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 동물농장 & 1984 원전 완역본 세트 - 전2권
조지 오웰 지음, 이수정 외 옮김 / 코너스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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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적인(Orwellian)' 세상과 '스페인 내전'
- [조지 오웰(George Orwell)], 피에르 크리스탱 글, 세바스티앵 베르디에 외 그림, 최정수 옮김, <마농지>, 2020.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몇몇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그 뒤로는 농장 일을 감독하는 돼지들이 앞발에 채찍을 들고 있어도 전혀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돼지들이 라디오 세트를 구입하고 전화를 설치하고... 신문, 잡지를 구독했다는 것을 알고 나서도 동물들은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폴레옹이 입에 담뱃대를 물고 농장 정원을 거니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일주일 뒤 어느 오후, 많은 이륜 마차가 농장으로 들어왔다. 이웃 농장주들의 대표단이 농장을 둘러보려고 온 것이다. 그들은 농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모든 것, 특히 풍차를 대단히 칭찬했다. 그때 다른 동물들은 순무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었다. 그들은 밭에서 고개를 들지도 않고 돼지가 더 무서운지 혹은 인간 방문객이 더 무서운 존재인지에 대해서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부지런히 일만 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농가에서는 큰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터져 나왔다. 뒤죽박죽 뒤섞인 목소리들 때문에 동물들은 갑자기 호기심을 느꼈다...
이제 돼지들의 얼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바깥에 있던 동물들은 돼지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돼지로, 그리고 다시 돼지에서 인간으로 시선을 옮겨가며 살펴보았다. 그러나 누가 인간이고 누가 돼지인지 구별하기란 정말로 불가능했다."
- [동물농장](1945), 조지 오웰, 황병훈 옮김, <보물창고>, 2016.


'한때는 좋았던 인간' 존스씨의 '메이너농장'에서 '혁명'이 일어난다. 매일 술에 취해 일도 안하고 결정적으로 동물들을 굶기기 일쑤인 '인간' 존스씨가 역시 술에 취해 곯아 떨어지고 인부들도 일손을 놓은 사이 '동물'들은 '한밤중 회의'를 통해 12살짜리 수퇘지 메이저 영감의 '동물'이 주인이 되는 '꿈' 이야기를 듣고 '영국의 동물들'이라는 노래를 함께 부른다. 메이저 영감돼지가 죽은 후 젊고 영리한 수퇘지 스노우볼과 나폴레옹은 메이저 영감의 '꿈'과 '영국의 동물들' 노래를 '동물주의'로 이론화하여 '메이너농장'의 모든 동물들을 사상무장시킨다. 
연일 굶던 동물들은 우발적으로 반란폭동을 일으켜 농장주 존스와 인간들을 농장 밖으로 몰아내고 '혁명'을 성공시킨다.
문자를 익힌 영리한 돼지 스노우볼은 이 '혁명적 동물주의'를 '7계명'으로 정립하는데, '두 발 달린 인간은 적이다', '네 발이나 날개 달린 모든 동물은 동지다', '금주할 것', '옷을 입지 않기', '침대에서 자지 않기', '동물끼리 죽이지 말 것' 등의 내용이며,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라는 테제로 마무리되는 내용이다.
하지만, '생산력 발전'을 위한 무리한 '풍차' 건설로 동물들은 피폐해지는데, '풍차' 건설을 기획하고 한편으로 '동물주의'를 고수하며 '외양간 전투'를 승리로 이끈 스노우볼은 나폴레옹에 의해 '인간'과 내통한 스파이로 몰려 추방당하고 나폴레옹은 '독재 체제'를 구축한다. 
옷을 입고 개를 키우며 침대에서 자는 나폴레옹은 농장의 생존을 위해 이웃의 인간 농장주들과 교류하면서 결국 '동물농장'을 '메이너농장'으로 다시 명명한다.
궂은 일 도맡은 종마 복서는 늙어 도살장으로 끌려가고 암말 클로버가 시니컬한 당나귀 벤자민에세 '7계명'이 온전한가 묻는데, 어느새 '7계명'은 변질되었고 '모든 동물은 평등'하되 '몇몇 동물은 더욱 평등하다'로 바뀌어 있다.
'동물농장'의 주인이었던 동물들 눈에 인간들과 교류하는 돼지들은 누가 인간이고 누가 돼지인지 더이상 구분할 수 없다.
'동물농장'은 여전히 '메이너농장'이 된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인데,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영국인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살 이후 영국에서 자랐고 이튼스쿨 장학생이었으나 학업에 흥미를 잃고 버마에서 식민지 경찰로 근무했으며 귀국 후 일용노동자와 노숙자 생활도 하다가 작가가 되었다. 
조지 오웰은 우리에게 '반공우화'로 소개되곤 하는 [동물농장]을 2차 대전 종전해인 1945년에 발표한다. 영국은 1917년 러시아혁명 후 소비에트연방(소련)을 극도로 혐오했으나 2차 대전에서는 서로 연합국이 되어 종전 당시인 1945년에는 영국과 소련의 '협력관계'상 소련 체제를 비판한 '정치우화'인 오웰의 [동물농장]을 출판사들이 출간하기를 주저했다는 사실은 이 소설이 '반공소설'이라는 증거라고 한다.
실제로 이 우화에 등장하는 '존스씨'는 러시아 차르 또는 임시정부 등의 구체제, '메이저 영감'은 칼 마르크스, '스노우볼'은 트로츠키, '나폴레옹'은 스탈린, '복서'는 '프롤레타리아', '외양간 전투'는 혁명 후 내전, '풍차 전투'는 2차 대전, '이웃 농장주들'은 영국과 독일이며, '동물농장'은 사회주의, '메이너농장'은 국가자본주의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아마도 시니컬한 당나귀 '벤자민'은 작가 본인이었으리라.

그러나 '우화'라는 것이 즉자적인 '비유'에 그칠 수는 없다. 조지 오웰이 1945년의 [동물농장]과 1948년의 '빅 브라더(Big Brother)' [1984]를 통해 묘사하고자 했던 것이 단순히 '소련'의 독재체제에 대한 '비유'만이 아니라 '전체주의'와 '파시즘' 일체에 대한 '은유'라는 것은 그의 '스페인 내전' 참전의 경험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전쟁 초기 몇 달 동안 프랑코의 실질적인 적은 인민전선 정부라기 보다는 노동조합들이었다. 프랑코가 반란을 일으키자, 도시의 조직화된 노동자들은 총파업으로 대응했다. 이어 공공 무기고에 가서 무기를 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투쟁 끝에 얻어냈다. 만일 그들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다소간 독립적으로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면, 프랑코는 아무런 저항에 부딪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조지 오웰, [카탈루니아 찬가](1938). [세계노동운동사 3]에서 재인용.


소련에서 독재체제를 구축한 스탈린은 레닌이 사망한 1924년에 '후계자'가 되자마자 이미 '1국 사회주의론'을 제기했는데, 1차 대전 종전을 앞당긴 유럽 각국의 연쇄혁명의 전망에도 불구하고 소련이라는 한 국가에서도 공산주의 혁명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 '1국 사회주의론'은 스탈린의 내부 숙청이 일단락되던 1935년경에는 확립되었고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협력 과정에서 더욱 공고화되는데, 이 시기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강화 및 이를 기반으로 한 '파시즘'의 확산과 궤를 같이 한다. 
조지 오웰이 '국제 여단'의 일원으로 참전한 '스페인 내전'(1936~1939)은 '파시즘'의 발흥과 이에 대항한 유럽 민주주의 세력의 일대 격전장이었다.


1922년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내세운 '파시즘'은 '단결'이라는 어원으로 우익 포퓰리즘의 극단적 정치형태였으며, 경제위기로 들끓는 다수 대중의 열망을 고대 신화를 빌어 '신비주의화'하여 결국 독점자본의 이익보장의 도구가 되는데, 1933년의 독일 히틀러의 '나치즘', 일본의 '천황군국주의' 등의 본질적 정치형태다.
이탈리아 무솔리니는 고대 로마에서 '단결'을 상징하는 도끼묶음을, 독일 히틀러는 아리아인을 기원으로 하는 고대 게르만 신화와 그 상징으로서 하켄크로이츠를, 일본 군국주의는 욱일기로 표현되는 고대 천황의 신화를 숭상했다.
'독점자본'을 토대로 하는 '파시즘'이라는 병적이고 극단적인 폭력적 독재체제의 특징을 김세균 서울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완성된' 파시즘 체제가 지닌 기본 측면들로는 첫째,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피지배계급 운동 분쇄와 이들 계급을 체제 내로 강제 통합, 둘째, 자본축적을 위한 국가의 광범한 개입, 셋째, 시민의 권리 박탈과 사회에 대한 전면적 감시, 통제체제 수립, 넷째, 의회제 통제로부터 국가권력 집행 기구의 자립과 이를 통한 무제한적 국가 폭력 사용 등이 지적되고 있다."
- 김세균, [자본주의 위기와 파시즘], 1987. [세계노동운동사 3]에서 재인용.


이탈리아와 독일은 이미 '파시즘'이 집권하였고 사회민주당마저 그들과 타협하던 1931년 스페인에서는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자유주의자 등의 '민주세력'들이 '인민전선'을 형성하여 공화국을 세웠다.
장군 프랑코를 앞세운 우익 반란군과 공화국 민병대간에 전개된 4년여의 전쟁이 바로 '스페인 내전'이었다.

결국 스페인 내전은 프랑코 우익 반란군의 승리로 끝나고 프랑코 군부독재는 이후 40년간 스페인을 지배한다. 20여만 명의 인민을 학살한 스페인의 프랑코는 우리에게는 박정희와 전두환을 합친 정도의 우익 악마였다.
애초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는 '불간섭위원회'를 통해 스페인 내전을 지원하지 않기로 하였으나 '파시즘' 세계동맹을 기획하던 독일과 이탈리아는 프랑코 반군을 적극 지원했고, 영국은 소련 견제를 위해 뒷짐을 졌으며, 소련은 '공화군'을 소극적으로 지원하는 과정에서 스페인 노동조합의 총파업과 '국제 여단'은 안팎으로 궤멸되어 갔다.
조지 오웰이 참전하여 목도한 스페인 내전의 '정치외교'적 현실이 이러했는데, 이 과정에서 공화국과 소련 공산주의자들은 이 노동자 민병대와 '국제 여단'을 오히려 억압하고 고립시키는데 열중했던 것이다.
스페인 '인민전선' 정부는 프랑코 우익 반란군보다 급진적 노동자와 '국제 여단'을 더 두려워했고, '1국 사회주의'를 선언한 소련공산당은 자본주의 협력국들을 불편하게 만들기 싫어 차라리 위성국을 더 만들지언정 노동자계급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세계혁명 확산을 바라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영국과 소련은 전유럽의 '파시즘' 확산에 기여하면서 2차 세계대전 확산을 방조했다.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의 경험을 토대로 1938년에 [카탈루니아 찬가]를 출간했는데, 이 내전의 초기 정신은 '정치적 인민전선이 아닌 노동자 총파업'이라고 적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했다. 그리고 소련이 해체되었다. 미래 예측이 틀린 SF 작가들의 경우처럼 오웰의 아우라는 쇠퇴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에 빅 브라더는 확산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웰적인(Orwellian)'이라는 형용사는 다른 운명을 겪어, '카프카적인(Kafkaesque;부조리하고 우울하고 악몽같은)'처럼 일종의 관용적 표현이 되었다.
오웰은 자신을 전향시키려는 시도에 굴복하지 않았다."
- [조지 오웰(George Orwell)], <에필로그 - 오웰 이후>, 피에르 크리스탱 글, 세바스티앵 베르디에 외 그림, 최정수 옮김, <마농지>, 2020.


'오웰적인(Orwellian)' 세상은 [1984]에 나온 '빅 브라더'의 '전체주의' 세상에 대한 표현이라는데, 이는 조지 오웰의 삶을 볼 때 비단 '반혁명'과 '반노동자'적인 '스탈린주의' 체제 뿐만 아니라 '파시즘'으로 대표되는 '국가독점자본주의'를 토대로 한 '전체주의' 체제 일반을 의미한다.
'오웰적인' 세계에 대한 저항은 스페인 내전에 공화파 '국제 여단''으로 참전한 조지 오웰의 '자유' 정신과 노동자 '평등' 정신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념이 앞서는 것이 아니다. 
'자유'가 우세하면 '평등'을 위해, '평등'이 우세하면 '자유'를 위해 싸우는 바로 그 정신이다.


[동물농장]의 당나귀 벤자민은 '동물농장'도 지지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결코 술주정뱅이 '존스씨'의 '메이너농장'을 동경한 것도 아니었다.


***

1. [조지 오웰(George Orwell)], 피에르 크리스탱 글, 세바스티앵 베르디에 외 그림, 최정수 옮김, <마농지>, 2020.
2. [동물농장(Animal Farm)](1945), 조지 오웰, 황병훈 옮김, <보물창고>, 2016.
3. [세계노동운동사 3], 김금수, <후마니타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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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동물 농장 (양장) - 1945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조지 오웰 지음, 이종인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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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적인(Orwellian)' 세상과 '스페인 내전'
- [조지 오웰(George Orwell)], 피에르 크리스탱 글, 세바스티앵 베르디에 외 그림, 최정수 옮김, <마농지>, 2020.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몇몇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그 뒤로는 농장 일을 감독하는 돼지들이 앞발에 채찍을 들고 있어도 전혀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돼지들이 라디오 세트를 구입하고 전화를 설치하고... 신문, 잡지를 구독했다는 것을 알고 나서도 동물들은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폴레옹이 입에 담뱃대를 물고 농장 정원을 거니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일주일 뒤 어느 오후, 많은 이륜 마차가 농장으로 들어왔다. 이웃 농장주들의 대표단이 농장을 둘러보려고 온 것이다. 그들은 농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모든 것, 특히 풍차를 대단히 칭찬했다. 그때 다른 동물들은 순무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었다. 그들은 밭에서 고개를 들지도 않고 돼지가 더 무서운지 혹은 인간 방문객이 더 무서운 존재인지에 대해서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부지런히 일만 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농가에서는 큰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터져 나왔다. 뒤죽박죽 뒤섞인 목소리들 때문에 동물들은 갑자기 호기심을 느꼈다...
이제 돼지들의 얼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바깥에 있던 동물들은 돼지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돼지로, 그리고 다시 돼지에서 인간으로 시선을 옮겨가며 살펴보았다. 그러나 누가 인간이고 누가 돼지인지 구별하기란 정말로 불가능했다."
- [동물농장](1945), 조지 오웰, 황병훈 옮김, <보물창고>, 2016.


'한때는 좋았던 인간' 존스씨의 '메이너농장'에서 '혁명'이 일어난다. 매일 술에 취해 일도 안하고 결정적으로 동물들을 굶기기 일쑤인 '인간' 존스씨가 역시 술에 취해 곯아 떨어지고 인부들도 일손을 놓은 사이 '동물'들은 '한밤중 회의'를 통해 12살짜리 수퇘지 메이저 영감의 '동물'이 주인이 되는 '꿈' 이야기를 듣고 '영국의 동물들'이라는 노래를 함께 부른다. 메이저 영감돼지가 죽은 후 젊고 영리한 수퇘지 스노우볼과 나폴레옹은 메이저 영감의 '꿈'과 '영국의 동물들' 노래를 '동물주의'로 이론화하여 '메이너농장'의 모든 동물들을 사상무장시킨다. 
연일 굶던 동물들은 우발적으로 반란폭동을 일으켜 농장주 존스와 인간들을 농장 밖으로 몰아내고 '혁명'을 성공시킨다.
문자를 익힌 영리한 돼지 스노우볼은 이 '혁명적 동물주의'를 '7계명'으로 정립하는데, '두 발 달린 인간은 적이다', '네 발이나 날개 달린 모든 동물은 동지다', '금주할 것', '옷을 입지 않기', '침대에서 자지 않기', '동물끼리 죽이지 말 것' 등의 내용이며,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라는 테제로 마무리되는 내용이다.
하지만, '생산력 발전'을 위한 무리한 '풍차' 건설로 동물들은 피폐해지는데, '풍차' 건설을 기획하고 한편으로 '동물주의'를 고수하며 '외양간 전투'를 승리로 이끈 스노우볼은 나폴레옹에 의해 '인간'과 내통한 스파이로 몰려 추방당하고 나폴레옹은 '독재 체제'를 구축한다. 
옷을 입고 개를 키우며 침대에서 자는 나폴레옹은 농장의 생존을 위해 이웃의 인간 농장주들과 교류하면서 결국 '동물농장'을 '메이너농장'으로 다시 명명한다.
궂은 일 도맡은 종마 복서는 늙어 도살장으로 끌려가고 암말 클로버가 시니컬한 당나귀 벤자민에세 '7계명'이 온전한가 묻는데, 어느새 '7계명'은 변질되었고 '모든 동물은 평등'하되 '몇몇 동물은 더욱 평등하다'로 바뀌어 있다.
'동물농장'의 주인이었던 동물들 눈에 인간들과 교류하는 돼지들은 누가 인간이고 누가 돼지인지 더이상 구분할 수 없다.
'동물농장'은 여전히 '메이너농장'이 된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인데,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영국인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살 이후 영국에서 자랐고 이튼스쿨 장학생이었으나 학업에 흥미를 잃고 버마에서 식민지 경찰로 근무했으며 귀국 후 일용노동자와 노숙자 생활도 하다가 작가가 되었다. 
조지 오웰은 우리에게 '반공우화'로 소개되곤 하는 [동물농장]을 2차 대전 종전해인 1945년에 발표한다. 영국은 1917년 러시아혁명 후 소비에트연방(소련)을 극도로 혐오했으나 2차 대전에서는 서로 연합국이 되어 종전 당시인 1945년에는 영국과 소련의 '협력관계'상 소련 체제를 비판한 '정치우화'인 오웰의 [동물농장]을 출판사들이 출간하기를 주저했다는 사실은 이 소설이 '반공소설'이라는 증거라고 한다.
실제로 이 우화에 등장하는 '존스씨'는 러시아 차르 또는 임시정부 등의 구체제, '메이저 영감'은 칼 마르크스, '스노우볼'은 트로츠키, '나폴레옹'은 스탈린, '복서'는 '프롤레타리아', '외양간 전투'는 혁명 후 내전, '풍차 전투'는 2차 대전, '이웃 농장주들'은 영국과 독일이며, '동물농장'은 사회주의, '메이너농장'은 국가자본주의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아마도 시니컬한 당나귀 '벤자민'은 작가 본인이었으리라.

그러나 '우화'라는 것이 즉자적인 '비유'에 그칠 수는 없다. 조지 오웰이 1945년의 [동물농장]과 1948년의 '빅 브라더(Big Brother)' [1984]를 통해 묘사하고자 했던 것이 단순히 '소련'의 독재체제에 대한 '비유'만이 아니라 '전체주의'와 '파시즘' 일체에 대한 '은유'라는 것은 그의 '스페인 내전' 참전의 경험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전쟁 초기 몇 달 동안 프랑코의 실질적인 적은 인민전선 정부라기 보다는 노동조합들이었다. 프랑코가 반란을 일으키자, 도시의 조직화된 노동자들은 총파업으로 대응했다. 이어 공공 무기고에 가서 무기를 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투쟁 끝에 얻어냈다. 만일 그들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다소간 독립적으로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면, 프랑코는 아무런 저항에 부딪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조지 오웰, [카탈루니아 찬가](1938). [세계노동운동사 3]에서 재인용.


소련에서 독재체제를 구축한 스탈린은 레닌이 사망한 1924년에 '후계자'가 되자마자 이미 '1국 사회주의론'을 제기했는데, 1차 대전 종전을 앞당긴 유럽 각국의 연쇄혁명의 전망에도 불구하고 소련이라는 한 국가에서도 공산주의 혁명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 '1국 사회주의론'은 스탈린의 내부 숙청이 일단락되던 1935년경에는 확립되었고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협력 과정에서 더욱 공고화되는데, 이 시기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강화 및 이를 기반으로 한 '파시즘'의 확산과 궤를 같이 한다. 
조지 오웰이 '국제 여단'의 일원으로 참전한 '스페인 내전'(1936~1939)은 '파시즘'의 발흥과 이에 대항한 유럽 민주주의 세력의 일대 격전장이었다.


1922년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내세운 '파시즘'은 '단결'이라는 어원으로 우익 포퓰리즘의 극단적 정치형태였으며, 경제위기로 들끓는 다수 대중의 열망을 고대 신화를 빌어 '신비주의화'하여 결국 독점자본의 이익보장의 도구가 되는데, 1933년의 독일 히틀러의 '나치즘', 일본의 '천황군국주의' 등의 본질적 정치형태다.
이탈리아 무솔리니는 고대 로마에서 '단결'을 상징하는 도끼묶음을, 독일 히틀러는 아리아인을 기원으로 하는 고대 게르만 신화와 그 상징으로서 하켄크로이츠를, 일본 군국주의는 욱일기로 표현되는 고대 천황의 신화를 숭상했다.
'독점자본'을 토대로 하는 '파시즘'이라는 병적이고 극단적인 폭력적 독재체제의 특징을 김세균 서울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완성된' 파시즘 체제가 지닌 기본 측면들로는 첫째,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피지배계급 운동 분쇄와 이들 계급을 체제 내로 강제 통합, 둘째, 자본축적을 위한 국가의 광범한 개입, 셋째, 시민의 권리 박탈과 사회에 대한 전면적 감시, 통제체제 수립, 넷째, 의회제 통제로부터 국가권력 집행 기구의 자립과 이를 통한 무제한적 국가 폭력 사용 등이 지적되고 있다."
- 김세균, [자본주의 위기와 파시즘], 1987. [세계노동운동사 3]에서 재인용.


이탈리아와 독일은 이미 '파시즘'이 집권하였고 사회민주당마저 그들과 타협하던 1931년 스페인에서는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자유주의자 등의 '민주세력'들이 '인민전선'을 형성하여 공화국을 세웠다.
장군 프랑코를 앞세운 우익 반란군과 공화국 민병대간에 전개된 4년여의 전쟁이 바로 '스페인 내전'이었다.

결국 스페인 내전은 프랑코 우익 반란군의 승리로 끝나고 프랑코 군부독재는 이후 40년간 스페인을 지배한다. 20여만 명의 인민을 학살한 스페인의 프랑코는 우리에게는 박정희와 전두환을 합친 정도의 우익 악마였다.
애초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는 '불간섭위원회'를 통해 스페인 내전을 지원하지 않기로 하였으나 '파시즘' 세계동맹을 기획하던 독일과 이탈리아는 프랑코 반군을 적극 지원했고, 영국은 소련 견제를 위해 뒷짐을 졌으며, 소련은 '공화군'을 소극적으로 지원하는 과정에서 스페인 노동조합의 총파업과 '국제 여단'은 안팎으로 궤멸되어 갔다.
조지 오웰이 참전하여 목도한 스페인 내전의 '정치외교'적 현실이 이러했는데, 이 과정에서 공화국과 소련 공산주의자들은 이 노동자 민병대와 '국제 여단'을 오히려 억압하고 고립시키는데 열중했던 것이다.
스페인 '인민전선' 정부는 프랑코 우익 반란군보다 급진적 노동자와 '국제 여단'을 더 두려워했고, '1국 사회주의'를 선언한 소련공산당은 자본주의 협력국들을 불편하게 만들기 싫어 차라리 위성국을 더 만들지언정 노동자계급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세계혁명 확산을 바라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영국과 소련은 전유럽의 '파시즘' 확산에 기여하면서 2차 세계대전 확산을 방조했다.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의 경험을 토대로 1938년에 [카탈루니아 찬가]를 출간했는데, 이 내전의 초기 정신은 '정치적 인민전선이 아닌 노동자 총파업'이라고 적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했다. 그리고 소련이 해체되었다. 미래 예측이 틀린 SF 작가들의 경우처럼 오웰의 아우라는 쇠퇴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에 빅 브라더는 확산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웰적인(Orwellian)'이라는 형용사는 다른 운명을 겪어, '카프카적인(Kafkaesque;부조리하고 우울하고 악몽같은)'처럼 일종의 관용적 표현이 되었다.
오웰은 자신을 전향시키려는 시도에 굴복하지 않았다."
- [조지 오웰(George Orwell)], <에필로그 - 오웰 이후>, 피에르 크리스탱 글, 세바스티앵 베르디에 외 그림, 최정수 옮김, <마농지>, 2020.


'오웰적인(Orwellian)' 세상은 [1984]에 나온 '빅 브라더'의 '전체주의' 세상에 대한 표현이라는데, 이는 조지 오웰의 삶을 볼 때 비단 '반혁명'과 '반노동자'적인 '스탈린주의' 체제 뿐만 아니라 '파시즘'으로 대표되는 '국가독점자본주의'를 토대로 한 '전체주의' 체제 일반을 의미한다.
'오웰적인' 세계에 대한 저항은 스페인 내전에 공화파 '국제 여단''으로 참전한 조지 오웰의 '자유' 정신과 노동자 '평등' 정신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념이 앞서는 것이 아니다. 
'자유'가 우세하면 '평등'을 위해, '평등'이 우세하면 '자유'를 위해 싸우는 바로 그 정신이다.


[동물농장]의 당나귀 벤자민은 '동물농장'도 지지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결코 술주정뱅이 '존스씨'의 '메이너농장'을 동경한 것도 아니었다.



***

1. [조지 오웰(George Orwell)], 피에르 크리스탱 글, 세바스티앵 베르디에 외 그림, 최정수 옮김, <마농지>, 2020.
2. [동물농장(Animal Farm)](1945), 조지 오웰, 황병훈 옮김, <보물창고>, 2016.
3. [세계노동운동사 3], 김금수, <후마니타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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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6
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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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시작은 '신화(神話)'로
- [아서왕(King Arthur) : 전설로 태어난 기사의 수호신], 안 베르텔로트, 채계병 옮김, <시공사>, 2003.



"서(敍)한다.
대저 옛날 성인이 바야흐로 예악으로 나라를 일으키고 인의(仁義)로 교화를 베풀되 괴력난신(怪力亂神)은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왕이 장차 일어나려고 하면 부명(符命)이 응하고 도록(圖籙)을 받아 반드시 다른 사람과 다름이 있은 연후에야 큰 변화를 하여 대기(大器)를 장악하고 대업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수에서는 도가 나왔고, 낙수에서는 서가 나와 성인이 일어났다. 무지개가 신모를 감싸 복희를 낳았고, 용이 여등과 교감하여 염제를 낳았으며,... 요 임금은 잉태한 지 14개월 만에 태어났고, 용이 큰 못에서 교합하여 패공(한고조 유방)을 낳았는데, 이 이후의 일은 어찌 다 기록할 수 있으리오. 그러니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이(神異)한 가운데서 나온 것을 괴이하게 여길 것이 무엇인가? <기이(紀異)편>을 이 책의 첫머리에 싣는 뜻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 [삼국유사(三國遺事)], 일연, 최호 역해, <홍신문화사>, 1991.


기록으로서의 '역사', 특히 '정사(正史)'는 대부분 '승자의 기록'이다.
지배자들은 자신이 도둑질한 천하가 '안정'되었다고 판단되면 지난 역사를 정리하였다. 자신들의 권력이 '정당하다'는 증명이었다.
동아시아에서 이 '정사'는 제왕의 기록'인 <본기(本紀)>와 제후 또는 영웅들의 기록으로서 <열전(列傳)>을 엮어서 펼치는 '기전체(紀傳體)'가 이 '정식 역사'의 서술방법이었다.
기원전 1세기 중국 한나라 역사가 사마천이 처음 시도한 [사기(史記)]의 '기전체'는 비록 그 당시에는 '정사'가 아니었으나 이후 여러 왕조를 거쳐 '정사'의 기술방식이 되었다.

13세기 고려시대 승려 일연은 [삼국유사]를 썼는데, 우리 역사에서 '정사(正史)'에 대비되는 '야사(野史)'의 대표작이다. 고려 당대 최고의 승려인 '국존'으로서 일연은 1289년 입적 전까지 경북 군위 인각사에서 100여 편의 책을 지었다는데 [삼국유사]는 그 중 하나일 것으로 추정된다. 
일연은 한세기 전 '정사'인 김부식의 [삼국사기] 부류의 역사서들이 담지 않는 불교적, 향토적 내용을 중심으로 서술하는데 주된 내용은 삼국시대 불교의 전파와 대표적인 승려들에 의한 '흥법(興法)', 탑과 불상 등에 대한 이야기, 지역의 기릴만한 이야기들이다. 후세대인 우리에게는 '단군설화'를 통해 우리 민족의 '족보'를 정리한 사서로 알려져 있다.
사마천이 중국의 열국들의 시조로서 '삼황오제'의 거대한 족보를 완성했듯, 일연은 한반도와 요동의 자손들을 '단군왕검'의 자식들로 '족보화'하였다.
일연이 <본기> 같은 '정사'가 아니라 <기이(紀異)편>으로 [삼국유사]를 시작한 이유다.

아마도 일연이 가장 비판하고 싶었을 한세기전 유생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도 신라, 고구려 등의 시조는 다들 '괴력난신(怪力亂神)'들이었다. 신라의 박혁거세나 고구려 동명성왕 고주몽도 정체불명의 알에서 태어났고 백제의 온조도 고주몽의 아들이니 보통사람과 다른 '신의 자식들'이었다. 이제 일연은 우리 고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을 천신인 환인의 아들인 환웅과 웅녀의 아들로 확정한다.
구전되는 설화와 민담, 혹은 그 당시까지 있었을 기록을 토대로 구축한 '신화(神話)'다.
아마도 '신의 아들(천자)'을 자칭하는 환웅이 나타나 호랑이를 숭상하는 씨족은 몰살시키고 곰을 숭상하는 씨족과 결합하여 '고조선'을 세웠으리라.
[삼국유사]의 관점은 고려시대에 우리 한반도 또는 요동까지 하나의 '역사공동체'로 인식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짧지만 말갈족까지 아우르는 발해국에 대한 기록도 포함한다.


"그는 해안으로 내려가 허리띠 검집에서 검을 뺐다. 그는 오랫동안 검을 유심히 보다가는 마침내 '아! 훌륭하고 고귀한 검... 이 시대 가장 훌륭한 검인 엑스칼리버여! 이제 너는 주인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아서왕은 그리플레를 불렀다. '저기 언덕 밑으로 가거라.' 왕은 명령했다. '그곳에 가면 호수가 있을 것이다. 내 검을 호수에 던져라.'... 
그리플레는 더 이상 왕의 명을 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검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유심히 살펴 보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될 수 있는 한 호수의 가장 깊은 곳으로 검을 던졌다. 검이 물에 닿는 순간 그리플레는 주인을 알 수 없는 손이 물에서 팔굽까지 보이도록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 손은 검을 움켜쥐고는 하늘을 향해 서너번 흔들기 시작했다. 그 손은 검을 쥔 채로 물속으로 사라졌다."
- 토머스 맬러리, [아서의 죽음], 15세기


고려시대 [삼국사기]가 출간된 12세기 영국에서는 헨리2세가 즉위한다. 십자군전쟁기 유럽 프랑크족 '대장'인 프랑스 카페왕조(샤를마뉴 대제의 후손)에 대항한 영국의 앙주왕조 출신인 그는 소수 노르만족 계통으로 라틴계통의 다수의 '브리튼'들 사이에서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했다. 노르만족과 브리튼의 연대로 영국내 게르만족 일파인 색슨족에 대항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필요에 의해 12세기의 헨리2세는 5세기의 '아서왕(King Arthur)'을 소환한다. 마치 우리 고려 12세기의 김부식에게 1~7세기 '삼국시대'가 있었던 것처럼.

아서왕이 고대 켈트족이었든 근거지 '캐멀럿성'이 어디였든, 영국 불가사의 '스톤헨지'가 마법사 멀린의 작품이든 외계인의 소행이든, 아서왕은 영국내 노르만족 왕조의 '정통성'을 위해 명검 엑스칼리버를 들고 전설의 기사들과 함께 등장한다. 물론 지배이데올로기는 기독교 교리이며 그가 처단하는 색슨족은 '이교도'들이다. 카페왕조의 '프랑크인'들이 중근동에서 '이교도' '사라센인'들과 대적하듯, 영국의 헨리2세는 영국의 '샤를마뉴'인 아서왕의 '신화(神話)'로써 '이교도' 색슨족에 대적한다.

기독교 신화에서 '신의 아들'은 하나일테니 아서왕은 '신의 자식'은 아니다. 알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다. 우터 펜드라곤이라는 전설의 왕이 마법사 멀린의 도움으로 콘월 공작의 부인과 관계하여 낳은 아들이다. 다른 부모 아래 기사수업을 받던 아서(Arthur)는 돌에 박힌 검을 뽑아 왕국의 후계자가 되었는데 이는 귀족들의 반발을 무마하고 후계자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의 성격이 짙다. 실제 아서의 명검 엑스칼리버는 바위에서 뽑은 그 검이 아니라 호수의 여신 비비안이 주었다고 한다.


다소 어색하지만, 5세기의 '기독교'적 영웅 아서는 영국민족의 통합을 위해 분투했고 각지의 전설적 기사들을 원탁으로 모은다. 호수의 기사 랜슬롯과 녹색기사 거웨인, 성배찾은 갤러해드, 퍼시벌, 아서를 배신하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아들 모드레드 등. 그러나 '원탁의 기사'에 둘러싸인 아서왕은 예전의 그가 아니었고 '평화' 시대에 사냥과 시합에 열중하던 그가 가진 건 결국 '원탁' 뿐이었으며 '근친상간'으로 얻은 아들 모드레드와의 마지막 결전 후 아들과 함께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영국의 다수 민족 '브리튼'들은 이 아서와 호수에 버려진 엑스칼리버가 죽지 않고 '구세주'처럼 다시 부활한다고 믿었다는데, 이 '구세주(그리스도/메시아)' 아서는 헨리2세 정권의 정통성을 선전하는 이데올로기로서 딱 맞는 소재였다.

이렇게 정권의 안정을 위해 소환되고 조작된 '영웅설화'는 봉건체제의 반영으로서 힘없는 아서의 '원탁'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뜬금없는 '성배(聖杯:The Holy Grail)'의 등장으로 애초 계획에는 없던 수많은 이야기와 전설들을 양산하면서 많은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영문학에서는 아마도 15세기 작가 토머스 맬러리(Thomas Malory)의 [아서의 죽음]이 최초로 집대성된 이야기일 것이다.


"옛날 열국에서도 또한 각기 사관을 두어 사실을 기록하였으므로 맹자가 말하기를, '진나라의 [승], 초나라의 [도올], 노나라의 [춘추]가 그 한가지다.' 하였습니다. 이 해동의 3국도 역사가 오래 되어 마땅히 그 사실을 서책에 기록해야 될 것이므로, 이에 노신으로 하여금 편집하도록 하셨으나 스스로 돌아보건대 부족됨이 많아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성상 폐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지금의 학사대부들이 오경과 제자의 글이나 진한 역대의 사(史)에 대하여, 혹은 널리 통하여 상세히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우리 나라 사실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망연하여 그 처음과 끝을 모르니 심히 탄식할 일이다.'... 
신은 본래 재주가 없고 또 깊은 학식도 없으며, 노년에 이르러 날로 혼몽을 더하여 비록 부지런히 독서를 한다 해도 책만 덮으면 곧 잊어버리고, 붓을 잡아도 힘이 없어 종이를 대하면 써내려가기가 어렵습니다... 삼가 <본기> 28권, <연표> 3권, <지> 9권, <열전> 10권을 편찬하여 표와 함께 올립니다. 위로 천람을 입게 되니 부끄러워 땀이 나고 황송함이 이를 길 없습니다."
- [삼국사기(三國史記)], <올리는 글>, 김부식, 1145.


'정사'를 편찬한 학자는 당대 최고의 학자였을 것이며, 고려 인종대 김부식은 '묘청의 난'을 진압하기도 한 당대 최고의 관료이기도 했다. 그는 고려 태조 왕건의 창업이 정당한 '하늘의 순리'임을 지난 삼국의 역사를 통해 입증해야만 했는데, '역작'을 올리면서도 전전긍긍한다. 실제로 '정사'를 편찬한 대학자들은 당시 군주에게 '올리는 글'에서 진땀을 흘리며 죽을 죄를 지었다고 땅에 코를 연신 박고 있다.
'정사'의 한계란 그 내용의 치밀함은 둘째로 하고 이 <서문>에서 정체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기전체'의 창시자, 사마천이 [사기]를 펴내면서 "과연 하늘의 도는 있는가?"라고 던지는 탄식에 어찌 비하겠는가?


언제나 시작은 '신화(神話)'라는 '이데올로기'로 기술되던 '정사(正史)'의 시대는 오래전에 종말을 고했으나, 소수 지배자들은 언제가 되었든 역사를 '사유화'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한편으로, '정사'로서의 '기전체'는 지배권력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용되어 왔으나, 원래 '기전체'는 <본기>의 날줄과 <열전>의 씨줄이 교차하면서 침묵 속에 드러나는 사실의 모순과 그로 인한 맥락의 서사가 참된 묘미이기도 하다.


***

1. [아서왕(King Arthur) - 전설로 태어난 기사의 수호신], 안 베르텔로트, 채계병 옮김, <시공사>, 2003.
2. [삼국유사(三國遺事)], 일연, 최호 역해, <홍신문화사>, 1991.
3. [삼국사기(三國史記)], 김부식, 최호 역해, <홍신문화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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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왕: 전설로 태어난 기사의 수호신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15
안 베르텔로트 지음, 채계병 옮김 / 시공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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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언제나 시작은 '신화(神話)'로
- [아서왕(King Arthur) : 전설로 태어난 기사의 수호신], 안 베르텔로트, 채계병 옮김, <시공사>, 2003.



"서(敍)한다.
대저 옛날 성인이 바야흐로 예악으로 나라를 일으키고 인의(仁義)로 교화를 베풀되 괴력난신(怪力亂神)은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왕이 장차 일어나려고 하면 부명(符命)이 응하고 도록(圖籙)을 받아 반드시 다른 사람과 다름이 있은 연후에야 큰 변화를 하여 대기(大器)를 장악하고 대업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수에서는 도가 나왔고, 낙수에서는 서가 나와 성인이 일어났다. 무지개가 신모를 감싸 복희를 낳았고, 용이 여등과 교감하여 염제를 낳았으며,... 요 임금은 잉태한 지 14개월 만에 태어났고, 용이 큰 못에서 교합하여 패공(한고조 유방)을 낳았는데, 이 이후의 일은 어찌 다 기록할 수 있으리오. 그러니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이(神異)한 가운데서 나온 것을 괴이하게 여길 것이 무엇인가? <기이(紀異)편>을 이 책의 첫머리에 싣는 뜻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 [삼국유사(三國遺事)], 일연, 최호 역해, <홍신문화사>, 1991.


기록으로서의 '역사', 특히 '정사(正史)'는 대부분 '승자의 기록'이다.
지배자들은 자신이 도둑질한 천하가 '안정'되었다고 판단되면 지난 역사를 정리하였다. 자신들의 권력이 '정당하다'는 증명이었다.
동아시아에서 이 '정사'는 제왕의 기록'인 <본기(本紀)>와 제후 또는 영웅들의 기록으로서 <열전(列傳)>을 엮어서 펼치는 '기전체(紀傳體)'가 이 '정식 역사'의 서술방법이었다.
기원전 1세기 중국 한나라 역사가 사마천이 처음 시도한 [사기(史記)]의 '기전체'는 비록 그 당시에는 '정사'가 아니었으나 이후 여러 왕조를 거쳐 '정사'의 기술방식이 되었다.

13세기 고려시대 승려 일연은 [삼국유사]를 썼는데, 우리 역사에서 '정사(正史)'에 대비되는 '야사(野史)'의 대표작이다. 고려 당대 최고의 승려인 '국존'으로서 일연은 1289년 입적 전까지 경북 군위 인각사에서 100여 편의 책을 지었다는데 [삼국유사]는 그 중 하나일 것으로 추정된다. 
일연은 한세기 전 '정사'인 김부식의 [삼국사기] 부류의 역사서들이 담지 않는 불교적, 향토적 내용을 중심으로 서술하는데 주된 내용은 삼국시대 불교의 전파와 대표적인 승려들에 의한 '흥법(興法)', 탑과 불상 등에 대한 이야기, 지역의 기릴만한 이야기들이다. 후세대인 우리에게는 '단군설화'를 통해 우리 민족의 '족보'를 정리한 사서로 알려져 있다.
사마천이 중국의 열국들의 시조로서 '삼황오제'의 거대한 족보를 완성했듯, 일연은 한반도와 요동의 자손들을 '단군왕검'의 자식들로 '족보화'하였다.
일연이 <본기> 같은 '정사'가 아니라 <기이(紀異)편>으로 [삼국유사]를 시작한 이유다.

아마도 일연이 가장 비판하고 싶었을 한세기전 유생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도 신라, 고구려 등의 시조는 다들 '괴력난신(怪力亂神)'들이었다. 신라의 박혁거세나 고구려 동명성왕 고주몽도 정체불명의 알에서 태어났고 백제의 온조도 고주몽의 아들이니 보통사람과 다른 '신의 자식들'이었다. 이제 일연은 우리 고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을 천신인 환인의 아들인 환웅과 웅녀의 아들로 확정한다.
구전되는 설화와 민담, 혹은 그 당시까지 있었을 기록을 토대로 구축한 '신화(神話)'다.
아마도 '신의 아들(천자)'을 자칭하는 환웅이 나타나 호랑이를 숭상하는 씨족은 몰살시키고 곰을 숭상하는 씨족과 결합하여 '고조선'을 세웠으리라.
[삼국유사]의 관점은 고려시대에 우리 한반도 또는 요동까지 하나의 '역사공동체'로 인식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짧지만 말갈족까지 아우르는 발해국에 대한 기록도 포함한다.


"그는 해안으로 내려가 허리띠 검집에서 검을 뺐다. 그는 오랫동안 검을 유심히 보다가는 마침내 '아! 훌륭하고 고귀한 검... 이 시대 가장 훌륭한 검인 엑스칼리버여! 이제 너는 주인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아서왕은 그리플레를 불렀다. '저기 언덕 밑으로 가거라.' 왕은 명령했다. '그곳에 가면 호수가 있을 것이다. 내 검을 호수에 던져라.'... 
그리플레는 더 이상 왕의 명을 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검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유심히 살펴 보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될 수 있는 한 호수의 가장 깊은 곳으로 검을 던졌다. 검이 물에 닿는 순간 그리플레는 주인을 알 수 없는 손이 물에서 팔굽까지 보이도록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 손은 검을 움켜쥐고는 하늘을 향해 서너번 흔들기 시작했다. 그 손은 검을 쥔 채로 물속으로 사라졌다."
- 토머스 맬러리, [아서의 죽음], 15세기


고려시대 [삼국사기]가 출간된 12세기 영국에서는 헨리2세가 즉위한다. 십자군전쟁기 유럽 프랑크족 '대장'인 프랑스 카페왕조(샤를마뉴 대제의 후손)에 대항한 영국의 앙주왕조 출신인 그는 소수 노르만족 계통으로 라틴계통의 다수의 '브리튼'들 사이에서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했다. 노르만족과 브리튼의 연대로 영국내 게르만족 일파인 색슨족에 대항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필요에 의해 12세기의 헨리2세는 5세기의 '아서왕(King Arthur)'을 소환한다. 마치 우리 고려 12세기의 김부식에게 1~7세기 '삼국시대'가 있었던 것처럼.

아서왕이 고대 켈트족이었든 근거지 '캐멀럿성'이 어디였든, 영국 불가사의 '스톤헨지'가 마법사 멀린의 작품이든 외계인의 소행이든, 아서왕은 영국내 노르만족 왕조의 '정통성'을 위해 명검 엑스칼리버를 들고 전설의 기사들과 함께 등장한다. 물론 지배이데올로기는 기독교 교리이며 그가 처단하는 색슨족은 '이교도'들이다. 카페왕조의 '프랑크인'들이 중근동에서 '이교도' '사라센인'들과 대적하듯, 영국의 헨리2세는 영국의 '샤를마뉴'인 아서왕의 '신화(神話)'로써 '이교도' 색슨족에 대적한다.

기독교 신화에서 '신의 아들'은 하나일테니 아서왕은 '신의 자식'은 아니다. 알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다. 우터 펜드라곤이라는 전설의 왕이 마법사 멀린의 도움으로 콘월 공작의 부인과 관계하여 낳은 아들이다. 다른 부모 아래 기사수업을 받던 아서(Arthur)는 돌에 박힌 검을 뽑아 왕국의 후계자가 되었는데 이는 귀족들의 반발을 무마하고 후계자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의 성격이 짙다. 실제 아서의 명검 엑스칼리버는 바위에서 뽑은 그 검이 아니라 호수의 여신 비비안이 주었다고 한다.


다소 어색하지만, 5세기의 '기독교'적 영웅 아서는 영국민족의 통합을 위해 분투했고 각지의 전설적 기사들을 원탁으로 모은다. 호수의 기사 랜슬롯과 녹색기사 거웨인, 성배찾은 갤러해드, 퍼시벌, 아서를 배신하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아들 모드레드 등. 그러나 '원탁의 기사'에 둘러싸인 아서왕은 예전의 그가 아니었고 '평화' 시대에 사냥과 시합에 열중하던 그가 가진 건 결국 '원탁' 뿐이었으며 '근친상간'으로 얻은 아들 모드레드와의 마지막 결전 후 아들과 함께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영국의 다수 민족 '브리튼'들은 이 아서와 호수에 버려진 엑스칼리버가 죽지 않고 '구세주'처럼 다시 부활한다고 믿었다는데, 이 '구세주(그리스도/메시아)' 아서는 헨리2세 정권의 정통성을 선전하는 이데올로기로서 딱 맞는 소재였다.

이렇게 정권의 안정을 위해 소환되고 조작된 '영웅설화'는 봉건체제의 반영으로서 힘없는 아서의 '원탁'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뜬금없는 '성배(聖杯:The Holy Grail)'의 등장으로 애초 계획에는 없던 수많은 이야기와 전설들을 양산하면서 많은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영문학에서는 아마도 15세기 작가 토머스 맬러리(Thomas Malory)의 [아서의 죽음]이 최초로 집대성된 이야기일 것이다.


"옛날 열국에서도 또한 각기 사관을 두어 사실을 기록하였으므로 맹자가 말하기를, '진나라의 [승], 초나라의 [도올], 노나라의 [춘추]가 그 한가지다.' 하였습니다. 이 해동의 3국도 역사가 오래 되어 마땅히 그 사실을 서책에 기록해야 될 것이므로, 이에 노신으로 하여금 편집하도록 하셨으나 스스로 돌아보건대 부족됨이 많아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성상 폐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지금의 학사대부들이 오경과 제자의 글이나 진한 역대의 사(史)에 대하여, 혹은 널리 통하여 상세히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우리 나라 사실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망연하여 그 처음과 끝을 모르니 심히 탄식할 일이다.'... 
신은 본래 재주가 없고 또 깊은 학식도 없으며, 노년에 이르러 날로 혼몽을 더하여 비록 부지런히 독서를 한다 해도 책만 덮으면 곧 잊어버리고, 붓을 잡아도 힘이 없어 종이를 대하면 써내려가기가 어렵습니다... 삼가 <본기> 28권, <연표> 3권, <지> 9권, <열전> 10권을 편찬하여 표와 함께 올립니다. 위로 천람을 입게 되니 부끄러워 땀이 나고 황송함이 이를 길 없습니다."
- [삼국사기(三國史記)], <올리는 글>, 김부식, 1145.


'정사'를 편찬한 학자는 당대 최고의 학자였을 것이며, 고려 인종대 김부식은 '묘청의 난'을 진압하기도 한 당대 최고의 관료이기도 했다. 그는 고려 태조 왕건의 창업이 정당한 '하늘의 순리'임을 지난 삼국의 역사를 통해 입증해야만 했는데, '역작'을 올리면서도 전전긍긍한다. 실제로 '정사'를 편찬한 대학자들은 당시 군주에게 '올리는 글'에서 진땀을 흘리며 죽을 죄를 지었다고 땅에 코를 연신 박고 있다.
'정사'의 한계란 그 내용의 치밀함은 둘째로 하고 이 <서문>에서 정체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기전체'의 창시자, 사마천이 [사기]를 펴내면서 "과연 하늘의 도는 있는가?"라고 던지는 탄식에 어찌 비하겠는가?


언제나 시작은 '신화(神話)'라는 '이데올로기'로 기술되던 '정사(正史)'의 시대는 오래전에 종말을 고했으나, 소수 지배자들은 언제가 되었든 역사를 '사유화'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한편으로, '정사'로서의 '기전체'는 지배권력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용되어 왔으나, 원래 '기전체'는 <본기>의 날줄과 <열전>의 씨줄이 교차하면서 침묵 속에 드러나는 사실의 모순과 그로 인한 맥락의 서사가 참된 묘미이기도 하다.


***

1. [아서왕(King Arthur) - 전설로 태어난 기사의 수호신], 안 베르텔로트, 채계병 옮김, <시공사>, 2003.
2. [삼국유사(三國遺事)], 일연, 최호 역해, <홍신문화사>, 1991.
3. [삼국사기(三國史記)], 김부식, 최호 역해, <홍신문화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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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옳다! - 세상을 뒤흔든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7개월 숨쉬는책공장 일과 삶 시리즈 2
이용덕 지음 / 숨쉬는책공장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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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옳다!](2020) - 이용덕
- 세상을 뒤흔든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7개월



"도로공사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많은 민주노총 소속 대공장 노동자들도 IMF 사태 직후 펼쳐진 대규모 정리해고 공세 앞에서 한편으로 민주노조가 갖는 힘의 한계를 절감하고 한편으로 지도자들의 배신에 절망하고 길들여지면서 보수화되었다. 이후 여러 구조조정 투쟁에서 만만치 않은 저항의 힘을 보여 주기도 했지만 자신감이 예전처럼 올라오진 않았다.
상당한 임금을 받고 있고 고용불안을 덜 느끼는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의 비참한 삶을 바라보며 그들에 대한 연민이나 연대의식을 느끼는 것 이상으로 좀 더 나은 노동 조건과 소비 능력을 가진 자신에 대한 우월감과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그 안도감 이면에는 의식하든 못 하든 뿌리 깊은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점점 더 커지고 정당성을 키워 가면 자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지위가 흔들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 불안감 때문에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의 영혼은 피폐해졌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에 등을 돌리는 일이 수시로 발생했다."
- [우리가 옳다!], <1장 - 자를 사람 적어내라>, 이용덕, <숨쉬는책공장>, 2020.


그 동안 '책을 읽어준다'는 미명으로 '서평'을 끄적여댔다. 부족한 능력이지만 내 '서평'을 통해 그 책을 읽은 것과 비슷한 효과를 보도록 중요 문구를 인용하고 나름대로 해석했다. '이윤'을 위한 것은 아니나 바쁜 사람들에게 나의 미흡한 글을 '포장'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다분히 '자본주의'적이고 '대리주의'적인 발상이다.

그러나 2019년 6월부터 2020년 초까지 7개월간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선봉이었던 톨게이트 수납노동자들의 투쟁 기록 [우리가 옳다!]는 감히 대신 '읽어줄' 수 없다.
이 글은 내 삶의 주인이고 싶은 우리 노동자 모두가 구입하고 읽으며 공감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적는 작은 응원글이다.


나의 사업장에서 잠시 노조 간부로 있을 때, 현대차와 기아차 하청노동자 투쟁과 케이블기사 노동자 투쟁은 우리 시대 노동자 투쟁의 주요 사안, '비정규직 철폐' 투쟁의 모든 것이었다. 강인한 남성 노동자들의 전투적이고 영웅적인 투쟁. 자본과 그 소비문화에 안정적으로 길들여진 나같은 '정규직'이 아니라 스스로의 행동으로 주체화된 '비정규직' 노동자 그들이 이끌어가는 투쟁이 현재 노동자 운동의 전부로 보였다.

나의 사업장에도 비슷한 사안들이 있었으나 미처 해결 못하고 현장에 돌아온 후, 톨게이트 수납노동자들의 투쟁을 보았다.
이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공약은 다름아닌 '자회사'를 통한 재고용이었고 해당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의 후퇴였으며 '새로운 시대'를 맞아 '없어질 일자리'에 대한 자본가들의 비인간적인 '대안'이었다. 안그래도 최저임금에 노예처럼 일해 온 노동 약자들을 더욱 '노예화'시키는 것이었다.
2015년 서산톨게이트영업소에서부터 시작된 이 싸움은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민주노조를 배제하고 해고하는 도로공사와 정부에 대항한 투쟁이었고, 용역회사 하도급 관계에서 도로공사의 직접적 사용자성이 법원판결에서도 인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승소한 일부만 직접고용하되 그것도 '자회사'를 설립하여 '없어질 일자리'들을 폭력적으로 외주화하는 자본 전체와의 싸움이었다.
더 나아가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은 '다수'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소수'로 취급되어온 '비정규직'은 물론, '여성'과 '장애인'의 권리쟁취와 해방의 사안이 모두 응축된 투쟁이었다.

청와대와 광화문 일대 집회, 서울요금소 캐노피 고공농성, 집권여당 국회의원 사무소 점거와 김천 도로공사 본사 점거 과정에서 한국노총 정규직노조의 도로공사 편들기에 크게 분노했으나 한편으로 돌아서 내심 '내 현장에서 그런 나는 무엇이 다른가?' 여러 번 되돌아보게 했다.
'비정규직', '여성', '장애' 등의 주요 사안 일체를 대표한 이 처절한 투쟁과 조합원들의 주옥 같은 발언들은 차마 인용할 엄두를 못 내겠다.
많은 노동자들이 직접 읽었으면 한다.


"결국, 근본적 질문은 삶이 먼저냐, 이윤이 먼저냐다. 이 가치관으로 싸워야만 노동자들은 더 인간답고 풍요로운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 
노동자계급에겐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 노동자들은 생산과 판매, 서비스의 주체로 마음먹으면 세상을 멈출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단결과 협동, 연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톨게이트 투쟁은 그 힘의 아주 작은 일부를 보여 주었을 뿐이다. 아직 발견되지 못한 별은 수없이 많다."
- [우리가 옳다], <8장 -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이용덕, <숨쉬는책공장>, 2020.


톨게이트 수납노동자들의 싸움은 지금 시대 노동자 투쟁의 '전부'였음에도 '완전 승리'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역시, 이 노동자 투쟁은 '작은 승리'가 아닌 '단결'과 '연대'의 성과를 남겼고, '작은 일부'였으나 '이윤'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가치를 다시 한 번 우리 사회에 새기고자 했다.
그들은 '자회사'를 통한 외주화를 막지는 못했을 지언정 1,500명의 '직접고용'을 위해 '함께 가자'는 가치를 끝까지 지키고자 했으며, 지도부와 정치 '거간꾼'(을지로위원회)의 비민주성에 파업현장의 생생한 직접 민주주의와 흥겨운 율동으로 대항했다.

그들의 힘겨웠던 투쟁은 가장 가난하고 억압받던 사람들이 뭉치면 얼마나 강하고 당당해질 수 있는지 자본에게는 물론 다수 노동자들에게도 분명히 보여주고자 했으며, [우리가 옳다!]는 그들의 기록은 '작은 일부'가 아닌 '전체 노동자'의 역사가 결국 '옳다'는 것을 증명한다.


노동운동가인 저자는 비록 나를 모르겠지만 내가 젊었을 적 옆에서 또는 멀리서 보았던 선배인데, 변함없이 민주노조 운동과 노동자계급 운동에 헌신하고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들을 대신하여 이 귀한 기록까지 남겼다.
저자에 대한 깊은 존경과 믿음 또한 내가 부끄러운 솜씨나마 응원글을 감히 쓰는 이유다.

지난 몇 년 간 내게는, 
노동개악에 맞서 노동자 총투쟁에 앞장섰던 한상균 민주노총 1기 직선위원장이 노동자들의 '예수'였고, 이용덕 노동운동가는 일관되게 노동자들의 '인(仁)'을 지키는 '공자'와 같다.


노동자운동의 역사는 항상, 
우리가 '다수'라서 '옳다'가 아닌 인간다운 삶을 선택한 '다수'는 결국 패배하지 않기에 '우리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 왔다.


***

- [우리가 옳다! - 세상을 뒤흔든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7개월], 이용덕, <숨쉬는책공장>,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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