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자본주의의 모순이 낳은 재난
마이크 데이비스 외 지음 / 책갈피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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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노 사피엔스]의 '욕망'과 [코로나 사피엔스]의 '결단'
- '신문명'의 '혁명'에 대한 '자연사적 고찰'을 너머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시공간의 제약 없이 소통할 수 있고 정보 전달이 빨라져 정보 격차가 점차 해소되는 등 편리한 생활을 하게 되면서, 스마트폰 없이 생활하는 것이 힘들어지는 사람이 늘어나며 등장한 용어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혜가 있는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 사피엔스'에 빗대어 '포노 사피엔스(지혜가 있는 폰을 쓰는 인간)'라고 부른데서 나왔다."
- [포노 사피엔스], <혁명 전야 - 포노 사피엔스가 몰려온다>, 최재붕, <쌤앤파커스>, 2019.



2007년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처음 출시했을 때는 이후 10여 년 사이 70억 지구 인구 중 30억 명 이상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리라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당시 '신문명' 적응에 적극적인 부류들은 "앞으로 스마트폰이 대세일 것"이라 주저없이 예상했으나 이 정도의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인류 문명을 잠식하리라 예측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혁명'이란 '예상'은 될 수 있을 지라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벌어질지 '예측'은 불가한 것일테니 말이다.

'4차 산업혁명의 권위자'로 불리는 성균관대 서비스융합디자인학과 교수 최재붕은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인 '포노 사피엔스'가 몰려오는 지금을 '혁명의 시대'로 규정한다. '지혜가 있는 폰을 쓰는 인간'을 뜻하는 '포노 사피엔스'는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는데 마치 뇌와 스마트폰이 생체적으로 연결된 듯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와 후속작 [호모 데우스]를 통해 예측한 과학문명의 발달과 함께 진화하는 '신인류'의 모습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들고다니는 '게임기'에 불과했던 스마트폰의 '유희성'을 생활화하여 삶의 전영역으로 확장시켜 네덜란드 사상가 요한 하위징어의 '호모 루덴스(유희적 인간)' 개념의 정점에 서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1980년대 이후 태어나 인터넷과 PC 게임을 하며 자란 '밀레니얼 세대'에 해당한다. 이들은 기존의 '오프라인' 소비 영역이 '온라인' 시장으로 획기적 전환을 하게끔 하는 '무한욕망'의 소비자이자, 디지털 플랫폼 신기업에게 막대한 이윤을 안겨주는 다양하고 강력한 '팬덤'을 이룬다. 아마존, 우버, 카카오 등은 이런 '팬덤'을 포착하여 '킬러콘텐츠'를 만들어 전산업을 문어발처럼 장악하고 거대한 '디지털 지주회사'가 된다. 현재 이들 '신인류'가 우리의 문명을 '혁명'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진단은 이미 보편적 인식이 되어 있다.

2020년에 '팬데믹(pandemic)' 증상으로 전세계를 덮친 전염병인 '코로나19(사스-코로나바이러스2)'로 인해 직장의 '비대면 업무'나 '재택근무' 등 노동환경의 변화와 학교의 '온라인 수업'이 급격히 도입되는 지금, 산업이나 교육 등 우리 사회 전반의 운영방식 또한 이전과는 다른 방식을 강제하고 있어, 사람들은 이후의 문명을 '포스트-코로나(Post-corona)'로 명명하며 더이상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으로 또한 진단하고 있다.

"다만 생물학적으로 보다 정확하게 이름 짓자면 '호모 코로나리우스(Homo coronarius)' 정도가 가능하나,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처럼 학명의 규칙이 무너진 합성어가 전세계에 통용되는 점을 감안하여 학술적으로 무리가 있음에도 본 용어를 과감히 사용하였다."
- [코로나 사피엔스], '정관용의 시사자키' 엮음, <인플루엔셜>, 2020.

CBS 시사 프로그램 <정관용의 시사자키>에서 작금의 '코로나 재난'에 관한 국내 석학들과의 인터뷰를 모아 책으로 엮었다. 제목은 2020년 4월에 방송에서 처음 불린 '코로나 사피엔스'다. 이 명칭은 '학명'의 규칙에 따르지 않고 '포노 사피엔스'식 명명에 따르는데,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처음 지었다는 '포노 사피엔스'식 작명의 기원이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라 추측되는 바, 정치경제, 사회문화 등의 전영역을 포괄하며 아우르는 '인류의 전역사'로서, '빅 히스토리(Big history)'라는 인간의 의지로 좌우할 수 없는 '자연사적 고찰'이 이 역사관의 기본 바탕이다.


"시장혁명은 다가올 미래가 아니라, 이미 현실입니다... 자본이 선택한 문명의 표준은 '포노 사피엔스' 시대입니다."
- [포노 사피엔스], 최재붕, 2019.

[포노 사피엔스]는 '스마트폰'이 '신체의 일부가 된  '신인류의 '욕망'을 '변수'가 아닌 '상수'로 설정한다. 이것은 '정해진 미래'이므로 '미래'를 선택할 수 없는 우리, 특히 기성세대는 신문명을 빨리 배우고 습득하여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기성세대는 구한말 서구의 신문명에 대한 편견으로 나라를 망친 '쇄국주의자'와 같은 운명이 된다고 한다.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아프리카에서 올라온 '호모 사피엔스'에 의해 멸종당한 유럽의 '네안데르탈인'이나 아시아의 '호모 에렉투스'와 같은 운명이 될 수도 있다. 신인류는 이미 이전의 '호모 사피엔스'에서 '포노 사피엔스'로 진화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역시 과학의 진보를 토대로 한 인류의 '진화'를 역설한 유발 하라리식 '빅 히스토리'의 계보라 딱히 반박할 수가 없다. 섣불리 반박했다가 '사피엔스'의 범주에서 쫓겨날 것만 같기에.

다만, '사피엔스'의 진화를 다루는 '빅 히스토리'의 연장선에 있음에도 [포노 사피엔스]의 독자는 '사피엔스' 일반이 아닌 혁신적 '기업가'들에 국한되어 있는 듯 하다. '신인류'가 촉발하는 '혁명'은 '시장혁명'이므로 기업은 애플,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 '세계 5대 기업'의 사례를 따라야 할 것이고, 스마트폰 개발에 발빠르게 참여하면서 이와 관련된 신기술에 필요한 부품의 적극적인 투자와 개발을 통해 알리바바 등과 함께 '아시아 7대 기업'에 선정된 우리의 삼성전자는 우리 모두가 따라야할 기업의 표본이 된다. 삼성 재단의 대학교수가 기업들에게 행한 강연을 토대로 쓴 [포노 사피엔스]가 보기에 생존권 보장을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머리띠'와 '이념투쟁'에 다름 아니며, 급격한 산업개편을 조절하기 위한 국가의 규제는 '신문명'의 진보를 가로막는 구태로 보이는 듯 하다. 한편으로, '포노 사피엔스'의 '소비 욕망'은 '상수'이므로 이에 따라 급격하게 '혁신'하지 못하는 기업이나 조직은 도태하고 법으로 규제하려는 국가는 세계 경제전쟁에서 낙오된다. 최재붕 교수는 [코로나 사피엔스]에서도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는 '포노 사피엔스'의 '욕망'에 의한 '4차 산업혁명'은 더욱 가속화하므로 '기성세대'는 더이상 '포노 사피엔스'의 '신문명' 흐름에 역행하면 안된다고 강력 주장한다. 

그리하여 [포노 사피엔스]에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유일한 방향은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길만이 남게 된다. 
물론, [포노 사피엔스]의 결론은 "그래도 사람이 답이다"라고 끝맺으나 그 '사람'은 '무한욕망'의 소비자들과 이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혁신'적 기업가들일 뿐이다. 이 책에서 '스타일난다'라는 디지털 소매기업을 로레알 자본에 거액으로 판 기업가는 우리 사장님들이 본받아야 할 모델이다. 배달의 민족을 독일 거대자본에 높은 가격에 팔고 라이더들 수수료 후려치려는 기업가 또한 [포노 사피엔스]의 추천글을 썼다.




한편, '코로나19'는 '포노 사피엔스'의 '시장혁명' 와중에 체제전환을 급격히 추동하고 있다. [코로나 사피엔스]에서 동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생물학적, 화학적 '백신' 외에 우리 사회에서 잘 운용한다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행동방역'과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 사회에 전염되는 근본적 원인에 대하여 인간의 자연개발 욕구를 제한하는 '생태방역'을 강조한다. 자연을 침해하는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박쥐가 인간 사회로 침투할 수밖에 없는 막무가내 개발식 자본주의 문명은 이제는 제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와 칼 폴라니연구소 홍기빈 소장은 이 생태 재난 위기를 통해 이제는 '시장'에 대한 맹신을 벗어나 '인간을 위한 체제'로의 전환을 이루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독문학자 김누리 교수도 미국식 '야수자본주의'를 벗어나 유럽을 빗댄 '인간화된 자본주의'를 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노동자연대'가 엮은 [코로나19]에서 영국 사회주의자 앨릭스 캘리니코스 등은 바이러스가 자연적으로 지속 전파될 수 밖에 없는 '집단적 축산업'을 강화하고 도시의 빈부격차를 심화시켜 빈곤층의 결집으로 사회적 전염을 더욱 불평등하게 퍼뜨리는 '자본주의 모순'을 이 기회에 극복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포노 사피엔스'와 '코로나 사피엔스'로 '진화'하는 인류는 '신문명'이라는 '욕망의 바다'에서 헤엄쳐 살아남아야 하는 동시에 이 '무한욕망'의 물결을 인간이 살 수 있는 방향으로 바꾸기도 해야 한다. 
금융자본이 장악한 현대 자본주의에서 '포노 사피엔스'와 '코로나 사피엔스'의 '욕망'을 본원적인 '절대상수'로만 상정하면서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정당화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산업 구조조정으로 당장의 일자리가 없어졌지만 결국 나중에는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었다는 지난 '산업혁명'의 역사에서 일자리를 잃은 '혁신'적이지 못했던 다수가 굶지 않도록 어떤 일자리가 생길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국민 고용보험제'와 '해고금지'를 통한 고용보장제도가 절실한 이유다.


"... '포노 사피엔스'가 '문명의 표준'입니다... 일반 대중이 생각하는 '문명의 기준은 이미 달라졌습니다... 판단은 '데이터'가 합니다..."
- [포노 사피엔스], 최재붕, 2019.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최근의 저작 [자본과 이데올로기](2019)에서 '데이터'로만 말하는 '신문명'조차 극소수 부자들에게 초집중되는 금융자산의 정확한 '데이터'의 부재와 그 '불투명성' 앞에 무력함을 지적하고 있는데, 인류 최고의 '불평등체제'로서 현대 금융자본주의는 이미 '포노 사피엔스'든 '호모 사피엔스'든 모든 '사피엔스'의 '욕망'을 무한히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에게 '포노 사피엔스'의 '혁신성'은 화수분과 같은 '이윤의 바다'에 다름 아니다.




"... 나는 특히 소득과 금융자산의 평가 및 등록과 관련하여, 오늘의 세계를 특징짓는 경제, 금융 불투명성의 증대를 강조할 것이다. 정보와 빅데이터 시대의 도래를 어김없이 찬양하는 문명에서는 놀라운 일일 수도 있을 이런 사태는 국가 공권력과 통계당국의 책임 회피 문제를 드러낸다."
- 토마 피케티, [자본과 이데올로기](2019), <13장 - 하이퍼자본주의 : 현대성과 의고주의 사이에서>, 안준범 옮김, <문학동네>, 2020.


인간의 다양하고 무한한 '욕망'도 중요하지만, 불평등체제'가 심화되는 상황이라면, '신문명'에 의한 '혁명'은 인간의 의지를 배제한 '자연사적 고찰'을 너머 '사피엔스' 다수의 의지로 '인간을 위한 체제'로의 전환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재난조차도 불평등한 지금, 다수의 '사피엔스'에게는 [포노 사피엔스]의 '무한욕망'보다 [코로나 사피엔스]들이 기획하는 '체제전환'의 '결단'이 필요하다.


***

1. [코로나 사피엔스], 정관용의 시사자키 엮음, <인플루엔셜>, 2020.
2. [포노 사피엔스 -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최재붕, <쌤앤파커스>, 2019.
3. [코로나19 - 자본주의의 모순이 낳은 재난], 노동자연대 엮음, <책갈피>, 2020.
4. [자본과 이데올로기](2019), 토마 피케티, 안준범 옮김, <문학동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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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역사 - 책과 독서, 인류의 끝없는 갈망과 독서 편력의 서사시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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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ipta manet, verba volat (스크립타 마네트, 베르바 볼라트)
- '독서의 역사'와 '서술의 역사'의 역사


"... 책을 숭배하는 정신이야말로 문명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신조 중의 하나이다... 인민통치 집단이든 전체주의 통치 집단이든 국민 모두가 어리석은 존재로 남을 것을, 그리고 국민들이 자신들의 퇴행을 순순히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알맹이와 가치가 없는 것들을 소비하도록 부추긴다. 그런 상황에서 독서가들은 오로지 '체제전복'을 기도하는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
- [독서의 역사], <마지막 페이지>, 알베르토 망구엘, 정명진 옮김, <세종>, 2000.


'읽기(reading)'가 먼저인가, '쓰기(writing)'가 먼저인가.
읽을 것을 쓴 게 이미 있으니 '쓰기'가 앞섰던가, 이미 읽은 걸 서사로 풀어서 쓴 것이니 '읽기'가 앞섰던가.
'닭이 먼저인가, 계란이 먼저인가' 같은 무의미한 질문이겠으나 '읽기'와 '쓰기'의 '역사'를 보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인 알베르토 망구엘은 '우리 시대의 몽테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책들을 읽고 그 의미들을 회의하고 사색한 내공으로 [독서의 역사](1996)를 썼다. 그가 돌아보는 '독서', 즉 '읽기(reading)'의 역사는 '정치사'나 '비평사' 등의 연대기적 순서에 따르지는 않는다. 그가 말하는 '독서 행위(읽기)' 또는 독서의 역사'는 그 자체의 역사라기 보다는 '독서가'들의 역사이며, 그 역사는 보편적이거나 일반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독서가들 각자의 역사"(같은책, <마지막 페이지>)다. 따라서 생물의 진화나 자연과학의 진화 등 '과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연성'으로 점철된다. 모든 과학의 시작은 '우연'이었을지 모르나 그 진화과정은 '필연'의 논리가 있는데 비해, '독서가'들의 역사는 20세기 오스트리아 미술사가 에른스트 곰브리치가 말한 '미술이 아닌 미술가들의 역사'처럼 '과학적'이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모든 것의 '우연적 역사'가 사회경제 체제의 '필연적 역사'를 토대로 전개됨을 상기한다면 수긍할 만 하다.

기원전 10세기경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의 그림문자나 그 얼마 후 페니키아에서 알파벳 문자 또는 숫자 등의 기록이 등장한 동기는 '문명의 유지'와 '전승'이었을 것인데, 그 이후로도 오랜 시기 동안 '문자 문명'은 소수 지배계급의 특권에 불과했다. 극소수를 제외한 다수 피지배자들은 19세기까지도 '읽기'가 허용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수의 '읽기'는 그 다양한 해석과 창의력, 상상력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민주주의'를 동반하기 때문이었다.

19세기 쿠바의 담배공장에서 노동자들에게 책을 읽어주던 '독사(讀師)'는 글을 모르거나 읽을 시간이 없던 노동자들이 십시일반 모여 읽을 책을 선정하고 노동 중에 라디오처럼 글을 들려주었는데, 같은 세기 대서양 건너 영국의 공장에서 노동자들의 '단결금지법'처럼 법으로 금지되었다고 한다. 역시, 지배자에게 민중의 '독서'는 '체제전복'적이고 두려운 것이다.그래서 대부분의 '독서회'가 '탄압'받는 것인가.


"... 문장 하나만 읽을 줄 알게 되면 누구든지 금방 모든 문장을 알 수 있게 된다. 더욱 중요한 점은 독서가는 그 문장을 반추하고 그 문장에 따라서 행동하고 그 문장에 의미를 부여할 능력을 지닌다는 것이다... 인류가 창조한 다른 어떤 물건들과 달리 '책'은 독재에 맹독으로 작용해 왔다. 절대권력은 모든 독서를 공식적인 독서로 제한할 필요성을 느낀다. 다양한 의견이 담긴 도서관 대신 독재자의 말만으로 충분해야 했다."
- [독서의 역사], <금지된 책읽기>, 알베르토 망구엘.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가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건립하고 후속 왕조인 프톨레마이오스가 그 도시에 최초의 대형 도서관을 지을 때 수많은 두루마리들은 지배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인류 지식의 다양성를 담보했을 수도 있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신들은 '지식'을 의미하는 두루마리나 서판 등을 들고 있지 않았는데, '문자'를 통한 지식의 중요성이 크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기독교나 이슬람은 각각 '성경'과 '코란'이라는 '문자'를 매개로 '유일신'의 의지를 민중에게 전달했기에 성모 마리아가 대천사로부터 '수태고지'를 받을 때도 한 손에 '책'을 들고 있었고, '왕이 된 예수'였던 '예언자 무함마드'는 한 손에 칼과 다른 손에 '책'을 들었으며, '유일신'의 '사자' 또는 대리인들은 '책'과 '문자'를 중심으로 '이단'을 갈라냈다. 다수를 지배하는 중세의 교리는 '문자'라기 보다는 상징적 '아이콘'으로 가득한 '그림'이었지만, 항상 다수의 역사를 스스로 써온 인류는 이 '그림'을 '문자'로 전환시키고 이 '상징'들 또한 다수와 공유하며 언제 어디서든 '체제전복'을 기도한다.
다수 민중들의 '읽기'와 '독서'는 늘 그 자체로 '체제전복'적이다.


"코덱스의 편리함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서기 400년 경이 되자, 고전적인 형태의 두루마리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대부분의 책들은 사각형으로 여러 장 모은 형태로 제작되었다... (15세기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의 위대한 장점... 제작 속도, 텍스트의 동일성, 그리고 상대적으로 값이 싸다는 이점... 16세기는 인쇄의 시대일 뿐만 아니라 (또한) 육필 입문서의 시대이기도 했다."
- [독서의 역사], <책의 형태>, 알베르토 망구엘.


서기 4백년대에는 소장하고 읽기 불편했던 두루마리 형태에서 양피지를 접어 지금의 책 형태로 만든 '코덱스'가 발명되었고, '문자'와 '지식'은 비단 외우는 것만이 아니라 소지하고 다니며 그 권위를 인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14세기에는 '안경'도 발명되었고, 드디어 15세기에는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술이 [성경]의 대량생산과 대중화에 혁혁한 공을 세운다. 15세기 인쇄술의 대중화는 육필 필사본의 화려한 장식적 필체 또한 대중화했기에 16세기에는 인쇄술의 발전이 육필 필사의 기술도 함께 발전시키게 된다. 전자산업 발달에도 불구하고 '종이책' 고유의 양식과 질감, 냄새는 늘 인류와 함께 하는 것처럼. 망구엘이 고백한 것처럼 사실 내게도 '독서'란 '문자'나 '지식'을 얻는 행위를 넘어 '책'이란 '사물'에 대한 일종의 '집착'이기도 하다. 스무살 때는 '멋있게 보이려고' 들고 다닐 때가 더 많았다.
어쨌든, 다수 대중'의 독서는 그 머릿수 만큼이나 다양한 해석과 상상력을 쏟아 놓기에 정치권력의 독점적 권위는 자연스레 균열이 난다. '민주주의'의 문명적 토대가 싹을 틔운다.


"스크립타 마네트, 베르바 볼라트
(Scripta manet, verba volat)"


중세 시대만 해도 '독서'는 눈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입으로 소리내어 암송을 동시에 해야 했다.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수라 '신의 말씀'을 함께 읽고 들어야 했기 때문인데, '문자'를 다수가 공유한 이후로 독서가들은 자신의 침대에서 조용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글로 쓰여진 것은 영원히 남고, 말로 표현된 것은 공기 속으로 사라진다(Scripta manet, verba volta)"는 라틴어 문구는 원래, 중세 암송 시대에는 "글은 조용히 죽은 것이고, 말은 생생히 날아오른다"는 의미였지만, 근대 이후 묵독 시대에는 "글은 영원히 남고, 말은 공허히 날아간다"는 뜻이 되어 '지식'을 공유함에 '문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장이 되었다.
망구엘에 의하면, 책은 "간단한 도구의 상징적 의미보다 훨씬 복잡한 상징적 의미를 독서가에게 부여"(같은책, <상징적인 독서가>)함으로써, "무지, 맹신, 지성, 기만, 교활함, 그리고 계몽을 통해 책읽는 사람은 원전과 똑같은 단어로 그 텍스트를 다시 쓰면서도 원본과는 다른 이름으로... 재창조"(같은책, <책읽기와 미래예언>)한다.

인류의 모든 문명은 문자로 남고 독서가들은 다양한 상상력으로 그 문명을 발전시키기도 하고 퇴행시키기도 한다. 
아마도 발전의 사례가 대부분일 것인 반면, 진시황의 '분서갱유'나 기독교와 이슬람 또는 독재정권의 '금서목록', 파시즘이나 나치즘 등과 같은 전체주의자들의 반복된 '분서' 선동은 퇴행의 대표적 사례다.


"... BC 3천년대 말 즈음 인간 사이의 의사전달의 본질을 영원히 바꿔놓을 기술이 개발되었다. 바로 글을 쓰는 기술이다... 작가가 텍스트에서 손을 뗄 때에만 그 텍스트는 텍스트로서 존재의 영역에 들어오게 된다. 이 시점에서 텍스트는 한 사람의 독서가가 읽어줄 때까지 조용한 존재로 남는다... 이렇듯 모든 기록은 독서가의 아량에 크게 의존한다... 바로 시작 단계에서부터 '읽기'는 '쓰기'를 신격화해 주는 것이었다."
- [독서의 역사], <최초의 시작은 진흙조각에서>, 알베르토 망구엘.


19~20세기 독일 비평가 쿠르티우스는 "세상과 자연이 책이라는 생각은 카톨릭 교회의 수사학에서 비롯되어 신비주의 철학자들로 이어졌다가 마침내 보편적인 것이 되었다"(같은책, <책읽기의 은유>)고 했는데, 인류의 지식과 문명이 '문자'의 매개체인 '책'이라는 실물 뿐만 아니라 '문자' 이전부터의 '세상'과 '자연'이라는 '거대한 책'으로부터 추출된다는 것이지만 기원전 3천년경이 되면 인류는 '쓰기(writing)'를 통해 한단계 더 발전하게 된다. '문자'를 통한 '지식'의 독점의 기원은 바로 '쓰기'였으며, 이러한 저술에 대한 다양한 독해를 가능케 한 '서사의 힘'이었다.


"나는 역사를 역사답게 하는 것이 '서사의 힘' 또는 '이야기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역사는) 변하지 않는 인간의 욕망과 본성, 예측할 수 없는 우연, 사회제도와 자연환경이 뒤엉켜 빚어낸 과거의 사건들 가운데 당대의 역사가들이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을 언어로 엮어낸 서사다. 역사의 역사가 드러내 보이는, '발전'이라고 하는 몇 가지 역사서술 환경과 내용과 관점과 방법의 변화는 힘있는 서사로 구현할 때만 독자의 생각과 감정을 움직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역사의 역사에 남은 역사서들을 만나본 소감이다."
- [역사의 역사], <에필로그 - 서사의 힘>, 유시민, <돌베개>, 2018.


망구엘은 '독서'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역사를 쓰지 않았다. 본인의 독서 이력으로부터 유추되는 창의적이고 다양한 '독서가'들의 개별적인 역사를 서술하는데 그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독서가'들의 역사가 워낙 다양하므로 그 역시 본인이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들을 언어로 엮어낸 서사'로서의 저술인 것이다.


우리나라 '지식소매상'을 자처하는 유시민은 최근의 저서 [역사의 역사](2018)에서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 '역사가의 시조' 헤로도투스로부터 [사기]의 사마천, 14세기 이슬람 '문명사학자' 이븐 할둔, 유물사관의 칼 마르크스를 비롯하여 우리의 박은식과 신채호, 백남운 선생, [역사란 무엇인가]의 에드워드 카와 최근 '빅히스토리' 역사가 제레드 다이아몬드와 유발 하라리 등의 '역사서술(writing history)'의 역사를 일별한다. 즉, '역사'란 19세기 독일의 반동적 군주제 역사가인 레오폴트 랑케의 건조한 문헌적 역사가 추구한 '사실 그대로'의 서술이 불가능하며, 각 '역사가' 개인들의 시대적 한계와 나름의 '철학'적 관점, 정치적 성향에 따라 '취사선택'되어 기록되고 기억되는 것이므로 '역사서술의 역사'인 '히스토리오그라피(historiography)' 또는 '사학사(史學史)'를 주제로 하되 본인의 '쓰기'는 학술적인 것이 아니기에 '역사 르포르타주(르포)'라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읽기(reading)'와 '쓰기(writing)'의 역사적 관계는 인류 지식과 문명의 역사 자체로서 일목요연한 정리가 불가한 방대한 영역일 것이다. 망구엘이 '독서'의 역사가 아닌 '독서가'의 역사를, 유시민이 '서술'의 역사가 아닌 '역사서술'의 역사를 주제로 삼은 이유다. 

'역사'를 소수의 지배자가 독점하던 시대는 다수 피지배 민중들이 문자를 공유하고 독서를 통해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함으로써 오래전에 물러갔다. 그러나 인류의 '지식'과 '문자'를 다양화하고 보편화하려는 '민주주의'적 시도가 주춤하는 시점에서, 하나의 정치세력 진영을 숭배하고 추종하는 현상에서 '역사서술'의 독점과 전체주의적 폭력은 여전히 기생한다.

그리하여, 무엇이 우선인가는 중요하지 않을 지라도, 소수 '역사가'들의 '쓰기'에 의해 취사선택된 텍스트들은 다수 '독서가'들의 다양하고 창의적인 '읽기'에 의해 통제되고 재창조되어야 한다. 모든 '텍스트(text)'들은 이미 창작되고 나면 '작가'의 손을 떠나는 독립적 '생물체'가 되며, '정치'가 그러하듯 이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는 수많은 '독서가'들의 손에 의해 더욱 풍부해진다.
이것이 우리 '사피엔스' 문명의 역사 속 '민주주의'의 역사이며, 그것이 '역사서술'과 그 '독서의 역사'에서 유일한 '철학'적 방향이다.

이렇게 또한 "글은 영원히 남는(Scripta manet)" 것이다.


"헤로도토스에게 역사서술은 돈이 되는 사업이었고(낭독회), 사마천에게는 실존적 인간의 존재증명이었으며("하늘의 도는 무엇인가!"), 할둔에게는 학문연구였다. 마르크스에게는 혁명적 무기를 제작하는 활동이었고, 박은식과 신채호에게는 민족의 광복을 위한 투쟁이었다. 사피엔스의 뇌는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지만 뇌에 자리잡는 철학적 자아는 사회적 환경을 반영한다. 그들은 각자 다른 시대에 살면서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이야기를 남겼다. 그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즐거움과 깨달음을 얻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의 철학적 자아와 공명하기 때문이다."
- [역사의 역사], <제6장 - 민족주의 역사학의 고단한 역정, 박은식/신채호/백남운>, 유시민.


***

1. [독서의 역사(A History of Reading)](1996), 알베르토 망구엘, 정명진 옮김, <세종>, 2000.
2. [역사의 역사(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돌베개>,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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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역사 - 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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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ipta manet, verba volat (스크립타 마네트, 베르바 볼라트)
- '독서의 역사'와 '서술의 역사'의 역사


"... 책을 숭배하는 정신이야말로 문명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신조 중의 하나이다... 인민통치 집단이든 전체주의 통치 집단이든 국민 모두가 어리석은 존재로 남을 것을, 그리고 국민들이 자신들의 퇴행을 순순히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알맹이와 가치가 없는 것들을 소비하도록 부추긴다. 그런 상황에서 독서가들은 오로지 '체제전복'을 기도하는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
- [독서의 역사], <마지막 페이지>, 알베르토 망구엘, 정명진 옮김, <세종>, 2000.


'읽기(reading)'가 먼저인가, '쓰기(writing)'가 먼저인가.
읽을 것을 쓴 게 이미 있으니 '쓰기'가 앞섰던가, 이미 읽은 걸 서사로 풀어서 쓴 것이니 '읽기'가 앞섰던가.
'닭이 먼저인가, 계란이 먼저인가' 같은 무의미한 질문이겠으나 '읽기'와 '쓰기'의 '역사'를 보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인 알베르토 망구엘은 '우리 시대의 몽테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책들을 읽고 그 의미들을 회의하고 사색한 내공으로 [독서의 역사](1996)를 썼다. 그가 돌아보는 '독서', 즉 '읽기(reading)'의 역사는 '정치사'나 '비평사' 등의 연대기적 순서에 따르지는 않는다. 그가 말하는 '독서 행위(읽기)' 또는 독서의 역사'는 그 자체의 역사라기 보다는 '독서가'들의 역사이며, 그 역사는 보편적이거나 일반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독서가들 각자의 역사"(같은책, <마지막 페이지>)다. 따라서 생물의 진화나 자연과학의 진화 등 '과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연성'으로 점철된다. 모든 과학의 시작은 '우연'이었을지 모르나 그 진화과정은 '필연'의 논리가 있는데 비해, '독서가'들의 역사는 20세기 오스트리아 미술사가 에른스트 곰브리치가 말한 '미술이 아닌 미술가들의 역사'처럼 '과학적'이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모든 것의 '우연적 역사'가 사회경제 체제의 '필연적 역사'를 토대로 전개됨을 상기한다면 수긍할 만 하다.

기원전 10세기경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의 그림문자나 그 얼마 후 페니키아에서 알파벳 문자 또는 숫자 등의 기록이 등장한 동기는 '문명의 유지'와 '전승'이었을 것인데, 그 이후로도 오랜 시기 동안 '문자 문명'은 소수 지배계급의 특권에 불과했다. 극소수를 제외한 다수 피지배자들은 19세기까지도 '읽기'가 허용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수의 '읽기'는 그 다양한 해석과 창의력, 상상력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민주주의'를 동반하기 때문이었다.

19세기 쿠바의 담배공장에서 노동자들에게 책을 읽어주던 '독사(讀師)'는 글을 모르거나 읽을 시간이 없던 노동자들이 십시일반 모여 읽을 책을 선정하고 노동 중에 라디오처럼 글을 들려주었는데, 같은 세기 대서양 건너 영국의 공장에서 노동자들의 '단결금지법'처럼 법으로 금지되었다고 한다. 역시, 지배자에게 민중의 '독서'는 '체제전복'적이고 두려운 것이다.그래서 대부분의 '독서회'가 '탄압'받는 것인가.


"... 문장 하나만 읽을 줄 알게 되면 누구든지 금방 모든 문장을 알 수 있게 된다. 더욱 중요한 점은 독서가는 그 문장을 반추하고 그 문장에 따라서 행동하고 그 문장에 의미를 부여할 능력을 지닌다는 것이다... 인류가 창조한 다른 어떤 물건들과 달리 '책'은 독재에 맹독으로 작용해 왔다. 절대권력은 모든 독서를 공식적인 독서로 제한할 필요성을 느낀다. 다양한 의견이 담긴 도서관 대신 독재자의 말만으로 충분해야 했다."
- [독서의 역사], <금지된 책읽기>, 알베르토 망구엘.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가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건립하고 후속 왕조인 프톨레마이오스가 그 도시에 최초의 대형 도서관을 지을 때 수많은 두루마리들은 지배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인류 지식의 다양성를 담보했을 수도 있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신들은 '지식'을 의미하는 두루마리나 서판 등을 들고 있지 않았는데, '문자'를 통한 지식의 중요성이 크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기독교나 이슬람은 각각 '성경'과 '코란'이라는 '문자'를 매개로 '유일신'의 의지를 민중에게 전달했기에 성모 마리아가 대천사로부터 '수태고지'를 받을 때도 한 손에 '책'을 들고 있었고, '왕이 된 예수'였던 '예언자 무함마드'는 한 손에 칼과 다른 손에 '책'을 들었으며, '유일신'의 '사자' 또는 대리인들은 '책'과 '문자'를 중심으로 '이단'을 갈라냈다. 다수를 지배하는 중세의 교리는 '문자'라기 보다는 상징적 '아이콘'으로 가득한 '그림'이었지만, 항상 다수의 역사를 스스로 써온 인류는 이 '그림'을 '문자'로 전환시키고 이 '상징'들 또한 다수와 공유하며 언제 어디서든 '체제전복'을 기도한다.
다수 민중들의 '읽기'와 '독서'는 늘 그 자체로 '체제전복'적이다.


"코덱스의 편리함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서기 400년 경이 되자, 고전적인 형태의 두루마리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대부분의 책들은 사각형으로 여러 장 모은 형태로 제작되었다... (15세기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의 위대한 장점... 제작 속도, 텍스트의 동일성, 그리고 상대적으로 값이 싸다는 이점... 16세기는 인쇄의 시대일 뿐만 아니라 (또한) 육필 입문서의 시대이기도 했다."
- [독서의 역사], <책의 형태>, 알베르토 망구엘.


서기 4백년대에는 소장하고 읽기 불편했던 두루마리 형태에서 양피지를 접어 지금의 책 형태로 만든 '코덱스'가 발명되었고, '문자'와 '지식'은 비단 외우는 것만이 아니라 소지하고 다니며 그 권위를 인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14세기에는 '안경'도 발명되었고, 드디어 15세기에는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술이 [성경]의 대량생산과 대중화에 혁혁한 공을 세운다. 15세기 인쇄술의 대중화는 육필 필사본의 화려한 장식적 필체 또한 대중화했기에 16세기에는 인쇄술의 발전이 육필 필사의 기술도 함께 발전시키게 된다. 전자산업 발달에도 불구하고 '종이책' 고유의 양식과 질감, 냄새는 늘 인류와 함께 하는 것처럼. 망구엘이 고백한 것처럼 사실 내게도 '독서'란 '문자'나 '지식'을 얻는 행위를 넘어 '책'이란 '사물'에 대한 일종의 '집착'이기도 하다. 스무살 때는 '멋있게 보이려고' 들고 다닐 때가 더 많았다.
어쨌든, 다수 대중'의 독서는 그 머릿수 만큼이나 다양한 해석과 상상력을 쏟아 놓기에 정치권력의 독점적 권위는 자연스레 균열이 난다. '민주주의'의 문명적 토대가 싹을 틔운다.


"스크립타 마네트, 베르바 볼라트
(Scripta manet, verba volat)"


중세 시대만 해도 '독서'는 눈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입으로 소리내어 암송을 동시에 해야 했다.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수라 '신의 말씀'을 함께 읽고 들어야 했기 때문인데, '문자'를 다수가 공유한 이후로 독서가들은 자신의 침대에서 조용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글로 쓰여진 것은 영원히 남고, 말로 표현된 것은 공기 속으로 사라진다(Scripta manet, verba volta)"는 라틴어 문구는 원래, 중세 암송 시대에는 "글은 조용히 죽은 것이고, 말은 생생히 날아오른다"는 의미였지만, 근대 이후 묵독 시대에는 "글은 영원히 남고, 말은 공허히 날아간다"는 뜻이 되어 '지식'을 공유함에 '문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장이 되었다.
망구엘에 의하면, 책은 "간단한 도구의 상징적 의미보다 훨씬 복잡한 상징적 의미를 독서가에게 부여"(같은책, <상징적인 독서가>)함으로써, "무지, 맹신, 지성, 기만, 교활함, 그리고 계몽을 통해 책읽는 사람은 원전과 똑같은 단어로 그 텍스트를 다시 쓰면서도 원본과는 다른 이름으로... 재창조"(같은책, <책읽기와 미래예언>)한다.

인류의 모든 문명은 문자로 남고 독서가들은 다양한 상상력으로 그 문명을 발전시키기도 하고 퇴행시키기도 한다. 
아마도 발전의 사례가 대부분일 것인 반면, 진시황의 '분서갱유'나 기독교와 이슬람 또는 독재정권의 '금서목록', 파시즘이나 나치즘 등과 같은 전체주의자들의 반복된 '분서' 선동은 퇴행의 대표적 사례다.


"... BC 3천년대 말 즈음 인간 사이의 의사전달의 본질을 영원히 바꿔놓을 기술이 개발되었다. 바로 글을 쓰는 기술이다... 작가가 텍스트에서 손을 뗄 때에만 그 텍스트는 텍스트로서 존재의 영역에 들어오게 된다. 이 시점에서 텍스트는 한 사람의 독서가가 읽어줄 때까지 조용한 존재로 남는다... 이렇듯 모든 기록은 독서가의 아량에 크게 의존한다... 바로 시작 단계에서부터 '읽기'는 '쓰기'를 신격화해 주는 것이었다."
- [독서의 역사], <최초의 시작은 진흙조각에서>, 알베르토 망구엘.


19~20세기 독일 비평가 쿠르티우스는 "세상과 자연이 책이라는 생각은 카톨릭 교회의 수사학에서 비롯되어 신비주의 철학자들로 이어졌다가 마침내 보편적인 것이 되었다"(같은책, <책읽기의 은유>)고 했는데, 인류의 지식과 문명이 '문자'의 매개체인 '책'이라는 실물 뿐만 아니라 '문자' 이전부터의 '세상'과 '자연'이라는 '거대한 책'으로부터 추출된다는 것이지만 기원전 3천년경이 되면 인류는 '쓰기(writing)'를 통해 한단계 더 발전하게 된다. '문자'를 통한 '지식'의 독점의 기원은 바로 '쓰기'였으며, 이러한 저술에 대한 다양한 독해를 가능케 한 '서사의 힘'이었다.


"나는 역사를 역사답게 하는 것이 '서사의 힘' 또는 '이야기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역사는) 변하지 않는 인간의 욕망과 본성, 예측할 수 없는 우연, 사회제도와 자연환경이 뒤엉켜 빚어낸 과거의 사건들 가운데 당대의 역사가들이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을 언어로 엮어낸 서사다. 역사의 역사가 드러내 보이는, '발전'이라고 하는 몇 가지 역사서술 환경과 내용과 관점과 방법의 변화는 힘있는 서사로 구현할 때만 독자의 생각과 감정을 움직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역사의 역사에 남은 역사서들을 만나본 소감이다."
- [역사의 역사], <에필로그 - 서사의 힘>, 유시민, <돌베개>, 2018.


망구엘은 '독서'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역사를 쓰지 않았다. 본인의 독서 이력으로부터 유추되는 창의적이고 다양한 '독서가'들의 개별적인 역사를 서술하는데 그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독서가'들의 역사가 워낙 다양하므로 그 역시 본인이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들을 언어로 엮어낸 서사'로서의 저술인 것이다.


우리나라 '지식소매상'을 자처하는 유시민은 최근의 저서 [역사의 역사](2018)에서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 '역사가의 시조' 헤로도투스로부터 [사기]의 사마천, 14세기 이슬람 '문명사학자' 이븐 할둔, 유물사관의 칼 마르크스를 비롯하여 우리의 박은식과 신채호, 백남운 선생, [역사란 무엇인가]의 에드워드 카와 최근 '빅히스토리' 역사가 제레드 다이아몬드와 유발 하라리 등의 '역사서술(writing history)'의 역사를 일별한다. 즉, '역사'란 19세기 독일의 반동적 군주제 역사가인 레오폴트 랑케의 건조한 문헌적 역사가 추구한 '사실 그대로'의 서술이 불가능하며, 각 '역사가' 개인들의 시대적 한계와 나름의 '철학'적 관점, 정치적 성향에 따라 '취사선택'되어 기록되고 기억되는 것이므로 '역사서술의 역사'인 '히스토리오그라피(historiography)' 또는 '사학사(史學史)'를 주제로 하되 본인의 '쓰기'는 학술적인 것이 아니기에 '역사 르포르타주(르포)'라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읽기(reading)'와 '쓰기(writing)'의 역사적 관계는 인류 지식과 문명의 역사 자체로서 일목요연한 정리가 불가한 방대한 영역일 것이다. 망구엘이 '독서'의 역사가 아닌 '독서가'의 역사를, 유시민이 '서술'의 역사가 아닌 '역사서술'의 역사를 주제로 삼은 이유다. 

'역사'를 소수의 지배자가 독점하던 시대는 다수 피지배 민중들이 문자를 공유하고 독서를 통해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함으로써 오래전에 물러갔다. 그러나 인류의 '지식'과 '문자'를 다양화하고 보편화하려는 '민주주의'적 시도가 주춤하는 시점에서, 하나의 정치세력 진영을 숭배하고 추종하는 현상에서 '역사서술'의 독점과 전체주의적 폭력은 여전히 기생한다.

그리하여, 무엇이 우선인가는 중요하지 않을 지라도, 소수 '역사가'들의 '쓰기'에 의해 취사선택된 텍스트들은 다수 '독서가'들의 다양하고 창의적인 '읽기'에 의해 통제되고 재창조되어야 한다. 모든 '텍스트(text)'들은 이미 창작되고 나면 '작가'의 손을 떠나는 독립적 '생물체'가 되며, '정치'가 그러하듯 이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는 수많은 '독서가'들의 손에 의해 더욱 풍부해진다.
이것이 우리 '사피엔스' 문명의 역사 속 '민주주의'의 역사이며, 그것이 '역사서술'과 그 '독서의 역사'에서 유일한 '철학'적 방향이다.

이렇게 또한 "글은 영원히 남는(Scripta manet)" 것이다.


"헤로도토스에게 역사서술은 돈이 되는 사업이었고(낭독회), 사마천에게는 실존적 인간의 존재증명이었으며("하늘의 도는 무엇인가!"), 할둔에게는 학문연구였다. 마르크스에게는 혁명적 무기를 제작하는 활동이었고, 박은식과 신채호에게는 민족의 광복을 위한 투쟁이었다. 사피엔스의 뇌는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지만 뇌에 자리잡는 철학적 자아는 사회적 환경을 반영한다. 그들은 각자 다른 시대에 살면서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이야기를 남겼다. 그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즐거움과 깨달음을 얻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의 철학적 자아와 공명하기 때문이다."
- [역사의 역사], <제6장 - 민족주의 역사학의 고단한 역정, 박은식/신채호/백남운>, 유시민.


***

1. [독서의 역사(A History of Reading)](1996), 알베르토 망구엘, 정명진 옮김, <세종>, 2000.
2. [역사의 역사(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돌베개>,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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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셈블리 - 21세기 새로운 민주주의 질서에 대한 제언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지음, 이승준.정유진 옮김 / 알렙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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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군주'인 전략적 '다중'에 의한 '대항권력'
- [어셈블리(Assembly)](2017),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이승준/정유진 옮김, <알렙>, 2020.



"새로운 '군주(君主)'가 지평선 위로 출현하고 있다. 이 '군주'는 '다중(多衆)'의 열정에게서 태어났다. 은행가, 금융가, 관료, 그리고 부자들의 여물통을 끊임없이 채우는 부패한 정책에 대한 의분, 사회적 불평등과 가난의 끔찍한 수준에 대한 격분, 지구와 그 생태계의 파괴에 대한 분노와 걱정, 멈출 수 없을 듯이 보이는 폭력과 전쟁에 대한 규탄. 사람들 대부분이 이 모두를 인식하지만, 변화를 일으키기에는 힘이 없다고 느낀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군주'란 자유와 평등의 길, 모두에 의해 민주적으로 관리되는 '공통적인 것'을 모두의 손에 쥐어주는 과제를 제시하는 길을 가리킨다. 물론 우리가 여기서 '군주'라고 부르는 것은 어떤 개인 혹은 심지어 어떤 당이나 지도자 회의를 가리키지 않고 오늘날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상이한 형태의 저항과 투쟁이 마디마디 이어져서 이루어진 정치적 결합체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군주'는 일관된 배열로 움직이며 암묵적으로 어떤 위협을 가하는 떼, '다중'으로 나타난다."
- [어셈블리],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서문>, 2017.


삼성 재벌에게 '노조할 권리'를 요구하다 1995년에 해고된 김용희 노동자가 1년 여의 고공농성을 마치고 땅으로 내려왔다. 수많은 노동자가 함께 만든 '사회적 부'를 불법적으로 '사유화'하려는 한 줌의 삼성 재벌 3세가 재판에 유리하게 이용하기 위해 공대위와 합의했으나 끝내 사과는 하지 않았다. '다중'의 힘으로 정치 권력자의 자리만 바꾼 결과 민주주의자들인 '촛불 정부'는 여전히 삼성 재벌의 편이다. 

2008년 신자유주의 금융자본 위기로 촉발된 다수 대중의 저항과 시위가 자본주의 개조를 외치는 지금, 이탈리아 정치학자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2017년에 [어셈블리(Assembly)]로 돌아왔다. [어셈블리]는 지난 세기전환기에 신자유주의와 노동 대중의 관계를 정립한 [제국]이래 [다중], [공동체] 등 연작의 총결산이며, 우리말로는 '집회/시위' 또는 '모이기/모으기'를 의미한다.


1. '신자유주의' = '금융자본'의 '제국'


"(반작용으로서)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자유를 회복하는 대신 국가를 다시 발명했다. 즉, 국가를 계급투쟁과 사회적 요구로부터 떼어놓으려고 함으로써, 자본주의 발전에 관한 이론 및 실천을 사회적 갈등의 위험으로부터 멀리 떼어놓음으로써, 민주주의를 완전히 알아볼 수 없게 만들 정도로 종속시킴으로써 말이다. 신자유주의의 이러한 '정치적' 형태가 체제의 다른 모든 부분을 지배한다... 신자유주의와 그 통치형태에 맞서고 그것을 전복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다중'과 그들의 '해방기획'에 있다."
- [어셈블리],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3-0. 금융통제와 신자유주의적 협치>, 2017.


자본주의 체제의 사상적 유래는 '자유주의'다. 근대의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이념인데, 자본의 이익 창출은 개인간의 계약으로 가능하니 국가는 '작은 정부'여야 한다는 것이다. 근대 혁명사상으로서 '자유주의'는 봉건지주 왕국은 무너뜨렸으나, 노예처럼 일하거나 굶을 '자유'만을 지닌 다수 노동계급을 양산했다. 
세계대전과 자본주의 체제내 복지국가 전성기를 거치면서 강력한 노동계급 투쟁에 대한 '반작용'으로 20세기에 등장한 새로운 자유주의, 이른바 '신자유주의'는 국경을 넘어서 이익을 창출하는 초국적 자본의 무한한 '자유'를 보장하되 '제국주의'적 패권을 다투는 강대국과 그들의 연합체를 더욱 강화한다. '신자유주의'는 그 조상인 '자유주의'와 달리 '작은 정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초국적 자본의 전세계적 수탈을 지지하고 보장하는 강력한 국가권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네그리와 하트는 지난 세기말 저작 [제국]에서 '제국'은 20세기 초중반의 '제국주의'가 아니고 그렇다고 초강대국 '미국'도 아니라고 규정했다. 이는 형태는 달라졌으되, 본질은 '금융자본'이 주가 되는 점에서 '자본주의 최고 단계로서 제국주의'의 계보 위에 있다.

이 '신자유주의'의 위기 또한 '금융자본'의 위기에서 촉발될 수 밖에 없는데, 2008년부터 전면화된 세계적 금융위기가 그 현상이다. 저자들에 의하면, "금융은 도박(투기)이 아니라 박탈의 장치"(3-10)로서 "실제로 금융자본은 철도, 통신, 제조업 혹은 국가의 문화재와 같은 공공재 등을 개인의 손에 넘기는 과정에 기여한다"(3-10). 모든 '신자유주의' 정치권력이 열성적으로 수행한 '민영화' 얘기다. '민영화'는 '제국주의'가 그랬던 것처럼, 단순한 유행이나 정책결정이 아닌 '금융자본주의'의 필연적 형태인 것이다.

'자유경쟁'에서 출발한 자본주의는 그 발전단계에서 '독점'으로 흐르며 이를 촉발하는 '금융'이라는 매개는 끊임없이 '혁신'을 외치지만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기업가정신' 따위가 아니라 '파생금융상품' 등에서 보듯 모든 사물과 생명체까지도 '자본'으로 '추상화'시켜 이익을 무한하게 '추출'하고자 한다. [어셈블리]가 말하는 이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의 '추출주의'는 "지대가 산출되는 모든 활동들이 그렇듯... 생산으로부터의 유리(추상)로 특징지어지며"(3-10), 노동생산 현장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광범위하게 착취한다. 이 과정은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말한 '자본의 지대추구화'와 맞닿아 있으며, 이러한 금융자본이 "생산에 대한 중앙집중화된 통제를 촉진"(3-10)함으로써 '독점자본'으로의 필연적 귀결과 이와 결탁한 국가권력을 '발명'하는데 가히 김규항 선생이 [혁명노트]에서 말한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모습이다. 그리하여 한쪽에는 '이자로 먹고살며 사유재산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다른 한쪽에는 "집단적 지식과 지성 및 사회적 소통능력, 돌봄능력, 협력능력을 통해 사회적 부(공통적인 것)를 생산하며 자신들이 생산한 공통적인 것에 대한 자유롭고 열려있는 접근을 통해 안전을 추구"(3부 - 시초축적 보론)하려는 '불안정한' 다수가 있다. 이것이 [어셈블리]가 규정하는 '계급투쟁'의 '전선'이다. 또한 이것이 '신자유주의'와 '금융통제', '혁신'과 '창조적 기업가정신'의 객관적 실체다.


"사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가장 악질적인 측면은 재산 소유자의 자유나 자본주의 기업가의 자유에 관한 담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나 사회 최하층민의 자유를 찬양한다는 점에 있다... 신자유주의적 기업가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본질적으로 새처럼 자유롭다. 자신의 불안정한 삶을 최선을 다해 관리할 자유, 그리하여 살아남을 자유라나, 이 얼마나 멋진 위선인가!"
- [어셈블리],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3-12. 이음매에서 어긋난 신자유주의적 행정>, 2017.


2. '공통적인 것' : '고정자본'의 재전유


"현대적 소유관계를 탐구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오늘날의 사회적 생산 및 재생산의 형태를 살펴보아야 한다... 노동이 사회화되고 전사회가 가치화의 영역이 될 때, 즉 지성, 신체활동, 문화적 창조성, 온갖 창의적인 힘이 협동적으로 연결되어 함께 사회를 생산 및 재생산할 때, '공통적인 것'은 생산성의 열쇠가 되는 반면, 사적 소유는 생산능력을 저해하는 족쇄가 된다. 다시 말해 소유의 주권적 성격을 벗겨내 '공통적인 것'으로 변형시킬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질 것이다... '공통적인 것'은 새로운 소유형태가 아니라 '비소유'이다."
- [어셈블리],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2-6. 어떻게 소유를 공통적인 것에 개방할 것인가>, 2017.


마르크스주의 철학에서 '자본주의 모순' 중 하나는 '사적 소유'와 '사회적 생산'간의 그것인데, 생산수단(고정자본)을 사유화하여 발전시킨 '생산력'과 생산수단을 독점한 자본가계급과 노동력만을 가진 다수 노동자계급과의 '생산관계'간의 모순이다. 자본이 독점화되고 '소유'가 '사유화'될수록, 생산수단(고정자본)으로부터 분리된 노동자계급은 다수가 되므로 '생산'은 '사회화'된다. 물론 이러한 정의는 마르크스주의를 '헤겔화'시킨 루카치나 마르쿠제 등의 해석으로 이제는 현재에 맞게 '현대화'시켜야 한다. 
[어셈블리]는 노동하는 '다중'의 '연대경제'를 강조하는데, 다수의 '협력'과 '자주관리'를 대안으로 하여 '다중'의 자유를 확장하고 협력의 규칙 및 민주주의 규범이 되면서 이러한 '사회적 협력' 속에서 '다중'의 '주체성'이 발생한다(2-6).

"'디지털화'는 이미 공장에서 일어나던 노동력의 기술적 구성의 변형을 전사회적으로 확장"(2-7)했는데, 스마트폰을 통해 자본의 생산활동에 일상적으로 참여하는 다수의 소비자들의 관계에서 보듯, 더이상 '사적 소유'의 영역에만 머무를 수 없는 "고정자본에 부여된 노동자들의 생산적인 사회적 협력은 비록 지금은 자신들이 생산한 잉여를 자본에게 넘겨주긴 하지만, 노동자들의 자율을 위한 잠재력을 제기하며, 노동과 자본의 힘 관계를 역전시킨다"(2-7). 이 역관계는 '계급투쟁'을 생산적 삶 자체에 투입하는데, 공장노동을 넘어선 전사회적 생산자로서 다수의 '사회적 노동'은 '삶정치적'(2-7) 계급투쟁의 형태를 제기하는 바, 이제 사회적으로 노동하고 생산하는 '다중'은 '협력'과 '연대'의 '민주주의' 무기로 무장한 채 '고정자본'을 되찾고 '재전유'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정의한  '산 노동'의 생산적 축적물로서 '죽은 노동'인 '고정자본(생산수단)'은 이제 현대에 이르러 다수의 수중으로 '사회화'되어야 한다. [어셈블리]는 "고정자본은 인간자신이다"(2-7)라고까지 규정하는데, '노동력'을 '인적 자본'으로 바꿔 부른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역시 맞닿는다. 


"오늘날 강력한 노동형상이 알고리즘의 기능에 가려져 있다... '알고리즘'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적 지성에서 나온 기계이자 '일반지성'의 생산물인 '고정자본'이다... 노동자는 노동하는 동안 고정자본을 전유하여 그것을 다른 노동자와의 사회적, 협동적, 삶정치적 관계에서 발전시킬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생산적 자연을, 즉 새로운 생산양식의 토대가 되는 새로운 삶형태를 결정한다... '고정자본'의 '재전유'는, 다시 말해서 애초에 우리가 창출한 물리적 기계, 인공지능 기계, 사회적 기계 및 과학적 지식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는 것은, 그 전장에서 우리(다중)가 착수할 수 있는 대담하고 강력한 하나의 사업인 것이다."
- [어셈블리],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2-7. 우리, 기계적 주체들>, 2017.


산업과 공장을 넘어서 전사회적으로 확대된 현재의 계급투쟁의 전장에서 "환원할 수 없는 다양성"(2부)으로서의 '다중'은, '공장 외부'에서 "사회적 생산"을 기반으로 '노조 외부'에서 "사회적 조합주의"를 공유하면서 새롭고 더욱 강력한 의미의 '총파업'으로서의 "사회적 파업"을 통해 '생산수단(고정자본)'을 '사회화'하는데 여전히 복무해야 한다.


"'모두에게 그들의 필요에 따라'는 더 이상 이데올로기적이고 환상적인 슬로건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부의 생산 및 재생산에의 공통 참여에 따른 '공통적인' 가능성들의 재분배를 위한 정치적 지령이다."
- [어셈블리],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4-16. 포르톨라노>, 2017.


3. '새로운 군주' = '다중'


"대신에 운동들은 전략과 전술을 전도해야 한다. 즉, 전략은 출현하는 사회세력들의 자율을 표현하는 것이 되어야 하며, 전술은 기존 제도들에 (적대적으로) 참여하면서 특정한 경우에는 '리더십' 구조를 활용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다중(새로운 군주)'의 힘... 사회적 생산 및 재생산에 굳건히 근거할 때에만, 즉 우리가 공유하는 삶형태를 '공통적인 것' 안에서 유지하고 발전시킬 때에만, 우리는 오늘날 적절하게 말하고, 정치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다중은 권력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다르게, 민주주의 제도를 근본적으로 혁신함으로써, 사회적 삶이 기입된 '공통적인 것'을 함께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발전시킴으로써 잡아야 한다. 이것은 전위의 기획이 아니라 전복적, 적대적 형태로 사회의 복수적 존재론을 표현하는 연합의 기획이다. '다중'의 힘이 '새로운 군주'를 요청한다."
- [어셈블리],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4-0. 새로운 군주>, 2017.


이탈리아 정치학 사상가인 [어셈블리] 저자들은 역시 그람시가 그랬듯 '군주(君主)' 타령이다.
물론, 민주주의자들이 말하는 '군주'가 왕일리는 없다. 근대 정치학의 아버지인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영향이다. 그가 당시 가장 이상적 정치체제로서 '군주'를 호명한 것에 대한 정치적 '은유'로서 그람시는 그의 [옥중수고]에서 1920년대 '현대의 군주'는 '진보정당'이라 했고, 백년 후의 네그리와 하트는 "다양한 생산적 주체들"로서의 '다중(多衆)'을 '새로운 군주'라 명명한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이상적 삶정치 체제'를 만드는 주체들이 바로 '다중'이기 때문인데, 세기초 [제국]의 결론으로서 '대중(multitude)'과 내용상 동일하다.

[어셈블리]에서 인상적인 테제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다중에게 전략을, 리더십에게 전술을!" (1부)

"공통적인 것을 첫째로, 권력을 둘째로!" (4부)

'리더십'이 이끌던 저항과 집회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민주주의'를 무기로 다양성과 자율, 협력과 연대를 통한 '집회/모이기', 즉 '어셈블리(Assembly)'의 시대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다중과 유리되어 가기만 하는 '대의제' 자체도 실패했다고 규정하나 이는 '아나키즘'이나 '포퓰리즘'과는 거리가 멀다. 
'새로운 군주'인 '다중'은 사회적 부로서 '고정자본'이나 기후환경 등을 포괄하는 '공통적인 것'의 재전유를 위해 '조직화'하는 "정치적 현실주의"(4-13)를 채택하고, '공통적인 것'을 우선 사회적으로 재전유한 후 '권력을 둘째로 잡아야' 하는데 권력자만 바꾸는 식이 아니라 이전과는 '다른' 방식이 되어야 한다. 즉, 다중은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통해 집권하고 리더십의 대의적 전횡을 완전히 통제하는 "대항권력의 제도화"(4-14)를 끊임없이 지향한다.
러시아혁명 시기 소비에트처럼 권력 위임을 너머 아래로부터 스스로 '이중권력'을 구성하면서 공적 권력과 병존하는 '대항권력'을 구축하고 대의자들을 견제 및 통제하면서 체제 변혁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다중의 투쟁역사'는 "승리했든 패배했든... 대항권력의 제도를 창출했고"(4-14), 역사적으로 "공화국을 창립했다"(4-15).


이 과정에서 '대의제'를 대표하는 '리더십'은 더 이상 큰 기획의 '전략'적 위치에 있을 수 없다. 마키아벨리식 '왕자(The Prince)'도 그람시의 '현대 정당'도 아닌 '민주주의'로 무장한 '새로운 군주'인 '다중(多衆:multitude)'이 '전략'을 이끌어가고 '대의'적 '리더십'은 그때마다 '전술'로 활용되는 '전복적' 약술론이 필요한 시대인 것이다.

그야말로, '리더십(leadership)'은 더 이상 '지도'나 '지배'가 아닌 라틴어 어원인 '여행하다(laedan)'의 원래 의미로서 '다중'들의 '자율적 여정'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말미에 잠시 언급되는 '무조건적 기본소득'은 이전 저작인 [제국]에서 지난 세기말에 이미 '사회적 임금'으로서 제기된 바 있으며, 현재는 '사회적 노동'으로 인해 '공통적인 것'을 되찾고 재전유하는 투쟁에서 '다중'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회의제이기도 하다.

"기본소득은 사회적 생산의 결과들을 더 정당하게 분배하는 것을 제도화할 뿐만 아니라, 극단적인 형태의 가난과 혹사노동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이다... 기본소득은... 공통적인 것의 화폐와 새로운 민주적인 사회관계들의 더 실질적인 제도화를 이미 암시하고 있다."
- [어셈블리],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4-16. 포르톨라노(중세의 해양지도)>, 2017.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다중의 저항과 투쟁의 방식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인 '어셈블리(Assembly)', '집회/모이기'다.


"'집회/모이기(Assembly)'는 '구성적 권리'가 되어가고 있다. 사회적 대안을 구성하는, 권력을 장악하되 '다르게', 즉 사회적 생산에서의 협동을 통해 장악하는 메커니즘이 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사회적 부에 기반을 두고 오래 지속하는 제도들을 창출하고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조직하는 '구성적 과정'으로, 그 관계들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다중의) 힘에 의해 성취된다."
- [어셈블리],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4-16. 포르톨라노>, 2017.


***

1. [어셈블리(Assembly)](2017),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이승준/정유진 옮김, <알렙>, 2020.
2. [제국(Empire)](1998),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윤수종 옮김, <이학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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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보 삼봉집 2
정도전 지음, 정병철 옮김 / 한국학술정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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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혁명가 정도전은 '유물론'자다
- [삼봉집(三峯集) - 2], 정도전, 정병철 편저, <KSI한국학술정보>, 2009.


"[주역]에, 
'성인의 큰 보배는 위(位)요, 천지의 큰 덕은 생(生)이니, 무엇으로 위를 지킬 것인가? 바로 인(仁)이다.'...
인군(人君)의 위(位)는 높기로 말하면 지극히 높고, 귀하기로 말하면 매우 귀하다. 그러나 천하는 지극히 넓고 만민은 수없이 많은데, 한 번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아마 크게 우려할 일이 생기게 될 것이다. 하민(下民)은 지극히 나약하나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지극히 어리석으나 지혜로써 속일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마음을 얻으면 복종하게 되고, 그들은 마음을 얻지 못하면 배반하게 된다... 그들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사사로운 뜻을 품고서 구차스럽게 얻는 것도 아니요, 도를 어기고 명예를 구하는 방법으로 얻는 것도 아니다. 그 얻는 방법은 오직 인(仁)으로써 가능하다."
-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보위를 바룸(正寶位)>, 정도전, 1394.



고려왕조를 멸하고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건국한 무리는 '유학(성리학)'을 지도사상으로 한 고려말 신흥사대부 중 '급진파'의 이념과 중앙에서 배제된 변방 무인세력의 무력의 결합이었다. 인물로 말하면, 정도전의 '머리'와 이성계의 '주먹'으로 이룬 혁명이었다.
고려말 대 유학자이자 재상이었던 목은 이색의 신흥사대부 사학 제자 중 정몽주는 온건개혁파였고 그 '운동권' 동아리 '동심회'의 4년 후배였던 정도전은 급진개혁파였는데, 이성계의 무력을 얻은 급진개혁파가 정몽주를 제거함으로써 비로소 혁명의 길로 치닫는다.


조선 개국 2년 후인 1394년, 삼봉 정도전은 새 국가를 운영하는 '법전'인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을 지어 태조 이성계에게 올린다. 오늘로 치면 '헌법'에 해당하는 문건으로 후세인 성종대에 이르러 [경국대전(經國大典)]으로 집대성되는 조선의 '법률초안'이다. [조선경국전]은 '이-호-예-병-형-공'의 중국 국가기구의 뼈대인 '육조(六曹)' 또는 '육전(六典)'을 정리하여 '국가조직을 짠다(經國)'는 국가운영 기획서이기도 했다. 유학의 시조 공자가 '이상적 시대'로 삼았던 중국 주나라의 [주례(周禮)]로부터 유래하는 '육전(六典)'은 '치(治)전', '교(敎)전', '예(禮)전', '정(政)전', '형(刑)전', '사(事)전'으로 각각 '이-호-예-병-형-공'을 의미한다. [조선경국전]은 각 공무조직의 틀과 업무 범위를 세세하게 규정하면서 중국과 고려의 역사를 함께 인용하고 있는데, 그 주제는 첫 장에 서술되는 '인사관리'의 '이(吏)조'에 해당하는 '치전(治典)'이며 주인공은 이를 총괄하는 '총재(冢宰)'다.

정도전이 설계한 '이상국가' 조선은 '천명'을 받은 군주를 앞세워 '유학(儒學)'의 군자가 실질적으로 다스리는 세상이었다. [조선경국전]에서 '천명'을 받은 군주는 '인군(人君)' 또는 '인주(人主)'이며, 실질적 국가 운영자인 '성인군자'는 바로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인 '재상(宰相)'이다.

'경영(經營)'이란 '조직의 틀을 짜는 것(經)'과 '인력을 운용하는 것(營)'의 조화를 뜻하는데, 이로써 '육전'의 최고는 '인사관리'의 '치전'이며 '재상' 중의 '재상'은 '치전'의 대표인 '총재'인 것이다. 


"총재(冢宰)라는 것은 위로 군부를 받들고 밑으로는 백관을 통솔하며 만민을 다스리는 것이니, 그 직책이 매우 큰 것이다. 또 인주(人主)의 자질에는 어리석은 자질도 있고 현명한 자질도 있으며, 강력한 자질도 있고 유약한 자질도 있어서 한결같지 않으니, 총재는 인주의 아름다운 점은 순종하고 나쁜 점은 바로잡으며, 옳은 일은 받들고 옳지 않은 것은 막아서, 인주로 하여금 '대중(大中)'의 지경에 들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상(相)'이라 하나니, 즉 '보상(輔相:임금을 도와 대신을 거느리며 다스림)'한다는 뜻이다. 백관은 제각기 직책이 다르고 만민은 제각기 직업이 다르니, 재상은 공평하게 해서 그들로 하여금 각자 그 처소를 얻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재(宰)'라 하나니, 즉 '재제(宰制:전권을 휘두름)'한다는 뜻이다."
- [조선경국전], <치전>, 정도전, 1394.


'치전'의 '총재'가 바로 '재상(宰相)'인 바, '전권을 휘두르며(宰)' '임금을 도와 대신을 거느리며 다스리는(相)' 직위이다. 가히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자리인데 국가운영의 하나하나를 소홀함 없이 다 알아야 하고 챙겨야 하는 중책이다. 사람이 이를 혼자 다 할 수는 없으므로 여러 인재를 선별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인사관리'가 제일 중요하니 '치전'의 '총재'가 조선의 '재상'이 되는 것이다. 재상은 아니나 먼훗날 조선 당쟁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 간관을 임명하는 정5~6품 '이조전랑'의 요직의 발령이 된 이유도 그 연장선상 아니겠는가.

'이상국가' 조선을 운영하는데 핵심은 이러한 성인군자 반열의 '재상'과 바른 말 하고 감사하며 비위자를 탄핵하는 '대간(臺諫:대관과 간관)'이었으니, 당시의 '유일한 정치체제'였던 '세습군주제'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대쪽같은 '성리학(주자의 유학사상)' 이념으로 무장한 비타협적 사대부 관료들과 그들에 의해 조직된 국가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위로는 음양을 조화하고 아래로는 서민을 어루만져 편안하게 하며, 안으로는 백성을 밝게 다스리고 밖으로는 사방의 오랑캐를 진정하고 무마하는 것이니, 국가의 작록과 포상과 형벌이 이에 관련이 있고 천하의 정치와 덕화, 가르침과 명령이 이로 말미암아 나오는 것이다. 전폐 아래에서 치도를 논하여 일인(군왕)을 돕고 묘당의 위에 서서 도견(성인의 정사)을 잡아 만물을 주재하니, 그의 직임이 어찌 가볍겠는가? 국가의 치란과 천하의 안위가 항상 이에서 비롯될 것이니 진실로 그 사람(재상)을 가볍게 고르지 못할 것이다."
- [경제문감(經濟文鑑)], <재상의 직>, 정도전, 1395.


정도전은 조선의 '헌법전'인 [조선경국전]에 이어, '재상'과 '대간(대관과 간관)'의 임무와 역할을 역시 성리학 사상에 기반하여 규정하는 '공무원 복무규정'으로서 [경제문감(經濟文鑑)]을 저술하는데 이 책은 우선 '육전'의 구성을 간략히 정리한 후, 중국 역사상 각 왕조와 고려 및 새 국가 조선에서 '재상'의 형태들을 일별하면서 위와 같은 '재상의 직'에 이어 '재상의 업'은 '자기 몸을 바르게 한다', '임금을 바르게 한다', '인재를 잘 안다', '일을 잘 처리해야 한다', '임금을 이끌어 도에 도달하게 한다' 등의 47개조 항목을 들고 있다. 역시 대관과 간관도 같은 형식으로 서술한다.
또한, [경제문감]의 <별집>을 따로 지어 중국 역대 왕들과 고려의 역대 임금들에 대한 간략한 '평론'을 하고 있는데, 정도전이 인정하는 '유학 군자'로서 훌륭한 '재상'은 '주공 단'은 물론 한나라 소하와 삼국시대 촉한의 제갈량 등이며, 한편으로 꼽는 뛰어난 인군은 은탕, 주무왕, 한고조 유방, 당태종 이세민, 송태조 조광윤, 고려태조 왕건 등이 있다.
물론, 중국 역사에 대한 사대주의 풍조가 주를 이루고, 지배계급의 틀에서의 혁신을 논하기에 역사속 '농민혁명'과 왕안석 '신법' 등을 폄하하고 있음은 신분제 사회였던 당시의 시대적 한계로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정도전의 '혁명'은 단순한 왕조 교체로서 '역성혁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시에는 진보적이었던 사상을 토대로 완전히 새로운 사회체제를 건설하고자 했던 진정한 '혁명'이었다.


"어떤 사회에서든 어른이 되려는 사람이 배워야 하는 지도자의 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신의 착한 마음을 인식하고 그것을 밝혀라.
둘째, 자기 수양을 바탕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라.
셋째, 자신의 착한 마음의 수양을 바탕으로 타인과 어울리며, 조화로운 사회관계를 일상에서 지속하라.

대학지도(大學之道),
재명명덕(在明明德),
재친민(在親民),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
- [대학(大學)], <경문 1-1>


조선의 '건국이념'으로서 '성리학'은 춘추시대 공자로부터 시작한 '유학'을 북송시대 주돈이나 남송시대 주희(주자)가 철학적 '이기론(理氣論)'으로 정리한 사상으로 종교와 같은 반열의 '유교'가 되는데, 정도전이 말한 '군자'는 유교의 '4서'인 [대학], [논어], [맹자], [중용] 등을 완벽하게 체득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고대로부터의 역사는 물론 [논어]에서 말한 공자의 '인(仁)'과 [맹자]의 '의(義)'의 정치를 아우르고 [중용]의 치우침 없는 '불편부당'과 지도자(어른)가 갖추어야 할 학문적 소양을 가리키는 [대학] 등에 통달해야 한다.

우리나라와 중국을 통틀어 아시아, 아니 전세계 역사 속에서 정도전에 이르러 비로서 [대학]의 '3강령 8조목'이 현실에서 '혁명'적으로 실현된다. 공자의 '애민(愛民)정치'와 맹자의 '여민(與民)정치'를 기반으로 [대학]의 '3강령(明明德-親民-止於至善)'과 '8조목(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을 '관념'이 아닌 현실정치에서 실현했던 유일한 시도였다.
당시의 시대상황을 고려해도 삼봉 정도전은 일체의 '관념론'을 거부한 '유물론'자였던 것이다.


"불(佛)씨의 학(學)이... 저들 스스로가 물(物)을 부리기는 하되 물에게 부림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만일 돈 한 푼을 주어도 곧 그것을 어찌할 줄 모른다면 그 일이 이상하지 않는가? 그런즉 하늘이 이 사람을 내어 만물의 영장이 되게 하고, 재성(財成), 보상(輔相)의 직책을 준 이유가 과연 어디 있겠는가?...
요컨대 우리(유학)는 마음과 이치가 하나라고 본 것이요, 저들(불교)은 마음이 공(空)함으로써 이치도 없다고 보았고, 우리는 마음이 비록 공하나 만물의 이치를 갖추고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자면 우리 유가는 하나이고 석씨는 둘이며, 우리 유가는 연속이고 석씨는 간단(間斷:끊어짐)인 것이다."
- [불씨잡변(佛氏雜辨)], <14. 유교와 불교가 같은 점, 다른 점에 대한 변>, 정도전, 1398.


정도전은 조선의 '건국이념' 성리학을 정치사상으로 실현함과 동시에 '철학' 이데올로기로 굳건히 하기 위해 기존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불교'와 사상 논쟁을 전개하는데, 이 다분히 '논쟁적 저작'이 바로 [불씨잡변(佛氏雜辨)]이다.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은 '하늘의 이치'인 '이(理)'와 '인간의 실천'인 '기(氣)'가 하나라는 '일원론'적 주장을 통해 불교에서 속세와 내세를 구분하는 '이원론'을 통렬히 논박한다.
민중의 '물질적' 욕구와 토지제도 개혁과 같은 '경제민주화'는 등한시한 채 내세를 향한 '수양'과 '깨달음'을 앞세워 말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부정하게 부를 축적하는 당시 지배종교로서의 불교를 '불씨', '석씨(석가모니)'로 칭하며 비판과 논박을 하고 있다. 마치 5~6백년 후 유럽의 혁명가 엥겔스의 [반뒤링론]이나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못지 않다.
'혁명가' 정도전에 의해 당시 지배 이데올로기 불교의 '윤회론', '인과론', '지옥론', '자비론' 등의 19개 논제가 처절하게 짓밟힌다.
불교와 유교의 가장 큰 차이는 '이원론'과 '일원론'이고 '관념론'과 '유물론'이다. 마치 천 년 이전 플라톤의 사상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그것 차이와 비슷하기도 하다.
불교의 '내세'적 '관념론'과 대비되는 유학의 '현실'적 '유물론'은 역시 '4서 5경' 중 하나인 [주역(역경)]의 '과학'(또는 '음양오행설')에 의해 천태만상으로 변화발전하는 객관적 세계를 토대로 한다.


물론, 조선 후기에 이르러 다수 민중을 위한 현실정치와 격리된 '유교'로서 성리학은 '관념론'의 길을 갔으나, 조선의 건국 이데올로기로서의 초기 '유학'은 이념과 현실을 '일원론'으로 파악한 '유물론'적 성격이 다분했다.

그리하여,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불세출의 혁명가 삼봉 정도전 선생을 감히 나는 '유물론자'라 부른다.


***

1. [삼봉집(三峯集) - 2], 정도전, 정병철 편저, <KSI한국학술정보>, 2009.
2. [사서(四書) - 이치를 담은 네 권의 책(대학/논어/맹자/중용)], 신창호 편역, <나무발전소>,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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