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 선집 2 중국 문화 총서 6
모택동 지음, 김승일 옮김 / 범우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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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의 철갑을 두른 헤게모니'로서의 '국가'를 둘러싼 '지구전'
- [옥중수고](1929~1935), 안토니오 그람시, 이상훈 옮김, <거름>, 1994.
- [지구전론](1938), 마오쩌뚱, 이등연 옮김, <두레>, 1989.


"현대의 군주, 즉 신화, 군주는 실제의 한 인격, 하나의 구체적인 개인일 수는 없다. 그것은 오직, 이미 인정받고 있으며 또 어느 정도까지는 행동을 통하여 스스로를 확인한 하나의 집단의지가, 그 속에서 하나의 구체적인 형태를 취하기 시작하는 유기체 혹은 복합적 사회요소일 수 밖에 없다. 역사는 이미 이러한 유기체를 보여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정치정당(보편적이고 전체적으로 되고자 하는 집단의지의 효소들이 함께 모여진 최소의 세포)이다."
 - 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1](1929~1935), <현대의 군주>,
‘마키아벨리 정치학에 대한 간단한 주석’ 중.
 
안토니오 그람시는 자신의 [옥중수고]에서 이탈리아 사람답게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에 주목한다. 
즉, "마키아벨리 이전에는 정치과학이 유토피아의 형식을 빌어 표현되거나 현학적인 논술의 형식으로 표현"되었으나 "마키아벨리는 이 양자를 결합하여, 교의적, 합리적 요소를 ‘대장’이라는 인격체 속에 육화시킴으로써 자신의 개념에 상상적이고 예술적인 형식을 부여"하였으며, '순수히 이론적인 추상'으로서의 군주를 통해 궁극에는 민중과 하나가 되고, 이 과정에서의 발화된 정치적 정열과 신화의 요소들이 실존하는 '군주'를 통해 이상적인 '군주론'이라는 '정치적 선언'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람시에게 정치는 지배와 피지배의 전제하에 존재하는 것이고, 군주제 또한 사회를 '통합'하기 위한 전체주의적 시도를 '군주'라는 한 개인을 통해 실현하려고 했던 정치체제인 것이며, 현대에서는 이러한 시도를 '구체적인 개인'이 아닌 '보편적이고 전체적으로 되고자 하는 집단의지의 효소들이 함께 모여진 최소의 세포'로서 '정치정당'이 실현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정당의 역사는 어느 특정한 사회집단의 역사일 수 밖에 없으나", "이 사회집단은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 친척집단과 반대파와 적을 가지고 있어" "주어진 정당의 역사는 오직 사회와 국가의 총체성에 대한 복합적인 기술 속에서만 드러날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마르크스주의자인 그람시는 당연히 정당을 어느 특정한 사회집단, 즉 '계급'을 기준으로 바라보고 있는 바, 결국, "모든 정당은 어떤 계급의 학명(學名)에 불과한 것이므로 계급분열의 종언을 지향하는 정당은, 계급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계급의 표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됨으로써 정당 자체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때에야 비로소 완전한 자기충족을 달성할 것"(이하 [옥중수고])이라고 정당의 정치성을 '육화'시키고 있다.

[옥중수고]는 '국가는 강제의 갑옷을 입은 헤게모니', '국가와 시민사회', '강제와 헤게모니론', '기동전, 진지전' 등의 이론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공산당 지도자였던 안토니오 그람시가 1929년부터 1935년까지 옥중에서 각 테마별로 저술한 기록을 엮은 것이다. 
<현대의 군주>-정당, 정치 등, 
<국가와 시민사회>-헤게모니론, 
<미국주의와 포드주의>, 
<역사와 문화>-지식인, 교육, 
<이탈리아 역사>, 
<실천철학> 등 
각 주제별로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준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 그러므로 정치는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며, 전쟁은 피를 흘리는 정치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지구전' 전략을 채택하지만 전장에서는 속전속결('기동전')을 원칙으로 싸워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적의 속전속결 전략은 수많은 전투의 패배로 인하여 부득불 '지구전'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기동전'이란 광대한 전선과 전투지역에서 정규부대가 외곽전선에 위치하여 속전속결식의 공격전을 전개하는 형식을 뜻한다. 아울러 이러한 공격전을 전개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혹은 필요한 시기에 행하는 '기동성 있은 방어전'도 이에 포함된다. 또 때로는 보조작용으로서의 '진지공격전'과 '진지방어전'도 이에 포함되기도 한다."
- 마오쩌뚱, [지구전론], 1938.

중국의 혁명가 마오쩌뚱은 항일투쟁이 한창이던 1938년의 강의록 [지구전론]에서 "전쟁은 피를 흘리는 정치"라는 유명한 테제를 인용하며, 당시 일본 제국주의는 정치적으로 패망할 것이라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세계 정세 분석에 기초하여 중국이 망할 것이라는 자산계급의 '망국론'을 반박하고 소자산계급의 '타협론'도 비판하면서 중국 민중의 항일투쟁은 결국 광범위한 통일전선과 대규모 정치적 민중동원을 기반으로 승리할 것임을 입증하고자 한다. 
모든 전투에서 속전속결의 '기동전'이 주가 되고 '진지전'은 보조적이기는 하지만, 중국의 '속승론' 또한 경계하면서 '진지전'을 통한 '지구전론'을 펼친다.

동시대 이탈리아 파시스트의 감옥에서 그람시가 쓴 '진지전'에 대해 들었을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본 파시스트와의 전쟁에서 '민중의 광범위한 정치적 동원'을 통한 '진지전'과 '지구전론'을 설파한 주장은 역시 그람시의 '헤게모니 투쟁'과 맞닿아 있다.
'기동전'을 통한 '정치국가' 영역에서의 '혁명'적 속전속결이 결정적이기는 하나, 실제에서는 '시민사회' 영역에서 광범위한 '헤게모니 투쟁과 장악'을 이루어내는 수많은 '진지전'을 전개해야 한다는 내용인 것이다.
'국가'는 "강제의 철갑을 두른 헤게모니"이고, 반파시즘, 반자본주의 투쟁은 결국 '지구전'이다.


그람시의 사상에 관한 해설서는 많지만, 그 자신의 저서는 '옥중의 기록'인 이 [옥중수고] 외 별도로 없다. 
그람시가 한 말을 직접 듣고 싶다면 [옥중수고]를 직접 읽기를 권한다.

***

1. [옥중수고 1~2](1929~1935), 안토니오 그람시, 이상훈 옮김, <거름>, 1994.
2. [지구전론](1938), 마오쩌뚱, 이등연 옮김, <두레>,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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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의 옥중수고 1 - 정치편
안토니오 그람시 지음, 이상훈 옮김 / 거름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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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의 철갑을 두른 헤게모니'로서의 '국가'를 둘러싼 '지구전'
- [옥중수고](1929~1935), 안토니오 그람시, 이상훈 옮김, <거름>, 1994.
- [지구전론](1938), 마오쩌뚱, 이등연 옮김, <두레>, 1989.


"현대의 군주, 즉 신화, 군주는 실제의 한 인격, 하나의 구체적인 개인일 수는 없다. 그것은 오직, 이미 인정받고 있으며 또 어느 정도까지는 행동을 통하여 스스로를 확인한 하나의 집단의지가, 그 속에서 하나의 구체적인 형태를 취하기 시작하는 유기체 혹은 복합적 사회요소일 수 밖에 없다. 역사는 이미 이러한 유기체를 보여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정치정당(보편적이고 전체적으로 되고자 하는 집단의지의 효소들이 함께 모여진 최소의 세포)이다."
 - 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1](1929~1935), <현대의 군주>,
‘마키아벨리 정치학에 대한 간단한 주석’ 중.
 
안토니오 그람시는 자신의 [옥중수고]에서 이탈리아 사람답게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에 주목한다. 
즉, "마키아벨리 이전에는 정치과학이 유토피아의 형식을 빌어 표현되거나 현학적인 논술의 형식으로 표현"되었으나 "마키아벨리는 이 양자를 결합하여, 교의적, 합리적 요소를 ‘대장’이라는 인격체 속에 육화시킴으로써 자신의 개념에 상상적이고 예술적인 형식을 부여"하였으며, '순수히 이론적인 추상'으로서의 군주를 통해 궁극에는 민중과 하나가 되고, 이 과정에서의 발화된 정치적 정열과 신화의 요소들이 실존하는 '군주'를 통해 이상적인 '군주론'이라는 '정치적 선언'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람시에게 정치는 지배와 피지배의 전제하에 존재하는 것이고, 군주제 또한 사회를 '통합'하기 위한 전체주의적 시도를 '군주'라는 한 개인을 통해 실현하려고 했던 정치체제인 것이며, 현대에서는 이러한 시도를 '구체적인 개인'이 아닌 '보편적이고 전체적으로 되고자 하는 집단의지의 효소들이 함께 모여진 최소의 세포'로서 '정치정당'이 실현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정당의 역사는 어느 특정한 사회집단의 역사일 수 밖에 없으나", "이 사회집단은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 친척집단과 반대파와 적을 가지고 있어" "주어진 정당의 역사는 오직 사회와 국가의 총체성에 대한 복합적인 기술 속에서만 드러날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마르크스주의자인 그람시는 당연히 정당을 어느 특정한 사회집단, 즉 '계급'을 기준으로 바라보고 있는 바, 결국, "모든 정당은 어떤 계급의 학명(學名)에 불과한 것이므로 계급분열의 종언을 지향하는 정당은, 계급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계급의 표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됨으로써 정당 자체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때에야 비로소 완전한 자기충족을 달성할 것"(이하 [옥중수고])이라고 정당의 정치성을 '육화'시키고 있다.

[옥중수고]는 '국가는 강제의 갑옷을 입은 헤게모니', '국가와 시민사회', '강제와 헤게모니론', '기동전, 진지전' 등의 이론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공산당 지도자였던 안토니오 그람시가 1929년부터 1935년까지 옥중에서 각 테마별로 저술한 기록을 엮은 것이다. 
<현대의 군주>-정당, 정치 등, 
<국가와 시민사회>-헤게모니론, 
<미국주의와 포드주의>, 
<역사와 문화>-지식인, 교육, 
<이탈리아 역사>, 
<실천철학> 등 
각 주제별로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준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 그러므로 정치는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며, 전쟁은 피를 흘리는 정치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지구전' 전략을 채택하지만 전장에서는 속전속결('기동전')을 원칙으로 싸워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적의 속전속결 전략은 수많은 전투의 패배로 인하여 부득불 '지구전'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기동전'이란 광대한 전선과 전투지역에서 정규부대가 외곽전선에 위치하여 속전속결식의 공격전을 전개하는 형식을 뜻한다. 아울러 이러한 공격전을 전개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혹은 필요한 시기에 행하는 '기동성 있은 방어전'도 이에 포함된다. 또 때로는 보조작용으로서의 '진지공격전'과 '진지방어전'도 이에 포함되기도 한다."
- 마오쩌뚱, [지구전론], 1938.

중국의 혁명가 마오쩌뚱은 항일투쟁이 한창이던 1938년의 강의록 [지구전론]에서 "전쟁은 피를 흘리는 정치"라는 유명한 테제를 인용하며, 당시 일본 제국주의는 정치적으로 패망할 것이라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세계 정세 분석에 기초하여 중국이 망할 것이라는 자산계급의 '망국론'을 반박하고 소자산계급의 '타협론'도 비판하면서 중국 민중의 항일투쟁은 결국 광범위한 통일전선과 대규모 정치적 민중동원을 기반으로 승리할 것임을 입증하고자 한다. 
모든 전투에서 속전속결의 '기동전'이 주가 되고 '진지전'은 보조적이기는 하지만, 중국의 '속승론' 또한 경계하면서 '진지전'을 통한 '지구전론'을 펼친다.

동시대 이탈리아 파시스트의 감옥에서 그람시가 쓴 '진지전'에 대해 들었을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본 파시스트와의 전쟁에서 '민중의 광범위한 정치적 동원'을 통한 '진지전'과 '지구전론'을 설파한 주장은 역시 그람시의 '헤게모니 투쟁'과 맞닿아 있다.
'기동전'을 통한 '정치국가' 영역에서의 '혁명'적 속전속결이 결정적이기는 하나, 실제에서는 '시민사회' 영역에서 광범위한 '헤게모니 투쟁과 장악'을 이루어내는 수많은 '진지전'을 전개해야 한다는 내용인 것이다.
'국가'는 "강제의 철갑을 두른 헤게모니"이고, 반파시즘, 반자본주의 투쟁은 결국 '지구전'이다.


그람시의 사상에 관한 해설서는 많지만, 그 자신의 저서는 '옥중의 기록'인 이 [옥중수고] 외 별도로 없다. 
그람시가 한 말을 직접 듣고 싶다면 [옥중수고]를 직접 읽기를 권한다.

***

1. [옥중수고 1~2](1929~1935), 안토니오 그람시, 이상훈 옮김, <거름>, 1994.
2. [지구전론](1938), 마오쩌뚱, 이등연 옮김, <두레>,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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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혁명 : 마르크스주의 국가론과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 더 레프트 클래식 3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지음, 문성원.안규남 옮김 / 돌베개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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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계급의 '민주주의'는 그 계급에 의한 '독재'
- [국가와 혁명],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김영철 옮김, <논장>, 1994.


"국가가 화해불가능한 계급 적대감의 산물이고 사회의 상부에 위치하면서 '사회로부터 자기를 스스로 점점 소외시키고 있는' 권력이라면, 억압받는 계급의 해방은 '폭력혁명'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지배계급이 창출했고, 또한 이러한 '소외'를 이루고 있는 몸체인 국가권력기구의 '파괴를 통하지 않고서는' 계급해방이 불가능하다."
- 레닌, [국가와 혁명], 1917.

모든 인류의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라 규정하는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국가'는,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지배하고 억압하기 위한 기구, 더 나아가 지배계급의 이익을 지키는 '위원회(엥겔스)'에 불과하다. 부르주아(자본가계급)에 의한 '생산수단 독점'이라는 경제적 토대 위에 이러한 생산관계를 공고히 하는 상부구조로서 정치적 기구가 바로 '국가'라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에 의하면, 국가란 '계급지배의 도구'이므로 계급이 소멸되면 그 역할을 다하고 사멸된다. 프롤레타리아(노동자계급)는 '혁명'을 통해 정치권력을 장악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산수단'을 '사회화'함으로써 일체의 계급을 철폐하고 인류 역사에서 '마지막 계급'으로서의 소명을 완수하는데, 마르크스-엥겔스는 이 시기 사멸하는 '국가' 대신, 프랑스어 '코뮌'이나 독일어 '공동체(Gemeinwesen)'가 그 '최종적 형태'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실현되지 않은 '공산주의', '코뮌주의' 또는 '공동체주의'이며, 그 내용은 "개인의 발전이 만인의 발전의 기초"가 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공동체'다.


"모든 부르주아 국가는 그들의 형태가 아무리 다양하더라고 끝까지 그 본질을 분석해 보면 '부르주아지의 독재'라는 동일한 본질이 드러난다.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은 풍부하고 아주 다양한 정치적 형태들을 창출하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만, 그 본질은 필연적으로 동일하게 될 것이다.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이다."
- 레닌, [국가와 혁명], 1917.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계급사회 국가의 본질을 분석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수립할 '노동자국가'는 기존 계급사회의 국가장치를 파괴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이행체제를 통해 '계급사멸(공산주의)'을 달성해야 하고 그와 함께 국가의 역할도 소멸된다고 주장한다. '부르주아 국가(State)'는 '사멸'되는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에 의해 '폐지'되고 '계급철폐'와 함께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준국가(Semi-state)'는 궁극에 '사멸'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은 필연적으로 '폭력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수반한다.

[국가와 혁명]은 소비에트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인 1917년 8월과 9월에 발표된 저작으로서 계급국가의 정의와 분석으로부터 시작하여 엥겔스의 보충설명, 국가에 관한 각종 기회주의적 경향(카우츠키 류)에 대한 비판을 지나 1905년과 1917년 사이 러시아 혁명의 경험까지 기획하였지만, 임박한 실제 혁명의 정세를 맞아 제7장인 <1905년과 1917년 러시아혁명의 경험>장을 시작하기 전에 중단된 '미완의 저작'이다.

"이 소책자([국가와 혁명])는 1917년 8월에서 9월 사이에 쓰여졌다. 나는 이미 제7장(1905년과 1917년 러시아혁명의 경험)에 대한 계획을 구상해두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써내려갈 시간이 없었다. 왜냐하면 1917년 10월 혁명의 전야라는 정치적 위기가 나의 저술을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그러한 '중단'은 반가운 것일 수밖에 없다..."
- 레닌, [국가와 혁명], <초판 후기>, 1917.11.30.

[국가와 혁명] 말미에 '임박한 혁명'을 실천하기 위해 펜을 놓고 밖으로 뛰쳐나가는 레닌의 '급박함'이 묻어나는데, 그는 소비에트 러시아혁명 후 출간된 이 '미완의 저작' <초판 후기>에 위와 같이 쓰면서 "아마도 1905년과 1917년 러시아혁명의 경험에 대한 저술은 먼 훗날로 미루어야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결국, 그 시기에 대한 기록은 레닌의 몫이 아니라 '혁명'으로 '국가'를 '장악'하고 '폐지'하고 '사멸'시켜야 할 후세의 '노동자계급'의 임무가 되었을 터, 그러나 '혁명'은 실패했고 아직까지 '계급'은 존재하며 '국가'는 건재하다.

체코의 현대적 '변증법적 유물론자' 슬라보예 지젝의 [레닌 재장전]에 따르면, 혁명 전의 레닌과 혁명 후의 레닌은 사상 및 실천적으로 구분되는데, [국가와 혁명]은 레닌의 혁명 전 사상을 표현하는 ‘마지막 저작’이 된다. 

레닌의 이 '미완의 저작'은 1976년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이며 알튀세르의 동료이자 제자인 에티엔 발리바르([레닌 재장전]의 저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가 저술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하여](한역판은 [민주주의와 독재])를 통해 요약 및 정리된다. 

[국가와 혁명]에서 레닌이 정리한 '국가론',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레닌의 세 가지 테제는 다음과 같다. 

(1) 국가권력은 항상 단일한 계급의 정치권력이다. 
(2) 국가장치가 없이는 국가권력은 존재할 수 없다. 그리하여 기존 계급사회의 국가장치들은 혁명기에는 철저히 파괴되어야 한다.
(3)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기이다.

결국, 계급사회에서 국가를 통해 실현되는 '민주주의'는 결국 한 계급의 '독재'에 불과하다. 즉,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독재,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와 동일하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론'의 결론이다.

마지막으로 '국가론'과 연관된 '민주주의'에 대한 레닌의 견해를 들어본다.

"민주주의는 처음에 자본주의에 대한 혁명적 투쟁을 치르는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융합되고, 이어 자본주의를 산산조각내며, 모든 부르주아 계급과 공화적인 부르주아지와 국가기구 그리고 상비군과 경찰과 관료제까지도 이 지구상에서 싹쓸어버리고, 그 대신에 보다 민주적인 국가기구로, 그것도 모든 대중을 포함하는 시민군을 형성하는 무장한 노동자들이라는 측면에서 본 국가기구로 그것들을 대체하게 된다는 사실로 귀결된다."
- 레닌, [국가와 혁명], 1917.

***

1. [국가와 혁명], 레닌, 김영철 옮김, <논장>, 1994.
2. [민주주의와 독재], 에티엔 발리바르, 최인락 옮김, <연구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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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과 경험 비판론 - 상 - 마르크스.레닌주의 고전문고 6
레닌 지음 / 돌베개 / 1992년 10월
평점 :
품절


[철학노트],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홍영두 옮김, <논장>, 1989.


"통일물의 분열, 그리고 통일물의 모순되는 성분에 관한 인식은 변증법의 '본질'이다... 과학사를 통해 분명히 검증... 수학에서는 +와 -, 미분과 적분. 역학에서는 작용과 반작용. 물리학에서는 양전기와 음전기. 화학에서는 원자의 화합과 분해. 사회과학에서는 '계급투쟁'. 대립물들의 동일성이란 자연(여기에서는 정신과 사회도 포함)의 모든 현상과 사건들 안에 있는, 모순되고 상호배제하는 대립된 경향들을 인식(발견)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의 모든 사건들을 그 '자기운동'에서, 그 자발적 발전에서, 그 살아있는 생활에서 인식하는데 필요한 조건은 그 모든 사건들을 대립물의 통일로서 인식하는 것이다... 상호배제하는 대립물의 투쟁은 발전과 운동이 절대적이듯이, 절대적이다... '변증법'은 다름아닌 (헤겔과) 마르크스주의의 인식론이다."
- 레닌, [철학노트], <6장. 변증법의 문제에 대하여>

'유물변증법' 또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소련 스탈린주의 교과서들이 정식화했을 때 세 가지 '법칙'으로 도식화되었다.

1. '물질운동론' : 모든 물질은 운동(변화, 발전)한다.
2. '대립물투쟁론' : 모든 물질은 대립물이 있고 이들은 상호배제, 침투, 통일한다.
3. '양질전환론' : 양적 변화는 결국 질적으로 전환된다.

다소 위험하기는 하나 이러한 '3법칙'은 학자가 아닌 대중에게는 이론을 쉽게 받아들이는 기제일 수 있는데, 이것의 단초가 레닌의 복잡한 필기로 엮인 [철학노트]이다.

1914년 제국주의 세계전쟁과 참전을 결의한 유럽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배신 국면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새로운 출구를 찾기 위해 레닌은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저술할 때 그러했듯, 망명지의 도서관에 틀어박혀 '절대적 관념론' 철학자로 알려진 헤겔로 되돌아간다. 

이전 [유물론과 경험비판론](1908)의 주제도 ‘철학’이었지만 이는 경험주의, 상대주의인 오스트리아 마흐주의식의 ‘경험비판론’을 철저하게 비판하면서 '유물론' 철학을 확실히 재정립하기 위한 목적을 위해 다분히 논쟁적 의도로 저술되었고, [철학노트]에서는 헤겔의 [논리학] 적요를 시작으로 ‘존재론’, ‘본질론’, ‘개념론’ 등 철학의 ‘기본개념’부터, 즉 '철학'의 처음이자 그 근본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다. 
[철학노트]를 통해 레닌은 ‘헤겔 속의 유물론’을 재발견하기 위하여 아리스토텔레스, 헤라클레이토스 등 철학의 ‘대선배’들의 사상 등도 두루 재학습하고 있다. 
[철학노트]는 헤겔의 [논리학]은 물론, [철학사 강의], [역사철학 강의] 등에 대한 적요 등을 포함하면서 '관념론 철학'의 완성체로서의  헤겔을 철저히 분석하고 정리한 대량의 '필기 노트'라 할 수 있다. 

그람시가 감옥에서 자신의 사상을 정리한  [옥중수고]처럼, 발간목적이 아닌 마르크스주의, 과학적 사회주의의 재정립이라는 확고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진행한 방대한 학습노트, 수고록을 나중에 엮은 것이다. 

결국, 이후 마르크스주의 '도식화' 작업에서 '관념론' 철학자로 정리된 헤겔의 사상에는 온갖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적 유물론'의 맹아들이 존재하며, 유물론자들은 철저하게 헤겔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 레닌의 결론이다.

철학학습을 시작하는 레닌의 ‘금언’은 다음과 같다.

“헤겔의 논리학 전체를 철저하게 연구하지 않고 또 이해하지 않고서는 마르크스의 [자본론], 특히 제1장(상품)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반세기를 경과하였지만 마르크스주의자 가운데 어느 누구도 마르크스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 레닌, [철학노트] 중

*** 

1. [철학노트](1914), 레닌, 홍영두 옮김, <논장>, 1989.
2. [유물론과 경험비판론](1908), 레닌, 박정호 옮김, <돌베개>,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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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 : 테러리즘과 공산주의 레볼루션 시리즈 5
레온 트로츠키 지음, 슬라보예 지젝 서문, 노승영 옮김 / 프레시안북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하여
[프롤레타리아 독재/테러리즘과 공산주의:혁명의 자연사에 관한 고찰](1918), 칼 카우츠키 지음, 강신준 옮김, <한길사>, 2006.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 사이에는 하나의 사회가 다른 사회로 전환하는 '혁명적 이행시기'가 있다. 이 시기는 정치적 이행기에 해당하며 그 국가형태는 다름 아닌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독재'일 수밖에 없다."
- 칼 마르크스, [고타강령 비판], 1875.

독일 사회민주당은 1875년 고타에서 페르디난트 라살레의 '독일노동자총연맹'과 빌헬름 리프크네히트와 아우구스트 베벨의 '사회민주노동당'이 합당하면서 탄생한다.
비스마르크식 강력한 보수주의 국가와의 결탁을 통해 사회주의를 달성하려는 '라살레주의'와 '계급지배의 도구'인 국가권력과 대결하는 '마르크스-엥겔스주의'가 결합하는 순간,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포기한 [고타강령]을 맹렬하게 비판한다.
[고타강령 비판](1875)은 '공산주의'로 가는 '정치적 이행기'로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전면 제기한다. 그러나, 마르크스 조차도 당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현실적으로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었기에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다만, 1871년 '파리 코뮌'이 바로 그 현실태라고 규정했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다름 아닌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 선 프롤레타리아의 지배'라고 이해할 수 있다."
- 칼 카우츠키, [프롤레타리아 독재], 1918.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에 대하여 정면으로 비판한 카우츠키의 1918년 저작이다. 제헌의회 소집과 보통선거권을 거부하고 착취자와 피착취자의 계급관계를 토대로 한 '계급민주주의'에 기반하여 중앙집중 권력을 구축한 레닌의 '소비에트 민주주의'에 '일당독재'의 맹아가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카우츠키의 방식으로 증명하고 있다. 
러시아 볼셰비즘 비판의 본질적 근거는 보통선거권과 '의회주의'에 기반한 '민주주의'였다. 카우츠키에게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다름아닌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 선 프롤레타리아의 지배라고 이해할 수 있다"는 한 문장의 규정으로 요약된다. 

카우츠키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란 다음과 같다. 

"민주주의는 때때로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사고를 억누르기도 하지만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획득하고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만큼 성숙해 가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수단이다… 그런 조건에서 프롤레타리아가 국가권력을 잡게 될 경우 프롤레타리아는 즉각 경제발전의 방향을 사회주의로 향하게 하고, 즉시 사회의 전반적 복지를 증대시킬 수 있는 충분한 물적·정신적 권력수단을 갖게 될 것이다."
- 칼 카우츠키, 같은책.

레닌은 카우츠키의 이 저작에 대하여 그 유명한 '배신자' 낙인을 유래시킨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라는 글을 통해 '의회주의'의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아닌 '계급민주주의'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핵심임을 주장하였고, 카우츠키는 [테러리즘과 공산주의:혁명의 자연사에 관한 고찰]이라는 위 반박문건을 통해 1789년 프랑스혁명의 자코뱅주의(이른바 '1차 파리코뮌')와 1871년 파리코뮌(이른바 '2차 파리코뮌')의 역사를 고찰하면서, 러시아 볼셰비즘을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가 아닌 '테러리즘'으로 규정하기에 이른다. 
카우츠키는 이 문건에서 "전세계에서 프롤레타리아는 운동에 돌입해 있으며 그들의 국제적인 압력은 매우 커져서 이제 어떤 경제적인 발전도 자본주의적인 성격은 물론 사회주의적인 성격을 함께 띠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면서 사회주의 이행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토대로 "의회주의와 민주주의는 국민의 유형과 그 계층에 따라서 다양한 내용과 형태를 가질 수 있다. 의회 내에서 부르주아 정당들이 우세할 경우 '의회주의'는 부르주아적 성격을 띤다… 그러나 의회 내에 사회주의 다수파가 자리를 잡게 되면 이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규정하며 사회주의 혁명에서 '국민의회'의 역할을 다시금 강조한다. 
이러한 카우츠키식 '사회민주주의'는 이후 [에르푸르트 강령]으로 다시금 구체화된다.
'민주주의'와 '독재'를 철저히 구분하는 카우츠키의 결론은 다음과 같은 문장들로 요약된다. 

"보통 및 평등선거권으로 이루어진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적 지배의 특징이 아니다.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의 혁명 시기에 평등선거를 도입한 것이 아니라 차별선거를 도입했으며… 오랜 기간의 힘든 투쟁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프롤레타리아들이 보통 및 평등선거권을 쟁취했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인데… 보통 및 평등선거권으로 이루어진 민주주의는 주먹에 의한 계급투쟁을 머리에 의한 계급투쟁으로 바꾸는 방법이며 자신의 적들에 비해서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더욱 성장해 있는 계급만이 승리를 거둘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 칼 카우츠키, 같은책.


이에 대해 1920년 레온 트로츠키는 같은 제목인 [테러리즘과 공산주의]라는 글로 다시 카우츠키의 '진화론적이고 자연법적'인 사회주의 이행강령을 비판하게 된다.
 
"코뮌은 형식적 민주주의의 살아있는 부정이었다."
- 레온 트로츠키, [테러리즘과 공산주의], 1920.

위 저작은 카우츠키의 논문인 [테러리즘과 공산주의:혁명의 자연사에 관한 고찰]을 같은 제목을 걸고 반박한 레온 트로츠키의 글이다. 
스탈린의 '일국 사회주의'에 대한 평생의 비판자이며 '불구대천의 원수', 한편으로는 영구혁명론자이자 이후 소비에트연방에서도 끝내 복권되지 못한 트로츠키답지 않게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후 '일당독재'와 '노동의 군사화'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외부적으로 유럽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혁명을 기다리면서 러시아 내부적으로는 부르주아 계급은 물론 러시아 사회혁명당 및 멘셰비키 등 사회주의 혁명의 적들에게 포위된 상황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인 '의회주의'와 보통선거권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철저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독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이 글의 요지다.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 중요하다는 관점에서는 수긍이 갈 수 밖에 없다. 사회주의 적들과의 내전으로 인해 파괴된 러시아 산업을 지키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볼셰비키의 배타적 권력이 필요하다는 절실함이 묻어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후의  스탈린주의와 교차점을 이루는 주장이기도 하다. 
트로츠키에게 '프롤레타리아 독재'로서 "코뮌은 형식적 민주주의에 대한 살아있는 부정이었다". 
그럼에도 슬라보예 지젝에 의하면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궁극적 차이점은 이것이다.

"스탈린에게 '레닌은 영원히 산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외설적 영혼, 권력의 도구가 되어 인공적으로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영혼으로 말이다. 트로츠키에게, 죽은 레닌은 조 힐(누명을 쓰고 죽은 미국의 노동운동가)처럼 살아 있다. 같은 이데아를 위해 투쟁하는 민중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그도 살아 있다."
- 트로츠키의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에 대한 슬라보예 지젝의 <서문>, 2007.


결국, 1917년 소비에트 러시아혁명 이후 정세를 뺀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무의미하지만, 두 인물의 '철학적 논쟁'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와 '독재'라는 정치적 개념을 추출하게 된다.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에 있어서는, '모든 민주주의는 계급독재'이다."
- 에티엔 발리바르, [민주주의와 독재 -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하여], 1976.

스탈린식 '일국 사회주의'에 대항하여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재정립하려는 프랑스 공산당 이론가 루이 알튀세르의 제자이자 동료였던 에티엔 발리바르는 레닌의 [국가와 혁명](1917)의 정식화를 소환하면서 '계급사회'에서 "모든 민주주의는 계급독재"라 규정한다. 부르주아 사회의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계급의 '독재'를 은폐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노동계급에 의한 광범위한 '대중민주주의'라는 것이다.

더 나은 세상으로의 '혁명'과 그 '정치적 이행체제'로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은 정치권력의 정점으로 '국가론'이 중요하던 시대의 심각한 논쟁이었을 것이다.
이제, '정치권력' 못지 않게 '시민사회'에서의 '헤게모니 투쟁'이 중요한 시대에서는 오래된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럼에도, 다시 되물어 보자.

지금 우리 시대 '의회 민주주의' 같은 '형식적 민주주의'는 '자본 독재'의 다른 이름은 아닌지.

***

1. [프롤레타리아 독재/테러리즘과 공산주의:혁명의 자연사에 관한 고찰], 칼 카우츠키 지음, 강신준 옮김, <한길사>, 2006.
2. [트로츠키:테러리즘과 공산주의], 슬라보예 지젝 서문 / 레온 트로츠키 지음, 노승영 옮김, <프레시안북>, 2009.
3. [민주주의와 독재], 에티엔 발리바르, 최인락 옮김, <연구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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