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들의 팝송
정일서 지음 / 오픈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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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개인적인 팝송 '순위'
- [명곡의 재발견], 이무영, <score>, 2015.
- [그 시절, 우리들의 팝송], 정일서, <오픈하우스>, 2018.



"비틀즈(the Beatles)의 운명이 종말을 향해 치달을 무렵, 홀연히 아들의 꿈에 나타난 메리(Mary)는 그에게 삶의 지혜와 위로를 전한다. [Let It Be]의 노랫말을 통해 메리는 아들 매카트니에게 너무 주어진 상황을 바꾸려고 애쓰지 날고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치 둑이 터지듯 다른 수많은 문제가 비틀즈를 위협하고 있었다... 절망에 빠졌던 매카트니는 어느 날 밤 꿈에서 어머니 메리를 만났다. 의기소침해 있는 아들에게 그녀는 '다 괜찮아질 거야. 그러니까 그냥 내버려 둬(so just let it be)'라며 위로했다. 꿈속 어머니로부터 큰 위안을 받은 매카트니는 깨어나자마자 곧바로 곡을 썼다."
- [명곡의 재발견], 이무영, <Let It Be>

고등학교 입학했을 때인가. 라디오에서 배철수나 김광한의 팝송 프로그램은 거의 들은 적 없이 우리 가요만 듣던 나는 아주 우연히 스무살 둘째 누나가 길보드로 구입한 카세트 테잎을 발견했다. '비틀즈'의 'Greatest Hit'곡들을 섞어놓은 '짝퉁' 테잎. 누나에게 무슨 노래인가 물었고 누나는 <Let It Be>와 관련한 예의 사연을 들려주면서 영어를 좋아했던 나를 위해 가사도 해석해 주었다. 노래의 'Mother Mary'는 폴 매카트니의 돌아가신 어머니일 수도 있고, '매리 수녀'일 수도 있어 기독교적 '신의 계시'였을 수도 있다는.
그 때부터 나는 '비틀즈'만 들었다. 정품은 아니라도 용돈이 되는대로 레코드점에서 그들의 앨범을 구입했고 관련 이야기가 있으면 주워듣고 수집했다.

나는 존 레넌보다 폴 매카트니가 더 좋았다. <Let It Be>는 물론, 23세에 꿈 속에서 잠시 듣고 지은 명곡 <Yesterday>를 비롯하여 <Hey Jude>, <The Long and Winding Road> 등의 좋은 노래는 다 폴이 만들었는데, 아주 잠깐 번득이는 조언을 해준 존 레넌은 거의 대부분의 노래의 작사/작곡에 숟가락을 얹었다. 예를 들면, 꿈 속 멜로디를 기억하여 5분만에 만든 <Yesterday>의 곡에 가사를 못 짓던 폴에게 "한 단어로 시작"하라는 조언을 하고 녹음할 때도 도와주지 않는 식이다. 나는 존이 '예술가적 감성'으로 2살 어린 작곡 '노동자' 폴을 '착취'했다고 줄곧 생각했다.
아마도, 스무살에 우연히 '과학적 사회주의'를 알게 되었을 때, 줄곧 '연구'만 하던 칼 마르크스보다 사상의 '전장'에서 치열하게 싸우던 그의 동지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더 좋아한 이유도 '비틀즈' 때문이었으리라.

그 후로도 오랫동안, 비틀즈의 해체를 막기 위해 끝까지 고군분투했던 폴 매카트니의 노력은 나의 생각을 더욱 굳혔고, 맴버 중 가장 먼저 탈주한 존 레넌은 비틀즈에서 제일 싫은 가수가 되어 <Imagine> 같은 그의 '불후의 명곡'도 성인이 되어서야 듣게 되었다.


"몽상가 레논은 모든 신앙과 체제 그리고 물질만능주의가 사라질 때 유토피아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상 사람 모두가 하나의 나라, 하나의 세상, 하나의 인류라고 믿었다. 그것이 그의 '신앙'이었다. 레논은 기본적으로 무신론자였고, 아나키스트였으며 반자본주의자였다."
- [명곡의 재발견], 이무영, <Imagine>.

16세의 존 레넌과 14세의 폴 매카트니가 영국 리버풀에서 그룹을 결성하여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을 만나 <Love Me Do>로 데뷔한 해가 1962년이고, 2년만에 대서양을 건너 '대중가요'의 땅 미국과 전세계를 점령하다가 해체된 해가 1970년이다. 전형적인 '노동자 도시' 리버풀에서 노동자들의 아들들이 대중가요 역사에서 '전설'이 되었고, 존 레넌은 '무정부주의'적 신념으로 천주교도 폴 매카트니의 '기독교'적 노래 <Let It Be>를 경멸했다고 하나 아마도 그 노래의 저작권은 나눠먹고 있을 것이다.

<Let It Be>가 나온지 1년 후인 1971년에 존 레넌은 솔로 2집으로 <Imagine>을 내놓는다. 비틀즈를 흔들고 동료들을 경멸하며 "모두가 나를 몽상가로 부르지만, 나만이 꾸는 꿈은 아니다(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라고 외치던 이 '무정주주의자 존'은 결국 미국에서 추방당하지 않으려고 미국 영주권에 목을 매던 속물이었다.

비틀즈만 알던 나는 고등학교 3학년때 한 방을 쓰던 친구 효종이로부터 '아바', '카펜터즈' , '퀸' 같은 전설의 그룹들을 비롯하여 '데비 깁슨', '글렌 메데이로스', '카일리 미노그' 등 1990년대 초 팝 '아이돌'에 대해 배웠고, 고등학교 한때 영어를 좋아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족보'는 모른 채 '올드팝'을 항상 듣고 다닌다.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가 쓴 <Bohemian Rhapsody>의 가사는 곡의 구성만큼이나 휘황찬란하며 동시에 애매모호하다. 불쌍한 한 소년의 얘기인 듯 서정적으로 전개되던 가사는 갑자기 'Mama, just killed a man'이라는 무시무시한 내용으로 변모한다.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누구를, 왜 죽였단 말인가?... <Bohemian Rhapsody> 발표 얼마 후 머큐리는 그녀(애인 매리 오스틴)에게 자신의 성정체성(동성애)을 고백했고, 관계는 그걸로 끝이었다...  가사 속에서 머큐리가 총으로 쏘아 죽인 사람은 과거 이성애자로서 매리 오스틴을 사랑했던 자신이다. 노래 속에서 계속 그가 매달리는 엄마는 매리다."
- [명곡의 재발견], 이무영, <Bohemian Rhapsody>


소설도 쓰고 영화도 만드는 이무영은 1990년대에 팝송을 소개하는 일도 했다는데 2015년에 [명곡의 재발견]을 써서 올드팝 100곡의 배경과 가사를 소개한다. 
2018년에는 KBS 라디오 PD 정일서가 역시 100여 곡에 대한 본인의 추억을 섞어 [그 시절, 우리들의 팝송]으로 소개한다.

대중가요에 좋아하는 '순위'란 보편적일 수 없다. 나의 경우 그룹은 '비틀즈', '아바', '카펜터즈', '에어 서플라이', '앨런 파슨즈 프로젝트', '카멜' 순으로, 가수는 '글렌 메데이로스', '데비 깁슨', '빌리 조엘' 등으로 개인적 '순위'를 매기는데, '비틀즈' 빼고는 어린 시절 친구 효종이가 알려준 거의 그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으며, 매일 듣는 CBS 음악FM 팝송 프로그램 신청곡도 이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팝송 좋아하는 나도 그 관련 책을 알지는 못하고 살았다. 그리고 대중가요를 듣는데 그런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개인적 '순위'의 가수와 노래가 없어 아쉽기는 하나 '올드팝'의 '족보'나 '흐름'을 알고 싶다면 위 두 책을 추천한다.

***

1. [명곡의 재발견], 이무영, <score>, 2015.
2. [그 시절, 우리들의 팝송], 정일서, <오픈하우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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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곡의 재발견 - 영어 해석으로 보는 팝송이야기 100
이무영 지음 / 태림스코어(스코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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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개인적인 팝송 '순위'
- [명곡의 재발견], 이무영, <score>, 2015.
- [그 시절, 우리들의 팝송], 정일서, <오픈하우스>, 2018.



"비틀즈(the Beatles)의 운명이 종말을 향해 치달을 무렵, 홀연히 아들의 꿈에 나타난 메리(Mary)는 그에게 삶의 지혜와 위로를 전한다. [Let It Be]의 노랫말을 통해 메리는 아들 매카트니에게 너무 주어진 상황을 바꾸려고 애쓰지 날고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치 둑이 터지듯 다른 수많은 문제가 비틀즈를 위협하고 있었다... 절망에 빠졌던 매카트니는 어느 날 밤 꿈에서 어머니 메리를 만났다. 의기소침해 있는 아들에게 그녀는 '다 괜찮아질 거야. 그러니까 그냥 내버려 둬(so just let it be)'라며 위로했다. 꿈속 어머니로부터 큰 위안을 받은 매카트니는 깨어나자마자 곧바로 곡을 썼다."
- [명곡의 재발견], 이무영, <Let It Be>

고등학교 입학했을 때인가. 라디오에서 배철수나 김광한의 팝송 프로그램은 거의 들은 적 없이 우리 가요만 듣던 나는 아주 우연히 스무살 둘째 누나가 길보드로 구입한 카세트 테잎을 발견했다. '비틀즈'의 'Greatest Hit'곡들을 섞어놓은 '짝퉁' 테잎. 누나에게 무슨 노래인가 물었고 누나는 <Let It Be>와 관련한 예의 사연을 들려주면서 영어를 좋아했던 나를 위해 가사도 해석해 주었다. 노래의 'Mother Mary'는 폴 매카트니의 돌아가신 어머니일 수도 있고, '매리 수녀'일 수도 있어 기독교적 '신의 계시'였을 수도 있다는.
그 때부터 나는 '비틀즈'만 들었다. 정품은 아니라도 용돈이 되는대로 레코드점에서 그들의 앨범을 구입했고 관련 이야기가 있으면 주워듣고 수집했다.

나는 존 레넌보다 폴 매카트니가 더 좋았다. <Let It Be>는 물론, 23세에 꿈 속에서 잠시 듣고 지은 명곡 <Yesterday>를 비롯하여 <Hey Jude>, <The Long and Winding Road> 등의 좋은 노래는 다 폴이 만들었는데, 아주 잠깐 번득이는 조언을 해준 존 레넌은 거의 대부분의 노래의 작사/작곡에 숟가락을 얹었다. 예를 들면, 꿈 속 멜로디를 기억하여 5분만에 만든 <Yesterday>의 곡에 가사를 못 짓던 폴에게 "한 단어로 시작"하라는 조언을 하고 녹음할 때도 도와주지 않는 식이다. 나는 존이 '예술가적 감성'으로 2살 어린 작곡 '노동자' 폴을 '착취'했다고 줄곧 생각했다.
아마도, 스무살에 우연히 '과학적 사회주의'를 알게 되었을 때, 줄곧 '연구'만 하던 칼 마르크스보다 사상의 '전장'에서 치열하게 싸우던 그의 동지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더 좋아한 이유도 '비틀즈' 때문이었으리라.

그 후로도 오랫동안, 비틀즈의 해체를 막기 위해 끝까지 고군분투했던 폴 매카트니의 노력은 나의 생각을 더욱 굳혔고, 맴버 중 가장 먼저 탈주한 존 레넌은 비틀즈에서 제일 싫은 가수가 되어 <Imagine> 같은 그의 '불후의 명곡'도 성인이 되어서야 듣게 되었다.


"몽상가 레논은 모든 신앙과 체제 그리고 물질만능주의가 사라질 때 유토피아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상 사람 모두가 하나의 나라, 하나의 세상, 하나의 인류라고 믿었다. 그것이 그의 '신앙'이었다. 레논은 기본적으로 무신론자였고, 아나키스트였으며 반자본주의자였다."
- [명곡의 재발견], 이무영, <Imagine>.

16세의 존 레넌과 14세의 폴 매카트니가 영국 리버풀에서 그룹을 결성하여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을 만나 <Love Me Do>로 데뷔한 해가 1962년이고, 2년만에 대서양을 건너 '대중가요'의 땅 미국과 전세계를 점령하다가 해체된 해가 1970년이다. 전형적인 '노동자 도시' 리버풀에서 노동자들의 아들들이 대중가요 역사에서 '전설'이 되었고, 존 레넌은 '무정부주의'적 신념으로 천주교도 폴 매카트니의 '기독교'적 노래 <Let It Be>를 경멸했다고 하나 아마도 그 노래의 저작권은 나눠먹고 있을 것이다.

<Let It Be>가 나온지 1년 후인 1971년에 존 레넌은 솔로 2집으로 <Imagine>을 내놓는다. 비틀즈를 흔들고 동료들을 경멸하며 "모두가 나를 몽상가로 부르지만, 나만이 꾸는 꿈은 아니다(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라고 외치던 이 '무정주주의자 존'은 결국 미국에서 추방당하지 않으려고 미국 영주권에 목을 매던 속물이었다.

비틀즈만 알던 나는 고등학교 3학년때 한 방을 쓰던 친구 효종이로부터 '아바', '카펜터즈' , '퀸' 같은 전설의 그룹들을 비롯하여 '데비 깁슨', '글렌 메데이로스', '카일리 미노그' 등 1990년대 초 팝 '아이돌'에 대해 배웠고, 고등학교 한때 영어를 좋아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족보'는 모른 채 '올드팝'을 항상 듣고 다닌다.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가 쓴 <Bohemian Rhapsody>의 가사는 곡의 구성만큼이나 휘황찬란하며 동시에 애매모호하다. 불쌍한 한 소년의 얘기인 듯 서정적으로 전개되던 가사는 갑자기 'Mama, just killed a man'이라는 무시무시한 내용으로 변모한다.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누구를, 왜 죽였단 말인가?... <Bohemian Rhapsody> 발표 얼마 후 머큐리는 그녀(애인 매리 오스틴)에게 자신의 성정체성(동성애)을 고백했고, 관계는 그걸로 끝이었다...  가사 속에서 머큐리가 총으로 쏘아 죽인 사람은 과거 이성애자로서 매리 오스틴을 사랑했던 자신이다. 노래 속에서 계속 그가 매달리는 엄마는 매리다."
- [명곡의 재발견], 이무영, <Bohemian Rhapsody>


소설도 쓰고 영화도 만드는 이무영은 1990년대에 팝송을 소개하는 일도 했다는데 2015년에 [명곡의 재발견]을 써서 올드팝 100곡의 배경과 가사를 소개한다. 
2018년에는 KBS 라디오 PD 정일서가 역시 100여 곡에 대한 본인의 추억을 섞어 [그 시절, 우리들의 팝송]으로 소개한다.

대중가요에 좋아하는 '순위'란 보편적일 수 없다. 나의 경우 그룹은 '비틀즈', '아바', '카펜터즈', '에어 서플라이', '앨런 파슨즈 프로젝트', '카멜' 순으로, 가수는 '글렌 메데이로스', '데비 깁슨', '빌리 조엘' 등으로 개인적 '순위'를 매기는데, '비틀즈' 빼고는 어린 시절 친구 효종이가 알려준 거의 그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으며, 매일 듣는 CBS 음악FM 팝송 프로그램 신청곡도 이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팝송 좋아하는 나도 그 관련 책을 알지는 못하고 살았다. 그리고 대중가요를 듣는데 그런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개인적 '순위'의 가수와 노래가 없어 아쉽기는 하나 '올드팝'의 '족보'나 '흐름'을 알고 싶다면 위 두 책을 추천한다.

***

1. [명곡의 재발견], 이무영, <score>, 2015.
2. [그 시절, 우리들의 팝송], 정일서, <오픈하우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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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를 위하여
루이 알튀세르 지음, 서관모 옮김 / 후마니타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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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서의 '문학비평'과 '이데올로기'로서의 '문학' - '작품'은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된다
-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1966), 피에르 마슈레, 배영달 옮김, <백의>, 1994.
- [마르크스를 위하여](1965), 루이 알튀세르, 고길환/이화숙 옮김, <백의>, 1990.



"작가는 질문을 제기하지만, 그것에 답하지 않는다."
- 프리드리히 엥겔스.


1965년,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마르크스를 위하여]라는 저작을 통해,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관점에서 '과학'과 '이데올로기'를 구분하였다. '대상'을 가지고 '지식'을 생산하는 '과학'과 말 그대로의 '허위의식'이지만 물질적 힘을 지니는 '이데올로기'를 구분하는 것이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인 '철학'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듬해인 1966년, 프랑스 구조주의 문학비평가 피에르 마슈레는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라는 저서를 통해, 이러한 알튀세르의 작업을 '문학'의 영역으로 심화하여 '과학적 비평'을 정초하면서 하나의 '과학'으로서 '문학비평'과 '이데올로기'의 관계를 밝히려 한다.
마슈레는 문학 자체가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제도로서 존재하는 한, '문학비평'은 '이데올로기'와 단절하고 '과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문학생산이론'은 '과학'적 '문학비평'에서 출발한다.


"적어도 '(문학)비평'이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비평'은 항상 '부정'으로부터 시작하며, '비평'의 기본적 행위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작품에 대한) '거부의 행위'이다. 그러나 '비평'은 인식을 불러일으키기를 기대하며, 그리고 '비평'이 행하는 권리는 결정적인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비평'은 '허위(이데올로기)'를 폭로함과 동시에 '진실(과학적 진리)'을 말하고자 한다... 읽는 것... 그것은 바로 (이데올로기로서 작품의) '파괴'라는 '부정'적 의미에서 비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읽기'에 의해 작품은 '파괴'된다."
- 피에르 마슈레,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 <1부. 몇 가지 기본적 개념들>, 1966.

사회구성체의 결정적 '최종심급'으로서 경제적 토대와 상호 영향을 미치는 상부구조로서 '이데올로기'의 영역에 속하는 '문학'은 하나의 '과학'이 되어야 하는데, 이 '문학'을 인식하는 것은 '해석'이 아니라 '설명'하는 것이다. 
'설명'하는 것은 마슈레에 의하면, "작품을 결정짓지만 어떤 의미로 확실히 귀결되지 않는 필요성을 알아보는 것"(같은책)으로서 "작품의 필요성은 그 의미의 '다양성'에 의거"하며 "작품을 '설명'하는 것은 이러한 다양성의 원리를 인정하고 '구분'하는 것이다."(같은책)

그리하여, 문학비평을 통해 "문학작품을 아는 것은 그것을 '분해'하고 그 '허구'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고 그것의 '침묵'의 의미를 알리는 것이다."(같은책)
따라서, '이데올로기'는 "작품의 그물 속에서 파악되기 때문에, 하나의 새로운 지위를 받아들이며, 그것의 직접성은 변형"되어 결국 "과거의 환상으로부터 '허구'적인 것이 된다."(같은책)
문학작품을 '설명'하려는 충동은 문학 내의 실제적 기능을 내포하는 환상의 메커니즘으로서의 언어 사용인 '이미지' 그 자체와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미지'에 위치를 부여하는데, 개개의 '이미지'를 증가시키고 새겨놓은 이 작업은 "질서의 탐구"로서 '과학'적 작업이다.
또한, 텍스트를 '창작'하는 것은 이 "질서 탐구"의 "끊임없는 재파악"이다.


"작품은 어떤 작업의 산물이자 기술의 산물이다. 그러나 모든 기술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술사나 흥행사의 일이 아니라 '노동자'의 일이다. 이 노동자의 힘은 '무(無)'로부터 완전히 선택된 형식을 생겨나게 하는 전혀 기적같은 것이 아니다... 텍스트 '생산자'로서의 '작가'는 특히 그가 가지고 일하는 재료들을 만들지 못한다."
- 피에르 마슈레,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 <1부. 몇 가지 기본적 개념들>, 1966.

'문학생산'은 '무(無)'로부터 '유(有)'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재료'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는 '재료'들을 배열하고 '질서'를 부여하면서 생산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문학생산'의 조건은 "처음에 주어진 것, 즉 말의 경험적 의미에서 원인이 아니라 모든 작품을 측정할 수 있는 '합리성'의 원리"인데, "작품의 조건들을 인식하는 것은 그 구성의 실제 과정을 강조하는 것, 즉 실제로 다양한 요소들이 어떻게 작품을 구성하고 작품에 '일관성'을 부여하는가를 보여주는 것"(같은책)이다.

작가는 언어와 문자를 통해 구체적이고 역사적으로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데,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사용'을 하는 '작가의 담론'은 "이론적 언표를 모방"하고 "그것의 기준을 반복"하며, "이 담론은 역시 '이데올로기'의 언어인 일상어를 모방"하고 "이 끊임없는 대조 속에서 언어의 실제 사용들을 혼합하는 문학은 마침내 언어의 '진실'을 드러내고 만다"(같은책). 
마슈레는 작가가 "설사 언어를 만들어내지는 못하더라도, 언어로 실험하는 문학작품은 '지식'의 '유사물'인 동시에 일상적 '이데올로기'의 기묘한 모방"(같은책)이다.

따라서, '문학'은 '이데올로기'이고 '작가'는 언어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사용하여 현실을 드러내며, '문학비평'은 이러한 '문학'을 '설명'하면서 현실에 대한 '지식'을 생산하는 '과학'이 된다.


"작가는 어떤 시대에 연결되는가라는 질문은... 방법적으로 '과학'적 비평의 최초의 질문이다."
- 피에르 마슈레,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 <2부. 톨스토이 비평가, 레닌>, 1966.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러시아 소설가 톨스토이를 '비평'하면서 "문학작품은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하는데, 마슈레는 톨스토이에 대한 '문학비평가' 레닌의 작업을 조명한다. 
'작가'는 그 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조망하지는 못하는데, 이론가로서 '비평가'는 이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과학자'이다.
'과학'은 '이데올로기'를 폐기하고 작품은 '이데올로기'를 이용하면서 동시에 거부하는데 '이데올로기'의 비체계적인 '의미작용'에 대한 다양한 독서를 제안하며 이것들을 언어의 '기호'들로 결합해낸다. '과학'으로서 '비평'의 역할은 "이 기호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이다.
'문학작품'이라는 '거울'을 통해 '대상'은 완성되면서 '파편화'되는데, 문학적 '이미지'들은 이 '찢어짐' 속에서 나온다. '총체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개별적' 문학작품에 '과학'적 문학비평은 그 '보편성'을 부여한다.

"... 레닌은 문학작품이 허망한 '총체성'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필연적이고 실제적인 구분 속에서 단지 연구될 수 있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 피에르 마슈레, 같은책, 같은 부분.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 <3부>는 '몇 가지 작품들'에 대한 논고인데, '과학소설가' 쥘 베른느의 '불완전한 이야기'도 그 중 하나이다.

"쥘 베른느의 '문학적 실패', 이 시도의 취약함은 바로 그의 책들의 '소재'를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베른느의 화해의 모든 이미지가 어떤 갈등의 묘사로 귀착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 피에르 마슈레, [문학생상이론을 위하여], <3부. 쥘 베른느 혹은 불완전한 이야기>, 1966.

자본주의 체제에서 그 어떤 '기술적 진보'도 현실의 '계급투쟁'을 담지 않는 한, '미래'를 생각할 수도, 재현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과학기술' 발전을 '소재'로 하는 프랑스 '과학소설가' 쥘 베른느는 역설적이게도 결코 '과학'적이지 못하다.
엥겔스가 발자크 소설에서 부르주아계급의 '고상한 현실'을 그려내면서 그들의 '추락한 본질'을 의도치 않게 드러낸 것과 같은 '리얼리즘'적 '이중성'을 발견했듯, '문학비평'은 '문학작품'의 '이중성'을 설명해야 하는데, 쥘 베른느는 '과학기술'의 이름으로 현실의 '계급투쟁'을 탈색함으로써 그 '이중성'을 보여주며, 그로 인해 그의 이야기는 "불완전한 이야기"로 머문다.


"... 예술은 (부르주아 휴머니즘적) '인간의 활동'이 아니라, (어떤 상황이나 체계의 요소로서의) '생산자'의 활동이다."
- 피에르 마슈레,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 <3부>, 1966.

'문학작품'은 부르주아적으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현실을 토대로 '생산'되는 것이다.

*** 

1.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1966), 피에르 마슈레, 배영달 옮김, <백의>, 1994.
2. [마르크스를 위하여], 루이 알튀세르, 고길환/이화숙 옮김, <백의>,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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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생산의 이론을 위하여 프리즘 총서 16
피에르 마슈레 지음, 윤진 옮김 / 그린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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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된다
-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1966), 피에르 마슈레, 배영달 옮김, <백의>, 1994.



"작가는 질문을 제기하지만, 그것에 답하지 않는다."
- 프리드리히 엥겔스.


1965년,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마르크스를 위하여]라는 저작을 통해,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관점에서 '과학'과 '이데올로기'를 구분하였다. '대상'을 가지고 '지식'을 생산하는 '과학'과 말 그대로의 '허위의식'이지만 물질적 힘을 지니는 '이데올로기'를 구분하는 것이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인 '철학'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듬해인 1966년, 프랑스 구조주의 문학비평가 피에르 마슈레는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라는 저서를 통해, 이러한 알튀세르의 작업을 '문학'의 영역으로 심화하여 '과학적 비평'을 정초하면서 하나의 '과학'으로서 '문학비평'과 '이데올로기'의 관계를 밝히려 한다.
마슈레는 문학 자체가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제도로서 존재하는 한, '문학비평'은 '이데올로기'와 단절하고 '과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문학생산이론'은 '과학'적 '문학비평'에서 출발한다.


"적어도 '(문학)비평'이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비평'은 항상 '부정'으로부터 시작하며, '비평'의 기본적 행위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작품에 대한) '거부의 행위'이다. 그러나 '비평'은 인식을 불러일으키기를 기대하며, 그리고 '비평'이 행하는 권리는 결정적인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비평'은 '허위(이데올로기)'를 폭로함과 동시에 '진실(과학적 진리)'을 말하고자 한다... 읽는 것... 그것은 바로 (이데올로기로서 작품의) '파괴'라는 '부정'적 의미에서 비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읽기'에 의해 작품은 '파괴'된다."
- 피에르 마슈레,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 <1부. 몇 가지 기본적 개념들>, 1966.

사회구성체의 결정적 '최종심급'으로서 경제적 토대와 상호 영향을 미치는 상부구조로서 '이데올로기'의 영역에 속하는 '문학'은 하나의 '과학'이 되어야 하는데, 이 '문학'을 인식하는 것은 '해석'이 아니라 '설명'하는 것이다. 
'설명'하는 것은 마슈레에 의하면, "작품을 결정짓지만 어떤 의미로 확실히 귀결되지 않는 필요성을 알아보는 것"(같은책)으로서 "작품의 필요성은 그 의미의 '다양성'에 의거"하며 "작품을 '설명'하는 것은 이러한 다양성의 원리를 인정하고 '구분'하는 것이다."(같은책)

그리하여, 문학비평을 통해 "문학작품을 아는 것은 그것을 '분해'하고 그 '허구'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고 그것의 '침묵'의 의미를 알리는 것이다."(같은책)
따라서, '이데올로기'는 "작품의 그물 속에서 파악되기 때문에, 하나의 새로운 지위를 받아들이며, 그것의 직접성은 변형"되어 결국 "과거의 환상으로부터 '허구'적인 것이 된다."(같은책)
문학작품을 '설명'하려는 충동은 문학 내의 실제적 기능을 내포하는 환상의 메커니즘으로서의 언어 사용인 '이미지' 그 자체와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미지'에 위치를 부여하는데, 개개의 '이미지'를 증가시키고 새겨놓은 이 작업은 "질서의 탐구"로서 '과학'적 작업이다.
또한, 텍스트를 '창작'하는 것은 이 "질서 탐구"의 "끊임없는 재파악"이다.


"작품은 어떤 작업의 산물이자 기술의 산물이다. 그러나 모든 기술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술사나 흥행사의 일이 아니라 '노동자'의 일이다. 이 노동자의 힘은 '무(無)'로부터 완전히 선택된 형식을 생겨나게 하는 전혀 기적같은 것이 아니다... 텍스트 '생산자'로서의 '작가'는 특히 그가 가지고 일하는 재료들을 만들지 못한다."
- 피에르 마슈레,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 <1부. 몇 가지 기본적 개념들>, 1966.

'문학생산'은 '무(無)'로부터 '유(有)'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재료'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는 '재료'들을 배열하고 '질서'를 부여하면서 생산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문학생산'의 조건은 "처음에 주어진 것, 즉 말의 경험적 의미에서 원인이 아니라 모든 작품을 측정할 수 있는 '합리성'의 원리"인데, "작품의 조건들을 인식하는 것은 그 구성의 실제 과정을 강조하는 것, 즉 실제로 다양한 요소들이 어떻게 작품을 구성하고 작품에 '일관성'을 부여하는가를 보여주는 것"(같은책)이다.

작가는 언어와 문자를 통해 구체적이고 역사적으로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데,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사용'을 하는 '작가의 담론'은 "이론적 언표를 모방"하고 "그것의 기준을 반복"하며, "이 담론은 역시 '이데올로기'의 언어인 일상어를 모방"하고 "이 끊임없는 대조 속에서 언어의 실제 사용들을 혼합하는 문학은 마침내 언어의 '진실'을 드러내고 만다"(같은책). 
마슈레는 작가가 "설사 언어를 만들어내지는 못하더라도, 언어로 실험하는 문학작품은 '지식'의 '유사물'인 동시에 일상적 '이데올로기'의 기묘한 모방"(같은책)이다.

따라서, '문학'은 '이데올로기'이고 '작가'는 언어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사용하여 현실을 드러내며, '문학비평'은 이러한 '문학'을 '설명'하면서 현실에 대한 '지식'을 생산하는 '과학'이 된다.


"작가는 어떤 시대에 연결되는가라는 질문은... 방법적으로 '과학'적 비평의 최초의 질문이다."
- 피에르 마슈레,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 <2부. 톨스토이 비평가, 레닌>, 1966.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러시아 소설가 톨스토이를 '비평'하면서 "문학작품은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하는데, 마슈레는 톨스토이에 대한 '문학비평가' 레닌의 작업을 조명한다. 
'작가'는 그 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조망하지는 못하는데, 이론가로서 '비평가'는 이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과학자'이다.
'과학'은 '이데올로기'를 폐기하고 작품은 '이데올로기'를 이용하면서 동시에 거부하는데 '이데올로기'의 비체계적인 '의미작용'에 대한 다양한 독서를 제안하며 이것들을 언어의 '기호'들로 결합해낸다. '과학'으로서 '비평'의 역할은 "이 기호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이다.
'문학작품'이라는 '거울'을 통해 '대상'은 완성되면서 '파편화'되는데, 문학적 '이미지'들은 이 '찢어짐' 속에서 나온다. '총체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개별적' 문학작품에 '과학'적 문학비평은 그 '보편성'을 부여한다.

"... 레닌은 문학작품이 허망한 '총체성'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필연적이고 실제적인 구분 속에서 단지 연구될 수 있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 피에르 마슈레, 같은책, 같은 부분.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 <3부>는 '몇 가지 작품들'에 대한 논고인데, '과학소설가' 쥘 베른느의 '불완전한 이야기'도 그 중 하나이다.

"쥘 베른느의 '문학적 실패', 이 시도의 취약함은 바로 그의 책들의 '소재'를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베른느의 화해의 모든 이미지가 어떤 갈등의 묘사로 귀착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 피에르 마슈레, [문학생상이론을 위하여], <3부. 쥘 베른느 혹은 불완전한 이야기>, 1966.

자본주의 체제에서 그 어떤 '기술적 진보'도 현실의 '계급투쟁'을 담지 않는 한, '미래'를 생각할 수도, 재현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과학기술' 발전을 '소재'로 하는 프랑스 '과학소설가' 쥘 베른느는 역설적이게도 결코 '과학'적이지 못하다.
엥겔스가 발자크 소설에서 부르주아계급의 '고상한 현실'을 그려내면서 그들의 '추락한 본질'을 의도치 않게 드러낸 것과 같은 '리얼리즘'적 '이중성'을 발견했듯, '문학비평'은 '문학작품'의 '이중성'을 설명해야 하는데, 쥘 베른느는 '과학기술'의 이름으로 현실의 '계급투쟁'을 탈색함으로써 그 '이중성'을 보여주며, 그로 인해 그의 이야기는 "불완전한 이야기"로 머문다.


"... 예술은 (부르주아 휴머니즘적) '인간의 활동'이 아니라, (어떤 상황이나 체계의 요소로서의) '생산자'의 활동이다."
- 피에르 마슈레,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 <3부>, 1966.

'문학작품'은 부르주아적으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현실을 토대로 '생산'되는 것이다.

*** 

1.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1966), 피에르 마슈레, 배영달 옮김, <백의>, 1994.
2. [마르크스를 위하여], 루이 알튀세르, 고길환/이화숙 옮김, <백의>,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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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화연구
김윤식 지음 / 문학사상사 / 198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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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의 점령(占領)'과 문화예술인 '임화(林和)'
- [임화(林和) 연구], 김윤식, <문학사상사>, 1989.
 


"사람은 누구이든지 '제1, 제2의 점령' 범위 내에서는 자유인 상태에 있다. 즉 말하자면 앞으로 걸을 수도 있고 또한 옆으로도 누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다음 '제3의 점령'은 용이히 자유로운 상태에 나아갈 수가 없었다. 땅에서 조금이라도 높이 뛰어오르려 해도 결국 지구의 인력에 저지되어 얼마 뛸 수 없다. 그러나 당세기에 있어 비행기의 발명은 결국 인류를 '제3의 점령'에서 비교적 완전히 탈출시키고 말았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그칠 바를 몰랐다. '제4의 점령'에다 자유해방을 구하여 결국 '예술'을 낳아놓고 말았다."
- 임화(林和), [근대문예잡감], <매일신보>, 1926. 5. 23.
 

'제1의 점령'은 점(點)이다. 이 공간 아닌 공간에서는 그 어떤 것도 옴짝달싹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자유롭다. '자유'라는 실체적 개념조차도 허락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제2의 점령'은 선(線)이다. 이 공간 비슷한 공간에서는 단 두 가지의 방향밖에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자유롭다. 나아갈 곳이 정해진 바 '자유'라는 말조차도 그렇게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제3의 점령'은 면(面)이다. 공간으로서의 그야말로 이 공간은 나아갈 바가 자유롭게도 많은 현실이다. 그러나 자유롭지 못하다. 현실이란 '자유'라는 어휘 자체도 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가 없음에 자유롭고 정해진 '자유'이기에 자유로우며 자유롭기에 자유롭지 않은 것 투성이다, 온통.
그러나 아직 하나가 더 남아있다.
'제4의 점령'은 식민지 조선의 시인, 아니 '문화예술인' 임화(林和)에게는 '예술'의 영역에서 자유로이 열린다.


임화(1908~1953), 본명은 임인식(林仁植)이며 보성중학교를 중퇴한 이듬해인 1926년에 위와 같이 '문화예술'에서 '제4의 점령(영역)'을 발견하면서 시와 문학평론을 시작한 인물이다. 그 해 그의 나이 18세였다.
1953년 북조선인민공화국에서 '남로당파' 박헌영 등과 함께 '미제 간첩'의 죄명으로 처형당하기 전까지 임화는 시인, 문학평론가, 영화배우 등의 '문화예술인'으로 살았다. 그것도 사회참여적, 실천적 문예인으로.


"(시인 이상이 취한) 유클리드 기하학은 교과서이다. 이 교과서를 버린 임화에게는 아무런 방패가 없었다. 기댈 곳 없음을 특질로 하는 가출 모티브는 근거없는 것, 무지개 같은 것, '제4의 점령'을 향한 줄달음이 있을 뿐인데, 그 때문에 임화는 그 누구보다도 파괴적이자 현실부정적일 수 있었다."
- [임화(林和) 연구], 김윤식, 1989.


1927년은 '카프(KAPF)'의 '1차 방향전환'의 해였는데, '조선 프롤레타리아 경향문학단체'인 '카프'가 단순한 '문학운동'을 넘어 사회변혁적 '참여문학' 단체로의 전환을 선언한다. 그 내용은 '볼셰비키화' 제창이며, 1925년부터 본격 시작된 '조선공산당' 건설과 함께한다는 의미였다.
'임화(林和)'라는 필명은 1927년 <조선일보>에 '무산계급 전망'을 주제로 한 평론에서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임인식의 최초 필명은 '성아(星兒)였고, 초기 경향은 시인 이상과 같이 '다다이즘', '미래파' 등의 '제4의 영역'으로서 '문학'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임화가 1927년 '카프'의 목적의식적 '1차 방향전환'을 목도한 후 1928년 '카프'의 초기 지도자 회월 박영희 등과 교류하고 1930년 동경에서 '무산자파'의 영향 아래 다시 1932년 조선에서 '카프'의 서기장이 되기까지의 궤적은 이전 '모더니즘'적 요소를 버리고 실천적 '경향파' 문학인으로서 '카프'의 '볼셰비키화'를 주도하는 과정이었다.

1929년 임화의 대표작인 단편 서사시, [우리 옵바와 화로], [네 거리의 순이] 등은 '카프' 지도자 중 하나인 팔봉 김기진에 의하면,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중화의 일환"이었으며, "임화 초기 시작의 배경이던 '다다이즘', '미래파' 등의 요소가 프롤레타리아 시에 '내면의 깊이'와 '외면의 넓이'를 획득하게 했다"면서 이것이 바로 "진지한 의미의 '모더니즘'적 기법"이라고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는 [임화 연구]에서 평가한다.
당시 '모더니즘'이란 기존 관성에 대한 반발이므로, 초기 '성아' 임인식이든 이후의 '임화'든 결국 '모더니즘'의 영역에 속한다.


"'운동으로서의 문학' 개념에서 볼 때 중요한 것은 조직론(이론)과 창작(실천)이겠는데, 이 경우 실천으로서의 창작은 부분적, 파편적인 것이 아니고 총체적, 변증법적인 것이다. 따라서 시로서는 이를 감당할 수 없다. 임화가 조직이 해체된 1935년 이후에도 계속 '소설론' 및 창작평에 주력한 것은 이로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설론'에서 문학사랄까 '사적유물론'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이지 시로서는 그러한 문제가 결코 커버될 수 없기 때문이다."
- [임화 연구], 김윤식, 1989.

1935년 '카프'는 공식적으로 해산된다.
1930년대와 1940년대 '카프' 잔당들의 내면 풍경은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임화의 노선으로, 이데올로기와 세계관을 우위에 둔 "작가의 창작과 세계관과의 일원론적 시각"이고(주인공-성격-사상),
둘째는 김남천의 노선인 "정치적 실천에 기인한 작가에 의해 보충되는 창작"으로서 "창작과 세계관의 분리" 입장이며(세태-사실-생활),
셋째는 이기영의 노선, 즉 "단순한 이론투쟁 수준이 아닌 현실적인 창작적 실천"으로서 "창작이 그대로 실천 자체"라는 것이다.

임화의 노선은 "문학과 삶, 예술과 정치의 일원론"은 이른바 '변증법적 사고체계'를 방법론으로 하는데, '가출아'이자 '문제아'인 임화가 1935년 [조선신문학사론 서설]을 통해 관철하고자 한 그의 주된 "사상적 테마"였다.
임화의 문학사에 대한 '변증법적 해석'에 의하면, "전향한 박영희의 '이원론'이나 최서해식의 '체험론'은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발전단계의 일환'으로 수용될 수 있는 처지"(서설)라는 것이다.


"... (초기) 이광수 문학은 미숙하나마 한일합방에서 3.1운동 직전까지의 한국(조선)인의 개인과 사회의 합일이라는 사회적인 의식을 문학으로 전위시켜 보여준 것이며, 3.1운동의 실패로 말미암아, 개인과 사회의 관계란 분리되어, 박영희적 관념의 가닥과 최서해적 체험의 가닥으로 분화되었던 것인데, 이 두 가닥을 종합하는 사회의식의 과정에 대응되는 것이 이른바 '신경향파' 문학이었던 것이다."
- [임화 연구], 김윤식, 1989.


'카프' 해산 이후 위와 같은 '창작과 이념의 변증법적 통일'의 관점에서 임화는 '조선 신문학사'를 3단계로 정리하는데, [임화 연구]에 의하면 이는 "주체 재건의 과정"이다.

1단계 [조선문학사론 서설](1935.10~11)에서는 '카프' 해산 이후 그 문학사적 '족보' 작성이고,
2단계 [개설 신문학사](1939.9~11)는 일본제국주의 파시즘의 기세 아래 조선의 신문학사를 정리하는 취지이며,
3단계로 [개설 조선신문학사](1940.11~1941.2)를 통해 제도적 장치로서 '근대성(모더니즘)'을 검토하고 '신문학'도 그러한 장치의 일종으로 파악하는 단계인데, 기존 '프롤레타리아 계급론'에서 '시민 계급론'으로의 전향 단계라는 것이다.

[임화 연구]에서 김윤식 교수의 평가에 의하면, 임화의 위 작업은 "자존심 회복의 차원에서, 즉 세계와 자아(개인)와의 '균형감각'을 찾으려는 임화 자신의 '내면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들이 '자기 재건'의 노선으로 고를 것은 예술적 실천 일반이 아니라 '리얼리즘'적 실천 그것이다."
- 임화

임화의 '리얼리즘 선언'은, '고발문학', '전향문학' 등에 대하여 임화 자신도 [문제는 리얼리즘이다](1938)라고 외친 헝가리 마르크스주의 미학자 게오르그 루카치와 같이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발자크론]에 기대어 주장한 '리얼리즘론'이다.
즉, 지배계급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 발자크의 소설이 오히려 지배계급의 본질을 '사실적'으로 정확히 묘사한다는 엥겔스의 문학비평론은 오늘날 TV '막장드라마'에서 묘사하는 '재벌'의 모습과 그를 추종하는 '서민들'의 판타지가 우리사회 계급성의 본질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과 같다.
루카치에 의하면, 엥겔스로 시작한 마르크스주의 미학은 1) '역사적 유물론'의 일부이고, 2) 그 속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의 적용이며, 3) 그 아래 각각의 문학에서 독자적 법칙이 있음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결국, 당시 '레닌주의'를 표방한 '스탈린주의'로서 '볼셰비키화'를 주도했고 일단의 실패를 겪은 후, 임화의 문학적 "주체 재건의 과정"은 '마르크스주의 미학론'으로의 회귀다.


식민지 말기 잠시 '전향'하여 '문인보국회' 이사로 등재되고, 해방 후 '민주주의민족전선'이라는 통일전선체 활동을 하다가 월북한 임화는 6.25전쟁 후 박헌영을 대표로 하는 '남로당파'와 함께 '미제의 고용간첩' 혐의로 숙청되는데, 아직까지 그 시신을 찾지 못하고 있다. 

'카프' 시절 동지인 문학평론가 백철의 증언에 의하면, 임화는 1934년 검거 당시 폐결핵으로 실신하는 연기로 구속을 면했다고 하는데, 백철은 연극도 하고 영화배우 경력도 있던 임화의 '연기력'이 매우 뛰어남을 지적한다.
'다다이스트'부터 '볼셰비키주의자', '리얼리즘론', '전향자'와 '공산주의자', 그리고 '미제 간첩'까지 식민지와 해방정국, 한국전쟁 중 할 것은 다 해본 임화의 '연기력'은 근대 문학사에서는 끊임없이 기존 관성을 부정하는 '모더니스트'였을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제4의 점령'에서 "자유해방을 구하는" 천생 '문화예술인'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시신도 못 찾은 임화가 지금도 죽지 않고 '제4의 점령'을 날아다니고 있을지도.

***

- [임화(林和) 연구], 김윤식, <문학사상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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