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된 영웅 관우 더봄 평전 시리즈 4
마바오지 지음, 양성희 옮김 / 더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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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신무영우... 관성대제
- [신이 된 영웅, 관우], 마바오지, 2017.


"관우와 장비는 모두 1만 명을 상대할 만하며 그 시대의 용맹한 신하이다. 관우는 조조에게 보답하였고, 장비는 대의로써 엄안을 풀어주었으며 이들은 모두 국사(國士)의 풍모를 지녔다. 그러나 관우는 굳세고 교만하며, 장비는 포학하고 은혜를 베풀지 않았는데 그 단점 때문에 실패하게 되었으니 이치상 당연한 것이다."
- 진수, [정사 삼국지], <촉서>, '관장마황조전', '평왈(評曰)', 3세기.


진수의 정사 [삼국지] <촉서>의 '관우전'은 유비의 '선주전'으로부터 그 차례를 보면 그의 아들 유선의 '후주전'과 유씨 황후들과 가문사람 몇 명, 공명의 '제갈량전' 다음으로 바로 이어지지만 그 분량은 상당히 짧다.
나관중의 [삼국연의]나 그 전부터 민간에 만화처럼 읽혀 내려오던 [전상삼국지평화] 같은 이야기 속 관우의 존재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소략에 불과한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인 "관우는 자가 운장이고 본래 자는 장생이며, 하동군 해현 사람이다. 망명하여 (유비의 고향) 탁군으로 달아났다." 말고는 진정 인용할 만한 인상적인 문장 한 줄 없이 매우 무미건조하기까지 하다.

진수의 [삼국지] <촉서> '관우전'을 요약하면, 관우운장은 유비현덕의 용맹한 수하장수로서 "잠잘 때도 함께 할" 정도의 형제와 같은 깊은 정을 나누었지만 시종 그의 곁을 시립하며 의리로서 유비를 지켰던 최측근 부하였다. 

관우와 장비, 마초 및 황충과 조운의 이야기인 '관장마황조전'의 말미에 게재된 [삼국지] 편저자 진수의 평론인 '평왈(평하여 말하다)' 기사에 따르면, 관우는 "용맹"한 "국사의 풍모"로서 굳세었으나 "교만"하여 결국 실패하게 되었으나 "이치상 당연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역사에서 실패한 위인으로 '정사'는 관우를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고대의 민간만화 [전상삼국지평화]와 원말명초 나관중의 [삼국연의] 등의 논픽션 드라마 및 관우가 최후까지 지키려다가 죽은 중국 남방의 형주 지역 범신론 사상 등의 영향으로 현재는 중국 최고의 '무신(武神)'이 되었다.

관우는 '문성(文聖)' 공자에 비견되는 '무성(武聖)'으로서 '관성대제(關聖大帝)'로 불리는데, 진수의 정사 [삼국지]를 훗날 주해한 배송지에 의하면 사실 고대의 역사서 [춘추좌씨전]을 늘 읽고 "입으로 줄줄 외울" 정도로 문무를 두루 겸비하였고, 과연 이천년간 인구에 회자되며 '제왕'의 반열에 올랐다.


"북송 시대 양산박 농민반란의 영웅 대도 관승은 관우의 후손으로 추앙받았고, 원나라 말기 홍건군을 이끈 유복통, 명나라 말기 농민반란군을 이끌었던 고영상, 이자성, 장헌충, 청나라 말기 태평천국군을 이끈 홍수전 등이 관우를 자신의 롤모델이자 필승의 수호신으로 삼아 군대를 이끌었다. 관우의 용맹과 전투력이 신격화된 것은 바로 이런 역사배경 때문이었다."
- [신이 된 영웅, 관우], <들어가는 말>, 마바오지, 2017.


중국 허창대학에서 삼국문화 및 위진남북조 문화 등을 연구한 역사학자 마바오지(馬寶記) 교수는 평생 관우를 연구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30년 연구 업적으로 '관우평전'을 2017년에 새로 썼는데, 원저는 [관우도전(關羽圖傳)]으로 2023년 국역본은 [신이 된 영웅, 관우]다.

관우는 하동군 해현 출신으로 그의 고향 해현은 산서성 남부 지역인데 고대에 황제가 치우를 죽이고 치우의 머리와 사지를 잘라 버린 곳이란다. 치우의 피가 말라 소금의 염지가 된 땅이며 치우의 사지가 '분해'된 땅이라 '해(解)'라고 불리는데, 오래된 전략적 요충지라 동한말 황건농민반란 시기에도 혼란의 지역이었단다.

관우 가문의 기원으로 올라가면, 그가 아주 더 먼 오래전 하나라 시대 직언을 올리다가 죽은 충신 관용봉 가문의 자손이라고 구양수의 [당서]에서 전한다지만 근거는 없다고 한다.
어쨌든, 17세에 가정을 꾸리고 18세에 훗날 형주에서 손권에게 함께 참수당한 큰아들 관평을 얻었으며 23세인 183년에 해현의 악덕지주 여웅을 때려죽이고 탁군으로 도주한 관우는 탁군 탁현의 실력자 유비와 장비를 만나 '도원결의' 전설을 시작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삼국지' 이야기를 펼쳐간다.

마바오지의 '관우평전'은 '삼국지'의 오랜 이야기를 아는 이들에게는 매우 익숙하여 책장을 다 덮는데까지 채 하루도 안 걸린다.
진수의 정사에 따르면 '무신' 관우는 용맹하고 의리 있는 굳센 장수이자 국사의 풍모를 지녔으나 성품이 교만하고 거만하여 역사의 실패자가 되었음에도 중국민중들에 의해 끊임없이 '충의'와 '용맹', '의리'의 화신이 되어왔다.

관우는 초기 유비로부터 '별부사마'로 임명되었고, 잠시 조조에게 의탁했을 때 원소군의 명장 안량을 벤 후 후한 황제(실권자는 조조)로부터 받은 '한수정후'를 시작으로 촉한 시기까지 '5호장군' 중 '탕구장군 한수정후' 같은 제후급 명함이 그의 공식 직함이었다. 
손권의 군대에게 패하여 형주에서 참수된 직후에는 유비 황제에 의해 '장무후'로 추존되었다.

그런 관우는 사후 오랜 시간 동안 유교 및 불교와 도교(유-불-선)의 '신(神)'으로 추앙받다가 유-불-선의 마지막 종교인 도교가 국가종교로 정착된 당나라 시기부터 도교의 지존인 '진군'으로 추존되었고, 도교에 미쳐있던 북송의 마지막 군주 휘종 시기에는 도교의 명실상부한 최고신이 되었다. 
여진의 금나라와 몽골의 원나라 지배 시절에도 관우는 끊임없이 '충의'와 '용맹'의 무신으로 존재감을 잃지 않다가 명나라를 거쳐 19세기 청나라 말기였던 1879년에는 아래와 같은 스물여섯 글자의 최종 시호를 얻었다.

"충의신 무영우 인용 위현 호국 보민 정성 수정 익찬 선덕 관성대제"
- 청나라 덕종 광서5년인 1879년.

의미는 '충의'와 '무용', '인덕'과 '용맹', '지혜'와 '호국보민', 유교적 '성의'와 '정심', 불교와 도교적 '선덕'까지 갖추신 '성인'이자 큰 '제왕' 되시겠다.


"이처럼 고대 중국 종교의 중심이었던 유교, 불교, 도교가 모두 관우에게 막강한 지위를 부여했다. 이와 같은 사례는 중국 역사를 통틀어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봉건 시대의 유일무이한 절대신으로 등극한 관우는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 [신이 된 영웅, 관우], <12장. 신이 된 관우>, 마바오지, 2017.


중국 고대로부터 지배적 이데올로기로서 유교는 관우의 '충의'와 '용맹'을 높이 평가했는데, 유교 왕조 정권이 민중을 통치하는데 효율적인 기제로서 '충의'를 강조했다.

동한 명제 시기 전래된 불교는 위진남북조 시대 지배적 민간종교가 되었고 수나라 시기부터 관우는 본격적으로 보살이나 부처의 반열로 현성되었단다.

불교보다 70년 정도 늦었지만 비슷한 시기인 동한 순제 시기 형성된 도교는 후한말 황건농민반란 시기 최초로 조직종교의 형태를 갖추었다. 북송 말기 휘종 시기 관우의 대표무기 '청룡언월도'가 본격적으로 들려진다. 사실 후한말 삼국시대 관우의 무기는 '청룡언월도'일 수가 없었다. 이 무기는 북송 시대에 이르러서야 등장했기 때문이다.

도교에서 큰 신선인 '진군'이 된 북송의 관우신은, 원말명초 시기 나관중의 [삼국연의]를 거쳐 크게 유명해졌고, 결국 명나라 신종 만력 시기에 이르러 비로소 '제왕'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로 도교 신도들에게 관우는 '제왕'의 '지존'이 된다.


<더봄> 출판사의 중국사 '평전' 시리즈는 믿고 읽어볼 만 하다.
[결국 이기는, 사마의](친타오,2017), [제왕의 스승, 장량](위리,2008), [난세의 리더, 조조](친타오,2013)에 이어 네 번째 작품인 이 책 [신이 된 영웅, 관우](마바오지,2017)는 내용으로는 앞선 세 권에 비교하면 너무 대중적이고 새로울 내용은 없을지 모르지만, 이천년간 민중신앙에서 제왕신이 되어온 관우운장에 관한 본격적인 대중평전으로서 한 번 흥미를 가지고 읽어볼 만 하다.

***

1. [신이 된 영웅, 관우](2017), 마바오지, 양성희 옮김, <더봄>, 2023.
2. [결국 이기는, 사마의](2017), 친타오, 박소정 옮김, <더봄>, 2018.
3. [제왕의 스승, 장량](2008), 위리, 김영문 옮김, <더봄>, 2021.
4. [난세의 리더, 조조](2013), 친타오, 양성희 옮김, <더봄>, 2022.
5. [삼국지(三國志)], <촉서(蜀書)>, 진수, 김원중 옮김, <민음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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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난단티 - 16세기와 17세기의 마법과 농경 의식 교유서가 어제의책
카를로 긴즈부르그 지음, 조한욱 옮김 / 교유서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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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마법'에 걸리지 않는 이유
- [베난단티], 카를로 긴즈부르그, 1966.


"왜 네가 마법에 걸리지 않는지 아는가?
왜냐하면 너는 그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야."
- 올리보 칼도, 1644.


1.

중세시대 마녀사냥 하면, '광기'가 떠오른다.
'마녀'가 광인이었는지, 광인을 '마녀'로 만들었는지, 아니면 이들을 심문하고 화형시킨 가톨릭 권력이 미쳤던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단일 사상이나 종교로 '차이'와 '소수'를 단죄하는 시대 자체가 '광기'다.

'미시사(微視史)'라는 말이 있다.
거대담론이나 대의, 위인과 영웅의 '거시'적 역사가 아니라 개인이나 소수의 역사를 주제로 한단다. '개별적인 것이 보편적인 것'이라는 철학자 헤겔의 말이 떠오른다.
작은 것들 속에도 역사의 '보편성'이 흐른다.

이탈리아 역사가 카를로 긴즈부르그(Carlo Ginzburg)가 27세였던 1966년에 쓴 박사학위논문은 [베난단티(I Benandanti)]인데, '미시사'의 대표적 저서라고 한다.

생소한 단어인 '베난단티'는 중세 '마녀'와 싸워 농작물의 풍요와 어린이의 생명을 구하는 일종의 '전사'다. 긴즈부르그의 '미시사'는 이 '베난단티'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다.


2.

"... 고대의 민중신앙이 심문관의 무의식적인 압박을 받아 마침내 기존의 악마적 '사바트(Sabbath)'라는 틀 속으로 서서히 지속적으로 짜맞춰 들어가는 변형의 과정을 겪었다는 것... 마녀의 '밤의 모임'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악마의 찬미와 관련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신비로운 여신인 '디아나(Diana)' 신앙과 관련되어 있다... 14세기 말부터 이탈리아에 존재했던 이 신앙에는 '마법'이 관련되어 있지만, 악마와는 상관이 없이 무해하다... 1523년에 이르러서야 십자가와 성체 모독, 그리고 악마와의 성교 같은 묘사가 나타난다."
- [베난단티], <밤의 전투>, 카를로 긴즈부르그, 1966.

가톨릭에서 사계절마다 신앙으로 심신을 닦는다는 '사계재일(四季齋日)'이 되면, 수요일에서 목요일로 넘어가는 밤에 독일의 '브로켄' 산이나 이탈리아 '조사파트' 또는 '요사파트(하느님의 심판이 내릴 땅)' 계곡 등지로 '마녀'들이 모였단다.

'악마'의 부름을 받은 이 '마녀'들은 염소나 고양이, 산토끼 등의 동물을 타고 모여서 노래하고 춤추고 먹고 마시며 난교를 벌인다는데 사실 이 광란의 잔치인 '사바트(Sabbath)'에는 '마녀'만 초대받은 게 아니었다. 
'베난단티'는 태어날 때부터 '양막'을 목에 두르고 알 수 없는 별자리 아래 태어난 자들로 성년이 되면 누군가의 오더로 소집되는 일종의 '군인'과도 같다. 이들은 이 '사바트'에서 '마녀들'과 '밤의 전투'를 벌이는데, '베난단티'가 이기면 풍작이, '마녀'가 이기면 흉작이 든다고 한다. '베난단티'는 회향나무를 묶은 회향단으로 싸우고 '마녀'는 불쏘시개로 쓰는 시커먼 나무대기로 싸운다. 치료의 효과가 있는 회향나무를 든 '베난단티'는 '마녀'들이 피를 빨아먹으려는 어린이들의 생명도 구하는 임무도 있다.

긴즈부르그는 이런 이야기를 중세 16~17세기 마녀 심문기록 등을 파헤치고 연구하여 '미시사'로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긴즈부르그 일생을 지배한 이 '밤의 전투' 기록의 목적은 '마녀재판' 사실의 새삼스런 폭로는 아니다. 
저자의 목적은 '민중신앙'의 변형에 관한 서술이다.

사실 '베난단티'와 '마녀'와의 '밤의 전투'는 기독교가 '보편적 교회(Katholikos)'로서 '가톨릭'이 되기 이전의 이교도적 전통이었던 '민중신앙'이 기원이다. 우리가 아는 '풍요제' 말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알려진 부여의 '영고', 동예의 '무천', 고구려 '동맹' 따위의 그런 제례 같은 거다. 동서양을 막론한 민중들은 이 풍요제에서 선악을 나눠 싸움을 벌였고 풍요를 기원하며 권선징악을 기원했을 게다. 동양은 토템이나 샤먼이 있었을 테고, 서양은 '디아나' 같은 신이 있었을 것이다.

중세 기독교 가톨릭이 공격한 지점이 바로 이 '이교도' 의식이었다. '마녀'는 소수 이교도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이 '마녀'를 체포하고 기소하기 위해 심문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풍요와 정의의 전사 '베난단티'였던 거다. 아마도 '베난단티'는 민중신앙에서는 '마녀'의 적수였을지 모르지만, 단일 종교의 폭력 앞에서는 '마녀'와 한 패가 되는 소수 민중신앙의 수호자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국, '베난단티'는 가톨릭에 굴복하고 만다.


3.

"마법과 일반적인 마술적 현상에 대해 다양하고 더 회의주의적이고 동시에 더 합리적인 태도가 확산되면서 '베난단티' 신화의 붕괴와 몰락은 필연적으로 다가왔다. '마녀'나 마법사에게 희생된 적이 전혀 없으며, 그들의 존재도 믿지 않는다고 말한 친구에게 (1644년에 기소된 농민) 올리보 칼도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왜 네가 마법에 걸리지 않는지 아는가? 왜냐하면 너는 그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야.' '베난단티' 신화의 붕괴와 몰락은 바로 이러한 원리가 양식있는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지게 된 사실의 단순한 결과였을 뿐이다."
- [베난다티], <사바트에 간 베난단티>, 카를로 긴즈부르그, 1966.

'베난단티'들과 '마녀'들의 진술에 의하면 그들은 '사바트'에 '영혼'만 간다. 육신은 죽은 듯 반듯하게 누워있고 '영혼'만 드나드는데 동물을 타거나 그것들로 변신하여 간다. 
짐승이나 벌레, 장애 또는 불구의 형상은 고대로부터 이승과 저승을 잇는 상징이라고 한다.
페르세우스 같은 '반신반인'이 아닌 순수한 인간 혈통으로 오로지 인간의 지능으로서 신의 영역을 오가는 '오이디푸스'의 이름은 '부어오른 발'이란 뜻으로, 실제로 그는 절름발이였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은 '정신분열'이나 '간질'을 앓는 환자들로 간주되었거나, 이들 소수의 환자들이 '마녀'로 격리대상이 되었으며, '베난단티' 또한 '마녀'와 구분없이 여겨졌다. 참고로, '프리울리' 같은 이탈리아 북부 변두리 지방에 잔존하던 민중신화 '베난단티'처럼 독일의 민간전설 '늑대인간'도 최초의 선한 신화와 다르게 이 시기에 악마의 추종자로 변형되었다고 한다.

이는 '마녀'로 기소된 '베난단티'들의 일관성 없이 모순된 진술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상 가톨릭에 완전히 패배한 민중신앙의 실체였다. 풍요제의 전통이었던 '사바트'는 "춤과 성적 음란이 있는 비밀모임"이라는 "초라하고 진부한 실재"로 남았다(같은책, <사바트에 간 베난단티>).

긴즈부르그는 17세기 중반이던 1644년 농부 올리보 칼도라는 '베난단티' 혐의자에 대한 재판과 함께 이 '베난단티' 이야기는 이론적으로 종착점에 도달했다"(같은책, 같은곳)며 이 책을 마무리하는데, '베난단티'라는 풍요제 민중신앙이 '마법'이나 '마녀'와 동일한 것으로 변모한 이유로 이 신화의 "내재적인 취약성"(같은책, 같은곳)을 든다. 

그러나 결국 낡은 문명과 새로운 문명과의 충돌에서 낡은 것이 사라지는 것은 필연이다.
민중들이 믿음을 저버린 문명이나 신화, 이데올로기는 소멸된다.
민중들이 '마법'을 믿지 않게 되었을 때,
그들은 더 이상 '마법'에 걸리지 않았고,
'베난단티'는 그렇게 역사에서 사라졌다.

'마녀사냥'으로 소수를 억압했던 중세 가톨릭은 영원할 수 없었다.
근대의 '과학'에 의해 지배사상의 자리를 내어주고 말았다.
새로운 문명은 언젠가 낡은 것이 되고 또 다른 신문명에 의해 전복된다.

'과학'은 항상 신문명을 부른다.
그러나 또 누가 아는가.
'베난단티' 같은 '민중신앙'이 앞으로 언제 어떤 모습으로 새롭게 또 인류 역사에 나타날는지.
'늑대인간'은 지금도 보름달밤에 울부짖는다.

물론, 긴즈부르그의 '미시사'의 결론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

1. [베난단티(Benandanti)]()](1966), Carlo Ginzburg, 조한욱 옮김, <교유서가>, 2023.
2. [나카노 교코의 서양기담](2020), 나카노 교코, 황혜연 옮김, <브레인스토어>,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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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 레이 - 혁명과 낭만의 유체 과학사
민태기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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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유전(萬物流轉) : 소멸되지 않고 전환되는 힘
- [판타 레이], 민태기, 2021.


"'판타 레이(Panta rhei)'와 '보텍스(vortex)'라는 개념을 가지고 근대 과학사를 들여다보면 혁명과 낭만의 시대에 탄생했던 물리학, 화학, 생물학, 다양한 공학 분야와 그 선구자들의 고민과 논쟁을 보다 일관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과학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이 시기를 주저없이 '판타 레이'의 시대라고 부르고자 한다."
- [판타 레이], <프롤로그>, 민태기, 2021.


1.

13세기에 이탈리아 상인 폴로 부자형제들이 동방의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 칸을 만났을 때, 이 동아시아 대륙의 황제에게는 진정 더 필요한 게 없었다. 동양은 이미 기원전에 종이를 발명했고 중세에는 화약을 개발했으며 결국 동서양 문명을 매개했던 오스만 투르크는 대형 화포로 동로마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켰다. 서양 '르네상스'의 기점이다.
13세기 서양 상인들은 동양을 동경하였고, 동방 '황제들'의 사치향락은 이방인들에게는 막대한 이익의 기회이기도 했다.

18세기에 영국의 대사 조지 매카트니가 청나라 건륭제를 만났을 때, 청나라 황제는 '짐은 더 이상 필요한 게 없노라'라며 이 서양인을 무릎 꿇리고 머리를 조아리게 하려 했지만 매카트니 경은 이를 거부했다. 
오히려 서양의 과학기술 발전을 알지 못했던 동아시아의 '황제'나 중앙아시아의 '술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양의 과학에 무릎을 꿇었다.

"1776년 3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출판되어 세상에 알려진다. 같은달, 수년간 자신의 특허를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제임스 와트의 첫번째 증기기관이 완성되고, 같은해 7월, 제퍼슨과 프랭클린이 기초한 기초한 [독립선언서]가 발표된다. 이 세 사건으로 서양에서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이 시작되었다. 비로소 '서양'이 '동양'을 넘어서게 된 것이다."
- [판타 레이], <2-5. 서양이 동양을 넘어서는 1776년>, 민태기, 2021.

서양은 18세기의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으로 동양을 이미 넘어선지 오래였다.


2.

한국형 우주항공기 발사체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 민태기 박사가 르네상스 이후 서양의 근현대 과학사를 엮은 책 [판타 레이(Panta rhei)](2021)는 비단 '과학'의 역사만을 다루지 않는다. 
이 책의 제목인 '판타 레이'는 '모든 것은 운동한다'는 뜻의 '만물유전(萬物流轉)'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나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그지 않는다'며 만물의 흐름과 변화를 정의한 바로 그 '만물유전'의 법칙이다. 저자는 이를 테마로 서양 근현대사를 조망하는데 이 책의 부제는 '혁명과 낭만의 유체 과학사'다.

"데카르트는 사람들이 믿고 있던 신비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반드시 직접적인 접촉에 의해서만 작용하는 기계적인 인과율을 과학의 기본으로 삼았다... 따라서 데카르트에게는 행성을 움직이는 힘의 전달매개로 우주를 가득 채운 유체 '에테르'가 필요했고, '에테르'의 소멸하지 않는 운동인 '보텍스'가 행성운동의 원천이라고 보았다. 이에 대해 뉴턴은 유체의 점성저항을 도입하여 유체운동은 지속하지 못하고 소멸한다고 지적했다. 대신 행성은 '에테르'의 '보텍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중력에 의해 스스로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뉴턴 역시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중력이 작용하려면 물질의 접촉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에테르'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더 나아가 자력이나 전기력에도 마찬가지로 힘의 매개체가 있다고 생각했다."
- [판타 레이], <3-15. 원격통신의 시작>, 민태기, 2021.

근세 당시는 과학자와도 같은 의사였던 철학자 데카르트는 만물이 직접 접촉을 통해 상호 운동을 하니 물체 사이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물질'로서 '에테르'를 상정했고 물질운동의 기원으로서 역동적인 소용돌이 '보텍스'를 만들었다. 
과학자 뉴턴은 연금술에도 정통했고 당시에는 '신비주의자'로 오인받기도 했는데 물질의 직접 접촉 없는 역학(물리학)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직접 접촉은 마찰과 저항으로 그 힘이 소멸될 수 밖에 없으므로 직접 닿지 않고도 소멸되지 않는 힘으로서 '만유인력'과 '중력'의 법칙을 발견했다. 
이 역시 과학자들간 논쟁을 통해 '신비주의'로 취급받기도 했지만, 만물에 '보편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실험으로 인정받으면 이는 '과학'이 된다([판타 레이], <2-6>). '에테르'는 이제 사라졌지만 뉴턴의 '만유인력'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현대과학의 총아 '양자역학'은 그렇게 '과학'이 되었다.
한편, '보편성'을 지향하는 '과학'은 궁극적으로 '보편성'의 학문인 '철학'으로 수렴된다.
'과학'과 '철학'의 결합과 융합은 필연이다.

근대의 과학사는 '에테르'의 존재와 그 증명의 반복이었다. 데카르트는 '에테르'를 만들었고 뉴턴은 이를 극복하려 했으며 결국 '에테르' 개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지만, 현대 과학은 '파장'의 양자역학으로 다시금 이 '에테르'와 '엔트로피' 등과 같이 보이지 않는 힘의 실체를 부활시키고 있다. 그 명칭이 무엇이 되었든 '소멸되지 않고 전환되는' 힘의 실체로서의 그것 말이다.
철학적 '유물론' 또한 이 모든 역학의 원천들로까지 '물질'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과학을 부정할 수 없는 현대철학에서 이제 '관념론'은 신학과 종교 뿐이다.

[판타 레이]에는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든 온갖 수학 천재들, 과학과 실험의 대가들이 등장한다. 놀라운 것은 과학자들 외에도 철학자와 경제학자, 정치가와 음악가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점인데, 이 책을 보면 인류의 역사가 이들 소수 지식인들의 손에 좌지우지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알만한 유명인사들이 깨알같이 역사적 장면에 '갑툭튀'로 등장한다. 자동차회사를 차리게 되는 포르셰는 제1차 세계대전을 촉발한 사라예보 총성으로 죽은 합스부르크가 페르디난트 공의 운전병으로 근무했고, 찰스 다윈을 배에 태워 원양항해를 할 수 있게 한 토머스 헉슬리는 '고디바 부인'을 그린 유명화가 존 콜리어의 장인이자 [멋진 신세계]를 쓴 유명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조부였으며, 심지어 제1차 세계대전은 각국의 지배권력으로 흩어진 영국 빅토리아 왕조 가문 후손들간의 이익다툼이기도 하단다. 
굳이 이런 인맥관계들만 본다면 세상은 소수의 잘난 지들끼리의 역사로도 보일테지만, 이는 이 책이 유명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과학사' 책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심심치 않게 칼 마르크스도 등장시키고 있다. 
1848년 유럽혁명을 서술하면서 [공산당선언] 언급을 잊지 않고, [성경] 다음으로 인류가 많이 읽은 책이 [자본론]이라고 소개하며(3위는 [어린왕자]), 책의 마지막 문장 또한 마르크스의 [헤겔 법철학 비판]에서 발췌한 글을 인용한다. 즉, '과학'은 개별 학문이 아니라 인류의 전체적이고 통합적 사고의 산물이며 과학사 자체가 세계사라는 결론(같은책, <에필로그>)을 강조하기 위해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이어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문장으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판타 레이]에 의하면,
마르크스의 [자본론]도 물리학의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정치경제학에 적용한 '가치 보존'의 법칙과도 같고, 
뉴턴 전문가 존 메이나드 케인스의 [일반 이론]은 뉴턴의 [프린키피아(수학 원리)]에 대한 오마쥬와도 같다.

"패러데이가 죽은 해(1867년), 칼 마르크스는 런던에서 [자본론]을 출판했다... 엥겔스와 마르크스는 자신들의 (정치)경제학에 (제임스) 줄의 (열역학) 성과를 반영하여 '노동'이 '상품'이 되고 '상품'이 '화폐'가 되고 '화폐'가 '상품'으로서의 '노동'을 구매하는 과정을 보존량으로서의 '가치'가 형태를 바꾸어가며 전환된다는 물리학적 개념으로 분석한다... '노동'과 '노동력'의 구분은, 같은 시기 동년배 사업가 줄의 연구를 잘 알던, 맨체스터에서 줄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를 고용하고 기계로 돌아가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던 '자본가' 엥겔스의 관점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잉여가치설'의 핵심은 사용자가 구매한 '동력(노동력)'과 실제 수행되는 '일(노동시간)'이 동일한 물리량이 아님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었다. 이후 잉여가치설에 기반한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실천은 '노동시간'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 [판타 레이], <3-17.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전환되는 것>, 민태기, 2021.

"경제 상황이 더욱 악화되던 1936년, 케인스 불후의명저 [고용, 이자와 화폐에 대한 일반 이론]이 출판된다. 케인스의 사상이 집대성된 '일반 이론'이라는 명칭은 당시 과학계 최대의 화두였던 아인슈타인의'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따 왔다. 뉴턴 역학이 상대성이론의 특수한 형태이듯이 '시장 경제학'이 케인스의 일반 이론의 특수한 형태임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아인슈타인이 뉴턴 역학을 부정하지 않았듯이 케인스 역시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부정한 것이 아니었으며, '일반 이론'에서 정부의 시장 개입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예외적인 조치로 한정했다. 케인스는 공황으로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는 사회주의 이념에 절대 동의하지 않았고, 결국 자본주의를 구원했다."
- [판타 레이], <5-31. 유동성과 경제 대공황>, 민태기, 2021.


3.

"코페르니쿠스의 레볼루션과 뉴턴 이후 과학이 시대적 상황과 정치적 배경에 무관하지 않았듯이, 경제학 역시 현실 정치와 결합한 지배계급의 관점이 철저히 투영되었다."
- [판타 레이], <5-31. 유동성과 경제대공황>, 민태기, 2021.

과연 '천재'들인 과학자들이 이끈 역사에 관한 이 '과학사' 책은 어려운 수학과 과학의 원리는 물론 철학과 정치경제학 및 음악까지 아우르는 매우 방대한 지식을 담고 있다. 가히 저자 민태기는 만물박사에 '천재'와도 같다.
굳이 이런저런 유명인사들을 연결시켜 소개하나 싶기도 하지만 저자가 '참고로,...' 라며 언급한 이야기들은 어디가서 깨알같이 아는 척 하기에 알맞는 이른바 '알쓸신잡' 사전과도 같다.
복잡하고 어려운 수학적 정의나 공식, 과학이론 등은 이해가 안되더라도 읽고 넘기지만, 과학사의 배경이 되는 유럽 근현대사는 이 책 [판타 레이]가 한 권의 세계사 책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렇게 이 책 [판타 레이] 또한 '낭만주의'와 '혁명'으로 점철된 유럽의 역사를 우회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만물유전'의 '판타 레이'로 관통하는 세계사에서도 역시, 나는 만물의 '혁명'적 전환을 본다.

본래 천체의 '회전'을 의미하던 '레볼루션(revolution)'이 지금과 같이 '혁명'을 뜻하게 된 건 1688년 영국 '명예 혁명'에서부터라는데(같은책, <1-1>),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적 과학 성과가 세계사에서 '혁명'적 전환의 대표적인 상징이 된 것 또한 인류의 역사에서 과학과 사상과의 관계를 증명한다. 
저자 민태기 박사는 "분명한 것들이 사라져야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역사의 '혁명'적 원리에 따라 과학사에서도 "마지막 유체 에테르가 사라지며 새로운 과학이 출발한다"는 말로 이 책 [판타 레이]의 마지막 <5부>를 연다.

'만물유전'의 요점 역시 '혁명'의 역사다.
'혁명' 또한 "소멸되지 않고 전환되는'([같은책, <3-17>) 힘이다.

***

- [판타 레이(Panta rhei)], 민태기, <사이언스북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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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하도 - 문명의 조형 탐구
아청 지음, 김영문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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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어디에서나
- [낙서하도], 아청/김영문, 2014.


"하수(河水)에서 그림(圖)이 나오고(河出圖), 낙수(洛水)에서 글씨(書)가 나와서(洛出書) 성인이 그것을 법도로 삼았다."
- [주역], <계사전>


1.

남송의 주희(주자)가 제자 체계통을 불렀다.
주희는 체계통이 처음 찾아왔을 때부터 그를 친구로 여겼지 제자의 대열에 세우지 않았다고 하는데, 체계통에게 어딘가 탁월함이 있었나 보았다. 
체계통은 그 중 그림을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났단다. 주희는 그런 그에게 [주역(역경)]에서 말하는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를 찾아오라고 청했다. 

'하도'는 '하수', 즉 동아시아 문명의 큰 물인 '황하'에서 신룡이 몸에 새기고 나타난 '그림'이고, '낙서'는 주나라 문명(중국) 출발지인 '낙수'에서 거북이가 등딱지에 새기고 나온 '글씨'다.
즉, '하도낙서'는 동아시아 문명의 기원이다.

당대 유학의 대학자로부터 중책을 부여받은 체계통은 산 넘고 물 건너 대륙을 횡단하며 사천(쓰촨) 지역에서 드디어 '하도'와 '낙서'를 발견했고, '사방오위도'와 '팔방구궁도'를 주자에게 바치며 각각 '하도'와 '낙서'라 전했다.

이를 본 주희는 [주역]의 해설서와 같은 본인의 [주역본의]에서 '사방오위도'를 '하도'로, '팔방구궁도'를 '낙서'로 구분하여 이 '하도낙서'가 "변화를 생성하고 귀신을 움직이는 방법"이라 설명한다.

그러나 체계통에게는 한 장의 그림이 더 있었다.


2.

"인(仁)이란 비교적 낮은 경지이지만 기원전 500년 무렵에는 대단한 인간 각성의 기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선진(先秦)시대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바로 이 기점입니다."
- [낙서하도], <천극과 선진철학>, 아청, 2014.

중국의 작가 아청(阿城:1949~)은 중국 소수민족 묘(먀오)족의 복식과 고대 청동솥(정/鼎)의 문양 등의 조형에 나타난 '하도낙서'와 '천극'(북극성) 신화 및 이 신앙의 변천을 통해 동아시아 문명을 크게 그려보고 있다. 
원래 도상학과 디자인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에게 실시한 강의를 엮은 듯 한데 그림과 이미지 같은 조형과 이들을 통한 도상학적 접근으로 동아시아 문명사를 조망해 보고자 도판을 계속 증보하면서 재판을 거듭했단다.

결론부터 보면,
동아시아 문명과 철학 및 사상의 기점은 진시황의 진나라 최초통일 이전인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와 백가쟁명 과정을 통과해 온 공자유학의 '인(仁)' 사상이 동아시아 '자유' 인문학의 기원이자 중심이란 내용이다.

공자의 유학은 원래 세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자연철학' 보다는 인간세상에 초점을 둔 '사회철학'(기원전 당시는 '과학'이 없었다)이다. 이 사상이 12세기경에 이르면 우주운행의 원리까지 사고를 확장하는데 이를 이념적으로 집대성한 사람이 남송의 주희(주자)였다. 그의 '주자학'이 이후 유학 이념으로서 정립되는 '성리학'이다.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고 설명해야 했으므로 주희는 '변화의 경전'인 [주역(역경)]을 연구하고 해석했다. 아마도 이 과정에서 그림에 정통한 제자 체계통을 천하로 파견한 것이리라. 우주가 낳은 인류의 문명사에서 그 시초가 된다는 '하도'와 '낙서'의 원본을 주자 본인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했을 것이다.

체계통의 보고에 따라 주희는 '사방오위도'를 '하도'로, '팔방구궁도'를 '낙서'로 규정했으나, 사실은 그 두 그림 모두 '낙서'였다. 
체계통이 숨긴 세번째 그림은 '태극'의 원형과 같은 '음양도'였는데, 후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 '음양도'가 바로 '하도'였던 것이다.


이제, 아청의 이 책 [낙서하도]에서 서술하는 동아시아 문명의 기원을 순서대로 정리해 보자.

1) '낙서' 
신석기 후기 은(상)나라 거북점 등에서 보듯 낙수라는 강에서 신령한 거북이가 상형문자를 전했다. 실은 인류가 거북이 점을 이용해 갑골문자를 남겼다.

2) '하수' 
청동기 시대인 주나라 시기 신성한 제사용 솥(정)에 신령한 괴수를 그려넣었는데, 동서남북 사신 중 으뜸인 동청룡(신룡)으로 대부분 표상되니 황하에서 신룡 또는 [산해경]에서 용의 최고 단계인 응룡이 그림을 지고 나타났다. 이 응룡은 고대중국 황제와 치우와의 신석기-청동기 문명대전쟁에서 황제를 도와 치우천왕을 물리쳤고, 우임금의 치수(물관리)를 신령한 거북 '선구'와 함께 돕기도 했다. '하수'의 그림은 청룡 말고도 주작(봉황)이나 흉측한 괴수의 대표자 '도철'의 모습으로도 등장하는데 중요한 것은 이 괴수들의 이마 정중앙 마름모꼴이다.

3) '천극' 
동아시아인이 태양을 숭배한 것은 불교가 처음 들어온 후한 시대란다. 그 전까지 기원전 시대는 '천극'의 시대였는데, '천극'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북극성'이다. '하도'의 신룡이나 도철 이마 정중앙에 새겨진 마름모 또는 이후 변천된 소대가리 이마의 소용돌이 등이 바로 이 북극성을 표시한다. 이를 중심으로 신룡이 오르고 봉황이 나는 별자리도 보이는 것이다. '천극'을 숭배하는 사상은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본인이 '천극' 자체가 된 이후로 옅어진다. 이에 따라 천극과 수호신(용-봉황-도철-거북 등)을 새겼던 솥은 진나라 이후 문양없이 단순해진다. 이는 이후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농민황제 유방이 건국한 한나라에 이르러 '천인합일', 즉 황제가 하늘(또는 그 아들인 '천자')이라는 유학사상과 결합한다.

4) '축의 시대(Axial Period)'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원전 800년에서 기원전 200년 사이는 인류 사상사에서 공통된 '각성기'인 '축의 시대'라고 철학자 야스퍼스가 말했단다. 천극을 떠나 인간의 '자유의지'가 발견된 시대, 즉 공자나 석가,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같이 철학적으로 인간을 발견한 인문학 각성의 시대라는 것이다. 이 즈음부터 인류는 '동물성'을 버리고 '문(文)', 즉 '문화'와 '문명'을 발전시키며 '인문학'을 발견했다. 인류가 신 또는 하늘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하여 '자유의지'를 펼치기 시작하는데, 서양의 아리스토텔레스와 동양의 제자백가 등으로 나타났다.


"공자의 뜻, 즉 공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자유상태'입니다... 축의 시대 각성자로서 공자는 각성을 시작하면서 바로 각성의 궁극적 지점(자유상태)을 표현한 것이죠... (그러나) 기원전 500년 무렵의 공자는 내면의 '자유의지'라는 문제에서 대화상대가 없었던 셈이죠. 소위 '고독'이란 바로 이런 것이죠. 소위 '강함'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 [낙서하도], <천극과 선진철학>, 아청, 2014.

이상의 흐름을 통해 아청은 공자의 유학을 중심으로 '이질화'되지 않은 유학적 세계관을 펼치는데 역시 중국인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 역사의 보편적 기원으로서 [낙서하도]를 추적하는 아청에게도 공자는 여전히 사상의 뿌리다. 시진핑의 '일대일로' 슬로건이 내세우는 철학 또한 '인'의 정치의 세계적 실현 아니던가.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공자의 어록 [논어]에 "칠십세에 이르면(七十而) 마음이 가는대로 따라가도(從心所欲:종심소욕)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不踰矩:블유구)"라는 말이 있다. 오래전 각성시대(축의 시대) 이후 인문학 궁극의 목적지점이다.

아청이 '하도낙서'를 '낙서하도'로 바꿔 부르면서까지 추적한 인류문명의 결정적 지점이다.


3.

"상나라 시대 청동기에 구현된 '하도'의 나선형 문양, 지금의 중국 먀오족 전통의상에 그려진 나선형 문양, 그리고 우리나라 태극기에 그려진 태극 문양이 동일한 시원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 어느것 중심의 영향관계가 아니라 동일한 근원에서 함께 분파된 열매를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한국, 중국, 중국 소수민족, 일본, 동남아 등이 모두 천극성 신앙과 도작(벼농사) 문명이라는 동아시아 보편의 뿌리에서 공평하게 갈려나간 독자적인 문화담지체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 [낙서하도], <옮긴이의 말>, 김영문, 2023.

[낙서하도]의 저자 아청은 지금으로부터 11만년 전부터 약 1만년 전까지 지속된 마지막 빙하기의 후기에 중국과 한반도는 물론 일본까지 원래 하나의 대륙으로 연결되었던 그 시기부터 '낙서하도'와 '천극' 신앙, 도작(벼농사) 문명 등이 동아시아 인류 문명의 보편적인 바탕으로 존재한다고 추측하면서 책을 끝낸다. 
중국이 중심이라는 '중화주의' 사상이 아니라 오래전 '낙서하도'의 문명이 시작된 자리에 지금의 중국이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같은책, <동아시아 문명에 대한 추측>).

여기에 옮긴이 김영문 선생은 아청의 주장을 다시금 강조한다. 중국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가 보편적 문명을 공유하는 것이다.
'낙서하도'는 중국만의 것이 아니다.


내가 읽은 [낙서하도]의 내용은 또한 이렇다.

아청에 의하면, [역경]의 괘가 하나라와 상(은)나라 시기에는 건(하늘)과 곤(땅)이 반대였다. 아마 음양도 그랬을지 모른다. 이를 주문왕이 유리안치 시절 [역경] 괘를 [주역] 64괘로 재해석하며 원래 하늘이었던 '곤'을 땅으로, 원래 땅이었던 '건'을 하늘로 전환시켰다. 
아마도 땅을 중시하던 신석기 또는 하상나라 문명에서 하늘을 대리하려는 지배자의 시대인 청동기 문명으로 교체되는 문명적 '혁명'을 사상적으로 준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서쪽의 앙소문화(주나라)와 동쪽의 용산문화(상나라) 간 문명 대충돌의 '혁명'이 임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 이전의 상고시대에 벌어진 황제와 치우의 대전쟁 또한 평지의 도작문명과 고원의 속작문명 간 충돌이었을 수 있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해수면이 올라가면서 지금은 대륙붕 연안바다가 된 지역에서 벼농사를 시작한 도작문명이 조와 수수 등을 재배하던 속작문명의 영토를 침범하게 되었는데 치우가 도작문명 침략자를 대표한다는 설을 아청은 소개한다. 
원래의 땅을 지키던 황제 세력은 신룡과 거북 등 문명의 힘으로 요괴화된 침략자 치우 세력을 물리친다. '낙서하도'의 힘이다. 하지만 치우의 청동기 문화는 기존의 '낙서하도'와 융합된다. 이후 소빙하기로 추정되는 5~6세기 추워진 북방의 유목민족이 남방의 정착문명을 침략한 후 문명이 크게 또 다시 충돌하고 융합되는 것처럼, 문명은 언제 어디서나 '혁명'을 통해 진화한다.

원래 '하도'가 먼저 생기고 '낙서'가 뒤따른다는 설로 '하도낙서'라 불렸지만, 아청은 '문명의 조형 탐구'를 통해 신석기 시대에 낙수에서 거북이(선구)가 글자(상형갑골문자)를 지고 나타나는 '낙서'가 먼저 등장했고, 이후 청동기 시대에 청룡(신룡)이 황하에서 별자리와 같은 그림의 형태를 띄고 도상화되어 나타났으니, 기존의 '하도낙서'를 '낙서하도'로 순서를 뒤바꾸었다. 
도상학적으로도 '낙서'와 '하도'는 '혁명'적으로 전화된다.

'하늘'과 '땅'이 '곤건'에서 '건곤'으로 뒤집어지고, 음양이 뒤바뀌며, 신석기와 청동기 등의 문명이 충돌하고 융합되는 역사에서 '하도낙서'가 '낙서하도'가 되는 일련의 과정 자체가 인류 문명사에서 만물의 '혁명'적 전환으로 해석된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세상사 '만물유전(萬物流轉/panta rhei)'의 본질은 '혁명'이다.
인류 문명의 역사 또한 '혁명'의 역사 자체다.
'혁명'은 어디에서나 있다.

***

1. [낙서하도(洛書河圖) - 문명의 조형탐구](2014), 아청, 김영문 옮김, <글항아리>, 2023.
2. [산해경 괴물첩](2015), 천스위 그림, 손쩬쿤 해설, 류다정 옮김, <디지털북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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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가 묻고 답하다 - 2023 세종도서 학술부문
이경태 지음 / 박영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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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마르크스는 묻고 스미스는 답했다
- [애덤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가 묻고 답하다], 이경태, <박영사>, 2023.


"철학적 토론은 없다. 
철학적 코뮤니카시옹은 없다."
- 루이 알튀세르, [레닌과 철학], 1968.


1.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지식이란 과학적 발견으로 생기며 철학은 사상의 경향성을 설정할 뿐이라고 했다.

철학자인 그가 보기에도 철학이란 지식 생산 기능은 없이 과학이 발견한 지식을 가지고 싸움질이나 하는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이었다.

1980년에 정신 나가기 전까지 그 철학자는 '이론'적으로 투철한 공산주의자였다.

이십대의 나는,
그의 추종자, '알튀세리앵'을 선망했다.

내가 보기에도,
모든 '철학'적 토론은 같은 대상을 두고도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자기 얘기만 하기에,
합의에 이를 수 없었다.

알튀세르의 말대로,
철학적 '코뮤니카시옹(communication)'이란 애초에 불가능했다.


2.

"나의 경제학은 자본이 아니라 인간을 중심에 놓고 있지. 경제를 움직이는 주체는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경제인, 즉 'homo economicus'라는 것이 대전제로 설정되어 있지... 자본이 경제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고. 자본은 수단에 지나지 않아."
- [애덤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가 묻고 답하다], <1부>, 이경태, 2023.

"[국부론]은 내가 [자본론]을 쓸 때 반면교사, 타산지석의 지적 깨우침을 선물해 준 고마운 양서네. 자네는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으로서 '보이지 않는 손'과 '자연조화설'을 제시했지. 나는 [국부론]을 수없이 읽으면서 내가 목격한 자본주의의 현실 인식과 대비한 결과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추동력이 '잉여가치'와 '노동자 착취'라는 불편한 진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네."
- 같은책, <1부>, 이경태, 2023.


재무부 공무원이었다가 미국으로 유학 가서 경제학 박사가 된 후 국책기관인 산업연구원에서 활동한 경제학자 이경태 선생은 올해 '사실과 상상의 융합'으로서 '논픽션에 기초한 픽션'(같은책, <머리말>) 장르를 내세워 18세기의 애덤 스미스와 19세기 칼 마르크스를 한 자리에 앉혔다.
배경은 결국 인간다운 세상을 꿈꾸었던 업적을 기려 천당에서 둘이 만나 염라대왕의 배려 하에 지금 세상을 주유천하 후 런던의 템스 강가에서 커피 한 잔씩 때리면서 토론한다는 설정이다.

서로 묻고 답하는 대화체 형식인데, 예상되듯 스미스는 자본주의에 기반하고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또는 과학적 사회주의)에 기반하여 현재의 세계경제를 논하고 있다.

[국부론]에서 합리적 인간의 이기심이 사회적으로 작동하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가 '자연조화'되고 발전한다는 스미스의 경제 자유주의 사상에서 그의 '고전파' 후학들은 '시장'의 절대적 힘을 강화시키고 신격화하고자 했지만,
[자본론]을 쓴 마르크스는 스미스가 발견한 '노동가치론'과 '노동분업'이 자본주의 발전의 기본골자라고 보았다.

애덤 스미스의 경제적 자유주의와 칼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가 상호 학술적 계보를 이루지는 않는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에는 [국부론]도 인용되지만 그의 '노동가치론'은 스미스의 후학인 데이비드 리카도의 정치경제학 이론으로부터 더 큰 영향을 받았다.
두 사람의 시대는 한 세기의 차이가 나고 스미스의 산업혁명기 시대는 마르크스의 시대와 비교해 노동이 착취되는 양상이 다르다. 그러므로 이 책의 설정처럼 둘이 서로 '자네'라 부르며 각자의 사상을 주고받는 것은 넌센스임에도, 저자는 '자본주의(스미스)'와 '사회주의(마르크스)'의 차이와 장점들을 융합하여 우리식으로 '제3의 길'을 모색하고자 굳이 두 인물을 동시에 소환하고 있다.

'자본주의'라는 말은 1902년에 베르너 좀바르트라는 독일 경제학자에 의해 널리 회자되었다고 한다. 즉, 'capitalism'은 학문적으로 18세기 스미스에게는 그냥 '경제학'이었고, 19세기의 마르크스에게는 당대 '정치경제학'적 분석대상이었을 수도 있다. 
18세기 스미스의 시대는 '경제학'이 '윤리도덕철학'과 구분되지 않은 시대라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의 이기심을 인간윤리도덕과 법적 통제로 보완하자고 주장했고, 과학이 좀더 발전한 19세기 마르크스 시대에는 '경제학'이라는 독립된 과학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므로 '과학적' 사회주의 사상가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으로 '경제학'을 다시금 대체하고자 했다.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은 경제라는 하부구조가 정치라는 상부구조를 규정하며 양자는 상호 변증법적으로 엮여있다는, 이른바 우리 80년대식으로 표현하면 '사회구성체론'이었다.
정리하면, 스미스의 경제학의 주제는 이기적이지만 합리적인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이었고,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의 주제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사회구조'(social structure)였다.

시기는 달랐으나 '자본주의'라는 같은 세상을 두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라는 동일한 지향점이 있었지만, 스미스는 인류의 '자연조화'를 믿었고 마르크스는 '계급투쟁'의 역사를 보았다.

이 책에서도 두 사람 사상의 차이점을 우선 확인하고 미국의 자본주의, 구소련과 중국의 짝퉁 사회주의를 각자 비판하면서 급기야 <6부>에서는 한반도에 모여 스미스가 남한의 재벌중심 자본주의를 개조하고 마르크스가 북한의 사회주의 사칭 김씨 봉건왕조를 혁명하면서 선의의 '체제경쟁'을 외친 후 마지막 <7부>에서 작별의 건배를 들기까지 하지만, 결론적으로 두 사상의 '철학적 토론'은 없었다. 
결국 한반도 통일방안 또한 '연방제'로 귀결된다.


"이해관계자 상생은 자본주의의 장점인 효율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자본주의의 결점인 불평등을 현저히 개선할 수 있는 대안임이 분명하네...이해관계자 상생은 분배과정에서의 기업과 시장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보려는 시도이지. 공정분배 기능을 시장기구 내부에서 작동하는 내생변수로 끌어들이자는 것이네. 평등사회의 실현을 정부, 종교단체, 시민사회의 책임으로만 돌리지 말고 기업의 경영목표로 내생화하자는 것이지."
- 같은책, <6부>, 이경태, 2023.

"협동조합체제도 생산수단은 공유하면서 사유재산을 부정하지만 공동생산에서 나온 산출물을 시장에 내다 팔고 그 대금을 조합원들이 공평하게 나누어 갖자는 것이니까 시장가격기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닐세. 시장경제에서 발생하는 사유재산의 폐단과 불공평한 분배를 시정하자는 것이지."
- 같은책, <6부>, 이경태, 2023.


이상은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첨단을 누리는 '디지털' 기술혁명의 놀랍고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공유한 두 사상가가 이 '디지털' 기술혁명을 기반으로 하여 이 책에서 내린 주요 결론들이다.

스미스는 기업이 효율만 따지지 말고 자본가와 노동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협력업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장기적으로 자본주의 불평등을 공정하게 완화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이해관계자 상생' 전략을 내건다.

마르크스는 구소련 공산주의 등이 실패한 국가주도 중앙계획경제가 아닌 노동자 자치의 공유제를 통한 '협동조합'들이 '디지털' 기술혁명에 기반한 실시간 '계획경제'를 실현하고 한편으로 시장기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공정하게 경쟁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체'([자본론]과 [공산당선언]의 궁극적 결론)를 꿈꾼다.

이 책 내내 두 사람은 열심히 토론하고 건배로 끝내지만 사실 서로 자기 얘기만 하고 끝난다.

역시,
알튀세르의 말대로 "철학적 토론은 없었다."


3.

"환경에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의 법칙은 생명체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제도와 사상에도 적용된다고 믿네. 자본주의는 비판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유연한 체제이기 때문에 수백 년 동안 번성하고 있지."
- 같은책, <7부>, 이경태, 2023.


사실 내가 읽기로 이게 이 책의 결론이다.

자본주의는 체제 자체에 내재된 주기적 공황과 외재적 위협인 사회주의라는 '소금' 덕분에 지속 수정발전하며 지금에 이르렀고, 인류는 다시 옛날의 빈곤으로 되돌아갈 수 없으니 조지프 슘페터의 말마따나 '기업가의 창의적 혁신'을 장려하며 생산력를 지속 발전시키고 존 메이나드 케인즈의 정책대로 정부의 '보이는 손'으로 유효수요와 완전고용을 확보하면서 분배를 고르게 이뤄야 한다는 것. 자본주의가 '인간화'되고 혁신하며 적응하고 버텨온 진화론적 '선택설'에 따라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방식도 좋으니 어쨌든 사회주의는 '소금'으로 자본주의에 간 좀 잘 맞춰달라는 것.


이 책에서 애덤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는 서로 자존심 세워가며 문답을 이어가지만, 결국 체제경쟁에서 1패한 마르크스는 물었고 어찌되었든 피묻은 1승을 거둔 스미스는 답을 한 것이다.

인류가 적응하며 다윈주의적 '자연선택설'을 통해 살아남았듯,
자본주의는 온갖 위험과 도전에도 불구하고 '사회선택설'에 따라 살아남았다고.

그러니 과연 이 체제 말고 다른 대안이 있냐고, 말이다.

***

- [애덤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가 묻고 답하다], 이경태, <박영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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