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YZ의 비극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서계인 옮김 / 검은숲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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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만찬'이나, '현실'은 '비극'이다.
- '노년' 탐정 드루리 레인, [X의 비극]과 [Y의 비극]



"'무대를 은퇴하고서야 비로소 인생 그 자체가 얼마나 극적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무대 위에선 제약이 있고 속박이 있습니다. 머큐시오([로미오와 줄리엣] 속 인물)의 꿈 해석에 따르면, 극 중 인물이란 '공상에 불과한 것에서 생겨난 쓸데없는 관념의 산물'인 것입니다.'
두 방문객은 레인의 운치 있는 목소리에 어떤 신비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현실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감정이 격동하면 무대 이상의 비극이 생깁니다. 그들은 결코 '공기보다도 희박하고, 바람보다도 불안정한 존재' 따위가 아닙니다.'
지방 검사가 천천히 입을 뗐다.
'그렇습니다. 정말이지 그 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격정에서 야기된 흉악 범죄 얘기입니다만, 범죄란 인간 비극의 극치죠. 살인은 그 가운데서도 최고의 것이고요. 평생 동안 저는 여러 저명한 남녀 배우들과 함께 일해왔습니다만...'
레인은 슬픈 듯이 미소 지었다.
'... 여러 명우들과 더불어 저는 무대 위에서 최고의 인위적인 감동을 연출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러한 감동을 현실에서 연출했으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저는 여기에 독자적인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대에선 수도 없이 사람을 죽였습니다. 살인을 계획할 때의 고민이며 양심의 가책 따위를 연출했습니다. 악역으로는 맥베스 역도 했고 햄릿 역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난생처음 보기 때문에 별 것 아닌 것에도 놀라는 어린애처럼 이 세상이 맥베스나 햄릿으로 가득차 있는 것에 놀라고 있습니다. 진부한 얘기입니다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 동안은 작가의 뜻대로 움직여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제 뜻대로 움직이며 보다 더 극적인 것을 창출하고 싶습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있습니다. 이 불행한 재앙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레인은 손가락을 세워 자신의 귀를 건드렸다.
'오히려 주의 집중이 잘 되게 해주지요. 눈만 감으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소리 없는 세계로 빠져들 수 있으니까요.'"
- [X의 비극](1932), <제1막:제1장>, 바너비 로스(엘러리 퀸), 서계인 옮김, <검은숲>, 2017.


내가 한참 추리소설에 빠졌던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생 시절까지 코넌 도일(Conan Doyle)의 셜록 홈즈(Sherlock Holmes) 시리즈와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 장편들은 단연 나의 주관심사였다. 19세기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가 '추리(미스터리)소설' 장르를 처음 열었으나 19세기 후반 영국의 셜록 홈즈와 프랑스의 아르센 뤼팡 등에 의해 유럽, 특히 20세기 들어 애거서 크리스티의 활약으로 추리소설의 주도권은 영국이 가지고 있었다는데, 1980년대 한국의 중학생이었던 내게도 역시 그랬다. '추리소설의 본토'로서 미국의 자존심은 예술평론가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가 S. S. 밴다인(Van Dine)이라는 필명으로 '파일로 밴스(Philo Vance)'라는 지적이고 현학적인 탐정을 앞세워 재부흥을 이끌었다지만 국내에서는 무명이었고, 그를 모방한 '엘러리 퀸(Ellery Queen)'이 20세기 초반 당시 애거서 크리스티의 아성에 필적했다고는 하나, 내게는 역시 추리소설은 영국의 애거서 크리스티 경이었고 미국 추리소설은 '곁가지'에 불과했다.

맨프레드 리(Manfred Lee:1905~1971)와 프레더릭 다네이(Frederic Danay:1905~1982). 두 사촌형제의 '필명'이자 그들 작품의 주인공 '탐정'의 이름인 '엘러리 퀸(Ellery Queen)'의 소설은 중학교 때 단 한 권,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비밀)](1932) 뿐이었고 나중에 커서는 해당 책은 물론 그 작가와 탐정 이름마저 잊혀졌다. 
수년전 우연히 [오리엔트 특급살인]과 [메소포타미아 살인] 등 오래된 흑백영화를 EBS '일요시네마'로 보았고, 다시금 옛 추억에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들을 몇 권 사서 다시 읽고 소장하며 언뜻 떠오른 미국 작가가 바로 '엘러리 퀸'이었다.

미국의 대공황기인 1929년 [로마 모자 미스터리]로 작가의 길을 선택하려던 두 사촌 '엘러리 퀸'은 대공황으로 인해 각각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지도 못하고 '필명'으로 활동하였지만 '다작'으로 유명해졌고, 1931년에는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의 흥행으로 전업작가의 길을 선택하며 '다작'을 소화하기 위해 또 하나의 '필명'으로 다른 출판사와 계약을 하는데, 그 필명이 '바너비 로스(Barnaby Ross)'였으며, '엘러리 퀸'에 필적하는 새로운 탐정이 '드루리 레인(Drury Lane)'이었다. '엘러리 퀸'은 자신들이 '바너비 로스'라는 사실을 9년 동안 속였다는데, 한 해에 한 권도 내기 힘들 작품 흥행을 1년에 4권씩 '엘러리 퀸'과 '바너비 로스'의 필명으로 이루었다고 한다. 1932년에는 '엘러리 퀸'의 [그리스 관 미스터리]와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바너비 로스'의 [X의 비극]과 [Y의 비극], 1933년에는 '엘러리 퀸'의 [미국 총 미스터리]와 [샴 쌍둥이 미스터리], '바너비 로스'의 [Z의 비극]과 [드루리 레인 최후의 사건]을 발표했다.


은퇴한 60대 셰익스피어 극의 명배우 '드루리 레인(Drury Lane)'은 지금으로 치면 유명 연예인이다. 가난한 비극작가인 아버지와 희극배우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장소가 무대 뒤였고 불우하게 조실부모했으나 부모의 동료배우들에 의해 키워지며 훗날 셰익스피어 연극의 명배우로 성공했고 은퇴 후 허드슨 강가에 '햄릿 저택'이라는 비현실적인 대저택을 지어 세상을 관조한다. 유럽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기사로 접하고는 엘러리 퀸과 같은 '연역추리'를 통해 서신으로 사건을 해결한 후 '탐정'이자 뉴욕경찰청의 '고문'의 지위를 얻는데 [X의 비극]은 섬 경관과 브루노 지방 검사가 이 중세풍의 '햄릿 저택'을 찾아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드루리 레인의 첫 등장과 비현실적인 캐릭터는 1939년에 등장한 '히어로' 캐릭터 '배트맨(브루스 웨인)'의 모티브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이고 중세적이고 또한 신비롭기도 하다.
파티 자리에서 셰익스피어 극중 대사를 되짚어 연기하며 건배사를 대신하고, 귀가 안들려 상대의 입술을 보고 말을 읽는 '독순술'을 구사하며 눈을 감으면 깊은 침묵 속에서 '연역추리'를 작동하며, 전직 배우로서 변장을 통해 탐문수사로 경찰을 앞지르는 '노년 탐정' 드루리 레인은 다른 작품 주인공인 '청년 탐정' 엘러리 퀸처럼 몇 가지 주요단서로 큰 가설을 세우고 다른 단서들의 논리적 조합을 통해 가능성들을 소거해 가는 '연역추리법'을 구사하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비극 시리즈'의 주인공답게 '노년'(20세기 초에는 지금과 달리 60대가 '노년'이었으리라)의 중후함으로 인간 심리 내면의 '비극성'을 체현한다. 이십대의 '청년' 엘러리 퀸으로 그려내지 못한 작가들이 '바너비 로스'라는 다른 필명으로 색다르게 그려내고 싶은 캐릭터의 다른 한 측면일 수도 있다. 
이렇게 '노년 탐정' 드루리 레인은 '청년 탐정' 엘러리 퀸과 '연역추리법'의 공통분모로부터 가지를 뻗어 상반된 캐릭터를 연출한다.

20세기 후반 일본의 미스터리소설에 분명히 영향을 미쳤을 '미스터리의 고전'으로서 '엘러리 퀸/바너비 로스'는 잘 짜여진 추리소설 구도와 지적인 탐정의 유산은 물론, 일본의 '소년 탐정 김전일'과 우리나라 '중년 탐정 김정일'의 패러디를 낳은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 요컨대, 당신이 범인 검거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좌천이라도 당하게 될 경우엔 즉시 나는 당신에게 사건의 진상을 털어놓고 당신이 명예와 지위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해드릴 생각이었습니다. 그것만은 당신에 대한 나의 의무니까요, 경감님...'
'그렇다면 정말 고마운 얘기로군요.'
경감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두달이 지난 지금, 비난의 소리도 가라앉았고 경감님도 전과 다름없이 훌륭하게 근무하고 계신 지금에 와서는 당신들 두분에게는 사실을 숨겨둘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다만 한 가지 바라는 바가 있다면, 이 사건에 대해 내가 대처했던 방식을 인간적인 입장에서 이해하셔서 범인의 죄상을 언제까지나 비밀로 해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브루노와 경감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모두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경감은 몇 번이나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서 납득이 안되는 점이 있습니다.'
경감은 풀잎을 쥐어뜯어 씹으면서 말을 이었다.
'어쩌다가 범인은 희생자에게 마시게 할 작정이었던 독이 든 우유를 자신이 마시는 실수를 저질렀을까요, 레인씨?'
레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경감은 몸을 내밀고 초조하게 레인의 무릎을 두드렸다.
'레인씨, 제 얘기를 못 들으셨습니까?'
그러자 갑자기 브루노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거칠게 경감의 어깨를 쿡쿡 찔렀다. 경감이 깜짝 놀라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레인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괴로움이 가득 담긴 눈길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브루노가 묘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봐요, 경감. 레인씨는 지금 피로하신 모양이오. 우리도 이제는 슬슬 뉴욕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소.'"
- [Y의 비극](1932), <무대 뒤에서>, 바너비 로스, 서계인 옮김, <검은숲>, 2017.


전작인 [X의 비극]에서 드루리 레인은 셜록 홈즈 못지 않은 활극적 요소로 '비극'적 범인 'X'를 멋지게 밝혀낸다. 추리소설의 필수 요소인 사건의 복기를 연극배우답게 <무대 뒤에서> 설명하면서 자신의 '연역소거 추리논리'를 자랑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본인은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으며 '연역논리' 가설이 증명되기 전까지는 깊은 침묵 속에서 집요하게 '증명완료(Q.E.D)'해 가는 이 장면은 마치 '늙은 엘러리 퀸'을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화학자 요크 해터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Y의 비극]은 시종일관 광기어린 '해터 가(家)'의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 '요크(Y)'의 '비극' 전모를 파헤치려 하지만 결국 사건은 공식적으로 '미제 사건'으로 끝나고 만다. 물론 드루리 레인은 특유의 '연극'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알고 범인의 행각을 직접 목격하기도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답을 말하지 않은 채 사건의 '종결'과 함께 '햄릿 저택'으로 돌아가서 은둔해 버린다. 물론, 자신을 믿는 섬 경감과 브루노 검사가 '미제 사건'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을 지경이 되면 모든 것을 밝히리라 생각하며 관망하고 있는 중에 [X의 비극]의 첫 장면 '제1막'처럼 두 사람의 방문을 받고 <무대 뒤에서> 설명하는 것이 [Y의 비극] '종막'이다.

'Y'의 '비극'을 어떻게 끝장내고 말았는지 작가 '바너비 로스'도 주인공 '드루리 레인'도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다만, 중후한 '노년' 탐정 드루리 레인의 "괴로움이 가득 담긴 눈길"([Y의 비극], <무대 뒤에서>)만이 묵시적으로 진실을 가리킬 뿐이다.


작가 '엘러리 퀸'이 은퇴하는 마지막까지 활약한 '청년' 탐정 '엘러리 퀸'과 달리 작가 '바너비 로스'는 3년 동안, '노년' 탐정 드루리 레인은 단 4편의 소설로 그 '배트맨'과 같은 음울한 소임을 다한다. 1933년에 발표한 [Z의 비극]과 [드루리 레인 최후의 사건]은 이미 10년 후 70대에 이른 드루리 레인이 등장한다고 하며 서술형식도 1932년 두 편의 전작들과 다르다고 하니 나는 잠시 틈을 두고 읽어보려 한다.


"연극은 만찬과 같은 것이고, 프롤로그는 그 식전의 기도이다."
- [Y의 비극], <프롤로그>, 바너비 로스, 1932.


무대 위의 '연극적 비극'을 묘사하던 삶에서 나와 'X'와 'Y'의 '현실적 비극'을 추적한 60대 드루리 레인의 깊은 통찰을 작가 '바너비 로스'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면서 그 일단의 '비극'의 막을 내린다.


"그의 공적을 부정하려거든, 전체적인 관점에서 냉철하고 사려깊게 판단한 다음에 그렇게 하라."
- [Y의 비극], <무대 뒤에서>, 바너비 로스, 1932.


***

- [XYZ의 비극](1932~1933), 엘러리 퀸, 서계인 옮김, <검은숲>,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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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의 비극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서계인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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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만찬'이나, '현실'은 '비극'이다.
- '노년' 탐정 드루리 레인, [X의 비극]과 [Y의 비극]



"'무대를 은퇴하고서야 비로소 인생 그 자체가 얼마나 극적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무대 위에선 제약이 있고 속박이 있습니다. 머큐시오([로미오와 줄리엣] 속 인물)의 꿈 해석에 따르면, 극 중 인물이란 '공상에 불과한 것에서 생겨난 쓸데없는 관념의 산물'인 것입니다.'
두 방문객은 레인의 운치 있는 목소리에 어떤 신비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현실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감정이 격동하면 무대 이상의 비극이 생깁니다. 그들은 결코 '공기보다도 희박하고, 바람보다도 불안정한 존재' 따위가 아닙니다.'
지방 검사가 천천히 입을 뗐다.
'그렇습니다. 정말이지 그 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격정에서 야기된 흉악 범죄 얘기입니다만, 범죄란 인간 비극의 극치죠. 살인은 그 가운데서도 최고의 것이고요. 평생 동안 저는 여러 저명한 남녀 배우들과 함께 일해왔습니다만...'
레인은 슬픈 듯이 미소 지었다.
'... 여러 명우들과 더불어 저는 무대 위에서 최고의 인위적인 감동을 연출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러한 감동을 현실에서 연출했으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저는 여기에 독자적인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대에선 수도 없이 사람을 죽였습니다. 살인을 계획할 때의 고민이며 양심의 가책 따위를 연출했습니다. 악역으로는 맥베스 역도 했고 햄릿 역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난생처음 보기 때문에 별 것 아닌 것에도 놀라는 어린애처럼 이 세상이 맥베스나 햄릿으로 가득차 있는 것에 놀라고 있습니다. 진부한 얘기입니다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 동안은 작가의 뜻대로 움직여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제 뜻대로 움직이며 보다 더 극적인 것을 창출하고 싶습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있습니다. 이 불행한 재앙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레인은 손가락을 세워 자신의 귀를 건드렸다.
'오히려 주의 집중이 잘 되게 해주지요. 눈만 감으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소리 없는 세계로 빠져들 수 있으니까요.'"
- [X의 비극](1932), <제1막:제1장>, 바너비 로스(엘러리 퀸), 서계인 옮김, <검은숲>, 2017.


내가 한참 추리소설에 빠졌던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생 시절까지 코넌 도일(Conan Doyle)의 셜록 홈즈(Sherlock Holmes) 시리즈와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 장편들은 단연 나의 주관심사였다. 19세기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가 '추리(미스터리)소설' 장르를 처음 열었으나 19세기 후반 영국의 셜록 홈즈와 프랑스의 아르센 뤼팡 등에 의해 유럽, 특히 20세기 들어 애거서 크리스티의 활약으로 추리소설의 주도권은 영국이 가지고 있었다는데, 1980년대 한국의 중학생이었던 내게도 역시 그랬다. '추리소설의 본토'로서 미국의 자존심은 예술평론가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가 S. S. 밴다인(Van Dine)이라는 필명으로 '파일로 밴스(Philo Vance)'라는 지적이고 현학적인 탐정을 앞세워 재부흥을 이끌었다지만 국내에서는 무명이었고, 그를 모방한 '엘러리 퀸(Ellery Queen)'이 20세기 초반 당시 애거서 크리스티의 아성에 필적했다고는 하나, 내게는 역시 추리소설은 영국의 애거서 크리스티 경이었고 미국 추리소설은 '곁가지'에 불과했다.

맨프레드 리(Manfred Lee:1905~1971)와 프레더릭 다네이(Frederic Danay:1905~1982). 두 사촌형제의 '필명'이자 그들 작품의 주인공 '탐정'의 이름인 '엘러리 퀸(Ellery Queen)'의 소설은 중학교 때 단 한 권,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비밀)](1932) 뿐이었고 나중에 커서는 해당 책은 물론 그 작가와 탐정 이름마저 잊혀졌다. 
수년전 우연히 [오리엔트 특급살인]과 [메소포타미아 살인] 등 오래된 흑백영화를 EBS '일요시네마'로 보았고, 다시금 옛 추억에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들을 몇 권 사서 다시 읽고 소장하며 언뜻 떠오른 미국 작가가 바로 '엘러리 퀸'이었다.

미국의 대공황기인 1929년 [로마 모자 미스터리]로 작가의 길을 선택하려던 두 사촌 '엘러리 퀸'은 대공황으로 인해 각각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지도 못하고 '필명'으로 활동하였지만 '다작'으로 유명해졌고, 1931년에는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의 흥행으로 전업작가의 길을 선택하며 '다작'을 소화하기 위해 또 하나의 '필명'으로 다른 출판사와 계약을 하는데, 그 필명이 '바너비 로스(Barnaby Ross)'였으며, '엘러리 퀸'에 필적하는 새로운 탐정이 '드루리 레인(Drury Lane)'이었다. '엘러리 퀸'은 자신들이 '바너비 로스'라는 사실을 9년 동안 속였다는데, 한 해에 한 권도 내기 힘들 작품 흥행을 1년에 4권씩 '엘러리 퀸'과 '바너비 로스'의 필명으로 이루었다고 한다. 1932년에는 '엘러리 퀸'의 [그리스 관 미스터리]와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바너비 로스'의 [X의 비극]과 [Y의 비극], 1933년에는 '엘러리 퀸'의 [미국 총 미스터리]와 [샴 쌍둥이 미스터리], '바너비 로스'의 [Z의 비극]과 [드루리 레인 최후의 사건]을 발표했다.


은퇴한 60대 셰익스피어 극의 명배우 '드루리 레인(Drury Lane)'은 지금으로 치면 유명 연예인이다. 가난한 비극작가인 아버지와 희극배우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장소가 무대 뒤였고 불우하게 조실부모했으나 부모의 동료배우들에 의해 키워지며 훗날 셰익스피어 연극의 명배우로 성공했고 은퇴 후 허드슨 강가에 '햄릿 저택'이라는 비현실적인 대저택을 지어 세상을 관조한다. 유럽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기사로 접하고는 엘러리 퀸과 같은 '연역추리'를 통해 서신으로 사건을 해결한 후 '탐정'이자 뉴욕경찰청의 '고문'의 지위를 얻는데 [X의 비극]은 섬 경관과 브루노 지방 검사가 이 중세풍의 '햄릿 저택'을 찾아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드루리 레인의 첫 등장과 비현실적인 캐릭터는 1939년에 등장한 '히어로' 캐릭터 '배트맨(브루스 웨인)'의 모티브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이고 중세적이고 또한 신비롭기도 하다.
파티 자리에서 셰익스피어 극중 대사를 되짚어 연기하며 건배사를 대신하고, 귀가 안들려 상대의 입술을 보고 말을 읽는 '독순술'을 구사하며 눈을 감으면 깊은 침묵 속에서 '연역추리'를 작동하며, 전직 배우로서 변장을 통해 탐문수사로 경찰을 앞지르는 '노년 탐정' 드루리 레인은 다른 작품 주인공인 '청년 탐정' 엘러리 퀸처럼 몇 가지 주요단서로 큰 가설을 세우고 다른 단서들의 논리적 조합을 통해 가능성들을 소거해 가는 '연역추리법'을 구사하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비극 시리즈'의 주인공답게 '노년'(20세기 초에는 지금과 달리 60대가 '노년'이었으리라)의 중후함으로 인간 심리 내면의 '비극성'을 체현한다. 이십대의 '청년' 엘러리 퀸으로 그려내지 못한 작가들이 '바너비 로스'라는 다른 필명으로 색다르게 그려내고 싶은 캐릭터의 다른 한 측면일 수도 있다. 
이렇게 '노년 탐정' 드루리 레인은 '청년 탐정' 엘러리 퀸과 '연역추리법'의 공통분모로부터 가지를 뻗어 상반된 캐릭터를 연출한다.

20세기 후반 일본의 미스터리소설에 분명히 영향을 미쳤을 '미스터리의 고전'으로서 '엘러리 퀸/바너비 로스'는 잘 짜여진 추리소설 구도와 지적인 탐정의 유산은 물론, 일본의 '소년 탐정 김전일'과 우리나라 '중년 탐정 김정일'의 패러디를 낳은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 요컨대, 당신이 범인 검거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좌천이라도 당하게 될 경우엔 즉시 나는 당신에게 사건의 진상을 털어놓고 당신이 명예와 지위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해드릴 생각이었습니다. 그것만은 당신에 대한 나의 의무니까요, 경감님...'
'그렇다면 정말 고마운 얘기로군요.'
경감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두달이 지난 지금, 비난의 소리도 가라앉았고 경감님도 전과 다름없이 훌륭하게 근무하고 계신 지금에 와서는 당신들 두분에게는 사실을 숨겨둘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다만 한 가지 바라는 바가 있다면, 이 사건에 대해 내가 대처했던 방식을 인간적인 입장에서 이해하셔서 범인의 죄상을 언제까지나 비밀로 해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브루노와 경감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모두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경감은 몇 번이나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서 납득이 안되는 점이 있습니다.'
경감은 풀잎을 쥐어뜯어 씹으면서 말을 이었다.
'어쩌다가 범인은 희생자에게 마시게 할 작정이었던 독이 든 우유를 자신이 마시는 실수를 저질렀을까요, 레인씨?'
레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경감은 몸을 내밀고 초조하게 레인의 무릎을 두드렸다.
'레인씨, 제 얘기를 못 들으셨습니까?'
그러자 갑자기 브루노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거칠게 경감의 어깨를 쿡쿡 찔렀다. 경감이 깜짝 놀라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레인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괴로움이 가득 담긴 눈길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브루노가 묘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봐요, 경감. 레인씨는 지금 피로하신 모양이오. 우리도 이제는 슬슬 뉴욕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소.'"
- [Y의 비극](1932), <무대 뒤에서>, 바너비 로스, 서계인 옮김, <검은숲>, 2017.


전작인 [X의 비극]에서 드루리 레인은 셜록 홈즈 못지 않은 활극적 요소로 '비극'적 범인 'X'를 멋지게 밝혀낸다. 추리소설의 필수 요소인 사건의 복기를 연극배우답게 <무대 뒤에서> 설명하면서 자신의 '연역소거 추리논리'를 자랑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본인은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으며 '연역논리' 가설이 증명되기 전까지는 깊은 침묵 속에서 집요하게 '증명완료(Q.E.D)'해 가는 이 장면은 마치 '늙은 엘러리 퀸'을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화학자 요크 해터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Y의 비극]은 시종일관 광기어린 '해터 가(家)'의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 '요크(Y)'의 '비극' 전모를 파헤치려 하지만 결국 사건은 공식적으로 '미제 사건'으로 끝나고 만다. 물론 드루리 레인은 특유의 '연극'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알고 범인의 행각을 직접 목격하기도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답을 말하지 않은 채 사건의 '종결'과 함께 '햄릿 저택'으로 돌아가서 은둔해 버린다. 물론, 자신을 믿는 섬 경감과 브루노 검사가 '미제 사건'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을 지경이 되면 모든 것을 밝히리라 생각하며 관망하고 있는 중에 [X의 비극]의 첫 장면 '제1막'처럼 두 사람의 방문을 받고 <무대 뒤에서> 설명하는 것이 [Y의 비극] '종막'이다.

'Y'의 '비극'을 어떻게 끝장내고 말았는지 작가 '바너비 로스'도 주인공 '드루리 레인'도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다만, 중후한 '노년' 탐정 드루리 레인의 "괴로움이 가득 담긴 눈길"([Y의 비극], <무대 뒤에서>)만이 묵시적으로 진실을 가리킬 뿐이다.


작가 '엘러리 퀸'이 은퇴하는 마지막까지 활약한 '청년' 탐정 '엘러리 퀸'과 달리 작가 '바너비 로스'는 3년 동안, '노년' 탐정 드루리 레인은 단 4편의 소설로 그 '배트맨'과 같은 음울한 소임을 다한다. 1933년에 발표한 [Z의 비극]과 [드루리 레인 최후의 사건]은 이미 10년 후 70대에 이른 드루리 레인이 등장한다고 하며 서술형식도 1932년 두 편의 전작들과 다르다고 하니 나는 잠시 틈을 두고 읽어보려 한다.


"연극은 만찬과 같은 것이고, 프롤로그는 그 식전의 기도이다."
- [Y의 비극], <프롤로그>, 바너비 로스, 1932.


무대 위의 '연극적 비극'을 묘사하던 삶에서 나와 'X'와 'Y'의 '현실적 비극'을 추적한 60대 드루리 레인의 깊은 통찰을 작가 '바너비 로스'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면서 그 일단의 '비극'의 막을 내린다.


"그의 공적을 부정하려거든, 전체적인 관점에서 냉철하고 사려깊게 판단한 다음에 그렇게 하라."
- [Y의 비극], <무대 뒤에서>, 바너비 로스, 1932.


***

- [XYZ의 비극](1932~1933), 엘러리 퀸, 서계인 옮김, <검은숲>,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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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의 비극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서계인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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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만찬'이나, '현실'은 '비극'이다.
- '노년' 탐정 드루리 레인, [X의 비극]과 [Y의 비극]



"'무대를 은퇴하고서야 비로소 인생 그 자체가 얼마나 극적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무대 위에선 제약이 있고 속박이 있습니다. 머큐시오([로미오와 줄리엣] 속 인물)의 꿈 해석에 따르면, 극 중 인물이란 '공상에 불과한 것에서 생겨난 쓸데없는 관념의 산물'인 것입니다.'
두 방문객은 레인의 운치 있는 목소리에 어떤 신비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현실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감정이 격동하면 무대 이상의 비극이 생깁니다. 그들은 결코 '공기보다도 희박하고, 바람보다도 불안정한 존재' 따위가 아닙니다.'
지방 검사가 천천히 입을 뗐다.
'그렇습니다. 정말이지 그 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격정에서 야기된 흉악 범죄 얘기입니다만, 범죄란 인간 비극의 극치죠. 살인은 그 가운데서도 최고의 것이고요. 평생 동안 저는 여러 저명한 남녀 배우들과 함께 일해왔습니다만...'
레인은 슬픈 듯이 미소 지었다.
'... 여러 명우들과 더불어 저는 무대 위에서 최고의 인위적인 감동을 연출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러한 감동을 현실에서 연출했으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저는 여기에 독자적인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대에선 수도 없이 사람을 죽였습니다. 살인을 계획할 때의 고민이며 양심의 가책 따위를 연출했습니다. 악역으로는 맥베스 역도 했고 햄릿 역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난생처음 보기 때문에 별 것 아닌 것에도 놀라는 어린애처럼 이 세상이 맥베스나 햄릿으로 가득차 있는 것에 놀라고 있습니다. 진부한 얘기입니다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 동안은 작가의 뜻대로 움직여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제 뜻대로 움직이며 보다 더 극적인 것을 창출하고 싶습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있습니다. 이 불행한 재앙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레인은 손가락을 세워 자신의 귀를 건드렸다.
'오히려 주의 집중이 잘 되게 해주지요. 눈만 감으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소리 없는 세계로 빠져들 수 있으니까요.'"
- [X의 비극](1932), <제1막:제1장>, 바너비 로스(엘러리 퀸), 서계인 옮김, <검은숲>, 2017.


내가 한참 추리소설에 빠졌던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생 시절까지 코넌 도일(Conan Doyle)의 셜록 홈즈(Sherlock Holmes) 시리즈와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 장편들은 단연 나의 주관심사였다. 19세기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가 '추리(미스터리)소설' 장르를 처음 열었으나 19세기 후반 영국의 셜록 홈즈와 프랑스의 아르센 뤼팡 등에 의해 유럽, 특히 20세기 들어 애거서 크리스티의 활약으로 추리소설의 주도권은 영국이 가지고 있었다는데, 1980년대 한국의 중학생이었던 내게도 역시 그랬다. '추리소설의 본토'로서 미국의 자존심은 예술평론가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가 S. S. 밴다인(Van Dine)이라는 필명으로 '파일로 밴스(Philo Vance)'라는 지적이고 현학적인 탐정을 앞세워 재부흥을 이끌었다지만 국내에서는 무명이었고, 그를 모방한 '엘러리 퀸(Ellery Queen)'이 20세기 초반 당시 애거서 크리스티의 아성에 필적했다고는 하나, 내게는 역시 추리소설은 영국의 애거서 크리스티 경이었고 미국 추리소설은 '곁가지'에 불과했다.

맨프레드 리(Manfred Lee:1905~1971)와 프레더릭 다네이(Frederic Danay:1905~1982). 두 사촌형제의 '필명'이자 그들 작품의 주인공 '탐정'의 이름인 '엘러리 퀸(Ellery Queen)'의 소설은 중학교 때 단 한 권,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비밀)](1932) 뿐이었고 나중에 커서는 해당 책은 물론 그 작가와 탐정 이름마저 잊혀졌다. 
수년전 우연히 [오리엔트 특급살인]과 [메소포타미아 살인] 등 오래된 흑백영화를 EBS '일요시네마'로 보았고, 다시금 옛 추억에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들을 몇 권 사서 다시 읽고 소장하며 언뜻 떠오른 미국 작가가 바로 '엘러리 퀸'이었다.

미국의 대공황기인 1929년 [로마 모자 미스터리]로 작가의 길을 선택하려던 두 사촌 '엘러리 퀸'은 대공황으로 인해 각각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지도 못하고 '필명'으로 활동하였지만 '다작'으로 유명해졌고, 1931년에는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의 흥행으로 전업작가의 길을 선택하며 '다작'을 소화하기 위해 또 하나의 '필명'으로 다른 출판사와 계약을 하는데, 그 필명이 '바너비 로스(Barnaby Ross)'였으며, '엘러리 퀸'에 필적하는 새로운 탐정이 '드루리 레인(Drury Lane)'이었다. '엘러리 퀸'은 자신들이 '바너비 로스'라는 사실을 9년 동안 속였다는데, 한 해에 한 권도 내기 힘들 작품 흥행을 1년에 4권씩 '엘러리 퀸'과 '바너비 로스'의 필명으로 이루었다고 한다. 1932년에는 '엘러리 퀸'의 [그리스 관 미스터리]와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바너비 로스'의 [X의 비극]과 [Y의 비극], 1933년에는 '엘러리 퀸'의 [미국 총 미스터리]와 [샴 쌍둥이 미스터리], '바너비 로스'의 [Z의 비극]과 [드루리 레인 최후의 사건]을 발표했다.


은퇴한 60대 셰익스피어 극의 명배우 '드루리 레인(Drury Lane)'은 지금으로 치면 유명 연예인이다. 가난한 비극작가인 아버지와 희극배우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장소가 무대 뒤였고 불우하게 조실부모했으나 부모의 동료배우들에 의해 키워지며 훗날 셰익스피어 연극의 명배우로 성공했고 은퇴 후 허드슨 강가에 '햄릿 저택'이라는 비현실적인 대저택을 지어 세상을 관조한다. 유럽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기사로 접하고는 엘러리 퀸과 같은 '연역추리'를 통해 서신으로 사건을 해결한 후 '탐정'이자 뉴욕경찰청의 '고문'의 지위를 얻는데 [X의 비극]은 섬 경관과 브루노 지방 검사가 이 중세풍의 '햄릿 저택'을 찾아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드루리 레인의 첫 등장과 비현실적인 캐릭터는 1939년에 등장한 '히어로' 캐릭터 '배트맨(브루스 웨인)'의 모티브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이고 중세적이고 또한 신비롭기도 하다.
파티 자리에서 셰익스피어 극중 대사를 되짚어 연기하며 건배사를 대신하고, 귀가 안들려 상대의 입술을 보고 말을 읽는 '독순술'을 구사하며 눈을 감으면 깊은 침묵 속에서 '연역추리'를 작동하며, 전직 배우로서 변장을 통해 탐문수사로 경찰을 앞지르는 '노년 탐정' 드루리 레인은 다른 작품 주인공인 '청년 탐정' 엘러리 퀸처럼 몇 가지 주요단서로 큰 가설을 세우고 다른 단서들의 논리적 조합을 통해 가능성들을 소거해 가는 '연역추리법'을 구사하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비극 시리즈'의 주인공답게 '노년'(20세기 초에는 지금과 달리 60대가 '노년'이었으리라)의 중후함으로 인간 심리 내면의 '비극성'을 체현한다. 이십대의 '청년' 엘러리 퀸으로 그려내지 못한 작가들이 '바너비 로스'라는 다른 필명으로 색다르게 그려내고 싶은 캐릭터의 다른 한 측면일 수도 있다. 
이렇게 '노년 탐정' 드루리 레인은 '청년 탐정' 엘러리 퀸과 '연역추리법'의 공통분모로부터 가지를 뻗어 상반된 캐릭터를 연출한다.

20세기 후반 일본의 미스터리소설에 분명히 영향을 미쳤을 '미스터리의 고전'으로서 '엘러리 퀸/바너비 로스'는 잘 짜여진 추리소설 구도와 지적인 탐정의 유산은 물론, 일본의 '소년 탐정 김전일'과 우리나라 '중년 탐정 김정일'의 패러디를 낳은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 요컨대, 당신이 범인 검거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좌천이라도 당하게 될 경우엔 즉시 나는 당신에게 사건의 진상을 털어놓고 당신이 명예와 지위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해드릴 생각이었습니다. 그것만은 당신에 대한 나의 의무니까요, 경감님...'
'그렇다면 정말 고마운 얘기로군요.'
경감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두달이 지난 지금, 비난의 소리도 가라앉았고 경감님도 전과 다름없이 훌륭하게 근무하고 계신 지금에 와서는 당신들 두분에게는 사실을 숨겨둘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다만 한 가지 바라는 바가 있다면, 이 사건에 대해 내가 대처했던 방식을 인간적인 입장에서 이해하셔서 범인의 죄상을 언제까지나 비밀로 해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브루노와 경감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모두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경감은 몇 번이나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서 납득이 안되는 점이 있습니다.'
경감은 풀잎을 쥐어뜯어 씹으면서 말을 이었다.
'어쩌다가 범인은 희생자에게 마시게 할 작정이었던 독이 든 우유를 자신이 마시는 실수를 저질렀을까요, 레인씨?'
레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경감은 몸을 내밀고 초조하게 레인의 무릎을 두드렸다.
'레인씨, 제 얘기를 못 들으셨습니까?'
그러자 갑자기 브루노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거칠게 경감의 어깨를 쿡쿡 찔렀다. 경감이 깜짝 놀라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레인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괴로움이 가득 담긴 눈길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브루노가 묘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봐요, 경감. 레인씨는 지금 피로하신 모양이오. 우리도 이제는 슬슬 뉴욕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소.'"
- [Y의 비극](1932), <무대 뒤에서>, 바너비 로스, 서계인 옮김, <검은숲>, 2017.


전작인 [X의 비극]에서 드루리 레인은 셜록 홈즈 못지 않은 활극적 요소로 '비극'적 범인 'X'를 멋지게 밝혀낸다. 추리소설의 필수 요소인 사건의 복기를 연극배우답게 <무대 뒤에서> 설명하면서 자신의 '연역소거 추리논리'를 자랑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본인은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으며 '연역논리' 가설이 증명되기 전까지는 깊은 침묵 속에서 집요하게 '증명완료(Q.E.D)'해 가는 이 장면은 마치 '늙은 엘러리 퀸'을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화학자 요크 해터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Y의 비극]은 시종일관 광기어린 '해터 가(家)'의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 '요크(Y)'의 '비극' 전모를 파헤치려 하지만 결국 사건은 공식적으로 '미제 사건'으로 끝나고 만다. 물론 드루리 레인은 특유의 '연극'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알고 범인의 행각을 직접 목격하기도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답을 말하지 않은 채 사건의 '종결'과 함께 '햄릿 저택'으로 돌아가서 은둔해 버린다. 물론, 자신을 믿는 섬 경감과 브루노 검사가 '미제 사건'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을 지경이 되면 모든 것을 밝히리라 생각하며 관망하고 있는 중에 [X의 비극]의 첫 장면 '제1막'처럼 두 사람의 방문을 받고 <무대 뒤에서> 설명하는 것이 [Y의 비극] '종막'이다.

'Y'의 '비극'을 어떻게 끝장내고 말았는지 작가 '바너비 로스'도 주인공 '드루리 레인'도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다만, 중후한 '노년' 탐정 드루리 레인의 "괴로움이 가득 담긴 눈길"([Y의 비극], <무대 뒤에서>)만이 묵시적으로 진실을 가리킬 뿐이다.


작가 '엘러리 퀸'이 은퇴하는 마지막까지 활약한 '청년' 탐정 '엘러리 퀸'과 달리 작가 '바너비 로스'는 3년 동안, '노년' 탐정 드루리 레인은 단 4편의 소설로 그 '배트맨'과 같은 음울한 소임을 다한다. 1933년에 발표한 [Z의 비극]과 [드루리 레인 최후의 사건]은 이미 10년 후 70대에 이른 드루리 레인이 등장한다고 하며 서술형식도 1932년 두 편의 전작들과 다르다고 하니 나는 잠시 틈을 두고 읽어보려 한다.


"연극은 만찬과 같은 것이고, 프롤로그는 그 식전의 기도이다."
- [Y의 비극], <프롤로그>, 바너비 로스, 1932.


무대 위의 '연극적 비극'을 묘사하던 삶에서 나와 'X'와 'Y'의 '현실적 비극'을 추적한 60대 드루리 레인의 깊은 통찰을 작가 '바너비 로스'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면서 그 일단의 '비극'의 막을 내린다.


"그의 공적을 부정하려거든, 전체적인 관점에서 냉철하고 사려깊게 판단한 다음에 그렇게 하라."
- [Y의 비극], <무대 뒤에서>, 바너비 로스, 1932.


***

- [XYZ의 비극](1932~1933), 엘러리 퀸, 서계인 옮김, <검은숲>,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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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지식의 한계 세계관 - 과학적 생각의 탄생, 경쟁, 충돌의 역사
리처드 드위트 지음, 김희주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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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 : 현대 '과학'에 대한 '철학'의 임무
- [세계관 - 당신 지식의 한계](2018), 리처드 드위트, 김희주 옮김, <세종>, 2020.




"... 우리가 지난 역사에서 배운 교훈... 새로운 발견을 이용할 새롭고 신기한 방법을 찾아내는 과학자들의 독창성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이다. 과거 기본적이고 새로운 발견들이 그 전까지 상상도 하지 못한 이론적, 기술적, 개념적 변화로 이어졌다... 지금 우리는 여러모로 1600년대 초와 비슷한 시기에 살고 있다. 갈릴레이 망원경이 찾아낸 발견 등 당시 새로운 발견들이 결국 우리가 사는 우주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이어졌다...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은 우리가 사는 우주에 영향을 미치지만, 진화론은 주로 그 우주 속의 우리 위치에 영향를 미친다... 만일 우리가 우주 속 우리 위치에 관한 경험적 증거를 받아들이고자 하면 진화론의 발견에 따라 우리는 인간이 특별하다는 오랜 견해를 버려야 한다... 1600년대 우리 조상들이 우리가 더는 우주의 물리적 중심이 아니라는 발견을 감당했듯, 우리는 그 어떤 의미에서도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발견을 감당해야만 할 것이다."
- [세계관](2018), <결론 - 예측불가능한 세계와 마주하기>, 리처드 드위트, 김희주 옮김, <세종>, 2020.


최근 유행하는 '빅 히스토리(Big history)'는 인류의 역사만이 아닌 우주 전체의 역사 속 하나의 종으로서 인간을 위치 짓는 작업이다. '빅 히스토리'는 우주와 천체의 역사로서 [코스모스](칼 세이건/앤 드루얀)일 수도 있고, 생물체 진화의 역사로서 [종의 기원](찰스 다윈)이나 [총,균,쇠](제러드 다이아몬드), [사피엔스](유발 하라리)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그 '세계관(Worldview)'을 구축하는 '철학'의 길에서 공통적인 도구는 '과학'이다. 



"내가 사용할 '세계관'이라는 용어는 퍼즐조각이 맞물리듯 '서로 연결된 믿음체계'를 뜻한다. 세계관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이며 서로 아무 연관도 없는 믿음들의 집합이 아니라 서로 밀접한 관계로 엮이고 연결된 믿음체계다... 각각의 믿음이 일관되게 맞물린 '믿음체계'를 이룬다는 생각이 내가 사용할 '세계관' 개념의 핵심이다."
- [세계관], <1-1. 세계관이란?>, 리처드 드위트.


과학철학을 전공한 미국의 철학과 교수 리처드 드위트(Richard Dewitt)가 과학의 역사를 통해 인류의 '세계관'이 변화되고 대체된 과정을 서술한 [세계관]이라는 책은, '과학철학과 그 역사에 대한 입문서(An Introduction to the History and Philosophy of Science)'를 부제로 달고 있다. 우리말 번역본의 부제는 '당신 지식의 한계'다.
'세계관'은 말 그대로 '세상을 보는 관점'인데, '경험적 사실'들을 '퍼즐'처럼 맞추어  '철학적/개념적 사실'로 구성한 거대한 사상체계다. '경험적 사실'들은 '과학'적 방법으로 관찰하고 실험하며, '철학적/개념적 사실'들은 '과학'의 성과들을 종합하는 '철학'적 작업이다. 또한 '과학'을 통해 발견한 이론을 대하는 태도는 '도구주의'와 '실재론'으로 구분되는데, "이론이 반드시 관련 데이터를 정확히 예측하고 설명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의견이 일치"하나, "실재론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적절한 이론이 실제 상황을 묘사하거나 실제 상황의 모델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한다"(같은책, 1-8. 도구주의와 실재론) . 즉, '실재론'은 이론을 세계 해석의 '도구'로 보는 '도구주의'에 비해 보다 근본적으로 접근하는 '철학'적 태도다. 그리하여 고대로부터 인류의 사상을 지배한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과학철학의 역사가 시작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은 대략 기원전 300년부터 1600년 무렵까지 서구의 지배적인 세계관이었다... 본래 지구중심설의 근거는 경험에 기초한 확고한 추론의 결과였다...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에서는 목적론적 설명이 타당한 과학적 설명이었다. 기계론적 설명이 우세한 현대 과학과 뚜렷이 대비되는 생각이다... 요컨대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의 우주는 목적론적인 우주, 본질적인 우주였다."
- [세계관], <2-9.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 속 우주>, 리처드 드위트.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관념(이데아)' 중심의 플라톤 철학에 자연에서 관찰되는 '질료'들을 결합하여 '세계의 근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근본적인 답을 하고자 한 철학적 전통의 시초다.  당시 과학발전의 한계는 당연하나 세계를 이루는 근원은 '관념(이데아)'이 아니라 '물, 불, 흙, 공기'의 '4원소'에 '신'과 같은 존재인 '제5원소'로서 '에테르' 등으로 구성되고 돌아간다는 믿음이다. 그렇다고 '유물론'은 아니다. 고대철학에서 '유물론' 전통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으로 이어지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을 잇는 '관념론' 철학의 주류였으나 후학인 헤겔이나 레닌 등이 그의 철학에서 '유물론'적 특성을 강조하기도 할만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과학'적 방법은 중요한 '도구'였다.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에 의하면, 이 세상의 모든 운동은 '부동의 동자'인 '신'적인 존재에 의해 '목적'을 가지고 진행된다. 이 세계관의 '신'은 종교적 절대자와 다르다. 자연현상에 대한 연구와 그 운동의 기원을 추적하는 '과학'적 방법을 통해 '운동을 주관하는 움직이지 않는 일자('부동의 동자')'로서의 위상일 뿐인데, 칸트까지 내려오면 '불가지론'이 되고 현대과학에서는 그 근원은 앞으로도 밝혀야 할 미지의 대상으로 보류된 '그것'이다. 
그리하여 '철학'의 전장에는 인류가 '과학'으로 규명할 '미래'를 하나의 근원적 '일자'로 규정하는 '관념론'과, '과학'적 방법으로 언젠가는 세계의 근원이 증명될 것으로 믿는 '유물론'의 전투가 지속된다. '불가지론'도 '미래'를 '현재'로 단정짓는 점에서 '관념론'이다. 
같은 '과학'을 방법론으로 해도, 현실을 영원한 것으로 보는 철학은 '관념론'이고, 이를 미래의 잠정태로 보는 철학은 '유물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의 말처럼 모든 과학자들의 '자생적 철학'은 '유물론'이다.


"... 코페르니쿠스에게 자신의 이론을 개발하도록 동기를 부여한 것은 경험적 데이터가 아니라 철학적/개념적 '데이터'임이 분명히 드러난다. 사실 특별히 드문 사건이 아니다. 과학의 역사에서 철학적/개념적 신뢰가 과학자에게 새로운 이론을 개발하도록 동기를 부여한 일은 많다."
- [세계관], <2-14. 코페르니쿠스 체계>, 리처드 드위트.


우주의 '지구중심설(천동설)'의 철학적 기초가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인데, 우리 눈에 보이는 별자리 등 '경험적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체계를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라 한다. 기원후 1~2세기 그리스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는 "역사상 최초로 천문학 사건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이론으로 발전시킨 사람"(같은책, 2-13.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이다. 그는 당시 세계관의 주요한 신념인 '완벽한 원운동'과 '등속운동'을 당시 유일한 '과학'이었던 '수학'적 방법으로 증명하였고 '주전원', '이심원', '동시심' 등의 관념적 운동원리 등을 도입하여 당시의 '지구중심설' 세계관을 거의 완벽하게 증명해냈다. 수많은 '과학자'와 '수학자'들의 도전과 반증에도 불구하고 1500년 이상 천문학 최고의 권위를 누린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발견한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바로 코페르니쿠스의 '동기'였다. '태양중심설(지동설)'을 처음 주장한 그를 기려 새로운 사상체계의 전환적 사건을 흔히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 표현하기도 하는 것처럼, 그는 갈릴레이 이전인 1500년대 초반에 이미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혁명적 관점을 제시했다. 그러나 사실 그의 '태양중심설'은 '태양신'을 섬기는 당시 신플라톤주의 철학과 '등속운동'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부득이 우주의 중심에 지구 대신 태양을 놓았다는 것이다. 하긴 자연관측 방법이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와 다르지 않았고 망원경으로 더 많은 별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후대인 갈릴레이에 와서야 가능했으니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의 동기가 '과학'적일 수는 없었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은 16세기 당시까지만 해도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설'과 이론적으로 양립했다. 세계관에 대한 '실재론'적 도전이 아닌 '도구주의적' 관점에서는 세상의 운동에 대한 수학적 증명의 정확성과 예측도 면에서 유용했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가 극복하지 못한 '완벽한 원운동'과 '등속운동'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의 신념은 16세기 독일의 천문학자 케플러에 의해 깨진다. 여전히 '지구중심설'로 더욱 정확한 수학적 체계를 구축한 티코 체계(같은책, 2-15.)의 제자였던 케플러는 '태양중심설'을 토대로 "행성이 속도를 바꿔가며 태양 주위를 도는 타원형 궤도가 화성 데이터를 완벽하게 설명하는 것을 확인"(같은책, 2-16. 케플러 체계)하고는 이전 체계들처럼 복잡하게 '주전원'이나 '가상의 원', '이심원', '동시심' 등을 사용하지 않고 "각각의 행성마다 '타원형' 궤도가 하나씩 있는데 그걸로 충분"(2-16.)히 천체의 운동를 증명했다. "케플러가 이룩한 중요한 혁신"(2-16.)은 '완벽한 원운동' 대신 '타원형 궤도'를 도입하고, '등속운동'의 믿음을 '다양한 속도'로 대체한 것이다. 


"갈릴레이의 견해에 따르면, 구원과 연관된 사안을 다룰 때는 성서증거가 으뜸이다. 하지만 구원과 연관이 없는 사안을 다룰 때는 경험적 증거의 비중이 더 커야 하고, 필요하다면 그 경험적 증거에 맞춰 성서를 재해석해야 한다. 우주의 중심이 지구인지 태양인지는 구원과 상관없는 사안이므로, 성서의 증거보다 '망원경'의 증거를 우선시해야 한다... 결국에는 다양한 속도의 타원궤도를 이용한 체계가 다른 대안적 체계보다 훨씬 뛰어나게 데이터를 설명한다는 케플러의 발견과 케플러가 자신의 천문체계에 기초해 그 어느 것보다 더 뛰어나게 만들어 1627년에 발표한 천체력, '망원경'을 이용한 갈릴레이의 발견 등이 축적된 결과 이 사안에 관심을 두는 사람 대부분이 지구와 행성이 실제 태양 주위를 '다양한 속도'의 '타원궤도'로 돈다고 확신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확신이 다시 기존 '세계관'에 많은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 [세계관], <2-17. 갈릴레이와 망원경의 증거>, 리처드 드위트


이제 '망원경'을 통한 '경험적 사실'의 '과학'적 발견에 힘입어 갈릴레이의 '태양중심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종교적 '구원'은 그대로 믿으면서 개인의 '구원'과 무관한 천체의 운동에 관한 증거를 '성서'가 아닌 '망원경'을 통한 '관찰과 '수학'을 통한 증명에서 찾는 근대 '과학'의 시간이 '도구주의자' 갈릴레이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에 고대로부터 내려온 '원자론'의 재발견도 한 몫 하는데, "원자론은 비록 '철학적/개념적' 견해에 가깝지만 당시 등장하던 사상과 잘 어울리는 견해였고, 새로운 과학사상이 발전하는데 상당히 유익한 견해였다."(같은책, 2-19. 과학발전과 철학적/개념적 변화의 연관성). 물질이 '원자'로 쪼개진다는 신념의 부활은 이후 현대 과학에서 '양자론'의 토대가 된다.


"... 새로운 과학에서는 우주를 작동하는 그런(신적인) 존재가 필요 없었다. 가령 행성의 운동은 관성과 중력의 결과로 설명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새로운 과학에서는 우주를 작동하는 하느님(신)이 필요 없었다... (중력에 대해) '도구주의'적 태도를 지킨다는 것은... 물체가... 운동하는 이유에 관해서는 '불가지론'을 고수하는 것이다... 뉴턴은 중력을 실재론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희망을 드러냈다. [프린키피아]에서 자신이 제시한 수학적 논리와 일치하고, 원격작용 없이 오직 기계적인 상호작용과 연관된 실재론적 설명이 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밝혔다."
- [세계관], <2-20. 새로운 과학, 그리고 뉴턴 세계관>, 리처드 드위트.


아이작 뉴턴은 '본인은 앞선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 세상을 바라보았다'고 말했는데, 케플러의 '고정관념 파괴'와 갈릴레이의 '망원경', 그리고 선배 과학자들의 수학/물리학적 증명 등에 힘입어 근대 과학의 문을 본격적으로 연다. 세계의 운동을 규명하는 '과학'이 더 이상 '신의 의지'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예외 없고', 인간 또는 신적 주체의 개입 없이 '객관적인' '과학법칙'에 의해 세계가 해석되는 세상을 향한 문이다.

세계를 신적인 '유기체'가 아닌 '기계적'이고 '비목적론'적 운동 체계로 파악한 세계관, '과학'의 영역에서 '신'을 몰아낸 근대 과학은 각 분야의 발전을 토대로 만물의 운동을 그럴 듯하게 증명해 왔지만, 결국 그 주요한 믿음으로서 '절대 시간'과 '절대 공간'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그 이후 '양자론' 등의 현대 과학에 의해 '세계관' 자체의 도전에 직면한다.


"공약불가능성... 토마스 쿤의 표현을 빌리면, 서로 다른 전통의 과학자들은 '서로 다른 세계에서 활동한다.([과학혁명의 구조],1962)... 한마디로 한 과학 전통에서 다른 과학 전통으로 옮겨가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진보가 아니다. 한 전통을 서로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전통으로 그저 대체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전통과 뉴턴 전통이 공약불가능하다 해도 우리는 이 두 전통을 중요하게 비교할 수 있다."
- [세계관], <3-25. 과학 이론들은 공약불가능한가?>, 리처드 드위트.


리처드 드위트는 "20세기를 중심으로 한 최고의 과학 발전"(같은책, 2-22. 뉴턴 세계관의 발전)으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양자론', 그리고 '진화론'을 꼽으며, 이 책의 3부에서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 
문과 출신으로 '과학'적 지식이 전무한 나로서는 이들 이론을 설명할 수가 없다. 이 책 또한 '입문서'로서 기본 이론 요약을 중심으로 서술하는데 그럼에도 특히 '양자론'은 어렵기만 하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누가 움직이고 누가 정지해 있는지 구분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닌 관점은 없다"(3-23)는 '상대성원리'와 "진공상태에서 빛의 속도는 측정할 때마다 똑같다"(3-23)는 '광속 불변의 원리'로서 뉴턴식 '절대 시/공간' 개념을 해체했다. 천재 아인슈타인도 '특수상대성이론' 발표 후 모든 운동의 원리로 확대 증명한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는데 1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특수상대성이론'은 '일반상대성이론'에서 물리학 법칙이 모든 기준에서 동일하다는 '일반공변성원리(3-24)'와 '중력'과 '가속도'를 구분할 기준은 없다는 '등가원리(3-24)'라는 요소로 발전한다. 
'상대성이론'은 뉴턴의 '만유인력(중력)'의 신비가 아닌 일직선 운동이 태양 같은 거대한 물체로 인해 '시공간만곡'을 일으켜 우리가 아는 '타원운동'처럼 휘게 된다는 것을 또한 증명했다고 한다. 거대한 우주 차원에서는 우리가 아는 시간과 공간이 휘어지고 비틀어진다. 그러나 '공약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절대 시/공간'은 '상대성이론'으로 '진보'하는 게 아니라 '대체'된다.


"양자론(量子論)이 서양과학과 동양과학이 똑같은 우주관으로 수렴하는 것을 입증한다는 주장... 잘못된 주장이다... 전자와 양성자 등의 아원자입자와 광자, 방사성붕괴 중 방출되는 입자는 분명히 '양자' 실체다... 양자론이 예측과 설명에서 역사상 가장 성공한 이론인 것은 확실하다."
- [세계관], <3-27. 양자론 입문하기>, 리처드 드위트.


현대 '최고의 과학(물리학)'은 단연 '양자론(量子論)'이다. '원자론'처럼 만물은 '양(量)'으로 셀 수 있는 '입자'로 구성된다는 이론인데, 평소에는 '파동'으로 존재하다가 우리가 '측정(관측)'하면 '입자'가 된다. '양자론'에서는 '측정(관측)'과 '중첩'이 주요 개념인데, "기본적으로 파동이 가족을 이룬다는 평범한 사실과 그 어떤 가족이건 구성원들만 적절히 합치면 그 어떤 파동도 생성 가능하다는 놀라운 사실이 '양자론' 수학의 작동 장식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사실의 전부"(3-27)라고 한다. '양자'의 세계에서는 '삶'과 '죽음' 같은 상반된 개념도 '중첩'되기에 '동양철학'을 닮았으나, '양자론'에서는 수학적, 확률적 증명이 필수이므로 저자 리처드 드위트에 의하면 양자론은 동양철학과 다르다. 


"인류는 과거에도 이런 경험을 한 적 있었다. 약 100만년 전, 우리 선조들은 불을 길들였다. 불의 정체를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것을 활용해 문명을 건설했다. '양자 물리학'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양자 세계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과학'은 물론이고 그 밖의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선조들의 불의 원리를 모르면서도 불을 이용했듯이, 우리는 복잡한 '양자 역학'의 미스터리에서 이 문제적 측면을 수십년 동안 그냥 받아들여 왔다."
- [코스모스](2020), <9. 거짓없는 마법>, 앤 드루얀,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2020.



칼 세이건의 뒤를 이어 현재까지 천체물리학의 업적을 다루는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2020)에서도 '양자론'은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9장) 지금 현재의 '과학'임에 틀림없다. 
어렵다고 실망할 것 없다. 과학철학자인 저자는 물론 저명한 천체물리학자 앤 드루얀에게도 '양자론'은 완벽하게 이해되지 못했고, 천재 아인슈타인조차도 '유령같은 양자론'은 보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의 현대 과학은 어렵다. 특히 '양자론'은 정확한 수학적 확률 예측으로 '최고의 과학'이기는 하나, '양자'가 실재한다는 '양자 실체' 외에는 확실한 것이 아직 없다. 멀리 떨어진 물체 사이에 직간접적 연관('국소성', 3-28)이 없이도 확률적으로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마법'과도 같은 '우연성'의 과학법칙을 밝혀내는 것이 현대 '과학'의 역할이고, 이로 인해 '세계관'이라는 거대한 사상의 퍼즐을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것이 '철학'의 임무라는 사실만이 확실하다.
지식(과학)의 날갯짓은 시도 때도 없이 펄럭이나, 지혜(철학)의 여신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


마지막으로 현대과학을 영화 [인터스텔라]에 빗대면, 우주 멀리 광속으로 다녀온 주인공이 상대적으로 늙지 않는 것은 '상대성이론', 블랙홀 너머 공간에서 지구의 예전 시간을 벽을 두고 마주하는 것은 '양자론'의 영화적 표현이 아닐까 지극히 '문과적'으로 비유해 본다.

***

1. [세계관 - 당신 지식의 한계](2018), 리처드 드위트, 김희주 옮김, <세종>, 2020.
2. [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2020), 앤 드루얀,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2020.
3. [철학과 과학자들의 자생적 철학](1967), 루이 알튀세, 김용선 옮김, <인간사랑>,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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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7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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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이 없다면, '페스트'는 여전히.
- [페스트](1947),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민음사>, 2011.




"... 페스트는 모든 경제생활을 파괴했고, 그 결과 엄청난 숫자의 실업자가 생겨났던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 실업자들은 간부직을 위한 충원 대상은 못 되었지만, 막일에 관한 한 그들 덕에 일이 쉽게 되었다. 그 시기부터는 사실 '곤궁이 공포보다 더 절박하다는 사실'을 늘 눈으로 볼 수 있었고, 위험성의 정도에 따라서 보수를 지불하게 마련이고 보니 그 점은 더욱 명백해졌다. 보건과에서는 취업 희망자의 리스트를 마련해 놓을 수가 있었고, 그래서 어디서 결원이 생기기만 하면 그 리스트의 첫머리에 올라 있는 사람에게 통지를 하곤 했는데, 그 사람들은 그 사이에 자기 자신들이 (페스트에 걸려) 결원되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출두하게 마련이었다. 유기 또는 무기 죄수들을 활용하기를 오랫동안 주저해 왔던 지사도, 이렇게 해서 그러한 극단적 조치에까지 가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실업자들이 있는 한은 견딜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 [페스트], <3부(8월)>,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민음사>, 2011.


'코로나' 감염병 사태 중 콜센터 노동자들과 물류센터 배송 노동자들의 전염병 확진이 번질 때 사람들은 그제서야 그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 주목했다. 닭장과도 같은 공간에서 아프든 말든 끊임없이 실적 경쟁을 하고 '남들 쉴 때'도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노동 조건인데, 중요한 것은 이들만의 환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아니 전부가 하청' 또는 도급되거나 '특수고용'된 비정규직이었다. 코로나 이전에도 위험한 일들은 '외주화'되어 있었고 우리 사회는 산재사망률 1위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도 없는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일터에서 죽어 나갔다.
'민주 정부' 들어서자 마자 인천국제공항에서 대통령이 직접 약속했던 '비정규직 제로' 선언의 비밀은 자회사를 통한 '외주화'였고, 직접고용을 통한 정규직화를 요구하면 '공채'나 '시험'으로 어렵게 입사한 소수의 '청년 귀족노동자'들이 단지 자신들도 한때 수많은 '구직 청년'이었다는 이유로 '공정성'을 앞세워 비정규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노노갈등 행태가 지겹도록 반복되고 있다. 
'민주 정부'가 애써 나설 필요는 없었다. '자유시장'이라는 허위의식 아래 사람도 '노동'도 '상품'이며 '공정 경쟁'의 이름으로 '불평등'과 '불공정'이 당연한 것이 된 이 체제를 정치가 굳건히 유지하기만 하면 노동자들은 알아서 서로 갉아먹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전쟁'이든 '혁명'이든, '공황'이든 '역병'이든 모든 '재난'은 무차별적이고 전면적이라 '공평'하고 '평등'할 것 같지만, 체제가 불평등한 만큼 '재난'도 '불평등'하다. 이 체제의 본질은 '자유'를 가장한 '불평등'이기 때문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 왕정을 두 번째로 무너뜨리고 '제2공화정'를 세운 1848년 2월 혁명 후 '부르주아 정부'는 대혁명 시기처럼 시민군인 '기동대'를 창설하는데 '기동대'는 당시 혁명의 주력 노동계급의 기대와는 달리 '부르주아 정부'의 호위대가 되었고 정부가 '하급노동'의 조직과 충분한 공급을 위해 만든 '국민 작업장'은 반대로 그 해 6월 노동자 봉기의 주요 진지가 되었다.
물론, 공화정을 세운 후 권력을 위임받은 부르주아지의 배신과 '반(反)혁명'으로 인해 노동자 봉기는 패배하고 마는데, 이러한 과정은 1987년 우리 사회에서 '6월 시민혁명'의 절반의 승리와 '7~9월 노동자투쟁'의 패배로 반복된다.


"'기동대' 외에도, 정부는 산업 노동자 군대를 자기 주위에 모으기로 결정하였다. 공황이나 혁명 기간에 거리로 내몰린 10만의 노동자들을 장관 마리는 소위 '국민 작업장'으로 불러들였다. 이 거창한 이름 밑에 감추어져 있던 것은 단지 23수의 (저)임금으로 지루하고 단조로우며 비생산적인 토목 공사에 노동자들을 이용하자는 의도 뿐이었다. 이 '국민 작업장'이란 바로 영국의 (빈민구제법에 따른) '노역장'이었다. 임시 정부는 이 '국민 작업장'으로 '노동자들 자체에 대항하는 제2의 프롤레타리아 군대'를 편성했다고 믿었다. 노동자들이 기동대를 오판한 것처럼 이번에는 부르주아지가 '국민 작업장'을 오판하였다. 부르주아지는 '폭동을 위한 군대'를 만들어 낸 것이다."
- 칼 마르크스, [1848년에서 1850년까지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1895.


1947년, 알베르 카뮈는 7년여를 준비한 끝에 소설 [페스트]를 발표했다. 14세기부터 17세기까지 유럽 인구를 절반 가까이 줄였다는 '흑사병(黑死病)', '페스트(Pest)'가 1940년대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의 '오랑'이라는 도시에서 창궐한다는 이야기다. 고전 비극의 형식이라는 '5부' 형식인데 1부는 배경, 2부는 전염 초기, 짧은 3부를 중간에 두고 4부의 절정기를 지나 5부의 결말이다. 제목과 달리 소설이 다루는 것은 '페스트(흑사병)'가 아니라 '추상화'된 '재난'이며 이로 인해 폐쇄되고 고립된 도시에서 시민들의 생활을 기록한 '연대기'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 심리의 '추상화'다.


"그렇다. 페스트는 마치 '추상(抽象)'처럼 단조로운 것이었다... '추상'과 싸우기 위해서는 '추상'을 약간은 닮을 필요가 있다."
- [페스트], <2부>, 알베르 카뮈, 1947.


194X년 어느날 아침, 결말에서 '서술자' 자신으로 밝혀지는 의사 베르나르 리유(리외:Rieux)는 죽은 쥐의 사체를 발견한다. 이후 그는 쥐들의 사체와 건물 수위의 죽음을 진단하면서 확신은 없으나 민관회의 자리를 통해 처음으로 '페스트'의 위험을 조심스레 알린다. 공교롭게도 리유가 처음 죽은 쥐를 발견한 날은 하필 4월 16일이다. 70여 년이 지난 2014년 그날 우리 사회에서는 '세월호'가 침몰했다.


"'그래요, 카스텔.' 그(리유)가 말했다. '거의 믿기지 않는 일이오. 그렇지만 이건 페스트인 게 확실한 것 같습니다.'"
- [페스트], <1부>, 알베르 카뮈, 1947.


카뮈의 [페스트]에는 위와 같은 대목이 많다. 예를 들어, '당신에게 '페스트'가 무엇이냐'는 간접적 물음에, "알아요" 먼저 쓰고는 '리유가 말했다'는 서술을 중간에 두고 "끝없는 패배입니다."라고 이어서 쓰는 문장형태인데, 연극배우도 했다는 소설가의 다소 극적인 서술방식일 수도 있겠다.
또 다른 주요인물인 타루를 비롯하여 페스트 혈청을 만들기도 한 카스텔 등 동료 의사들과의 확인을 통해 일련의 죽음의 원인이 '페스트'라는 확진이 내려진 후 도시는 폐쇄조치에 취해지고 철저히 고립된다. 확진자 격리 뿐만 아니라 도시 밖 사람들과는 물론 죽음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생이별'을 해야 하는 오랑 시민들은 처음에는 구체적인 고민들을 하나 '페스트'가 절정에 치달을 수록 '추상(抽象)'과 싸우게 된다. 그들이 싸우는 대상은 '구체적'인 '페스트'를 넘어 '추상화(抽象化)'된 '재난'이 되고, 리유는 이를 "끝없는 패배"로 규정한다. 
전면적인 대규모 '재난'을 당한 인간은 일단 '패배'한다.


"그때, 나는 깨달았습니다. 나야말로 나의 온 힘과 정신을 기울여 바로 그 '페스트'와 싸운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그 오랜 세월 동안 내가 끊임없이 '페스트'를 앓고 있었다는 것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여전히 부끄러웠고, 우리들 모두가 '페스트'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번 이 유행병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있다면 당신들 편에 서서 그 병과 싸워야 한다는 것 뿐입니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본래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되기로 했고 '겸손'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결국... 내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성인(聖人)'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내가 아는 단 하나의 구체적인 문제는 사람은 '신(神) 없이 '성인(聖人)'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 [페스트], <4부(타루의 고백)>, 알베르 카뮈, 1947.


전염병 초반부터 꼼꼼한 기록과 관찰을 해온 동료의사 타루는 4부에서 리유에게 본인의 삶과 생각을 독백처럼 털어놓는데, 그로 인해 두 사람은 '사무'적 관계를 넘어 '우정'을 확인하고 의사의 '특권'을 남용하여 금지된 해수욕을 함께 하면서 잠시 '일탈'을 하기도 한다. 결국 타루도 '페스트'의 희생자가 되는데, 살아남아 '서술자'로 나중에 밝혀지는 주인공 리유는 본인의 아픈 부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과 이별을 겪으며 '끝없이 패배'한다. 

위에서 길게 인용한 '타루의 고백'은, 내가 보기에 소설 [페스트]를 통해 알베르 카뮈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일상과 자신의 충실한 '직무' 과정에서 타인의 삶에는 무관심하며 오히려 타인의 불행을 방조 및 조장을 하기도 한다는 것. 서로가 서로를 '이방인'으로 만드는 우리의 일상이 바로 '페스트' 자체이며, '페스트'든 '코로나'든 아니면, '전쟁'이든 '혁명'이든 이 모든 '재난'은 이를 일깨우기 위해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소환된다는 것이다.
14~17세기 유럽의 '페스트'를 본 당대 사람들이 '신의 분노'를 떠올렸다면, 20세기 프랑스 '무신론자' 알베르 카뮈는 "신(神) 없는 성인(聖人)"을 꿈꾸고 있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1942년 소설 [이방인]의 뫼르소가 아라비아인을 총으로 쏜 이유가 어머니가 죽은 후 내리쬐던 해변가 지루한 햇빛의 재현 때문이었는지, 아라비아인이 꺼내든 것 같은 칼날에 반사된 그 햇빛이었는지 그 아라비아인이 단도를 꺼낸 게 사실이었는지 자체도 모호하지만, 결국 '이방인' 뫼르소는 "내가 사형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증오의 함성으로써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 뿐"이라는 독백으로 '이방인'임을 벗어나고자 했다.
카뮈 번역의 권위자인 옮긴이 김화영 교수의 <작품 해설>에 의하면, 리유가 '페스트'를 "끝없는 패배"로 표현하는 것처럼 [페스트]의 표면에 드러난 '거부'와 '부정'은 인간 삶의 '긍정'이 숨어 있고, '반항'은 결국 '행복에 대한 조바심'이 전제되어 있다고 한다. 실제 44세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카뮈는 수상식장에서 본인은 우선 '부정'을 29세때 소설 [이방인]으로 표현하고자 했고, '긍정'을 34세때 소설 [페스트]로 표현하고자 했다는 소감을 밝혔다고 한다.


"시내에서 올라오는 환희의 외침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리유는 그러한 환희가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 기쁨에 들떠 있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 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 주기 위해서 또 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페스트], <5부>, 알베르 카뮈, 1947.


카뮈가 7년 넘게 '작가 수첩'으로 기록하며 준비했다는 [페스트]의 모티브는 '질병'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사'였다고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방인'인 세상에서 갑자기 닥친 '대참사'의 재난을 맞은 인간들의 군상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글쎄,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이 아니었다면 독자들이 알기 쉽지 않을 정도의 독백체와 무심한 문장으로 가득한 소설은 독자들이 듣든 말든 무시로 서술을 이어가고 작가는 어느 입장도 주장하려 하지 않는다. '서술자'인 리유를 통해 '구체적'인 '페스트'의 '추상화'된 '재난'적 '연대기'를 이어갈 뿐이다.


'성공적인' 코로나 'K-방역'을 보며, 가끔 생각한다. 만일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후 다수 억울한 사람들의 싸움이 없었다면, 무도한 정권을 타도할 수 있었을까. 분노한 다수의 '촛불 항쟁'을 등에 업고 집권한 '민주 정부'가 과연 코로나 '재난'에 맞서 이렇게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 결국 '민주  정부' 지배자들을 눈치보게 하고 움직이도록 것은 다수의 '민주적 위력'이라는 생각 말이다. 
아직까지 진실 규명이 안된 '세월호 참사'를 보며 희생자들의 명복을 다시금 기원한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다르듯, '코로나' 이전과 이후는 다르다고 한다. 이 재난이 지나간 후 대규모 실업과 불황이 예상되기도 하는 지금, 우리 안의 '페스트'인 이 '불평등' 체제의 대대적인 전환 또한 더욱 절실히 기원한다. 

더 이상 일터에서 함부로 쫓겨나거나 죽어 나가지 않고, 다수의 '노동'이 진심으로 존중되는, 뿌리 깊은 차별과 '불평등'을 극복하는 아주 새로운 '포스트 코로나' 체제로의 '대전환'.
이 길이 아니라면, '페스트'든, '코로나'든 '추상화'된 '재난'은 그 어떤 형태로든 여전히, 그리고 끝없이,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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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페스트(La Peste)](1947),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김화영 옮김, <민음사>, 2011.
2. [이방인(L'Etranger)](1942),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박용철 옮김, <덕우출판사>, 1990.
3. [프랑스 혁명사 3부작], <1부.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칼 마르크스(Karl Marx), 임지현/이종훈 옮김, <소나무>,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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