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 이치를 담은 네 권의 책
신창호 지음 / 나무발전소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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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혁명가 정도전은 '유물론'자다
- [삼봉집(三峯集) - 2], 정도전, 정병철 편저, <KSI한국학술정보>, 2009.


"[주역]에, 
'성인의 큰 보배는 위(位)요, 천지의 큰 덕은 생(生)이니, 무엇으로 위를 지킬 것인가? 바로 인(仁)이다.'...
인군(人君)의 위(位)는 높기로 말하면 지극히 높고, 귀하기로 말하면 매우 귀하다. 그러나 천하는 지극히 넓고 만민은 수없이 많은데, 한 번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아마 크게 우려할 일이 생기게 될 것이다. 하민(下民)은 지극히 나약하나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지극히 어리석으나 지혜로써 속일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마음을 얻으면 복종하게 되고, 그들은 마음을 얻지 못하면 배반하게 된다... 그들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사사로운 뜻을 품고서 구차스럽게 얻는 것도 아니요, 도를 어기고 명예를 구하는 방법으로 얻는 것도 아니다. 그 얻는 방법은 오직 인(仁)으로써 가능하다."
-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보위를 바룸(正寶位)>, 정도전, 1394.

고려왕조를 멸하고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건국한 무리는 '유학(성리학)'을 지도사상으로 한 고려말 신흥사대부 중 '급진파'의 이념과 중앙에서 배제된 변방 무인세력의 무력의 결합이었다. 인물로 말하면, 정도전의 '머리'와 이성계의 '주먹'으로 이룬 혁명이었다.
고려말 대 유학자이자 재상이었던 목은 이색의 신흥사대부 사학 제자 중 정몽주는 온건개혁파였고 그 '운동권' 동아리 '동심회'의 4년 후배였던 정도전은 급진개혁파였는데, 이성계의 무력을 얻은 급진개혁파가 정몽주를 제거함으로써 비로소 혁명의 길로 치닫는다.

조선 개국 2년 후인 1394년, 삼봉 정도전은 새 국가를 운영하는 '법전'인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을 지어 태조 이성계에게 올린다. 오늘로 치면 '헌법'에 해당하는 문건으로 후세인 성종대에 이르러 [경국대전(經國大典)]으로 집대성되는 조선의 '법률초안'이다. [조선경국전]은 '이-호-예-병-형-공'의 중국 국가기구의 뼈대인 '육조(六曹)' 또는 '육전(六典)'을 정리하여 '국가조직을 짠다(經國)'는 국가운영 기획서이기도 했다. 유학의 시조 공자가 '이상적 시대'로 삼았던 중국 주나라의 [주례(周禮)]로부터 유래하는 '육전(六典)'은 '치(治)전', '교(敎)전', '예(禮)전', '정(政)전', '형(刑)전', '사(事)전'으로 각각 '이-호-예-병-형-공'을 의미한다. [조선경국전]은 각 공무조직의 틀과 업무 범위를 세세하게 규정하면서 중국과 고려의 역사를 함께 인용하고 있는데, 그 주제는 첫 장에 서술되는 '인사관리'의 '이(吏)조'에 해당하는 '치전(治典)'이며 주인공은 이를 총괄하는 '총재(冢宰)'다.

정도전이 설계한 '이상국가' 조선은 '천명'을 받은 군주를 앞세워 '유학(儒學)'의 군자가 실질적으로 다스리는 세상이었다. [조선경국전]에서 '천명'을 받은 군주는 '인군(人君)' 또는 '인주(人主)'이며, 실질적 국가 운영자인 '성인군자'는 바로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인 '재상(宰相)'이다.

'경영(經營)'이란 '조직의 틀을 짜는 것(經)'과 '인력을 운용하는 것(營)'의 조화를 뜻하는데, 이로써 '육전'의 최고는 '인사관리'의 '치전'이며 '재상' 중의 '재상'은 '치전'의 대표인 '총재'인 것이다. 


"총재(冢宰)라는 것은 위로 군부를 받들고 밑으로는 백관을 통솔하며 만민을 다스리는 것이니, 그 직책이 매우 큰 것이다. 또 인주(人主)의 자질에는 어리석은 자질도 있고 현명한 자질도 있으며, 강력한 자질도 있고 유약한 자질도 있어서 한결같지 않으니, 총재는 인주의 아름다운 점은 순종하고 나쁜 점은 바로잡으며, 옳은 일은 받들고 옳지 않은 것은 막아서, 인주로 하여금 '대중(大中)'의 지경에 들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상(相)'이라 하나니, 즉 '보상(輔相:임금을 도와 대신을 거느리며 다스림)'한다는 뜻이다. 백관은 제각기 직책이 다르고 만민은 제각기 직업이 다르니, 재상은 공평하게 해서 그들로 하여금 각자 그 처소를 얻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재(宰)'라 하나니, 즉 '재제(宰制:전권을 휘두름)'한다는 뜻이다."
- [조선경국전], <치전>, 정도전, 1394.


'치전'의 '총재'가 바로 '재상(宰相)'인 바, '전권을 휘두르며(宰)' '임금을 도와 대신을 거느리며 다스리는(相)' 직위이다. 가히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자리인데 국가운영의 하나하나를 소홀함 없이 다 알아야 하고 챙겨야 하는 중책이다. 사람이 이를 혼자 다 할 수는 없으므로 여러 인재를 선별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인사관리'가 제일 중요하니 '치전'의 '총재'가 조선의 '재상'이 되는 것이다. 재상은 아니나 먼훗날 조선 당쟁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 간관을 임명하는 정5~6품 '이조전랑'의 요직의 발령이 된 이유도 그 연장선상 아니겠는가.

'이상국가' 조선을 운영하는데 핵심은 이러한 성인군자 반열의 '재상'과 바른 말 하고 감사하며 비위자를 탄핵하는 '대간(臺諫:대관과 간관)'이었으니, 당시의 '유일한 정치체제'였던 '세습군주제'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대쪽같은 '성리학(주자의 유학사상)' 이념으로 무장한 비타협적 사대부 관료들과 그들에 의해 조직된 국가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위로는 음양을 조화하고 아래로는 서민을 어루만져 편안하게 하며, 안으로는 백성을 밝게 다스리고 밖으로는 사방의 오랑캐를 진정하고 무마하는 것이니, 국가의 작록과 포상과 형벌이 이에 관련이 있고 천하의 정치와 덕화, 가르침과 명령이 이로 말미암아 나오는 것이다. 전폐 아래에서 치도를 논하여 일인(군왕)을 돕고 묘당의 위에 서서 도견(성인의 정사)을 잡아 만물을 주재하니, 그의 직임이 어찌 가볍겠는가? 국가의 치란과 천하의 안위가 항상 이에서 비롯될 것이니 진실로 그 사람(재상)을 가볍게 고르지 못할 것이다."
- [경제문감(經濟文鑑)], <재상의 직>, 정도전, 1395.


정도전은 조선의 '헌법전'인 [조선경국전]에 이어, '재상'과 '대간(대관과 간관)'의 임무와 역할을 역시 성리학 사상에 기반하여 규정하는 '공무원 복무규정'으로서 [경제문감(經濟文鑑)]을 저술하는데 이 책은 우선 '육전'의 구성을 간략히 정리한 후, 중국 역사상 각 왕조와 고려 및 새 국가 조선에서 '재상'의 형태들을 일별하면서 위와 같은 '재상의 직'에 이어 '재상의 업'은 '자기 몸을 바르게 한다', '임금을 바르게 한다', '인재를 잘 안다', '일을 잘 처리해야 한다', '임금을 이끌어 도에 도달하게 한다' 등의 47개조 항목을 들고 있다. 역시 대관과 간관도 같은 형식으로 서술한다.
또한, [경제문감]의 <별집>을 따로 지어 중국 역대 왕들과 고려의 역대 임금들에 대한 간략한 '평론'을 하고 있는데, 정도전이 인정하는 '유학 군자'로서 훌륭한 '재상'은 '주공 단'은 물론 한나라 소하와 삼국시대 촉한의 제갈량 등이며, 한편으로 꼽는 뛰어난 인군은 은탕, 주무왕, 한고조 유방, 당태종 이세민, 송태조 조광윤, 고려태조 왕건 등이 있다.
물론, 중국 역사에 대한 사대주의 풍조가 주를 이루고, 지배계급의 틀에서의 혁신을 논하기에 역사속 '농민혁명'과 왕안석 '신법' 등을 폄하하고 있음은 신분제 사회였던 당시의 시대적 한계로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정도전의 '혁명'은 단순한 왕조 교체로서 '역성혁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시에는 진보적이었던 사상을 토대로 완전히 새로운 사회체제를 건설하고자 했던 진정한 '혁명'이었다.

"어떤 사회에서든 어른이 되려는 사람이 배워야 하는 지도자의 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신의 착한 마음을 인식하고 그것을 밝혀라.
둘째, 자기 수양을 바탕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라.
셋째, 자신의 착한 마음의 수양을 바탕으로 타인과 어울리며, 조화로운 사회관계를 일상에서 지속하라.

대학지도(大學之道),
재명명덕(在明明德),
재친민(在親民),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
- [대학(大學)], <경문 1-1>


조선의 '건국이념'으로서 '성리학'은 춘추시대 공자로부터 시작한 '유학'을 북송시대 주돈이나 남송시대 주희(주자)가 철학적 '이기론(理氣論)'으로 정리한 사상으로 종교와 같은 반열의 '유교'가 되는데, 정도전이 말한 '군자'는 유교의 '4서'인 [대학], [논어], [맹자], [중용] 등을 완벽하게 체득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고대로부터의 역사는 물론 [논어]에서 말한 공자의 '인(仁)'과 [맹자]의 '의(義)'의 정치를 아우르고 [중용]의 치우침 없는 '불편부당'과 지도자(어른)가 갖추어야 할 학문적 소양을 가리키는 [대학] 등에 통달해야 한다.

우리나라와 중국을 통틀어 아시아, 아니 전세계 역사 속에서 정도전에 이르러 비로서 [대학]의 '3강령 8조목'이 현실에서 '혁명'적으로 실현된다. 공자의 '애민(愛民)정치'와 맹자의 '여민(與民)정치'를 기반으로 [대학]의 '3강령(明明德-親民-止於至善)'과 '8조목(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을 '관념'이 아닌 현실정치에서 실현했던 유일한 시도였다.
당시의 시대상황을 고려해도 삼봉 정도전은 일체의 '관념론'을 거부한 '유물론'자였던 것이다.


"불(佛)씨의 학(學)이... 저들 스스로가 물(物)을 부리기는 하되 물에게 부림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만일 돈 한 푼을 주어도 곧 그것을 어찌할 줄 모른다면 그 일이 이상하지 않는가? 그런즉 하늘이 이 사람을 내어 만물의 영장이 되게 하고, 재성(財成), 보상(輔相)의 직책을 준 이유가 과연 어디 있겠는가?...
요컨대 우리(유학)는 마음과 이치가 하나라고 본 것이요, 저들(불교)은 마음이 공(空)함으로써 이치도 없다고 보았고, 우리는 마음이 비록 공하나 만물의 이치를 갖추고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자면 우리 유가는 하나이고 석씨는 둘이며, 우리 유가는 연속이고 석씨는 간단(間斷:끊어짐)인 것이다."
- [불씨잡변(佛氏雜辨)], <14. 유교와 불교가 같은 점, 다른 점에 대한 변>, 정도전, 1398.


정도전은 조선의 '건국이념' 성리학을 정치사상으로 실현함과 동시에 '철학' 이데올로기로 굳건히 하기 위해 기존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불교'와 사상 논쟁을 전개하는데, 이 다분히 '논쟁적 저작'이 바로 [불씨잡변(佛氏雜辨)]이다.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은 '하늘의 이치'인 '이(理)'와 '인간의 실천'인 '기(氣)'가 하나라는 '일원론'적 주장을 통해 불교에서 속세와 내세를 구분하는 '이원론'을 통렬히 논박한다.
민중의 '물질적' 욕구와 토지제도 개혁과 같은 '경제민주화'는 등한시한 채 내세를 향한 '수양'과 '깨달음'을 앞세워 말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부정하게 부를 축적하는 당시 지배종교로서의 불교를 '불씨', '석씨(석가모니)'로 칭하며 비판과 논박을 하고 있다. 마치 5~6백년 후 유럽의 혁명가 엥겔스의 [반뒤링론]이나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못지 않다.
'혁명가' 정도전에 의해 당시 지배 이데올로기 불교의 '윤회론', '인과론', '지옥론', '자비론' 등의 19개 논제가 처절하게 짓밟힌다.
불교와 유교의 가장 큰 차이는 '이원론'과 '일원론'이고 '관념론'과 '유물론'이다. 마치 천 년 이전 플라톤의 사상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그것 차이와 비슷하기도 하다.
불교의 '내세'적 '관념론'과 대비되는 유학의 '현실'적 '유물론'은 역시 '4서 5경' 중 하나인 [주역(역경)]의 '과학'(또는 '음양오행설')에 의해 천태만상으로 변화발전하는 객관적 세계를 토대로 한다.


물론, 조선 후기에 이르러 다수 민중을 위한 현실정치와 격리된 '유교'로서 성리학은 '관념론'의 길을 갔으나, 조선의 건국 이데올로기로서의 초기 '유학'은 이념과 현실을 '일원론'으로 파악한 '유물론'적 성격이 다분했다.

그리하여,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불세출의 혁명가 삼봉 정도전 선생을 감히 나는 '유물론자'라 부른다.


***

1. [삼봉집(三峯集) - 2], 정도전, 정병철 편저, <KSI한국학술정보>, 2009.
2. [사서(四書) - 이치를 담은 네 권의 책(대학/논어/맹자/중용)], 신창호 편역, <나무발전소>,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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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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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즐기면, 이 또한 '희망'을 향해 지나가리라!
- [라틴어 수업], 한동일, <흐름출판>, 2017.




"많은 유럽 언어에는 '힘'을 나타내는 단어가 두 개씩 있다. 라틴어에는 potestas-potentia, 프랑스어에는 pouvoir-puissance, 스페인어에는 poder-potencia, 독일어에는 Macht-Vermogen 등이 있는 반면 영어에는 power 한 단어만 있다... 소문자 'power(활력)'와 대문자 'Power(권력)'로 구분... 수직적이고 중앙집중화된 지배권력, 자본주의 명령, 삶권력에는 '권력(Power/potestas)'이라 이름 붙이고, 저항의 수동적 과정, 산노동의 힘, 삶정치의 창조적 측면에는 '활력(power/potentia)'을 썼다."
- [Assembly](2017), '1-5 권력을 다르게 잡자',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이승준/정유진 옮김, <알렙>, 2020.



라틴어는 문자로만 전해오는 '죽은 언어'다.
기원전 1세기경 지중해를 중심으로 뻗어나갔던 고대 로마제국의 문자로 '세계 공용어'였던 라틴어는 지금의 '영어'와 같이 강대국의 지배를 통해 널리 확산된 언어로서 '제국의 언어'라는 공통점이 있다.
20세기 미국의 패권을 표현했던 라틴어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유래가 기원후 1~2세기 로마제국의 전성기를 나타냈던 표어 '팍스 로마나(Pax Romana)'다. 즉, 제국의 힘으로 유지되는 세계 '평화(Pax)'라는 오만함이다.
언어로서 영어의 부모는 게르만어와 라틴어인데 라틴어는 영어의 엄마 격이다.

'다중'의 아래로부터 운동으로 '제국'에 저항하고 새로운 권력지형을 만들자고 주장하는 이탈리아 정치학자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최근 저작 [Assembly]에서 '권력'을 뜻하는 라틴어로 'potestas(포테스타스)'와 'potentia(포텐티아)' 두 개가 있는데, '포테스타스'는 물질적이고 수직적 '권력'이고 '포텐티아'는 잠재적이고 수평적 '활력'이라고 구분한다. 지배권력은 라틴어로 '포테스타스'이고 지배권력을 새롭게 구성할 '다중'의 '활력'은 '포텐티아'다. 영어로 '잠재력'인 'potential'의 어원이 라틴어 'potentia(포텐티아)'다.


"'카르페 디엠'은 원래 농사와 관련된 은유로서 로마의 시인인 호라티우스가 쓴 송가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시구입니다.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카르페 디엠, 쾀 미니뭄 크레둘라 포스테로.
오늘을 붙잡게. 내일이라는 말은 최소한만 믿고."

- [라틴어 수업], 한동일, <흐름출판>, 2017.


동아시아 최초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인 한동일 신부의 대학 강의록을 엮은 [라틴어 수업]은 라틴어 속담을 중심으로 풀어내는 인문학 이야기다. 유럽과 영미 등의 서양 언어에서 '로마제국'의 '라틴어'는 동아시아에서 '중국제국'의 '한자(漢字)'와 위상이 비슷하니 [라틴어 수업]은 아시아식으로 보면 '고사성어(故事成語) 강의' 정도 되겠다. 
언어는 역사적으로 다분히 정치경제적이고 사회적이다.
오래전 '죽은 언어' 라틴어는 이렇게 '살아 있다'.

우리에게 '오늘을 즐겨라'로 익히 알려진 '카르페 디엠'을 예로 들면, 이 문구는 호라티우스의 시에서 유래하는데, '카르페(carpe)'는 '추수하다'는 뜻의 '카르포(carpo)'의 명령형으로 일년 동안 힘들여 지은 농작물을 '오늘 수확하라'는 말이다. 그간 고생했으니 내일 생각은 말고 오늘에 충실하라는 시구절이 쾌락주의 사조의 표제어로도 쓰이면서 '오늘을 즐겨라'로 의역되었다는 이야기다.


"신약성서 마태오복음 6장 34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Nolite ergo esse solliciti in crastinum crastinus enim dies sollicitus erit sibi ipse sufficit diei malitia sua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일 일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마태오는... 기본적으로 삶을 선물로 받아들이는 믿음(신앙) 안에서 살아야 내일 일을 걱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지금 당장 힘들어 죽겠는데 그런 힘이 어디에서 나오느냐고 반문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럴 때 이 단순한 말 한 마디를 생각합니다.

Hoc quoque transibit!
혹 쿠오퀘 트란시비트!
이 또한 지나가리라!"

- [라틴어 수업], 한동일, <흐름출판>, 2017.


마태오는 신앙이라는 '영원'을 믿었기에 하루하루를 버텼겠지만, 일반 '다중'에게는 기쁨도 슬픔도 영원하지 않고 '본래 얻고 잃는 것은 없고 잠시 머물 뿐'이라는 [동국이상국집]의 이규보 선생이 말한 '부처님 말씀'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카톡 프로필 문구 등으로 많이 쓰이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Hoc quoque transibit)"에서 '지나가는' 'transibit'는 '변화'를 의미하는 'trans-'의 어원을 갖고 있다. 지나가는 시간과 그 축적으로서 인생은 계속 '변화'하니 오늘의 슬픔이 내일의 행복이 될 수 있다. 동양의 고사성어로 중국 전한시대 잡기록 [회남자(淮南子)]에 나오는 '새옹지마(塞翁之馬)'와 비슷하다. 
그러니 일희일비 말고 '평상심'으로 오늘을 보내자는 지혜의 말이다.


오늘을 버티는 힘은 '희망'이다.
'희망'은 라틴어로 '스페스(spes)'라는데 '기대하고 바란다'라는 뜻인 인도-유럽어 ''speh-s'에서 왔다고 한다. 반대로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 무너지는 순간 '절망'이 찾아오는데, '희망이 거두어진 것'이라는 라틴어 단어는 '데스페라티오(desperatio)'라고 한다. 영어로 '자포자기 또는 필사적 상태(desperation)'의 어원이다.
'절망'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희망'을 향해 '지나가는(transibit)' 것이 지혜로운 인생철학이며, 이것이 바로 '변증법(辨證法/dialectic)'이다.
'변증법(dialectic)'의 라틴어원 'dia-'는 '서로 통한다'는 의미의 접두어다.
이렇게 '반대말'도 서로 통하는 것이 바로 '변증법'이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아 고달프고 힘들어 내일이 보이지 않더라도, 그 동안의 노력을 '추수(carpe)'하는 오늘을 즐기고, 그 오늘이 별로였더라도 '지나가는(transibit)' 시간의 한 때로 담담하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지혜의 구절들을 소개한 후 한동일 신부는 [라틴어 강의]를 '삶'과 '희망'으로 맺는다.


"라틴어 명구에도 희망과 관련된 것들이 참 많아요.

Dum vita est, spes est,
둠 비타 에스트, 스페스 에스트,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Dum spiro, spero.
둠 스피로, 스페로.
숨 쉬는 동안 나는 희망한다.

Dum vivimus, speramus.
둠 비비무스, 스페라무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희망한다."

- [라틴어 수업], 한동일, <흐름출판>, 2017.

***

1. [라틴어 수업], 한동일, <흐름출판>, 2017.
2. [Assembly](2017),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이승준/정유진 옮김, <알렙>,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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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5
임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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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중항쟁
- 신군부 쿠데타 세력에 의한 계엄령 선포와 광주민중들의 항쟁



"윤상현(소설 속 윤상원 열사)! 넌 왜 스스로 죽음을 택하려 하는가?... 
누군가는 이 자리를 지켜야 해. 지난 열흘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쳐 이어온 이 뜨거운 항쟁의 마침표를 누군가는 찍어야 해.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 해야 한다면, 그렇다면 내가 하겠다는 거야. 이유는 다만 그것 뿐이야. 저 불의한 압제자들에게 이 자리를,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냥 고스란히 내어줄 수는 없어. 절대로. 그것이야말로 저들의 승리를 완전히 인정해 주는 것이 되고 말 터이므로... 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설사 이 순간엔 우리의 싸움이 패배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일 뿐이야. 훗날 다른 누군가가 이 싸움을 다시 시작하겠지. 그래, 아무 것도 헛된 것은 없어. 우리가 꿈꾸었던 것, 사랑하고 소망하고 투쟁했던 것, 진정 그 어떤 것도 헛된 것은 없어..."
- [봄날] 5권, '1980. 5. 27. 윤상원 열사의 독백', 임철우, <문학과지성사>, 1997.


들불야학 선생으로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을 지키던 서른 살 윤상원 열사의 심경을 작가 임철우가 그의 소설 [봄날]에서 재구성한 대목이다.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스물여섯 살이었던 소설가 임철우는 '살아남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그런 스스로와 '화해'도 하지 못한 채 항쟁 후 17년이 지난 1997년에 '광주민중항쟁'의 일지를 소설로 재구성했는데, 바로 소설 [봄날]이다. 주인공은 가상의 인물이되 시공간은 사실 그대로를 배경으로 하는 논픽션 르포문학이다. 
'민중의 애국가'인 [임을 위한 행진곡]이 기리는 '영혼결혼식'의 주인공인 윤상원 열사는 5월 광주의 마지막 날이었던 1980년 5월 27일, 최후까지 전남도청을 지키던 시민군들과 함께 본인이 국민으로 살았던 국가의 군대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은 대한민국 정규군대가 국민을 상대로 벌인 대규모 '군사작전'이었다.


1979년 10월에 독재자 박정희가 저격 당하면서 길고 긴 18년 간의 군부개발독재가 일단 종식되었고, 1980년 봄은 전국에 걸친 민주화의 물결로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1980년 5월 15일, 약 10만여명의 학생과 시민은 자발적으로 서울역에 모여 조속한 시일 내에 계엄을 해제하고 민주화를 추진할 것을 주장했으나 시위와 농성이 계속될 경우 군이 개입할 명분을 준다는 주장이 나오자 지도부 역할을 하던 대학생들은 시위를 해산하기로 결정하고 서울역에서 물러난다. 이를 사람들은 '5.15 서울역 회군'이라 부른다.

이후 바로 전해 '12.12 쿠데타'로 이미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의 신군부는 각 대학에 휴교령을 내리고 5월 17일을 기하여 비상계엄 전국확대와 국회 해산, 국보위 설치 등의 조치를 단행하게 되는데, 전두환 '신군부'의 1979년 '12.12 쿠데타'에 이은 1980년 5.17 '2차 쿠데타'였다.


이날 광주에서는 신군부의 계엄령 확대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전남대 등지에서 대학생들이 횃불 시위 등을 계획하였다. 하지만 역사적인 5월 18일, 신군부는 대학생들의 시위를 두려워하여 각 대학에 휴교령을 내렸고 학교 안으로 들어가려는 대학생들과 군인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면서 학생들에 대한 군인들의 무자비한 시위 진압이 시작된다. 
전남대 앞에서의 진압은 5.18 광주민중항쟁의 첫 시작이었다. 이어 학교에 진입하지 못한 학생들이 광주 시내에 모여 군대를 물릴 것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개되었고 군대는 밤 9시 이후 통행금지 조치까지 내렸으나 민주화를 열망하는 광주민중들의 시위는 더욱 거세어질 뿐이었다. 이에 신군부는 광주지역을 고립시키고 특수부대 및 군인들을 증파하여 무자비한 폭력과 심지어는 군용칼까지 휘두르며 광주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잡아간다. 하지만, 신군부의 이러한 진압행위는 광주민중들의 분노를 더욱 폭발시키는 도화선이 되었고 시위와 항쟁이 더욱 들불처럼 번지게 된다.
 
5월 20일, 고등학생들까지 시위대에 참여하게 되었고 신군부는 고등학교에까지 휴교령을 내렸다. 택시와 버스들도 차량시위를 벌이면서 광주민중들의 항쟁은 커져만 가는데, 신군부의 통제를 받은 방송과 신문은 고립된 광주의 상황을 ‘북한의 명령을 따른 폭도들에 의한 것’이라고 허위보도를 일삼는다.
 
5월 21일, 신군부는 금남로에서 시위 중이던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적 집중사격을 하였고 수많은 시민들이 죽어가면서 광주민중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경찰서와 탄약고를 습격해 무기를 탈취하였다. 스스로 무장한 시민군은 군대를 광주 외곽으로 몰아내고 그들이 다시 몰려오는 5월 27일까지 광주의 질서를 유지한다. 기록에 의하면 이 짧은 시간 동안 광주는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웠고 범죄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으며 시민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격려하는 등 ‘파리꼬뮌’이 아닌 이른바 ‘광주꼬뮌’으로 불릴 정도의 '민중 자치의 해방구'였다고 한다.
 
5월 27일 새벽, 신군부는 탱크까지 앞세우고 시내로 진격해 들어왔고, 시민군은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하지만, 중무장한 정규 군대를 시민군이 당해낼 수는 없었고 끝내 도청에 남아있던 많은 시민들이 죽임을 당함으로써 5.18 광주민중항쟁은 비극으로 끝난다.
12.12 쿠데타로 대통령 최규하를 허수아비로 만든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5.27 전남도청 진압작전을 위한 '대책회의'에서 '광주사태'에 대한 '강경진압'을  지휘했고 '조기진압'을 위해 군대가 광주 시민들에게 직접 사격을 한 날 진압군에 '하사금'을 내리기도 했다. 
전두환이 광주 학살의 책임자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이제 그 자에게는 '옥사(獄死)'의 길 밖에 없다.

역사학자 서중석 교수는 '이명박근혜 정권'의 '뉴라이트' 역사왜곡에 대항하여 해방 이후 한국전쟁과 18년 박정희 군부독재 시기를 거쳐 전두환 학살정권에 이르는 우리 현대사를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기자 김덕련과의 문답 형식을 빌어 정리했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6권은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이야기이고, 17권은 광주민중을 학살하고 집권한 '5공화국' 학살정권의 '잔혹사'를 다룬다.

소설 [봄날]에서 윤상원 열사의 입을 빌어 말한 "우리가 패배할지라도 훗날 다른 누군가가 다시 시작할 이 끝나지 않는 싸움"은 이후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그 해 '8월 노동자 대투쟁', 1996년의 '총파업', 2002년과 2008년의 대규모 '촛불시위'와 최근의 2016~17년 '촛불항쟁'으로 계속 되살아나 우리 역사를 전진시켜 왔다.


우리 역사에서 5월 18일은, 당시 전두환 신군부 쿠데타 정권의 파쇼적 실체와 이에 대항한 우리 민중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 그리고 세상의 주인인 우리 민중들을 폭력만으로 억압하고 통치할 수는 없다는 역사적 진실 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민주주의의 역사적 '아이콘'이 되어왔고, 이후 이 땅 민주주의 역사의 살아있는 교본이자 이 땅의 민주주의와 노동해방을 이루고자 하는 후세대들에게는 기어이 한을 풀지 못한 하나의 ‘원죄’가 되어 왔다.


"... 긴 시간이 흘렀지만, 밝혀야 할 사안은 지금도 적잖게 남아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뻔뻔한 거짓말과 터무니없는 궤변으로 오월 광주를 어떻게든 폄훼하려는 세력이 여전히 날뛰고 있습니다. 오월 광주 문제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오월 광주의 진실을 잊으면 민주주의의 미래는 없습니다."
-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6~17권, '나가는 말', 서중석/김덕련, <오월의봄>, 2019.


# 5.18 광주민중항쟁 과정에서 산화해 간 민주주의 영령들의 넋을 기립니다.

***

1. [봄날] 1~5권, 임철우, <문학과지성사>, 1997.
2.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6~17권, 서중석/김덕련, <오월의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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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20 세트 - 전20권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서중석.김덕련 지음 / 오월의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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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중항쟁
- 신군부 쿠데타 세력에 의한 계엄령 선포와 광주민중들의 항쟁



"윤상현(소설 속 윤상원 열사)! 넌 왜 스스로 죽음을 택하려 하는가?... 
누군가는 이 자리를 지켜야 해. 지난 열흘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쳐 이어온 이 뜨거운 항쟁의 마침표를 누군가는 찍어야 해.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 해야 한다면, 그렇다면 내가 하겠다는 거야. 이유는 다만 그것 뿐이야. 저 불의한 압제자들에게 이 자리를,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냥 고스란히 내어줄 수는 없어. 절대로. 그것이야말로 저들의 승리를 완전히 인정해 주는 것이 되고 말 터이므로... 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설사 이 순간엔 우리의 싸움이 패배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일 뿐이야. 훗날 다른 누군가가 이 싸움을 다시 시작하겠지. 그래, 아무 것도 헛된 것은 없어. 우리가 꿈꾸었던 것, 사랑하고 소망하고 투쟁했던 것, 진정 그 어떤 것도 헛된 것은 없어..."
- [봄날] 5권, '1980. 5. 27. 윤상원 열사의 독백', 임철우, <문학과지성사>, 1997.


들불야학 선생으로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을 지키던 서른 살 윤상원 열사의 심경을 작가 임철우가 그의 소설 [봄날]에서 재구성한 대목이다.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스물여섯 살이었던 소설가 임철우는 '살아남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그런 스스로와 '화해'도 하지 못한 채 항쟁 후 17년이 지난 1997년에 '광주민중항쟁'의 일지를 소설로 재구성했는데, 바로 소설 [봄날]이다. 주인공은 가상의 인물이되 시공간은 사실 그대로를 배경으로 하는 논픽션 르포문학이다. 
'민중의 애국가'인 [임을 위한 행진곡]이 기리는 '영혼결혼식'의 주인공인 윤상원 열사는 5월 광주의 마지막 날이었던 1980년 5월 27일, 최후까지 전남도청을 지키던 시민군들과 함께 본인이 국민으로 살았던 국가의 군대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은 대한민국 정규군대가 국민을 상대로 벌인 대규모 '군사작전'이었다.


1979년 10월에 독재자 박정희가 저격 당하면서 길고 긴 18년 간의 군부개발독재가 일단 종식되었고, 1980년 봄은 전국에 걸친 민주화의 물결로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1980년 5월 15일, 약 10만여명의 학생과 시민은 자발적으로 서울역에 모여 조속한 시일 내에 계엄을 해제하고 민주화를 추진할 것을 주장했으나 시위와 농성이 계속될 경우 군이 개입할 명분을 준다는 주장이 나오자 지도부 역할을 하던 대학생들은 시위를 해산하기로 결정하고 서울역에서 물러난다. 이를 사람들은 '5.15 서울역 회군'이라 부른다.

이후 바로 전해 '12.12 쿠데타'로 이미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의 신군부는 각 대학에 휴교령을 내리고 5월 17일을 기하여 비상계엄 전국확대와 국회 해산, 국보위 설치 등의 조치를 단행하게 되는데, 전두환 '신군부'의 1979년 '12.12 쿠데타'에 이은 1980년 5.17 '2차 쿠데타'였다.


이날 광주에서는 신군부의 계엄령 확대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전남대 등지에서 대학생들이 횃불 시위 등을 계획하였다. 하지만 역사적인 5월 18일, 신군부는 대학생들의 시위를 두려워하여 각 대학에 휴교령을 내렸고 학교 안으로 들어가려는 대학생들과 군인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면서 학생들에 대한 군인들의 무자비한 시위 진압이 시작된다. 
전남대 앞에서의 진압은 5.18 광주민중항쟁의 첫 시작이었다. 이어 학교에 진입하지 못한 학생들이 광주 시내에 모여 군대를 물릴 것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개되었고 군대는 밤 9시 이후 통행금지 조치까지 내렸으나 민주화를 열망하는 광주민중들의 시위는 더욱 거세어질 뿐이었다. 이에 신군부는 광주지역을 고립시키고 특수부대 및 군인들을 증파하여 무자비한 폭력과 심지어는 군용칼까지 휘두르며 광주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잡아간다. 하지만, 신군부의 이러한 진압행위는 광주민중들의 분노를 더욱 폭발시키는 도화선이 되었고 시위와 항쟁이 더욱 들불처럼 번지게 된다.
 
5월 20일, 고등학생들까지 시위대에 참여하게 되었고 신군부는 고등학교에까지 휴교령을 내렸다. 택시와 버스들도 차량시위를 벌이면서 광주민중들의 항쟁은 커져만 가는데, 신군부의 통제를 받은 방송과 신문은 고립된 광주의 상황을 ‘북한의 명령을 따른 폭도들에 의한 것’이라고 허위보도를 일삼는다.
 
5월 21일, 신군부는 금남로에서 시위 중이던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적 집중사격을 하였고 수많은 시민들이 죽어가면서 광주민중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경찰서와 탄약고를 습격해 무기를 탈취하였다. 스스로 무장한 시민군은 군대를 광주 외곽으로 몰아내고 그들이 다시 몰려오는 5월 27일까지 광주의 질서를 유지한다. 기록에 의하면 이 짧은 시간 동안 광주는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웠고 범죄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으며 시민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격려하는 등 ‘파리꼬뮌’이 아닌 이른바 ‘광주꼬뮌’으로 불릴 정도의 '민중 자치의 해방구'였다고 한다.
 
5월 27일 새벽, 신군부는 탱크까지 앞세우고 시내로 진격해 들어왔고, 시민군은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하지만, 중무장한 정규 군대를 시민군이 당해낼 수는 없었고 끝내 도청에 남아있던 많은 시민들이 죽임을 당함으로써 5.18 광주민중항쟁은 비극으로 끝난다.
12.12 쿠데타로 대통령 최규하를 허수아비로 만든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5.27 전남도청 진압작전을 위한 '대책회의'에서 '광주사태'에 대한 '강경진압'을  지휘했고 '조기진압'을 위해 군대가 광주 시민들에게 직접 사격을 한 날 진압군에 '하사금'을 내리기도 했다. 
전두환이 광주 학살의 책임자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이제 그 자에게는 '옥사(獄死)'의 길 밖에 없다.

역사학자 서중석 교수는 '이명박근혜 정권'의 '뉴라이트' 역사왜곡에 대항하여 해방 이후 한국전쟁과 18년 박정희 군부독재 시기를 거쳐 전두환 학살정권에 이르는 우리 현대사를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기자 김덕련과의 문답 형식을 빌어 정리했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6권은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이야기이고, 17권은 광주민중을 학살하고 집권한 '5공화국' 학살정권의 '잔혹사'를 다룬다.

소설 [봄날]에서 윤상원 열사의 입을 빌어 말한 "우리가 패배할지라도 훗날 다른 누군가가 다시 시작할 이 끝나지 않는 싸움"은 이후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그 해 '8월 노동자 대투쟁', 1996년의 '총파업', 2002년과 2008년의 대규모 '촛불시위'와 최근의 2016~17년 '촛불항쟁'으로 계속 되살아나 우리 역사를 전진시켜 왔다.


우리 역사에서 5월 18일은, 당시 전두환 신군부 쿠데타 정권의 파쇼적 실체와 이에 대항한 우리 민중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 그리고 세상의 주인인 우리 민중들을 폭력만으로 억압하고 통치할 수는 없다는 역사적 진실 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민주주의의 역사적 '아이콘'이 되어왔고, 이후 이 땅 민주주의 역사의 살아있는 교본이자 이 땅의 민주주의와 노동해방을 이루고자 하는 후세대들에게는 기어이 한을 풀지 못한 하나의 ‘원죄’가 되어 왔다.

"... 긴 시간이 흘렀지만, 밝혀야 할 사안은 지금도 적잖게 남아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뻔뻔한 거짓말과 터무니없는 궤변으로 오월 광주를 어떻게든 폄훼하려는 세력이 여전히 날뛰고 있습니다. 오월 광주 문제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오월 광주의 진실을 잊으면 민주주의의 미래는 없습니다."
-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6~17권, '나가는 말', 서중석/김덕련, <오월의봄>, 2019.


# 5.18 광주민중항쟁 과정에서 산화해 간 민주주의 영령들의 넋을 기립니다.

***

1. [봄날] 1~5권, 임철우, <문학과지성사>, 1997.
2.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6~17권, 서중석/김덕련, <오월의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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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코스모스 - 전2권
앤 드루얀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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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전장에서 과학자들의 자생적 '철학'
-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1980)와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2020)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날이니라..."
- [구약성경], <창세기>


"그리스인들은 신들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믿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우주가 신들을 창조했다고 믿었다. 신들이 존재하기 전에 이미 천지가 형성되었고, 하늘과 땅이 최초의 부모였다. 티탄족은 그들의 자녀들이었고 (올림푸스) 신들은 그들의 손주들이었다...
신들이 등장하기 전인 헤아릴 수 없이 아득한 태초에는 완벽한 어둠에 잠긴 무형의 혼돈 상태인 '카오스(Chaos)'만이 존재했다. 결국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두 자녀가 이 완벽한 '무(無)'로부터 태어났다. 이들은 '밤(Night)'과 '어둠(Erebos)'이었는데 당시 세상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죽음과 암흑, 무한의 공백 같은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어둠으로부터 '사랑(Love)'이 태어나 질서와 아름다움의 힘으로 이 암흑의 세계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사랑'은 '빛(Light)'과 '낮(Day)'을 낳았다."
- Edith Hamilton, [Mythology](1940), <1-3. How the World and Mankind were created>에서 필자 번역


'철학(哲學)'의 전장(戰場)에는 두 개의 '거대한 진영'이 있다. 한 편에는 '물질'보다 '정신'이 우선한다는 '관념론'이 있고, 다른 한 편은 '물질'이 '정신'보다 일차적이라는 '유물론'이다.
철학의 기원인 고대 그리스 이오니아 학파 탈레스는 세계의 근원 물질이 무엇인가 고민하다가 물, 불, 흙 등의 '원소론'을 주장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사상을 수학과 논리학 등의 형이상학적 증명을 시도한 것이 철학으로서 '관념론'의 시작이다. 이들은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종교'의 형태로 강화된다.
가장 원시적인 '유물론'은 고대 그리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인데, 모든 물질은 '원자'로 나뉜다는 주장이며 관념이 아니라 경험이나 실천 등의 중요성을 설파한 에피쿠로스학파 등이 뒤를 잇는다.
'관념론'은 '종교'의 발전과 함께, '유물론'은 '과학'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하며 발전해 왔고 '철학'이라는 '사상의 전쟁터'에서 투쟁해 왔다. 


"인간 주체는 항상 어느 정도 자기 자신에게 낯선 자, 자신이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힘들에 의해 구성된 자다. 바로 이것이 유물론의 주장이다. 관념론이란 마치 스스로 태어나기라도 한 것 같은 주체를 출발점으로 삼는, 따라서 충분히 멀리 거슬러 올라가서 출발하는데 실패하는 철학이다."
- [유물론], <유물론들>, 테리 이글턴, 전대호 옮김, <갈마바람>, 2018.


영국의 문학 및 문화비평가인 테리 이글턴은 현재까지 "마르크스주의가 옳다"는 명확한 당파성을 고수하는 '유물론자'다.
그에 따르면 고전적 유물론의 주장, 즉 '물질'이 '정신'보다 우선한다는 것은 기본 전제이기는 하나, 기계적 유물론을 넘어서야 한다. 1908년 레닌은 논쟁적 저작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정신' 또한 '뇌'라는 '물질'이 만들어낸 '최고 수준의 물질적 산물'이라는 식의 극단적 주장을 했는데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 여부는 명확하지 않은 상태이기는 하다.
테리 이글턴의 '유물론'은 현대 철학에서 니체, 비트겐슈타인, 프로이트, 마르크스 등을 통해 '인간의 생체'가 중심이 되는 '신체적 유물론(Somatic Materialism)'으로 발전되고 있다. 그의 '철학 전장'에서는 "근본적인 사안들에서조차 합의에 이를 수 없는" '근대성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인해 인간의 욕망과 생체 모두를 아우르는 '신체적 유물론'만이 대안이 된다. 
과장을 섞으면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기독교적 관념론을 다른 편으로 하면서 '육체적, 성적 관계'를 가미한 그리스 신화의 '신체적 유물론' 같다.

그럼에도, 복잡한 '철학' 논쟁의 본질은 결국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이며, 그 극단을 이루는 질문은 "세계 존재의 기원은 무엇인가"이다.


"수천 년 동안 인류를 억눌러 온 생각은 이 우주가 눈에 보이지 않고 이해할 수도 없는 신 또는 신들이 실을 당겨 조종하는 꼭두각시 연극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 주위에 살고 있다. 그러다가 2,500년 전 이오니아에서 새로운 깨달음의 기운이 일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다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은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인간과 다른 동물들이 원래는 아주 단순한 형태에서 발생했다는 생각도 태동했다. 질병은 악마나 신리 만든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도 고개를 들었다. 지구는 단지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별이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이러한 사고의 혁명을 통해서 사람들은 '혼돈(Chaos)'에서 '질서(Cosmos)'를 읽어내기 시작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태초에 '형태가 없는' 혼돈이 있었다고 믿었는데 그 내용은 [창세기]의 구절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고대 이오니아인들은 우주에 내재적 질서가 있으므로 우주도 이해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자연 현상에서 볼 수 있는 모종의 규칙성을 통해 자연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은 완전히 예측 불가능한 것이 아니며, 자연에게도 반드시 따라야 할 규칙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우주의 이렇게 훌륭하게 정돈된 질서를 '코스모스'라고 불렀다."
- 칼 세이건, [코스모스](1980), <7장 - 밤하늘의 등뼈>, 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6.


'코스모스(Cosmos)'는 인류 또는 생명체가 생겨나기 전의 '혼돈(Chaos)'으로서 우주 전체를 의미하는 '사실들의 총체'의 그리스어 표현이다. '우주'이되 현재만이 아니라 생명이 존재하기 전 헤아릴 수 없는 과거로부터 또 앞으로 셀 수 없이 먼 미래를 포괄하는 모든 '사실들의 총체'로서 '우주'다.

1939년 뉴욕 세계 박람회를 구경한 수많은 어린이 중 하나가 1980년에 '우주'에 관한 TV 시리즈를 정리한 책이 있다.
그 소년은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이고 그 방대한 주제를 다룬 책 제목은 [코스모스(Cosmos)]다.
1950년대부터 우주를 꿈꾸던 칼 세이건은 미국 NASA로 대표되는 우주 탐사계획이 활발하던 1970년대 '바이킹호'나 '보이저호' 탐사 프로그램 등에 적극 참여하면서 이 '천체물리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코스모스], [창백한 푸른 점] 등의 과학저서를 발표했다. 우리가 언뜻 본 적도 있을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는 사진은 2017년 토성에서 30년 넘는 임무를 수행하고 추락한 카시니호가 1990년대 토성을 탐사할 때 세이건이 주최측에 지속 건의하여 촬영한 사진이라고 한다. 나사는 실용성 없다며 카시니호가 굳이 각도를 돌려 사진 찍는 것을 계속 거절했는데 세이건의 끈질긴 설득으로 토성에서 본 지구의 사진을 담아서 후세에 남겼다. 토성에서 15억 킬로미터 떨어진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다는 사실과 함께.

'코스모스'로서 우주는 1천억 개의 은하가 있고 한 개의 은하는 또 1천억 개의 별들이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별들과 항성계와 은하계들의 집합인 '코스모스'가 '무질서'한 '카오스'가 아니라 일정한 법칙을 담고 있는 '질서'라는 믿음과 방대한 천체과학실험을 통해 더 넓은 우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코스모스]는 강조한다. 
세이건은 이러한 '코스모스'에 대한 인식과 과학적 접근을 가능하게 한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뉴튼, 케플러, 다윈, 아인슈타인 등의 과학자는 물론,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까지 소환한다.
인간이 우주로 몇 발자국 내딛던 1980~90년대 천체과학자의 시선이었다.


"우리가 첫 번째 [코스모스]에서 말했듯이, "뇌는 아주 좁은 공간에 든 아주 넓은 장소다."... 작은 물질 단위들이 집단을 이루어 작동함으로써 자신들보다 훨씬 더 뛰어난 무언가로 바뀌는 것, '코스모스'가 스스로를 알아내는 수단이 되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창발의 핵심이다... 
칼(세이건)은 사람의 대뇌겉질에 있는 연결의 개수가 100조 개쯤 되리라고 계산했다. 가시 우주에 있는 은하의 수보다 100배 더 많은 수의 연결이 우리 안에 있는 셈이다.
우리는 이 위대한 탐사를 이제 막 시작했다. 생물학자들이 인간 유전체를 지도화하는 데 성공한 것처럼, 신경 과학자들은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개인마다 고유한 무언가를 지도화하는 작업에 나섰다. 그것은 바로 한 사람의 모든 기억, 생각, 두려움, 꿈으로 아뤄진 고유한 배선도인 커넥톰(connectome)이다."
- 앤 드루얀, [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2020), <5장 - 우주의 커넥톰>,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2020.


칼 세이건은 1996년 작고했고, 1970년대부터 그와 함께 '코스모스'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그의 부인이자 역시 천체과학자인 앤 드루얀(Ann Druyan)은 칼 세이건의 뒤를 이어 천체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현재까지 '코스모스'를 이어왔다고 한다. 2020년 이 TV시리즈는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로 출간되었는데, 20세기에 칼 세이건과 함께 바라봤던 거대한 '코스모스'의 현재 모습을 그간의 과학적 성과를 토대로 이어서 보여준다.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가 제시하는 '우주력(The Cosmic Calender)'에 따르면, 우주 발생 후 지난 138억년을 1년으로 치면 1개월은 11억년, 1주는 2억년, 1일은 3천만년, 1시간은 157만년, 1분은 2만년, 1초는 438년이다. 인류가 진화해 온 약 600만년은 '우주력'으로 환산하면 대여섯 시간에 불과하다.
20세기 칼 세이건은 '창백한 푸른 점'으로 46억살 지구를 직시하게 했고, 21세기 앤 드루얀은 우주력 1년 중 12월 31일, 5~6시간 전에 태어난 인류를 돌아보게 한다.

이처럼, 앤 드루얀은 칼 세이건 이후 현재까지 천체과학의 종합적 발전을 성과로 하여 '코스모스'로 나아가되 그 초점을 세이건과는 달리 '인류'에게 맞춘다.
"은하는 별을 낳고, 별은 행성을 낳으며, 그 행성과 위성은 자연히 생명을 낳는다([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 <3장 - 사라진 생명의 도시>)"는 연쇄적 우주 역사에서 우리 태양계와 그가 속한 은하, 그 은하계 전체인 '코스모스'를 끊임없이 인식하며 막연하지만 "가능한 세계들"을 향해 나아가는 인류 말이다. 
비유가 맞는지 의문은 가나 '코스모스'의 망망대해로 나아가야 할 우리는 1만년 전 아시아 대륙에서 태평양 아래로 요트를 타고 내려가 인도네시아와 더 나아가 오세아니아를 개척한 '선조들'의 후손이라는 말과 함께.

21세기의 드루얀이 말하는 '인류'는 이제 '인류세(Anthropocene)'를 살고 있을지 모르는데, 지구 생명체 멸종의 기간인 '오르도비스기'-'데본기'-'페름기'-'트라이아스기'-'백악기' 이후 '인류 대멸종'의 기간이라는 의미로 '인류세'라는 여섯 번째 멸종 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20세기 인류가 초고속으로 발전시킨 '과학'의 성과는 이어가야 하지만, 그 동안 인류의 소행으로 지구에 더 이상 생명체가 존속하기 어렵게 되는 '기후 위기'와 맥을 같이 한다. 
21세기 드루얀의 [코스모스]가 제시하는 '가능한 세계'는 무엇인가.


"(지구에서의) '생존 지속 확률(100년당): 40퍼센트'
나는 저 40퍼센트라는 숫자를 가만히 응시한다. 물론 저 값은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문득 내 귀에 황혼 녘 모헨조다로의 거리에서 주사위가 경쾌하게 구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꿀벌들이 다음 집을 어디로 할지 정하느라 윙윙거리는 춤으로 토론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바빌로프와 동료들이 겪었던 허기가 느껴진다. 넘실거리는 물에 잠긴 스트로마톨라이트(생명의 기원)로부터 아인슈타인을 거쳐서 우리에게 오기까지 모든 존재가 품었던 모든 생각의 무게가 느껴진다. 아인슈타인이 1939년 세계 박람회 개막식에서 했던 말이 머릿속에 메아리친다. '과학이 예술처럼 그 사명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수행하려면, 대중이 과학의 성취를 그 표면적 내용 뿐 아니라 더 깊은 의미까지도 이해해야 합니다.'"
- 앤 드루얀, [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2020), <13장 - 가능한 세계>,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2020.


'코스모스'의 140억년 역사에서 우주는 은하계를 낳았고 은하는 별들을 낳았으며 별들이 낳은 생명체에서 우연히 진화한 인류는 지금 모든 생명체들과 마찬가지로 '기후적 위기'를 겪고 있지만, '과학'의 성과를 선용하여 "자연의 책을 읽는 법을, 자연의 법칙을 배우는 법을... 익혔"고, "코스모스라는 망망대해에서 언제,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는 법을 익혔"으며, 그로 인해 "코스모스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수단이, 별로 돌아가는 길이 되었다(같은책, 13장 결론)"고 한다.

과학의 '올바른 진보'를 통해 우리가 사는 '코스모스'를 이해하고, 지구에서의 우리 삶이 끝나가기 전에 '코스모스'를 아우르는 '소통'을 꾸준히 시행하고 실험하자는 매우 낙관적인 과학자의 결론을 보면, 얼핏 '인류'라는 종에 관한 유발 하라리의 '빅 히스토리(Big History)'를 훨씬 넘어서는 '비기스트 히스토리(The Biggest History)'를 접하는 듯 하다.


"인류는 우주 한 구석에 박힌 미물이었으나 이제 스스로를 인식할 줄 아는 존재로 이만큼 성장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기원을 더듬을 줄도 알게 됐다. 별에서 만들어진 물질이 별에 대해 숙고할 줄 알게 됐다. 10억의 10억 배의 또 10억 배의 그리고 또 거기에 10배나 되는 원자들이 결합한 하나의 유기체가 원자 자체의 진화를 꿰뚫어 생각할 줄 알게 됐다. 우주의 한 구석에서 의식의 탄생이 있기까지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갈 줄도 알게 됐다. 우리는 종으로서의 인류를 사랑해야 하며, 지구에세 충성해야 한다. 아니면, 그 누가 우리의 지구를 대변해 줄 수 있겠는가? 우리의 생존은 우리 자신만이 이룩한 업적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인류를 여기에 있게 한 '코스모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 칼 세이건, [코스모스](1980), <13장 - 누가 우리 지구를 대변해 줄까?>, 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6.


20세기에 '코스모스'로 나아가든, 21세기에 '인류'로 다시 잠시 돌아오든, 천문학자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은 '과학자'이기에 우리 인류의 모든 선조들에 경의를 표하지만 특히 아인슈타인에게 특별한 존경을 표한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언급된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이나, 앤 드루얀의 책에서 언급된 아인슈타인의 '양자 물리학(역학)' 등은 문과생인 내가 이해하기 힘들어 내 주변에서 최고의 '이과적 두뇌'를 지닌 친구 철호에게 물어보고 싶었으나 나름대로 '과학책'에 관한 '문과적 서평'을 써본다.

다시, '문과적'으로 돌아와서 '철학'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철학의 전장'에서 대결해 온 '거대한 두 개의 진영'인 '관념론'과 '유물론' 말이다.
미지의 '절대정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는 '관념론'은 결국 '신화'나 '종교', '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의 편에 있고, '과학'의 발전과 늘 함께했던 '유물론'은 인류의 생명을 존중하며 다수 인류와 그 성과를 기꺼이 공유하는 '민주주의' 편에 선 철학이다.

'코스모스'의 근원, 이 세계의 시작에 관한 존재론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은 '민주주의 철학'인 '유물론'의 임무가 된다.
'철학의 전장'에서 과학자들의 자생적 '철학'은 그러므로 '유물론'이다.


"(철학이 과학의 영역에서) 구획선을 긋는다는 것은 이데올로기와 과학을 구별하여 사실상 하나의 길을 밝혀내기 위한 실천으로 볼 수 있다...
모든 과학적 실천은 자생적 '철학'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여기서 이러한 것들 사이에 게재되는 철학으로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유물론'과 장애가 되는 '관념론'을 들 수 있다. 그러므로 자생적 철학은 마지막 순간에는 철학사의 투쟁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곧 유물론적 경향과 관념론적 경향 사이에서 벌어지는 세기적 투쟁으로 일컬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 같은 투쟁은 더 멀리는 다른 형태에 의해서 불러일으켜지게 된다. 곧 이데올로기 투쟁과 계급투쟁이 그것이다."
- [철학과 과학자들의 자생적 철학](1967), 루이 알튀세, 김용선 옮김, <인간사랑>, 1992.

***

1. [코스모스](1980), 칼 세이건, 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6.
2. [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2020), 앤 드루얀,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2020.
3. [Mythology](1940), Edith Hamilton, <New American Library>, 1969.
4. [유물론](2016), 테리 이글턴, 전대호 옮김, <갈마바람>, 2018.
5. [유물론과 경험비판론](1908), 레닌, 박정호 옮김, <돌베개>, 1992.
6. [철학과 과학자들의 자생적 철학](1967), 루이 알튀세, 김용선 옮김, <인간사랑>,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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