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징가 Z + 그레이트 마징가 합본 박스세트 (18disc)
투모루필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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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善)'과 '악(惡)'의 변증법
- [마징가(魔神-Ga)], 나가이 고, 1972.



"신(神)도, 악마(惡魔)도 될 수 있다."
- 카부토 주조 박사, [마징가-Z], 1972.


카부토 코지의 할아버지 카부토 쥬조 박사는 예전의 동료 헬 박사의 음모를 알고 있었다. 그리스 고대유물 발굴지에서 탈출한 그는 자취를 감추고는 '초합금-Z'를 개발하여 '신(神)의 힘'인 '광자력 에너지'로 가동되는 '흑철(黑鐵)의 성(城)'을 비밀리에 제작한다.
헬 박사는 고대 그리스 미케네 문명 발굴 과정에서 '청동거인'들을 부활시켜 세계를 지배하려 하는데, 이를 막으려는 카부토 쥬조 박사를 찾아 그의 집을 폭격한다.

카부토 쥬조 박사는 손자에게 "신(神)도, 악마(惡魔)도 될 수 있다"는 유언을 남긴 채 죽는데, 그가 만든 '흑철(黑鐵)의 성(城)'의 이름이 바로 '마신(魔神)'이고, 일본 발음으로 '마징'인 것 같다. 
손자 카부토 코지가 이 '흑철(黑鐵)의 성(城)'을 조종하며 외치는 "Go~"를 붙여 로봇의 이름은 '마징가(魔神-Ga)'가 되었다.


[마징가-Z]는 1972년 일본 만화가 '나가이 고'가 발표한 만화 연재물(comics)인데, 1980년대 초, 우리나라 TV 프로그램으로 알려진 만화영화는 그의 원작 만화를 토대로 일본 방송국에서 제작한 어린이용 'TV 시리즈'였다.
그런 걸 알 수 없었던 초등학교 입학 전, 할머니 집에서 TV를 보던 나의 당시 꿈은 조종사 '쇠돌이(카부토 코지)'도 아니고 '마징가-Z' 자체였다. 
나는 어른이 되면 그 강한 로봇이 되고 싶었다.


나가이 고의 원작만화는 '어린이용'이 아니었다. '신좌파 세계혁명'이 일단의 '실패'로 보이던 1970년대 초의 '염세적'이고 '회의적' 세계관을 담은 '실존철학'적 작품인데, 아마도 '아나키즘'적 관점을 가진 듯 한 작가 나가이 고는 이 '거대로봇물'에 '세기말적'이고 '퇴폐적'인 내용을 담는다. 
이 만화는 '선악 이분법'에 기초한 '권선징악'이나 '해피엔딩'의 '동화'가 아니었다.


'우주소년 아톰'은 일본 전후세대 데즈카 오사무의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관점, '원자력'으로 사람과 같은 로봇을 만드는 '발전적 미래'를 담고자 했고, 우편향적 만화가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일본 '군국주의' 비밀병기 '철인28호'는 리모컨으로 조종되는 '퇴행적 미래'를 보여준다.
그러나, '마징가-Z'는 자동차나 비행기처럼 사람이 직접 조종하는 '현재'의 표현이며, 자본주의 체제의 비약적 경제성장이라는 '발전적 미래' 속에 '파괴의 미래'가 동시에 존재함을 보여주려는 듯 하다.

강력한 힘은 그래서, 
"신(神)도, 악마(惡魔)도 될 수 있다".


중국 원나라 말기 '마니교'와 '조로아스터교' 등의 교리가 결합하여 '명(明)교'가 창시되는데, '명태조' 주원장은 이 반란농민군에서 '한(漢)족 독립투쟁'을 통해 명(明)나라를 건국한다. 
[주원장전(朱元璋傳)](1949)을 쓴 중국 작가 오함이 밝힌 '명교'의 교리는 ‘이종삼제(二宗三際)’이며, 그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상에는 '명(明)'과 '암(暗)' 두 종류의 다른 세력이 있는데, 명은 광명이니 선(善)이고 이(理)이며, 암은 암흑이니 악(惡)이고 욕(欲)이라는 것이다. 이 두 세력은 대립 항쟁을 하는데, 초제(初際), 중제(中際), 후제(後際)의 세 단계를 거치게 된다. 초제 단계에는 천지가 없고 명암만 있을 뿐, 명의 성질인 지혜와 암의 성질인 ‘치우(痴愚)’가 대립 상태를 이룬다. 중제 단계에는 암의 세력이 발전하고 확대되어 명의 세력을 압박하고 멋대로 내쫓아 대환(大患)이 만들어진다. 이때에 바로 명왕이 세상에 나와서 투쟁을 거쳐 암흑을 내쫓는다. 후제 단계에는 명과의 암의 이종(二宗)이 각각 제자리로 돌아가 명은 대명(大明)으로 돌아가고 암은 적암(積暗)으로 돌아가게 된다. 초제는 명암 대립으로서 과거이고, 중제는 명암 투쟁으로서 현재이며, 후제는 명암 복위로서 미래인 것이다."
- [주원장전(朱元璋傳)](1949), 오함, 박원호 옮김, <지식산업사>, 2003.


강력한 힘, 또는 '권력(權力)'에는 '선(善)'과 '악(惡)' 두 모순이 동시에 존재하며, 이 '대립물'은 끊임없이 내부 투쟁을 한다는 '변증법'이다.
쉽게 말해 '착하게 쓰면(善用)'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고, '못되게 쓰면(惡用)'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는 의미다.


'신(神)' 자체는 가치 판단의 여지가 없으나, 나가이 고에게 '신'은 '선'이었을지 모른다. 내가 보기에 '신좌파 세대'임이 분명한 그가 '신'을 믿었을 것 같지 않으나, 만약 '신'이란 게 있다면 '선'해야 한다고 믿은 듯 하다. 그의 '마징가'가 마주한 현실은 '악'이었을 테니.


'마징가-Z'는 1976년생 우리나라 김청기 감독의 '태권-V'처럼 종국에 악당들을 물리치지는 못한다. '어린이용' 만화영화로 만들어진 우리의 '태권-V'는 악당의 고뇌는 잠시 보여주나 결국 '권선징악'의 교훈을 남한의 어린이들에게 남겼으나, '마징가-Z'는 헬 박사의 '기계수'에서 더욱 진화한 미케네 문명의 '전투수'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면서 일본 어린이들의 동심도 파괴한다.
이렇게 파괴되던 마징가를 구하면서 나타난 것이 '그레이트 마징가'인데, 만화 원작에서는 공백이던 카부토 코지의 아버지이자 카부토 쥬조 박사의 사라진 아들 카부토 켄조 박사가 '초합금-newZ'로 한단계 진화시킨 전투기계다.


나는 동갑내기 1974년생 그레이트 마징가를 더 좋아했는데, 이 친구는 나가이 고의 실존적 '철학'이 만든 것이 아니라 'TV 시리즈'와 극장판을 제작하던 '도에이'사의 작품이다.
'신좌파'의 후예 '마징가-Z'와 달리 '그레이트 마징가'는 '자본주의 과학'의 후예였고, 원작자 나가이 고는 끝내 이 '자본주의'적 전투기계에게 애정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2009년에는 일본 'TV-도쿄'에서 나와 같은 세대를 겨냥하여, [마징가-Z]를 재해석한 [진(眞)-마징가]라는 'TV 시리즈'를 제작, 방영하였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릴 적에 지금 내 나이에 이미 '마징가'가 되어 있을 줄 알았던 나는 2009년에 밤을 새며 몇 번을 보았는지 모른다.

2009년에 나가이 고 원작의 '철학'을 되살려 낸 '진짜 마징가', [진(眞)-마징가]는 적어도 내게는, 흥행했다.

***

1. [마징가(魔神-Ga)-Z], 나가이 고, 1972.
2. [그레이트 마징가], 도에이사, 1974.
3. [태권-V], 김청기, 1976.
4. [주원장전(朱元璋傳)](1949), 오함, 박원호 옮김, <지식산업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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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추리문학 베스트 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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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은 나의 힘!
-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황금가지>, 2002. / <해문>, 1985.



"열 꼬마 병정이 밥을 먹으러 나갔네.
하나가 사레들었네. 그리고 아홉이 남았네.
아홉 꼬마 병정이 밤이 늦도록 안 잤네.
하나가 늦잠을 잤네. 그리고 여덟이 남았네.
...
일곱 꼬마 병정이 도끼로 장작 팼네.
하나가 두 동강 났네. 그리고 여섯이 남았네.
다섯 꼬마 병정이 법률 공부 했다네.
하나가 법원에 갔네. 그리고 네 명이 남았네.
네 꼬마 병정이 바다를 향해 나갔네.
훈제 청어가 잡아먹었네. 그리고 세 명이 남았네.
...
두 꼬마 병정이 볕을 쬐고 있었네.
하나가 홀랑 탔네. 그리고 하나가 남았네.
한 꼬마 병정이 외롭게 남았다네.
그가 가서 목을 맸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네.'"

- Agatha Christie,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김남주 옮김, <황금가지>, 2002.


열 명이 찾아간 '병정섬'에 다섯 명이 남았을 때, 전직 '교수형 판사' 로렌스 워그레이브가 권총에 맞아 죽고 "네 명이 남았다." 
닥터 암스트롱이 실종되었다가 "훈제 청어"한테 잡아 먹힌 채 발견된 후 베라 클레이슨 양이 필립 롬바드 장군을 권총으로 쏘아 "홀랑 태우고", 
종국에 혼자 남은 섬에서 '뭘 좀 먹을까' 생각하다가 피곤해져서 "목을 맸을 때", '병정섬'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사실은 '인형 하나'가 남아 있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처음 읽은 건, 중학교 2학년 때인가 나보다 한 살 많은 동네 형과 그 동생의 집 어두운 방에서였다.
오락실에서 '더블 드래곤'을 구경하다가 할 일 없어 찾아간 그 형제의 방에서 <해문 출판사>판 그 책을 발견하고는 제목에 홀려 꺼냈고 빌려왔다. 
그리고 처음으로 '장편소설'을 읽었다.
하나씩 사라지는 그 인형이 '한 꼬마 두 꼬마 인디언'이었든, '병정 인형'이었든 중요하지 않다. 애거서 크리스티 원작의 제목은 [Ten Little Niggers]였다는데, 불길한 이야기에 '흑인 인형'을 끌어들인 것이 그녀의 '인종차별성'이었을지, 아니면 그냥 '원주민'의 표현이었을지는 알 길이 없다. 단지, 영국의 '자장가'를 모티브로 한 최초의 '밀실살인' 추리소설이라는 내용이 중요하다.

초등학교 때, 한 친구의 집에는 40권인가 50권 하는 검은색 표지의 얇은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 단편선' 한 질이 있었다. 나는 가난한 엄마아빠한테 사달라고 할 생각은 못하고 그 친구한테 한 권, 두 권 빌렸다. 대부분 반납했지만, 그 중 인상깊었던 한 권, 아마도 로버트 스티븐슨의 [보물섬] 초반부 '빌리 본즈' 선장의 죽음을 연상시키는 '늙은 해적 살인사건' 이야기는 잃어버린 척 하고 돌려주지 않았다. 첫 '도둑질'이었는데 이상하게 친구에게 미안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 친구와는 멀어졌다.
약 10년 후 고등학교 친구 중호로부터 당시에는 귀했던 '북두의권'과 '소년공작왕' 일본 해적판 전집을 빌려서 보관하다가 못 돌려줬을 때는 정말 너무도 미안했다. 내가 안 돌려준 게 아니라 군대 갔을 때 어머니가 치워버렸으니. 이제는 더 말 안하지만,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친구 중호한테 계속 미안하다.
아무튼, '셜록 홈즈' 시리즈는 내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처음으로 '동화책' 아닌 '소설'을 단편이지만 시리즈로 읽은 경험이었고 지금도 '셜록 홈즈' 하면, 그 단편의 짧은 흑백 삽화들이 아른거린다.

그것도 잠시, 중학교 올라가서까지 빈주머니로 오락실을 전전하던 내게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일종의 '신의 계시'였다. 이제 오락실 갈 돈 모아 "책 좀 읽으라"는.
중학교 시절에는 용돈 모아 <해문 출판사> 추리소설 시리즈를 사서 모으는 게 취미였고, 그 장편들을 읽는데 익숙해져 갔다. 물론 지금도 그 짧은 삽화들이 가끔 떠오른다.
당시 다양한 해외 추리소설가들을 짧게나마 섭렵하기도 했지만, 지금 남는 건 역시 코넌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다.

'셜록 홈즈'는 내게 '단편'을 읽는 힘을, 탐정 포와로와 미스 마플, "그리고 아무도 없는" 밀실살인자는 '장편'의 바다에서 헤쳐나오는 힘을 주고 떠났다.

우리 '추리소설협회' 작가들도 뛰어났을 테지만, 고등학교 올라가서는 더 이상 '추리소설'에 흥미가 없어졌고, <해문 출판사> '컬렉션'은 내 관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더 나이가 들어, 우연히 오래된 흑백영화, [오리엔트 특급살인]을 보고는 감회에 젖어 어릴적 읽었던 작품들만 골라 <황금가지> 판으로 한 권, 한 권 사서 다시 읽어 보았다.
1916년 크리스티의 첫 작품,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만큼은 오래된 <해문> 판으로 사고 싶었고, 여전히 [오리엔트 특급살인]의 대륙횡단 기차의 흔들림을 같이 느꼈으며, [나일강의 죽음(메소포타미아 살인)]에서는 내 잊혀진 꿈, '고고학자'가 되어 고대유물과 사건을 쫓고 있었다.


히가시노 게이코, 미야베 미우키 부류의 일본 추리소설들이 성인들에게 그나마 책을 읽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어린 나를 '책'과 '이야기'의 세상으로 초대해 준 '코넌 도일 경'과 '애거서 크리스티 경'에게 다시금 깊은 경의를 보낸다.

***

-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황금가지>, 2002. / <해문>,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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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계급의식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사상선집
죄르지 루카치 지음, 조만영 외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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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성', '물화'와 '소외', 그리고 '자아비판'
- [역사와 계급의식](1921), 게오르그 루카치, 박정호/조만영 옮김, <거름>, 1993.



"마르크스주의 문제에 있어서의 '정통성'이란 오로지 '방법'에만 관련된다. '정통성'은 변증법적 마르크스주의 속에서 올바른 연구방법이 발견되었으며 이 방법은 오직 그 창시자들(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정신에 따라서만 확장되고 확대되고 심화될 수 있다는 과학적 확신이다. 또한 그것은 그 방법을 극복하거나 '개선'하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천박화, 진부함, 절충주의로 귀착되어 왔고 또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과학적 확신이다."
- G.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 <정통 마르크스주의란 무엇인가?>, 1921.

헝가리 마르크스주의자 게오르그 루카치는 "문학은 현실의 특수한 반영"이라는 유명한 테제와 함께 '리얼리즘' 문제에 천착한 미학자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1918년 헝가리 공산당원으로 헝가리 혁명에도 참여한 철학자였다.
1921년에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여러 논문들을 묶어 [역사와 계급의식]을 출간하는데, 하나의 저작으로서 연결되는 논리구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본주의 정치경제체제를 분석하는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적 사유의 '방법론'을 다루면서, '총체성', '사물화' 또는 '물화', '소외' 개념을 정립했고, 1967년에는 이 개념들에 대한 '자아비판'이 이 저작의 특징이다.


1. '총체성(Totality)'

"직접적 존재를 이처럼 이중적(현상과 본질)으로 규정하는 것, 즉 그것을 인정하는 동시에 지양하는 것이 바로 '변증법'적 관계이다... 사회생활의 개개의 사실들을 역사적 발전의 계기로서 '총체성(Totality)' 속으로 통합시키는 이러한 연관 속에서야 비로소 사실들의 인식은 현실의 인식이 될 수 있다... 사회발전의 여러 단계들이 지니는 현실적 차이점은 이 개별적이고 고립된 부분적 계기들이 겪는 변화 속에서 표현되기보다는, '전체 역사과정'에서의 그 계기들의 기능 또는 사회 전체와 그것들의 관계 등이 입는 변화 속에서 훨씬 분명하고 명쾌하게 표현된다."
- 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 <정통 마르크스주의란 무엇인가?>

루카치에게 마르크스의 업적은 관념론자 헤겔의 '변증법'적 사유방식 및 그 체계를 유물론적으로 '전복'시킨 것인데, 헤겔의 철학은 개별 학문과 과학으로 고립되어 사유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통합적 유기체로 파악한 것이다. 루카치는 이 개념을 '총체성'으로 표현한다. 
계급의식 또한 한 노동자 개인이 즉자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 자본주의 정치경제 체제의 '총체성' 속에서 도출되어야 하며,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이 '총체성'을 담지한 계급인데 그 자체로 '완성'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존의 '전자본주의적' 계급의식이 한 계급으로 다른 계급을 대체하는 것, 예를 들어 부르주아(시민) 계급이 봉건지주 계급을 대체하여 지배계급으로서 자본가가 되는 역사적 형태를 넘어 프롤레타리아는 그 자신의 계급적 본질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하면서 계급 자체를 철폐함으로써 '총체성' 속에서 '완성'된다는 것이다. 
루카치는 헤겔을 깊이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방법적'으로 '헤겔화'시키는데, 이를 통틀어 표현한 것이 루카치의 '총체성'이라는 개념이다.


2. '물화' 또는 '사물화', '대상성'

"이와 같은 구조적인 근원적 사실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분명히 확인되어야 할 점은 '사물화(물화)'로 인하여 인간 특유의 활동, 인간 특유의 '노동'이 객체적인 어떤 것, 인간으로부터 독립되어 (오히려) 인간에 낯선 자기법칙성을 통해서 인간을 지배하는 어떤 것으로서 인간에 대립되어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경제적으로 부단히 더 높은 단계를 향하여 자신을 생산-재생산하는 것과 비례해서, '사물화' 구조는 자본주의 발전과정 속에서 갈수록 심각하게, 숙명적으로, 구조적으로 인간 의식 속에 파고든다."
- 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 <사물화와 프롤레타리아의 의식>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정치경제학 비판' 작업의 결정판인 그의 [자본론]에서 '노동'의 '사용가치'가 아닌 '상품'으로서의 '교환가치'만이 측정되고 거래되면서 인간 본연의 활동으로서의 '노동'과 그를 매개로 한 '인간적 관계'가 '상품' 거래의 '물질적 관계'로 나타나는 현상을 자본주의적 '물신성'으로 표현했다.
마르크스의 '물신성' 또는 '물신숭배'는 [자본론]에서 '은유적 표현' 정도였으나, 루카치는 이 현상을 '물화' 또는 '사물화', '대상화' 또는 '객체화' 등으로 개념화한다. 
우리말로 가장 유행한 표현은 '물화'다. 이 개념은 1921년의 [역사와 계급의식]에서는 '소외'와 동일선상에서 연결되는 개념으로서, 인간의 활동과 그 관계가 물질적 관계로 왜곡되고 그로 인해 본질로부터 그 특성이 벗어남으로서 현상과 본질의 괴리로 나타나는 '소외'가 그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노동의 소외'다. '소외'된 노동은 당연히 '해방'되어 본질적 형태로 돌아와야 하는 바, 자본주의 '총체성'을 담지한 계급에 의해 수행되는 '노동 해방'이 그 논리적 귀결이다.
그러나 이처럼 '소외'로 연결되는 초기의 '물화' 개념은 나중에 루카치 자신에 의해 '자아비판'되고 재정립된다.


3. '계급의식'과 '자아비판'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의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결과를 낳고 가장 눈에 띄는 분열은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분리에서 나타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분리가 허용될 수 없음을 되풀이하여 지적했고 모든 '경제투쟁'은 그 본질상 '정치투쟁'으로 전화한다(또 거꾸로 '정치투쟁'도 '경제투쟁'으로 전화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의 의식적 변혁'이라는 과제를 '역사'에 의해 부여받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계급의식' 속에는 직접적인 이해관계와 궁극목표와의 '변증법'적 모순, 개별적인 계기와 전체와의 '변증법'적 모순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발전과정의 개별적 계기는, 즉 구체적 요구를 동반하는 구체적 상황은 그 본질상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에 내재해 있고 자본주의 사회의 법칙에 지배받고 있으며 이 사회의 경제구조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 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 <계급의식>

전술한 바와 같이, '자본주의'라는 '역사'적 단계에서 정치경제체제를 다 포괄하는 '총체성'을 담지하는 다수 노동계급, 프롤레타리아는 '계급'으로서의 스스로를 '변증법'적으로 '지양'하면서 '계급' 자체를 폐지할 '역사'적 사명을 부여받고 있으므로, 이 계급의 '의식', 즉 노동자 '계급의식'은 즉자적이지 않고 대자성을 넘어 '총체성'을 담아야 한다. 순환논리이자 동어반복 같지만, 이것이 루카치식 '총체성'의 전부다.


결론적으로, [역사와 계급의식]이란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의 '역사' 속에서 그 '물화'된 관계 아래 '소외'된 노동을 하는 다수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의식'을 정립하는 개념화 및 추상화 과정이며, 이는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적 방법론에 의해 정립된다.

루카치의 '추상성'은 러시아 볼셰비키나 독일 사민당으로부터도 비난을 받았고, 그는 모스크바 망명 시절 '철학'을 잠시 떠나 '미학'에 몰두한다. 1967년에는 결국 '자아비판'을 통해 [역사와 계급의식] 주요 개념들을 수정하고 재정립하는데, 스스로의 '총체성' 및 '추상성'의 원인을 1920년대 당시의 세계 혁명 '낙관성'에서 찾는다.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사멸할 것이기에 프롤레타리아의 '역사적 소명'이라는 '총체'적 담지자 역할은 1960년대에는 다르다는 것이 하나의 '자아비판'이다.

또 다른 '자아비판'은, '물화'와 '소외' 개념의 차이인데, 1967년 <서문>의 구절로 대신한다.

"두 근본개념('물화'와 '소외')의 잘못된 동일시... '대상화(물화)'란 사실상 인류의 사회적 삶에서 폐기될 수 없는 표현양식... 실천 속에서 이루어지는 '객관화' 모두가, 특히 노동 자체가 '대상화'라는 사실, 또 언어를 포함한 인간적 표현양식 모두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대상화'한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것들이 인간들 상호간 교류의 형식임이 분명해진다. '대상화(물화)' 그 자체는 몰가치적이다. 잘못된 것이든 올바른 것이든, 아니면 노예화이든 해방이든, '대상화'임에 틀림없다. '대상화'된 형태가 사회적 장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인간의 존재와 대립하게 만들고, 인간적 존재를 사회적 존재를 매개로 해서 굴종시키고 왜곡, 기형화시키는 기능을 획득할 때 비로소 객관적인 사회적 '소외' 관계가 성립되며 그 필연적 귀결로서 내적 '소외'의 모든 주관적 특징들이 성립되는 것이다."
- 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 <1967년판 서문>

즉, '소외'는 극복해야 할 개념 그대로이나, '물화(대상화)'는 현대 자본주의 '역사'에서 이미 만연된 '표현양식'이며 '현실'이 된 것이다.


[역사와 계급의식]의 부제는 '마르크스주의 변증법 연구'다. 루카치는 마르크스주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헤겔로 돌아가는 것과 같이 다른 선학들을 찾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은 끊임없는 '부정의 부정'을 통해 혁신되는 고정되지 않는 사유방식과 그 '방법론'이다.
그로 인해 루카치는 마르크스주의 '정통성'은 마르크스주의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는 '추상적' 순환논리에 또 다시 빠지고 만다.


어려운 책이다.
1993년 스무살 생일선물로 사준 대학친구 진욱이한테 읽은지 27년 지난 이제야 '리포트'를 제출한다.

***

- [역사와 계급의식], 게오르그 루카치, 박정호/조만영 옮김, <거름>,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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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혁명 - 헤겔과 마르크스, 제3판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지음, 김현일 옮김 / 중원문화 / 201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부정적 사유'로서의 '철학' : '변증법적 유물론'
- [이성과 혁명](1941),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김현일/윤길순 옮김, <중원문화>, 1987.



"이 책은 헤겔 철학의 부활보다는 오늘날... 망각되어 소멸할 위험에 처해 있는 하나의 정신기능, 즉 '부정적 사유능력'의 부활에 작으나마 공헌을 했으면 하는 바램에서 쓰여졌다... 세계는 그 자체 모순적인 세계... 상식과 과학은 이러한 모순을 스스로 피하려 하지만, '철학'적 사유는 사실이 상식과 과학적 이성이 강요하는 제개념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인식으로부터, 다시 말하면 상식과 과학의 개념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데서 출발한다."
- H.마르쿠제, [이성과 혁명], <1960년판 서문 - 변증법에 대하여>

독일 철학자 헤르베르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는 하이데거 영향 아래 헤겔(Hegel) 철학을 연구했는데,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프랑크푸르트 학파'로 분류된다. 1941년 그는 독일 관념철학이 생소한 미국에 헤겔 철학을 소개하기 위해 [이성과 혁명]을 쓴다.
이 책은 끊임 없는 '부정의 변증법'을 논하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철학적 기초를 헤겔 철학에서 재조명하는데, 1914년 레닌의 방식과 닮았으나 '실천'이 아닌 '철학'에 머무르는 '추상성'으로 비판도 받는다.


1. 이성 - 헤겔


마르쿠제에 의하면, '변증법'이 상식과 과학 개념들에 적용하는 '부정(negative)'이란 실재하는 '모순'을 거부하는 기존 '논리학'에 대한 비판이며 기존 사상과 체제에 대한 비판이다. '변증법'적으로 현실의 모순을 파악하는 것은 사물의 참된 '존재양식'을 파악하는 것인데, 현실의 '모순', '부정합성'을 분석하는 도구가 바로 '부정적 사유능력'으로서의 '철학'이다.
이를 위해 이 독일 망명철학자는 기존 논리학을 뒤집은 헤겔을 연구하면서 '실증(positive) 철학'과 투쟁하는 '부정(negative)의 철학'으로서 '변증법적 유물론'을 논한다.


"진정한 '존재'는 진정한 '운동'이며, 진정한 '운동'은 주체가 객체와 완전히 통일되는 활동이다. 따라서 (헤겔에게) 진정한 '존재'는 사상이고 '이성'이다... 헤겔은 모든 '존재'를 과정이나 운동으로 간주한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지극히 역동적인 성격을 재발견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변증법'의 양식은 '부정성'에 의해 관통된 세계, 모든 것이 그 실상과 다른 무엇이며, '대립'과 '모순'이 진보의 법칙을 이루는 세계를 표출하는 그러한 세계의 '진리'인 것이다."
- 마르쿠제, [이성과 혁명], <1편 - 헤겔철학의 기초>

1914년의 레닌이 헤겔로 다시 돌아갔을 때처럼, 마르쿠제도 독일 관념론의 완성자 헤겔에게서 기존 관념론(형이상학)과 다른 요소를 발견하는데, 바로 제목에 명시한 주요 개념인 '이성'이다. 
헤겔은 [법철학]에서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다"라는 포괄적 명제를 내놓는데, 헤겔에게 '이성'이란 기존 형이상학이나 논리학에서 규정한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운동'을 본질로 한다. 즉, '이성'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분석하는 것이 아니고, 그 자체가 내포한 '현실' 속 '가능태' 또는 '맹아'까지 본다는 것이다. 물론 헤겔의 '존재론'은 '물질'보다 '정신'을 우선하는 관념론이므로 그의 [정신현상학]은 세계의 궁극적 본질인 '절대이성(정신)'을 향해 '자유'를 동기로 자기운동하는 '이성'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러한 '변증법'적 서술방식을 '유물론'으로 뒤집은 것이 바로 '상품'으로부터 시작하여 전체 자본주의 체제를 분석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니 헤겔의 '변증법'적 영향력은 크다.
마르쿠제는 이러한 '철학적 기초 개념'을 토대로 헤겔의 [정신현상학](1807), [대논리학](1812~1816), [정치철학](1816~1821), [역사철학](말년) 등을 분석한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인간 '개별 이성'이 '절대이성'이라는 '총체성'을 향해 경험하는 자기운동 과정으로 '자유', '노동', '소외', '소유' 등의 중요한 철학 개념들을 다룬다.
[대논리학]은 '절대지(이성/정신)'의 기초를 다루는데, 모든 사물은 "그 자체의 본성에 속하는 '부정성'으로 인해 '대립물'과 연결되어 있으며", 사물이 "참다운 자기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것은 현재 '그것이 아닌 것'으로 되지 않으면 안된다." 즉, 모든 사물은 그 내적 자기모순을 통해 운동하고 변화하며 발전한다는 '변증법적 논리학'으로서, 모든 것을 '불변'으로 전제하는 기존의 '형이상학적 논리학'을 '부정'한다. 여기서 그는 '모순', '대립물', '개별', '보편', '이행', '운동' 개념을 논하며 '현재 그것이 아닌 것'으로 '존재'하는 '개별자'의 '(변화)가능성'을 '실재성'으로 인식한다.


"... 가능적인 것은 또다른 실재의 '조건'으로서 파악된 주어진 실재성이다... '사실'은 '실존'하기 전에 '존재'한다는 헤겔의 유명한 명제는 이제 그 정확한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게 된다... '사실'은 '실존'하기 전에 수없이 흩어져 있는 현존하는 제자료 안에 하나의 '조건'의 형태로서 '존재'한다... '사실'은 아직 '사실이 아닌 것', 그리고 아직 그 자체를 '실재적 가능성'으로서 주어진 현실로 현현하지 못한 것과 관계되는 한에서만 '사실'이다."
- 마르쿠제, [이성과 혁명], <1편>

헤겔의 [정치철학]은 '국가'를 '절대이성(정신)'으로 상정하고 '사적 소유'와 '법의 지배'를 정당화했으며, 그의 [역사철학]은 지금까지의 '논리학'적 결론으로 '역사의 간지'를 끌어들여 그의 관념론적 '필연'을 완성시키므로 [정치철학]과 [역사철학]에서 물려받을 것은 별로 없다.

"기존 현실의 내용은 새로운 형태로의 자기전환의 맹아를 품고 있으며 그 전환은 그것이 우연적인 실재가 현실적으로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의미에서의 '필연의 과정'이다. 현실성에 대한 변증법적인 해석은 우연성, 가능성 및 필연성 사이의 전통적인 대립을 폐기하고 그 모든 것을 하나의 포괄적인 과정의 계기로서 통합한다. 필연성은 우연적인 실재를, 즉 기존의 형태에서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으로서 유지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필연성은 우연적인 실재가 그것에 합당한 형태를 획득하게 되는 과정이다. 헤겔은 이것을 현실성의 과정이라 부른다."
- 마르쿠제, [이성과 혁명], <1편>

위와 같은 헤겔의 '부정(negative) 철학'은 모든 '가능성'을 부인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실재'만 '긍정'하는 '실증(positive) 철학'을 넘어 '철학'을 한 단계 진보시켰다. 여기서 중요한 철학적 방법론으로 '변증법'이 완성된다.

'이성'은 헤겔에 이르러 '변증법'을 만나 일단 완성되었다.


2. 혁명 - 마르크스


"헤겔은 주장하기를, '진리'는 어떤 단순한 요소 안에도 현존해야만 하는 전체이며, 따라서 만일 단 하나의 실질적인 요소나 '사실'이 '이성'의 과정과 결합될 수 없는 경우에도 전체의 '진리'는 파괴된다고 했다. 반면에 마르크스는 그와 같은 요소, 즉 '프롤레타리아'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프롤레타리아'의 '존재'는 이른바 '이성'의 현실과 모순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이성'의 '부정'을 증명하는 하나의 완전한 '계급'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프롤레타리아'의 존재는 '진리'가 실현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증명해 주고 있다. 역사와 사회적 실현 그 자체는 이처럼 '철학'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에 대한 비판은 '철학'적 이론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역사적 '실천'의 작업이 된다."
- 마르쿠제, [이성과 혁명], <2편 - 사회이론의 발흥>

마르크스주의 또는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헤겔이 완성한 독일 사변적 관념론은 그 '철학'의 기초가 되었고, 마르크스-엥겔스는 헤겔의 '변증법'을 계승하여, '물질'이 '정신'보다 우선한다는 '유물론'으로 뒤집었다.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은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그 구조상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로부터 착취당한다는 현실을 분석하며 '노동'의 '소외'를 새롭게 정의한 바, 개별적이고 실존적 '노동'이 아니라 위와 같이 자본주의 체제 내에 구조적으로 편입되어 가동되는 '착취'당하는 '노동'은 '보편성'을 획득한다. 이러한 '철학'적 분석의 토대는 역시, '생산수단의 사유화'와 '총생산의 사회화'의 모순을 담고 있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자본가와 노동자를 계급으로 대립시키는 '생산관계'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현실'과 그 변화 '가능성'을  매개하는 것은 '노동'이고, 이 '보편'적 노동을 담지하는 다수의 '프롤레타리아'라는 '존재'가 이 체제의 '진리'를 담보한다는 것이다. 즉, 다수 노동계급 내에 그 자체로 체제 변혁의 '가능성'과 '운동', 그리고 '이행'의 '진리'가 있으며, 이것의 형식이 '혁명'이다.

이렇게 철학의 '이성'은 마르크스에 이르러 '혁명'으로써 그 '진리'를 궁극적으로 완성한다.


3. 이성과 혁명 - 레닌 혹은 마르쿠제

마르쿠제는 자본주의 변혁의 '철학'적 근거를 헤겔 철학의 '변증법'으로 운동하는 '이성'에서 찾고 있는데, 그 '현학적' 논리를 빼면 결국 내용상 1914년 레닌의 [철학노트]의 반복일 수도 있다. 
다만, 그의 초기 저작 [이성과 혁명]은 독일 관념론자 헤겔을 부활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현실을 불변의 것으로 선언해 버린 스탈린주의라는 '권위주의', '전체주의'로 변질된 레닌주의를 넘어, 끊임없는 '부정'의 사유방식으로써 지속적인 '혁명'을 수행하는 새로운 '실천적 철학'을 다시 부활시키려는 노력이었을 것이다.

오래전에 '헤겔주의'가 '종언'되었고, 얼마전에 '마르크스주의'도 '종언'되었다는 의견들도 있으나, 독점자본이 강화되고 '자본가'를 넘어 '자본' 자체가 전세계를 지배하는 지금의 '자본의 제국' 체제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은 역시 '부정의 철학'으로 끊임 없이 갱신되고 혁신되어야 할 '다수'의, '노동자의 철학'이다.


"사회의 자연법칙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인 과정을 표현하는 것이며, '사회주의 혁명'은 이 법칙으로부터 '해방'을 가져오는 것... 헤겔에게서 정점에 달한 독일 관념론은 사회-정치적 제도들이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과 일치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던 반면, 권위주의 체제는 개인의 이해에는 개의치 않은 채, 모든 개인을 경제적 과정 속으로 강제로 끌어들이지 않고서는 사회질서의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 마르쿠제, [이성과 혁명], <결론 - 헤겔주의의 종언>

***

- [이성과 혁명(Reason and Revolution)], Herbert Marcuse, 김현일/윤길순 옮김, <중원문화>,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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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Literature: A Survey for Students (Paperback)
Longman / 197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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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낭만주의'적 혁명과 혁명적 '낭만주의'
― William Wordsworth의 생애와 사상을 중심으로
 

목   차
1. 서론
2. 본론
① 낭만주의의 혁명
② W. Wordsworth의 생애와 사상
   ⅰ. 감각과 상상력(Feeling and Imagination)
   ⅱ. 보통의 언어(The Language of Common Speech)
   ⅲ. 고요함 속에서 회상된 정서('Emotion recollected in Tranquility)
3. 결론
 

 
1. 서론
 

무릇 시(詩)라고 하면, 감각적 언어, 감성적 표현, 상상의 산물 등으로서 이해되는 것이 대다수 독자들에게는 가장 보편화된 반응일 것이다. 시는 많은 서사(敍事)문학이나 산문이 그러는 것처럼 작품의 제재가 되는 대상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을 요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는 차원이 다르게 시는 어느정도는 직관적이고 좀더 상징적이며 암시적인 표현방식을 매개로 하는 장르인 것이다. 물론 이는, 단 한 마디를 하더라도 긴 산문이 할 수 있는 이야기나 내용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시라는 장르의 형식적 필요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보다 깊이 들여다 본다면, 이런 장르상의 형식적 특징은 어떤 대상에 대한 함축적인 전언을 통해 그것을 읽는 이로 하여금 서사적 감동과는 질적으로 다른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는 내용상의 필요에 기인할 터이다. 그렇다면 흔히 이야기되는 시적효과란 무엇을 두고 말하는 것인가. 
서사문(敍事文)은 시적 표현에 비해 그 작품이 다루고자 하는 특정 대상에 대한 상대적으로 자세한 설명을 가한다. 그럼으로써 서사적 표현은 그 대상에 대한 읽는 이의 이해를 통한 인식을 가능케 하는 반면, 시문(詩文)은 보다 짧고 함축적인 언어로써 읽는 이가 느끼고, 추측하며, 상상을 하는 등의 '감성적' 작업을 통해 특정 대상과 제재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게끔 하는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전술했듯이 이런 식의 구분이 현실적으로 각 문학작품에 정확히 적용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을 테지만 다분히 도식적임에도 불구하고 양자간의 차이를 이해하는데 전제(前提)적 구분을 가한다면 이와 같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에 이르러 시에 대한 이러한 생각을 가능하도록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여러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낭만주의 운동(Romantic Movement)'이라는 강한 문학적 움직임을 그 요인으로 꼽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성의 시대'라 규정되는 18세기. 그 시대를 풍미했던 '고전주의'라는 견고한 문학적 진지. 그러나 형식적인 문체와 사고틀이 지배했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 이미 낭만주의는 자신의 알을 부화하고 있었다. 극단적 이성주의로 치닫는 고전주의에 대항하여 16세기, 혹은 중세에로까지의 복귀를 제창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당시의 동시대인들에 의해 "미친놈(madman)"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면서.
하지만 역사와 시대의 거대한 흐름은 거역할 수 없는 법이다. 1789년 7월 14일 전제왕권의 상징과도 같았던 프랑스 바스띠유(Bastille) 감옥이 민중의 힘에 의해 함락되는 것을 계기로 영원토록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봉건적 권력구조가 무너지기 시작하였고, 실로 그러한 운동에 발맞추어 문학사에서도 그간 정통적(orthodoxy)이라 굳게 여겨져 왔던 것들이 무너지면서 그동안 비정통적이라 여겨져 왔던 움직임이 깃발을 들어 올렸던 것이다. 
시대적 변화와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인 거대한 흐름을 타고, 보수보다는 진보를, 이성보다는 감성을, 전통보다는 개인을, 순응보다는 반항을 부르짖는 혁명적 시대정신 혹은 문예사조로서의 '낭만주의'의 본격적인 자리매김의 과정이 진행되던 시기, 자본주의의 급격한 성장과 근대 부르조아 혁명이 전유럽을 강타하던 시기의 혁명적 양상의 한 측면은 이와 같은 흐름으로 대변될 수 있었으며, 그 물줄기의 선두에 바로 William Wordsworth가 있다..
 

2. 본론
 

① 낭만주의의 혁명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18세기로 접어들게 된 유럽에서는 기존의 낡은 형태들이 더 이상의 위세를 떨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움직임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갑작스럽게 나타난 현상은 아니었다. 즉, 일찍이 16세기경부터 영국에서는 부의 가치로서 금(金)을 무조건 많이 축적해야 한다는 중상주의적 경제정책이 등장하여 전유럽의 경제생활 속에서 맹위를 떨치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상황의 배경에는 상품경제의 중요성의 부각이 깔려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상품경제가 인간의 경제활동에서 완연한 보편성을 획득했던 것이 아니라 다만 맹아(萌芽)적 형태로서 존재할 뿐이었지만 그 결정적 지위를 본격적으로 점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경제활동에서의 상품경제의 부각. 이는 다름아닌 자본주의적 경제구조가 구축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증거해주는 것이었다. 결국 상품경제를 본질로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기존의 중세봉건적 생산관계를 조금씩 허물어뜨리면서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제세계에서의 이러한 흐름은 비단 영국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었으며 16세기 이후의 전유럽에 걸쳐 점차로 만연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경제적으로 근대적 부르조아지가 역사의 무대로 등장하게 됨을 암시하는 부분인데, 이를 통하여 상품의 생산과 판매에 의해 부를 축적하게 된 이 계급이 자신들의 권익을 획득하고 더욱 확대시키기 위하여 정치사회적 시민계층을 형성하게 되리라는 18세기의 전반적 상황은 다분히 필연적인 것이었다 할 수 있다. 즉, 18세기에 전유럽에 걸쳐 중세봉건적 질서가 몰락하게 되었던 정치적 상황 이전에 근대 자본주의의 발전이라는 경제적 변혁이 그에 앞서서 낡은 사회구조를 대체하고 있었으므로 언젠가는 정치, 사회, 제도적 변화의 필요성이 대두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인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토대에 비해 상부적 구조요인이라 할 수 있는 이러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움직임은 전술했다시피 18세기에 이르러 급기야 전유럽으로 확산되었으며 1789년의 프랑스 혁명에서 그 결정적인 윤곽이 드러나게 된다. 
18세기를 풍미했던 사조로서의 이성주의는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고찰되어야 할 것이다. 본래 이것은 산업혁명 이후 급속도로 비약적 발전을 하게 된 자본주의적 의식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합리주의 정신의 한 형태였다. 즉, 이러한 사상적 합리주의, 사조적 이성주의는 근대적 과학의 발전에 직면하여 그러한 발전으로부터 기인한 사회구조의 질적 변화를 옹호하고 정당화시키는 논리로서 충실히 작동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문학적 사조로서의 18세기 이성주의에 반발했던 낭만주의의 혁명적 역할을 어떻게 바라보아야만 할 것인가. 이 지점에서 우리는 위에서 말한 시대사상으로서의 합리주의와 문학사조로서의 이성주의를 구분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즉, 합리주의 정신은 인간의 이성을 새로운 사회구조 형성이라는 미래의 역사 속으로 투영시켰던 반면에, 문학적 사조로서의 이성주의는 고대 그리이스, 로마세계라는 과거의 역사를 지향함에 인간의 이성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차이가 그것이었다. 그리하여 18세기의 문학적 이성주의의 사고틀 속에서 문학은 다분히 고답적인 것으로 제한되었으며 인간의 이성에 의해 정형화된 하나의 고정적이고 형식적인 실재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는 당시에는 진보적이며 혁명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던 부르조아지 혹은 정치사회적 시민계층의 입장과는 반대로 귀족적이고 복고적이며 보수적인 입장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문학사조로서의 이성주의가 이전의 르네상스와는 다르게 문예의 영역에서 인간의 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수적으로 고정화되어버린 문학적 이성주의, 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서, 인간의 이성보다는 감성을, 보편화된 전체보다는 개인을, 죽은 틀보다는 생동감있는 움직임을, 그리고 형식적 표현방식보다는 좀더 자유로운 표현방식을 기치로 내걸고 태동하였던 낭만주의의 역사적, 혁명적 정당성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사회구조와 질서가 자본주의적으로 재편되고 있던 근대의 시기에 그러한 진보와 혁명성을 담보하고 있던 것은 시대사상적으로는 합리주의, 이성주의였다고 볼 수 있지만, 문학적 영역에서는 그와는 다르게 낭만주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국 낭만주의의 본질은 다름이 아니라, 그것의 출발지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기존의 고정적인 것에 대한 반발로서의 그 '혁명성'에 있었던 것이다.
 
② W. Wordsworth의 생애와 사상
 
지금까지 낭만주의의 본질적 혹은 시초적 의의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그 낭만주의의 선봉에 섰던 William Wordsworth에 대해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W. Wordsworth는 1770년 북부 England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풍부한 독서를 했고 캠브릿지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후에 유럽 대륙으로 건너갔으며 이런 대륙생활을 통해 프랑스 혁명정신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온통 피로 얼룩져 버린 이상적인 프랑스 혁명정신의 결과를 보면서 그는 젊은 시절 자신이 그토록 열렬히 추종했던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시각에 등을 돌리고 심미적이고 내면적이며, -혹자에 의하면- 보수적이기까지 했던 말년을 보냈다 한다. 하지만 각성된 민중의 역사적 의식과 행동에 힘입어 혁명을 통해 봉건적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흥 부르조아 계급내의 권력다툼으로 변질되어 버린 그 혁명은 더 이상 새로운 세상을 향한 민중들의 열망과는 관계가 없었고, 결국에는 나폴레옹 1세의 전제정치로 귀착될 수밖에 없었으니 Wordsworth의 혁명정신에 대한 좌절과 시각의 선회 또한 이러한 정치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해 못할 바가 아니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폴레옹 1세의 황제 등극. 주지하다시피, 나폴레옹 1세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을 전후한 시기의 양대 정치적 분파였던 정통왕조파로서의 부르봉 왕조파와 신흥 부르조아지의 이해를 대변했던 오를레앙파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정치적 부류였다. 그러나 부르봉 왕조파와 오를레앙파 사이의 정치적 공백을 틈탄 나폴레옹 황제의 집권은 시민계층의 정치적 진출을 통한 근대적 정치체제의 창출이 좌절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오히려 혁명에 역행하는 이른바 '제 1제정' 시대를 결과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약 반세기가 지나 1848년의 2월 혁명이 일어난 후에 기존의 질서를 보존하려는 보수연합 세력과 민중의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쟁취하고자 했던 진보 세력간의 공전상황이 결과하게 되는 루이 보나빠르뜨의 시대착오적 제정체제로 반복이 된다. K. Marx가 정의한 '보나빠르뜨티즘'은 바로 이러한 정치적 권력형태를 지칭한다.
아무튼, 역사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바스띠유 감옥의 함락이라는 상징적 사건이 일어났던 1789년이 중요시될 수 있는 연도라고 본다면, 문학사적으로는 1798년이 의미있는 해라는 주장도 있다. 1798년은 다름아닌 [Lyrical Ballads]가 출간된 해인데, 그 시집은 Samuel Taylor Coleridge와 1796년부터 교우해왔던 그가 Coleridge와 공동으로 펴낸 책이며 낭만주의 운동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이 책의 1800년판의 서문에서 Wordsworth는 '낭만주의 운동의 독립선언(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of the Romantic Movement)'이라는 제하에 그 자신의 시작(詩作) 원칙을 선언하고 있는데 이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ⅰ. 감각과 상상력 (Feeling and Imagination)
 
시라는 것도 인간의 삶을 노래하는 행위라는 당연한 전제에서 이해한다면, 이는 즉, 인간사의 심오한 문제를 건드릴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시는 감각과 상상력에 의해 추동되는 단순성에 기초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의 '자연관'이 엿보이는데, 위에서 말한 단순성이란 자연에 가장 가까운 인간의, 풍경의, 현상들의 그것이라는 것이다. 자연(Nature)이란, Wordsworth에 의하면, 모든 체계를 뛰어넘는 것으로서 인간 삶에서 도덕적인 것들의 스승이자, 행복의 가장 우선적인 전달자 등으로 이야기될 수 있겠는데, 그보다 더 깊이 들어가면 그의 범신론적 사상(pantheism)의 지고한 대상이자 근원으로 설정되어 있다. 결국, 자연이란 신(神)과 동일체이며, 그것으로의 자연으로 인해 모든 사물이 연결된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가 말한 자연과의 동일체로서의 신은 종교적 논리에서 항상 소급되어지는 지고지순한 존재로서의 그것이 아니라 자연의 형태로서 현실에 존재하는 다분히 현실적인 자연 그 자체인 것이다. 중세적인 신학과 차별성을 지니면서, 중세의 이단적 철학자 스피노자의 사상과 닮아있는 Wordsworth의 이러한 범신론적 경향은 분명 당시의 근대적 과학발전의 강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W. Wordsworth의 자연관은 한마디로 범신론이며, 그것에 의해 현상되는 현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자연이자 동시에 바로 신이다. 또한 이러한 시각에 기초하여 그는 궁극적으로는 자연이 현현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하찮은 사물들 속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이는 S. Coleridge의 '초자연적'이며 신비적인 세계관과 대조되는 점이다.
 
ⅱ. 보통의 언어 (the Language of Common Speech)
 
Wordsworth는 'poetic diction'을 거부했다. 이는 낭만주의적 시풍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poetic diction'을 중시했던 Alexander Pope로 대표되는 18세기 고전주의자들에 대한 반항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시는 고상하게 쓰여지는 현학적인 수사일 수는 없으며, 다름아닌 보통 사람들이 쓰는, 엄밀히 말하면, 자연과 가장 가까운 형태인 순박한 시골사람들의 언어, 그들의 삶의 모습 속에서 우러나오는 언어로 쓰여지는 시가 바로 시로서의 진정한 의미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시적인 언어는 보통 사람들의 언어이어야 하는데 이는 겉만 번지르한 도시적인 언어나 '교양있는' 현학적 수사가 아니라 타락하지 않은 채 자연 그 자체의 모습과 닮아 있는 언어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Wordsworth에 의하면, 이러한 시적 언어에 의해서 진정한 상상력과 인간 양심으로의 회귀가 가능하다. 
문학적 언어에 대한 이러한 진전된 사고는 문학이라는 영역이 더 이상은 특권화된 계층이 아니라 좀더 광범위한 대중적 기반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단초를 마련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며, 이 또한 낭만주의 운동의 역사적으로 큰 성과였던 것이다.
 
ⅲ. 고요함 속에서 회상된 정서 ('Emotion recollected in Tranquility)
 
시인에게 있어서 가장 시다운 시를 쓸 수 있는 순간은 정서적인 경험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그 순간이 아니라, 그 경험이 지난후 시인이 자신의 경험을 고요한 상태에서 다시 회상함으로써 시를 만드는 바로 그 순간이라고 하는 주장인데, 이는 유라시아 대륙을 호령했던 몽골의 황제에 관한 꿈을 꾸고 난 후에 즉석에서 일사천리로 [Kubla Khan]이라는 시를 생산했던 Coleridge와는 대조되는 시작(詩作)의 동기이자 자세인 것이다. 
이처럼, W. Wordsworth의 낭만주의 '선언'은 시에 대한 자신의 독창적이고 뛰어난 시각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낭만주의 운동으로서 그 나름의 역사적 의의들을 지니고 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도 부분적이나마 일별했던 것처럼, 그는 [Lyrical Ballads]를 함께 작업했던 S. Coleridge와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을 지니고 있었다. Coleridge가 환상적이며, 초자연적이고 관념적이며, 다소 종교적인 시각에 기반하여 다분히 환상적인 이미지에 천착했던 반면, Wordsworth는 현실적 자연의 가장 친근한 부분인 때묻지 않은 사람들과, 작은 사물들 하나하나에서 보다 구체적인 시적 이미지를 산출했던 것이다. 결국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들의 차이는 감각의 현실성과 초현실성 사이의 그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Wordsworth로 인해 시는 보다 이전의 고전주의적 이성주의자들의 시각과는 전혀 다르게 현실적이고 평범한 모습으로 보통 사람들의 편, 대중의 편으로 한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Wordsworth와 낭만주의의 이러한 성격은 권력이 귀족 이라는 소수계층에 의해서만 전유되었던 중세 봉건적 사회구조를 무너뜨렸던 18세기 유럽적 상황, 권력이 시민계층에게까지 확산되었던 시대의 사상을 문학적으로 대변하고 있다는 결론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문학 자체만을 놓고 이야기한다면, 이와 같은 '혁명적' 성격의 낭만주의로 인해 문학은 이전의 형식적이자 고정적이었던 시각과의 차별성을 통해 문학 자신의 지평을 훨씬 넓혀갈 수 있었던 것이다.
 
 
3. 결론
 

위에서 다룬 것처럼 W. Wordsworth와 [Lyrical Ballads]는 현대 문학사조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 낭만주의적 흐름의 대명사이자, 선두주자이다. 그와 그의 시집이 후대에 의해 그와 같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들이 낭만주의적 시작(詩作)의 원칙을 어느정도 확립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Wordsworth가 Coleridge와 함께 [Lyrical Ballads]를 내면서 낭만주의 운동을 본격적으로 선언했을 당시에는 보수적인 고전주의자들에 의해 갖은 혹평을 받아야 했다고 하지만, 결국 그들의 노력과 움직임이 세월이 흐른 지금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당당하게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혹자들이 비판하는 것처럼, 낭만주의 정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반항성과 전통의 파괴, 정통에 반(反)한 새로운 체계의 구축 등의 진보적 정신을 접어버렸던 말년의 Wordsworth를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물론, 그의 말년 작품이 젊었을 때의 그것보다 질적으로 평가절하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에 대해서 위와 같은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는 이유는 아마도 시인으로서, 시대사상을 대표하는 위치 중 하나인 그런 시인으로서 자신의 사상을 일관되게 지켜내지 못했다는 것이 하나의 작지않은 결함이 될 수 있다는 생각때문일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생각들과 비판들이 가능하겠지만 낭만주의적 사고 자체의 한계를 지적해봄으로써 그에 대한 한 가지 의견을 톺아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지난 세기의 고전주의적 이성주의에 대한 반발로서 꿈틀거리기 시작한 낭만주의. 그러나 고전주의가 아니었으면, 낭만주의적 움직임 또한 불가능했음은 역사적으로 자명한 진실일 터이다. 그런데 패러다임 자체의 변혁을 위한 부정적 인식이 역사적 발전의 측면에서 본다면 피할 수 없는 실천적 인식이자 요소라는 데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낡은 것에 대한 반대가 부정적 인식의 수위까지 다다르지 못하고 단순한 반대명제들의 부르짖음에서 그친다면 그건 말 그대로 반항의 수준에서 제 역할을 마치고 마는 것 아니겠는가. 예를 들면, 고전주의 시대의 '이성'적 측면을 반대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감성'적 측면에 대한 극단적인 강조로 치닫는 것은 제대로 된 발전의 상을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고전주의 시대의 '이성주의'가 잘못되었다고 평가되는 이유는 '이성'이라는 인간에게 있어 불가결한 요소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이 그렇게 유용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고전주의적 패러다임이 낡았기 때문인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만약 낡은 것에 대한 부정이 반항에서 그쳐버린다면 낡은 사고틀 자체의 전복은 고사하고 똑같은 사고틀의 반복만을 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Lyrical Ballads]를 매개로 W. Wordsworth가 주창했던 선도적 낭만주의 선언이 이러한 문학사적 발전의 커다란 한 축을 형성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일관되지 못한 사상이 일면 비판을 받는 이유는 지난세기에 대한, 그리고 프랑스 혁명이라는 당시의 중대한 정치적 사건에 대한 불충분한 인식에 기인하는 것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혁명정신의 이상성(Idealism)만을 바라보는 Wordsworth의 '감성'적인 측면으로서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의 혁명의 연속성을 볼 수 있는 '이성'적 측면까지 포괄할 수 없었기에 그는 일관된 자신의 사상을 견지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가 하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혁명성이란 이성에 대한 단순한 반발로서 감성을 내세운 낭만주의가 보여준 것처럼 '부정을 위한 부정'이 아니라, 이전의 것에 대한 올바른 지양과 끊임없는 자기부정인 '부정의 부정'이 지난하게 반복되는 과정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낭만주의 영시], 이재호 編著, <탐구당>, 1975.
[영문학개설], 김용철 編著, <탐구당>, 1990.
[English Literature], Anthony Burgess, <Longman>, 1958.
[프랑스혁명사 3부작], K. Marx, 임지현/이종훈 譯, <소나무>, 1987.
[이성과 혁명], H. Marcuse, 김현일/윤길순 譯, <중원문화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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