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네버랜드 클래식 1
루이스 캐럴 지음, 존 테니엘 그림 / 시공주니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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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을 바꾸는 것은 '이상한 나라'의 '야만'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손영미 옮김, <시공주니어>, 2001.



"첫째 애는 성급하게
'시작해요!'라고 명령하고,
둘째 애는 조금 상냥하게
'재미있게 해 주세요.' 하고,
셋째 애는 채 일 분도 못 참고
이야기를 가로막는다.

아이들은 이내 입을 다물고,
상상 속에서 기이하고 새로운
마법의 땅을 여행하고
새나 짐승과 사이좋게 이야기하는
꿈의 아이들을 쫓아다닌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고 믿으려 한다.

지친 이야기꾼이 이야기도 떨어지고
상상의 샘도 말라서
'나머지는 다음에 하자.' 하고
화제를 돌리려고만 들면,
아이들은 '지금이 다음이에요!' 하고
신바람이 나서 외친다.

'이상한 나라' 이야기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렇게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신기한 이야기들이 생겨났다.
이제 이야기는 끝났고,
우리는 저물어 가는 햇살 속에서
즐겁게 노를 저어 집으로 돌아간다."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금빛 찬란한 오후 내내>, 1865.


1862년 7월 4일, 찰스 도지슨은 템즈 강에서 앨리스 리들의 세 자매들과 보트를 타고 놀면서 '이상한 나라' 이야기를 시작한다. 앨리스 리들은 돌아오는 길에 "그것을 책으로 써 주시면 정말 재미있을 것"이라고 말했단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865)를 쓴 루이스 캐럴의 본명은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 옥스퍼드 대학 수학부 교수였고, 그 대학 학장인 헨리 리들의 딸들과 '말장난'과 게임을 하며 놀아주던, '루이스 캐럴' 필명은 모호하나 본명이 '찰스'인 것을 보니 남성이다.
그는 수학 뿐만 아니라 논리학, 그림, 사진 등을 즐겼으며, 영국 빅토리아 시대 최고의 '기인'에 속한다고도 한다.

앨리스는 '그림도 대화도 전혀 없는 책'을 읽고 있는 언덕 위의 언니 옆에서, 동화의 이야기가 시작하자마자 잠이 드는데, 장자의 '호접몽'처럼 경계는 모호하다. 아마도 그 경계는 '말하는 흰 토끼'였을 텐데,  이를 '비정상적인 일'로 생각하지 않고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끼는 순간이다. 
'나비가 나인지, 내가 나비인지' 모호해진 상황에서 '이상한 나라'로 진입한다.

앨리스 어린이는 '현실'에서는 규칙들을 내재화시키지 못한 '비정상'이다. 그러나 '이상한 나라'에서는 반대로 '현실'의 규칙을 지키려 하는 '비정상'이 된다. 역시 모호한 경계에 계속 서 있다. 그럼에도 그 꿈에서 깨지 않는다. 음료수를 마시고 몸이 작아지고 과자를 먹고는 거인이 되고 '눈물바다'를 만들어 떠다니면서도 깨어날 생각을 않는다.
'어른들'은 가위 눌려 깰 이야기들일 수 있겠으나 앨리스는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이야기를 끝까지 이어간다. 작자의 의도이기는 하나, 어쨌든 '이상한 나라'에서 어린이 앨리스의 호흡이 어른인 언니의 그것보다 길다.

'현실'의 어른인 언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꿈 속의 모험을 이어가기에 너무 성장했을 것인데, 꿈에서 깨어 '이상한 나라' 이야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동생의 뒷모습을 보며 '반쯤의 꿈'을 꾼다.


"'아, 정말 이상한 꿈을 꿨어!
앨리스는 언니에게, 여러분이 방금 읽은 모험 이야기를 최대한 기억해 내서 모두 해 주었다...

앨리스의 언니는 동생을 보내놓고 턱을 괴고 앉아서 저물어 가는 해를 바라보며, 어린 앨리스와 앨리스의 멋진 모험을 생각하다가 꿈 비슷한 것을 꾸었다...
언니는 눈을 감고 앉아서 자신이 이상한 나라에 있다는 것을 반쯤은 믿었다. 하지만 눈만 뜨면 이 모든 것이 단조로운 현실로 바뀌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앨리스의 증언>, 1865.


'현실'의 규칙에 익숙해진 언니는 온전히 '이상한 나라'로 들어갈 수 없다. 눈을 감고 졸면서도 눈만 뜨면 미친 모자장수와 삼월토끼의 '달그락거리는 찻잔소리'는 '양들의 방울소리'로, '가짜거북의 구슬픈 울음소리'는 '멀리서 들려오는 소들의 울음소리'로 바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어른'인 언니는 '경계' 혹은 '선'을 넘지 못한다. 넘을 수 없다.
'현실'의 '비정상'인 어린이 앨리스는 이야기 첫 장부터 모호한 '경계'에 줄곧 섰다가 간단히 '선'을 넘어버렸다. '흰 토끼'를 매개로 빠져버린 '이상한 나라'에서 온갖 '비정상'들을 만나면서 '현실'적이었던 자기를 버리고 금방 동화되어 버린다. 
'이상한 나라'에서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선이란 애초에 없다.

꿈에서 깨어도 앨리스에게는 변한 것이 없다.
보물섬을 다녀와 보물을 얻은 것도, 시련을 통해 어른이 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상한 나라'로의 기행을 통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평생 잊을 수 없는 '영역'을 구축한다.
'현실'의 어른들 규칙을 '문명'이라 하자. 한편으로 이 어린이의 '영역'을 '야만'이라 해보자. 
'문명'의 관점에서 '야만'은 '비정상'일 테지만, 이 '문명'은 '혁신'과 '개혁'을 외칠 때도 절대 '선'을 넘지 않는다. 반면, '야만'이라는 '이상한 나라'에는 '경계'가 없으니 '선'은 넘으라고 있는 것이다. 
넓은 땅을 지배했던 로마제국이라는 '문명'을 무너뜨린 건 다른 '문명'이 아니라 게르만족 '야만'의 이동이었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로버트 스티븐슨의 [보물섬] 다음으로 내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이야기다. 스토리나 구성을 생각할 수 없는 나이에 그런 걱정 없이 '의식의 흐름'으로 읽을 수 있는, 한편으로 머리는 복잡하나 그 정체가 무언지 굳이 알 필요 없는 이야기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규칙들을 강요하는 '현실'에서 잠시나마 탈주하는 문이었고, 지금은 굳게 닫았으나 '선'을 넘어야 할 때 언제든 열 수 있는 마음 속 출구일 것이다.


디즈니 만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내 어릴 때는 볼 수 없었고, 내 아이들 어렸을 적 보여준, 사실은 내가 주로 보고 싶었던 애니메이션인데,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시리즈 중 개인적으로 제일 잘 만든 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951)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원작 '고전 동화'에 대한 애정 때문일 게다.
또한, 냉전시대 미국의 '메커시즘(반공주의)' 광풍 속에서 나왔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물론 지극히 보수적인 디즈니의 의도는 아닐테지만, '전체주의'가 지배적인 세상에 던지는 '이상한 나라' 이야기란 그 자체로 멋진 것 아닌가.

'문명'을 바꾸는 것은 '이상한 나라'에서 온 '야만'이다.

***

1.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손영미 옮김, <시공주니어>, 2001.
2.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교원애니메이션세계명작동화>,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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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 네버랜드 클래식 29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김영선 옮김, 노먼 프라이스 그림 / 시공주니어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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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속의 '어른들'
- [보물섬](1883),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김영선 옮김, <시공주니어>, 2006.



"트렐로니 지주와 리브시 판사를 비롯한 몇몇 양반들이 나에게 보물섬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쓰라고 요청했는데, 아직 가져오지 못한 보물이 남았으므로 보물섬의 위치만 빼고 처음부터 끝까지 낱낱이 기록하라고 했고 나는 17백 몇년의 어느 때로 돌아가서 펜을 들어야 했다. 내 아버지가 남긴 '벤보우 제독' 여관 처마 아래로 뺨에 큰 칼자국이 있는 늙은 선원이 처음 들어섰던 바로 그 때 말이다."
- [보물섬], 로버트 스티븐슨, <1장, '벤보우 제독' 여관의 늙은 선원>


내 어릴적 가장 감명깊게 읽은 동화책을 꼽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로버트 스티븐슨의 [보물섬]을 내놓는다.
초등학교 때 우리집 '세계명작동화전집'에 있던 [보물섬]. 그러나 어렸을 당시에 책을 열심히 읽었던 것은 아니고 TV에서 방영하던 [보물섬] 만화를 본 후에야 비로소 그 전집을 뒤졌던 것 같다.
당시는 몰랐으나 1970년대 후반 일본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 방송되었던 그 때.
주인공은 짐 호킨스,
바로 이 녀석이다.



내가 '최고의 동화'로 기억하는 첫째 이유는 '악역'으로서 해적들의 개성들과 그들의 오랜 관계에 관한 추억이었다.
원래 스티븐슨이 처음 이 소설을 썼을 때 제목은 [바다의 요리사(The Sea Cook)] 정도였다고 하는데, '외다리 실버'가 주인공이라는 것이리라.
화자인 짐 호킨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 소설의 초반부에 등장한 무서운 해적들의 거대한 배후이자, 전설의 플린트 선장의 실질적 후계자. 첫 장면에서 짐의 벤보우 제독' 여관에 들어선 칼자국의 빌리 본즈 부선장이 가장 두려워 한 인물 '외다리 실버'는 실질적 '주인공'이니 만큼 부하들을 먼저 몇 명 보내고는 한참 후인 <제 2부> 즈음 되어서야 등장한다. 

나는 빌리 본즈 선장이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는데, 전설의 플린트 선장의 해적단에서 '1등 항해사'로서 2인자였으며, 플린트 사후 보물지도를 가로챈 도망자, 예전의 동료들로부터 쫓겨다니는 주정뱅이 늙은 선원이 등장한 소설의 그 첫 장면이, 망상에 쫓기면서 '검은 동그라미'를 받고 혼자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다가 심장마비로 죽어갔을 그 허무함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결국 1인자가 되지 못한 2인자의 최후가 내게는 그토록 애잔했다.

그 외에 잘린 손가락의 검둥개, 말발굽에 비명을 다한 쇳소리의 장님 퓨... 이들은 빌리 본즈 부선장이 얼굴에 칼자국이 나고, 2등 항해사 실버의 한쪽 다리가 날아갔던 오래전 '대전투'에서 함께 싸우다가 손가락을 잃고 눈을 잃었을 해적단의 '동지'였고, 보물지도를 둘러싼 '내부의 적들'이었다.
어린 내게는 히스파니올라호 선원들의 보물섬을 향한 모험보다는 소설이 '침묵'하는 이야기, 플린트 해적단의 아련한 모험이 더 좋았다.
망원경을 든 채 석양을 비껴 선 빌리 본즈 선장의 외로운 어깨와 보물섬을 향한 이룰 수 없는 아련한 꿈은 오래된 해적 동지들의 최후를 미리 보여주고 있었다.


"실버에 관해서는 더 이상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그 어마어마했던 외다리 선원은 내 삶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가 어딘가에서 예전의 흑인 부인을 다시 만나고 앵무새 '플린트 선장'과 평안히 지내고 있을 것만 같다. 물론 그 가능성이 적을 것이기에, 나의 바램에 불과하겠지만... 
난 아직도 악몽을 꾸며 한밤중에 깨어 일어난다. 어떤 날은 그 보물섬의 높은 파도소리가, 또 어떤 때는 "8센트! 8센트!"를 외쳐대는 앵무새 플린트의 목소리가 귓속을 맴도는 채로."
- [보물섬], 로버트 스티븐슨, <34장, 마지막 이야기>

두 번째 감동의 지점이 [보물섬]의 핵심이다.
어린 화자 짐 호킨스에게 크고 '어마어마했던' 어른들, 특히 믿음과 배신의 양 극단을 알게 해준 '외다리 실버'로 대표되는 그 '어른들' 이야기다.
애초에 내겐 히스파니올라호나 대지주 트렐로니, 리브시 판사 등은 관심 밖이었고, 카리스마 넘치는 스몰레 선장의 위기극복 '리더십'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중에 글을 쓰는 짐 호킨스는 예전의 빌리 본즈보다, 외다리 실버보다 더 힘이 센 청년이 되었을 테지만, 그의 마음은 잠시나마 '아버지' 같던 빌리 본즈와 오랜 시간 '삼촌' 같던 실버보다 언제까지나 여릴 것이다.

다 큰 나는 안다.
어릴 때 가장 커 보이던 '아버지'가 사실은 얼마나 '초라'했을 때가 많았을지, 제일 힘세 보이던 '삼촌들'이 사실은 힘없는 다수 중 하나에 불과했을 것인지.
그럼에도, 그 '어른들'은 다 큰 내 마음 속에서 여전히  그 모습으로 계속 살아 계속 불려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또 누군가에게는 '어른'이 된 내가 그런 존재가 되어 있음을.
그리하여, 우리의 [보물섬]이 달리 '고전동화'가 아님을.


이 두 가지가, 내 아들이 한글도 익히기도 전, 잠자리에서 [보물섬]을 수 백번 읽어준 이유다.

***

1. [보물섬](1883),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김영선 옮김, <시공주니어>, 2006.
2. [Treasure Island], Robert Louis Stevenson, <Collins classics>, 2010.
3. [보물섬], <교원 애니메이션 세계명작동화>,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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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 비룡소 클래식 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에드워드 윌슨 그림, 정영목 옮김 / 비룡소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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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속의 '어른들'
- [보물섬], 로버트 스티븐슨, 김영선 옮김, <시공주니어>, 2006.



"트렐로니 지주와 리브시 판사를 비롯한 몇몇 양반들이 나에게 보물섬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쓰라고 요청했는데, 아직 가져오지 못한 보물이 남았으므로 보물섬의 위치만 빼고 처음부터 끝까지 낱낱이 기록하라고 했고 나는 17백 몇년의 어느 때로 돌아가서 펜을 들어야 했다. 내 아버지가 남긴 '벤보우 제독' 여관 처마 아래로 뺨에 큰 칼자국이 있는 늙은 선원이 처음 들어섰던 바로 그 때 말이다."
- [보물섬], 로버트 스티븐슨, <1장, '벤보우 제독' 여관의 늙은 선원>


내 어릴적 가장 감명깊게 읽은 동화책을 꼽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로버트 스티븐슨의 [보물섬]을 내놓는다.
초등학교 때 우리집 '세계명작동화전집'에 있던 [보물섬]. 그러나 어렸을 당시에 책을 열심히 읽었던 것은 아니고 TV에서 방영하던 [보물섬] 만화를 본 후에야 비로소 그 전집을 뒤졌던 것 같다.
당시는 몰랐으나 1970년대 후반 일본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 방송되었던 그 때.
주인공은 짐 호킨스,
바로 이 녀석이다.



내가 '최고의 동화'로 기억하는 첫째 이유는 '악역'으로서 해적들의 개성들과 그들의 오랜 관계에 관한 추억이었다.
원래 스티븐슨이 처음 이 소설을 썼을 때 제목은 [바다의 요리사(The Sea Cook)] 정도였다고 하는데, '외다리 실버'가 주인공이라는 것이리라.
화자인 짐 호킨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 소설의 초반부에 등장한 무서운 해적들의 거대한 배후이자, 전설의 플린트 선장의 실질적 후계자. 첫 장면에서 짐의 벤보우 제독' 여관에 들어선 칼자국의 빌리 본즈 부선장이 가장 두려워 한 인물 '외다리 실버'는 실질적 '주인공'이니 만큼 부하들을 먼저 몇 명 보내고는 한참 후인 <제 2부> 즈음 되어서야 등장한다. 

나는 빌리 본즈 선장이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는데, 전설의 플린트 선장의 해적단에서 '1등 항해사'로서 2인자였으며, 플린트 사후 보물지도를 가로챈 도망자, 예전의 동료들로부터 쫓겨다니는 주정뱅이 늙은 선원이 등장한 소설의 그 첫 장면이, 망상에 쫓기면서 '검은 동그라미'를 받고 혼자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다가 심장마비로 죽어갔을 그 허무함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결국 1인자가 되지 못한 2인자의 최후가 내게는 그토록 애잔했다.

그 외에 잘린 손가락의 검둥개, 말발굽에 비명을 다한 쇳소리의 장님 퓨... 이들은 빌리 본즈 부선장이 얼굴에 칼자국이 나고, 2등 항해사 실버의 한쪽 다리가 날아갔던 오래전 '대전투'에서 함께 싸우다가 손가락을 잃고 눈을 잃었을 해적단의 '동지'였고, 보물지도를 둘러싼 '내부의 적들'이었다.
어린 내게는 히스파니올라호 선원들의 보물섬을 향한 모험보다는 소설이 '침묵'하는 이야기, 플린트 해적단의 아련한 모험이 더 좋았다.
망원경을 든 채 석양을 비껴 선 빌리 본즈 선장의 외로운 어깨와 보물섬을 향한 이룰 수 없는 아련한 꿈은 오래된 해적 동지들의 최후를 미리 보여주고 있었다.


"실버에 관해서는 더 이상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그 어마어마했던 외다리 선원은 내 삶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가 어딘가에서 예전의 흑인 부인을 다시 만나고 앵무새 '플린트 선장'과 평안히 지내고 있을 것만 같다. 물론 그 가능성이 적을 것이기에, 나의 바램에 불과하겠지만... 
난 아직도 악몽을 꾸며 한밤중에 깨어 일어난다. 어떤 날은 그 보물섬의 높은 파도소리가, 또 어떤 때는 "8센트! 8센트!"를 외쳐대는 앵무새 플린트의 목소리가 귓속을 맴도는 채로."
- [보물섬], 로버트 스티븐슨, <34장, 마지막 이야기>

두 번째 감동의 지점이 [보물섬]의 핵심이다.
어린 화자 짐 호킨스에게 크고 '어마어마했던' 어른들, 특히 믿음과 배신의 양 극단을 알게 해준 '외다리 실버'로 대표되는 그 '어른들' 이야기다.
애초에 내겐 히스파니올라호나 대지주 트렐로니, 리브시 판사 등은 관심 밖이었고, 카리스마 넘치는 스몰레 선장의 위기극복 '리더십'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중에 글을 쓰는 짐 호킨스는 예전의 빌리 본즈보다, 외다리 실버보다 더 힘이 센 청년이 되었을 테지만, 그의 마음은 잠시나마 '아버지' 같던 빌리 본즈와 오랜 시간 '삼촌' 같던 실버보다 언제까지나 여릴 것이다.

다 큰 나는 안다.
어릴 때 가장 커 보이던 '아버지'가 사실은 얼마나 '초라'했을 때가 많았을지, 제일 힘세 보이던 '삼촌들'이 사실은 힘없는 다수 중 하나에 불과했을 것인지.
그럼에도, 그 '어른들'은 다 큰 내 마음 속에서 여전히  그 모습으로 계속 살아 계속 불려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또 누군가에게는 '어른'이 된 내가 그런 존재가 되어 있음을.
그리하여, 우리의 [보물섬]이 달리 '고전동화'가 아님을.


이 두 가지가, 내 아들이 한글도 익히기도 전, 잠자리에서 [보물섬]을 수 백번 읽어준 이유다.

***

1. [보물섬](1883),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김영선 옮김, <시공주니어>, 2006.
2. [Treasure Island], Robert Louis Stevenson, <Collins classics>, 2010.
3. [보물섬], <교원 애니메이션 세계명작동화>,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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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저항
방현석 지음 / 일하는사람들의작은책 / 1999년 7월
평점 :
절판


'80년대 가장 현실적 '리얼리스트', 방현석
- [내일을 여는 집], 방현석, <창작과비평사>, 1991.



"창조적 리얼리스트... 사유와 감정이 사회적 존재로부터 형성되는 과정을 알며, 또 체험이나 감정들이 현실이라는 전체적 복합체의 부분이라는 점을 안다. 이때 그는 리얼리스트로서 그러한 부분이 삶의 전체적 복합체 속에서 어디에 속하며, 사회생활의 어느 부분에서 생성되었고, 무엇을 지향하게 되는지 등등의 문제를 보여준다."
- 게오르그 루카치, [문제는 리얼리즘이다], 1938.

'리얼리즘'은 '사실주의'와 다르다.
서양에서는 19세기 과학의 발전과 함께 기존 '낭만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기 위해 '사실주의'가 시작되었으나, 서양사조가 여과없이 이식되던 식민지 조선에서는 '사실주의' 이후 '낭만주의'가 유행했는데, 우리 문학사에서 '사실주의'란 그 객관적 묘사의 자연적 확장이라는 '자연주의'와 구별이 모호했다. 
그로 인해, 원래 '사실주의' 원어로서 '리얼리즘'은 번역되지 못했고, 그냥, '리얼리즘'이 된다.

헝가리 마르크스주의 미학자 게오르그 루카치에게 "문학(예술)은 현실의 '특수한 반영'"이다.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를 기본으로, 복합적인 삶의 보편적 '총체성'을 개별적 '구체성'으로 '반영'하는 것이 '리얼리즘'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당시 문예사조에서 "문제는 리얼리즘"이었다.

"리얼리즘적인 것은 사회적인 인과관계의 복합체를 발견하며... 계급의 관점에서 글을 쓰며... 따라서 민중성과 리얼리즘을 평가하기 위한 기준들은 관대하면서도 극히 조심스럽게 선정되어야 한다... 기존의 리얼리스틱한 작품들이나 민중적인 작품들로부터만 그러한 기준을 끄집어내서는 안된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경우에는 그저 형식주의적인 기준들 밖에, 형식적인 리얼리즘 밖에 얻지 못할 것이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루카치에 대한 반론], 1938.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루카치의 '문예론'에 대한 반론으로, '리얼리즘'은 '계급적 관점'에서 현실을 '반영'하나 기존의 '민중적인 작품'들로만 가준을 삼아서는 안된다고 한다.
복잡한 현실 속에서 고뇌하는 개인과 집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리얼리즘'의 '문제'는 단순한 '사실주의'의 그것과 다르다.


우리 현대 소설 문학사에서 나는 '리얼리스트'를 단 세 명만 뽑는다.

1970년대, 황석영.
1980년대, 방현석.
1990년대, 김소진.

21세기 들어서 '리얼리즘'의 의미는 더 확장되었거나 문예사조로서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1970년대 [객지]를 썼던 황석영이나, 1980년대 [내딛는 첫발은]을 썼던 방현석이나, 1990년대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썼던 김소진에게서 추출된 공통점은 '복잡한 현실에서 노동하는 다수 사람들의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심경들과 그들의 지난한 현실들'이었다.

방현석은 소설창작을 전공하고 인천에서 공장노동과 노동조합 활동를 하면서 그 경험을 토대로 1988년 [내딛는 첫발은]이라는 단편소설로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소설가다.
뜨거웠던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파도가 지난 후 자본의 개별적 역습, 그리고 노조운동의 패배와 승리의 과정에서 고뇌하는 노동자들의 심리와 현실을 그려낸 단편소설들을, 역시 치열했던 1991년에 [내일을 여는 집]으로 묶어냈다.

해고와 복직투쟁의 과정을 그린 [내일을 여는 집], 조선소 투쟁을 담은 [지옥선의 사람들], 굴종을 깨고 일어나는 파업 과정을 묘사한 [내딛는 첫발은] 등 당시 노동자들이 '노예'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당당한 '노동계급 주체'로 우뚝서는 모습들 말이다.

물론,
방현석의 '80년대 소설들이 '리얼리즘'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당시 남한의 구체적 현실이 배경이 되었고, 당시 우리 현실에서 '사회적인 인과관계의 복합성'을 발견하고 그 특수한 현실을 '반영'한 산물이기 때문이었다.

이후로도 방현석은 같은 어조를 유지하면서 1999년에는 한국 현대 노동운동사(1970~1994)를 [아름다운 저항]으로 엮었는데, 1970년대 청계천 노동운동부터 1980년 광주, 1990년 울산 골리앗 투쟁, 1991년 전노협 건설과 1994년 전기협/전지협 파업까지 우리 노동운동 역사를 정리하기도 한다.


21세기에 아마도 '폐기'되었을지도 모를 우리의 '리얼리즘'은 그 본질이 '현실의 반영'인 한 여전히 '확장'되어야 한다.


"정식이 던진 스패너가 공중을 날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개처럼 살거야? 언제까지?'
...
15호기, 16호기가 꺼졌다... 스패너가 유리창을 향해 날기 시작했다. 기계소리 대신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잇따랐다.
'나가자.'
누군가 외쳤다. 나가자. 가자. 나가자. 한순간이었다. 눈물이 분노로 불타올랐다. 모두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달려나가는 사람들의 손에 금형 받침목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 방현석, [내딛는 첫발은], <실천문학 봄호>, 1988.


내게 소설가 방현석은 등단작 마지막 장면으로, '80년대 가장 현실적인 '리얼리스트'로 언제까지나 기억되고 있다.

***

1. [내일을 여는 집], 방현석, <창작과비평사>, 1991.
2. [아름다운 저항], 방현석, <작은책>, 1999.
3. [당신의 왼편], 방현석, <해냄>,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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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여는 집
방현석 지음 / 창비 / 199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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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가장 현실적 '리얼리스트', 방현석
- [내일을 여는 집], 방현석, <창작과비평사>, 1991.



"창조적 리얼리스트... 사유와 감정이 사회적 존재로부터 형성되는 과정을 알며, 또 체험이나 감정들이 현실이라는 전체적 복합체의 부분이라는 점을 안다. 이때 그는 리얼리스트로서 그러한 부분이 삶의 전체적 복합체 속에서 어디에 속하며, 사회생활의 어느 부분에서 생성되었고, 무엇을 지향하게 되는지 등등의 문제를 보여준다."
- 게오르그 루카치, [문제는 리얼리즘이다], 1938.

'리얼리즘'은 '사실주의'와 다르다.
서양에서는 19세기 과학의 발전과 함께 기존 '낭만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기 위해 '사실주의'가 시작되었으나, 서양사조가 여과없이 이식되던 식민지 조선에서는 '사실주의' 이후 '낭만주의'가 유행했는데, 우리 문학사에서 '사실주의'란 그 객관적 묘사의 자연적 확장이라는 '자연주의'와 구별이 모호했다. 
그로 인해, 원래 '사실주의' 원어로서 '리얼리즘'은 번역되지 못했고, 그냥, '리얼리즘'이 된다.

헝가리 마르크스주의 미학자 게오르그 루카치에게 "문학(예술)은 현실의 '특수한 반영'"이다.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를 기본으로, 복합적인 삶의 보편적 '총체성'을 개별적 '구체성'으로 '반영'하는 것이 '리얼리즘'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당시 문예사조에서 "문제는 리얼리즘"이었다.

"리얼리즘적인 것은 사회적인 인과관계의 복합체를 발견하며... 계급의 관점에서 글을 쓰며... 따라서 민중성과 리얼리즘을 평가하기 위한 기준들은 관대하면서도 극히 조심스럽게 선정되어야 한다... 기존의 리얼리스틱한 작품들이나 민중적인 작품들로부터만 그러한 기준을 끄집어내서는 안된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경우에는 그저 형식주의적인 기준들 밖에, 형식적인 리얼리즘 밖에 얻지 못할 것이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루카치에 대한 반론], 1938.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루카치의 '문예론'에 대한 반론으로, '리얼리즘'은 '계급적 관점'에서 현실을 '반영'하나 기존의 '민중적인 작품'들로만 가준을 삼아서는 안된다고 한다.
복잡한 현실 속에서 고뇌하는 개인과 집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리얼리즘'의 '문제'는 단순한 '사실주의'의 그것과 다르다.


우리 현대 소설 문학사에서 나는 '리얼리스트'를 단 세 명만 뽑는다.

1970년대, 황석영.
1980년대, 방현석.
1990년대, 김소진.

21세기 들어서 '리얼리즘'의 의미는 더 확장되었거나 문예사조로서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1970년대 [객지]를 썼던 황석영이나, 1980년대 [내딛는 첫발은]을 썼던 방현석이나, 1990년대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썼던 김소진에게서 추출된 공통점은 '복잡한 현실에서 노동하는 다수 사람들의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심경들과 그들의 지난한 현실들'이었다.

방현석은 소설창작을 전공하고 인천에서 공장노동과 노동조합 활동를 하면서 그 경험을 토대로 1988년 [내딛는 첫발은]이라는 단편소설로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소설가다.
뜨거웠던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파도가 지난 후 자본의 개별적 역습, 그리고 노조운동의 패배와 승리의 과정에서 고뇌하는 노동자들의 심리와 현실을 그려낸 단편소설들을, 역시 치열했던 1991년에 [내일을 여는 집]으로 묶어냈다.

해고와 복직투쟁의 과정을 그린 [내일을 여는 집], 조선소 투쟁을 담은 [지옥선의 사람들], 굴종을 깨고 일어나는 파업 과정을 묘사한 [내딛는 첫발은] 등 당시 노동자들이 '노예'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당당한 '노동계급 주체'로 우뚝서는 모습들 말이다.

물론,
방현석의 '80년대 소설들이 '리얼리즘'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당시 남한의 구체적 현실이 배경이 되었고, 당시 우리 현실에서 '사회적인 인과관계의 복합성'을 발견하고 그 특수한 현실을 '반영'한 산물이기 때문이었다.

이후로도 방현석은 같은 어조를 유지하면서 1999년에는 한국 현대 노동운동사(1970~1994)를 [아름다운 저항]으로 엮었는데, 1970년대 청계천 노동운동부터 1980년 광주, 1990년 울산 골리앗 투쟁, 1991년 전노협 건설과 1994년 전기협/전지협 파업까지 우리 노동운동 역사를 정리하기도 한다.


21세기에 아마도 '폐기'되었을지도 모를 우리의 '리얼리즘'은 그 본질이 '현실의 반영'인 한 여전히 '확장'되어야 한다.


"정식이 던진 스패너가 공중을 날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개처럼 살거야? 언제까지?'
...
15호기, 16호기가 꺼졌다... 스패너가 유리창을 향해 날기 시작했다. 기계소리 대신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잇따랐다.
'나가자.'
누군가 외쳤다. 나가자. 가자. 나가자. 한순간이었다. 눈물이 분노로 불타올랐다. 모두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달려나가는 사람들의 손에 금형 받침목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 방현석, [내딛는 첫발은], <실천문학 봄호>, 1988.


내게 소설가 방현석은 등단작 마지막 장면으로, '80년대 가장 현실적인 '리얼리스트'로 언제까지나 기억되고 있다.

***

1. [내일을 여는 집], 방현석, <창작과비평사>, 1991.
2. [아름다운 저항], 방현석, <작은책>, 1999.
3. [당신의 왼편], 방현석, <해냄>,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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