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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호민관 차베스
리처드 고트 지음, 황건 옮김 / 당대 / 2006년 9월
평점 :
살아있는 자의 ‘평전’?
- 리처드 고트의 [민중의 호민관, 차베스]
“우리는 존엄성에 대한 투쟁을 사회주의라 부르지만,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이를 볼리바르주의라 부릅니다.”
- 피델 카스트로
우고 차베스가 베네수엘라 공화국을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공화국’으로 국호까지 고치면서 집권한 해가 1998년이었다고는 하나, 저 개인적으로 그 인물에 대해 듣게 된 것은 재작년부터인가 베네수엘라 연구회라는 곳이 중심이 되어 당내에서 차베스를 홍보할 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1995년부터 어렴풋이 이름을 들었던 브라질의 손가락 아홉개인 노동자 룰라 다 실바는 2001년인가에 브라질의 노동자대통령이 되었으니 차베스는 룰라보다도 먼저 집권을 한 것이었지요.
독서 ’편식’이 약간 있는 저로서는 아마도 볼리바리안 민족주의자보다는 노동자 대통령을 더 갈망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작년부터 한 번 읽어보고 싶었던 차베스 관련 책을 이제서야 읽게 되었습니다. 서두에 인용한 말은 차베스가 집권 후에 쿠바를 방문했을 때, 카스트로가 연대를 과시하면서 한 말이라고 하더군요.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쿠바 혁명, 체 게바라의 죽음, 아옌데를 살해한 칠레의 피노체트 쿠데타 등의 격변의 현장을 직접 목격한 라틴아메리카 전문가라는 리처드 고트의 책, [민중의 호민관, 차베스]를 먼저 선택한 이유는 차베스 관련 서적을 먼저 읽은 분과 서로 바꿔보면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와, ‘저명’하다는 저널리스트가 썼다면 좀더 ‘객관적’이지 않을까 하는 이유였습니다만,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우고 차베스라는 인물의 ‘생애’를 중심으로 저술된 ‘살아있는 자의 평전’이었기에 아쉬웠다는 점입니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무엇보다 우리 현실에서 출발하여 차베스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리라는 생각이 깊이 들었는데요, 그래도 기억에 남는 세 가지 정도는 소개해야겠지요.
1. 베네수엘라의 현실 – 국유화 경험, ‘제헌의회;
라틴아메리카의 동북부에 위치한 베네수엘라는 석유수출국으로 ‘국가’적으로 본다면 ‘부유한 국가’이지만, 그러한 부의 편중으로 인한 양극화는 심각하다고 하더군요. 차베스는 군장교 출신으로 1992년에 이미 ‘진보적 쿠데타’를 기도했다고 하는데요, 이 당시부터 베네수엘라의 석유회사에는 민영화의 프로그램이 도입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 현실과 비슷한데요, 이러한 현상은 미국패권의 초국적 자본이 신식민지 또는 개발국에게 강조하고 있는 ‘글로벌 스텐다드’입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와 남한의 차이점은 큽니다. 신자유주의를 선택했다던 베네수엘라 페레스 대통령도 국영 석유회사를 고수했고 그로 인해 지지를 받았던 대통령이라고 하더군요. 남한의 민중들은 신자유주의의 주요한 형태 중 하나인 민영화를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적어도 베네수엘라 민중들에게 ‘국영’은 ‘레드콤플렉스’에서 좀더 자유롭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가에서 공공적 성격을 지니는 산업에 대한 ‘국영’이 편견에서 자유로운 현실이라면 민중의 삶을 개선하는 진보적 개혁의 토대는 더욱 탄탄하겠지요.
또 하나는 ‘제헌의회’였습니다. 올해로 20주년을 맞는 1987년 민주화투쟁 국면에서도 남한에서 ‘제헌의회(이른바, ‘CA’)’ 운동이 있었다지요. 물론 저는 전설로만 들었지만. 직선제로의 개헌에 머물지 않고 민중적 헌법을 쟁취하기 위한 민중들의 의회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자는 급진적인 노선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남한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에 의해 좌절되었던 ‘제헌의회’의 기도는 약 10여년 후 베네수엘라에서 현실화되고 있었습니다. 대선에서 승리한 차베스는 ‘제헌의회’를 소집하여 민주적인 헌법을 쟁취하고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를 질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2. 군대의 지위
차베스는 노동자도, 진보적 정치인도,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 등의 좌파도 아닌 군장교 출신이었습니다. 칠레의 피노체트가 아옌데 대통령의 좌파연합정권을 무너뜨린 군부 쿠데타 이후로 라틴아메리카에서도 군부 쿠데타라고 하면 검은색 선글라스에 극우보수의 반동적 기도로 이해되어 왔다는데요, 이는 남한 민중들이 군부 쿠데타를 이해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물론 러시아혁명 전에 ‘애국적 군인’들의 역할과 러시아혁명 과정에서 병사소비에뜨의 역할에 대해서도 간접적으로 듣기는 했어도, 남한에서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대한민국’ 군대에서 썩는다는 것이 너무 끔찍해 입대 전날 머리 깎고 와서 소련의 유물변증법, 사적유물론 교과서였다던 빅토르 아파나셰프의 [대중철학론]을 다시 읽으며 잠을 이루지 못했었습니다. ‘반공’이 국시인 남한의 군대는 역시 저의 예상에서 한치도 벗어남이 없이 ‘극우’ 사상의 요람 자체였습니다.
19세기 스페인으로부터 라틴아메리카를 해방시키고자 했던 시몬 볼리바르를 영웅으로 모시는 베네수엘라와 남한의 극명한 차이는 군대의 지위에서도 있었습니다. 군대의 사회개조 쿠데타에는 남한 역사에서처럼 박정희와 전두환만 가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3. 차베스 지지의 기반 - 인종주의
1992년의 쿠데타 실패 후 방송에서의 1분간 연설(“지금 당장은!”)을 통해 전국민에게 각인되었던 차베스는 감옥에서 2년간 혁명을 준비하고 기존 보수정당들과 선을 그은 진보적 좌파와 교류하며 지지를 얻고 1998년 대선에서 승리합니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베네수엘라 사회체제나 민중운동의 시각에서 저술하지 않고 차베스의 거취와 그의 말을 통해 그리고 있다는 점, ‘살아있는 자의 평전’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만, 그래도 수도 카라카스의 빈민촌에서 소수의 백인주의자들인 부자들에게 타격을 가했던 1989년의 ‘카라카소’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차베스는 1998년 집권 후 세 번의 반동쿠데타에 직면하는데, 첫번째의 우파 군부 쿠데타와 두번째의 어용노조의 석유회사 파업, 세번째 국민소환, 국민투표였습니다. 마지막 2002년도의 대통령소환은 ‘제헌의회’를 통해 쟁취한 민주적 헌법에 따라 차베스의 반대파들이 ‘합법적’으로 차베스를 끌어내리려 했다는 점에서 2004년의 노무현 ‘탄핵’과 닮아있었습니다. 역시 차베스는 인디오, 메스티소 등이 대다수인 빈민들의 절대지지를 통해 국민투표에서도 높은 지지를 얻어 대통령으로 복귀하고 현재 라틴아메리카 반미전선, 신자유주의 반대전선의 선두에서 라틴아메리카의 통합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백인주의에 반대하는 대다수 토착빈민들은 변함없이 차베스를 지지하고 있다고 리처드 고트는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의 독서기술이 모자라 ‘차베스혁명’의 위대한 업적을 더 부각시키지 못함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객관적 사회체제의 운동이 아닌 우고 차베스 개인의 인생편력을 중심으로 베네수엘라 혁명을 그리고 있는 한, 국영공공산업의 민중적 의미와 ‘제헌의회’의 위대한 업적, 군대 내에서의 진보운동의 가능성이나 인종주의를 넘어선 민중적 지지기반에 관한 그 어떤 타당한 설명도 불가능하리라 감히 생각합니다.
라틴아메리카 통합의 기치를 건 차베스는 쿠바를 의식한 듯 자신의 정책노선을 설명하면서 기존 볼리바르주의에 사회주의를 포함시키고 있다고 하지만, 그러한 정치적 수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겠지요. 석유를 쿠바에 반값으로 공급하고 쿠바로부터 예방의학으로 훈련된 의사들을 지원받아 민중들에게 의료지원과 교육지원 등을 하는 대외정책은 라틴아메리카 통합을 위해 앞으로 더욱 발전시켜야 할 차베스의 과제일 것입니다.
‘살아있는 자의 평전’으로서의 리처드 고트의 책은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차베스의 반신자유주의 라틴아메리카 통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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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중의 호민관, 차베스], 리처드 고트 지음, 황건 옮김, <당대>, 2006.
: 서점에서 차베스 관련 책을 찾아보았는데, 짧은 시간에 찾다보니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와 이 책 두 권 외에는 찾아보지를 못했습니다. ‘평전’은 고인이 된 역사적 인물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에 인물중심으로 저술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그 인물이 살아온 역사는 묻어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평전’으로 그려질 수 없는 살아있는 인물을 그 인물중심으로 저술하고 있는 관계로 인물에 투영되는 역사적, 사회적 현실이 잘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레닌], 로버트 스미스 지음, 정승현, 홍민표 옮김, <시학사>, 2001.
: 개인적으로 ‘평전’을 주로 찾아서 읽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레닌은 위대한 인물이라는 생각에 평전까지 찾아 읽었습니다. 레닌의 부르주아적 가계와 그의 편집증적이고 신경질적인 성격까지 굳이 알고 싶지 않았음에도 이 ‘평전’이라는 장르는 친절하게 개인적 편력을 강조해주고 있더군요. 소비에뜨의 10월 혁명을 알고 싶다면 레닌의 ‘평전’보다는 다른 책([10월혁명사], 이완종 지음, <우물이 있는 집>, 2004.와 같은)을 읽는 게 좀더 바람직합니다.
3. [체 게바라 평전],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실천문학사>, 2000.
: 워낙 유명인사라 한 번 읽어봤던 책입니다. 저자는 체 게바라 전문가로 유명한 프랑스 저널리스트이고 그렇기 때문에 체 게바라의 일생에 대해서 관심이 있으신 분은 장 코르미에의 이 책을 읽으심이 어떨까 하여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