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의 대중심리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3
빌헬름 라이히 지음, 황선길 옮김 / 그린비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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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파시즘'을 만든 건, 다수 대중이었다"
- [파시즘의 대중심리](1933), 빌헬름 라이히, 황선길 옮김, <그린비>, 2006.



"사회적 조건과 변동이 인간의 원초적, 생물학적 요구를 변화시켜 그것을 성격구조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놓은 다음에야, 그 성격구조는 이데올로기의 형태로 사회적 구조를 재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파시즘'은 권위적인 기계문명과 이 문명의 기계론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인생관의 억압을 받은 인간이 지니는 기본적인 감정적 태도이다. 우리 시대 인간들의 기계론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성격이 파시스트당을 만든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정치적 운동으로서 파시즘은 그것이 인민대중에 의해 탄생되고 대변되었기 때문에 다른 반동적 정당과는 다르다."
- 빌헬름 라이히, [파시즘의 대중심리], <머리글(증보개정 3판)>, 1942.

오스트리아 출신 정신분석 의사 빌헬름 라이히는 인민대중의 생물학적 성에 기초한 성격분석을 통해 독일 히틀러의 '나치당'이나 일본 군국주의 '파시즘'을 정의한다.
프로이트와 친했으나 결별한 후, 1927년 오스트리아 빈의 봉기를 경험하고는 공산당원이 되기도 했으나 그의 '성정치'가 '급진적'이라는 이유로 공산당으로부터 축출당하고 해외를 떠돌다가 1957년 미국에서 사망한다.
[파시즘의 대중심리]를 요약하면, 파시즘은 자생적 '정치체제'가 아니라 '국가(독점)자본주의' 발전단계에서 이를 '신비주의'적으로 체화한 '비합리적' 인민대중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합리적인 노동민주주의' 자치성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켄크로이츠는 맨처음 셈족에게서 발견되었고... 하인리히는 동요르단 게네사렛 호수가에 있는 에드-디케 유태교회당의 폐허에서 하켄크로이츠를 발견했다... 말하자면 '하켄크로이츠'는 원래 성적 상징이었다... 나중에는... 특히 노동의 상징인 물레방아 바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정서적으로 '노동'과 '성'은 동일한 것이기에... 이때 풍요로움은 어머니인 대지와 아버지인 하느님 사이의 성행위로 묘사된다... 고대 인도의 사전 편찬자들은 음경이나 음탕한 사람을 성적 욕구를 뜻하는 '구부러진 십자가, 즉 '하켄크로이츠'라고 지칭했다."
- 빌헬름 라이히, [파시즘의 대중심리], <4장. 하켄크로이츠의 상징적 의의>

화가 지망생 히틀러는 '정치가' 이전에 '예술가'였다. 미술을 좋아했고, 고전음악과 건축물에 심취했으며, '예술의 정치화'를 꿈꾸었다. 이것 자체가 위험한 발상이었는데, '정치의 예술화', 즉 우리 삶을 '예술적'으로 바꿔주는 '정치'가 아니라, '예술'의 '신비주의'적 외피를 쓴 가짜 '정치'였기 때문이다.
나치당의 상징인 '구부러진 십자가', 즉 '하켄크로이츠'는 이러한 대중선동의 '강력한 보조수단'으로서 게르만족의 시조인 아리아인들의 유물에서 발견해낸 것인데, 남녀가 얽혀 누운 형태에서 어머니 대지와 아버지 하늘의 교합이라는 '신비주의'적 상징을 창조했다.
물론, 파시즘의 근본은 성을 억압하는 권위주의적 가부장제도와 배타적 인종주의인데, '하켄크로이츠'의 '신비주의'로써 그 본질을 은폐하고 신성화한다.


"정치적 '비합리주의'에 의해 심하게 방해받지 않는 노동하는 인간이 '합리적' 방식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바로 그 생활영역을 정치가는 '비합리적'으로 지배한다. 동일한 생활영역에 '합리적'이라는 딱지를 붙이거나 '비합리적'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는 있지만, 이 둘은 정반대의 것이다. 이 둘은 서로 대체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실천에서 이 둘은 서로 배타적이다. 인간 사회의 역사를 통해서 볼 때, 국가의 권위주의적 규율은 항상 자연스러운 사회성과 노동의 즐거움을 파괴해 왔다는 사실... 즉 권위적 국가규율은 사회를, 가정의 강제적 신성시는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이들 간의 사랑을, 강제적 도덕성은 생활의 기쁨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예절을, 그리고 정치가는 일하는 사람들을 파괴해 왔던 것이다."
- 빌헬름 라이히, [파시즘의 대중심리], <13장. 자연스러운 노동민주주의에 관하여>

라이히는 '파시즘'을 '나치당'과 같은 특정 체제가 아니라 국제적인 보편형태로 본다. '노동자국가' 소비에트러시아의 '스탈린주의'도 마찬가지다. 즉, 생산수단의 국유화로 사회체제가 변했다고 하여 '자유'와 '해방'이 온 것이 아니다. '대중'들은 여전히 '비합리적'이고 '신비주의적'으로 '파시즘'을 양산해내고 '정치가'는 끊임없이 노동대중의 '합리성'과 '자유'를 억압하고 규율하며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결론은 '합리'적 '노동'에 기초한 '자율성', 즉 '노동민주주의'의 관점이다.
그리하여, 이 책의 맨 앞장에 "사랑, 노동, 지식은 우리 생활의 원천이며, 이것들이 우리의 생활을 지배해야 한다"고 쓴 문장이 곧 '노동민주주의'다.


2008년부터 이명박 정권을 겪은 우리 대중들이 2012년에 박근혜 정권을 '선택'했을 때, 라이히의 [파시즘의 대중심리]를 다시금 뒤적이며, "결국 '파시즘'을 만든 건 우리들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2016년 '촛불 항쟁'을 거쳐 정치적 '파시즘' 체제를 타도하고 문재인 정부를 세웠으나, '대깨문', '문빠'라는 우리 안의 '파시즘'은 여전하여 결국, 2020년 총선을 앞두고 거대양당의 '자회사'인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이라는 초법적인 '민주주의 도적질'을 목도하는 지금, 다시 라이히의 말을 되새기게 된다.

"사회적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노동하는 대중들이 구조적으로 성숙될 때, 즉 그들이 생산수단을 관리해야 하는 책임을 의식한 후에야 비로소 결정될 수 있고 가능한 것이 될 수 있다."
- 빌헬름 라이히, [파시즘의 대중심리], <머리글>


'자연스러운 노동민주주의'에 기초한 다수대중의 '자치성'으로 다시 돌아가서, 다시금 우리가 주인이 될 시간이 한참 지나고 있다.

***

[파시즘의 대중심리](1933), 빌헬름 라이히, 황선길 옮김, <그린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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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강의 - 역사와 문학을 넘나들며 삼국지의 진실을 만난다!
이중텐 지음, 양휘웅 외 옮김 / 김영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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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삼국지]를 '품평'하다.
- [삼국지강의(品三国)], 이중텐, 김성배/양휘웅 옮김, <김영사>, 2007.



"실제로 많은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은 세 가지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정사'에 기록된 얼굴로, 일반적으로 '역사상의 이미지'라고 부릅니다... 두번째는 소설과 희극을 포함한 문예 작품 속의 얼굴입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문학상의 이미지'라고 부릅니다... 세번째는 일반 백성들이 주장하는 모습으로, 일반 민중들의 마음 속에 있는 얼굴입니다. 이것은 '민간의 이미지'라고 불리는데... 문학상의 이미지와 민간의 이미지의 형성도 역사적인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루쉰 선생이 말한 것처럼 '땅 위에 원래 길이 없었는데,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면 길이 되는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이미지는 말하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면 가짜 이미지에서 진짜로 바뀔 수가 있습니다."
- 이중텐, [삼국지강의(品三国)], <서문>

문학과 역사학 등을 접목하여 역사의 '대중화'를 이끈 중국 인문학자 이중텐은 2006년 중국 CCTV에서의 [삼국지강의]를 통해 다시금 중국의 삼국지 '르네상스'를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그 내용이야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의 '사실'과 '허구'를 경계로 우리의 선택과 해석을 풀어내는 진부한 방식임에도, 기실 '르네상스'의 핵심은 '혁신'이겠으나 그 모티브는 '고전적 진부함'이기 때문이다.


"[후한서] <허소전>에서는 '조조가 아직 벼슬을 하지 않았을 때, 늘 공손한 말과 많은 예물로써 자신을 평가해주기를 구하였다. 허소는 그를 하찮게 여겨서 상대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에 조조가 빈틈을 노려 허소를 협박하자, 허소는 어쩔 수 없어서 "그대는 태평한 시대에는 간적, 혼란한 시대에는 영웅이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조조는 매우 즐거워하며 떠났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그런데 [삼국연의]는 이 배경을 삭제해 버립니다. 표현은 또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라고 한 손성의 [이동잡어] 것을 가져옵니다... '간'이냐 '능'이냐의 여부는 조조의 주관적인 희망에 달린 것입니다."
- 이중텐, [삼국지강의(品三国)], <1부-2강>

이중텐도 역시 '삼국지' 최대 '문제적 인물' 조조로부터 시작한다. 조조라는 인물의 '역사적 이미지' 또한 대부분 정사인 진수의 [삼국지]와 배송지의 방대한 '주석'을 바탕으로 한다. 한편으로 '문학적 이미지'와 민간적 이미지'는 그를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으로 전해왔는데, '난세'였던 삼국시대에는 '간사한 영웅'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정사'인 범엽의 [후한서]에는 삼국시대 당시 최고의 '인물평론가' 허소의 입을 빌어 "태평한 시대(치세)에는 '간적', 혼란한 시대(난세)에는 '영웅'"이라 적고 있다. 이 점에 대해 배송지의 [삼국지 주석]에서는 '민간적 이미지'를 택하고 있어 이중텐은 조조의 '역사적 이미지'의 근거로 또 다른 '정사'인 [후한서]를 언급한다.
이렇게 '사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도 명확하지 않을 때가 있는데, 이럴 경우 조조의 '주관적 희망', 즉 그는 과연 어떤 평가를 바랬을까 추측해 볼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조조가 활약했던 당시는 '치세'가 아닌 '난세'였으므로 결국 조조는 '영웅'이라는 평가를 받고 크게 웃으며 돌아간 것이다.


"제갈량의 선택 기준... 첫째, 그 사람은 반드시 새로운 정권, 새로운 국가, 새로운 왕조를 세울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또 이러한 포부를 갖고 있어야 하며, 이러한 조건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둘째, 그 사람의 이러한 포부와 조건은 아직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잠재적인 상태에 놓여 있어야 합니다... 포부가 명확하지 않고 조건이 부족해야, 비로소 제갈량을 필요로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래야, 제갈량이 간 이후에 실력을 발휘하여 천하를 장악할 신하가 되는 것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이중텐, [삼국지강의(品三国)], <2부-15강>

주지하다시피, 제갈량이 선택한 인물은 유비였다. 나관중의 [삼국연의]에서 '장량'급 이상으로 신격화된 인물, 제갈량은 스스로를 관중과 악의에 비유하며 주군을 기다리지만, 이미 '영웅'이 된 조조나 강동의 기반을 갖춘 손권 가문에는 가봐야 빛을 보기 힘들다는 판단 하에 당시 포부는 있으나 별 볼일 없던 유비라는 '틈새'를 파고 든다.
우리가 소설을 통해 익히 들은 '삼고초려'는 제갈량이 유비 사후 후주 유선에게 올린 '출사표'에서 그 스스로 한 말이다. 제갈량이 찾아간 것이 아니라 유비가 본인을 찾아왔다는 것인데, 세 번 가서 한 번 본 게 아니라 세 번 이상 만나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의 '융중대' 이론이 정립된 과정이다.
'허구'와 달리 '사실'은 강동의 노숙도 손권에게 비슷한 '천하삼분지계'를 내놓는데, 제갈량의 '융중대'의 주인공이 '조조-유비-손권'인데 비해 노숙의 그것은 '조조-유표(형주자사)-손권이라는 점이 다르다. 유비가 자립을 시작한 형주는 삼국시대 최고의 군사적 요충지였기 때문이고 유비가 은인이라 할 수 있는 유표의 아들을 쫓아내고 배신하면서까지 차지해야 했던 이유였다.
여기서도 유비는 아직 '영웅'이 아니었다는 점이 보이는데, 이 또한 제갈량이 유비를 택한 이유였을 수도 있다.

이 밖에도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오고가면서 인물평을 하기에 [삼국지]만한 주제가 없을터, 이중텐 교수가 [삼국지강의]를 통해 진부하지만 다시금 '품삼국(品三国)'을 한 이유다. '고전적 진부함'의 복권이야말로 '르네상스'의 주요한 동기다.


원말명초 '한족 부흥(르네상스)'을 위해 독립투쟁에 몸담은 나관중 [삼국연의]의 '촉한정통론'을 이민족의 다양한 시각에서 근본적 비판과 해석을 가한 [장정일 삼국지](2004)와 그 방대한 '준비작업'으로서 [삼국지 해제](2003)는 우리에게 귀중하고 독자적인 시도이자 성과인데, [삼국지]의 본산인 중국에서 그 '르네상스'가 어떠한지 이중텐의 [삼국지강의(品三国)]를 통해 읽어볼 수 있다.


"한나라 때 긴 창의 종류로 '극(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창의 일종)'과 '모(일직선 창)'가 주종을 이루었다면, 관우 역시 청룡(언월)도가 아니라 '극'이나 '모'와 같은 무기를 사용했던 것은 아닐까?... '언월도'는 반달모양을 하고 있는데, 왕조춘([중국고대병기] 저자)은 이 무기가 송나라 때에 와서야 등장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 [나관중도 몰랐던 삼국지 이야기], 김재웅.

1990년대 '천리안', '하이텔'을 통해 '삼국지'를 연구하여 대중적으로 '삼국지'의 '허와 실'을 파헤친 김재웅은 위나라(66만호)나 촉나라(28만호)가 고구려(69만호)나 백제(76만호)보다 작았고, 장비는 장판파에서 80만 대군을 만난 적 없이 다리를 끊고 나서 소리만 친 것에 불과하며, 관우는 한참 후인 송나라대에 나온 청룡 '언월도'를 사용할 수 없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전문가 아닌 일반인이 풀어내기에 쉽지 않은 주제를 2000년도에 이미 망라하고 있다.

[삼국지]는 그 유명세 만큼 역사에서 '사실'과 '허구'의 교차를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어 '역사 품평'의 화수분이다.
'역사'는 이처럼, '사실'과 '허구', '정사'와 '소설'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품평'된다.

***

1. [삼국지강의(品三国)], 이중텐, 김성배/양휘웅 옮김, <김영사>, 2007.
2. [삼국지 해제], 장정일/김운회/서동훈, <김영사>, 2003.
3. [나관중도 몰랐던 삼국지 이야기], 김재웅, <청년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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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에는 영웅전을 읽어라 - 불세출의 영웅들이 펼치는 흥망성쇠의 드라마
김욱 지음 / 쌤앤파커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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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라는 '여행'에서 '리더십'의 '인문학적' 개념
- [플루타르크 영웅전], 플루타르코스, 1517.


인류 문명에서 '최초의 역사가'는 아마도 최초의 '보편적 역사기록'을 문자로 남긴 '작가'들일 것이다. 서양 '최초의 역사가'가 남긴 기록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헤로도토스의 [역사],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동양은 기원전 1~2세기 중국의 사마천 [사기] 등을 꼽는데, 인류 역사가 개개 인간 군상들의 자취라는 점에서는 동양의 사마천 [사기]에 비교되는 기록이 바로 기원후 1~2세기 그리스 '작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은 그리스 아테네 민주정을 열었던 테세우스와 로마 전제정을 건설했던 로물루스로부터 시작하여 알렉산드로스와 카이사르, 안토니우스와 부르투스 등 이름은 익히 들어봤을 고대 서양의 위인들을 거쳐 로마황제 갈바와 오토 등 약 50여 명의 '영웅' 또는 '지도자'들의 생애를 적어내려간 '열전'이다. 또한 테세우스와 로물루스를 각각 소개한 후 <테세우스와 로물루스의 비교>의 형식으로 인물들에 대한 평가를 남기는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기전체'의 [사기]에 비할 수 없이 '열전'으로만 이루어져 '통사'로서는 가치가 없을지라도, '하늘의 도'라는 화두를 갖고 각 시대와 인물을 평가한 사마천 못지 않게 '신의 뜻' 또는 '신탁'이라는 기준으로 플루타르코스는 '영웅'들을 비교평가하고 있다.

각 장은 "테세우스 : 아테네의 정치가, 군인." 등의 단문으로 해당 인물을 소개하면서 시작하는데, 어릴적 '세계위인사전'에서 간략하게 위인들을 설명하던 것이 떠오른다. 아마도, 그 기원이 [플루타르크 영웅전]인 듯 하다. 추측컨대, '역사 교과서'로 많이 활용되며 전승되었지 않을까 싶기도 하며, 르네상스 시기인 1517년 피렌체에서 최초로 인쇄되었다.


"테세우스 : 아테네 정치가, 군인. 아테네 건설자. 펠레폰네소스 지방 펠로포스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이게우스, 어머니는 아이트라. 해라클레스와는 사촌. 바다의 신 포세이돈 아들이라고 한다. 영웅심이 강하고 용감했으며, 그리스에서 폭군을 몰아내고 여러 차례 큰 사업을 일으켰다."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테세우스(전기)>

"로물루스(BC 8세기) : 로마의 정치가, 군인. 레무스와 쌍둥이 형제이며 라틴 민족을 해방시킨 사람. 재위 38년째 되던 해, 염소늪에서 행방물명되어 퀴리누스 신이 되다. 미천한 집안에서 자랐으나 그리스의 여러 민족을 하나로 단결시켜 로마를 세웠다."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로물루스(전기)>

"테세우스는 자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악당들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없앴다. 그러나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폭군 아물리우스가 백성들을 괴롭혀도 자기들에게 직접적인 해를 입히지 않는 한 상관하지 않았다... 테세우스와 로물루스는 타고난 정치가들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전통적인 왕으로 끝까지 살아가지 못하고 길을 벗어났다. 테세우스는 민주적으로 기울었고 로물루스는 독재로 기울었다. 두 사람은 상반된 정열을 갖고 있었지만 똑같은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통치자의 가장 큰 임무는 통치권을 유지하는 일이다... 테세우스가 너그러움이 지나쳤다면 로물루스는 오만과 잔학함으로 인해 실정을 저지른 것이다."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테세우스와 로물루스의 비교(대비열전)>

[영웅전] 첫 장은 그리스 아테네 민주정을 열었던 테세우스와 그리스로부터 라틴족을 해방시키고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의 '전기'와 두 인물의 '대비(비교)열전'이다.

테세우스가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의 숨겨진 아들로 '신의 아들'로만 알고 힘자랑하고 살다가 성년이 되어 부러진 칼조각을 홀어머니로부터 받은 후 한 나라의 왕인 아버지를 찾아가는 내용은 우리의 고구려 동명성왕 주몽을 찾아가는 북부여의 유리왕 이야기와 닮았다. 테세우스는 아테네 왕정을 없애고 민주정을 선포한 인물로서 민중들을 괴롭히던 악당들을 만나 그들의 방식으로 물리쳤고 크레타의 미노스왕에게 자진하여 노예로 팔려가서는 다른 노예들을 해방시켜 본국으로 돌아왔으며 '반인반우' 미노타우로스를 몽둥이로 때려잡은 일화로도 유명하다. 민중의 지지를 한몸에 받았으나 방탕한 여성편력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는데, 이후 '반신반인' 사촌 헤라클레스가 지옥에서 '망각의 의자'에 앉혀진 테세우스를 일으켜 세워주었다고 한다.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고 전해지듯 귀족이나 왕족이 아닌 미천한 신분으로 아마도 '이리'를 숭배했던 테무진(칭기즈칸)처럼 '늑대'를 숭배했던 '야만인'이었을 수도 있다. 이 쌍둥이 형제 역시 힘과 전쟁으로 로마를 건국하고 로물루스는 형제인 레무스를 제거하면서까지 전제정을 확립하는데, 이 또한 [삼국사기] <백제본기>에서 주몽의 아들들이었으나 유리왕에 밀려 한반도 남쪽으로 이주한 온조와 비류의 이야기가 연상되기도 한다. 한성(서울)에 자리잡은 온조는 미추홀(인천)에서 실패한 비류의 무리들을 결국 흡수합병하면서 기존 마한 열국들을 통일하고 백제를 건국했다. 중앙집권적 고대국가 정치체제의 등장이라는 공통점이다.


"수많은 민족들이 세계의 패권을 놓고 암약하며 경쟁하던 [영웅전]의 시대는 언어, 인종, 국경이라는 경계가 허물어진 오늘날과 무서우리만큼 닮아 있다. [영웅전]은 수천 년 전 현재와 닮은 생존경쟁 무대에서 살아남은 승자들의 이야기다... 플루타르코스는 [영웅전]의 마지막 구절을 완성한 뒤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인간은 누구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영웅이 될 수 있다네. 영웅이란 자기 내심의 덕과 지조를 겁내지 않고 발휘한 자이기 때문이지.'"
- [난세에는 '영웅전'을 읽어라], 김욱, 2013.

인문학 저술가 김욱은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난세에 읽고 '리더십'을 길러서 사마천의 표현을 따라 "깃털 같이 가벼운 삶을 태산 같이 무거운 삶"으로 만들라고 권한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리더십'은 '관리능력' 따위가 아니라, 인생를 주체적으로 해쳐나가는 능력이다. 

"리더(leader)란 단어는 본래 '여행'을 뜻하는 고대 라틴어 'laedan'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리더의 어원과 연관지어 생각해 본다면 '리더십'이란 '여행하는 자가 품어야 할 마음가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인생은 여행이며, 인간이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서다. 인간은 누구나 타인에게 예속되기 보다는 자유로운 상태를 추구한다. 그러므로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해주는 최선의 덕목을 한 단어로 압축해본다면, 그것은 바로 '리더십'이 될 것이다."
- [난세에는 '영웅전'을 읽어라], 김욱, 2013.

'리더십'은 조직을 관리하고 인력을 운영하며 타인을 지배하는 '경영학적' 개념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개인의 '여행'에서 더 자유로운 삶을 위해 스스로를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인문학'적 개념인 것이다.

인류의 집단적 '여행'인 '역사'를 통해 평범한 우리 다수가 스스로의 '자유로운 주체'가 되는 각자의 '리더십'을 체득하기를 응원한다.

***

1. [플루타르크 영웅전], 플루타르코스, 홍사중 옮김, <동서문화사>, 2007.
2. [난세에는 '영웅전'을 읽어라], 김욱, <쌤앤파커스>, 2013.
3. [역사의 역사(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돌베개>, 2018.
4. [삼국사기](12세기), 김부식, 최호 역해, <홍신문화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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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크 영웅전 1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38
플루타르코스 지음, 김병철 옮김 / 범우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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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역사'라는 '여행'에서 '리더십'의 '인문학적' 개념
- [플루타르크 영웅전], 플루타르코스, 1517.


인류 문명에서 '최초의 역사가'는 아마도 최초의 '보편적 역사기록'을 문자로 남긴 '작가'들일 것이다. 서양 '최초의 역사가'가 남긴 기록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헤로도토스의 [역사],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동양은 기원전 1~2세기 중국의 사마천 [사기] 등을 꼽는데, 인류 역사가 개개 인간 군상들의 자취라는 점에서는 동양의 사마천 [사기]에 비교되는 기록이 바로 기원후 1~2세기 그리스 '작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은 그리스 아테네 민주정을 열었던 테세우스와 로마 전제정을 건설했던 로물루스로부터 시작하여 알렉산드로스와 카이사르, 안토니우스와 부르투스 등 이름은 익히 들어봤을 고대 서양의 위인들을 거쳐 로마황제 갈바와 오토 등 약 50여 명의 '영웅' 또는 '지도자'들의 생애를 적어내려간 '열전'이다. 또한 테세우스와 로물루스를 각각 소개한 후 <테세우스와 로물루스의 비교>의 형식으로 인물들에 대한 평가를 남기는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기전체'의 [사기]에 비할 수 없이 '열전'으로만 이루어져 '통사'로서는 가치가 없을지라도, '하늘의 도'라는 화두를 갖고 각 시대와 인물을 평가한 사마천 못지 않게 '신의 뜻' 또는 '신탁'이라는 기준으로 플루타르코스는 '영웅'들을 비교평가하고 있다.

각 장은 "테세우스 : 아테네의 정치가, 군인." 등의 단문으로 해당 인물을 소개하면서 시작하는데, 어릴적 '세계위인사전'에서 간략하게 위인들을 설명하던 것이 떠오른다. 아마도, 그 기원이 [플루타르크 영웅전]인 듯 하다. 추측컨대, '역사 교과서'로 많이 활용되며 전승되었지 않을까 싶기도 하며, 르네상스 시기인 1517년 피렌체에서 최초로 인쇄되었다.


"테세우스 : 아테네 정치가, 군인. 아테네 건설자. 펠레폰네소스 지방 펠로포스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이게우스, 어머니는 아이트라. 해라클레스와는 사촌. 바다의 신 포세이돈 아들이라고 한다. 영웅심이 강하고 용감했으며, 그리스에서 폭군을 몰아내고 여러 차례 큰 사업을 일으켰다."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테세우스(전기)>

"로물루스(BC 8세기) : 로마의 정치가, 군인. 레무스와 쌍둥이 형제이며 라틴 민족을 해방시킨 사람. 재위 38년째 되던 해, 염소늪에서 행방물명되어 퀴리누스 신이 되다. 미천한 집안에서 자랐으나 그리스의 여러 민족을 하나로 단결시켜 로마를 세웠다."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로물루스(전기)>

"테세우스는 자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악당들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없앴다. 그러나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폭군 아물리우스가 백성들을 괴롭혀도 자기들에게 직접적인 해를 입히지 않는 한 상관하지 않았다... 테세우스와 로물루스는 타고난 정치가들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전통적인 왕으로 끝까지 살아가지 못하고 길을 벗어났다. 테세우스는 민주적으로 기울었고 로물루스는 독재로 기울었다. 두 사람은 상반된 정열을 갖고 있었지만 똑같은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통치자의 가장 큰 임무는 통치권을 유지하는 일이다... 테세우스가 너그러움이 지나쳤다면 로물루스는 오만과 잔학함으로 인해 실정을 저지른 것이다."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테세우스와 로물루스의 비교(대비열전)>

[영웅전] 첫 장은 그리스 아테네 민주정을 열었던 테세우스와 그리스로부터 라틴족을 해방시키고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의 '전기'와 두 인물의 '대비(비교)열전'이다.

테세우스가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의 숨겨진 아들로 '신의 아들'로만 알고 힘자랑하고 살다가 성년이 되어 부러진 칼조각을 홀어머니로부터 받은 후 한 나라의 왕인 아버지를 찾아가는 내용은 우리의 고구려 동명성왕 주몽을 찾아가는 북부여의 유리왕 이야기와 닮았다. 테세우스는 아테네 왕정을 없애고 민주정을 선포한 인물로서 민중들을 괴롭히던 악당들을 만나 그들의 방식으로 물리쳤고 크레타의 미노스왕에게 자진하여 노예로 팔려가서는 다른 노예들을 해방시켜 본국으로 돌아왔으며 '반인반우' 미노타우로스를 몽둥이로 때려잡은 일화로도 유명하다. 민중의 지지를 한몸에 받았으나 방탕한 여성편력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는데, 이후 '반신반인' 사촌 헤라클레스가 지옥에서 '망각의 의자'에 앉혀진 테세우스를 일으켜 세워주었다고 한다.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고 전해지듯 귀족이나 왕족이 아닌 미천한 신분으로 아마도 '이리'를 숭배했던 테무진(칭기즈칸)처럼 '늑대'를 숭배했던 '야만인'이었을 수도 있다. 이 쌍둥이 형제 역시 힘과 전쟁으로 로마를 건국하고 로물루스는 형제인 레무스를 제거하면서까지 전제정을 확립하는데, 이 또한 [삼국사기] <백제본기>에서 주몽의 아들들이었으나 유리왕에 밀려 한반도 남쪽으로 이주한 온조와 비류의 이야기가 연상되기도 한다. 한성(서울)에 자리잡은 온조는 미추홀(인천)에서 실패한 비류의 무리들을 결국 흡수합병하면서 기존 마한 열국들을 통일하고 백제를 건국했다. 중앙집권적 고대국가 정치체제의 등장이라는 공통점이다.


"수많은 민족들이 세계의 패권을 놓고 암약하며 경쟁하던 [영웅전]의 시대는 언어, 인종, 국경이라는 경계가 허물어진 오늘날과 무서우리만큼 닮아 있다. [영웅전]은 수천 년 전 현재와 닮은 생존경쟁 무대에서 살아남은 승자들의 이야기다... 플루타르코스는 [영웅전]의 마지막 구절을 완성한 뒤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인간은 누구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영웅이 될 수 있다네. 영웅이란 자기 내심의 덕과 지조를 겁내지 않고 발휘한 자이기 때문이지.'"
- [난세에는 '영웅전'을 읽어라], 김욱, 2013.

인문학 저술가 김욱은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난세에 읽고 '리더십'을 길러서 사마천의 표현을 따라 "깃털 같이 가벼운 삶을 태산 같이 무거운 삶"으로 만들라고 권한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리더십'은 '관리능력' 따위가 아니라, 인생를 주체적으로 해쳐나가는 능력이다. 

"리더(leader)란 단어는 본래 '여행'을 뜻하는 고대 라틴어 'laedan'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리더의 어원과 연관지어 생각해 본다면 '리더십'이란 '여행하는 자가 품어야 할 마음가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인생은 여행이며, 인간이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서다. 인간은 누구나 타인에게 예속되기 보다는 자유로운 상태를 추구한다. 그러므로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해주는 최선의 덕목을 한 단어로 압축해본다면, 그것은 바로 '리더십'이 될 것이다."
- [난세에는 '영웅전'을 읽어라], 김욱, 2013.

'리더십'은 조직을 관리하고 인력을 운영하며 타인을 지배하는 '경영학적' 개념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개인의 '여행'에서 더 자유로운 삶을 위해 스스로를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인문학'적 개념인 것이다.

인류의 집단적 '여행'인 '역사'를 통해 평범한 우리 다수가 스스로의 '자유로운 주체'가 되는 각자의 '리더십'을 체득하기를 응원한다.

***

1. [플루타르크 영웅전], 플루타르코스, 홍사중 옮김, <동서문화사>, 2007.
2. [난세에는 '영웅전'을 읽어라], 김욱, <쌤앤파커스>, 2013.
3. [역사의 역사(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돌베개>, 2018.
4. [삼국사기](12세기), 김부식, 최호 역해, <홍신문화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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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는 깊다 1 역사학자 전우용의 한국 근대 읽기 3부작 1
전우용 지음 / 푸른역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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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성'의 역사학, 그 '실용성'에 대하여
- [내 안의 역사], 전우용, <푸른역사>, 2019.


"신성권력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신과 신의 아들=영웅의 이야기가 역사였다... 유럽 68혁명을 계기로 민주주의는 국가 운영 원리를 넘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조직하는 기본 원리로 재정의되었다... 보통사람의 삶은 거의 전적으로 '평범성'이 점유한다... 인류 역사의 본류는 사람의 시선을 끌지 않는 '평범성'이다. '비범함'이란 도도히 흐르는 물줄기가 바위를 만났을 때 물보라로 튀어 오르는 입자 같은 것이다. '평범성'이 '비범함'을 규정하는 것이지 그 역은 아니다. 인류 역사의 위대한 성취들은 '평범성' 안에 깃든다."
- 전우용, [내 안의 역사], <책머리에>

국사학을 전공하고 동아시아문화 연구교수인 역사학자 전우용은 다수 민중의 '평범성'의 역사를 통해 현재를 돌아본다. SNS를 통한 그의 '사회비평'은 그 적폐의 역사적 배경을 토대로 꽤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물론, '수구세력'과 '토착왜구'들과 결연히 분투하는 최근의 시원한 포스팅의 결론은 대부분 민주당과 현 집권세력의 '진영논리' 같기도 하지만, 어차피 역사를 '해석'하는 것은 평범한 우리들 각자의 몫이니, '평범성'이 전부인 우리에게 그 역사를 알려주는 역사학자의 깊은 노고는 고마울 따름이다.
그렇게 '신성'하고 어려운 '구름 위의 역사'는 땅으로 내려온다.

"[삼국지연의]에는 '전국새'가 나온다. '전국새'는 진시황이 천하의 명옥 '화씨벽'을 얻어 만든 도장으로, '수명우천, 기수영창' 여덟 자, 즉 '하늘로부터 받은 명이여, 영원히 번창하리라'라는 글자를 전서로 새겼다. 글씨는 재상 이사가 썼고, 조각은 옥공 손수가 맡았다고 한다. 물론 당시의 이름은 '전국새'가 아니었다. 진시황은 이 도장을 '천자새'로 쓰면서 금이나 옥으로 만든 도장은 황제만 쓸 수 있도록 했다. 황제나 왕의 도장을 '옥새'라고 하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전국새는 한나라 말의 혼란기에 황궁에서 흘러나가 손견, 원술, 조조의 손을 거친 뒤 다시 황제의 도장이 되었다. 이후 위진남북조시대와 수, 당, 오대십국시대까지 전승되다가 후진의 출제가 요나라 태종에게 사로잡힌 서기 946년에 사라진 것으로 전해진다. 만약 지금 진품 '전국새'가 발견된다면, 이제껏 지구상에서 거래된 골동품 중 최고가를 기록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원칙적으로 황제의 것은 '새', 왕의 것은 '보'라 했고, 제후의 것은 '장'이라 했으며, 그 밖의 것들은 '인'이라 했다."
- 전우용, [내 안의 역사], <태초에 도장이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우리가 익히 쓰고 있는 '도장'이라는 사물과 그로 인한 '근대적' 계약관계를 이야기하기 위해 먼 옛날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근대의 개인들은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사람'이 아닌 '문서'로서의 '계약 관계'를 중시하게 되었는데(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의 '물신성'의 한 형태), 근대 국가(우리에게는 슬프게도 일제총독부다)는 이름 석 자도 못 쓰는 인민들에게 '도장'을 부여했고 '인감증명'으로 그들의 '시민권'을 확정했다. 이전 '신분사회'에서야 '도장'이나 '서명'의 형식이 차별되었겠지만, 근대에 들어 글도 모르고 이름도 없던 다수 인민들의 '평범성'은 이 과정에서 국가로 하여금 정식 이름 조차 없던 '꽃분이'나 말순이' 같은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들에게 제대로 된 이름을 짓게 만들었다. '여성'도 '시민'이 된 것이다. 

'도장'의 역사를 더 보면, '단군 설화'를 담은 일연의 [삼국유사]에서 단군의 아버지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 가져온 '천부인'은 '하늘의 명이 새겨진 도장'이었고,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고구려와 신라왕들의 옥새 이야기도 나오며, 고려는 요, 금, 원나라로부터, 조선은 명나라로부터 '조선국왕지인'을 금도장을 받아 중국과의 외교문서에 찍었다. 더럽지만 살기 위해 찍은 '도장'이었겠으나, 어떤 지배계급에게는 '사대주의'의 큰 명분이었다.

[내안의 역사]는 역사학자 전우용의 '한국 근대 읽기 3부작'의 마지막 3부로, '유리거울'이나 '도장' 등의 <개인사>, '연애', 'TV', '담배' 등 <가족과 의식주>, '탕수육과 짜장면', '소 보험과 암 보험' 등 <직업>, '한양도성', '경찰' 등 <공간과 정치>, '입시제도', '문화재' 등의 <가치관과 문화> 등의 사소항 영역에서 실로 재미있는 역사를 소환한다.

'보험'의 역사에 관한 역사를 한 번 보자.

"소를 잃는 일과 훔치는 일이 이토록 큰 일이었기에, 우리나라 초창기 보험업이 선박 다음으로 소를 주목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조선 영조) 당시 보험 조건은 매년 엽전 한 냥씩을 내면 기르던 소가 갑자기 죽거나 도둑맞을 경우 소 값을 물어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조선 후기 정치적 특권과 결합한 독점상업 체제, 즉 '도고상업 체제'가 쌓아올린 적폐는 질기게도 오래 버텼다. (1897년) 대조선보험회사 사원들은 소 키우는 집마다 찾아다니면서 나라에서 하는 일이라고 윽박질러 보험료를 강제로 징수했다... 보험금을 지급했다는 기록도 없다. 보험이 뭔지 모르던 농민들은 없던 '우세'가 생겼다고 분개했고... 당황한 정부는 곧 회사 허가를 취소했지만, 그 뒤에도 우척보험회사(1898), 무본보험회사(1900) 등이 잇따라 설립되어 비슷한 짓을 되풀이했다."
- 전우용, [내 안의 역사], <'소 보험'에서 ' 암 보험'까지, 시대의 불안감>

보험의 동기는 '위험(리스크)'이므로 17세기(1666년) '런던 대화재'라는 '화재보험'의 계기도 있었지만, 원래는 근세 '대항해 시대'의 경제활동 중 가장 큰 '위험'과 '손해'의 원천인 '선박'과 '해상무역'이 보험의 첫 물건이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조선  후기 '호상보험회사'가 정부와 결탁하여 사업을 시작했으나 '보험금 지급 기록'은 남기지 않았고 1894년 갑오개혁 과정에서 철폐되었으나 1897년 조선의 '자본가'들은 '대조선보험회사'를 열고는 오로지 '소 보험'만 팔았고 역시 '보험금 지급 기록'은 없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든, 자본주의 '시초 축적'의 민낯은 역시, '양아치' 또는 '악마의 맷돌'이다.


"역사학은 인간의 집단 기억을 다루는 학문이다. 개인의 것이든 집단의 것이든, 기억은 정체성을 구성하는 근본 요소이자 자기 성찰의 원천 재료다. 과거를 기억하고 회상하는 능력은 인간만이 가진 것이라 단정할 수 없으나, 그를 기록하여 전승하는 능력은 오직 인간만이 가진 것이다... '교훈으로서의 역사'는 역사학에 대한 가장 오래된, 그런 점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정의'로 취급되나, 나는 결코 무효화할 수 없는 정의라고 생각한다. '산 자가 죽은 자를 되살리고 죽은 자가 산 자를 지배한다'는 카(E.H.Carr)위 말대로, 인간은 자기 필요에 따라 과거를 소환하여 그 과거가 가르치는 바를 배움으로써 변화하는 존재다. 그 변화가 진보인지 퇴보인지, 발전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 전우용, [우리 역사는 깊다], <책머리에>

현대 사회가 고도화되고 자본주의 '산업 혁신'이 가속화되면서, '인문학' 특히 '역사학'의 '실용성'에 더더욱 의문의 제기하는 세태를 두고 역사학자 전우용이 내놓은 답변이다.

"자기 필요에 따라 과거를 소환"하는 인류의 '집단 기억'으로서의 역사는 항상 '승자의 역사'로 기록되고 전승되기도 했으나, '기록'만이 아닌, 아니 그 '기록의 문장' 사이의 맥락에서도 선대의 역사기록자들은 수많은 '암시'들을 남겼을 테고, '평범성'의 큰 물줄기를 타고 흘러가는 우리 다수대중은 그 '맥락의 역사'에서 다수의 '비범함'을 캐낼 수 있다.

다수의 '평범성'들이 영웅적 '비범함'으로 전화되도록 도와주는 역사학자의 노고에 다시금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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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안의 역사 - 현대 한국인의 몸과 마음을 만든 근대], 전우용, <푸른역사>, 2019.
2. [우리 역사는 깊다 1~2], 전우용, <푸른역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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