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를 위하여 - 새롭게 읽는 공산당 선언
황광우.장석준 지음 / 실천문학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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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공산당 선언](1848) - 마르크스/엥겔스
(브런치 서평)

https://brunch.co.kr/@beatrice100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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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와 한서 - 중국 정사正史의 라이벌
오키 야스시 지음, 김성배 옮김 / 천지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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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와 한서], 오키 야스시, 김성배 옮김, <천지인>, 2010.


"전한 중엽인 기원전 97년 사마천에 의해 완성된 [사기]와 후한 초인 서기 80년경에 완성된 반고의 [한서]는, 중국 역대 '정사'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두 책이다... '정사(정통역사)'를, 또는 역사서를 쓴다는 행위가 매우 정치적 의미를 갖는 행위였음을 우선 파악해 두기 바란다. 다만 한 가지 덧붙인다면, 사마천이 [사기]를, 반고가 [한서]를 지은 시점에서는 그것들이 '정사'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사기]와 [한서]가 정사로 인정을 받은 것은 저자들 생전의 일이 아니라 후세 왕조에 의해서였다... 말하자면 '정사'란, '기전체' 형식으로 쓰이고 왕조의 권위에 의해 공인된 역사서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 [사기와 한서], 오키 야스시, <1부. 책의 여로 - '정사'로서의 [사기]와 [한서]>

일본 중국문학박사 오키 야스시의 [사기와 한서](2008)는 중국 역사서 중 '통사'인 사마천 [사기]와 전한의 '단대사'인 반고 [한서]를 비교한 책이다., [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 등은 중국 '24사' 중 유명한 '4사'로 꼽히는데, 이 중에도 '정사'의 시조인 [사기]와 [한서]의 차이를 다루고 있다. 
두 역사서 모두 '정사'의 두 대표작으로서 [사기]는 "과연 하늘의 도는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중심으로 다양한 권력과 인물군상의 기록을 통해 역사적 진실을 알리려는 책이고, [한서]는 [사기]를 대부분 따랐으나 한나라 정권을 비판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다룬 내용은 삭제하거나 사실과 다르게 적고 있다. 

중국의 '정사(정통역사)' 선정 작업은 18세기 청나라 건륭 연간의 대규모 역사 정리 작업에 의해 [사기]와 [한서], [후한서]와 [삼국지] 등 '4서'를 비롯하여 [수서]와 [당서] 및 [오대사] 등의 '단대사'들을 포함 총 '24사'를 확정했다. 
'24사' 중 사마천의 [사기]만이 '통사'이며, 나머지는 하나의 왕조의 역사를 다룬 '단대사'인데, 상호모순되는 서술로써 '맥락'을 통한 '역사서술'의 기원이 사마천의 [사기]인 반면, 권력자가 된 '승자'로서 역사서술' 전형의 시초는 반고의 [한서]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역사서술'의 전형에 따라 당나라 단대사인 '5대' 후진시대 유후의 [신당서], [구당서] 등은 우리의 고구려와 발해 등 '요동사(요동 공동체 역사)'를 깎아 내리거나 제대로 기술하지 않으면서 '중국 중심의 역사'를 이야기하는데, 스스로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 흉노, 대월, 동호, 선비, 거란, 여진 등의 다양한 동,서,북방 민족공동체나, 주체적 역사기록을 제대로 보존하지 못한 채 중국의 편협한 기록의 편린에서 찾아야 하는 우리 예맥과 한반도 한민족의 '역사 찾기' 작업의 현실이 쉽지 않은 이유다.

"[사기]와 [한서]의 가장 큰 차이는 '통사'인가 '단대사'인가라는 점에 있다. 전한 시대에 사마천이 태고에서 자신의 시대까지의 통사를 완성해 버렸다. 그러면 뒷시대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란 말인가? 그것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반표가 쓰려고 했던 것은 [후전(사기후전)]이었고, [사기]에서 서술이 끝난 무제 이후 시대의 역사였다. 그런데, 그의 아들인 반고는 그 방법을 택하지 않고 전한 1대의 역사를 썼다. 그러자 당연히 사마천의 [사기]와 중복되는 부분도 나온다. 반고는 사마천의 [사기]의 문장을 사용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문체'로 바꾸었다... '통사'인 [사기]의 경우는, 진시황제이든 항우든 한 시대의 역할 중심에 있던 인물은 <본기(제왕의 기록)>의 피전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는다. 그러나 '단대사'의 경우에 <본기>의 피전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그 왕조의 인물로 한정된다. 전한 왕조의 역사를 쓰려는 [한서]에서 한나라 황제 이외의 인간이 <본기>에 들어오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한서] 이후, 중국 역대 왕조의 '정사'는 대개가 이러한 현 왕조(정권)를 위한 역사이다."
- [사기와 한서], 오키 야스시, <1부. 책의 여로 - 맺음말>

사마천은 한무제 정권에 아첨하지 않았기에 모욕을 당했고, '인간의 역사'를 완성하기 위해 살아남아 [사기]를 완성했다. "과연 하늘의 도는 있는가?"하고 한탄했던 사마천에게는 유교나 불교 등 지배이데올로기가 없었다. 반면, 반고는 [한서]를 통해 당대 후한 정권의 '정통성'을 '자신의 문체'에 담아야 했으며 유교의 지배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였다.. 반고 가문은 대대로 한나라의 지배계급이었다. 
'정치적 기록'으로서 정사 [한서]보다 '인간의 기록'으로서 [사기]가 후대에서 더욱 빛나는 이유다.

일제 식민지 시절 뿌리내려 우리 역사학계 주류가 된 이병도 무리의 '실증주의 사학'의 '실증 자료'의 주요한 근거 중 하나가 '동북공정'에 동원되는 중화주의 중심의 중국 '정사' 기록이라는 사실은 '실증주의 사학'이 '식민주의 역사관(식민사관)'에 다름 아니라는 것 또한 '실증'해 준다.
물론, 사마천의 [사기]나 반고의 [한서], 진수의 [삼국지] 정도만 해도  '변방 오랑캐들'을 일부러 무시했다기 보다 그 존재들에 대해 무지했거나 알만한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다른 민족의 존재와 힘을 알고도 노골적으로 폄하한 것은 당나라 이후 [구당서], [신당서]일 것이다.
"역사도 과학(사회과학)"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중요한 방향을 설정하는 '철학'이 없는 '과학'이 얼마나 부질없으며, 더 나아가 우리에게 해롭기까지 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파시즘에 부역하고 냉전 강화에 기여한 온갖 부류의 과학자들이 그러했지 않은가.

역사를 비롯한 모든 '과학'에도 '철학'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2020년 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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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파 - 내부 폭력의 사회심리학
퍼트리샤 스테인호프 지음, 임정은 옮김 / 교양인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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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좌파의 상상력 - 세계적 차원에서 본 1968], 조지 카치아피카스, 이재원/이종태 옮김, <이후>, 1999.


"만약 1968년이 그 누군가의 해였다면, 바로 이 해는 학생들의 해였다. 베이징에서 프라하와 파리를 거쳐 버클리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은 1968년을 특징짓는 운동들의 도화선이 됐다... 학생들은 대중 동원을 불러 일으키고 혁명적 조직의 초기 형성을 주도하는 등, '민족해방' 운동 내에서 오랫동안 중요한역할을 담당해 왔다... 1968년의 학생운동에서 돋보이는 점은 이들의 행동이 정치적으로 변해갔던 단계이다... 자기 이해(경제투쟁)에서 보편적 이해(정치투쟁)로의 전환(에로스 효과의 또 다른 차원)이 1968년에 발생한 일이었으며, 모든 이들이 이를 분명히 목격했다... 1968년에 학생들이 전개한 활동이직접적으로는 정치적이었다면, 이들의 행동이 가져온 결과는... 일상생활에 대한 가정들(소비주의에 대한 문화적 순응, 여성억압, 소수집단과 젊은이들에 대한 차별)을 의문에 부치면서, 학생운동은 전세계적인 정치적 반란을 동반했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됐던 '문화적 자각'을 전세계적 차원에서 촉진... 핵심부와 주변부 그리고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학생운동은 기존의 현실과 날카롭게 대비되는 전세계적 열망을 '자율적으로' 일치단결시켰다."
- [신좌파의 상상력], 조지 카치아피카스, <1968년의 사회운동들>

[신좌파의 상상력]은 미국의 인문사회과학자 조지 카치아피카스의 박사학위 논문이라고 한다. 그가  이 논문의 서두에 "스승이자 친구인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에게"라는 헌사를 바친 것을 보면 독일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일군의 마르크스주의 일파인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제자였던 듯 하다. 동서냉전의 '전체주의'에 반대하는 영구적 '부정의 변증법', '끝없는 혁명'의 편인 것이다.

카치아피카스는 프랑스의 '1968년 5월 혁명'과 미국의 '1970년 5월 혁명'을 주로 다루는데, 국제적 사건의 기원은 1961년 '베트남 민족해방전선(NLF)'의 결성과 1964년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 1968년 베트남의 대대적 '구정공세'로 수세에 몰린 미국의 군대 증파로 인한 '반전운동'의 확산이다. 그러나 그 물적토대는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와 비록 '노동계급 혁명'을 이루었음에도 '혁명'을 배신한 '스탈린주의'였다. '68 혁명' 기간에 '반스탈린적 마오(모택동)주의'와 '영구혁명'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발호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들은 기존의 '(구)좌파'와 차별화되면서 '신좌파'로 명명된다.


"(1968년) 5월은 경제적 해방을 위한 사회적 운동과 거대한 문화적 반란이 융합됐다는 특징이 두드려졌다... 사회주의적 저항이라는 오랜 전통 내에서 5월의 사건들에 새로운 성격을 부여한 것은, 바로 대규모의 사회운동 내에서 문화적 반란과 정치적 반란이 결합됐다는 사실이었다... 역사는 자신을 반복할지 모르지만, 이전과 똑같은 방식으로는 아니다.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소극(희극)'으로. 물론, 다음과 같이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첫 번째는 '에로스'로, 두 번째는 '카오스'로."
- [신좌파의 상상력], <프랑스 신좌파, 1968년 5월>

'에로스'는 '로고스' 즉, '이성' 지배에 대항한 '감성'이나 '욕망' 등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카치아피카스의 '스승이자 친구'였던 마르쿠제에 의하면 '이성 지배'의 극단적 반대급부로서 프로이트식의 '성적 욕망'과는 다른 '인간 본성'인데, 동양식으로 보면 공자의 '인'이다. '인'의 정치는, 인간의 '어진 본성' 또는 '인류애'를 실현하는 정치이며, 이것이 서양 '68 혁명'의 '에로스'의 정치와 맞닿는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일상 혁명'으로서 '신좌파'의 '68 혁명'은 일단의 '실패'로 귀결되는데, 새로운 '상상력'에 기반했던 '일상 혁명' 의제들이 기존 의회정치에 포섭되면서 진보적이고 급진적 정치는 '사표'가 되고, '학생운동가'들의 운동이 '직업화'되고 이전의 '수단'이 '목적'으로 전환되면서 이러한 현상은 가속된다. 체제 변혁의 '거대 담론'은 '가부장제 혁파', '군축'과 '젠더', '세대' 등의 '부문(운동) 담론'으로 분화된다. 
영구적인 '일상 혁명'의 반복 속에서 1968년도는 '에로스'로, 이후의 반복은 '카오스'로 보일 수 있겠다.


"... '문화 혁명'의 자동적 발생이라는 초월적 믿음(일단 경제가 변혁된다면, 사회의 나머지 부분들도 곧 따라 변할 것이라는)... 즉 지난 60년 동안의 실천 속에서 완전히 그 신용이 상실된 이론... 하지만 이와 동시에, 철저한 '정치 혁명'이 사회를 철저히 변혁시키는 데에 필수적이라는 점을 잊어서도 안된다."
- [신좌파의 상상력], <신좌파의 정치적 유산>

국가독점자본주의가 계속 혁신되고 현대화되는 과정에서, 지식인 노동자와 관료주의가 강화되고 기업의 경제영역에도 확산되면서 기존의 '프롤레타리아'는 분화되고 이간된다. 이러한 계급의 분화 속에서 [신좌파의 상상력]의 마지막 질문은 '혁명의 주체'에 대한 그것이다. 또한 다양해진 '혁명의 주체'들에 의해 수행되는 "필수적인 정치 혁명"의 중요성 또한 강조된다.
정치경제적인 '물적 토대'와  문화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상부 구조'는 여전히 상호 영향을 미치며, 결국 더욱 근본적인 것은 '경제'이고 이 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규정된 노동자 계급의 변화에 덧붙여, '혁명적 주체'가 스스로를 구성해 나아가는 방법상의차원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신좌파'가 던져준 유산들 중 하나는, '혁명적 주체'의 형성이 객관적으로규정된 생산 범주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역사적 통찰이다. '대자적 계급(부르주아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 같은 상대적 계급 각성)'의 형성은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민족이 공장 내에서 경제적 착취를 당하는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가부장적 억압 및 정치적 지배를 겪는 차원에서도, 물질적이고 상징적인 차원 모두에서 발생한다. 현대 세계에서 원자화된 개인이 '혁명적 주체'로 변형된 사례에는 제3세계의 민족해방 운동은 물론이고, 학생과 여성 및 공동체, 그리고 특히 중요하게는 소수 민족들 사이에서 발생한 운동도 포함된다."
- [신좌파의 상상력], <신좌파의 정치적 유산>

'신좌파'는 분화된 '혁명적 주체'라는 '정치적 유산'을 남겼다. 일체의 모든 '억압'에 맞서는 다양한 '혁명 주체'들의 영구적이고 일상적인 '혁명'이 1968년'신좌파'의 유산이며, 이를 끊임없이 추동하는 것이 바로 꺾이지 않는 다양한 영역에서의 '상상력'이다.


"너희에게 베트남 동지들을 멋대로 죽일 권리가 있다면, 
우리에게도 너희를 멋대로 죽일 권리가 있다.
...
너희에게 오키나와 동지들을 총검으로 찌를 권리가있다면,
우리에게도 너희를 총검으로 찌를 권리가 있다."
- 공산주의자동맹 적군파 군사혁명위원회, '전쟁 선언' 중 / [적군파], 퍼트리샤 스테인호프, 재인용

한편, 1968년 유럽과 1970년의 아메리카, 일본을 휩쓴 '학생운동'은 1968년 일본의 '전공투(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 세대를 양산하는데, 특히 일본 '전공투' 세대의 교조적 '섹트'인 '적군파'는 독일어 '분트(공산주의자동맹)를 모체로 하여 1972년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 테러' 등을 통해 전세계를 놀라게 했으며, 일본 내부에서는 반자본주의 '무장 투쟁' 공동체로서 1970~1972년 '아사마 산장 농성'과 같은 폐쇄된 조직 내 살인과 숙청, 비극적 몰살 등의 엽기 행각으로 '사이비 종교단'과 같은 신비주의적 관심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적군파' 초기 멤버이자 '일본 적군'의 여성 지도자 시게노부 후사코는 2000년부터 '전향'을 거부한 채 20년째 복역 중이고, 역시 일본 '전공투 세대'인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작가는 '허무주의 또는 염세주의적 세계관'을 소설화하는데, 일례로 하루키의 [1Q84]에  등장하는 변태적이고 이단적인 '종교단체'의 모티브 또한 '전공투'의 '좌파 섹터' '적군파'다.
여담으로, 1972년 '마징가 Z' 원작 만화의 '선과 악'의 이분법을 허무는 염세적 세계관 또한 '신좌파'의 영향을 받은 작가 나가이 고의 '상상력' 때문 아니겠는가.

(2020년 3월 21일)

***

1. [신좌파의 상상력 - 세계적 차원에서 본 1968], 조지 카치아피카스, 이재원/이종태 옮김, <이후>, 1999.

2. [적군파 - 내부 폭력의 사회심리학], 퍼트리샤 스테인호프, 임정은 옮김, <교양인>, 2013.

3.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양윤옥 옮김, <문학동네>, 2009.

4. [이성과 혁명](1941),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김현일/윤길순 옮김, <중원문화>,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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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좌파의 상상력 : 세계적 차원에서 본 1968 - 컬리지언총서 6
조지 카치아피카스 지음, 이재원 이종태 옮김 / 이후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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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좌파의 상상력 - 세계적 차원에서 본 1968], 조지 카치아피카스, 이재원/이종태 옮김, <이후>, 1999.


"만약 1968년이 그 누군가의 해였다면, 바로 이 해는 학생들의 해였다. 베이징에서 프라하와 파리를 거쳐 버클리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은 1968년을 특징짓는 운동들의 도화선이 됐다... 학생들은 대중 동원을 불러 일으키고 혁명적 조직의 초기 형성을 주도하는 등, '민족해방' 운동 내에서 오랫동안 중요한역할을 담당해 왔다... 1968년의 학생운동에서 돋보이는 점은 이들의 행동이 정치적으로 변해갔던 단계이다... 자기 이해(경제투쟁)에서 보편적 이해(정치투쟁)로의 전환(에로스 효과의 또 다른 차원)이 1968년에 발생한 일이었으며, 모든 이들이 이를 분명히 목격했다... 1968년에 학생들이 전개한 활동이직접적으로는 정치적이었다면, 이들의 행동이 가져온 결과는... 일상생활에 대한 가정들(소비주의에 대한 문화적 순응, 여성억압, 소수집단과 젊은이들에 대한 차별)을 의문에 부치면서, 학생운동은 전세계적인 정치적 반란을 동반했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됐던 '문화적 자각'을 전세계적 차원에서 촉진... 핵심부와 주변부 그리고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학생운동은 기존의 현실과 날카롭게 대비되는 전세계적 열망을 '자율적으로' 일치단결시켰다."
- [신좌파의 상상력], 조지 카치아피카스, <1968년의 사회운동들>

[신좌파의 상상력]은 미국의 인문사회과학자 조지 카치아피카스의 박사학위 논문이라고 한다. 그가  이 논문의 서두에 "스승이자 친구인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에게"라는 헌사를 바친 것을 보면 독일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일군의 마르크스주의 일파인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제자였던 듯 하다. 동서냉전의 '전체주의'에 반대하는 영구적 '부정의 변증법', '끝없는 혁명'의 편인 것이다.

카치아피카스는 프랑스의 '1968년 5월 혁명'과 미국의 '1970년 5월 혁명'을 주로 다루는데, 국제적 사건의 기원은 1961년 '베트남 민족해방전선(NLF)'의 결성과 1964년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 1968년 베트남의 대대적 '구정공세'로 수세에 몰린 미국의 군대 증파로 인한 '반전운동'의 확산이다. 그러나 그 물적토대는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와 비록 '노동계급 혁명'을 이루었음에도 '혁명'을 배신한 '스탈린주의'였다. '68 혁명' 기간에 '반스탈린적 마오(모택동)주의'와 '영구혁명'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발호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들은 기존의 '(구)좌파'와 차별화되면서 '신좌파'로 명명된다.


"(1968년) 5월은 경제적 해방을 위한 사회적 운동과 거대한 문화적 반란이 융합됐다는 특징이 두드려졌다... 사회주의적 저항이라는 오랜 전통 내에서 5월의 사건들에 새로운 성격을 부여한 것은, 바로 대규모의 사회운동 내에서 문화적 반란과 정치적 반란이 결합됐다는 사실이었다... 역사는 자신을 반복할지 모르지만, 이전과 똑같은 방식으로는 아니다.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소극(희극)'으로. 물론, 다음과 같이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첫 번째는 '에로스'로, 두 번째는 '카오스'로."
- [신좌파의 상상력], <프랑스 신좌파, 1968년 5월>

'에로스'는 '로고스' 즉, '이성' 지배에 대항한 '감성'이나 '욕망' 등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카치아피카스의 '스승이자 친구'였던 마르쿠제에 의하면 '이성 지배'의 극단적 반대급부로서 프로이트식의 '성적 욕망'과는 다른 '인간 본성'인데, 동양식으로 보면 공자의 '인'이다. '인'의 정치는, 인간의 '어진 본성' 또는 '인류애'를 실현하는 정치이며, 이것이 서양 '68 혁명'의 '에로스'의 정치와 맞닿는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일상 혁명'으로서 '신좌파'의 '68 혁명'은 일단의 '실패'로 귀결되는데, 새로운 '상상력'에 기반했던 '일상 혁명' 의제들이 기존 의회정치에 포섭되면서 진보적이고 급진적 정치는 '사표'가 되고, '학생운동가'들의 운동이 '직업화'되고 이전의 '수단'이 '목적'으로 전환되면서 이러한 현상은 가속된다. 체제 변혁의 '거대 담론'은 '가부장제 혁파', '군축'과 '젠더', '세대' 등의 '부문(운동) 담론'으로 분화된다. 
영구적인 '일상 혁명'의 반복 속에서 1968년도는 '에로스'로, 이후의 반복은 '카오스'로 보일 수 있겠다.


"... '문화 혁명'의 자동적 발생이라는 초월적 믿음(일단 경제가 변혁된다면, 사회의 나머지 부분들도 곧 따라 변할 것이라는)... 즉 지난 60년 동안의 실천 속에서 완전히 그 신용이 상실된 이론... 하지만 이와 동시에, 철저한 '정치 혁명'이 사회를 철저히 변혁시키는 데에 필수적이라는 점을 잊어서도 안된다."
- [신좌파의 상상력], <신좌파의 정치적 유산>

국가독점자본주의가 계속 혁신되고 현대화되는 과정에서, 지식인 노동자와 관료주의가 강화되고 기업의 경제영역에도 확산되면서 기존의 '프롤레타리아'는 분화되고 이간된다. 이러한 계급의 분화 속에서 [신좌파의 상상력]의 마지막 질문은 '혁명의 주체'에 대한 그것이다. 또한 다양해진 '혁명의 주체들'에 의해 수행되는 "필수적인 정치 혁명"의 중요성 또한 강조된다.
정치경제적인 '물적 토대'와  문화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상부 구조'는 여전히 상호 영향을 미치며, 결국 더욱 근본적인 것은 '경제'이고 이 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규정된 노동자 계급의 변화에 덧붙여, '혁명적 주체'가 스스로를 구성해 나아가는 방법상의차원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신좌파'가 던져준 유산들 중 하나는, '혁명적 주체'의 형성이 객관적으로규정된 생산 범주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역사적 통찰이다. '대자적 계급(부르주아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 같은 상대적 계급 각성)'의 형성은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민족이 공장 내에서 경제적 착취를 당하는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가부장적 억압 및 정치적 지배를 겪는 차원에서도, 물질적이고 상징적인 차원 모두에서 발생한다. 현대 세계에서 원자화된 개인이 '혁명적 주체'로 변형된 사례에는 제3세계의 민족해방 운동은 물론이고, 학생과 여성 및 공동체, 그리고 특히 중요하게는 소수 민족들 사이에서 발생한 운동도 포함된다."
- [신좌파의 상상력], <신좌파의 정치적 유산>

'신좌파'는 분화된 '혁명적 주체'라는 '정치적 유산'을 남겼다. 일체의 모든 '억압'에 맞서는 다양한 '혁명 주체'들의 영구적이고 일상적인 '혁명'이 1968년'신좌파'의 유산이며, 이를 끊임없이 추동하는 것이 바로 꺾이지 않는 다양한 영역에서의 '상상력'이다.


"너희에게 베트남 동지들을 멋대로 죽일 권리가 있다면, 
우리에게도 너희를 멋대로 죽일 권리가 있다.
...
너희에게 오키나와 동지들을 총검으로 찌를 권리가있다면,
우리에게도 너희를 총검으로 찌를 권리가 있다."
- 공산주의자동맹 적군파 군사혁명위원회, '전쟁 선언' 중 / [적군파], 퍼트리샤 스테인호프, 재인용

한편, 1968년 유럽과 1970년의 아메리카, 일본을 휩쓴 '학생운동'은 1968년 일본의 '전공투(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 세대를 양산하는데, 특히 일본 '전공투' 세대의 교조적 '섹트'인 '적군파'는 독일어 '분트(공산주의자동맹)를 모체로 하여 1972년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 테러' 등을 통해 전세계를 놀라게 했으며, 일본 내부에서는 반자본주의 '무장 투쟁' 공동체로서 1970~1972년 '아사마 산장 농성'과 같은 폐쇄된 조직 내 살인과 숙청, 비극적 몰살 등의 엽기 행각으로 '사이비 종교단'과 같은 신비주의적 관심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적군파' 초기 멤버이자 '일본 적군'의 여성 지도자 시게노부 후사코는 2000년부터 '전향'을 거부한 채 20년째 복역 중이고, 역시 일본 '전공투 세대'인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작가는 '허무주의 또는 염세주의적 세계관'을 소설화하는데, 일례로 하루키의 [1Q84]에  등장하는 변태적이고 이단적인 '종교단체'의 모티브 또한 '전공투'의 '좌파 섹터' '적군파'다.
여담으로, 1972년 '마징가 Z' 원작 만화의 '선과 악'의 이분법을 허무는 염세적 세계관 또한 '신좌파'의 영향을 받은 작가 나가이 고의 '상상력' 때문 아니겠는가.

(2020년 3월 21일)

***

1. [신좌파의 상상력 - 세계적 차원에서 본 1968], 조지 카치아피카스, 이재원/이종태 옮김, <이후>, 1999.

2. [적군파 - 내부 폭력의 사회심리학], 퍼트리샤 스테인호프, 임정은 옮김, <교양인>, 2013.

3.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양윤옥 옮김, <문학동네>, 2009.

4. [이성과 혁명](1941),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김현일/윤길순 옮김, <중원문화>,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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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전 雙典 - 삼국지와 수호전은 어떻게 동양을 지배했는가
류짜이푸 지음, 임태홍.한순자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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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와 수호전은 어떻게 동양을 지배했는가"
- [쌍전(雙典)], 류짜이푸, 임태홍/한순자 옮김, <글항아리>, 2012.


"이 책의 주제는 '쌍전(雙典)', 즉 두 권의 경전에 대한 비판이다. 두 권의 경전이란 중국 문학사에서 대표적인 소설로 꼽히는 [수호전]과 [삼국지]를 말한다. 여기에서 '비판'이라는 말은 '문화비판'을 가리키는 것으로 가치관에 대한 비판이며 통상적인 '문학비평'이 아니다.
'문화비판'과 '문학비평'은 그 개념이 서로 다르다. '문학비평'의 대상은 문학작품이다... 한편 '문화비판'은 문학작품 자체에 포함되어 있는 문화적인 인식을 다룬다. 그것은 단지 내용하고만 관련된다... 지금 [수호전]과 [삼국지]에 대해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 소설들의 핵심적인 가치관과 인식이다...
우리는 [삼국지]와 [수호전]의 재기발랄함과 예술적인 매력에 스며 있는 '독기'와 '피비린내'를 거부할수 있다. 가치관의 측면에서 지적하자면 이 두 걸작은 '대재난의 책'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폭력을 숭배'하고, 또 한편으로는 '권모술수를 숭배'하기 때문이다... 정말 두려운 것은 이들 작품이 과거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여전히 영향을 미쳐 사람들의 마음을 파괴하며 잠재의식을 변화시킨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두 소설은 중국인에게 '지옥의 문'인 것이다."
- [쌍전], 류짜이푸, <들어가는 말>

1989년 중국 '천안문 사태'로 공산당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아 해외 망명한 중국사회과학원 전 연구원 류짜이푸는 2012년 [쌍전]을 통해 [수호전]과 [삼국지]가 지금껏 중국인들의 정신을 파괴해 왔다며, "문학적으로는 매우 걸출하고 아주 재미있는 두 경전"을 "문화적으로 비판"한다.
간략히 요약하면, [수호전]은 "폭력을 숭배"하고 [삼국지]는 "권모술수를 숭배"하므로, "어려서는 [수호전]을 읽지 말고 늙어서는 [삼국지]를 읽지 말라"는 것이다. 반대로 해석해 보면, 어려서는 [삼국지] 권모술수의 외피인 다양한 인물군상의 매력을 보고 늙어서는 [수호전]의 폭력에 은폐되어 부각되지 않는 '상생의 철학'을 보라는 것일 수도 있겠다.
[쌍전] 독해에서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저자 류짜이푸가 중국 '사회주의 혁명'을 이룬 '공산당 정권'으로부터 박해를 받으면서 수천 년 중국 역사상 '혁명가'들을 다 똑같은 자들로 본다는 것이다.


"[수호전]은 단지 탐관오리에 반항한 것이며 황제에반항한 것이다... 송강(양산박 두목)은 투항을 하여 수정주의자가 되었다... 고구(탐관오리)와의 투쟁과 마찬가지로 지주계급 내부에서 한 파가 다른 파를 반대하는 투쟁에서 송강은 투항을 했고, 그 후 바로 방랍(북송 말 농민반란의 우두머리)을 쳤다. 이들 농민 의거를 이끈 지도자들은 바람직하지 않게도 투항을 했다. (양산박 부하들인) 이규, 오용, 완소아, 완소오, 완소칠은 훌륭하다. 그들은 투항을 원하지 않았다. 루쉰(노신)은 [수호전]을 잘 평가했다. 그는 말했다. '[수호전]은... 천자에 반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대군이 도착하자 바로 투항을 해버렸다. 그리고 국가를 대신해서 다른 강도들을 쳤다. 하늘을 대신해서 도를 행하는 강도가 되지 않은 것이다. 결국 노예였다.'([삼한집], <부랑배의 변천>)"
- 마오쩌뚱(모택동), 1975. / [쌍전], 류짜이푸, <1부. [수호전] 비판>에서 재인용

'폭력'을 숭배하는 [수호전]의 주인공들은 온갖 살육과 도살의 향연을 펼친다. '흑선풍 이규'는 특유의 쌍도끼로 부자들은 물론 혼외정사 남녀, 심지어 영아도 절단내고는 그 인육까지 구워 먹고,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은 무송, 축구만 잘하여 황제의 신임을 산 탐관오리 고구로부터 누명을 쓴 장교 임충, 술에 취해 절간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살인을 일삼는 노지심 등의 인물들은 "지옥의 문"을 지키는 마귀들 자체다. 명나라 말기 시내암이 정리한 소설 [수호전]의 서막에서 수십년 전 홍신이라는 북송 중앙정부 관리가 지역민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판도라처럼 호기심에 열어 버렸다는 '복마지전'이라는 상자로부터 108기의 악마들이 세상에 나온다. 
양산박 108인 반란자들은 '복마지전'에 갇혀 있던 바로 그 '악마들'인 것이다.

송강이라는 지방말단 관리는 특출한 능력도 없이 '포용력' 하나로 이 악마들의 두목이 되는데, 별명이 '급시우', 즉 '급할 때 내리는 단비'다. 악당들이 급할때 먹여주고 재워주고 같이 도망쳐 주고, 잔머리 대신 굴려서 유명한 호걸들을 속이고는 일부러 위기에 빠뜨려 양산박에 들어올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일이 송강의 역할이다. 겉으로는 탐관오리에 맞서 민중을 지킨다 하지만 결국 그 과정에서 폭력적으로 조직의 이익을 취하면서 결국 '반란군'이 아닌 양산박 '도적떼'에 머문다. 이들은 결코 진승과 오광, 유방과 항우, 이연이나 이밀, 황소, 주원장과 장사성, 이자성 같은 중국 역사상 '농민혁명가'들과 같은 권력의지가 없었으니, 무능했던 북송 마지막 황제 휘종에게 투항하고는 다른 농민혁명인 '방랍의 난'을 진압하는데 이용당하고 만다. 송강의 최후는 소설과 달리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겠으나 '혁명가'가 아닌 '노예'의 길을 택한 '양산박 108 두령'은 '폭력 숭배'라는 저질의 문화만 후대에 남기게 된다.
비록, 송강의 '정치철학'이 "너는 죽고 나만 살자"는 역대 중국 '혁명가'들의 '이기적 철학'과 달리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상생의 철학'이라고 정리한들, 그 과정에서 [수호전]의 악당들 손에 도륙된 민중, 여성, 아동들의 억울함이 풀릴리는 만무하다.


"유비가 관우를 위해서 보복한다고 하는 그 사건은 '의'가 지닌 치명적인 문제를 폭로했다. 하나는 '의'의 조직 원리와 윤리 원칙이 국가 원칙과 사회 원칙을 능가했을 때, 그것은 반드시 국가와 사회에 위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의'의 근본적인 약점을 폭로시켰다는 것이다. 그것은 감정만을 말하고 이성은 말하지 않으며, 형제간의 윤리만 말하고, 책임 윤리는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정치는 윤리 도덕과 감정에서 분리되지 못하고 독립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단지 유비 집단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사회에서 일종의 전통 관습이 되었으며, 그것이 수 천 년간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 [쌍전], 류짜이푸, <2부. [삼국지] 비판 - 지옥의 빛>

후한 말기 황건군 농민반란을 진압하고 '십상시' 환관과 외척 무리로부터 한나라 황실을 지키기 위한 전국 군웅할거 시대를 그린 명나라 '민족주의자' 나관중의 [삼국연의], 즉, 속칭 '[삼국지] 이야기'는 류짜이푸에 의하면 온갖 '권모술수'의 백화점이다.
오랜 세월 민중들에 의해 구전으로 전해 온 소설 [삼국지]는 진수의 '정사' [삼국지]를 바탕으로 하되 재미를 위해 '초한지' 등의 이야기와 허구를 섞어 극화시키고 있다. 위나라 조조는 찬탈의 역적, 한나라 황실의 후예 유비는 파촉의 구석의 대장노릇으로 끝났으되 한왕조 부활의 영웅으로 그리며, 유비와 제갈량은 '초한지'의 유방과 장량과의 관계 등과 등치된다. 정사 [삼국지]에 따르면 제갈량은 "정치적 수완은 있으되 군사적 재능이 부족"했음에도 소설을 통해 장량을 뛰어넘어 거의 '신'적인 존재가 되었고, '충성'과 '의리'의 화신 관우는 어떤 중국인들에게는 이미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난세였기는 하나, 류짜이푸에 의하면 그 시기는 '의리', '지혜' 등의 온갖 '원형(진짜)' 원리가 '위형(가짜)'으로 변질되는 변곡점이다. '너는 죽고 나는 살자'는 '건곤일척'의 투쟁에서 승리한 유방이 숙적 항우의 죽음을 예로써 대하는 것이 '원형'이라면, 일례로 오나라 주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제갈량이 숙적이 죽었다며 크게 웃고는 오나라 정세를 탐하기 위해 조문을 가서 거짓으로 곡을 하는 장면은 '위형'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권모술수'로 가득한 [삼국지]는 이후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 정치투쟁의 '3원칙'의 근원이 되는데, 1) '성실성'은 필요 없고, 2) '사당(죽음으로 맺은 조직)'을 결성하며, 3) 상대방에 '먹칠'을 하는 '3원칙'이 그것이다. 

"그 소설([삼국지])에 등장하는 생사투쟁의 각 무리는 서로 구호가 다르고 내세운 기치도 달랐다. 그러나 그들이 이용한 '권모술수'는 대체로 같았다... 위와 같은 '(정치투쟁의) 세 가지 원칙'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여러 정치 집단의 공통된 규칙이었다... 정치에 이렇다 할 '성실성이 필요 없다'는 것은 '지혜의 변질'이다. 죽음으로 뭉치는 '사당을 결성한다'는 것은 '의리의 변질'이며, '상대방에 먹칠을 한다'는 것은 '역사의 변질'이다."
- [쌍전], 류짜이푸, <2부. [삼국지] 비판 - '역사의 변질'>

[삼국지]를 통해 원래의 '지혜'는 속임수와 사기로 변질된다. [손자병법]에는 모든 군사계략은 '속임수(궤)'라 하나, [삼국지]에서는 병법 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관계, 인간관계가 '속임수'고 '사기'다. 그러므로 '배신하면 죽음으로 갚는 사당' 결성이 필수적이며 초반부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는 그 증거다. 결국 위나라 조조와의 전쟁에서 촉과 오가 동맹을 맺어야 함에도 요충지 형주를 지키던 관우는 사사로운 정으로 위나라의 조조를 봐주고 오나라 손권을 모욕하며 죽음을 자초했고 이 변질된 '의리'로 뭉친 유비가 무리한 복수전을 벌여 결국 '같은 해에 죽음'을 맞음으로써 부질없는 그 '의리'를 완성하고 만다.  이런 '의리'는 자신의 '사당' 외 어떠한 도덕윤리적, 국가사회적 '의'에는 무관심하기에 결과적으로 일반 민중들에게는 고단함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삼국지]의 '후흑학'은 당대의 '영웅' 조조를 '간웅'으로 규정하고 '먹칠'로 일색하면서 '역사의 변질'을 이루고 있다. '권모술수'와 그릇된 '의리관'으로 역사왜곡까지 감행한다는 것인데, 소설에 대한 비판으로 가혹하다고 볼 것은 없다. 그 걸출한 작품 [삼국지]가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끼쳐 왔기에 '문학비평'이 아닌 '문화비판'을 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류짜이푸에 따르면, 이런 [삼국지]는 [수호전]보다 더 해롭다.

마지막으로 이런 '권모술수형 인물'의 전형인 중국 '5대10국' 시대 재상 '풍도'와 관련 인물평을 하나 인용해 보자.
시대와 국경을 떠나 우리 역사에서는 그 전형으로 '전두환 국보위원'과 '박근혜 경제참모'이자 '민주당 대표'를 거쳐 현재 수구보수 선거총책까지 노리는 김종인 같은 자가 있겠다.

"북송 구양수가 지은 [신오대사]는 나관중의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외모는 다르지만 마음 씀씀이는 같은 한 인물을 그려냈다. 즉 다섯 성씨의 아홉 군주를 모시면서 공자처럼 73세까지 살다 죽은 '풍도'였다. 그는 아주 뻔뻔한 성품의 소유자였는데, 정말 허구적인 문학적 이미지와 역사적 사실이 기묘하게 결합된 듯한 인물이었다. 구양수가 <풍도전>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한탄한 것도 당연하다. '염치가 없어서 어느 것이나 다 가지려고 하고, 부끄러움을 몰라서 하지 않은 일이 없다. 사람이 이와 같으면 재난과 변란으로 패망할지라도 못하는 짓이 없게 된다. 하물며 대신이 되어 모든 것을 가지고, 어떤 짓이든 다 하게 되면 천하는 혼란에 빠지고 나라는 망하지 않겠는가? 나는 풍도가 쓴 [장락노서]를 읽어보았는데, 스스로 뻐기는 것을 보았다. 지극히 염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 [쌍전], 류짜이푸 - 역사학자 린강의 <서문>

(2020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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