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민중사 - 중세의 붕괴부터 현대까지, 보통사람들이 만든 600년의 거대한 변화
윌리엄 A. 펠츠 지음, 장석준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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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 '보통사람들'의 역사관 : '계급투쟁'
- [유럽민중사](2016), 윌리엄 펠츠, 장석준 옮김, <서해문집>, 2018.



"[유럽민중사]는 주류 교과서와 연구 대신 읽을 만한 간결한 대안으로서, 유럽사의 발전과 궤적을 다르게 이해하자고 제안한다. 즉 역사를 상층계급 통치자와 사상가들의 빛나는 통찰의 결과가 아니라 경쟁하는 '집단'간의 '투쟁'을 통한 변동으로 바라본다... 서유럽 봉건제의 쇠퇴와 붕괴에서 출발하는 이 책은 반란자, 이의제기자, 비순응주의자, 보통사람의 기여를 폭넓게 추적한다. 이 책은 다른 교과서가 얼버무리고 넘어가거나 무시하는 개인과 사건에 주목할 것이다. 가령 이 책의 독자는 종교개혁 중에 얀 후스(Jan Hus)가 기여한 바와 19세기 파리코뮌을 좀 더 깊이 살펴볼 것이다."
- W. Pelz, [유럽민중사], <서문>, 2016.


역사는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가 말한 '과거와 현재의 대화'로서 이를 거울삼아 미래를 조망한다. '과거'의 사례가 동일하게 반복되지는 않으므로 객관적 조건의 인과관계 분석을 통해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고 '미래'의 방향을 예측하거나 대응방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역사'를 돌아본다.
'역사'는 하나의 '과학'이기는 하나 '자연과학'처럼 '필연'적 인과관계를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사회과학'이고, '사회과학'은 '필연성'보다는 '경향성'으로 나타난다.
'철학'은 이 지점에서 '역사'에 개입하며, 이 '경향성'을 가지고 인류가 갈 방향을 가리킨다.
'자연과학'적 태도를 강조하는 '실증주의'와 대비되는 이 '철학'의 '실천'은 사회를 이루는 인간 '집단'간의 관계를 기반으로 드러나는 바, 다수 노동자들의 '철학'인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정치경제적 현실을 토대로 하는 이 '집단'들의 관계를 '계급'이라 규정했고, 이 유물론 '철학'이 가리키는 '경향성'과 방향은 '계급'적 '당파성'이 된다.
그리하여, 유물론적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집단적 대화'다.


미국의 노동역사가 윌리엄 펠츠는 [유럽민중사](2016)를 통해 이 '계급'을 중심으로 소수의 지배적인 역사기록이 아닌 다수 노동자들의 '대안'적 '역사'를 제시하면서 중세유럽의 붕괴로부터 현대까지의 '유럽민중들'의 '역사'를 기술한다. 
펠츠의 역사관으로 돌아보는 '보통사람들' 즉 민중의 역사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지배자들'의 기록이 아니므로 중세의 공고한 성체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종교개혁에서 루터나 칼뱅이 아닌 그 이전부터 일어난 후스나 뮌처의 종교개혁운동에 주목하고, 1848년 유럽의 공화정 복원과 이후의 왕정복고 등의 정치변혁보다는 1871년의 프랑스 파리코뮌에 더 방점을 둔다.


"말하자면 종교개혁 덕분에 유럽인 일부는 로마(교황)의 착취에서 자유로워졌을지 모르지만, 루터, 칼뱅 또는 두 사람의 후원자들이 그어 놓은 한계선을 넘어서려는 시도는 모두 진압당했다. 로마에서 벗어날 자유를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로 확대하려 한 이들은 기독교적 자비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방식으로 분쇄됐다... 후스나 뮌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기독교 공동체든 마녀 혐의를 덮어쓴 '간교한' 여성이든, 아니면 유대인과 무슬림처럼 단순히 다른 방식으로 신을 경배하는 사람이든 통치자가 이들에게 제시한 선택지는 하나 뿐이었다. 복종하든가 아니면 죽어라."
- W. Pelz, [유럽민중사], <"다른 종교개혁": 마르틴 루터, 종교 교리, 그리고 보통사람들>, 2016.


마르크스가 [프랑스혁명사] 3부작의 1부작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에서 분석한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은 나폴레옹 1세의 제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다시 세운 것에 의의를 두기보다, 다수 노동계급의 힘으로 세운 부르주아 공화국이 곧바로 이 다수들을 어떻게 배신하고 '반혁명'으로 돌아섰는가에 중점을 둔다.
중세 교황청의 '면죄부 매매'에 반발하여 '95개조 반박문'을 내건 루터가 그 이전부터 중세 교회의 부정부패를 바꾸려 했던 후스와 뮌처의 다수의지를 탄압한 사실이나 1848년 혁명정부가 뒤이은 노동자투쟁을 억압하고 분쇄한 사실, 한국의 1987년 6월 민주화투쟁이 정치적 민주화에 멈춘 채 뒤이은 7~8월 노동자대투쟁을 억압했고 2016년 촛불항쟁에 편승하여 집권한 지금의 민주당 세력이 노동자투쟁을 길들이며 적폐청산 조차도 주저하는 사실 등이 '보통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반복되는 역사적 '경향성'이다.


"(파리)코뮌은 정부를 오래 지속하지도 못했고, 사회를 분명한 방식으로 즉각 변혁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보통사람들이, 단지 저항의 수준을 넘어 권력을 잡고 통치한 사례로서, 이는 좌파에게는 희망이요, 우파에게는 악몽이었다... 코뮌은 유럽 노동운동의 의식에서 중요한 부분이었다. 승자들은 이 사례의 힘을 이해했고, 그래서 이 기억을 파괴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코뮌은 오늘날까지 기억된다. 코뮌은 다양한 측면에서 유럽의 조직 노동계급, 그 중에서도 특히 급진적인 부분의 기억이나 이야기이자 하나의 창세신화다. 파리 함락과 뒤이은 잔인한 억압을 통해 좌파가 맛본 좌절에도 보통사람들은 코뮌 진압부터 1914~1918년의 제국주의 대학살에 이르는 시기에 스스로를 성공적으로 조직할 수 있었다."
- W. Pelz, [유럽민중사], <1848~1849년 혁명부터 최초의 민중민주주의까지 : 파리코뮌>, 2016.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계급사회에서 계급이 철폐된  무계급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체제로서 다수 노동계급의 독재인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구체적인 형태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는 프랑스 나폴레옹 3세의 '루이 보나파르트 브뤼메르 18일'의 제정과 독일의 전쟁에 지친 프랑스 민중들이 세운 1871년의 '파리 코뮌'을 뭐라 규정할 수 없는 '스핑크스'라 표현하면서도 한편으로 "이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는 '파리 코뮌'을 [프랑스 혁명사] 3부작의 3부 <프랑스 내전>에서 분석하고 있다.
전쟁 중이던 적국 독일과 결탁한 프랑스 정부에 의해 '파리 코뮌' 노동자 정부는 처절하게 분쇄되었는데, 지배자들에게는 심지어 전쟁 중에도 적국 보다는, '정치인의 노동자 평균임금'과 '정치인 소환제'를 주장하는 자국 '노동자 정부'가 더 위협적인 적이었던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인 대규모 폭력으로 고통받는 것이 러시아 민중만이 아니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신경이 곤두선 지배계급은 혁명, 아니 실제로는 급진개혁까지 차단하려고 억압에 기대는 상황이었기에 체계적인 대규모 억압이 곧 일상의 질서가 됐다. 이 위로부터의 계급전쟁 시기는 너무도 자주 망각되곤 한다. 이 시기를 기억함으로써 폭력의 원흉이 좌파라는 주류 서사를 대폭 정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파시즘이 성장하고 발전한 배경을 설명할 수도 있다. 민족주의는 낡은 통치자들이 아래로부터의 반항적 운동에 맞서면서 내놓은 으뜸패였다."
- W. Pelz, [유럽민중사], <전쟁이 혁명을 낳다 : 러시아(1917), 중부 유럽(1918~1919)>, 2016.


지배계급이 가장 두려워 한 것이 다른 나라의 침략이 아닌 자국 '보통사람들', 피지배노동계급의 권리 확대와 권력 장악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이후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도 또 다시 반복되는데, 경제위기를 빌미로 다수 노동계급을 포섭한 파시즘 체제는 이미 사회민주당까지 이용하여 급진파를 제압했고 1917년 러시아 부르주아 임시정부는 민중들이 살기 위해 외치는 '반전평화'를 무시한 채 다수 노동자들을 전장으로 내몰다가 '노동자-병사 소비에트'에 의해 결국 무너지고 만다. 
소수 지배자들은 자국의 다수 노동자들에 의해 쫓겨나느니 차라리 '민족'이나 '조국'의 이익을 내세워 적국과 전쟁을 불사한다.
세계대전이나 우리의 한국전쟁 등을 막론하고 지배자들과 그들의 '연합군'은 무차별 융단 폭격으로 다수 '보통사람들'의 씨를 말렸고 '서북청년단' 등의 극우행동단체와 '보도연맹' 같은 '전향단체'를 통해 다수 '보통사람들'을 관리하고 '정리'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다수 노동자들은 '조국'과 '민족'이 아닌 스스로가 살기 위해 혁명을 선택하게 된다.


"... 동기가 이념이었든 민족주의였든 또는 단순한 생존 본능이었든 파시즘에 맞선 유럽인들의 투쟁... 처칠 같은 지도자는 대영제국을 지키려고, 스탈린은 독재를 유지하려고 싸웠지만, 민중 대부분은 제국을 지키려고 싸우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위해 싸웠다."
- W. Pelz, [유럽민중사], <파시스트 테러에 맞서 : 전쟁과 인종 학살, 1933~1945>, 2016.


'보통사람들'에게 '계급투쟁'은 '이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이었다.
'보통사람들'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으로 살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소수 지배자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국경도 없는 '이익동맹'으로 결속하는 반면, 다수 '보통사람들'은 '함께 살기' 위해 역시 '조국'과 '민족'을 초월하여 개인이든 집단이든 서로간의 굳건한 '연대'로 맞선다.


"물론 노동자들의 정서는 변덕스러웠고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날마다 마음이 바뀌었다. 어떤 상황에서는 혁명을 받아들이는 노동자라도 다른 환경에서는 개혁을 지지할 수 있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거의 모든 민중의 태도는 절대적이라기 보다는 조건부였다. 좌파 중에도 편견, 인종주의, 편협함이 존재했지만, 운동의 전반적인 성격은 '수용성(acceptance)'이었다. 자기도 억압당하는 신세였기에 노동자 대부분은 식민지 주민이든 피억압 소수민족이든 '약자들'에 공감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럼에도 정치적 관점은 매우 다양했지만 말이다."
- W. Pelz, [유럽민중사], <노동계급의 발흥 : 노동조합과 사회주의, 1871~1914>, 2016.


이러한 역사적 '경향성'은 수차례 입증되었다. 그러나 '보통선거권'과 '민주주의'가 너무도 당연한 지금 여전히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있다.

"왜 가난한 노동자들이 부자를 지지하는가?"

혹자는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은 '자연스러운 욕망'으로 답할 수도 있고, 다른 부류는 '급진적'일 수 없는 현실 정치로 대답할 수도 있겠다. '현실'을 불변하는 고정태로 보는 한 답변은 결국 제한된다.
역사 속의 모든 '현실'들은 '과거'가 되었고, 당시의 '미래'가 항상 지금의 '현실'이 되었다. 그렇다면 노동하지 않으면 가난할 수 밖에 없는 다수 '보통사람들'이 이러한 '유물론'적 '역사관'과 '변증법'적 '철학'으로 무장하고 결국 이 세계의 주인이 되는 수 밖에 없다. 개인이 아닌 노동하는 다수 '집단'의 형태로서 현대 사회에서는 비단 정치 영역 뿐 아니라 직장과 학교, 가정의 모든 생활 영역에서 '권력 투쟁'을 통해 주인이 되어야 한다. 
펠츠는 이러한 시각으로 모든 장의 후반부에 역사상 억압받아 온 '여성'들이 항상 함께 투쟁해 온 사례들을 빠뜨리지 않고 언급한다.
'다수' 중 억압받는 '소수'를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많은 경우 보통사람들은 패배했다. 적어도 단기적으로 보면 그랬다. 반동과 잔인한 탄압의 시기도 있었지만, 일단 민중이 투쟁하면 거대한 진보를 이룰 가능성이 열린다. 반면 그들이 무관심이나 절망에 빠져들면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오직 하나다. 그것은 더 나은 세상이라는 이상과 이를 위해 투쟁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민중은 패배한다는 사실이다."
- W. Pelz, [유럽민중사], <유럽, 21세기에 던져지다>, 2016.


'보통사람들', '민중'의 역사는 '승리의 역사'가 아니다. 매번 실패와 패배를 반복한 역사다. 하지만, 거대한 역사의 흐름은 이 다수가 옳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순히 '다수'라서 옳은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옳은 것이 결국 승리한다는 사례는 세계사에서 무수히 많다.
펠츠의 결론대로 "더 나은 세상이라는 이상과 이를 위해 투쟁하려는 의지"를 놓지 않는 한, 다수 '보통사람들'은 역사에서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선언한 대로, 다수가 역사에서 얻는 것은 작은 '승리'가 아니라, '단결'의 기억이다. 


"노동자들은 때때로 승리하지만, 그 승리는 일시적일 뿐이다. 투쟁의 진정한 성과는 직접적인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노동자들의 단결이 확대되는 데에 있다. 대공업이 만들어낸 개선된 교통수단은 여러 지역의 노동자들을 서로 연결시켜 줌으로써 노동자들의 단결은 더욱 촉진된다. 이러한 연결이 이루어지기만 하면, 어디서나 동일한 성격을 띤 수많은 지역적 투쟁이 하나의 전국적 투쟁, 즉'계급투쟁'으로 집중된다. 그런데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투쟁'이다. 빈약한 도로망을 가졌던 중세의 도시민들이 수세기에 걸쳐 달성한 그 '단결'을 현대 프롤레타리아는 '철도'의 덕택으로 수년 안에 달성하고있다."
- K.Marx/F.Engels, [공산당선언](1848), <1장.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황광우/장석준 옮김([레즈를 위하여], <실천문학사>, 2003.)


현대에서는 19세기 자본주의 발전의 첨병 '철도'가 아니라 21세기의 첨병인 'SNS'가 '계급투쟁'의 도구가 된다.


"제조현장에서 시작된 혁신은 공장의 '원가계산(Cost Accounting)' 개혁을 거쳐서 '관리회계(Management Accounting)'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그 기원은 19세기 철도회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철도회사에서 시작된 원가계산이나 관리회계의 흐름이 이윽고 제조업으로 계승되어갔다. 원래 중세 이탈리아에서 '자신을 위해' 행해졌던 회계는 동인도회사의 국가 네덜란드, 산업혁명의 국가 영국, 투자가보호의 국가 미국을 거치면서 '타인을 위해' 실행되어갔다. 이것을 다시 '자신을 위해' 실행하도록 되돌린 것이 '관리회계'다."
- 다나카 야스히로, [부의 지도를 바꾼 회계의 세계사], 황선종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9.

물론, 인간 '집단'의 관계만이 아닌 회계'나 '의학', '질병'을 중심으로 '세계사'를 돌아보는 것도 '역사' 공부의 재미일 수 있다.

일본의 공인회계사 다나카 야스히로는 원시적 자본주의 '시초축적' 시기인 르네상스 상업주의 시대부터 공증인 아버지 덕에 기록과 종이에 익숙했던 레오나르드 다빈치 이야기, 상업자본에 의한 부기의 시작, 재무회계에서 관리회계로의 전환, 산업혁명 이후 영국에서 미국으로 주도권이 넘어가게 된 투자가혁명과 국제회계기준 등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19세기 '회계 혁명'은 대규모 합병을 통해 연결재무제표를 고안한 철도회사에서 시작되었으며 이곳에서 '회계'를 배운 앤드류 카네기가 철강왕이 되고 역시 '회계'를 익힌 존 록펠러가 석유러시 시기에 석유채굴이 아닌 석유정제로 부자가 된 이야기, 골드러시 시기에 금광이 아닌 '리-바이스' 청바지 작업복으로 성공한 레비-스트로스 이야기 등을 통해 '역사'를 볼 수도 있겠다.


한편으로 우리나라에서 작금의 '역사 대중화'에 힘쓰는 역사 '강사'와 '교사'들의 노력은 위와 같은 흥미로운 주제 뿐만 아니라 역사를 관통하는 일관된 관점을 제공함으로써 다수 대중에게 감동과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의 설민석 강사와 최태성 교사가 그러한데 그들은 '촛불항쟁' 이후 다수의 '대중투쟁'과 '민주주의'라는 시대흐름은 타되 '계급'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역시 일본의 명문 입시강사라는 우야마 다쿠에이는 [너무 재밌어서 잠 못드는 세계사](오세웅 옮김, <생각의길>, 2016) 같은 세계사 책에서 역시 '대안적' 세계사의 대중화를 꾀하는데, 그는 우리의 '대중역사가'들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세계사의 기본규칙과 역사의 필수복선으로 '계급투쟁'과 '욕망', '돈의 흐름' 및 '하부구조-상부구조'라는 '사회구성체론'까지 담는다.


이처럼, 일관된 '관점'과 키워드는 '역사'를 읽는데 필수적이다. 다만, 다시금 '철학'적 방향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철학'은 없이 '고증'과 '실증'의 '과학'만을 중시하는 역사관은 민족주의 또는 사대주의 논쟁틀을 벗어날 수 없고, '코로나19'가 창궐한 전세계적 '팬데믹' 시기인 지금 '질병'이라는 현재 뜨거운 키워드를 가지고 별 의미없는 역사관을 드러내는 독일의사 로날드 게르슈테의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를 읽느라 시간낭비하느니, 단국대 의대 서민 교수의 [의학 세계사]로 의학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구경하는 게 훨씬 낫다.


저명한 의학 저널리스트라는 게르슈테에게 '역사'는 독일제국의 빌헬름1세의 황태자 프리드리히3세가 후두암으로 죽지 않았다면 독일제국이 좀더 민주화될 수도 있었을 것이며, '냉전의 책임자' 레닌의 뇌경색은 러시아 혁명시기 망명시절에 걸린 '매독' 때문일 수 있다는 음모로 가득찬 공간이다.
본인은 역사적 가설을 믿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반복해 말하고는 있으나 결국 '영웅주의적 우익 역사관'에 기반한 그의 '세계사' 책 원제목도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가 아니라 [질병이 '만든' 역사]다.


***

1. [유럽민중사], 윌리엄 펠츠, 장석준 옮김, <서해문집>, 2018.
2. [부의 지도를 바꾼 회계의 세계사], 다나카 야스히로, 황선종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9.
3. [프랑스 혁명사 3부작], 칼 마르크스, 임지현/이종훈 옮김, <소나무>, 1987.
4. [너무 재밌어서 잠 못드는 세계사], 우야마 다쿠에이, 오세웅 옮김, <생각의길>, 2016.
5. [레즈를 위하여 - 새롭게 읽는 '공산당선언'], 황광우/장석준, <실천문학사>, 2003.
6. [서민 교수의 의학세계사], 서민, <생각정원>, 2018.
7.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로날트 게르슈테, 강희진 옮김, <미래의창>,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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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지도를 바꾼 회계의 세계사
다나카 야스히로 지음, 황선종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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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 '보통사람들'의 역사관 : '계급투쟁'
- [유럽민중사](2016), 윌리엄 펠츠, 장석준 옮김, <서해문집>, 2018.



"[유럽민중사]는 주류 교과서와 연구 대신 읽을 만한 간결한 대안으로서, 유럽사의 발전과 궤적을 다르게 이해하자고 제안한다. 즉 역사를 상층계급 통치자와 사상가들의 빛나는 통찰의 결과가 아니라 경쟁하는 '집단'간의 '투쟁'을 통한 변동으로 바라본다... 서유럽 봉건제의 쇠퇴와 붕괴에서 출발하는 이 책은 반란자, 이의제기자, 비순응주의자, 보통사람의 기여를 폭넓게 추적한다. 이 책은 다른 교과서가 얼버무리고 넘어가거나 무시하는 개인과 사건에 주목할 것이다. 가령 이 책의 독자는 종교개혁 중에 얀 후스(Jan Hus)가 기여한 바와 19세기 파리코뮌을 좀 더 깊이 살펴볼 것이다."
- W. Pelz, [유럽민중사], <서문>, 2016.


역사는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가 말한 '과거와 현재의 대화'로서 이를 거울삼아 미래를 조망한다. '과거'의 사례가 동일하게 반복되지는 않으므로 객관적 조건의 인과관계 분석을 통해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고 '미래'의 방향을 예측하거나 대응방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역사'를 돌아본다.
'역사'는 하나의 '과학'이기는 하나 '자연과학'처럼 '필연'적 인과관계를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사회과학'이고, '사회과학'은 '필연성'보다는 '경향성'으로 나타난다.
'철학'은 이 지점에서 '역사'에 개입하며, 이 '경향성'을 가지고 인류가 갈 방향을 가리킨다.
'자연과학'적 태도를 강조하는 '실증주의'와 대비되는 이 '철학'의 '실천'은 사회를 이루는 인간 '집단'간의 관계를 기반으로 드러나는 바, 다수 노동자들의 '철학'인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정치경제적 현실을 토대로 하는 이 '집단'들의 관계를 '계급'이라 규정했고, 이 유물론 '철학'이 가리키는 '경향성'과 방향은 '계급'적 '당파성'이 된다.
그리하여, 유물론적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집단적 대화'다.


미국의 노동역사가 윌리엄 펠츠는 [유럽민중사](2016)를 통해 이 '계급'을 중심으로 소수의 지배적인 역사기록이 아닌 다수 노동자들의 '대안'적 '역사'를 제시하면서 중세유럽의 붕괴로부터 현대까지의 '유럽민중들'의 '역사'를 기술한다. 
펠츠의 역사관으로 돌아보는 '보통사람들' 즉 민중의 역사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지배자들'의 기록이 아니므로 중세의 공고한 성체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종교개혁에서 루터나 칼뱅이 아닌 그 이전부터 일어난 후스나 뮌처의 종교개혁운동에 주목하고, 1848년 유럽의 공화정 복원과 이후의 왕정복고 등의 정치변혁보다는 1871년의 프랑스 파리코뮌에 더 방점을 둔다.


"말하자면 종교개혁 덕분에 유럽인 일부는 로마(교황)의 착취에서 자유로워졌을지 모르지만, 루터, 칼뱅 또는 두 사람의 후원자들이 그어 놓은 한계선을 넘어서려는 시도는 모두 진압당했다. 로마에서 벗어날 자유를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로 확대하려 한 이들은 기독교적 자비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방식으로 분쇄됐다... 후스나 뮌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기독교 공동체든 마녀 혐의를 덮어쓴 '간교한' 여성이든, 아니면 유대인과 무슬림처럼 단순히 다른 방식으로 신을 경배하는 사람이든 통치자가 이들에게 제시한 선택지는 하나 뿐이었다. 복종하든가 아니면 죽어라."
- W. Pelz, [유럽민중사], <"다른 종교개혁": 마르틴 루터, 종교 교리, 그리고 보통사람들>, 2016.


마르크스가 [프랑스혁명사] 3부작의 1부작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에서 분석한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은 나폴레옹 1세의 제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다시 세운 것에 의의를 두기보다, 다수 노동계급의 힘으로 세운 부르주아 공화국이 곧바로 이 다수들을 어떻게 배신하고 '반혁명'으로 돌아섰는가에 중점을 둔다.
중세 교황청의 '면죄부 매매'에 반발하여 '95개조 반박문'을 내건 루터가 그 이전부터 중세 교회의 부정부패를 바꾸려 했던 후스와 뮌처의 다수의지를 탄압한 사실이나 1848년 혁명정부가 뒤이은 노동자투쟁을 억압하고 분쇄한 사실, 한국의 1987년 6월 민주화투쟁이 정치적 민주화에 멈춘 채 뒤이은 7~8월 노동자대투쟁을 억압했고 2016년 촛불항쟁에 편승하여 집권한 지금의 민주당 세력이 노동자투쟁을 길들이며 적폐청산 조차도 주저하는 사실 등이 '보통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반복되는 역사적 '경향성'이다.


"(파리)코뮌은 정부를 오래 지속하지도 못했고, 사회를 분명한 방식으로 즉각 변혁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보통사람들이, 단지 저항의 수준을 넘어 권력을 잡고 통치한 사례로서, 이는 좌파에게는 희망이요, 우파에게는 악몽이었다... 코뮌은 유럽 노동운동의 의식에서 중요한 부분이었다. 승자들은 이 사례의 힘을 이해했고, 그래서 이 기억을 파괴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코뮌은 오늘날까지 기억된다. 코뮌은 다양한 측면에서 유럽의 조직 노동계급, 그 중에서도 특히 급진적인 부분의 기억이나 이야기이자 하나의 창세신화다. 파리 함락과 뒤이은 잔인한 억압을 통해 좌파가 맛본 좌절에도 보통사람들은 코뮌 진압부터 1914~1918년의 제국주의 대학살에 이르는 시기에 스스로를 성공적으로 조직할 수 있었다."
- W. Pelz, [유럽민중사], <1848~1849년 혁명부터 최초의 민중민주주의까지 : 파리코뮌>, 2016.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계급사회에서 계급이 철폐된  무계급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체제로서 다수 노동계급의 독재인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구체적인 형태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는 프랑스 나폴레옹 3세의 '루이 보나파르트 브뤼메르 18일'의 제정과 독일의 전쟁에 지친 프랑스 민중들이 세운 1871년의 '파리 코뮌'을 뭐라 규정할 수 없는 '스핑크스'라 표현하면서도 한편으로 "이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는 '파리 코뮌'을 [프랑스 혁명사] 3부작의 3부 <프랑스 내전>에서 분석하고 있다.
전쟁 중이던 적국 독일과 결탁한 프랑스 정부에 의해 '파리 코뮌' 노동자 정부는 처절하게 분쇄되었는데, 지배자들에게는 심지어 전쟁 중에도 적국 보다는, '정치인의 노동자 평균임금'과 '정치인 소환제'를 주장하는 자국 '노동자 정부'가 더 위협적인 적이었던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인 대규모 폭력으로 고통받는 것이 러시아 민중만이 아니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신경이 곤두선 지배계급은 혁명, 아니 실제로는 급진개혁까지 차단하려고 억압에 기대는 상황이었기에 체계적인 대규모 억압이 곧 일상의 질서가 됐다. 이 위로부터의 계급전쟁 시기는 너무도 자주 망각되곤 한다. 이 시기를 기억함으로써 폭력의 원흉이 좌파라는 주류 서사를 대폭 정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파시즘이 성장하고 발전한 배경을 설명할 수도 있다. 민족주의는 낡은 통치자들이 아래로부터의 반항적 운동에 맞서면서 내놓은 으뜸패였다."
- W. Pelz, [유럽민중사], <전쟁이 혁명을 낳다 : 러시아(1917), 중부 유럽(1918~1919)>, 2016.


지배계급이 가장 두려워 한 것이 다른 나라의 침략이 아닌 자국 '보통사람들', 피지배노동계급의 권리 확대와 권력 장악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이후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도 또 다시 반복되는데, 경제위기를 빌미로 다수 노동계급을 포섭한 파시즘 체제는 이미 사회민주당까지 이용하여 급진파를 제압했고 1917년 러시아 부르주아 임시정부는 민중들이 살기 위해 외치는 '반전평화'를 무시한 채 다수 노동자들을 전장으로 내몰다가 '노동자-병사 소비에트'에 의해 결국 무너지고 만다. 
소수 지배자들은 자국의 다수 노동자들에 의해 쫓겨나느니 차라리 '민족'이나 '조국'의 이익을 내세워 적국과 전쟁을 불사한다.
세계대전이나 우리의 한국전쟁 등을 막론하고 지배자들과 그들의 '연합군'은 무차별 융단 폭격으로 다수 '보통사람들'의 씨를 말렸고 '서북청년단' 등의 극우행동단체와 '보도연맹' 같은 '전향단체'를 통해 다수 '보통사람들'을 관리하고 '정리'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다수 노동자들은 '조국'과 '민족'이 아닌 스스로가 살기 위해 혁명을 선택하게 된다.


"... 동기가 이념이었든 민족주의였든 또는 단순한 생존 본능이었든 파시즘에 맞선 유럽인들의 투쟁... 처칠 같은 지도자는 대영제국을 지키려고, 스탈린은 독재를 유지하려고 싸웠지만, 민중 대부분은 제국을 지키려고 싸우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위해 싸웠다."
- W. Pelz, [유럽민중사], <파시스트 테러에 맞서 : 전쟁과 인종 학살, 1933~1945>, 2016.


'보통사람들'에게 '계급투쟁'은 '이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이었다.
'보통사람들'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으로 살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소수 지배자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국경도 없는 '이익동맹'으로 결속하는 반면, 다수 '보통사람들'은 '함께 살기' 위해 역시 '조국'과 '민족'을 초월하여 개인이든 집단이든 서로간의 굳건한 '연대'로 맞선다.


"물론 노동자들의 정서는 변덕스러웠고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날마다 마음이 바뀌었다. 어떤 상황에서는 혁명을 받아들이는 노동자라도 다른 환경에서는 개혁을 지지할 수 있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거의 모든 민중의 태도는 절대적이라기 보다는 조건부였다. 좌파 중에도 편견, 인종주의, 편협함이 존재했지만, 운동의 전반적인 성격은 '수용성(acceptance)'이었다. 자기도 억압당하는 신세였기에 노동자 대부분은 식민지 주민이든 피억압 소수민족이든 '약자들'에 공감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럼에도 정치적 관점은 매우 다양했지만 말이다."
- W. Pelz, [유럽민중사], <노동계급의 발흥 : 노동조합과 사회주의, 1871~1914>, 2016.


이러한 역사적 '경향성'은 수차례 입증되었다. 그러나 '보통선거권'과 '민주주의'가 너무도 당연한 지금 여전히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있다.

"왜 가난한 노동자들이 부자를 지지하는가?"

혹자는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은 '자연스러운 욕망'으로 답할 수도 있고, 다른 부류는 '급진적'일 수 없는 현실 정치로 대답할 수도 있겠다. '현실'을 불변하는 고정태로 보는 한 답변은 결국 제한된다.
역사 속의 모든 '현실'들은 '과거'가 되었고, 당시의 '미래'가 항상 지금의 '현실'이 되었다. 그렇다면 노동하지 않으면 가난할 수 밖에 없는 다수 '보통사람들'이 이러한 '유물론'적 '역사관'과 '변증법'적 '철학'으로 무장하고 결국 이 세계의 주인이 되는 수 밖에 없다. 개인이 아닌 노동하는 다수 '집단'의 형태로서 현대 사회에서는 비단 정치 영역 뿐 아니라 직장과 학교, 가정의 모든 생활 영역에서 '권력 투쟁'을 통해 주인이 되어야 한다. 
펠츠는 이러한 시각으로 모든 장의 후반부에 역사상 억압받아 온 '여성'들이 항상 함께 투쟁해 온 사례들을 빠뜨리지 않고 언급한다.
'다수' 중 억압받는 '소수'를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많은 경우 보통사람들은 패배했다. 적어도 단기적으로 보면 그랬다. 반동과 잔인한 탄압의 시기도 있었지만, 일단 민중이 투쟁하면 거대한 진보를 이룰 가능성이 열린다. 반면 그들이 무관심이나 절망에 빠져들면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오직 하나다. 그것은 더 나은 세상이라는 이상과 이를 위해 투쟁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민중은 패배한다는 사실이다."
- W. Pelz, [유럽민중사], <유럽, 21세기에 던져지다>, 2016.


'보통사람들', '민중'의 역사는 '승리의 역사'가 아니다. 매번 실패와 패배를 반복한 역사다. 하지만, 거대한 역사의 흐름은 이 다수가 옳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순히 '다수'라서 옳은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옳은 것이 결국 승리한다는 사례는 세계사에서 무수히 많다.
펠츠의 결론대로 "더 나은 세상이라는 이상과 이를 위해 투쟁하려는 의지"를 놓지 않는 한, 다수 '보통사람들'은 역사에서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선언한 대로, 다수가 역사에서 얻는 것은 작은 '승리'가 아니라, '단결'의 기억이다. 


"노동자들은 때때로 승리하지만, 그 승리는 일시적일 뿐이다. 투쟁의 진정한 성과는 직접적인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노동자들의 단결이 확대되는 데에 있다. 대공업이 만들어낸 개선된 교통수단은 여러 지역의 노동자들을 서로 연결시켜 줌으로써 노동자들의 단결은 더욱 촉진된다. 이러한 연결이 이루어지기만 하면, 어디서나 동일한 성격을 띤 수많은 지역적 투쟁이 하나의 전국적 투쟁, 즉'계급투쟁'으로 집중된다. 그런데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투쟁'이다. 빈약한 도로망을 가졌던 중세의 도시민들이 수세기에 걸쳐 달성한 그 '단결'을 현대 프롤레타리아는 '철도'의 덕택으로 수년 안에 달성하고있다."
- K.Marx/F.Engels, [공산당선언](1848), <1장.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황광우/장석준 옮김([레즈를 위하여], <실천문학사>, 2003.)


현대에서는 19세기 자본주의 발전의 첨병 '철도'가 아니라 21세기의 첨병인 'SNS'가 '계급투쟁'의 도구가 된다.


"제조현장에서 시작된 혁신은 공장의 '원가계산(Cost Accounting)' 개혁을 거쳐서 '관리회계(Management Accounting)'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그 기원은 19세기 철도회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철도회사에서 시작된 원가계산이나 관리회계의 흐름이 이윽고 제조업으로 계승되어갔다. 원래 중세 이탈리아에서 '자신을 위해' 행해졌던 회계는 동인도회사의 국가 네덜란드, 산업혁명의 국가 영국, 투자가보호의 국가 미국을 거치면서 '타인을 위해' 실행되어갔다. 이것을 다시 '자신을 위해' 실행하도록 되돌린 것이 '관리회계'다."
- 다나카 야스히로, [부의 지도를 바꾼 회계의 세계사], 황선종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9.

물론, 인간 '집단'의 관계만이 아닌 회계'나 '의학', '질병'을 중심으로 '세계사'를 돌아보는 것도 '역사' 공부의 재미일 수 있다.

일본의 공인회계사 다나카 야스히로는 원시적 자본주의 '시초축적' 시기인 르네상스 상업주의 시대부터 공증인 아버지 덕에 기록과 종이에 익숙했던 레오나르드 다빈치 이야기, 상업자본에 의한 부기의 시작, 재무회계에서 관리회계로의 전환, 산업혁명 이후 영국에서 미국으로 주도권이 넘어가게 된 투자가혁명과 국제회계기준 등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19세기 '회계 혁명'은 대규모 합병을 통해 연결재무제표를 고안한 철도회사에서 시작되었으며 이곳에서 '회계'를 배운 앤드류 카네기가 철강왕이 되고 역시 '회계'를 익힌 존 록펠러가 석유러시 시기에 석유채굴이 아닌 석유정제로 부자가 된 이야기, 골드러시 시기에 금광이 아닌 '리-바이스' 청바지 작업복으로 성공한 레비-스트로스 이야기 등을 통해 '역사'를 볼 수도 있겠다.


한편으로 우리나라에서 작금의 '역사 대중화'에 힘쓰는 역사 '강사'와 '교사'들의 노력은 위와 같은 흥미로운 주제 뿐만 아니라 역사를 관통하는 일관된 관점을 제공함으로써 다수 대중에게 감동과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의 설민석 강사와 최태성 교사가 그러한데 그들은 '촛불항쟁' 이후 다수의 '대중투쟁'과 '민주주의'라는 시대흐름은 타되 '계급'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역시 일본의 명문 입시강사라는 우야마 다쿠에이는 [너무 재밌어서 잠 못드는 세계사](오세웅 옮김, <생각의길>, 2016) 같은 세계사 책에서 역시 '대안적' 세계사의 대중화를 꾀하는데, 그는 우리의 '대중역사가'들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세계사의 기본규칙과 역사의 필수복선으로 '계급투쟁'과 '욕망', '돈의 흐름' 및 '하부구조-상부구조'라는 '사회구성체론'까지 담는다.


이처럼, 일관된 '관점'과 키워드는 '역사'를 읽는데 필수적이다. 다만, 다시금 '철학'적 방향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철학'은 없이 '고증'과 '실증'의 '과학'만을 중시하는 역사관은 민족주의 또는 사대주의 논쟁틀을 벗어날 수 없고, '코로나19'가 창궐한 전세계적 '팬데믹' 시기인 지금 '질병'이라는 현재 뜨거운 키워드를 가지고 별 의미없는 역사관을 드러내는 독일의사 로날드 게르슈테의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를 읽느라 시간낭비하느니, 단국대 의대 서민 교수의 [의학 세계사]로 의학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구경하는 게 훨씬 낫다.


저명한 의학 저널리스트라는 게르슈테에게 '역사'는 독일제국의 빌헬름1세의 황태자 프리드리히3세가 후두암으로 죽지 않았다면 독일제국이 좀더 민주화될 수도 있었을 것이며, '냉전의 책임자' 레닌의 뇌경색은 러시아 혁명시기 망명시절에 걸린 '매독' 때문일 수 있다는 음모로 가득찬 공간이다.
본인은 역사적 가설을 믿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반복해 말하고는 있으나 결국 '영웅주의적 우익 역사관'에 기반한 그의 '세계사' 책 원제목도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가 아니라 [질병이 '만든' 역사]다.


***

1. [유럽민중사], 윌리엄 펠츠, 장석준 옮김, <서해문집>, 2018.
2. [부의 지도를 바꾼 회계의 세계사], 다나카 야스히로, 황선종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9.
3. [프랑스 혁명사 3부작], 칼 마르크스, 임지현/이종훈 옮김, <소나무>, 1987.
4. [너무 재밌어서 잠 못드는 세계사], 우야마 다쿠에이, 오세웅 옮김, <생각의길>, 2016.
5. [레즈를 위하여 - 새롭게 읽는 '공산당선언'], 황광우/장석준, <실천문학사>, 2003.
6. [서민 교수의 의학세계사], 서민, <생각정원>, 2018.
7.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로날트 게르슈테, 강희진 옮김, <미래의창>,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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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세계사 잠 못 드는 시리즈
우야마 다쿠에이 지음, 오세웅 옮김 / 생각의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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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 '보통사람들'의 역사관 : '계급투쟁'
- [유럽민중사](2016), 윌리엄 펠츠, 장석준 옮김, <서해문집>, 2018.



"[유럽민중사]는 주류 교과서와 연구 대신 읽을 만한 간결한 대안으로서, 유럽사의 발전과 궤적을 다르게 이해하자고 제안한다. 즉 역사를 상층계급 통치자와 사상가들의 빛나는 통찰의 결과가 아니라 경쟁하는 '집단'간의 '투쟁'을 통한 변동으로 바라본다... 서유럽 봉건제의 쇠퇴와 붕괴에서 출발하는 이 책은 반란자, 이의제기자, 비순응주의자, 보통사람의 기여를 폭넓게 추적한다. 이 책은 다른 교과서가 얼버무리고 넘어가거나 무시하는 개인과 사건에 주목할 것이다. 가령 이 책의 독자는 종교개혁 중에 얀 후스(Jan Hus)가 기여한 바와 19세기 파리코뮌을 좀 더 깊이 살펴볼 것이다."
- W. Pelz, [유럽민중사], <서문>, 2016.


역사는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가 말한 '과거와 현재의 대화'로서 이를 거울삼아 미래를 조망한다. '과거'의 사례가 동일하게 반복되지는 않으므로 객관적 조건의 인과관계 분석을 통해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고 '미래'의 방향을 예측하거나 대응방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역사'를 돌아본다.
'역사'는 하나의 '과학'이기는 하나 '자연과학'처럼 '필연'적 인과관계를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사회과학'이고, '사회과학'은 '필연성'보다는 '경향성'으로 나타난다.
'철학'은 이 지점에서 '역사'에 개입하며, 이 '경향성'을 가지고 인류가 갈 방향을 가리킨다.
'자연과학'적 태도를 강조하는 '실증주의'와 대비되는 이 '철학'의 '실천'은 사회를 이루는 인간 '집단'간의 관계를 기반으로 드러나는 바, 다수 노동자들의 '철학'인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정치경제적 현실을 토대로 하는 이 '집단'들의 관계를 '계급'이라 규정했고, 이 유물론 '철학'이 가리키는 '경향성'과 방향은 '계급'적 '당파성'이 된다.
그리하여, 유물론적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집단적 대화'다.


미국의 노동역사가 윌리엄 펠츠는 [유럽민중사](2016)를 통해 이 '계급'을 중심으로 소수의 지배적인 역사기록이 아닌 다수 노동자들의 '대안'적 '역사'를 제시하면서 중세유럽의 붕괴로부터 현대까지의 '유럽민중들'의 '역사'를 기술한다. 
펠츠의 역사관으로 돌아보는 '보통사람들' 즉 민중의 역사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지배자들'의 기록이 아니므로 중세의 공고한 성체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종교개혁에서 루터나 칼뱅이 아닌 그 이전부터 일어난 후스나 뮌처의 종교개혁운동에 주목하고, 1848년 유럽의 공화정 복원과 이후의 왕정복고 등의 정치변혁보다는 1871년의 프랑스 파리코뮌에 더 방점을 둔다.


"말하자면 종교개혁 덕분에 유럽인 일부는 로마(교황)의 착취에서 자유로워졌을지 모르지만, 루터, 칼뱅 또는 두 사람의 후원자들이 그어 놓은 한계선을 넘어서려는 시도는 모두 진압당했다. 로마에서 벗어날 자유를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로 확대하려 한 이들은 기독교적 자비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방식으로 분쇄됐다... 후스나 뮌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기독교 공동체든 마녀 혐의를 덮어쓴 '간교한' 여성이든, 아니면 유대인과 무슬림처럼 단순히 다른 방식으로 신을 경배하는 사람이든 통치자가 이들에게 제시한 선택지는 하나 뿐이었다. 복종하든가 아니면 죽어라."
- W. Pelz, [유럽민중사], <"다른 종교개혁": 마르틴 루터, 종교 교리, 그리고 보통사람들>, 2016.


마르크스가 [프랑스혁명사] 3부작의 1부작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에서 분석한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은 나폴레옹 1세의 제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다시 세운 것에 의의를 두기보다, 다수 노동계급의 힘으로 세운 부르주아 공화국이 곧바로 이 다수들을 어떻게 배신하고 '반혁명'으로 돌아섰는가에 중점을 둔다.
중세 교황청의 '면죄부 매매'에 반발하여 '95개조 반박문'을 내건 루터가 그 이전부터 중세 교회의 부정부패를 바꾸려 했던 후스와 뮌처의 다수의지를 탄압한 사실이나 1848년 혁명정부가 뒤이은 노동자투쟁을 억압하고 분쇄한 사실, 한국의 1987년 6월 민주화투쟁이 정치적 민주화에 멈춘 채 뒤이은 7~8월 노동자대투쟁을 억압했고 2016년 촛불항쟁에 편승하여 집권한 지금의 민주당 세력이 노동자투쟁을 길들이며 적폐청산 조차도 주저하는 사실 등이 '보통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반복되는 역사적 '경향성'이다.


"(파리)코뮌은 정부를 오래 지속하지도 못했고, 사회를 분명한 방식으로 즉각 변혁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보통사람들이, 단지 저항의 수준을 넘어 권력을 잡고 통치한 사례로서, 이는 좌파에게는 희망이요, 우파에게는 악몽이었다... 코뮌은 유럽 노동운동의 의식에서 중요한 부분이었다. 승자들은 이 사례의 힘을 이해했고, 그래서 이 기억을 파괴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코뮌은 오늘날까지 기억된다. 코뮌은 다양한 측면에서 유럽의 조직 노동계급, 그 중에서도 특히 급진적인 부분의 기억이나 이야기이자 하나의 창세신화다. 파리 함락과 뒤이은 잔인한 억압을 통해 좌파가 맛본 좌절에도 보통사람들은 코뮌 진압부터 1914~1918년의 제국주의 대학살에 이르는 시기에 스스로를 성공적으로 조직할 수 있었다."
- W. Pelz, [유럽민중사], <1848~1849년 혁명부터 최초의 민중민주주의까지 : 파리코뮌>, 2016.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계급사회에서 계급이 철폐된  무계급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체제로서 다수 노동계급의 독재인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구체적인 형태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는 프랑스 나폴레옹 3세의 '루이 보나파르트 브뤼메르 18일'의 제정과 독일의 전쟁에 지친 프랑스 민중들이 세운 1871년의 '파리 코뮌'을 뭐라 규정할 수 없는 '스핑크스'라 표현하면서도 한편으로 "이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는 '파리 코뮌'을 [프랑스 혁명사] 3부작의 3부 <프랑스 내전>에서 분석하고 있다.
전쟁 중이던 적국 독일과 결탁한 프랑스 정부에 의해 '파리 코뮌' 노동자 정부는 처절하게 분쇄되었는데, 지배자들에게는 심지어 전쟁 중에도 적국 보다는, '정치인의 노동자 평균임금'과 '정치인 소환제'를 주장하는 자국 '노동자 정부'가 더 위협적인 적이었던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인 대규모 폭력으로 고통받는 것이 러시아 민중만이 아니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신경이 곤두선 지배계급은 혁명, 아니 실제로는 급진개혁까지 차단하려고 억압에 기대는 상황이었기에 체계적인 대규모 억압이 곧 일상의 질서가 됐다. 이 위로부터의 계급전쟁 시기는 너무도 자주 망각되곤 한다. 이 시기를 기억함으로써 폭력의 원흉이 좌파라는 주류 서사를 대폭 정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파시즘이 성장하고 발전한 배경을 설명할 수도 있다. 민족주의는 낡은 통치자들이 아래로부터의 반항적 운동에 맞서면서 내놓은 으뜸패였다."
- W. Pelz, [유럽민중사], <전쟁이 혁명을 낳다 : 러시아(1917), 중부 유럽(1918~1919)>, 2016.


지배계급이 가장 두려워 한 것이 다른 나라의 침략이 아닌 자국 '보통사람들', 피지배노동계급의 권리 확대와 권력 장악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이후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도 또 다시 반복되는데, 경제위기를 빌미로 다수 노동계급을 포섭한 파시즘 체제는 이미 사회민주당까지 이용하여 급진파를 제압했고 1917년 러시아 부르주아 임시정부는 민중들이 살기 위해 외치는 '반전평화'를 무시한 채 다수 노동자들을 전장으로 내몰다가 '노동자-병사 소비에트'에 의해 결국 무너지고 만다. 
소수 지배자들은 자국의 다수 노동자들에 의해 쫓겨나느니 차라리 '민족'이나 '조국'의 이익을 내세워 적국과 전쟁을 불사한다.
세계대전이나 우리의 한국전쟁 등을 막론하고 지배자들과 그들의 '연합군'은 무차별 융단 폭격으로 다수 '보통사람들'의 씨를 말렸고 '서북청년단' 등의 극우행동단체와 '보도연맹' 같은 '전향단체'를 통해 다수 '보통사람들'을 관리하고 '정리'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다수 노동자들은 '조국'과 '민족'이 아닌 스스로가 살기 위해 혁명을 선택하게 된다.


"... 동기가 이념이었든 민족주의였든 또는 단순한 생존 본능이었든 파시즘에 맞선 유럽인들의 투쟁... 처칠 같은 지도자는 대영제국을 지키려고, 스탈린은 독재를 유지하려고 싸웠지만, 민중 대부분은 제국을 지키려고 싸우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위해 싸웠다."
- W. Pelz, [유럽민중사], <파시스트 테러에 맞서 : 전쟁과 인종 학살, 1933~1945>, 2016.


'보통사람들'에게 '계급투쟁'은 '이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이었다.
'보통사람들'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으로 살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소수 지배자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국경도 없는 '이익동맹'으로 결속하는 반면, 다수 '보통사람들'은 '함께 살기' 위해 역시 '조국'과 '민족'을 초월하여 개인이든 집단이든 서로간의 굳건한 '연대'로 맞선다.


"물론 노동자들의 정서는 변덕스러웠고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날마다 마음이 바뀌었다. 어떤 상황에서는 혁명을 받아들이는 노동자라도 다른 환경에서는 개혁을 지지할 수 있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거의 모든 민중의 태도는 절대적이라기 보다는 조건부였다. 좌파 중에도 편견, 인종주의, 편협함이 존재했지만, 운동의 전반적인 성격은 '수용성(acceptance)'이었다. 자기도 억압당하는 신세였기에 노동자 대부분은 식민지 주민이든 피억압 소수민족이든 '약자들'에 공감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럼에도 정치적 관점은 매우 다양했지만 말이다."
- W. Pelz, [유럽민중사], <노동계급의 발흥 : 노동조합과 사회주의, 1871~1914>, 2016.


이러한 역사적 '경향성'은 수차례 입증되었다. 그러나 '보통선거권'과 '민주주의'가 너무도 당연한 지금 여전히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있다.

"왜 가난한 노동자들이 부자를 지지하는가?"

혹자는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은 '자연스러운 욕망'으로 답할 수도 있고, 다른 부류는 '급진적'일 수 없는 현실 정치로 대답할 수도 있겠다. '현실'을 불변하는 고정태로 보는 한 답변은 결국 제한된다.
역사 속의 모든 '현실'들은 '과거'가 되었고, 당시의 '미래'가 항상 지금의 '현실'이 되었다. 그렇다면 노동하지 않으면 가난할 수 밖에 없는 다수 '보통사람들'이 이러한 '유물론'적 '역사관'과 '변증법'적 '철학'으로 무장하고 결국 이 세계의 주인이 되는 수 밖에 없다. 개인이 아닌 노동하는 다수 '집단'의 형태로서 현대 사회에서는 비단 정치 영역 뿐 아니라 직장과 학교, 가정의 모든 생활 영역에서 '권력 투쟁'을 통해 주인이 되어야 한다. 
펠츠는 이러한 시각으로 모든 장의 후반부에 역사상 억압받아 온 '여성'들이 항상 함께 투쟁해 온 사례들을 빠뜨리지 않고 언급한다.
'다수' 중 억압받는 '소수'를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많은 경우 보통사람들은 패배했다. 적어도 단기적으로 보면 그랬다. 반동과 잔인한 탄압의 시기도 있었지만, 일단 민중이 투쟁하면 거대한 진보를 이룰 가능성이 열린다. 반면 그들이 무관심이나 절망에 빠져들면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오직 하나다. 그것은 더 나은 세상이라는 이상과 이를 위해 투쟁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민중은 패배한다는 사실이다."
- W. Pelz, [유럽민중사], <유럽, 21세기에 던져지다>, 2016.


'보통사람들', '민중'의 역사는 '승리의 역사'가 아니다. 매번 실패와 패배를 반복한 역사다. 하지만, 거대한 역사의 흐름은 이 다수가 옳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순히 '다수'라서 옳은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옳은 것이 결국 승리한다는 사례는 세계사에서 무수히 많다.
펠츠의 결론대로 "더 나은 세상이라는 이상과 이를 위해 투쟁하려는 의지"를 놓지 않는 한, 다수 '보통사람들'은 역사에서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선언한 대로, 다수가 역사에서 얻는 것은 작은 '승리'가 아니라, '단결'의 기억이다. 
현대에서는 19세기 자본주의 발전의 첨병 '철도'가 아니라 21세기의 첨병인 'SNS'가 '계급투쟁'의 도구가 된다.


"노동자들은 때때로 승리하지만, 그 승리는 일시적일 뿐이다. 투쟁의 진정한 성과는 직접적인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노동자들의 단결이 확대되는 데에 있다. 대공업이 만들어낸 개선된 교통수단은 여러 지역의 노동자들을 서로 연결시켜 줌으로써 노동자들의 단결은 더욱 촉진된다. 이러한 연결이 이루어지기만 하면, 어디서나 동일한 성격을 띤 수많은 지역적 투쟁이 하나의 전국적 투쟁, 즉'계급투쟁'으로 집중된다. 그런데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투쟁'이다. 빈약한 도로망을 가졌던 중세의 도시민들이 수세기에 걸쳐 달성한 그 '단결'을 현대 프롤레타리아는 '철도'의 덕택으로 수년 안에 달성하고있다."
- K.Marx/F.Engels, [공산당선언](1848), <1장.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황광우/장석준 옮김([레즈를 위하여], <실천문학사>, 2003.)


"제조현장에서 시작된 혁신은 공장의 '원가계산(Cost Accounting)' 개혁을 거쳐서 '관리회계(Management Accounting)'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그 기원은 19세기 철도회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철도회사에서 시작된 원가계산이나 관리회계의 흐름이 이윽고 제조업으로 계승되어갔다. 원래 중세 이탈리아에서 '자신을 위해' 행해졌던 회계는 동인도회사의 국가 네덜란드, 산업혁명의 국가 영국, 투자가보호의 국가 미국을 거치면서 '타인을 위해' 실행되어갔다. 이것을 다시 '자신을 위해' 실행하도록 되돌린 것이 '관리회계'다."
- 다나카 야스히로, [부의 지도를 바꾼 회계의 세계사], 황선종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9.

물론, 인간 '집단'의 관계만이 아닌 회계'나 '의학', '질병'을 중심으로 '세계사'를 돌아보는 것도 '역사' 공부의 재미일 수 있다.

일본의 공인회계사 다나카 야스히로는 원시적 자본주의 '시초축적' 시기인 르네상스 상업주의 시대부터 공증인 아버지 덕에 기록과 종이에 익숙했던 레오나르드 다빈치 이야기, 상업자본에 의한 부기의 시작, 재무회계에서 관리회계로의 전환, 산업혁명 이후 영국에서 미국으로 주도권이 넘어가게 된 투자가혁명과 국제회계기준 등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19세기 '회계 혁명'은 대규모 합병을 통해 연결재무제표를 고안한 철도회사에서 시작되었으며 이곳에서 '회계'를 배운 앤드류 카네기가 철강왕이 되고 역시 '회계'를 익힌 존 록펠러가 석유러시 시기에 석유채굴이 아닌 석유정제로 부자가 된 이야기, 골드러시 시기에 금광이 아닌 '리-바이스' 청바지 작업복으로 성공한 레비-스트로스 이야기 등을 통해 '역사'를 볼 수도 있겠다.


한편으로 우리나라에서 작금의 '역사 대중화'에 힘쓰는 역사 '강사'와 '교사'들의 노력은 위와 같은 흥미로운 주제 뿐만 아니라 역사를 관통하는 일관된 관점을 제공함으로써 다수 대중에게 감동과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의 설민석 강사와 최태성 교사가 그러한데 그들은 '촛불항쟁' 이후 다수의 '대중투쟁'과 '민주주의'라는 시대흐름은 타되 '계급'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역시 일본의 명문 입시강사라는 우야마 다쿠에이는 [너무 재밌어서 잠 못드는 세계사](오세웅 옮김, <생각의길>, 2016) 같은 세계사 책에서 역시 '대안적' 세계사의 대중화를 꾀하는데, 그는 우리의 '대중역사가'들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세계사의 기본규칙과 역사의 필수복선으로 '계급투쟁'과 '욕망', '돈의 흐름' 및 '하부구조-상부구조'라는 '사회구성체론'까지 담는다.


이처럼, 일관된 '관점'과 키워드는 '역사'를 읽는데 필수적이다. 다만, 다시금 '철학'적 방향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철학'은 없이 '고증'과 '실증'의 '과학'만을 중시하는 역사관은 민족주의 또는 사대주의 논쟁틀을 벗어날 수 없고, '코로나19'가 창궐한 전세계적 '팬데믹' 시기인 지금 '질병'이라는 현재 뜨거운 키워드를 가지고 별 의미없는 역사관을 드러내는 독일의사 로날드 게르슈테의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를 읽느라 시간낭비하느니, 단국대 의대 서민 교수의 [의학 세계사]로 의학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구경하는 게 훨씬 낫다.


저명한 의학 저널리스트라는 게르슈테에게 '역사'는 독일제국의 빌헬름1세의 황태자 프리드리히3세가 후두암으로 죽지 않았다면 독일제국이 좀더 민주화될 수도 있었을 것이며, '냉전의 책임자' 레닌의 뇌경색은 러시아 혁명시기 망명시절에 걸린 '매독' 때문일 수 있다는 음모로 가득찬 공간이다.
본인은 역사적 가설을 믿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반복해 말하고는 있으나 결국 '영웅주의적 우익 역사관'에 기반한 그의 '세계사' 책 원제목도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가 아니라 [질병이 '만든' 역사]다.


***

1. [유럽민중사], 윌리엄 펠츠, 장석준 옮김, <서해문집>, 2018.
2. [부의 지도를 바꾼 회계의 세계사], 다나카 야스히로, 황선종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9.
3. [프랑스 혁명사 3부작], 칼 마르크스, 임지현/이종훈 옮김, <소나무>, 1987.
4. [너무 재밌어서 잠 못드는 세계사], 우야마 다쿠에이, 오세웅 옮김, <생각의길>, 2016.
5. [레즈를 위하여 - 새롭게 읽는 '공산당선언'], 황광우/장석준, <실천문학사>, 2003.
6. [서민 교수의 의학세계사], 서민, <생각정원>, 2018.
7.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로날트 게르슈테, 강희진 옮김, <미래의창>,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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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마징가
나가이 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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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여전한, 나의 '자본주의'적 '영웅'
- [그레이트 마징가], <도에이(東映)>, 1974.



1. 문명 충돌(文明 衝突)


"그 어떤 황소도 이보다 멋질 수는 없었으니 이는 분명 신이 변신한 거라고 '에우로파(Europa)'는 생각했고, 그녀를 가엽게 여겨 홀로 두지 말아달라고 그 황소에게 애원했다. 황소는 그 대답으로 '에우로파'가 생각했던 그대로의 본모습을 드러냈는데 다름아닌 신 중의 신 '제우스(Zeus)'였다. '에우로파'를 사랑하게 되어 납치까지 하게된 '제우스'는 그녀를 '크레테(Crete)'섬으로 데려갔다. 그 섬은 '제우스'의 어머니(레아)가 크로노스(아버지)를 피해 몰래 가서 그를 낳았던 곳, 바로 '제우스'의 고향이었다."
- Edith Hamilton, [Mythology], <Europa>, 1940.에서 필자 번역.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힘이 센 '영웅(英雄/Hero)', '헤라클레스(Hercules)'의 가문의 조상은 '이오(Io)인데, 신 중의 신 '제우스'가 부인 '헤라'의 눈을 속이기 위해 '암소'로 둔갑시킨 비운의 여인이었다. '이오'는 그리스 문명의 발상지역 중 하나인 '이오니아' 문명으로 이름을 남기고 있다.
제우스는 타이탄족 친구 '프로메테우스'를 시켜 '인류'를 창조했고 다수 순수인간 혈통 속 아름다운 여인들을 간택하여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영웅'들을 낳게 하였는데, '이오'가 첫 번째였고, 그 두 번째 여인이 현재 '유럽(Europe)' 대륙의 어원, '에우로파(Europa)'다. 
에우로파는 제우스에 의해 납치된 섬, '크레테(Crete)'에서 역시 '반신반인'의 영웅 '미노스(Minos)'를 낳는데, 그가 바로 '크레타 문명'의 시조였고, '이오니아' 문명 다음으로 지금 유럽 문명의 '뿌리'가 바로 그리스 신화 속 '크레타 문명'이 된다.
'크레테'는 기원전 2,000년 ~ 1,500년 전 그리스 본토에서 온 '미케네' 문명에 의해 멸망한다.

1972년, 나가이 고(永井豪)의 만화 [마징가(魔神-Ga)-Z]는 세계를 지배하려는 '닥터 헬'에게 대항하기 위해 만든 거대로봇인데, 닥터 헬은 고대 그리스 유물 발굴 과정에서 묻혀있던 '청동거인'들을 '기계수(機械獸)'로 부활시켜 세계지배의 무기로 벼려낸다.
'신좌파 세대' 나가이 고는 '권선징악'으로 만화를 그리지 않았으니, '마징가'는 종국에 승리하지 못하는데, 닥터 헬의 '기계수'들을 물리쳤으나 더 강력한 적을 양산하게 되고 이 진화된 적, '전투수(戰鬪獸)'들에 의해 무력하게 파괴된다.

1974년, '마징가-Z'의 형제 '그레이트 마징가(Great Mazinga)'는 나가이 고의 '염세주의' 세계관으로 인해 파괴될 처지에 놓인 당시 일본의 '동심'을 지키기 위한 만화영화회사 '도에이(東映)'의 결실이었다. 나가이 고는 원래 '신(神)'도, '악마(惡魔)'도 될 수 있지만, '신'도, '악마'도 아닌 '마징가'를 철저하게 파괴하면서 거대로봇의 '문명혈투극'을 끝내려 했다. 그런데 '도에이(東映)'사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일본 '동심'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자본주의'적 '이윤' 추구동기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미케네(Mycenae)' 문명을 소환한다.

닥터 헬이 만든 '기계수'들의 프로토타입이 된 '크레타' 문명의 '청동거인'은 '탈로스(Talos)'라고 하는데, '크레테'섬 미노스(Minos) 왕의 과학자 '다에달로스(Daedalus)'가 만든 고대의 '거대로봇'이었고 그리스 반도에서 침범하는 배들을 바다에서 뒤집어 엎고 화산으로 달구어진 몸으로 적들을 녹이면서 '크레타' 섬의 문명을 수호했다. '탈로스'는 '이아손(Jason)'의 '아르고(Argo)'호 원정대에 의해 파괴되었고, 미노스의 '크레타' 문명의 뒤를 이은 페르세우스의 '미케네' 문명 또한 시간이 흘러 고대 그리스 문명의 시작과 함께 지하에 묻혔다가 부활을 꿈꾼다. 
실제로 '크레타'와 '미케네' 문명은 19세기 독일의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에 의해 발굴된다.

그레이트 마징가는 '크레타' 문명의 '기계수'들의 뒤를 이어 세계를 암흑으로 덮으려는 고대 '미케네' 문명의 부활을 막기 위해 비밀리에 제작되어 왔고, 고대 '크레타'의 '기계수'들을 이긴 현대 '자본주의'의 '마징가'가 역시 고대 '미케네'의 '전투수'들에게 패배할 때 극적으로 등장하여 '마징가'를 구한다.
'그레이트 마징가'는 원래부터 현대 '자본주의' 체제 수호의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류 문명의 '진보'보다는 '파괴'의 이면성을 보았을 작가 나가이 고는 '마징가'의 파괴를 통해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문명 충돌'의 현실을 보여주려 했고, 결국 나중에 '고대의 신'으로 부활한 '갓(God)-마징가'가 '미케네'의 '암흑대마왕'과 '어둠의 제왕'을 물리치도록 기획했다고 한다.
그러나 역시 '자본주의'적 기업 '도에이(東映)'사는 그럴 '기획'이 없었고, 결국 나가이 고는 [그레이트 마징가] 제작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가이 고의 '염세주의'와 '도에이'사의 '자본주의'는 결국, 외계인과 싸우는 '그랜다이저', '마징카이저' 등으로 타협하게 되어 '신'과 '악마' 일체를 초월하는 '우주적 영웅'을 창조한다.


2. 영웅(英雄/Hero)


"헤라클레스(Hercules)는 지구상에서 가장 힘센 자였고 실제 완력으로는 세계 최강이라는 자신감에 넘쳤다. 그는 스스로를 신과 같은 경지로 생각했으며 실제로도 신들은 그의 힘을 이용하기도 했다... 전 생애에 걸쳐 헤라클레스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자심감으로 맞섰고 실제 그의 과업들은 이를 증명했다... 그러나 '지혜(Intelligence)'가 종종 결여되었다... 이러한 그의 강한 힘은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기도 했지만,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기도 했다."
- Edith Hamilton, [Mythology], <Hercules>, 1940.에서 필자 번역.


그리스 신화에서 '영웅(英雄/Hero)'은 일반인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수대중은 '신의 자식', 즉 '반신반인(半神半人)'에 의해 지배를 받았으니 이 지도자들이 바로 '영웅'이었다. 역사에서 기독교의 '메시아'나 동양의 '천자(天子)', 그 밖에 모든 '신의 계시'를 참칭하는 자들이 스스로를 '영웅'이라 일컬었다.

헤라클레스(Hercules)는 세상에서 힘이 제일 센 '영웅'이었으나, '지혜'는 없이 '완력'만을 썼기에 신화학자 에디스 해밀턴에 의하면 아테네 민주주의 아버지인 사촌 테세우스(Theseus)에 비할 수 없다.
테세우스는 아테네에 '민주주의'라는 유산을 남긴 반면, 헤라클레스가 남긴 건 '12가지 과업'이라는 모험 '이야기' 뿐이었다.
테세우스는 '악당'들을 물리쳐 사람들을 구한 반면, 헤라클레스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해를 입히기도 했다.


'신'도 '악마'도 될 수 있었던 내 어릴적 '영웅', 1972년생 '마징가'는 그렇게 '미케네' 문명에 밀리고, 나와 동갑인 1974년생 '그레이트 마징가'는 나의 '영웅'이 되었으며 지하에서 '미케네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암흑대장군'과 '8대장군'의 도발을 매번 꺾었다.
'마징가-Z' 조종사 카부토 코지는 자동차 운전을 배우듯 '마징가'와 함께 성장하는 '소년'이었던 반면, 그레이트 마징가'의 조종사 츠루기 테츠야는 처음부터 숙련된 파일럿이었고 무자비한 '전투기계'였다.
'마징가-Z'는 '기계수'와의 전투로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있었던 반면, '그레이트 마징가'는 '미케네' 제국의 '암흑대장군'을 쓰러뜨려야 하는 '사무라이 정신'만이 전부였다.


물론, 이런 '그레이트 마징가'의 실체를 알게 된 건 성인이 된 후였는데, 그럼에도 내 어린 시절 '자본주의'적 '영웅'은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철학'이고 뭐고,
'그레이트 마징가'는 여전한 나의 '영웅(Hero)'이다.


***

1. [그레이트 마징가], <도에이(東映)>, 1974.
2. [Mythology](1940), Edith Hamilton, <New American Library>,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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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징가 Z + 그레이트 마징가 합본 박스세트 (18disc)
투모루필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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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여전한, 나의 '자본주의'적 '영웅'
- [그레이트 마징가], <도에이(東映)>, 1974.



1. 문명 충돌(文明 衝突)


"그 어떤 황소도 이보다 멋질 수는 없었으니 이는 분명 신이 변신한 거라고 '에우로파(Europa)'는 생각했고, 그녀를 가엽게 여겨 홀로 두지 말아달라고 그 황소에게 애원했다. 황소는 그 대답으로 '에우로파'가 생각했던 그대로의 본모습을 드러냈는데 다름아닌 신 중의 신 '제우스(Zeus)'였다. '에우로파'를 사랑하게 되어 납치까지 하게된 '제우스'는 그녀를 '크레테(Crete)'섬으로 데려갔다. 그 섬은 '제우스'의 어머니(레아)가 크로노스(아버지)를 피해 몰래 가서 그를 낳았던 곳, 바로 '제우스'의 고향이었다."
- Edith Hamilton, [Mythology], <Europa>, 1940.에서 필자 번역.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힘이 센 '영웅(英雄/Hero)', '헤라클레스(Hercules)'의 가문의 조상은 '이오(Io)인데, 신 중의 신 '제우스'가 부인 '헤라'의 눈을 속이기 위해 '암소'로 둔갑시킨 비운의 여인이었다. '이오'는 그리스 문명의 발상지역 중 하나인 '이오니아' 문명으로 이름을 남기고 있다.
제우스는 타이탄족 친구 '프로메테우스'를 시켜 '인류'를 창조했고 다수 순수인간 혈통 속 아름다운 여인들을 간택하여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영웅'들을 낳게 하였는데, '이오'가 첫 번째였고, 그 두 번째 여인이 현재 '유럽(Europe)' 대륙의 어원, '에우로파(Europa)'다. 
에우로파는 제우스에 의해 납치된 섬, '크레테(Crete)'에서 역시 '반신반인'의 영웅 '미노스(Minos)'를 낳는데, 그가 바로 '크레타 문명'의 시조였고, '이오니아' 문명 다음으로 지금 유럽 문명의 '뿌리'가 바로 그리스 신화 속 '크레타 문명'이 된다.
'크레테'는 기원전 2,000년 ~ 1,500년 전 그리스 본토에서 온 '미케네' 문명에 의해 멸망한다.

1972년, 나가이 고(永井豪)의 만화 [마징가(魔神-Ga)-Z]는 세계를 지배하려는 '닥터 헬'에게 대항하기 위해 만든 거대로봇인데, 닥터 헬은 고대 그리스 유물 발굴 과정에서 묻혀있던 '청동거인'들을 '기계수(機械獸)'로 부활시켜 세계지배의 무기로 벼려낸다.
'신좌파 세대' 나가이 고는 '권선징악'으로 만화를 그리지 않았으니, '마징가'는 종국에 승리하지 못하는데, 닥터 헬의 '기계수'들을 물리쳤으나 더 강력한 적을 양산하게 되고 이 진화된 적, '전투수(戰鬪獸)'들에 의해 무력하게 파괴된다.

1974년, '마징가-Z'의 형제 '그레이트 마징가(Great Mazinga)'는 나가이 고의 '염세주의' 세계관으로 인해 파괴될 처지에 놓인 당시 일본의 '동심'을 지키기 위한 만화영화회사 '도에이(東映)'의 결실이었다. 나가이 고는 원래 '신(神)'도, '악마(惡魔)'도 될 수 있지만, '신'도, '악마'도 아닌 '마징가'를 철저하게 파괴하면서 거대로봇의 '문명혈투극'을 끝내려 했다. 그런데 '도에이(東映)'사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일본 '동심'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자본주의'적 '이윤' 추구동기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미케네(Mycenae)' 문명을 소환한다.

닥터 헬이 만든 '기계수'들의 프로토타입이 된 '크레타' 문명의 '청동거인'은 '탈로스(Talos)'라고 하는데, '크레테'섬 미노스(Minos) 왕의 과학자 '다에달로스(Daedalus)'가 만든 고대의 '거대로봇'이었고 그리스 반도에서 침범하는 배들을 바다에서 뒤집어 엎고 화산으로 달구어진 몸으로 적들을 녹이면서 '크레타' 섬의 문명을 수호했다. '탈로스'는 '이아손(Jason)'의 '아르고(Argo)'호 원정대에 의해 파괴되었고, 미노스의 '크레타' 문명의 뒤를 이은 페르세우스의 '미케네' 문명 또한 시간이 흘러 고대 그리스 문명의 시작과 함께 지하에 묻혔다가 부활을 꿈꾼다. 
실제로 '크레타'와 '미케네' 문명은 19세기 독일의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에 의해 발굴된다.

그레이트 마징가는 '크레타' 문명의 '기계수'들의 뒤를 이어 세계를 암흑으로 덮으려는 고대 '미케네' 문명의 부활을 막기 위해 비밀리에 제작되어 왔고, 고대 '크레타'의 '기계수'들을 이긴 현대 '자본주의'의 '마징가'가 역시 고대 '미케네'의 '전투수'들에게 패배할 때 극적으로 등장하여 '마징가'를 구한다.
'그레이트 마징가'는 원래부터 현대 '자본주의' 체제 수호의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류 문명의 '진보'보다는 '파괴'의 이면성을 보았을 작가 나가이 고는 '마징가'의 파괴를 통해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문명 충돌'의 현실을 보여주려 했고, 결국 나중에 '고대의 신'으로 부활한 '갓(God)-마징가'가 '미케네'의 '암흑대마왕'과 '어둠의 제왕'을 물리치도록 기획했다고 한다.
그러나 역시 '자본주의'적 기업 '도에이(東映)'사는 그럴 '기획'이 없었고, 결국 나가이 고는 [그레이트 마징가] 제작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가이 고의 '염세주의'와 '도에이'사의 '자본주의'는 결국, 외계인과 싸우는 '그랜다이저', '마징카이저' 등으로 타협하게 되어 '신'과 '악마' 일체를 초월하는 '우주적 영웅'을 창조한다.


2. 영웅(英雄/Hero)


"헤라클레스(Hercules)는 지구상에서 가장 힘센 자였고 실제 완력으로는 세계 최강이라는 자신감에 넘쳤다. 그는 스스로를 신과 같은 경지로 생각했으며 실제로도 신들은 그의 힘을 이용하기도 했다... 전 생애에 걸쳐 헤라클레스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자심감으로 맞섰고 실제 그의 과업들은 이를 증명했다... 그러나 '지혜(Intelligence)'가 종종 결여되었다... 이러한 그의 강한 힘은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기도 했지만,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기도 했다."
- Edith Hamilton, [Mythology], <Hercules>, 1940.에서 필자 번역.


그리스 신화에서 '영웅(英雄/Hero)'은 일반인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수대중은 '신의 자식', 즉 '반신반인(半神半人)'에 의해 지배를 받았으니 이 지도자들이 바로 '영웅'이었다. 역사에서 기독교의 '메시아'나 동양의 '천자(天子)', 그 밖에 모든 '신의 계시'를 참칭하는 자들이 스스로를 '영웅'이라 일컬었다.

헤라클레스(Hercules)는 세상에서 힘이 제일 센 '영웅'이었으나, '지혜'는 없이 '완력'만을 썼기에 신화학자 에디스 해밀턴에 의하면 아테네 민주주의 아버지인 사촌 테세우스(Theseus)에 비할 수 없다.
테세우스는 아테네에 '민주주의'라는 유산을 남긴 반면, 헤라클레스가 남긴 건 '12가지 과업'이라는 모험 '이야기' 뿐이었다.
테세우스는 '악당'들을 물리쳐 사람들을 구한 반면, 헤라클레스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해를 입히기도 했다.


'신'도 '악마'도 될 수 있었던 내 어릴적 '영웅', 1972년생 '마징가'는 그렇게 '미케네' 문명에 밀리고, 나와 동갑인 1974년생 '그레이트 마징가'는 나의 '영웅'이 되었으며 지하에서 '미케네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암흑대장군'과 '8대장군'의 도발을 매번 꺾었다.
'마징가-Z' 조종사 카부토 코지는 자동차 운전을 배우듯 '마징가'와 함께 성장하는 '소년'이었던 반면, 그레이트 마징가'의 조종사 츠루기 테츠야는 처음부터 숙련된 파일럿이었고 무자비한 '전투기계'였다.
'마징가-Z'는 '기계수'와의 전투로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있었던 반면, '그레이트 마징가'는 '미케네' 제국의 '암흑대장군'을 쓰러뜨려야 하는 '사무라이 정신'만이 전부였다.


물론, 이런 '그레이트 마징가'의 실체를 알게 된 건 성인이 된 후였는데, 그럼에도 내 어린 시절 '자본주의'적 '영웅'은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철학'이고 뭐고,
'그레이트 마징가'는 여전한 나의 '영웅(Hero)'이다.


***

1. [그레이트 마징가], <도에이(東映)>, 1974.
2. [Mythology](1940), Edith Hamilton, <New American Library>,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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