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Friday The 13th (13일의 금요일)(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
Paramount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문동 크리스털 호수'의 추억 : 1990~1991

고등학교 입학한 1990년부터 학교 운동장 구석 철봉대 밑에서 친구들이 모였다. 각자 다른 중학교 친구들을 한 둘 데리고 나왔는데, 그 중에는 국민(초등)학교 동창들도 있었고 중학교 때는 말도 못 걸어본 친구도 있었으며 한 살 많은 재수생 형들도 있었다. 한창 성장기였을 고등학생이 되어 친구들도 새로 사귀고 싶었고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일대에서 서로서로 교차되는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시키는 아주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오랜 친구, 생판 처음보는 건너 동네 휘경동 친구, 전라도에서 올라온 재수생 '형'들 포함 약 열댓 명이 방과 후 모여 놀았고, 1학년을 마친 겨울에 북한산을 오르며 조직을 출범시켰다. 이름하여, 경희고 '철봉파'다.

우리들은,
'노는 애들'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학교를 빠지지 않고 잘 다녔다. 그리고 조숙한 몇 명을 빼고는 부모님 말씀을 잘들어 술과 담배는 3학년 여름방학 또는 '백일주'까지 참았던 착한 학생들이 다수였다. 학교 끝나고 철봉대 밑에 모여 체력단련을 하다가 '스타워즈' 오락실에 마지못해 잠시 들렀더라도 오락은 조금만 하고 야자를 위해 다시 학교로 뛰어가던 어찌보면 '모범생' 무리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다수의 이런 '금욕주의'적이고도 '청교도'적인 성향에 반발한 조숙한 몇 명은 따로 더 친하게 모여 당구장 등으로 내뺐는데, 그래도 이 선진적 조직원들로 인해 스무살을 앞둔 나머지 '청교도'들은 술과 담배 및 당구 등을 빠르게 전수받을 수 있었다.

당시 우리들에게 토요일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천국 같은 시간이었는데, 평일의 모범적 삶을 벗고 고스톱과 포르노비디오 등을 아주 가끔 섭렵할 수 있었다. 대부분 넉넉치 못했던 우리들의 부모님들은 맞벌이가 많았고 토요일 방과후는 친구들 빈집에서 라면을 끓여먹고 고스톱을 배우거나 비디오 시청을 했다. 하루는 고스톱 치다가 친구 형이 일찍 들어와서 노름판을 뒤집고 친구의 싸대기를 몇 번 돌려대기도 했다. 포르노비디오는 소문만큼 그리 많이 실물로 유통되지는 않았는데 비디오 플레이어 있는 빈집 친구 집에서 대부분은 천원 짜리 몇 장 모아 라면 사고 비디오 대여점에서 성인비디오를 빌려보기도 했다.

사실 금욕적인 우리들은 부끄러워서 '성인물'을 잘 빌리지도 못했다. 그래서 단골 단체관람물은 '공포영화'였다. 당시는 영화 쟝르 따윈 관심없었으나 보통 '슬래셔 무비(slasher movie)'로 일컬어지는 영화들은 모종의 '규칙'이 있었다. 섹스를 한 청소년들은 연쇄살인마의 첫 번째 희생양이 되는 불문율. 우린 희대의 악마들을 보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공포영화' 비디오를 빌린 이유는 '젖소부인 바람났네'나 '김밥부인 옆구리 터졌네' 등의 불후의 역작들을 차마 빌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난 추억한다.

1990~1992년 고등학교 시절의 토요일 오후 하면 가장 기억나는 건, 둘러앉아 끓여먹던 '삼양라면'과 '13일의 금요일'이다.

그리하여 나도 한 번,
"제이슨 얘기를 하겠다." ([13일의 금요일 2](1981) 대사 중)

영화 [13일의 금요일]은 미국 공포영화, '슬래셔 무비'의 대표작으로 1980년 감독 숀 커닝햄이 만들었다. '슬래셔 무비'는 그냥 무턱대고 막무가내로 패고 찌르고 베고 잘라서 사람을 죽이는 공포영화다. '13일의 금요일'이 제목이라 무슨 종교적이고 비의적이며 신비로운 메시지가 있을 거라 보면 실망한다. 예수가 십자가 못 박힌 날이 '13일의 금요일'이네, '13'이라는 숫자가 '악마'를 상징하네 어쩌네 하는 말들은 다 미신이고 종교와 1도 관계 없다. 그냥 불길한 기운 느껴지면 제이슨이 와서 칼이나 도끼로 팬다는 뜻이다. 이유는 알 필요 없다.

이유가 없다 했지만, 그래도 영화인데 스토리는 있어야겠다. [13일의 금요일]에 나오는 희생자들은 대부분 당시 우리들과 같은 청소년이었다. 우린 아직 애기였는데 미국애들은 이미 어른이었고 이성이랑 할 짓 못할 짓 다하고 있었으니, 눈으로 대리만족을 한 후 우린 걔들을 처단해 주는 제이슨 편이었다. 
그러나 제이슨은 어린 시절 선천적 기형으로 인해 '왕따'를 당했던 불우한 어린이었으며, 소풍가서 크리스털 호수에 빠졌으나 선생님들을 포함 아무도 구해주지 않아 익사하고 만다. 이후 불쌍한 제이슨의 친구 아닌 동창들은 아직 제이슨은 죽지 않고 밤에 돌아다닌다는 괴담을 퍼뜨렸고 제이슨의 엄마 파멜라는 이 괴담을 이용해서 제이슨을 죽게 만든 사람들을 하나씩 처단한다는 내용이 [13일의 금요일] 1편이다. 2편으로 이어지는 이후 이야기는 예상하다시피 실제로 죽지 않은 제이슨이 뭘 먹고 컸는지 영양과다의 체력으로 나타나 조숙한 남녀 불량청소년들에게 참교육을 실현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그 형식은 매우 끔찍하고 처참하므로 혈기왕성하고 방자하기 그지없었을 우리가 보기에도 당최 바람직하다 할 수는 없었다.

젊은 남녀의 섹스 장면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즈음에 우리는 제이슨의 등장에 더 치를 떨었는데, 어떤 상해를 입어도 계속 일어나는 그 불사신의 맷집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제이슨은 격투 게임의 캐릭터로 나와도 손색이 없었으나 '90년대 당시 우리가 동전을 쏟아붓던 오락실 아케이드 격투게임에서는 너무 최강이라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역시나 우리의 자식뻘 후배들의 게임 캐릭터로 등장했다는데, 인터넷이 활성화된 나중에야 알았지만 [13일의 금요일]은 미국에서는 영화는 물론 만화와 드라마, 게임 등으로 진화한 '상품'이었단다.

'슬래셔 무비' 또 하나의 공식은 다소 가련해 보이는 여주인공이 결국 지긋지긋한 제이슨을 무찌르고 살아남으면서 영화가 끝난다는 거다. 정신적으로만 교감하던 청순남녀 중 든든한 남자친구는 제이슨의 마지막 희생자가 되고 그 과정에서 에너지가 다 떨어진 제이슨은 여주인공에게 항상 얼떨결에 응징당하는 마지막 엔딩의 무한반복인데, 제이슨은 팔이 잘리고 눈이 찔려도, 불에 타고 물에 빠져도 다음편에 다시 살아 돌아온다는 관객들의 믿고싶지 않은 예감을 항상 남긴다.

제이슨의 트레이드 마크는 아마도 2편인가 3편부터우연히 득템한 아이스하키 마스크일 게다. 아이스하키 전공 체육선생님께서 전파한 우리학교 체벌도구의 대명사 아이스하키채 덕분에 우리들은 그 스포츠 종목을 싫어했기에 제이슨의 마스크가 더 지겨웠던것 같기도 하다. 그외 어디서 주웠는지 모르는 큰 망나니칼과 주위에서 아무렇게나 주운 왕도끼 등은 제이슨의 빈손을 허전하지 않게 했던 것 같다.
아무튼, 본의 아니게 친구들과 섭렵하게 된 [13일의금요일] 이후로 [나이트메어] 등등의 경쟁작들도 일부 보기는 했으나 모든 것이 그렇듯 우리들의 '집단관람'은 어느새 시들해지고 지긋지긋하던 제이슨의 무한반복 환생쇼도 7편 정도를 끝으로 우리의 청소년기와 함께 사라져갔다. 나는 개인적으로 6편인가 7편에서 제이슨이 본인이 환생해 나왔던 크리스털 호수 밑바닥에 쇠사슬로 묶여 봉인되었을 때 '그동안 고생 많았을테니 이제 진정 안정을 취했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랬건 것 같다.

나중에 제이슨은 자본주의의 부름에 의해 다시 명부를 열고 지상으로 나와 [나이트메어]의 프레디와도 한 판붙기도 하고, 온라인게임에도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지만, 나와 우리 친구들은 이미 크리스털 호수를 떠난 후였다.

***

"30년지기 '철봉파' 친구들아, 사랑한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술관에서 만난 전쟁사 - 승자와 패자의 운명을 가른 역사의 한 장면
이현우 지음 / 어바웃어북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쟁의 역사', '역사의 전쟁'
- [미술관에서 만난 전쟁사], 이현우, <어바웃어북>, 2018.



"그러나 정작 나라 이름인 '프랑스(France)'는 '문화'적인 단어보다는 상당히 호전적인 단어에서 비롯됐다. '프랑스'의 어원이 되는 '프랑크(Frank)'란 단어는 원래 '도끼'란 뜻의 '프란시스카(francisca)'에서 나왔는데, 이는 중세시대 전쟁터에서 살상용으로 던지던 '전투용 도끼'를 의미하는 말이다. 이 '도끼'를 주로 사용하던 종족을 '프랑크족'이라 불렀는데, 이들이 오늘날 '프랑스'의 기반이 된 '프랑크' 왕국을 세운 민족이다."
- [미술관에서 만난 전쟁사], <1장>, 이현우.


서기 5세기 서로마 말기에는 이른바 '민족 대이동'으로 북쪽에서 '게르만'들이 따뜻하고 풍족한 남쪽으로 내려와 '용병'이 되어 점차 '제국'을 잠식했다. 이는 소규모 이동집단을 이루던 북방 민족들이 나름의 '사회발전단계'에 따라 정착과 농경을 주업으로 하게 되는 과정에서 더 중요한 건 인구가 급증하면서 발생한 것일 수 있고, 동쪽의 아시아 '제국'들에게 밀린 북방 '흉노' 등의 유목민족들에게 연쇄적으로 밀려 내려온 것일 수도 있겠다. '고트'족이든 '게르만'이든 아무튼 이 '프랑크'족이 로마에서 '용병'이 된 이유는 25년 '만기제대'하면 그 가족들이 로마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래부터 시조 로물루스 무리배들의 전쟁과 약탈을 통해 건국한 '군부정권' 로마의 전술은 전차는 물론 보병대형을 갖춘 조직형 전투였는데, 전차는 '직진' 밖에 모르는 약점이 있었고 보병 '진법'은 결국 원거리 공격전술에 무너지게 되었던지 북방에서 온 '프랑크'족의 '도끼' 앞에 속수무책이었던 것 같다. 로마는 물론 이슬람권 '제국'들의 전투규칙은 '야만인'들이 던지는 '도끼', 즉 '프랑크(frank)'로 인해 연이은 패배를 당했단다. 물론, 이 '프랑크'들도 아시아 북방에서 작은 말을 몰고 360도 활을 쏘던 유목민들의 기동력에 밀려 쫓겨 내려왔던 것이지만 말이다. '도끼'를 무수히 집어던져 보병대형을 무너뜨린 후 뛰어들어 칼과 도끼로 난자하는 이 방식은 아마도 더 원거리의 화포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강력한 '전술'이었겠지만, '문화'를 도입한 중세 유럽이 되면 '랜스(lance)'를 사용하는 '기사'의 비효율적 전술로 전환된다. 중세 유럽의 '기사'는 아시아 북방의 '철기병'과 달리 무거운 갑옷과 딸린 장비로 인한 기동력 '제로'였고 11세기 십자군 전쟁에서는 사라센의 기동력에 또 다시 무너진다. 물론, 이 모든 구닥다리 전술은 화약과 총의 도입으로 다 싹쓸이 당하겠지만 말이다. 
미술이 아닌 사학 전공자로 유럽 미술관을 다니면서 [미술관에서 만난 전쟁사]를 쓴 이현우 기자는 '프랑크'족의 이 '도끼'가 우리말로 '돌직구'라고도 하는데, 영어로 "Frankly speaking"은 "솔직히 말해서"로 남아 있다. 재미있는 대목이다.


"'랜스(lance)'는 원래 기병들이 들고 다니는 창을 일컫는 말이었다. 흔히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에서 볼 수 있는 기사들의 마상 창 경기에서 말을 탄 기사들이 들고 나오는 기다란 창이 바로 '랜스'다... '프리랜서(free-lancer)'란 이 '랜스'에 소속되지 않은, 자기 혼자 왕이나 귀족과 일대일로 계약을 맺고 전쟁터에 나가는 '용병'을 일컫는 말이었다."
- 이현우, 같은책, <4장>.


'도끼(frank)'나 던지던 유럽인들이 기독교 이데올로기로 '문명화'된 중세는 '기사'의 시대였다. '랜스'라는 창과 갑옷으로 중무장한 그들은 혼자가 아니었다. 튼튼한 중무장 말도 몇 마리에 시종도 몇 명 따랐으며 전투에서는 보병부대도 거느렸다. 지금으로 치면 '장교'나 지휘관일 텐데, '랜스'는 '소규모 부대'를 이르는 말이 되었다. '기업'을 뜻하는 '컴퍼니(company)'의 어원이 이 '랜스'들을 모은 '용병 집단'이었다. 이 '기업(company)'들은 국왕이나 교황, 봉건영주들과 '자유 계약'을 맺고 '용병'인 '랜스'들을 보냈는데, 아마도 '기업'들이 서로 짜고 대충 전투 시늉만 내면서 고용자들로부터 '계약금'만 받고 '먹튀'도 했단다. 거대 기업들의 본질은 '경쟁'인 한편으로 '담합'이 될 수 밖에 없다. 자본주의 독점체제에서 최대로 강화된 이 '시장'에서 '경쟁'과 '담합'은 쌍둥이 형제다. 예나 지금이나 '자유 시장'은 허상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중세의 '컴퍼니'에서 독립하여 혼자 '계약'을 하던 '랜스'가 바로 '프리랜서(free-lancer)'다. [군주론]의 저자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이 '사기꾼' 같은 '프리랜서'들을 경계하라고 '군주'에게 제안했다는데, 마키아벨리식 '군주'의 군사력은 '국민군' 또는 '민병대' 형식이었지 '귀족'적 '기사'들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프리랜서'들은 유럽의 첫 종교전쟁이었던 17세기 초 '30년 전쟁'에서까지 활약했다.  물론, 고용주들은 여전히 '사기'를 당했단다.

저자 이현우는 미술관에서 '전쟁의 역사'를 발견하고 그림들 속에 담긴 전쟁 관련 내용들의 역사를 엮어간다. 여성의 전유물인 코르셋과 스타킹은 군복을 입기 위해 고안된 남성의 착용물이었고 '허쉬 초콜릿'은 고대 '육포'와 같은 'D-레이션'이 시초이며 전쟁의 역사를 바꾼 '총'이 처음에는 장전시간이 오래 걸려 '칼'과 '창'에게 무참히 깨진 이야기 등 사소한 것들로부터 시작되는 '역사' 이야기다. [방구석 미술관]처럼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편한 방식도 있겠지만, '전쟁'이나 '음식'처럼 인류에게 친숙한 테마를 통해 '역사'를 돌아보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동북아시아에 도착하기 전에 고추는 어떤 여정을 거쳤을까? 중국 책을 읽다보면 남아메리카에서 태평양을 가로질러 필리핀 해역에서 북상하여 타이완 건너편 취안저우에 위풍당당하게 다다르는 항해도를 이따금 볼 수 있다. 그러나 고추가 갓 전파되었을 시기에 이렇게 태평양을 횡단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유럽을 경유하는 것 말고는 길이 없었다. 여하튼 중국, 한국, 일본이 고추가 마지막으로 전파된 지점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 [혁명의 맛], <9. 고추와 쓰촨 요리의 탄생>, 가쓰미 요이치.


인류의 '문명'은 '불'의 사용에서 시작한다. 서양의 프로메테우스나 동양의 신농씨가 '불'을 전수했고 우리 '부여(불이)'족과 중근동 조로아스터 등이 '불'을 숭배했던 유사 이래 많은 것이 발전했지만 그 중 최고는 '음식'의 발전이다. '생식'을 한 후 나머지 시간 동안 '소화'를 시키느라 아무 것도 못했을 원시 인류는 '화식'을 통해 '소화'를 금방 끝내고 나머지 시간에 '노동'을 하여 문명을 건설했다는 미국 인류학자 리처드 랭엄의 분석은 설득력 있다. '음식'을 만들어 먹는 [요리 본능] 또한 역사를 이끄는 힘으로 '요리의 역사'도 '전쟁' 못지 않게 무시못할 역사의 주제다. 이 모든 것은 '과학'의 역사와 맞닿는다. 

일본의 미술감정가이자 요리평론가인 가쓰미 요이치는 중국 요리를 주제로 역사를 돌아보는데, 이 중 마오쩌뚱이 "매운 것을 먹지 않으면 혁명을 할 수 없다"고까지 말한 것처럼 한-중-일 아시아 삼국이 원래 매운 것을 먹어왔던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 또한 '역사'다. 중남아메리카에서 나온 고추씨가 어떤 경로로 아시아에 유입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16세기 네덜란드에서 일본으로 유입된 '음식' 고추가 임진왜란 '전쟁'을 통해 조선에 들어왔을 수도 있고 유럽에서 인도까지 전파된 고추가 인접 지역 사천성(쓰촨)으로 도입되어 '사천 요리'가 매운 것일 수도 있다. 동아시아에 고추를 '전파'한 일본은 여전히 '매운' 맛을 모르니 앞으로 '역사의 매운 맛'을 보여주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아무튼, '음식'의 발전과 이동경로를 따라 '역사'를 살피는 것도 흥미로운데, '매운 혁명'을 했다는 중국의 '삼국지' 영웅들은 '매운' 맛을 몰랐으며, '작은 고추'를 뽐내며 신라면을 흡입하는 조선인들의 17세기 선배 실학자 [지봉유설] 이수광은 우리가 하루도 없이 못 사는 '고추'를 '독초'라 썼단다. 


"무용지물 전함이었던 '야마토'의 최후는 비참했다. 1945년 오키나와로 미군이 몰려오자 '야마토' 전함은 마지막 임무를 부여받았다. 오키나와 해안에 도달해 고정 포대 역할을 하며 장렬히 전사하라는 것이다. 패전이 확실시된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면목이 없으니 자살을 강요받은 셈이다. 적재된 연료도 오키나와까지 편도로 갈 만큼만 채워졌다고 한다... 전함 '야마토'는 일본을 비롯한 이른바 군국주의 전쟁광들의 페르소나일지도 모르겠다. 전쟁광들은 늘 대의를 위한 희생을 강요했고 강요당했다. 전함 '야마토'처럼 말이다."
- 이현우, 같은책, <2장>.


중학교 어린 시절에는 군부독재 '파시즘' 체제에 살아서 그런지, 2차 대전에서 독일의 '킹타이거' 전차와 일본의 '야마토' 전함, 항공모함 '아카기' 따위가 그렇게 멋져 보였다. 우리 '삼국시대'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하고 기댈 곳 없던 '왜'가 '일본'이라는 국명을 채택하고 '독립'한 시기의 '야마토(大和)' 정권은 그들의 '근본'일텐데 세계 최대 전함 '야마토'는 2차 대전 당시 군국주의 일본 GDP의 1%나 쏟아부은 전함이다. 그러나 너무 커서 기름만 많이 먹고 느리며 일본 최초 '3연장 주포'는 포신 사이 거리가 너무 가까워 표적도 못 맞출 뿐더러 발사된 포탄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아무도 몰랐단다. 결국 최고위층 연회장이자 호텔로 쓰이던 중 태평양 전쟁 최후 해전에서 총알받이를 하다가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도끼'를 던지며 '제국'을 후리던 '프랑크', 최고의 기사 '랜스'들을 조직하여 절대권력자들과 계약하던 '컴퍼니', 세계 최대의 '전함호텔 야마토' 등 '전쟁의 역사'. 지금부터 5세기 전까지만 해도 '독초'였던 고추 없이는 지금은 하루도 못 사는 우리 '음식의 역사'는 매우 흥미롭다. 
그러나 이 '역사'를 고정된 형태의 흥미거리로만 만난다면, 각자의 '역사'는 그 자체가 전쟁터다. 역사의 흥미로운 테마로서의 '전쟁'과 '음식' 등의 전장에서 '역사'를 이끌어 온 다수의 입장에 서서 그 경향성을 설정한 '역사의 전쟁'은 "원래 우리 역사는 이런 것"이라며 그 역사를 사유화하려는 소수 지배자들과의 싸움이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 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 1848.

***

1. [미술관에서 만난 전쟁사], 이현우, <어바웃어북>, 2018.
2. [방구석 미술관], 조원재, <블랙피쉬>, 2018.
3. [요리 본능(Catching Fire)](2009), 리처드 랭엄, 조현욱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1.
4. [혁명의 맛](2009), 가쓰미 요이치, 임정은 옮김, <교양인>, 20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림 속 천문학 - 미술학자가 올려다본 우주, 천문학자가 들여다본 그림 그림 속 시리즈
김선지 지음, 김현구 도움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별'이 된 '미술가들'과 '다수대중'의 '집단해석'
- [그림 속 천문학], 김선지/김현구, <아날로그>, 2020.



"... 모든 별들이 저마다 빛을 가지고 있듯이 그가 남긴 것은 오늘날 사람들에게 감동이 되고 의미가 된다는 점에서 고흐는 자신만의 빛을 낸 하나의 '별'이 아닐까?... 고흐는 우리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또 하나의 유산을 남기고 떠난 '별'이다."
- [그림 속 천문학], <2-7>, 김선지/김현구, 2020.

"미술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 [서양미술사], <서론>, 에른스트 곰브리치, 1950.


'별'은 아주 오랜 고대부터 인류인 '자기'가 발딛고 있는 땅과 대비되는 저 하늘 위의 '타자'로서 '연구'의 대상이었고 한편으로는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천문학'은 이미 '점성술'로 '타자'인 '자연'을 연구하는 고대 인류 최초의 '과학'이자 한편으로 '신화'였다. 근대 예술의 '부흥' 운동으로서 15세기 '르네상스'는 고대의 '이상적'인 미(美)를 복원하려는 인간의 깨우침이었고 그러므로 카톨릭을 벗어나 고대 신화가 주요 테마가 되었는데, '천문학'과 '미술사'의 만남은 필연이다.

미술사학자 김선지와 천문학자 김현구는 '르네상스' 이후 '미술사'와 '천문학'을 아우르며 <미술학자가 올려다본 우주, 천문학자가 들여다본 그림>이라는 부제로 [그림 속 천문학]을 엮는다. 저자들은 실제로 부부인데, '미술사'와 '천문학'의 결합은 멋지게 어울린다. '미술'도 '별'도 좋아하는 내게는 참 기다리던 만남이기도 하다.

1부는, 태양(아폴로/Apollo)-수성(헤르메스/Mercury)-금성(아프로디테/Venus)-달(아르테미스/Diana)-화성(아레스/Mars)-목성(제우스/Jupiter)-토성(크로노스/Saturnus)-천왕성(우라노스/Uranus)-해왕성(포세이돈/Neptune)-명왕성(하데스/Pluto) 등 태양계의 별들에 관한 천문학적 설명과 이 별들이 상징하는 고대 그리스 신화의 내용을 담은 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태양계의 항성과 행성, 위성들의 작명은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했는데 제우스의 별인 목성의 위성들은 그의 여성들인 이오, 유로파 등으로 이름 지어졌다. 1부만 읽어도 그리스 신화와 태양계는 한 바퀴 구경이 된다.

2부는, 르네상스 이후 근대 '미술가'들과 '별'에 관한 <열전(列傳)>이다. UFO 이야기도 있고, '별'을 특히 동경했던 불우한 천재 빈센트 반 고흐도 있다. 오스트리아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미술'의 역사는 '미술가'들의 역사라고 규정하는데, 이 혁신적 '미술가'들은 하나하나가 빛나는 '별'들이었다.
곰브리치가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혁신'적으로 본 미술가는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 1267~1337)다.


"미술사 책에서는 대개 조토와 더불어 새로운 장(章)을 시작하는 것이 통례이다... 천년 동안 이와 같은 것이 만들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조토는 평평한 평면에서 깊이감을 느끼게 하는 기술을 재발견한 것이다... 피렌체의 화가 조토는 미술의 역사상 완전히 새로운 장을 개척하고 있다. 그의 시대 이후로 처음에는 이탈리아에서, 그리고 뒤이어 다른 나라에서도 '미술사'란 위대한 '미술가'들의 역사가 된 것이다."
- [서양미술사], <10. 교회의 승리 - 13세기>, 곰브리치.


기존 중세미술은 평면에 주요 '성상(이콘:Icon)'을 부각시키는 것이 특징인데 조토는 이 평면의 2차원으로부터 입체의 3차원을 처음 도입한 화가다. 그는 이후 15세기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인데 입체와 원근법 등의 기초는 그의 '발명'이 아닌 '재발견'이다. 고대 인류가 이미 바라본 관점이었을 것이며 조토는 이를 미술에 도입한 '혁신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조토는 기존에 신적이고 환상적인 존재였던 '별'을 현실적으로 표현한 최초의 '미술가'이기도 하다. 예수탄생의 순간 동방박사 경배 시 떠오른 '성상'으로서 '성스러운' 별이 아닌 핼리혜성을 최초로 그린 그를 기려 1980년대 핼리혜성 탐사선 중 하나의 이름은 '조토'가 되었다.


"... 진정한 '미술가'라면 미술의 새로운 원칙을 철저하게 이해하고 그 원칙의 유용성에 대해서 자기 나름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충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독일의 위대한 '미술가'인 알브레히트 뒤러의 작품을 통해서 이러한 극적인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그는 평생동안 미술의 장래를 위해서 이 새로운 원칙들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동판화에서 뒤러는 미술이 자연의 모방을 추구하기 시작한 이래로 고딕 미술의 발전을 총합하고 완성시킨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의 마음은 이탈리아 미술가들이 부여한 새로운 목적에 고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 [서양미술사], <17. 새로운 지식의 확산 - 16세기초 : 독일과 네덜란드>, 곰브리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대표적인 이탈리아 르네상스 거장들은 대규모 아카데미 조직을 양산했고, 북유럽의 화가들은 남유럽 이탈리아 유학을 통해 르네상스 정신을 전유럽으로 확산시킨다. 독일지역 '자유도시' 뉘른베르크의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 : 1471~1528)는 당시로 보면 '국제주의자(cosmopolitan)'였고, 최초의 '상업적' 미술가였으며, 북유럽 고딕과 남유럽 르네상스를 융합시킨 또 하나의 '혁신'적 '미술가'다. 20세기 독일 출신 미국 미술사학자 에르빈 파노프스키는 그의 '도상학(도상해독:iconography)'과 '도상해석학(도상연구:iconology)'을 통해 뒤러의 작품 [멜랑콜리아1]과 [갈림길에 선 헤라클레스]를 분석한다. 미술사학자 신준형은 사실 '도상학'과 '도상해석학'의 경계는 모호하고 구분도 어렵지만, 그림 속 상징의 '해석(전형:Type)'을 넘어서 당대의 문헌사적 분석을 통해 '문화적 징후'까지 읽어냄으로써 '자연의 질서(cosmos)'에 비견되는 '문화의 질서(tabula)'를 구축하려는 파노프스키의 '철학'적 시도는 미술사가들이 "넘어야 할 큰 산"이라고 평가한다. 파노프스키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생애와 예술](1943)에서 뒤러의 [멜랑콜리아1]을 화가 자신의 '정신적 자서전'으로 본다. 후견인에 의지하지 않고 대량제작이 가능한 판화와 화가 고유의 '모노그램'을 통해 미술을 대중화하면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독립'된 '미술가'였던 뒤러는 그만큼 자부심이 강했다. 북유럽 르네상스를 이끌던 그는 수학에도 능했고 세계의 이치를 고민하는 예술가의 반열에서 자신을 거의 날개달린 신이나 천사의 지위로 위치짓는다. 좌측 상단의 작품 제목 위로는 여지없이 기독교적 공포의 상징인 혜성이 자비의 상징인 무지개 사이로 떨어지고 있다. 파노프스키의 '도상해석학'에 따르면 뒤러의 [멜랑콜리아1]은 '신'의 반열에 오른 "고뇌하는 예술가의 자화상"이다.
물론, 파노프스키식 '해석'의 '권력'은 다수 대중의 자유롭고 다양한 '해석'에 의해 필연적으로 깨지겠지만 그의 뒤러 '해석'이 그래도 일리는 있어 보이기는 하다.


"... 북유럽 사람으로 카라치나 카라바조 시대 로마의 분위기를 가장 직접적으로 접한 화가가 있었다. 그는 바로 플랑드르 출신의 페터르 파울 루벤스... 그 이전의 플랑드르 화가들은 대부분 작은 그림만을 그렸다. 그런데 그는 이탈리아로부터 교회와 궁전을 장식하기 위한 거대한 화면을 선호하는 취향을 플랑드르에 도입했는데... 그는 거대한 화면 속에 인물들을 배치하고 전체 효과를 높이기 위해 빛과 색채를 구사하는 기술을 공부했다... 마술사와 같은 그의 솜씨는 모든 것을 생기발랄하고 강력하고 유쾌하게 살아숨쉬는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 이전의 티치아노보다도 한층 더 루벤스는 붓질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것은 소묘적인 수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회화적인' 수단에 의서 생겨난 것... 고전적인 아름다운의 '이상화'된 형태가 그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 [서양미술사], <19. 발전하는 시각 세계 - 17세기 전반기 : 가톨릭 교회권의 유럽>, 곰브리치. 


뒤러가 공방을 통해 '대중화'된 상업 판화를 팔아 '독립 예술가'로 성공한 북유럽의 다른 지역 플랑드르는 한참 후 19세기 '사실주의' 화풍의 지역으로 다시 부각되지만, 17세기 '바로크' 대표화가 페터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 1577~1640)의 고장이기도 하다. 루벤스는 대단히 사교적이고 거대한 조직력을 갖춘 화가로 당대 고위층의 요청에 따라 규모가 큰 그림도 많이 그렸다는데, 도제들이 그린 밑그림에 그의 '붓질'이 터치되면 그림은 활력과 생기를 얻었단다. 그는 이전 세대인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 등의 르네상스 아카데미즘처럼 양식화될 수 없는 17세기 '바로크' 화가다. 곰브리치에 의하면 '바로크'는 그 양식의 특징을 식별하기가 어렵다. '바로크'라는 용어 자체가 '터무니 없다' 또는 '기괴하다'는 의미로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눈에 이해할 수 없는 신(新)양식이었고, 이후 '인상주의'처럼 기득권층이 신진층을 비꼬는 말이었다. 그러나 '미술'을 양식화하는 것에 반대하는 곰브리치가 보기에는 이처럼 자유분방한 '미술가'들이 '혁신'을 통해 '미술사'를 이끌어 왔다. 곰브리치에게 최고의 예술사조는 특정화되지 않는 '모더니즘'이었다. 

독일의 미술사학자 하인리히 뵐플린의 저서 [미술사의 기초개념](1915)은 르네상스에서 바로크로 이행하는 특징을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1. 선적인 것(소묘) - 색채적인 것(회화)
2. 평면성 - 깊이감
3. 폐쇄적 형태 - 개방적 형태
4. 다원적 통일성(개별적 완성미) - 단일적 통일성(전체적 완성미)
5. 절대적 명료성(명료성) - 상대적 명료성(불명료성)

물론 위 다섯 특징은 비단 르네상스와 바로크 사이의 차이점만은 아니다. 이들은 전체 미술사 흐름의 일반적 경향으로 볼 수 있는데, 특히 '바로크'적 '혁신'에서 두드러지며, 루벤스의 '색채'와 '회화', 그리고 '개방성'에서 두드러진다. 카톨릭과 개신교 사이 종교개혁 전쟁에서 루벤스는 기득권층인 "카톨릭 진영의 독자적인 지위([서양미술사], 곰브리치)"를 점하면서 국제적 '외교가' 역할도 했단다. 그는 고위층 왕족이나 귀족들에게 그림을 바치면서 당대 최고의 화가가 되었고 그 특유의 풍만한 여성 '누드화'로 고위층의 관음증을 해소해주기도 했으리라. 당시 뱃살과 육덕진 몸매는 잘 먹고 사는 귀족의 특징이었으므로 모두가 선망하는 체형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마당발' 루벤스는 당시 과학계의 신진세력이었을 갈릴레이 등과도 교류했고 나름대로 '천문학'에 기반한 풍경화와 '별자리' 그림도 그렸다. 
물론, '예술'은 '과학'이 아니므로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해당 풍경에 화가가 가진 '과학'적 지식을 투영하므로 동시에 보기 힘든 별자리를 함께 그려넣기도 한다. 그래도 문제는 없다. '예술'은 '사실(實)'보다 '아름다움(美)'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곰브리치는 '미술'이라는 추상을 담지하는 구체적인 '미술가'만이 '혁신'으로 '미술사'를 이끌어간다고 했다. 이들의 작품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미술사학자들의 '권력'은 물론 넘어야 할 '큰 산'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수 대중에게는 그 '권력'에 균열을 내는 다양한 집단 '해석력'이 있다. 
무엇이 옳은지는 '역사'가 말해줄 터, '미술사'를 이끄는 기본동력은 '미술가'들을 한편으로 하고 다른 한편에서 이들의 '혁신'을 추동하는 다수대중의 집단적 '유희'가 아닐는지.

'미술사'는 '별'을 그리다가 '별'이 된 '미술가'들과 '다수대중'의 '집단해석'이 어우러진 놀이터다.

***

1. [그림 속 천문학 - 미술학자가 올려다본 우주, 천문학자가 들여다본 그림], 김선지/김현구, <아날로그>, 2020.
2. [파노프스키와 뒤러], 신준형, <사회평론>, 2013.
3. [서양미술사](1950), 에른스트 곰브리치, 백승길/이종숭 옮김, <예경>, 2013.
4. [시각예술의 의미](1955), 에르빈 파노프스키, 임산 옮김, <한길사>, 2013.
5. [미술사의 기초개념](1915), 하인리히 뵐플린, 박지형 옮김, <시공사>, 20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he Wonderful Wizard of Oz (Paperback) Collins Classics 40
라이먼 프랭크 바움 지음 / HarperPress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결국, 내 마음 속으로의 여행
- [오즈의 마법사], 라이먼 프랭크 바움, 1900.



"그 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집이 회오리바람에 두세 번 돌더니 하늘로 서서히 떠오르는 것이었다. 도로시는 열기구를 타고 올라가는 줄 알았다.
북풍과 남풍이 도로시의 집에서 만나며 그 집을 '사이클론'의 중심으로 삼았던지, 그 중심은 고요했으며 집의 사방 주변 강풍의 강한 압력으로 갈수록 높이 높이 상승하다가 회오리바람의 정점에서 붕 떠서 마치 깃털처럼 가볍게 저 멀리 날아가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도로시는 무서움은 이겨냈으나 외로웠고 바람소리가 너무 커서 귀를 먹을 지경이었다. 처음에 도로시는 집이 추락하면 온몸도 산산조각 나리라는 두려움에 떨었으나 한참 동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 걱정을 멈추고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침착하게 기다려보기로 했다. 이윽고 도로시는 흔들리는 거실을 기어 침대로 들어 누웠고 강아지 토토도 그녀 옆에 살며시 누웠다.
요동치는 집과 무섭게 부는 바람에도 도로시는 곧 눈을 감고 잠들었다."
- [The Wonderful Wizard of Oz](1900), '1. The Cyclone', Lyman F. Baum, <Collins Classics>, 2013.에서 필자 번역.


2019년 담배를 끊은 새해 첫날부터 올해도 일출시간에 맞춰 마을 뒷동산에 오른 건, 굳이 떠오르는 해를 보고자 한 건 아니었다. 
날이 흐려 못 볼 수도 있음에도 눈 비비고 일어나 인적없는 오르는 길도 올려보고 올라온 길도 돌아보며 작년의 마지막 달도 손을 들어 보내준다. 변함없이 누워계실 초안산의 내시와 궁녀들의 버려진 묘들을 지나 정상에서 동북쪽을 보고 있노라면 동쪽에서는 새해 첫 해가 이미 세상을 밝히고 난 후다. 그제서야 동쪽을 향한 채 해가 중천을 향해 시동을 걸 때 쯤 주위를 둘러보면 문전성시를 이루던 동네 일출객들은 모두 떠나간 지 오래다. 
목적을 이루면 미련없이 자리를 뜨는 무서운 인간세상이다.


'해'를 동경하던 '소년' 시절, 좋아했던 동화는 로버트 스티븐슨의 [보물섬]과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시 몽고메리의 [빨간머리 앤] 세 권이었다. [오즈의 마법사] 주인공 도로시는 내겐 그저 앨리스의 '짝퉁' 정도였고, 원래 본인이 가지고 있었을 '지혜', '마음', '용기'의 덕목을 일깨워주는 내용은 뭐 [피노키오]식 교훈을 넘지 않았다.

사실, 어른이 되어 '동화'를 생각했을리 없는 게, '현실'은 '동화'와 거의 정반대였고, 아니 오히려 그 '현실'을 유지하려는 어른들이 부러 아이들에게 정반대의 '동화'를 다시 캐내고 각색하고 있다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나도 부모가 되었고 내 아들딸에게 '동화'를 읽어주게 되었다. 창작동화보다는 내가 어릴 때 감명을 받았던 '고전동화'를 위주로 읽어주며 아빠인 나도 그것들을 새롭게 다시 읽게 된다. 사실 [보물섬]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말고는 어른이 되도록 '성인판'으로 읽어보지 못했다는 걸 새삼 알기도 했다.

라이먼 프랭크 바움(Lyman F. Baum : 1856~1919)은 미국 극작가인데 샤를 페로나 그림 형제, 안데르센 등 배경이 다소 '레트로'한 그보다 조금 앞선 유럽의 고전동화 작가들에 비하면 다소 미래적 '판타지' 작가에 가깝다. 주인공 도로시(Dorothy)는 1865년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를 모델로 한 것이 맞다고 한다. 미국 캔자스 들판에서 부모 없이 아저씨, 아주머니와 사는 그녀는 어느날 불어닥친 '사이클론'에 날아가는 집에서 잠이 든다. 과연, '이상한 나라'로 갈 수 있는 '앨리스'급 반열 맞다.

머리가 빈 허수아비(The Scarecrow), 심장이 없는 양철나무꾼(The Tin Woodman), 용기 없는 사자(The Lion)와 함께 '노란 벽돌길(The Yellow-brick road)'을 따라 '오즈의 위대한 마법사(The Wonderful Wizard of Oz)'를 찾아가 각자의 소원을 청하지만, 결국 다른 누가 아닌 본인이 이미 다 가지고 있더라는 '동화'적 결말이다. 그들이 지나온 길에서 겪은 경험에서 이미 다 드러났지만 그들 자신만 몰랐던 것들. 반면 도로시는 이미 본인이 신고 있던 마녀의 '은구두(The Silver Shoes)' 자체에 소원 성취의 '마법'을 지니고 있었다.

도로시가 캔자스로 돌아왔을 때는 앨리스처럼 '이상한 나라'가 '꿈'이었을지 모른다는 암시는 없지만, 집으로 돌아오게 해준 '은구두'는 이미 '현실'과 '꿈' 사이의 '중간지대'인 '사막/황무지(the desert)'에 영원히 버려진다. 모험을 겪고 좀더 어른이 되었을 도로시는 다시 '이상한 나라'인 '오즈(Oz)'로 갈 수 없다. 앨리스 또한 언제든 잠들 수 있겠지만, 지루한 '역사책'을 읽어주던 언니처럼 성장할 것이므로 다시 잠에 빠진들 '이상한 나라'로 가는 토끼굴로 예전처럼 빠질 수는 없을 게다.

작가들은 비록 흥행을 위해 소녀 주인공들을 계속 다시 '이상한 나라'와 '오즈'로 돌려보내지만, '속편'들은 결코 '첫경험'을 넘어설 수 없다.


"각자에게 개별인사를 마친 도로시는 이제 강아지 토토를 꼭 안고서 모두에게 마지막 '안녕' 인사를 건넨 후 신고있던 은구두의 뒷굽을 세 번 부딪치며 말했다.
'캔자스로 돌아가게 해 줘!'
순간 도로시의 몸이 떠올라 너무도 빨리 지나는 바람에 그녀가 보고 느낄 수 있던 건 귓가를 스치는 바람 뿐이었다. 은구두의 세 발짝만큼 시간에 날아 오느라 그녀는 예전에 살았던 캔자스의 풀밭에 급하게 내동댕이쳐졌다...
...
도로시는 일어나면서 신발이 없어진 것을 알았는데, '은구두(The Silver Shoes)'는 날아오는 동안 벗겨져 중간지대 사막에 영원히 버려진 것이었다."
- 같은책, '23. Glinda Grants Dorothy's Wish'에서 필자 번역.


새해 첫날 마을뒷산에 오른 건, 굳이 뜨는 해를 보기 위함이 아니었다. 시간의 흐름과는 관계없이 내 마음 속에 여전히 있을 '해'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엘튼 존의 노래 'Good bye Yellow Brick Road'에 나오는 '노란 벽돌길'은 떠나고 싶은 '도시길'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도로시'와 같이 걸었던 '어린 시절'의 상징이었을 수도 있다.

모두 떠난 마을뒷산 공터에 남아 생각한다.
한때 '노란 벽돌길'응 걸었던 캔자스 소녀 도로시는 자기 안에 있을 '은구두'를 다시 찾았을까, 아니면 아예 잊었을까.


어른이든 아이든,
다소 '직지심경(直指心經)' 부처님 말씀 같지만,
모든 길은 결국,
'내 마음 속으로의 여행'이다.


***

1. [The Wonderful Wizard of Oz](1900), Lyman Frank Baum, <Collins Classics>, 2013.
2. [오즈의 마법사], <교원 애니매이션 세계명작동화>, 20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 - 21세기 공산주의 선언
아론 바스타니 지음, 김민수.윤종은 옮김 / 황소걸음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럭셔리' 공산주의가 눈앞에 있다!
- [21세기 공산주의 선언 -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FALC)](2019), 아론 바스타니, 김민수/윤종은 옮김, <황소걸음>, 2020.



"... '공산주의'는 인류가 마르크스가 '필요의 영역'이라고 부른 것에서 탈피해 '자유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 
'공산주의'는 화려하다. 그렇지 않으면 '공산주의'가 아니다."
-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 <1-3. FALC란 무엇인가>, 아론 바스타니, 2019.


1848년 유럽혁명의 시기에 '과학적 사회주의자' 청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발표했을 때, 혁명의 '현실정치'적 결과는 또 다시 '왕정 타도'와 '공화국 건설'이었다. 그러나 1848년 '2월 혁명'이 1789년 프랑스대혁명과 달랐던 건 다수 '노동계급'의 힘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는 바야흐로 일체의 생산수단으로부터 배제된 채 가진 건 노동력 뿐인 도시 '자유노동자', 즉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다수 양산하고 있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선언'한 신세계는 이 다수 노동계급의 힘으로 소외된 노동을 해방시키고 나아가 '계급' 자체가 철폐된 세상이었다. '계급투쟁의 인류역사'를 끝장내는 것이 다수 노동계급의 역사적 임무였다.

그로부터 170여 년이 흐른 2019년, 미국 정치평론가 아론 바스타니(Aron Bastani)는 현대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풍요'와 '자동화'를 기반으로 탈자본주의적 새로운 '정치'를 통해 쟁취할 세계를 다시금 '선언'한다.


이른바,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FALC : Fully Automated Luxury Communism)이다.


"'5가지 위기(기후변화, 자원부족, 과잉인구, 고령화, 자동화에 따른 기술적 실업)'는 자본주의가 스스로 버틸 능력을 약화한다. '5가지 위기'는 끊임없는 확장, 무한한 자원, 이윤을 위한 생산,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노동자 등 자본주의의 중요한 특징을 없앨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같은책, <1-2.>.


저자는 소비에트가 붕괴되고 있던 1989년, 미국에서 '자본주의 체제승리'로서 '역사의 종말'을 선언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주장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무명 정치학자의 공상이론은 저자에 의하면 현재에도 '자본주의 리얼리즘'으로 유령처럼 배회한다. 즉, "현재 자본주의 체제의 종말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더 게 쉽다"는 지배이념과 시장맹신 사상이 근거하는 이데올로기다. 2018년 후쿠야마는 자신의 '역사의 종말'이 헛소리였음을 시인했다지만 체제유지를 위한 시대의 관념은 굳건하다. 인류의 마지막 체제는 자본주의 밖에 없다는 관념이다.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은 '1차 대변혁'인 '농업혁명'과 '2차 대변혁'으로서의 '산업혁명'에 이어 '3차 대혁명'인 '정보혁명' 또는 '정보의 대해방'(같은책,<1-2>)에서 정점을 찍는다. 과학기술 발전과 디지털화로 인해 정보, 노동, 에너지, 자원, 건강과 음식 등 '희소성'을 경제적 특징으로 하던 재화들이 무한발전 및 무한공급되고, 이것들의 가격이 공짜('0')로 수렴되는 '무어의 법칙'이 작용하면 이를 다수가 전유하도록 분배하는 '력셔리 포퓰리즘 정치'를 통해 'FALC'를 실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책에서 사용하는 '공산주의'라는 단어의 뜻은... 생계를 위한 직업이 사라지고, 풍요가 희소성을 대신하고, 노동과 여가가 하나로 합쳐지는 사회다... FALC는 '3차 대변혁(정보해방)'의 경향을 뒷받침하기 보다 그 자체로 '3차 대변혁'의 경향이 도달한 결론이다... 
'공산주의'라는 개념은 '희소성'을 겪는 상태에서 어느 것이 유용성을 넘어서는지 보여준다. 필요한 것을 뛰어넘은 과잉이 이 개념의 본질이다. 따라서 정보, 노동, 에너지, 자원의 값이 영구적으로 내려가고 일과 낡은 세계의 한계를 넘어서면 우리는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충족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유용한 것과 아름다운 것을 구분하는 모든 경계를 허문다."
- 같은책, <1-3>.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만큼 가져간다"는 마르크스주의 이상향 또한 '희소성'의 경제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저자에 의하면 이제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풍요'와 '자동화'다. 태양열은 전인류가 1년 동안 사용할 에너지를 단 9분만에 지구로 전달하고 있으며 기후위기를 벗어날 '탈탄소' 자원은 얼마 안 있어 우주로 나가 채굴할 수 있을 것이다. 공상과학이 아니라 실제 혁신적인 자본가들과 그 정권들이 이미 고액을 투자하여 시작한 일들이다. 물론 '자유 시장'을 믿는 그들은 '무한공급'의 가능성을 여전히 '희소성'으로 위장해서 소수의 '이윤창출'이라는 목적을 이루려고 한다. 
다수가 할 일은 '3차 대변혁'의 특징인 '공짜로 수렴하는 자원과 기술'의 경향을 믿고 이 '공유자원(the commons)'들을 재전유하는 것이다. 이 '공유자원'은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어셈블리](2017)에서 다수대중이 재전유해야 하는 '공통적인 것(the commons)'과 같고, 노동하는 다수에 의해 확대되어야 하는 소유의 '사회화'다. 이제 공공재를 만드는 사람이 그 공공재를 소유하는 시대가 진정 오게 된다. 금융자본주의 체제에서 제대로 된 '중앙은행'의 최종 임무는 금융자본시장의 '점진적 사회화(같은책,<3-11>)'다. 

그리하여 '공산주의'의 전제는 21세기가 되어도 여전히 '소유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다수'의 '소유', 즉 '사회화'를 위해서는 '력셔리 포퓰리즘'이 필요하다.


"'포퓰리즘'이란 경제를 움직이는 주류의 사고방식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정치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에 경도된 사람들은 신자유주의의 대란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믿음 아래 '포퓰리즘'을 공격한다... '력셔리 포퓰리즘'은 '붉은색'과 '녹색' 정치를 한데 결합한다... 번영과 민주주의, '공유자원(the commons)'은 단순히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넘어 서로 완성하는 관계다.
... '3차 대변혁'이라는 조건이 마련되기 전에 '공산주의'를 실현한다는 것은 '1차 대변혁' 전에 잉여생산물을 얻거나, '2차 대변혁' 전에 전기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 같은책, <3-9>.


'FALC'의 정치 모토는 '자유'와 '화려함', 그리고 '탈희소성'의 추구다. 14세기에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면서 카톨릭을 대중화했던 영국 신학자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보다 후대인 <95개조 반박문>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종교개혁에 불을 당길 수 있었던 건 15세기 근대 인쇄기술의 '혁명'적 변화가 비로소 바탕되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19세기 '공산당 선언'이 20세기 '공산권 몰락'의 구질구질한 이미지로 남은 이유는 '과학기술'과 자본주의 생산력이 그만큼 발전하지 못해서다. 
아론 바스타니에 의하면 이제 '풍요'와 '력셔리'한 생산력을 기반으로 다시금 '공산주의 선언'이 가능하다.
화려하지 않은 '공산주의'는 '공산주의'가 아니다. 소비에트가 구리게 끝난 이유도 '희소성'과 '결핍'이라는 자본주의 경제이론에 기반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인 것이다. 자본주의 생산력이 최고로 발전한 국가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다는 마르크스의 '예측'은 여전히 '과학'이었으나 정작 마르크스 자신은 자본주의 생산력 발전도, 노동자 보통선거도 못보고 19세기에 지구를 떠났다.


"이제 기술의 중요성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지만, 기술을 뒷받침하는 사상과 사회적 관계, '정치'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 
우리는 'FALC'를 지도 삼아 '희소성'과 '노동기반사회'라는 미로에서 벗어나야 한다... 'FALC'는 지금 당장 필요한 행동을 제시한다... 'FALC'는 구체적이고 단순명료한 '정치'적 방안을 요구한다. 바로 신자유주의와 단절', 노동자 소유경제로 이행,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한 국가재정 지원, 교환과 이윤을 위한 상품이 아닌 기본권으로서 'UBS(Universal Basic Service : 보편기본복지)'다...
...
쟁취해야 할 세계가 눈앞에 있다!"
- 같은책, <3-12. FALC : 새로운 시작>.


결론은 소수의 이익에 복무하는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지배이념인 '신자유주의'와 결별하고 GDP 수치 성장과 '통화주의'를 통한 인플레이션 억제에 목을 매는 '자본주의국가'를 뜯어고치는 것이다. 국제투기에 대항하는 '국제주의'적 '자본(금융)거래세'(같은책,<3-11>)와 부유한 선진국이 '제3세계' 저발전 국가들의 재생에너지 전환을 책임지고 지원하는 '지구세'(같은책,<3-10>) 등은 토마 피케티식 '현대화된 사회민주주의'의 또 다른 대중판 같기도 하지만, '21세기 공산주의 선언'을 내건 아론 바스타니의 'FALC(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는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 그 '너머'를 확실하게 명시한다. 모두가 등돌려 버린 '구질한' 공산주의를 '화려하게' 포장하면서까지 말이다. 

'희소성'과 '노동기반사회'의 기존 자본주의적 '미로'에서 벗어나는 우리 모두의 기본권 보장은 '보편기본복지(UBS : Universal Basic Service)'로 정책화된다.
이는 '보편기본소득(UBI : Universal Basic Income)'보다 "바람직한 대안"(같은책,<3-11>)인데 "노동 없는 임금"인 '기본소득'은 "역대 최대 규모의 재정이 투입돼야 한다는 사실 외에 모든 것이 불확실"(3-11)한 반면, '보편기본복지'는 주거나 의료 같은 인간의 기본권을 중심으로 하면서 '화려한' 공산주의의 출발점이 된다. 
"에너지와 노동, 자원이 정보와 마찬가지로 공짜에 가까워지고 무한공급이 확대되는 한, 역사는 'UBS(보편기본복지)' 편이다(같은책,(3-10>)."
이는 다음 우리 대선의 주요쟁점이 될 '보편복지'와 '기본소득'의 대립에서 '복지축소'를 전제로 하여 '국가임금'식 괴물로 변형될 우파적 '기본소득' 책동을 분쇄하고 '보편복지'를 사수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돈 몇 푼과 기본권을 교환할 수는 없다.


'붉은색(평등)'과 '녹색(환경)'이 결합된 정치(생태사회주의)를 통해 자동화와 디지털화로 생산된 '공공재(the commons)'를 다수가 재전유하는 '풍요'와 '럭셔리'가 '공산주의'였다니, 저자의 낙관적이고 꿈같은 이야기가 새삼 고맙다.
기후위기를 극복할 재생에너지와 '탈탄소화', 우주개발, 생명(유전)공학, 세포농업 등 현대과학의 신기술 발전에 관한 <2부>의 노동, 에너지, 자원, 건강, 음식 등의 간략한 소개들은 오히려 덤이다.


***

1. [21세기 공산주의 선언 - FALC](2019), 아론 바스타니, 김민수/윤종은 옮김, <황소걸음>, 2020.
2. [공산당 선언(Communist Manifesto)], 마르크스/엥겔스, 1848.
3. [레즈를 위하여 - 새롭게 읽는 '공산당 선언'], 황광우/장석준, <실천문학사>, 2003.
4. [어셈블리(Assembly)](2017),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이승준/정유진 옮김, <알렙>, 2020.
5. [21세기 자본](2013), 토마 피케티, 장경덕 외 옮김, <글항아리>, 2014.
6. [자본과 이데올로기](2019), 토마 피케티, 안준범 옮김, <문학동네>, 20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