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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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이 없다면, 우리는 여전히 '이방인'이다.
- [페스트](1947),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민음사>, 2011.
- [이방인](1942), 알베르 카뮈, 박용철 옮김, <덕우출판사>, 1990.




"... 페스트는 모든 경제생활을 파괴했고, 그 결과 엄청난 숫자의 실업자가 생겨났던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 실업자들은 간부직을 위한 충원 대상은 못 되었지만, 막일에 관한 한 그들 덕에 일이 쉽게 되었다. 그 시기부터는 사실 '곤궁이 공포보다 더 절박하다는 사실'을 늘 눈으로 볼 수 있었고, 위험성의 정도에 따라서 보수를 지불하게 마련이고 보니 그 점은 더욱 명백해졌다. 보건과에서는 취업 희망자의 리스트를 마련해 놓을 수가 있었고, 그래서 어디서 결원이 생기기만 하면 그 리스트의 첫머리에 올라 있는 사람에게 통지를 하곤 했는데, 그 사람들은 그 사이에 자기 자신들이 (페스트에 걸려) 결원되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출두하게 마련이었다. 유기 또는 무기 죄수들을 활용하기를 오랫동안 주저해 왔던 지사도, 이렇게 해서 그러한 극단적 조치에까지 가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실업자들이 있는 한은 견딜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 [페스트], <3부(8월)>,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민음사>, 2011.


'코로나' 감염병 사태 중 콜센터 노동자들과 물류센터 배송 노동자들의 전염병 확진이 번질 때 사람들은 그제서야 그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 주목했다. 닭장과도 같은 공간에서 아프든 말든 끊임없이 실적 경쟁을 하고 '남들 쉴 때'도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노동 조건인데, 중요한 것은 이들만의 환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아니 전부가 하청' 또는 도급되거나 '특수고용'된 비정규직이었다. 코로나 이전에도 위험한 일들은 '외주화'되어 있었고 우리 사회는 산재사망률 1위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도 없는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일터에서 죽어 나갔다.
'민주 정부' 들어서자 마자 인천국제공항에서 대통령이 직접 약속했던 '비정규직 제로' 선언의 비밀은 자회사를 통한 '외주화'였고, 직접고용을 통한 정규직화를 요구하면 '공채'나 '시험'으로 어렵게 입사한 소수의 '청년 귀족노동자'들이 단지 자신들도 한때 수많은 '구직 청년'이었다는 이유로 '공정성'을 앞세워 비정규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노노갈등 행태가 지겹도록 반복되고 있다. 
'민주 정부'가 애써 나설 필요는 없었다. '자유시장'이라는 허위의식 아래 사람도 '노동'도 '상품'이며 '공정 경쟁'의 이름으로 '불평등'과 '불공정'이 당연한 것이 된 이 체제를 정치가 굳건히 유지하기만 하면 노동자들은 알아서 서로 갉아먹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전쟁'이든 '혁명'이든, '공황'이든 '역병'이든 모든 '재난'은 무차별적이고 전면적이라 '공평'하고 '평등'할 것 같지만, 체제가 불평등한 만큼 '재난'도 '불평등'하다. 이 체제의 본질은 '자유'를 가장한 '불평등'이기 때문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 왕정을 두 번째로 무너뜨리고 '제2공화정'를 세운 1848년 2월 혁명 후 '부르주아 정부'는 대혁명 시기처럼 시민군인 '기동대'를 창설하는데 '기동대'는 당시 혁명의 주력 노동계급의 기대와는 달리 '부르주아 정부'의 호위대가 되었고 정부가 '하급노동'의 조직과 충분한 공급을 위해 만든 '국민 작업장'은 반대로 그 해 6월 노동자 봉기의 주요 진지가 되었다.
물론, 공화정을 세운 후 권력을 위임받은 부르주아지의 배신과 '반(反)혁명'으로 인해 노동자 봉기는 패배하고 마는데, 이러한 과정은 1987년 우리 사회에서 '6월 시민혁명'의 절반의 승리와 '7~9월 노동자투쟁'의 패배로 반복된다.


"'기동대' 외에도, 정부는 산업 노동자 군대를 자기 주위에 모으기로 결정하였다. 공황이나 혁명 기간에 거리로 내몰린 10만의 노동자들을 장관 마리는 소위 '국민 작업장'으로 불러들였다. 이 거창한 이름 밑에 감추어져 있던 것은 단지 23수의 (저)임금으로 지루하고 단조로우며 비생산적인 토목 공사에 노동자들을 이용하자는 의도 뿐이었다. 이 '국민 작업장'이란 바로 영국의 (빈민구제법에 따른) '노역장'이었다. 임시 정부는 이 '국민 작업장'으로 '노동자들 자체에 대항하는 제2의 프롤레타리아 군대'를 편성했다고 믿었다. 노동자들이 기동대를 오판한 것처럼 이번에는 부르주아지가 '국민 작업장'을 오판하였다. 부르주아지는 '폭동을 위한 군대'를 만들어 낸 것이다."
- 칼 마르크스, [1848년에서 1850년까지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1895.


1947년, 알베르 카뮈는 7년여를 준비한 끝에 소설 [페스트]를 발표했다. 14세기부터 17세기까지 유럽 인구를 절반 가까이 줄였다는 '흑사병(黑死病)', '페스트(Pest)'가 1940년대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의 '오랑'이라는 도시에서 창궐한다는 이야기다. 고전 비극의 형식이라는 '5부' 형식인데 1부는 배경, 2부는 전염 초기, 짧은 3부를 중간에 두고 4부의 절정기를 지나 5부의 결말이다. 제목과 달리 소설이 다루는 것은 '페스트(흑사병)'가 아니라 '추상화'된 '재난'이며 이로 인해 폐쇄되고 고립된 도시에서 시민들의 생활을 기록한 '연대기'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 심리의 '추상화'다.


"그렇다. 페스트는 마치 '추상(抽象)'처럼 단조로운 것이었다... '추상'과 싸우기 위해서는 '추상'을 약간은 닮을 필요가 있다."
- [페스트], <2부>, 알베르 카뮈, 1947.


194X년 어느날 아침, 결말에서 '서술자' 자신으로 밝혀지는 의사 베르나르 리유(리외:Rieux)는 죽은 쥐의 사체를 발견한다. 이후 그는 쥐들의 사체와 건물 수위의 죽음을 진단하면서 확신은 없으나 민관회의 자리를 통해 처음으로 '페스트'의 위험을 조심스레 알린다. 공교롭게도 리유가 처음 죽은 쥐를 발견한 날은 하필 4월 16일이다. 70여 년이 지난 2014년 그날 우리 사회에서는 '세월호'가 침몰했다.


"'그래요, 카스텔.' 그(리유)가 말했다. '거의 믿기지 않는 일이오. 그렇지만 이건 페스트인 게 확실한 것 같습니다.'"
- [페스트], <1부>, 알베르 카뮈, 1947.


카뮈의 [페스트]에는 위와 같은 대목이 많다. 예를 들어, '당신에게 '페스트'가 무엇이냐'는 간접적 물음에, "알아요" 먼저 쓰고는 '리유가 말했다'는 서술을 중간에 두고 "끝없는 패배입니다."라고 이어서 쓰는 문장형태인데, 연극배우도 했다는 소설가의 다소 극적인 서술방식일 수도 있겠다.
또 다른 주요인물인 타루를 비롯하여 페스트 혈청을 만들기도 한 카스텔 등 동료 의사들과의 확인을 통해 일련의 죽음의 원인이 '페스트'라는 확진이 내려진 후 도시는 폐쇄조치에 취해지고 철저히 고립된다. 확진자 격리 뿐만 아니라 도시 밖 사람들과는 물론 죽음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생이별'을 해야 하는 오랑 시민들은 처음에는 구체적인 고민들을 하나 '페스트'가 절정에 치달을 수록 '추상(抽象)'과 싸우게 된다. 그들이 싸우는 대상은 '구체적'인 '페스트'를 넘어 '추상화(抽象化)'된 '재난'이 되고, 리유는 이를 "끝없는 패배"로 규정한다. 
전면적인 대규모 '재난'을 당한 인간은 일단 '패배'한다.


"그때, 나는 깨달았습니다. 나야말로 나의 온 힘과 정신을 기울여 바로 그 '페스트'와 싸운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그 오랜 세월 동안 내가 끊임없이 '페스트'를 앓고 있었다는 것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여전히 부끄러웠고, 우리들 모두가 '페스트'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번 이 유행병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있다면 당신들 편에 서서 그 병과 싸워야 한다는 것 뿐입니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본래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되기로 했고 '겸손'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결국... 내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성인(聖人)'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내가 아는 단 하나의 구체적인 문제는 사람은 '신(神) 없이 '성인(聖人)'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 [페스트], <4부(타루의 고백)>, 알베르 카뮈, 1947.


전염병 초반부터 꼼꼼한 기록과 관찰을 해온 동료의사 타루는 4부에서 리유에게 본인의 삶과 생각을 독백처럼 털어놓는데, 그로 인해 두 사람은 '사무'적 관계를 넘어 '우정'을 확인하고 의사의 '특권'을 남용하여 금지된 해수욕을 함께 하면서 잠시 '일탈'을 하기도 한다. 결국 타루도 '페스트'의 희생자가 되는데, 살아남아 '서술자'로 나중에 밝혀지는 주인공 리유는 본인의 아픈 부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과 이별을 겪으며 '끝없이 패배'한다. 

위에서 길게 인용한 '타루의 고백'은, 내가 보기에 소설 [페스트]를 통해 알베르 카뮈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일상과 자신의 충실한 '직무' 과정에서 타인의 삶에는 무관심하며 오히려 타인의 불행을 방조 및 조장을 하기도 한다는 것. 서로가 서로를 '이방인'으로 만드는 우리의 일상이 바로 '페스트' 자체이며, '페스트'든 '코로나'든 아니면, '전쟁'이든 '혁명'이든 이 모든 '재난'은 이를 일깨우기 위해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소환된다는 것이다.
14~17세기 유럽의 '페스트'를 본 당대 사람들이 '신의 분노'를 떠올렸다면, 20세기 프랑스 '무신론자' 알베르 카뮈는 "신(神) 없는 성인(聖人)"을 꿈꾸고 있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1942년 소설 [이방인]의 뫼르소가 아라비아인을 총으로 쏜 이유가 어머니가 죽은 후 내리쬐던 해변가 지루한 햇빛의 재현 때문이었는지, 아라비아인이 꺼내든 것 같은 칼날에 반사된 그 햇빛이었는지 그 아라비아인이 단도를 꺼낸 게 사실이었는지 자체도 모호하지만, 결국 '이방인' 뫼르소는 "내가 사형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증오의 함성으로써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 뿐"이라는 독백으로 '이방인'임을 벗어나고자 했다.
카뮈 번역의 권위자인 옮긴이 김화영 교수의 <작품 해설>에 의하면, 리유가 '페스트'를 "끝없는 패배"로 표현하는 것처럼 [페스트]의 표면에 드러난 '거부'와 '부정'은 인간 삶의 '긍정'이 숨어 있고, '반항'은 결국 '행복에 대한 조바심'이 전제되어 있다고 한다. 실제 44세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카뮈는 수상식장에서 본인은 우선 '부정'을 29세때 소설 [이방인]으로 표현하고자 했고, '긍정'을 34세때 소설 [페스트]로 표현하고자 했다는 소감을 밝혔다고 한다.


"시내에서 올라오는 환희의 외침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리유는 그러한 환희가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 기쁨에 들떠 있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 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 주기 위해서 또 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페스트], <5부>, 알베르 카뮈, 1947.


카뮈가 7년 넘게 '작가 수첩'으로 기록하며 준비했다는 [페스트]의 모티브는 '질병'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사'였다고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방인'인 세상에서 갑자기 닥친 '대참사'의 재난을 맞은 인간들의 군상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글쎄,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이 아니었다면 독자들이 알기 쉽지 않을 정도의 독백체와 무심한 문장으로 가득한 소설은 독자들이 듣든 말든 무시로 서술을 이어가고 작가는 어느 입장도 주장하려 하지 않는다. '서술자'인 리유를 통해 '구체적'인 '페스트'의 '추상화'된 '재난'적 '연대기'를 이어갈 뿐이다.


'성공적인' 코로나 'K-방역'을 보며, 가끔 생각한다. 만일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후 다수 억울한 사람들의 싸움이 없었다면, 무도한 정권을 타도할 수 있었을까. 분노한 다수의 '촛불 항쟁'을 등에 업고 집권한 '민주 정부'가 과연 코로나 '재난'에 맞서 이렇게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 결국 '민주  정부' 지배자들을 눈치보게 하고 움직이도록 것은 다수의 '민주적 위력'이라는 생각 말이다. 
아직까지 진실 규명이 안된 '세월호 참사'를 보며 희생자들의 명복을 다시금 기원한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다르듯, '코로나' 이전과 이후는 다르다고 한다. 이 재난이 지나간 후 대규모 실업과 불황이 예상되기도 하는 지금, 우리 안의 '페스트'인 이 '불평등' 체제의 대대적인 전환 또한 더욱 절실히 기원한다. 

더 이상 일터에서 함부로 쫓겨나거나 죽어 나가지 않고, 다수의 '노동'이 진심으로 존중되는, 뿌리 깊은 차별과 '불평등'을 극복하는 아주 새로운 '포스트 코로나' 체제로의 '대전환'.
이 길이 아니라면, '페스트'든, '코로나'든 '추상화'된 '재난'은 그 어떤 형태로든 여전히, 그리고 끝없이, 반복된다.


***

1. [페스트(La Peste)](1947),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김화영 옮김, <민음사>, 2011.
2. [이방인(L'Etranger)](1942),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박용철 옮김, <덕우출판사>, 1990.
3. [프랑스 혁명사 3부작], <1부.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칼 마르크스(Karl Marx), 임지현/이종훈 옮김, <소나무>,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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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주영아 옮김 / 검은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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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E.D. (Quod Erat Demonstrandum : What Was To be Shown)"
- Ellery Queen, [국명+사물+미스터리] 시리즈, <검은숲>



"살인자는 누구인가?
나는 내 소설에서 독자들이 범죄를 올바로 해결하는데 필요한 사실들을 모두 알게 되는 시점에 이르면 언제나 독자들의 지혜에 도전을 해 왔다.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도 예외는 아니다. 주어진 단서들을 엄밀한 논리와 추리로 분석해보면 지금쯤 범인의 정체를 단순히 추측하는 것이 아니라 '증명'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해답편를 읽어보면 알게 되겠지만 단 하나의 올바른 해결책에는 '만일'이나 '하지만'이란 것이 없다. 논리는 결코 요행을 향해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니, 당신의 올바른 '논증'에 행운이 따르기를 빈다!"
- 엘러리 퀸,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1932), <독자에의 도전>, 주영아 옮김, <검은숲>, 2012.


중학교 시절인 1988년에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동네 형의 어두운 방에서 애거서 크리스티의 장편 추리소설을 우연히 발견한 후, 오락실 갈 용돈을 모아서 추리소설을 사모으던 짧은 시절이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야 든 생각이었는데, 초등학교 때 친구집에서 빌려봤던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 단편집]은 내게 '단편'을 읽는 힘을, 중학교 때 용돈 모아 사들였던 애거서 크리스티 등의 추리소설은 내게 '장편'의 바다에서 헤쳐 나오는 길을 알려줬다. 
당시 서점에 나온 영국 주류의 추리소설들 속에서 미국 추리소설은 양념과도 같았는데 지금은 책들도 사라지고 기억도 희미하지만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은 줄거리는 잊었으되 그 중 제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만은 또렷하다. 
'T'자형 십자가에 머리가 잘린 채 죽은 살인사건을 뒤쫓는 미국 탐정 엘러리 퀸의 모험과 어딘지 기괴한 미국식 삽화와 함께.


소설 속 주인공으로서 '엘러리 퀸(Ellery Queen)'은 1920년대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한 장서가이자 서지학자이며 뉴욕경찰서의 경관인 리처드 퀸의 아들로 여러 살인사건을 그 특유의 '연역적 소거 추리법'의 논리로써 해결한다. 학자로서 학위는 있는지, 경찰도 아니면서 '아빠찬스'로 '특수수사'를 하는 것을 보면 직업이 탐정인지, 그것도 아니면 사건 수사과정을 책으로 출간하는 것을 보아 '작가'인지, 그의 정체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여러 작품을 통해 캐릭터 자체에 모순점들이 보인다고 하는데, 셜록 홈즈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예측할 수 없는 추리소설의 인기로 계속 연작 형태가 이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책이 안 팔리면 주인공 탐정은 그 첫 수사가 마지막 작품이 될 운명일 것이기에.
어쨌든 '탐정' 엘러리 퀸의 추리 기법은 모든 사실과 단서들을 하나도 빠짐 없이 논리적으로 연결시킨 거대한 사고틀에서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용의자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연역적 소거논리'로 대부분 경찰들이 잡아온 단서들을 소파에 앉아 오로지 지식과 두뇌로만 해결하는데, 셜록 홈즈나 미스 마플, 포와로 등도 비슷한 방식일텐데 엘러리 퀸만의 특징은 그만의 '논리'를 엄청나게 수다스러운 현학적 행각을 통해 자랑한다는 것이다.
물론 '연역법'이기에 대전제가 틀리면 전체가 오류가 되기도 함에도 불구하고 엘러리 퀸은 'Q.E.D.(증명 끝.)'를 좋아한다.


"명망 있는 젊은 청년인 (범인)이 위대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일련의 범죄를 저지른 범인으로 판명되었다는 것이 믿기 어려우실지도 모릅니다. 또 그가 어떻게 그리고 왜 그랬는가를 모르면 머리가 아주 혼란스러우실 겁니다. 그러나 (범인)은 저의 '오랜 친구'인, 무자비한 '논리'의 그물에 걸렸습니다. 이 논리는 그리스인들이 숭상하던 로고스이고, 음모를 꾸미는 자들한테는 덫이 되기도 하죠."
- 엘러리 퀸, [그리스 관 미스터리](1932), <34. 핵심>, 김희균 옮김, <검은숲>, 2012.


수시로 라틴어 문구와 베르길리우스의 시구를 인용하고,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처럼 '분명'하다가도 사건이 갈피를 못잡으면 이럴 시간에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나 읽는 게 낫다는 둥 잘난체를 하며, 불어로 중얼거려 경찰들을 짜증나게도 하는 이 현학적 '탐정'은 결국, 친구와 놀러 가거나([로마 모자 미스터리]), 소파에 깊이 앉아서([그리스 관 미스터리]), 고전학 교수와 대화하면서([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연역적 소거법'을 완성해 간다. 모든 사실과 단서들이 열거된 후 '작가' 엘러리 퀸은 독자들에게 '이제 한 번 추리해 보시라' 막간 한 페이지를 던지는데, 매 작품마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독자에의 도전>이다. 잘난 체 하는 주인공이 얄밉기도 하나 숱한 추리소설 중 범인을 맞춘 적이 거의 없기에 나는 '굳이 왜 내가 머리를 쓰나?' 싶어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는 게 편하다.


"... 엘러리가 [로마 모자 미스터리]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이 책은 퀸 부자가 해결한 사건 가운데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흔한 살인 동기나 범죄 수법은 범죄 전문가라면 누구나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몬테 필드 살인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이 사건에서 퀸 부자가 상대한 것은 치밀한 두뇌와 교묘한 술책을 가진 살인자였다... 그러나 이 사건도 다른 '완전 범죄'들과 마찬가지로 허점이 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엘러리의 날카로운 추리에 걸려들어 사건의 전말이 백일하에 드러나 결국 파멸을 맞았던 것이다."
- 엘러리 퀸, [로마 모자 미스터리](1929), <J.J.맥의 '서문'>, 이기원 옮김, <검은숲>, 2011.


한편으로 추리소설 작가로서 '엘러리 퀸'은 한 사람이 아니라, 만프레드 리(Manfred Lee)와 프레더릭 다네이(Frederic Dannay)라는 유태계 미국인 사촌형제의 필명이다. 뉴욕 출신으로 각각 영화사와 광고사에서 근무하던 이들은 당시 영국 추리소설의 아성에 도전하던 미국의 미스터리 바람을 타고 직장까지 때려치우며 미스터리 작가의 길을 가고자 했으나 하필 때는 1929년이었다. 
그들의 첫 작품인 [로마 모자 미스터리]가 공모작에 당선되기도 전 출판사가 파산하고 대공황의 경제 위기 속에서 이들 형제는 직장일과 미스터리 집필 작업을 병행하기로 하는데 다행히 책이 인기를 끌면서 전업작가 및 '미스터리 전문가'로 성공하게 된다. 책이 안 팔렸다면 아마도 대공황으로 직장도 잃고 작가로서도 어찌 되었을지 알 수 없다. 아무튼 '미스터리 전문' 작가 '엘러리 퀸'의 명성은 현재까지도 '미국미스터리작가협회'를 이끌면서 건재하다고 하는데, 20세기 후반 일본의 추리소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봐, 퀸 군. 자넨 정말 바보짓을 했네.'
그가 진지하게 말했다.
엘러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타우(그리스 알파벳 19번째, 영어의 'T'에 해당) 십자가가 이집트 십자가가 아니란 말씀인가요?'
'바로 그걸세.'
...
'크룩스 코미사(crux commissa)가 이집트 십자가로 불린다는 생각은 어디서 나온건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요... 그런데 왜 타우가 이집트 십자가가 아니라고 말씀을...'
'이집트 십자가가 아니니까.'
야들리가 미소를 지었다.
'고대 이집트인이 사용하던 신성한 도구들 중에 그리스어 T와 닮은 모양을 한 게 있다네. 상형문자로 된 문헌에 자주 나타나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오래된 기독교 신앙인 타우 십자가가 되는 건 아니지...'
'그렇다면 T형 십자가는 이집트 십자가가 결코 아니군요. 맙소사, 큰 실수를 했군.'
엘러리가 투덜거렸다.
...
교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자네가 굳이 확대 해석해서 이집트 십자가로 부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앙크(ankh)일세... 보통 크룩스 안사타(crux ansata)라고 불리는데, 이집트 비문에 아주 자주 등장하지. 이것은 신성성이나 왕권을 의미하며, 이는 곧 '생명의 근원'을 소유한 자로 치환할 수 있지.'
- 엘러리 퀸,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1932), <2-12. 교수가 말하기를>, 주영아 옮김, <검은숲>, 2012.


중학교 2학년 때 역시 <해문출판사>에서 나온 청소년용 '팬더시리즈'인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을 읽었을 때, 시체의 목을 잘라 T자 십자가형을 집행한 살인자의 엽기적 행각은 물론 왠지 이교도적인 '이집트 십자가'의 신비로움에 한창 빠져 지낸 기억은 무의식 속에 남았겠으나 주인공 엘러리 퀸이나 주요 내용은 전혀 기억에 없었다. 
한참 지난 후 우연히 애거서 크리스티를 회상하던 중 중학 시절 한창 빠졌던 <해문출판사> 추리소설판을 검색하다가 기억 저편에서 소환한 엘러리 퀸에 이끌려 [국적+사물+미스터리] 시리즈를 몇 권 사서 출퇴근길 전철간에서 다시 읽었다.
현학적인 말장난, 국적과 사물에 입혀진 신비주의, 비상한 두뇌로만 가능한 기억력과 기막힌 논리로 완성되는 미스터리 소설의 고전.
덕분에 회사로 출퇴근하던 중년의 노동자는 그때만은 잠시 80년대 까까머리 중학생이 되곤 했다.


아마도 잘난 척과 오류가 엇갈리는 '연역논리'의 탐정 엘러리 퀸 '1기'에 해당하는 대공황 시기 [국적+사물+미스터리] 시리즈 작명의 일관성을 지키기 위함이었겠으나,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비밀)]는 정작 '이집트 십자가'와 무관하다. 미국의 시골 아로요에서 발생한 크리스마스 '타우' 십자가형과 곳곳에 배치된 문자 'T', 그리고 등장하는 '이집트 태양신'을 자칭하는 미치광이 등의 인물들을 보며 엘러리 퀸이 '타우 십자가 = 이집트 십자가'라는 상징적 전제를 연역적으로 상정한 우연한 실수에서 유래한 제목이다. 


단순한 살인사건 추적을 넘어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고전으로서의 엘러리 퀸과 함께 한 짧은 시간이 아쉬워 작가 '엘러리 퀸'의 'X-Y-Z 비극 시리즈'를 다시 주문하고 말았는데,
엘러리 퀸을 읽는 시간은 그들의 작품이 백년이 지난 지금도 '미스터리' 소설의 '고전'임이 논리적으로 '증명(Q.E.D)'되는 또 하나의 과정은 아닐런지.

"Q.E.D. (Quod Erat Demonstrandum : What Was To be Shown : 이것으로 증명 끝.)!"


***

1.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1932), 엘러리 퀸, 주영아 옮김, <검은숲>, 2012. (그리고 1980년대 <해문출판사>판.)
2. [그리스 관 미스터리](1932), 엘러리 퀸, 김희균 옮김, <검은숲>, 2012.
3. [로마 모자 미스터리](1929), 엘러리 퀸, 이기원 옮김, <검은숲>, 2011.
4. [프랑스 파우더 미스터리](1929), 엘러리 퀸, 이제중 옮김, <검은숲>, 2011.
5.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1931), 엘러리 퀸, 정영목 옮김, <검은숲>, 2011.
6. [미국 총 미스터리](1933), 엘러리 퀸, 김예진 옮김, <검은숲>,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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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관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김희균 옮김 / 검은숲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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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E.D. (Quod Erat Demonstrandum : What Was To be Shown)"
- Ellery Queen, [국명+사물+미스터리] 시리즈, <검은숲>



"살인자는 누구인가?
나는 내 소설에서 독자들이 범죄를 올바로 해결하는데 필요한 사실들을 모두 알게 되는 시점에 이르면 언제나 독자들의 지혜에 도전을 해 왔다.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도 예외는 아니다. 주어진 단서들을 엄밀한 논리와 추리로 분석해보면 지금쯤 범인의 정체를 단순히 추측하는 것이 아니라 '증명'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해답편를 읽어보면 알게 되겠지만 단 하나의 올바른 해결책에는 '만일'이나 '하지만'이란 것이 없다. 논리는 결코 요행을 향해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니, 당신의 올바른 '논증'에 행운이 따르기를 빈다!"
- 엘러리 퀸,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1932), <독자에의 도전>, 주영아 옮김, <검은숲>, 2012.


중학교 시절인 1988년에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동네 형의 어두운 방에서 애거서 크리스티의 장편 추리소설을 우연히 발견한 후, 오락실 갈 용돈을 모아서 추리소설을 사모으던 짧은 시절이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야 든 생각이었는데, 초등학교 때 친구집에서 빌려봤던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 단편집]은 내게 '단편'을 읽는 힘을, 중학교 때 용돈 모아 사들였던 애거서 크리스티 등의 추리소설은 내게 '장편'의 바다에서 헤쳐 나오는 길을 알려줬다. 
당시 서점에 나온 영국 주류의 추리소설들 속에서 미국 추리소설은 양념과도 같았는데 지금은 책들도 사라지고 기억도 희미하지만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은 줄거리는 잊었으되 그 중 제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만은 또렷하다. 
'T'자형 십자가에 머리가 잘린 채 죽은 살인사건을 뒤쫓는 미국 탐정 엘러리 퀸의 모험과 어딘지 기괴한 미국식 삽화와 함께.


소설 속 주인공으로서 '엘러리 퀸(Ellery Queen)'은 1920년대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한 장서가이자 서지학자이며 뉴욕경찰서의 경관인 리처드 퀸의 아들로 여러 살인사건을 그 특유의 '연역적 소거 추리법'의 논리로써 해결한다. 학자로서 학위는 있는지, 경찰도 아니면서 '아빠찬스'로 '특수수사'를 하는 것을 보면 직업이 탐정인지, 그것도 아니면 사건 수사과정을 책으로 출간하는 것을 보아 '작가'인지, 그의 정체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여러 작품을 통해 캐릭터 자체에 모순점들이 보인다고 하는데, 셜록 홈즈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예측할 수 없는 추리소설의 인기로 계속 연작 형태가 이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책이 안 팔리면 주인공 탐정은 그 첫 수사가 마지막 작품이 될 운명일 것이기에.
어쨌든 '탐정' 엘러리 퀸의 추리 기법은 모든 사실과 단서들을 하나도 빠짐 없이 논리적으로 연결시킨 거대한 사고틀에서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용의자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연역적 소거논리'로 대부분 경찰들이 잡아온 단서들을 소파에 앉아 오로지 지식과 두뇌로만 해결하는데, 셜록 홈즈나 미스 마플, 포와로 등도 비슷한 방식일텐데 엘러리 퀸만의 특징은 그만의 '논리'를 엄청나게 수다스러운 현학적 행각을 통해 자랑한다는 것이다.
물론 '연역법'이기에 대전제가 틀리면 전체가 오류가 되기도 함에도 불구하고 엘러리 퀸은 'Q.E.D.(증명 끝.)'를 좋아한다.


"명망 있는 젊은 청년인 (범인)이 위대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일련의 범죄를 저지른 범인으로 판명되었다는 것이 믿기 어려우실지도 모릅니다. 또 그가 어떻게 그리고 왜 그랬는가를 모르면 머리가 아주 혼란스러우실 겁니다. 그러나 (범인)은 저의 '오랜 친구'인, 무자비한 '논리'의 그물에 걸렸습니다. 이 논리는 그리스인들이 숭상하던 로고스이고, 음모를 꾸미는 자들한테는 덫이 되기도 하죠."
- 엘러리 퀸, [그리스 관 미스터리](1932), <34. 핵심>, 김희균 옮김, <검은숲>, 2012.


수시로 라틴어 문구와 베르길리우스의 시구를 인용하고,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처럼 '분명'하다가도 사건이 갈피를 못잡으면 이럴 시간에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나 읽는 게 낫다는 둥 잘난체를 하며, 불어로 중얼거려 경찰들을 짜증나게도 하는 이 현학적 '탐정'은 결국, 친구와 놀러 가거나([로마 모자 미스터리]), 소파에 깊이 앉아서([그리스 관 미스터리]), 고전학 교수와 대화하면서([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연역적 소거법'을 완성해 간다. 모든 사실과 단서들이 열거된 후 '작가' 엘러리 퀸은 독자들에게 '이제 한 번 추리해 보시라' 막간 한 페이지를 던지는데, 매 작품마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독자에의 도전>이다. 잘난 체 하는 주인공이 얄밉기도 하나 숱한 추리소설 중 범인을 맞춘 적이 거의 없기에 나는 '굳이 왜 내가 머리를 쓰나?' 싶어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는 게 편하다.


"... 엘러리가 [로마 모자 미스터리]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이 책은 퀸 부자가 해결한 사건 가운데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흔한 살인 동기나 범죄 수법은 범죄 전문가라면 누구나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몬테 필드 살인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이 사건에서 퀸 부자가 상대한 것은 치밀한 두뇌와 교묘한 술책을 가진 살인자였다... 그러나 이 사건도 다른 '완전 범죄'들과 마찬가지로 허점이 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엘러리의 날카로운 추리에 걸려들어 사건의 전말이 백일하에 드러나 결국 파멸을 맞았던 것이다."
- 엘러리 퀸, [로마 모자 미스터리](1929), <J.J.맥의 '서문'>, 이기원 옮김, <검은숲>, 2011.


한편으로 추리소설 작가로서 '엘러리 퀸'은 한 사람이 아니라, 만프레드 리(Manfred Lee)와 프레더릭 다네이(Frederic Dannay)라는 유태계 미국인 사촌형제의 필명이다. 뉴욕 출신으로 각각 영화사와 광고사에서 근무하던 이들은 당시 영국 추리소설의 아성에 도전하던 미국의 미스터리 바람을 타고 직장까지 때려치우며 미스터리 작가의 길을 가고자 했으나 하필 때는 1929년이었다. 
그들의 첫 작품인 [로마 모자 미스터리]가 공모작에 당선되기도 전 출판사가 파산하고 대공황의 경제 위기 속에서 이들 형제는 직장일과 미스터리 집필 작업을 병행하기로 하는데 다행히 책이 인기를 끌면서 전업작가 및 '미스터리 전문가'로 성공하게 된다. 책이 안 팔렸다면 아마도 대공황으로 직장도 잃고 작가로서도 어찌 되었을지 알 수 없다. 아무튼 '미스터리 전문' 작가 '엘러리 퀸'의 명성은 현재까지도 '미국미스터리작가협회'를 이끌면서 건재하다고 하는데, 20세기 후반 일본의 추리소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봐, 퀸 군. 자넨 정말 바보짓을 했네.'
그가 진지하게 말했다.
엘러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타우(그리스 알파벳 19번째, 영어의 'T'에 해당) 십자가가 이집트 십자가가 아니란 말씀인가요?'
'바로 그걸세.'
...
'크룩스 코미사(crux commissa)가 이집트 십자가로 불린다는 생각은 어디서 나온건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요... 그런데 왜 타우가 이집트 십자가가 아니라고 말씀을...'
'이집트 십자가가 아니니까.'
야들리가 미소를 지었다.
'고대 이집트인이 사용하던 신성한 도구들 중에 그리스어 T와 닮은 모양을 한 게 있다네. 상형문자로 된 문헌에 자주 나타나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오래된 기독교 신앙인 타우 십자가가 되는 건 아니지...'
'그렇다면 T형 십자가는 이집트 십자가가 결코 아니군요. 맙소사, 큰 실수를 했군.'
엘러리가 투덜거렸다.
...
교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자네가 굳이 확대 해석해서 이집트 십자가로 부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앙크(ankh)일세... 보통 크룩스 안사타(crux ansata)라고 불리는데, 이집트 비문에 아주 자주 등장하지. 이것은 신성성이나 왕권을 의미하며, 이는 곧 '생명의 근원'을 소유한 자로 치환할 수 있지.'
- 엘러리 퀸,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1932), <2-12. 교수가 말하기를>, 주영아 옮김, <검은숲>, 2012.


중학교 2학년 때 역시 <해문출판사>에서 나온 청소년용 '팬더시리즈'인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을 읽었을 때, 시체의 목을 잘라 T자 십자가형을 집행한 살인자의 엽기적 행각은 물론 왠지 이교도적인 '이집트 십자가'의 신비로움에 한창 빠져 지낸 기억은 무의식 속에 남았겠으나 주인공 엘러리 퀸이나 주요 내용은 전혀 기억에 없었다. 
한참 지난 후 우연히 애거서 크리스티를 회상하던 중 중학 시절 한창 빠졌던 <해문출판사> 추리소설판을 검색하다가 기억 저편에서 소환한 엘러리 퀸에 이끌려 [국적+사물+미스터리] 시리즈를 몇 권 사서 출퇴근길 전철간에서 다시 읽었다.
현학적인 말장난, 국적과 사물에 입혀진 신비주의, 비상한 두뇌로만 가능한 기억력과 기막힌 논리로 완성되는 미스터리 소설의 고전.
덕분에 회사로 출퇴근하던 중년의 노동자는 그때만은 잠시 80년대 까까머리 중학생이 되곤 했다.


아마도 잘난 척과 오류가 엇갈리는 '연역논리'의 탐정 엘러리 퀸 '1기'에 해당하는 대공황 시기 [국적+사물+미스터리] 시리즈 작명의 일관성을 지키기 위함이었겠으나,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비밀)]는 정작 '이집트 십자가'와 무관하다. 미국의 시골 아로요에서 발생한 크리스마스 '타우' 십자가형과 곳곳에 배치된 문자 'T', 그리고 등장하는 '이집트 태양신'을 자칭하는 미치광이 등의 인물들을 보며 엘러리 퀸이 '타우 십자가 = 이집트 십자가'라는 상징적 전제를 연역적으로 상정한 우연한 실수에서 유래한 제목이다. 


단순한 살인사건 추적을 넘어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고전으로서의 엘러리 퀸과 함께 한 짧은 시간이 아쉬워 작가 '엘러리 퀸'의 'X-Y-Z 비극 시리즈'를 다시 주문하고 말았는데,
엘러리 퀸을 읽는 시간은 그들의 작품이 백년이 지난 지금도 '미스터리' 소설의 '고전'임이 논리적으로 '증명(Q.E.D)'되는 또 하나의 과정은 아닐런지.

"Q.E.D. (Quod Erat Demonstrandum : What Was To be Shown : 이것으로 증명 끝.)!"


***

1.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1932), 엘러리 퀸, 주영아 옮김, <검은숲>, 2012. (그리고 1980년대 <해문출판사>판.)
2. [그리스 관 미스터리](1932), 엘러리 퀸, 김희균 옮김, <검은숲>, 2012.
3. [로마 모자 미스터리](1929), 엘러리 퀸, 이기원 옮김, <검은숲>, 2011.
4. [프랑스 파우더 미스터리](1929), 엘러리 퀸, 이제중 옮김, <검은숲>, 2011.
5.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1931), 엘러리 퀸, 정영목 옮김, <검은숲>, 2011.
6. [미국 총 미스터리](1933), 엘러리 퀸, 김예진 옮김, <검은숲>,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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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모자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이기원 옮김 / 검은숲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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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E.D. (Quod Erat Demonstrandum : What Was To be Shown)"
- Ellery Queen, [국명+사물+미스터리] 시리즈, <검은숲>



"살인자는 누구인가?
나는 내 소설에서 독자들이 범죄를 올바로 해결하는데 필요한 사실들을 모두 알게 되는 시점에 이르면 언제나 독자들의 지혜에 도전을 해 왔다.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도 예외는 아니다. 주어진 단서들을 엄밀한 논리와 추리로 분석해보면 지금쯤 범인의 정체를 단순히 추측하는 것이 아니라 '증명'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해답편를 읽어보면 알게 되겠지만 단 하나의 올바른 해결책에는 '만일'이나 '하지만'이란 것이 없다. 논리는 결코 요행을 향해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니, 당신의 올바른 '논증'에 행운이 따르기를 빈다!"
- 엘러리 퀸,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1932), <독자에의 도전>, 주영아 옮김, <검은숲>, 2012.


중학교 시절인 1988년에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동네 형의 어두운 방에서 애거서 크리스티의 장편 추리소설을 우연히 발견한 후, 오락실 갈 용돈을 모아서 추리소설을 사모으던 짧은 시절이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야 든 생각이었는데, 초등학교 때 친구집에서 빌려봤던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 단편집]은 내게 '단편'을 읽는 힘을, 중학교 때 용돈 모아 사들였던 애거서 크리스티 등의 추리소설은 내게 '장편'의 바다에서 헤쳐 나오는 길을 알려줬다. 
당시 서점에 나온 영국 주류의 추리소설들 속에서 미국 추리소설은 양념과도 같았는데 지금은 책들도 사라지고 기억도 희미하지만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은 줄거리는 잊었으되 그 중 제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만은 또렷하다. 
'T'자형 십자가에 머리가 잘린 채 죽은 살인사건을 뒤쫓는 미국 탐정 엘러리 퀸의 모험과 어딘지 기괴한 미국식 삽화와 함께.


소설 속 주인공으로서 '엘러리 퀸(Ellery Queen)'은 1920년대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한 장서가이자 서지학자이며 뉴욕경찰서의 경관인 리처드 퀸의 아들로 여러 살인사건을 그 특유의 '연역적 소거 추리법'의 논리로써 해결한다. 학자로서 학위는 있는지, 경찰도 아니면서 '아빠찬스'로 '특수수사'를 하는 것을 보면 직업이 탐정인지, 그것도 아니면 사건 수사과정을 책으로 출간하는 것을 보아 '작가'인지, 그의 정체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여러 작품을 통해 캐릭터 자체에 모순점들이 보인다고 하는데, 셜록 홈즈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예측할 수 없는 추리소설의 인기로 계속 연작 형태가 이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책이 안 팔리면 주인공 탐정은 그 첫 수사가 마지막 작품이 될 운명일 것이기에.
어쨌든 '탐정' 엘러리 퀸의 추리 기법은 모든 사실과 단서들을 하나도 빠짐 없이 논리적으로 연결시킨 거대한 사고틀에서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용의자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연역적 소거논리'로 대부분 경찰들이 잡아온 단서들을 소파에 앉아 오로지 지식과 두뇌로만 해결하는데, 셜록 홈즈나 미스 마플, 포와로 등도 비슷한 방식일텐데 엘러리 퀸만의 특징은 그만의 '논리'를 엄청나게 수다스러운 현학적 행각을 통해 자랑한다는 것이다.
물론 '연역법'이기에 대전제가 틀리면 전체가 오류가 되기도 함에도 불구하고 엘러리 퀸은 'Q.E.D.(증명 끝.)'를 좋아한다.


"명망 있는 젊은 청년인 (범인)이 위대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일련의 범죄를 저지른 범인으로 판명되었다는 것이 믿기 어려우실지도 모릅니다. 또 그가 어떻게 그리고 왜 그랬는가를 모르면 머리가 아주 혼란스러우실 겁니다. 그러나 (범인)은 저의 '오랜 친구'인, 무자비한 '논리'의 그물에 걸렸습니다. 이 논리는 그리스인들이 숭상하던 로고스이고, 음모를 꾸미는 자들한테는 덫이 되기도 하죠."
- 엘러리 퀸, [그리스 관 미스터리](1932), <34. 핵심>, 김희균 옮김, <검은숲>, 2012.


수시로 라틴어 문구와 베르길리우스의 시구를 인용하고,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처럼 '분명'하다가도 사건이 갈피를 못잡으면 이럴 시간에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나 읽는 게 낫다는 둥 잘난체를 하며, 불어로 중얼거려 경찰들을 짜증나게도 하는 이 현학적 '탐정'은 결국, 친구와 놀러 가거나([로마 모자 미스터리]), 소파에 깊이 앉아서([그리스 관 미스터리]), 고전학 교수와 대화하면서([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연역적 소거법'을 완성해 간다. 모든 사실과 단서들이 열거된 후 '작가' 엘러리 퀸은 독자들에게 '이제 한 번 추리해 보시라' 막간 한 페이지를 던지는데, 매 작품마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독자에의 도전>이다. 잘난 체 하는 주인공이 얄밉기도 하나 숱한 추리소설 중 범인을 맞춘 적이 거의 없기에 나는 '굳이 왜 내가 머리를 쓰나?' 싶어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는 게 편하다.


"... 엘러리가 [로마 모자 미스터리]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이 책은 퀸 부자가 해결한 사건 가운데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흔한 살인 동기나 범죄 수법은 범죄 전문가라면 누구나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몬테 필드 살인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이 사건에서 퀸 부자가 상대한 것은 치밀한 두뇌와 교묘한 술책을 가진 살인자였다... 그러나 이 사건도 다른 '완전 범죄'들과 마찬가지로 허점이 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엘러리의 날카로운 추리에 걸려들어 사건의 전말이 백일하에 드러나 결국 파멸을 맞았던 것이다."
- 엘러리 퀸, [로마 모자 미스터리](1929), <J.J.맥의 '서문'>, 이기원 옮김, <검은숲>, 2011.


한편으로 추리소설 작가로서 '엘러리 퀸'은 한 사람이 아니라, 만프레드 리(Manfred Lee)와 프레더릭 다네이(Frederic Dannay)라는 유태계 미국인 사촌형제의 필명이다. 뉴욕 출신으로 각각 영화사와 광고사에서 근무하던 이들은 당시 영국 추리소설의 아성에 도전하던 미국의 미스터리 바람을 타고 직장까지 때려치우며 미스터리 작가의 길을 가고자 했으나 하필 때는 1929년이었다. 
그들의 첫 작품인 [로마 모자 미스터리]가 공모작에 당선되기도 전 출판사가 파산하고 대공황의 경제 위기 속에서 이들 형제는 직장일과 미스터리 집필 작업을 병행하기로 하는데 다행히 책이 인기를 끌면서 전업작가 및 '미스터리 전문가'로 성공하게 된다. 책이 안 팔렸다면 아마도 대공황으로 직장도 잃고 작가로서도 어찌 되었을지 알 수 없다. 아무튼 '미스터리 전문' 작가 '엘러리 퀸'의 명성은 현재까지도 '미국미스터리작가협회'를 이끌면서 건재하다고 하는데, 20세기 후반 일본의 추리소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봐, 퀸 군. 자넨 정말 바보짓을 했네.'
그가 진지하게 말했다.
엘러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타우(그리스 알파벳 19번째, 영어의 'T'에 해당) 십자가가 이집트 십자가가 아니란 말씀인가요?'
'바로 그걸세.'
...
'크룩스 코미사(crux commissa)가 이집트 십자가로 불린다는 생각은 어디서 나온건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요... 그런데 왜 타우가 이집트 십자가가 아니라고 말씀을...'
'이집트 십자가가 아니니까.'
야들리가 미소를 지었다.
'고대 이집트인이 사용하던 신성한 도구들 중에 그리스어 T와 닮은 모양을 한 게 있다네. 상형문자로 된 문헌에 자주 나타나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오래된 기독교 신앙인 타우 십자가가 되는 건 아니지...'
'그렇다면 T형 십자가는 이집트 십자가가 결코 아니군요. 맙소사, 큰 실수를 했군.'
엘러리가 투덜거렸다.
...
교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자네가 굳이 확대 해석해서 이집트 십자가로 부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앙크(ankh)일세... 보통 크룩스 안사타(crux ansata)라고 불리는데, 이집트 비문에 아주 자주 등장하지. 이것은 신성성이나 왕권을 의미하며, 이는 곧 '생명의 근원'을 소유한 자로 치환할 수 있지.'
- 엘러리 퀸,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1932), <2-12. 교수가 말하기를>, 주영아 옮김, <검은숲>, 2012.


중학교 2학년 때 역시 <해문출판사>에서 나온 청소년용 '팬더시리즈'인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을 읽었을 때, 시체의 목을 잘라 T자 십자가형을 집행한 살인자의 엽기적 행각은 물론 왠지 이교도적인 '이집트 십자가'의 신비로움에 한창 빠져 지낸 기억은 무의식 속에 남았겠으나 주인공 엘러리 퀸이나 주요 내용은 전혀 기억에 없었다. 
한참 지난 후 우연히 애거서 크리스티를 회상하던 중 중학 시절 한창 빠졌던 <해문출판사> 추리소설판을 검색하다가 기억 저편에서 소환한 엘러리 퀸에 이끌려 [국적+사물+미스터리] 시리즈를 몇 권 사서 출퇴근길 전철간에서 다시 읽었다.
현학적인 말장난, 국적과 사물에 입혀진 신비주의, 비상한 두뇌로만 가능한 기억력과 기막힌 논리로 완성되는 미스터리 소설의 고전.
덕분에 회사로 출퇴근하던 중년의 노동자는 그때만은 잠시 80년대 까까머리 중학생이 되곤 했다.


아마도 잘난 척과 오류가 엇갈리는 '연역논리'의 탐정 엘러리 퀸 '1기'에 해당하는 대공황 시기 [국적+사물+미스터리] 시리즈 작명의 일관성을 지키기 위함이었겠으나,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비밀)]는 정작 '이집트 십자가'와 무관하다. 미국의 시골 아로요에서 발생한 크리스마스 '타우' 십자가형과 곳곳에 배치된 문자 'T', 그리고 등장하는 '이집트 태양신'을 자칭하는 미치광이 등의 인물들을 보며 엘러리 퀸이 '타우 십자가 = 이집트 십자가'라는 상징적 전제를 연역적으로 상정한 우연한 실수에서 유래한 제목이다. 


단순한 살인사건 추적을 넘어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고전으로서의 엘러리 퀸과 함께 한 짧은 시간이 아쉬워 작가 '엘러리 퀸'의 'X-Y-Z 비극 시리즈'를 다시 주문하고 말았는데,
엘러리 퀸을 읽는 시간은 그들의 작품이 백년이 지난 지금도 '미스터리' 소설의 '고전'임이 논리적으로 '증명(Q.E.D)'되는 또 하나의 과정은 아닐런지.

"Q.E.D. (Quod Erat Demonstrandum : What Was To be Shown : 이것으로 증명 끝.)!"


***

1.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1932), 엘러리 퀸, 주영아 옮김, <검은숲>, 2012. (그리고 1980년대 <해문출판사>판.)
2. [그리스 관 미스터리](1932), 엘러리 퀸, 김희균 옮김, <검은숲>, 2012.
3. [로마 모자 미스터리](1929), 엘러리 퀸, 이기원 옮김, <검은숲>, 2011.
4. [프랑스 파우더 미스터리](1929), 엘러리 퀸, 이제중 옮김, <검은숲>, 2011.
5.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1931), 엘러리 퀸, 정영목 옮김, <검은숲>, 2011.
6. [미국 총 미스터리](1933), 엘러리 퀸, 김예진 옮김, <검은숲>,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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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 진달래 - 제13회 전태일문학상 특별상 수상작
노회찬 지음 / 사회평론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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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들은 '이익'을 지키고, 군자는 '명예'를 지킨다.
- 노회찬, [힘내라, 진달래](2004), [우리가 꿈꾸는 나라](2018)





"... 정책을 인물보다 앞세우는 일은 시련의 연속이다. 정책으로 인격화되지 않는 인물은 정치적 동물일 뿐이라는 사실. 정책이 인물보다 더 감동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이번 총선의 전투지침이다. 
모든 전투는 시련이다."
- 노회찬, [힘내라, 진달래], '1.22. 일지', <사회평론>, 2004.


2004년 2월부터 시작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정국' 속에서 그 해 4월 15일에는 17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299명 국회의원 중 신자유주의 '개혁'을 하려던 열린우리당이 152석, 그냥 수구세력 한나라당이 121석, 민주당과 자민련은 9석과 4석으로 찌그러졌고,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부유세' 등의 보편복지 정책과 1인2표 '정당식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 선거제도 개혁투쟁을 했던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차지하면서 4.19 혁명 이후 44년만에 '진보정당'이 국회에 들어간 첫 선거였다.

1992년 민중당의 실패 후에도 지침없이 '진보정당' 건설운동에 매진했던 '진보정치인' 노회찬 선생은 1997년 말 IMF체제와 함께 치러진 대선에서 '96년 총파업을 이끌었던 민주노총 권영길 위원장을 대선후보로 한 '국민승리21'의 중심에 있었고, 역시 2000년 초 창당된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 민주노동당의 사무총장, 선대본부장으로 2004년 총선을 치른다. 이 해 1월부터 3월 말까지의 기록이 '총선 난중일기'라 불리는 [힘내라, 진달래]다. 

노회찬이 앞장선 민주노동당의 첫 총선에서 전국 각 지구당의 수많은 지역구 후보들과 당원들은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부유세' 등 우리 사회 전례없던 보편복지 정책을 홍보하는 인간피켓이 되고 인간플래카드를 자처하며 이러한 의제들을 전사회적으로 공론화했다. 이러한 '진보정당' 운동은 노회찬의 표현에 따라 "삼겹살 판을 갈기 위해" 그 진보정당이 국회에 들어간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념정당'이냐 '대중정당'이냐, '대중투쟁'이냐 '의회주의'냐, '혁명'이냐 '개혁'이냐 등등의 어려운 논쟁 속에서 '진보정당'이 몇 차례 부침을 겪으며 '의회' 중심의 '개혁'적 '대중정당'으로 자리잡는 과정에서, 당시 지구당의 후보들이었던 수많은 '소대장'들도 스러져 갔다. 함께 했던 '소총수' 당원들은 얼마나 남았을까 싶지만, "흐르는 물처럼 한 사람이 가고 한 사람이 태어난다('2004.1.16. 일지')"는 노회찬 총장의 말처럼 '진보정당'도 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도 어제의 그들과 같을 수는 없을 터. 
흐르는 물처럼 "모든 사물은 변화한다. 변증법 제1조 1항이다.('2004.2.10. 일지')"


"라디오 토론이니 점잖게 진행될 줄 알았는데 시작부터 난투극이다. 5분도 채 되지 않아 서로 사과하라고 언성 높인다. 국민들 앞에 고개들 처지도 아닌데 희대의 영웅처럼 큰소리다. CBS의 좁은 스튜디오가 동물원 우리처럼 느껴진다.
이러니 점잖고, 상식적이고, 순박한 사람들은 정치권을 꺼려하지 않았는가. 그 정치권에 이제 민주노동당이 들어간다. 타잔이 되어야만 이 동물들을 다룰 수 있다."
- 노회찬, [힘내라, 진달래], '3.3. 일지', <사회평론>, 2004.


후보와 이미지, 지역과 학연을 내세운 기존 정치와 선거에 맞서 보편복지 '정책'을 앞세운 '진보정치'가 노회찬을 비롯한 수많은 진보정당 지지자들의 숙원이었다. 
"정책으로 인격화되지 않는 인물은 정치적 동물일 뿐이라는 사실. 정책이 인물보다 더 감동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2004.1.22. 일지')"이라 상정한 17대 총선의 '전투지침'은 앞으로도 변함없는 '진보정당'의 선거지침이다.
'진보정치인' 노회찬은 갔어도 그의 '진보정치 지침'은 올곧게 남았다.


"여의도 나들목 부근은 어느새 밀려온 봄꽃 천지다. 개나리가 듬뿍 피어 있고 벌써 곳곳에서 진달래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3월 28일 아침 여의도. 노란 개나리와 연분홍 진달래꽃이 지금의 열우당과 민주노동당 지지율만큼 상륙해 있다.
힘내라, 진달래. 가슴도 눈시울도 연분홍이다."
- 노회찬, [힘내라, 진달래], 3.28. 일지', <사회평론>, 2004.


'총선 난중일기' [힘내라, 진달래]는 본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전인 3월말에 끝나고 본 선거운동인 4월의 메모는 손질된 글로 나오지는 않았다. 그 해 총선 후 10월 이 기록들은 [힘내라, 진달래]라는 제목으로 "전태일 영전에 바친다"는 '서문'과 함께 출간되었고 13회 '전태일문학상' 특별상을 수상한다.

봄이 와서 노란 개나리가 흐드려지고 조금 늦은 연분홍 진달래가 꽃판을 조금씩 점령하고 물들여가는 상상. 기존 정치판에서 '진보정당'의 미래에 대한 '진보정치인' 노회찬의 바램이었다. 
"힘내라, 진달래!"



"촛불의 가장 큰 의의는 무엇일까요? 잘못한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감옥으로 보낸 것일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정권 교체를 총칼을 든 군인이 아닌, 촛불을 든 시민들이 민주주의 절차를 지키며 이뤄냈다는 점입니다.
민주주의는 시스템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생업 또는 하고 싶은 일에 전념해도 시스템이 잘 작동하면 나라가 문제없이 운영될 수 있습니다... 촛불이 일어난 것은... 시스템이 망가졌기 때문입니다... 모여서 무엇을 했습니까?... 계속 외쳤습니다. 시스템을 복구하라고 말입니다... 언제든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마음속의 촛불을 꺼내들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촛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촛불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공정, 평등, 평화를 사회에 정착시키는 중요한 과제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1987년에 미처 이뤄내지 못했던 일들이지요. 그리고 그 과제들을 풀기 위해 정치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치를 바로 세우기 위해 가장 중요하며 필요한 일은 무엇일까요? 역시 촛불의 경험이 알려주지요. 국민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 노회찬, [우리가 꿈꾸는 나라], '참여가 세상을 바꾼다', <창비>, 2018.


내가 유일하게 존경한 '진보정치인' 노회찬 의원이 돌아가시기 전인 2018년 초, <창비>에서 주최한 특강 녹취록을 엮어 그가 운명을 달리한 후인 그 해 9월에 출간된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그의 마지막 '유작'이 되었다.

1987년 이후 체제는 거리에 모인 민중의 힘으로 '민족', '민중', '민주'를 쟁취했다. 
노회찬은 2016~2017년 '촛불항쟁' 이후 우리 사회의 과제는 '공정', '평등', '평화'를 사회에 정착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국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시스템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운영원리이며, 이러한 민의가 제대로 의회에 반영되는 정치제도와 선거제도 개혁이 그의 유일한 '정치노선'이었다. '대중투쟁'이냐 '의회주의'냐, '혁명'이냐 '개혁'이냐 등의 논쟁에 대하여 그가 일생의 고단한 삶을 통해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제시한 답변이었다.

'혁명'은 체제를 뒤집는 것을 이르는데, '촛불'이 '혁명'이 아니라 '항쟁'이었던 이유는 '촛불'이 '체제변혁'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의 상식적인 '복구'를 요구하고 이룬 것이기 때문이다.
'촛불'이 '혁명'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치개혁과 선거제도 개혁을 담은 새로운 헌법개정으로 '제7공화국' 체제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 '진보정치인' 노회찬의 역설한 [우리가 꿈꾸는 나라]다.



그는 '작가'는 아니었고 '정치인'이다 보니 '글'보다는 '촌철살인'의 '말'이 더 유명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멀리서나마 보아온 그의 '글'은 유명해진 그의 '말'보다 더 빛나기에, 나는 감히 그를 좋아하는 '작가'로 추천한다. 그의 '촌철살인'이 어디에서 나왔겠는가. 매순간 치열하게 사색하고 행동하며 메모한 그의 '글'이 원천인 것이다. 
아마도, 그럴리는 전혀 었었을 것이나 '정치인' 노회찬으로 살지 않았다면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우리의 역사와 나아가 인류 전체의 역사를 '진보적'으로 우리에게 재미있게 풀어 설명해주는 이웃집 '작가' 아저씨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작가 유시민보다 훨씬 더 친근한 그런.


노회찬 의원 2주기인 2020년 7월 들어 그의 책을 다시 뒤적이던 중,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망소식을 듣는다. 입이 있는 자들은 숱하게 떠들어대고 있으나, 내게 떠오른 문장은 한 줄이었다.

'도적들은 이익을 지키고, 군자는 명예를 지킨다'

[논어], [맹자]에나 나올 법한 문장은 인용이 아니라 최근 비보를 듣고 무시로 떠오른 것인데,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같은 자들은 '무죄'를 주장하며 개인의 '이익'을 목숨걸고 지키려 하고 노회찬 같은 군자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 결국 목숨까지 내놓았기 때문이다.
'삼성 X 파일' 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아 의원직까지 상실했던 노회찬은 오히려 당당했으나 '드루킹' 사건 연루설은 그에게 부르주아 법원에서 '유무죄'의 차원이 아니었다. '진보정치인'으로서의 '명예'와 그가 평생을 바쳐 복무했던 인민에 대한 '의무'의 문제였다.


스스로 진보정치의 '원칙'이 되고자 했고, 그 '원칙'을 세우기 위해 일생을 바친 유일한 '진보정치인' 노회찬 선생을 다시금 떠올리는 시간들이 덧없이 이어지는 나날이다.


"스스로 원칙인 사람. 원칙은 그런 사람들에 의해 세워지고 또 관철된다."
- 노회찬, [힘내라, 진달래], '1.17. 일지', <사회평론>, 2004.


***

1. [힘내라, 진달래], 노회찬, <사회평론>, 2004.
2. [우리가 꿈꾸는 나라], 노회찬, <창비>, 2018.
3. [노회찬과 함께 읽는 조선왕조실록], 노회찬, <일빛>,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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