이러한 과정을 가속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야만 한다(그렇지 않다면 의미가 없다).그래서 궁극적으로는 계급권력구조 자체를 해체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일반화’하여 견지해야 할 마르크스-엥겔스 정치이론의 핵심 메시지일 것이다.”

- 같은책, <결론>

지난 150년의 역사 속에서 ‘운동형 정당’으로 현상했던 진보정당의 형태가 21세기에는 대중의 분노와 역동성을 더욱 기반으로 하는 대중연합적 ‘정당형 운동’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개혁’이라는 ‘최소강령’만을 목표로 타협하고 균형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강한 소수에 비해 약한 다수에게 세력관계가 ‘불가역적으로’ 역전되는 것이 바로 ‘혁명’이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대다수 민중의 ‘무기’는 그람시의 말대로 ‘현대의 군주’인 ‘(진보)정당’이다.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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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 - 임노동자기금논쟁과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신정완 지음 / 사회평론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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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복지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 - 임노동자기금논쟁과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신정완 저, <사회평론>, 2012.


“애초의 기금안은 스웨덴 사민주의 운동의 전통적 정치노선이었던 국민정치 노선으로부터 이탈하여 계급정치적 의제를 전면에 부각시킨 계획이었다...
1975년 (마이드너 그룹의) 기금안 시안에서, 기금안정당화 논변의 초점은 무엇보다도 재산과 경제적 권력의 재분배 문제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1976년 LO총회에 제출된 기금안에서는 연대임금 정책으로 인한 초과이윤 문제가 가장 강조되었고, LO와 사민당이 공동으로 입안한 1978년 기금안과 1981년 기금안에서는 경제침체 극복을 위한 집단적 자본형성의 필요성이라는 새로운 정당화 논변이 전면에 부각되었다. 시간이 경과할 수록 기금안 정당화 논변에서 계급정치적 문제의 비중은 약화되고, 전통적인 개혁주의적, 국민정치적 문제의 비중이 커져간 것이다.”

- 같은책, 3장 <스웨덴 모델과 임노동자기금안>


읽고 싶은 책이 없어 예전 책들을 뒤지다가 몇 년전에 읽었던 [복지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를 다시 읽었는데,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꽃’을 내려올 때 보았다.

그 ‘꽃’이 바로 저자가 결론적 대안으로 지지하는 ‘중앙집권적 시민기금안’인데, 몇 년전 처음 읽을 때는 비록 스웨덴 모델에서 실패했지만 노동계급 중심의 배타적 ‘임노동자기금안’만 머릿속에 남았더랬다.
‘임금노동자기금안’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한 스웨덴 ‘연대임금 모델’에서 고수익 대기업의 ‘초과이윤’을 기금으로 하여 대기업의 주식을 점진적으로 소유하면서 궁극에는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이룬다는 체제이행의 거대한 기획이다.
아마도 ‘임노동자기금안’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전투적 노동계급이 살아있고 ‘재벌개혁’이 경제 민주화의 주요 테마인 한국 모델에서는 적용 가능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또한, 스웨덴 정치이념 중 그나마 마르크스주의를 버리지 않았던 비그포르스와 그들의 사상을 구현하는 마이드너의 사회개조안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 임노동자기금안 입안자들이 구상했던 경제체제 모델은, (1) 시장경제의 존속을 통해 경제적 효율이 확보되며, (2) 복지국가의 유지를 통해 시장경제의 문제점들이 완화되고, (3) 임노동자기금을 통해 노동조합이 민간 대기업들을 소유함으로써 직접 생산자에 의한 생산수단의 소유라는 사회주의의 고전적 이상이 구현되는 경제체제였던 것이다.”

- 같은책, 4장 <기금사회주의 모델>


아마도 성년이 된 후 처음으로 겪었던 촛불 ‘시민’ 항쟁의 기억 때문이리라. ‘배타적’ 노동계급만이 아니라 시민대중이 함께 하는 것이 ‘혁명’이라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 것은.
알튀세의 제자였던 발리바르는 어디에선가 말했다.
“공산주의 혁명은 비공산주의자 대중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산수단의 사회적 전면 쟁취가 아니라 그 다양한 ‘기능’에 따른 분산 점유를 주장한 스웨덴 ’기능사회주의자’ 칼레비의 좌파적 계승안으로서 ‘중앙집권적 시민기금안’은 아마도 ‘생산수단 사회화’라는 고전적 체제이행 과제를 공세적으로 내건 노동계급의 ‘임노동자기금안’의 ‘배타성’을 견제하기 위해 일련의 ‘자유주의자’들이 내놓은 반대안이었을 수 있지만, 지금 우리 시대에는 다시금 논쟁할 수 있는 체제이행의 대안 중 하나 아닐까 한다.


“중앙집권적기금안은 스웨덴 사민주의 운동의 주류 입장이었던 복지국가주의 또는 기능사회주의 노선에 한층 밀착해 있다. 민주적 방식으로 구성된 국가의 개입을 통해 자본주의 경제의 문제점들을 완충, 해소한다는 복지국가주의의 논리를 생산수단의 소유 문제에까지 연장 적용시킨 것이다.”

- 같은책, 4장 <기금사회주의 모델>


지금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거쳐 ‘사회적 민주주의’로서 ‘복지국가’ 논쟁을 또 넘어서 ‘경제 민주주의’를 이루어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생산수단) 사회화 계획의 내용은 가능한 한 사민주의 정치의 전통적 노선인 국민정치 노선에 잘 부합되는 형태로 마련하고, 사회화 기획을 관철하는 방식으로는 이념적, 정치적 정면대결 노선을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먼저 사회화의 주체는 노동조합 등 임노동자 집단만을 대표하는 조직보다는 국가나 준국가적 공동기구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존하는 유일한 제도는 정치적 민주주의 원리에 의해 구성, 운영되는 국가다. 또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의 존재론적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정치적 민주주의 원리에 기초할 때, 국민대중의 일반적 이익을 담지하는 공적조직으로서 정치적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조직은 국가 외에 달리 없기도 하다. 또 사회화는 대다수 사회 성원의 삶의 조건을 크게 바꾸는 기획이기 때문에, 사회화된 생산수단의 소유와 관리 문제는 모든 사회 성원에 의한 정치적 의사결정의 범위 내에 있도록 하는 것이 규범적으로 바람직하다.”

- 같은책, 5장 <복지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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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초한지 1~3 세트 (전3권 + 가이드북) 원본 초한지
견위 지음, 김영문 옮김 / 교유서가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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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풍가(大風歌)]와 [해하의 노래(垓下歌)]
- 꽉막힌 항우와 방만한 유방

알라딘에서 읽어볼 책을 검색하다가 ‘초한지 원본번역’이 떠서 급궁금하여 더 찾아보니,
2000년대 중반에 동아일보에서 연재할 때 다음 회를 기대하며 재미있게 읽었던 이문열의 [큰 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가 [이문열 초한지] 총 10권으로 나와 있었다.

‘큰 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는 한고조가 된 유방이 고향 패현으로 놀러가서 고향 선후배, 친구들과 음주가무를 즐기다가 전쟁터에서 지낸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지은 시의 첫 구절이다.

“큰 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 (大風起 雲飛揚 : 대풍기 운비장)
위세가 해내에 떨쳐 고향에 돌아왔네 (威加海內 歸故鄕) : 위여해내 귀고향)
어떻게 하면 맹사를 얻어 사방을 지키게 할까 (安得猛士 守四方 : 안득맹사 수사방)”

한고조 유방의 인생 절정기에 지어 부른 이 노래의 제목은 [대풍가(대풍의 노래)]다.
유방은 이 노래를 부른 다음해에 53세의 나이([초한연의]에는 61세, 진순신은 53세라 한다)로 파란만장했던 생을 마감한다.

유방 최후의 적수 초패왕 항우도 해하에서 ‘사면초가’를 듣고는 유방에게 패배를 인정한 후 총애하는 우미인과 준마 추를 앞에 두고 독주 한 잔 마시면서 시를 한 수 읊는데 이 노래는 유방의 [대풍가]보다 유명한 [해하의 노래(해하가)]다.
31세의 항우는 이날 최후의 결전을 벌이고는 하늘을 탓하며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한다.

“힘은 산을 뽑고 기세는 세상을 덮어도 (力拔山 氣蓋世 : 역발산 기개세)
때가 이롭지 않아 추가 나아가지 않네 (時不利 騅不逝 : 시불리 추불서)
추가 나아가지 않음을 어찌하랴 (騅不逝 可奈何 : 추불서 가내하)
우야 우야 너를 어찌한단 말이냐 (虞兮虞(兮) 奈若何 : 우혜우(혜) 내약하)

어조사 ‘혜(兮)’는 뜻은 없이 음율을 맞추기 위함인데 일종의 쉼표와 같다. 예를 들어 ‘대풍기 운비장’ 중간에 넣어 ‘대풍기혜운비장(大風起兮雲飛揚)’과 같이 부르는데 우리 어릴적 중국에서 온 ‘비단장사 왕서방’이 “우리 사람 ‘혜’ 명월이한테 반했어~” 같은 것 아닐까 싶다.

아주 오래전인 기원전 12세기 이전부터 중국 하북지역은 ‘2+2=4’글자 시를 지어 불렀고, 춘추전국시대 중국 남방 초나라 지역의 ‘초사’는 ‘1+2(역+발산) 또는 2+1(대풍+기)’ 운율이 전해지다가 진시황의 전국 통일 후 섞이고 섞여 ‘2+3 또는 3+2’에 ‘2 또는 2+2+4’가 붙어 5글자 또는 7글자 운율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우리가 시조를 보며 익히 들어온 ‘4언절구’, ‘5언절구’, ‘7언절구’ 등일 것이다.
아마도 ‘3언절구’가 없는 것이 항우의 초나라가 망해서 그런 것 아닌가 싶은 것은 오로지 나의 추측이다.

초패왕 항우는 초나라 사람으로 정통 ‘초사’에 따라 ‘3+3=6’을 철저히 따른 반면,
한고조 유방은 그 자유분방하고 제멋대로인 성정 그대로 술이 꽐라되어 남방의 ‘3+3=6(대풍기+운비장)’으로 거창하게 시작했다가 ‘2+2+3(위여+해내+귀고향 / 안득+맹사+수사방)’으로 형식에 구애없이 막 부른 듯 하다.
이런 자유로움 속에서 ‘7언절구’가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역시 나만의 추측이다.

여기서도 꽉막힌 항우의 형식주의와 방만한 유방의 자유주의적 성정의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 참고 : [패권], 진순신/오자키 호츠키 편, <솔>, 2000.

명나라 말기 ‘종산거사’ 견위가 정리한 ‘서한연의’ 원본번역을 읽어보니 정사에 기초한 평역으로서의 이문열의 작품과는 역시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이문열의 [평역 삼국지]와 황석영의 ‘원본번역’ [삼국연의]의 차이가 그대로 전이된 듯 하다.
해하의 대회전에서 한고조 유방과 대원수 제왕 한신이 초패왕 항우를 대패시킨 ‘극적 장치’로서 ‘구리산 십면매복’을 배치시킨 이 원본완역은 조선후기 언문번역으로부터 350년만이라고 한다. 이문열은 ‘초한지’를 ‘평역’하면서 ‘구리산 십면매복’을 인위적인 허구로 치부하여 과감히 삭제하고는 ‘역사적 리얼리티’를 위해 사마천 [사기]의 내용으로 대체했다.
이제 원본완역자 김영문에 따르면 우리 ‘초한지’는 ‘구리산 십면매복’이 있는 초한지와 없는 초한지로 구분된다.

350년만에 원본을 번역한 김영문의 [초한지(서한연의)]는 중간중간 삽입된 시들과 견위의 ‘역사논평’ 일체를 전부 번역한 우리 최초의 ‘원본완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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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이문열 초한지 세트 (전10권)
이문열 / 민음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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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풍가(大風歌)]와 [해하의 노래(垓下歌)]
- 꽉막힌 항우와 방만한 유방

알라딘에서 읽어볼 책을 검색하다가 ‘초한지 원본번역’이 떠서 급궁금하여 더 찾아보니,
2000년대 중반에 동아일보에서 연재할 때 다음 회를 기대하며 재미있게 읽었던 이문열의 [큰 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가 [이문열 초한지] 총 10권으로 나와 있었다.

‘큰 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는 한고조가 된 유방이 고향 패현으로 놀러가서 고향 선후배, 친구들과 음주가무를 즐기다가 전쟁터에서 지낸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지은 시의 첫 구절이다.

“큰 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 (大風起 雲飛揚 : 대풍기 운비장)
위세가 해내에 떨쳐 고향에 돌아왔네 (威加海內 歸故鄕) : 위여해내 귀고향)
어떻게 하면 맹사를 얻어 사방을 지키게 할까 (安得猛士 守四方 : 안득맹사 수사방)”

한고조 유방의 인생 절정기에 지어 부른 이 노래의 제목은 [대풍가(대풍의 노래)]다.
유방은 이 노래를 부른 다음해에 53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했던 생을 마감한다.

유방 최후의 적수 초패왕 항우도 해하에서 ‘사면초가’를 듣고는 유방에게 패배를 인정한 후 총애하는 우미인과 준마 추를 앞에 두고 독주 한 잔 마시면서 시를 한 수 읊는데 이 노래는 유방의 [대풍가]보다 유명한 [해하의 노래(해하가)]다.
31세의 항우는 이날 최후의 결전을 벌이고는 하늘을 탓하며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한다.

“힘은 산을 뽑고 기세는 세상을 덮어도 (力拔山 氣蓋世 : 역발산 기개세)
때가 이롭지 않아 추가 나아가지 않네 (時不利 騅不逝 : 시불리 추불서)
추가 나아가지 않음을 어찌하랴 (騅不逝 可奈何 : 추불서 가내하)
우야 우야 너를 어찌한단 말이냐 (虞兮虞(兮) 奈若何 : 우혜우(혜) 내약하)

어조사 ‘혜(兮)’는 뜻은 없이 음율을 맞추기 위함인데 일종의 쉼표와 같다. 예를 들어 ‘대풍기 운비장’ 중간에 넣어 ‘대풍기혜운비장(大風起兮雲飛揚)’과 같이 부르는데 우리 어릴적 중국에서 온 ‘비단장사 왕서방’이 “우리 사람 ‘혜’ 명월이한테 반했어~” 같은 것 아닐까 싶다.

아주 오래전인 기원전 12세기 이전부터 중국 하북지역은 ‘2+2=4’글자 시를 지어 불렀고, 춘추전국시대 중국 남방 초나라 지역의 ‘초사’는 ‘1+2(역+발산) 또는 2+1(대풍+기)’ 운율이 전해지다가 진시황의 전국 통일 후 섞이고 섞여 ‘2+3 또는 3+2’에 ‘2 또는 2+2+4’가 붙어 5글자 또는 7글자 운율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우리가 시조를 보며 익히 들어온 ‘4언절구’, ‘5언절구’, ‘7언절구’ 등일 것이다.
아마도 ‘3언절구’가 없는 것이 항우의 초나라가 망해서 그런 것 아닌가 싶은 것은 오로지 나의 추측이다.

초패왕 항우는 초나라 사람으로 정통 ‘초사’에 따라 ‘3+3=6’을 철저히 따른 반면,
한고조 유방은 그 자유분방하고 제멋대로인 성정 그대로 술이 꽐라되어 남방의 ‘3+3=6(대풍기+운비장)’으로 거창하게 시작했다가 ‘2+2+3(위여+해내+귀고향 / 안득+맹사+수사방)’으로 형식에 구애없이 막 부른 듯 하다.
이런 자유로움 속에서 ‘7언절구’가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역시 나만의 추측이다.

여기서도 꽉막힌 항우의 형식주의와 방만한 유방의 자유주의적 성정의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 참고 : [패권], 진순신/오자키 호츠키 편, <솔>, 2000.

명나라 말기 ‘종산거사’ 견위라는 사람이 적었다는 ‘서한연의’ 원본번역을 읽어봐야겠다.

이문열의 [큰 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 중 인상깊은 고사인 ‘說者同而得失異者(설자동이득실이자)’ 관련 2006년 글을 첨부한다.

***

같은 말에도 얻는 것과 잃는 것이 다르다
(說者同而得失異者)
-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통해 보는 고사성어(故事成語)(10)
: ‘항우본기(項羽本記)’, ‘고조본기(高祖本記)’를 통해 본 초한전쟁(楚漢戰爭) - 2


사학법(私學法) 개정을 반대하며 수구세력(守舊勢力)이 국회를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치권에서 ‘연회(宴會)’를 열었다. 연회의 시작은 단연 여당인 열린우리당이었다. 2006년 1월의 내각인사 이후 원내대표와 당의장을 새로 선출한답시고 한창 어수선한 분위기를 연출하더니 신임 여당 원내대표와 역시 새로 뽑힌 야당의 원내대표가 설날 다음날에 북한산에 오르면서 정치적 연회의 절정을 이루었다. 북한산 정상에서의 양당 원내대표의 합의. 사학재단의 ‘사유재산(私有財産)’을 지키고 ‘국가정체성(國家政體性)’을 ‘수호(守護)’하고자 국회문을 박차고 나갔던 수구야당은 다시 국회 등원을 선택했고, 여당에서는 사학법의 재개정을 전제로 한 합의가 아니었다고 손을 내젓는다. 입시경쟁 위주의 교육제도를 통해 자신의 ‘사유재산’을 더욱더 불리고 ‘교육(敎育)’이라는 허울을 빌어 그 재산을 지키기 위한 온갖 비리를 일삼던 사학재단을 개혁하고자 했던 애초의 취지는 사학법의 재개정의 가능성과 더불어 이미 민중들로부터 의혹의 눈초리를 받기 시작했다. “‘일점일획(一占一劃)’도 고치지 않겠다”는 여당 지도부의 수사(修辭)에도 이 땅 민중들은 별로 수긍을 하지 않는 듯 하다. 정치(政治)는 결국 ‘타협(妥協)의 예술(藝術)’이기 때문이다.

기원전 206년, 진(秦)나라의 수도 함양(咸陽)을 항우(項羽)보다 먼저 점령한 유방(劉邦)은 뒤따라오는 항우의 세력에 겁을 먹고 일단 근처 패상(覇上)이라는 지역으로 물러나 있었고, 뒤늦게 함양에 도달한 항우는 홍문(鴻門)이라는 곳에 40만의 군사를 주둔시키고 10만에 불과한 유방의 군사를 치려 하고 있었다. 이에 항우의 숙부인 항백(項伯)은 오래전 유방의 책사(策士) 장량(張亮;張子房)으로부터 신세를 진 바 있어 다음날의 참사를 미리 알려 목숨을 부지할 수 있도록 돕고자 유방의 진채로 찾아든다. 하지만 장량은 유방을 버리고 도망갈 수는 없다며, 항우에게 항복할 것을 유방에게 권유하였고, 유방은 항백을 맞아 자신은 원래부터 함양을 들어 항우에게 바칠 의사였노라고 말한다. 이에 항백은 유방에게 그 다음날 직접 항우를 찾아가서 그 뜻을 전하라고 권하지만, 천하를 차지하려는 유방의 큰 뜻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항우의 책사 범증(笵增)은 유방을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을 꺾지 않는다.
다음날, 항우를 찾아간 유방은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사죄하는 한편, 범증은 항우의 사촌동생 항장(項莊)으로 하여금 검무(劍舞)를 추게 하여 유방을 제거하려 하였으나 검무의 짝을 맞추면서 이를 교묘하게 제지한 항백과 당시에는 항우를 위해 일했으나 후에 유방의 또 다른 책사로 활약한 진평(陳平)의 도움으로 유방은 술에 취한 척 하며 자리를 떠남으로써 항우를 속이고 무사히 목숨을 보전하게 된다. 유방이 슬그머니 도망갔음을 알아챈 범증은 유방이 헌상한 옥두(玉斗;옥으로 만든 국자)를 칼로 내리치며 분개했지만 이미 항우의 마음은 풀어졌으며 유방은 40리나 떨어진 패상으로 도주하고 난 후였다.

‘홍문연회(鴻門宴會)’는 유방의 언사에 속아 넘어간 항우가 헛되이 베푼 잔치인 동시에 유방을 유인하여 모살(謀殺)하려는 범증의 살육제(殺戮祭)였으며, 궁지에 몰린 유방이 후일을 기약하며 일단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처절한 정치적 타협의 장이었다.

鴻門宴會 (鴻門:홍문, 지역이름 / 宴:잔치 연 / 會:모이다 회)

홍문의 연회, 유방을 제거하려는 범증의 계략(計略)이 화려한 검무로 위장되는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순간에 자신의 속내를 감춘 유방이 항우를 회유하여 속이는 한편, 강한 상대 앞에서 비굴한 모습도 불사하면서 술에 취한 척 도주함으로써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여 후일을 꾀할 수 있게 한 잔치였으며, 고대로부터 타협의 극치인 정치의 단면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다음 해인 기원전 205년, 스스로 옹립한 초(楚)나라 의제(義帝)를 죽이고 항우는 패왕(覇王)이 되었고 이에 항우의 토벌(討伐)을 선언한 한왕(漢王) 유방은 각 지역의 제후(諸侯)들을 모아 항우의 본거지 팽성(彭城)을 공격하였으나 항우의 3만 군사에게 56만의 대군을 잃고 퇴각하던 중 형양(滎陽)에 머물게 되는데, 형양을 기점으로 하여 동서로 땅을 나눠 갖고 휴전을 하자는 제의도 거절당한 채 고단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당시 유방의 측근 중에는 역생(易生) 또는 역이기(易餌其)라고 불리는 선비가 있었다. 그는 한왕 유방에게 오래 전 은(殷)나라 시조(始祖) 탕왕(湯王)이 하(夏)나라의 폭군(暴君) 걸왕(桀王)을 끌어내린 후 그 후손에게 기(杞)나라의 봉지(封地)를 하사한 일, 주(周)나라를 일으킨 무왕(武王)이 은나라 주왕(紂王)을 무찌르고 나서 그 후손에게 역시 송(宋)나라의 봉지를 나누어 준 일을 상기시키면서 진(秦)나라 이전 육국(六國)의 후손들을 찾아내어 봉건제를 다시 세우며 한왕의 관인(官印)을 내리면 모두가 한왕 유방을 우러르면서 마침내 초나라의 항우도 한왕 유방을 섬기게 될 것이라는 방책(方策)을 제시한다. 이는 진나라의 폭정에 최초로 반란을 일으켰던 진승(陳勝;陳涉)과 오광(吳廣)에게 각 영지의 제후들과 그 측근들이 헌책(獻策)했던 내용으로서 극악한 진나라 황실에 대한 반란을 전국적으로 조직할 수 있게끔 하였던 계책이었다. 이 말을 듣고 즉시 육국의 관인을 제조하라고 지시한 유방은 그의 책사 장량(張亮;張子房)에게 그 헌책의 장중함을 자랑하게 되는데, 장량은 역이기의 시대착오적인 정세분석이 왜 잘못되었는가에 대하여 유방의 밥상에 있던 젓가락 여섯 개를 가지고 조목조목 설파한다.

첫째, 은나라 탕왕이나 주나라 무왕이 걸왕이나 주왕의 후손을 왕으로 봉할 수 있었던 것은 언제든 상대의 생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였는 바, 유방은 지금 항우의 생사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가의 물음.
유방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장량은 천하를 힘으로 장악(掌握)하고 있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후들을 왕으로 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설명하고는 첫번 째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둘째,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공격하면서 태행산(太行山)에 은거(隱居)하던 현인(賢人) 상용(商容)이 살던 마을 어귀에서 그의 밝고 어짐을 칭송하였고, 주왕에게 바른 말을 하다가 옥에 갇힌 기자(箕子)를 풀어주었으며, 역시 주왕에게 직언(直言)을 하다가 죽임을 당한 비간(比干)의 무덤에 봉분을 키워주었는데, 지금 유방은 성인의 무덤을 돌보거나 현자를 널리 칭송할 만한 상황인가.
아직 그럴 겨를이 없다고 대답하는 유방.
즉, 아직 천하 만민의 마음을 두루 어루만지지 못한 상황에서 제후를 왕으로 봉할 수 없다는 설명과 함께 두번 째 젓가락이 밥상 위에 올려진다.

셋째, 주나라 무왕은 은나라의 창고를 열고 재물을 흩어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며 천하의 지지기반을 닦았는데, 과연 지금 유방은 천하 모든 창고의 돈과 곡식을 꺼내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도 아직 천하의 창고를 모두 얻지 못한 유방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즉, 천하의 모든 재물과 곡식을 풀어 가난한 민중들에게 나눠줄 수 없는 상황에서 제후를 왕으로 봉할 수 없다는 설명과 함께 세번 째 젓가락이 소리를 내었다.

넷째, 주나라 무왕은 은나라 주왕을 끌어내린 후 전투수레를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타는 수레로 바꾸고 창칼에 호랑이 가죽을 씌워 거꾸로 매달았으며, 전투에 쓰였던 우마(牛馬)를 풀어주면서 다시는 전쟁에 사용하지 않겠노라고 천하에 선언하였는데, 과연 지금 유방도 무력(武力)을 포기하고 문교(文敎)를 우선시할 수 있는가라는 네번 째 젓가락 소리에도 역시 천하 형세를 결정짓는 싸움을 다 끝내지 못한 유방은 긍정적으로 답할 수 없었다.

다섯째, 현재 한왕 유방을 따라 천하를 떠도는 수많은 호걸들에게는 유방이 천하를 얻은 후에 봉지를 받아 제후가 되고자 하는 목적이 있을 터, 육국의 후손들을 왕으로 봉하게 되면 유방과 생사를 같이 하기로 결의한 호걸들은 자신들에게 돌아올 땅이 없음을 알고는 유방의 곁을 떠날 것이니 그들이 없이는 유방이 천하를 얻을 수 없기에 지금 제후들을 왕으로 봉할 수 없는 다섯번 째 이유가 그것이다.

여섯째로, 한나라와 초나라의 형세가 저울질되는 판에 만약에 유방이 뜻한 바와 다르게 초나라가 강성해지게 되면 육국의 후손들을 초나라를 섬기게 될 것이니 한왕으로서는 지금 그 제후들을 왕으로 봉해서는 안된다는 설명을 마지막으로 여섯번 째 젓가락이 유방의 밥상 위에서 소리를 내었다.

장량의 정세판단에 유방은 육국의 관인을 즉시 녹여 없애라 명하였으며, 역이기는 한참 동안 그의 거처에서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장량은 역이기와 다른 정세분석을 내놓고 있는데, 한왕 유방이 항우와 자웅(雌雄)을 겨루던 당시는 수백 년에 걸친 봉건제(封建制)의 모순(矛盾)이 극에 달한 후에 진나라에 의해서 초석이 세워진 중앙집권제(中央集權制)가 역사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음을 간파한 장량의 명석한 정세판단 능력을 보여준다. 객관적으로 같은 조건에도 이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과는 확연하게 다른 것이다.
이후 북송(北宋) 시대의 역사가 사마광(司馬光)이 저술한 편년체의 역사서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는 역이기의 시대착오적인 헌책을 두고 다음과 같이 이르고 있다고 한다.

說者同而得失異者
(說;이야기 설/者;접미사 자/同;같을 동/而;부정접속 이/得;얻을 득/失;잃을 실/異;다를 이/者)
같은 말에도 얻는 것과 잃는 것이 다르다. 즉, 객관적 정세에 대한 판단의 차이에 따라 같은 말도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뜻으로서, 역시 객관적 인식이 모든 판단의 우선이 되어야 함을 의미하고 있다.

자치통감의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고 한다(이문열의 <큰 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에서 인용).

“일찍이 장이와 진여가 진승을 찾아가 육국을 되일으켜 한편으로 삼으라고 한 것과 역이기가 한왕을 찾아가 헌책을 한 것은 그 말한 것은 같지만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다르다(說者同而得失異者). 진승이 일어날 때는 천하가 모두 진나라가 망하기를 바랐으나, 초나라와 한나라가 나뉘어 형세가 정해지지 않은 당시에는 천하가 반드시 항씨(項氏;項羽)가 망하기만을 바라지는 않았다.
따라서 진승에게는 육국을 되세우는 것이 말하자면 자기편을 늘리고 진나라의 적을 더하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거기다가 진승은 아직 천하의 땅을 오로지 얻지 못했으니 제 것이 아닌 것을 남에게 주어 속빈 은혜로 알찬 복을 얻어낸 셈이었다. 그러나 한왕에게 육국을 되세우게 하는 것은 자신이 가진 것을 잘라내 적에게 보태주는 꼴이요, 헛된 이름을 내세워 실제의 화를 얻는 길이었다…”

역사적으로 중앙집권적인 새로운 체제가 등장해야 하는 단계에서, 이전 시대 역사발전의 질곡(桎梏)이었던 봉건제의 부활을 통해 현재의 얽킨 실타래를 풀려고 했던 선비 역이기는 북송시대 왕안석(王安石)의 신법당(新法黨)의 개혁적 당파에 대립하여 보수적인 구법당(舊法黨)의 영수(領袖)의 위치에 있던 사마광이 보기에도 현실을 타개(打開)하는 대안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사유재산’과 ‘국가정체성’ ‘수호’라는 명목 하에 언제까지 사학재단의 비리와 구태가 반복될 수는 없다. 수구세력은 ‘타협의 정치’를 통해 사학재단의 재산을 굳게 지킬 방법을 모색할 것이고, ‘정치적 타협’을 위해 연회를 마련한 중도개혁세력도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게 적당한 선에서 재개정을 의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객관적인 조건을 보자. 교육을 빙자한 소수의 ‘사유재산’ 지키기에 손을 들어줄 사람이 많을 것인가, 아니면 대다수 민중을 위해 보다 공공성(公共性)을 담보한 제도 속에서 아이들이 교육받기를 바라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인가.
같은 말이라 해도 객관적 인식의 차이에 따라 그 의미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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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스탈린주의, 공동전선
레온 트로츠키 지음, 이수현 옮김 / 책갈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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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파시즘’이 준동하는 지금 , 다시 '공동전선'!
- 레온 트로츠키, [파시즘, 스탈린주의, 공동전선], 이수현 옮김, <책갈피>, 2019.

"파시즘은 두 가지 조건의 산물이다. 하나는 첨예한 사회적 위기이고, 다른 하나는 혁명적 독일 프롤레타리아의 허약성이다. 독일 프롤레타리아의 허약성 자체는 두 가지 요소로 이뤄져 있다. 하나는 사민당의 역사적 구실, 즉 사민당은 여전히 프롤레타리아의 대열 안에서 자본가계급의 유력한 대리인 구실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공산당의 중간주의 지도부가 노동자들을 혁명의 깃발 아래 단결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 L. Trotsky, <독일:국제 정세의 열쇠>, [파시즘, 스탈린주의, 공동전선].

자유한국당의 기획적 망언과 광주 학살 치매골퍼 전두환의 '자서전' 등 '촛불혁명'으로 궁지에 몰린 극우 정치세력이 우리 민주주의 원천 5.18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총공세를 시작했다. 시대에 '절망'한 '태극기부대'를 주력으로 하는 극우 '파시즘'이 준동하고 있다.
이명박근혜의 국정농단과 부정부패에 분노한 다수 민중들이 극우 정권을 몰아내고 혁명적 흐름에 편승한 민주정부가 들어섰으나, 자본독재체제에서 대다수 민중들의 생활은 절망적 '헬조선'을 벗어나지 못한 '사회적 위기'와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꿀 혁명적 세력의 부재 혹은 '허약함'을 보면, 또한 현 민주정부가 '노동존중', '혁신적 포용국가' 등 일련의 사회민주주의적 수사를 붙인 정책을 내세우고 있지만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와 탄력적 노동시간제 개악, 경사노위 야합을 통해 '자본가계급의 유력한 대리인 구실'을 하고 있는 현 정세는 1930 ~ 1933년의 트로츠키가 규정한 '파시즘'이 득세하게 되는 바로 그 사회적 조건이기도 하다.

"파시즘의 역사적 구실... 파시즘은 프롤레타리아의 바로 위에 있는 계급들, 그래서 프롤레타리아 대열로 전락하는 것을 늘 두려워하는 계급들이 들고 일어나게 만든다. 파시즘은 공식 정부의 비호를 받으며 금융자본의 돈으로 그들을 조직하고 무장시킨다. 그들을 이끌고 프롤레타리아 조직들을 혁명적 조직이든 보수적 조직이든 가리지 않고 박멸하려 한다.
파시즘은 보복, 무자비한 폭력, 경찰테러의 체제만은 아니다. 파시즘은 부르주아 사회내의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요소들을 모두 뿌리뽑은 바탕위에 수립된 독특한 지배체제다."

- L. Trotsky,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같은책.

노동조건 개악은 물론 민주노총을 비롯한 일체의 민주적 노동자와 시민조직들을 '일베'와 '어버이' 등 중간계급(프티부르주아)을 금전지원 및 동원하여 박멸하려 했던 이명박근혜 정권은 엄연한 '파시즘' 정권이었다.
수많은 민중들이 '혁명적'으로 몰아낸 후 들어선 민주정부가 갈팡질팡하는 사이 고립된 극우정당인 자한당은 다시금 '파시스트'로서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이 미친 파시스트들이 '박근혜 사면'과 '5.18 망언'을 앞세우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공동전선... 혁명적 변증법은 (스탈린주의적 관료적 최후통첩주의의) 그 악순환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을 이미 오래전에 제시했고, 아주 다양한 영역에서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그것을 입증했다. 즉 권력장악을 위한 투쟁과 개혁을 위한 투쟁을 서로 연결시키고, 공산당의 완전한 독립성을 지키면서도 그 기구들을 활용하고, 의회연단에서 의회주의를 가차없이 비판하고, 개혁주의에 맞서 무자비하게 전쟁을 벌이면서도 부분적 투쟁들에서는 개혁주의자들과 실천적 협정을 맺었다."

- L. Trotsky,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같은책.

평생 스탈린의 '일국 사회주의'와 '관료적 최후통첩주의', '교조적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초좌파주의'적 '국가자본주의'에 맞서 '소비에트 혁명'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다가 결국 스탈린에 의해 암살당한 트로츠키의 정세분석 문건이므로 이 책에서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은 가차없다.
그 중 '스탈린주의'의 가장 큰 오류는 당시 독일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개혁하려 했던 독일 사민당도 '파시즘'과 쌍둥이라고 하면서 사민당을 지지하던 다수 노동세력을 이른바 '사회파시즘'으로 규정하고 '공동전선'을 펴지 못하도록 한 '초좌파주의'이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기획하던 '국제공산주의자'였던 트로츠키는 '혁명적 공산당'이 다음과 같은 '공동전선'을 적극 조직해야 한다고 강력 주장한다.

1. 소비에트유럽합중국 건설 : 정치경제적 모순이 첨예해진 독일이 당시 '국제정세의 열쇠'다.
2. '계급 대 계급(의 투쟁)' : 프롤레타리아 모든 조직들이 부르주아에 대항하는 '공동전선'에 참여해야 한다.
3. '공동전선'의 '실천적 강령' : 대중이 분명히 지켜보는 앞에서 조직들이 체결한 협정에 따라 결정된다. 모든 조직은 자신의 깃발과 지도부를 유지한다. 그러나 행동에서는 '공동전선'의 규율을 지킨다.
4. 소비에트 건설 : 프롤레타리아 '공동전선'의 최고형태인 노동자 소비에트를 선전하고 조직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5. 따로따로 행진하여 함께 공격 : 어떤 상황에서도 공산당은 완전한 조직적, 정치적 독립성을 항상 유지해야 한다.
6. 당(조직)내 민주주의 복원 : 프롤레타리아의 광범위한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7. 노동조합 정책방향의 급격한 전환 : 노조의 단결을 바탕으로 개혁주의 지도부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8. 노동통제 기관으로서 공장위원회와 산업경영참여기관으로서의 중앙집중적 소비에트 : 물가인하를 위한 투쟁과 임금삭감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하고 이 투쟁을 노동자들이 생산을 통제하는 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9. 혁명 : 사회주의로 변화시키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 L. Trotsky, 같은책.

트로츠키가 정세분석을 하던 1930 ~ 1933년의 독일은 이탈리아의 '파시즘의 방법론을 독일 신비주의 언어로 번역'한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 나치당이 집권하기 전에 지지세를 늘리고 있던 시기였다. 히틀러와 무솔리니, 프랑코 등으로 대표되던 유럽 집권 '파시즘'에 대항한 '일시적인 수세적 전술 이상의, 궁극적으로 패배를 공세로 전환시키기 위한, 민주주의적 원칙에 입각한 전략(에릭 홉스봄)'으로서의 1936년 이후 '인민전선' 이전에 트로츠키는 이미 '계급 대 계급'의 거대한 공세적 전선인 '공동전선' 전략을 강조한 것이다.

현재 우리 정세에서 극우 '파시즘'은 정신나간 일부 정치세력의 발악으로, 집권 가능성이 당장은 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트로츠키가 독일의 정세를 분석하던 1933년까지 히틀러는 '오로지 성격이 매우 괴팍하고, 목소리가 남들보다 훨씬 크고, 지능은 평범하지만 자심감은 넘쳤기 때문'에 두각을 나타냈고 '모욕당한 1차대전 참전병사의 복수심 말고는 기존의 어떤 강령도 운동에 가져오지 않은' 상태로 집권 가능성이 역시 높지 않았다.
사민당도 포함된 개혁세력의 우유부단함과 단호해야 했던 혁명세력의 비겁함의 틈새에서 중간계급을 동원하여 자본가계급에 복무하게 만든 결과 히틀러는 '파시즘' 정권을 수립하고 대산업과 금융부르주아지의 이익을 위해 2차대전을 일으킬 수 있었다.

"파시즘 체제가 정치적으로 나아갈 길은 전쟁 아니면 혁명이다."

- L. Trotsky, <국가사회주의란 무엇인가?>, 같은책.

'파시즘'이 준동하는 지금, 민주정부를 지지하는 대다수 노동자들과 실천적으로 연대하는 '공동전선'을 통해 한국노총 같은 어용 지도부와 다수 노동자를 분리시키면서 사회체제에 절망한 중간계급을 노동자계급편에 서도록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미친 '파시즘'의 종착지는 '전쟁'이고, '계급 대 계급'이 대결하는 거대한 '공동전선'의 목표는 '혁명'이다.

"공동전선 정책은 '계급 대 계급'의 투쟁이라는 근본적이고 냉엄한 현실에서 비롯한다."

- L. Trotsky, 같은책.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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