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을 위한 변명 - 혁명가 정도전,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설계하다
조유식 지음 / 휴머니스트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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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반도의 '맹자'이자 '트로츠키', 정도전!
- [정도전을 위한 변명] - 조유식 (1997) 


"민심을 얻으면 민은 군주에게 복종하지만, 
민심을 얻지 못하면 민은 군주를 버린다."
- 삼봉 정도전, [조선경국전], 1394.


맹자는 위나라 양혜왕에게 "'인'을 해친 자를 '적'이라 부르고 '의'를 해친 자를 '잔'이라 부른다. '잔적'은 일개 필부에 불과하니 (은나라)주왕이라는 일개 필부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뿐 군주가 시해되었다는 말을 들어보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이는 아시아 정치사상사에서 최초로 '민본주의' 또는 현재의 '민주주의'를 설파한 아마도 최초의 기록일 것인데, 조선건국의 설계자 삼봉 정도전이 신생국 조선의 '제헌법전'격인 [조선경국전]에서 위와 같이 쓴 명제의 기원이기도 하다.
정도전을 말한다는 것은 즉, 역사에서 '혁명의 정당성'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조선건국이 봉건체제의 일대유신을 도모한 혁명적사건이라는 주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파쟁과 정체로 상징되는 조선사에 그 같은 격동의 시기가 있었다는 것은 기자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그 길로 나는 서점과 도서관을 뒤지며 정도전을 취재하기 시작하였다... 그(정도전)는 그가 살았던 시대 이상이요, 그가 세운 나라 이상이었다. 고조선 이래 수천년간 이어 내려온 귀족중심체제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기도한 모반자이자, 이미 6백년전에 군주제의 한계를 인식하고 재상 중심의 정치를 실현한 합리주의자였으며, 열강들 사이의 일시적 권력공백을 파고들어 만주 수복을 도모한 야심만만한 국제전략가였다. 선비인가 하면 정략가였고, 유교이론가인가 하면 군사전략가였다. 수학과 의학, 불교에 두루 밝았고, 직접 악기를 제작할 줄도 알았다. 조선의 문물제도, 경복궁과 태평로, 종로 등 서울 도심의 기본설계, 4대문과 4소문, 그 안의 동네 이름이 다 그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건국의 공으로 치더라도 단연 으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선시대 내내 만고역적의대명사였으니, 역사를 주재하는 신은 그에게 너무 각박했던 게 아닐까. 나의 귀에는 6백년간 '역적'으로 낙인찍혀 사료 창고 속에 처박혀 있던 정도전이 자신의 진실을 알아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 [정도전을 위한 변명], <머리말 - 의로운 자는 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야 하는가>, 조유식, 1997.


21세기 들어서야 '역사 재조명'을 통해 소설이나 대하드라마 등을 통해 익히 알게 된 내용이겠으나, 20세기 후반까지도 우리 역사에서 '정.도.전'이라는 이름은 태봉국의 궁예나 조선후기 허균 등과 같이 일반인들에게 '진실되게'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다. 1997년 당시 <월간 말>지 기자였던 현재 알라딘문고 대표 조유식 선생이 1990년대 초 어느 젊은 정치인으로부터 "정도전을 파보라"는 권유를 받고 '서점과 도서관을 뒤지며' 취재하고 [정도전을 위한 변명](1997)을 발간하기 전까지는 적어도 대중에게 정도전이라는 인물은 아예 관심이 없거나 '역적'에 불과했다.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정안군 이방원은 훗날 태종이 되기 위한 1398년 '2차 왕자의 난'을 통해 최후의 정적 정도전의 목을 베고는, [태조실록]에 기록하기를 "옛날에도 정안공이 정몽주를 죽여 나를 살려주었으니 이번에도 한 번만 더 살려주시오"라면서 정도전이 이방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고 했다. 이방원이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정도전, 남은 등의 '거사일'에 그들의 난을 진압한 것이 '2차 왕자의 난'이라는 것인데, 이상하게도 '거사일'에 '반란수괴 정도전'은 동지 남은의 첩의 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발각되어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했고 이후 반세기 동안 '만고 역적'이 되었다.
알다시피 '승자의 기록'으로서의 역사인 것이다.
물론, 역사학자들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겠으나 대중에게 '혁명가 정.도.전'을 알린 최초의 책이 바로 조유식 선생의 [정도전을 위한 변명]이며, 그 덕분에 삼봉 정도전은 우리 역사에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되었다.


"아득한 세월에 한 그루 소나무
푸른산 몇 만겹 속에 자랐구나
잘 있으시오 훗날 서로 뵐 수 있으리까
인간세상이란 잠깐 사이에 묵은 자취인 것을"
- [용비어천가] 중, 정도전과 이성계의 첫 대면


위 시는 정도전을 '조선의 역적'이라 규정한 이방원의 [태조실록]을 그대로 인용한 [용비어천가]에서 정도전과 이성계의 첫 만남 중에 정도전이 이성계의 함흥군영 소나무에 남긴 시다.
고려말 유학자 목은 이색의 문하생 중 개혁적 신진사대부 2기였을 동기들 모임 '동심회'를 결성하고 그 중 가장 따르던 선배 정몽주의 주선으로 당대 최고의 무력을 자랑하던 '변방 장수' 이성계를 처음 만났던 1383년의 기록인데 이 만남으로부터 '역성혁명'의 서막이 열린다.


원래도 타협을 모르는 강직한 성품이었겠지만 어머니가 서얼 출신이라 고위관직에 오르지 못했던 정도전은 원나라 사신 접대 거부 사건으로 친원파 이인임에 의해 정몽주와 함께 유배를 당했다. 정몽주가 유배에서 풀려나 다시 출사할 때도 정도전은 신분의 한계로 계속 낭인 생활을 이어가는데 나주 유배생활부터 삼각산 '삼봉재'에서의 교육자생활, 정적의 핍박으로 부평과 김포까지 쫓겨다니는 고난의 여정을 통해 '민본주의'를 체득한다. 부패한 불교에  대항하여 도덕정치, 군자정치, 이상사회를 기획한 급진사상으로서의 당시 성리학이라는 이념에 고난한 민중의 삶을 통한 공자의 '애민 정신', 맹자의 '여민 정신'을  현실적으로 접목시키는 과정에서 중앙정치로부터 소외된 '변방 장수' 이성계의 무력까지 결합하여 '역성혁명'은 드디어 본막에 진입하게 된다. 


정치적 사건으로서의 '조선건국'과 '역성혁명'은 잘 아는 내용일테니, '사상혁명'으로서의 조선건국을 보면, 단연 [맹자]가 보인다.
부패한 불교가 지배이념인 고려말에 이미 신진사대부 정몽주와 정도전은 유교의 예법인 부모 '삼년상'을 '선구적'으로 지킨 인물들이었는데, 정도전은 그 삼년상 시기에 정몽주로부터 받은 [맹자]를 하루에 한 두 장만 읽을 정도로 정독하고 연구했다. '민중을 사랑하라(애민 정신)'고 했던 공자를 넘어 '민중과 함께하라(여민 정신)'고 말하며 '민심을 얻지 못하면 민중은 군주를 버린다(역성 혁명)'고 주장하는 맹자의 '혁명론'이 정도전의 실천적 이념이 되었고 그는 죽는 날까지 그 뜻을 꺾지 않았고 타협하지 않았다.
현대적 토지공개념 제도인 '계민수전(인구수에 따라 토지분배)'의 토지개혁을 경제적 토대로 하고, 군주제의 한계를 넘어 이상사회 구현의 중심인 재상과 사대부들이 체계적으로 왕권을 견제하는 정치체제로 조선의 기초를 닦으려 했던 정도전의 '혁명'은 '왕권강화 쿠데타'를 획책하던 이방원과 충돌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역사는 '이익과 실리'를 앞세워 승리한 소인배들이 '인의'를 꿈꾸는 의로운 군자들을 역사로부터 지웠다.


그러나 진정한 역사는 '승자의 역사'가 아니라 다수 민중을 사랑하고(공자의 '인') 모두 함께 살아가고자 했던(맹자의 '의') 의로운 '패자들의 역사'라는 사실을, 한반도의 '맹자'이자 '트로츠키'인 정도전의 부활을 통해 재차 각인하며, 무려 23년전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조유식 선생의 [정도전을 위한 변명]에 다시금 경의를 표한다.

현실에서는 비록 패배하였으나, 역사에서는 결국 승리한 '혁명가' 정도전을 닮은 소비에트 '영구혁명가' 트로츠키는 정도전이 죽은 6세기 후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장 강력한 서기장(스탈린)의 복수보다 '역사의 복수'가 더 무섭다."
- 레온 트로츠키


(2020년 3월 7일)

* 추천도서 : 조유식의 [정도전을 위한 변명]은 가장 추천하는책이며, 소설형식으로는 김탁환의 [혁명 1,2]도 적극 추천

1. [정도전을 위한 변명], 조유식, <푸른역사>, 1997.
2. [혁명 1,2], 김탁환, <민음사>, 2014.
3. [역사의 복수], 앨릭스 캘리니코스, <백의>,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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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화의 제국 - 자본주의의 새로운 역사
스벤 베커트 지음, 김지혜 옮김, 주경철 감수 / 휴머니스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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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문명'과 '야만'이 하나로 연결된 [면화의 제국]
- [면화의 제국 - A New History of Global Capitalism], 스벤 베커트 지음, 김지혜 옮김, <휴머니스트>, 2014.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맨먼저 부르주아(상품) 사회의 가장 단순하고 가장 평범하고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대량적이고 가장 일상적이며 헤아릴 수 없이 목격되는 단계, 즉 '상품교환'을 분석하고 있다. 그 분석은 이 가장 단순한 현상 속에서(부르주아 사회의 이 '세포' 속에서-개별로서의) 현대사회의 모든 모순(혹은 '맹아')을 폭로한다. 계속되는 서술은 이 모순의 발전('성장'은 물론 '운동'도)과 그 개별 부분들의 총합 속에서 이 사회의 발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방식은 또한 '변증법 일반'의 서술(내지 탐구)의 방법임에 틀림없다... 가장 단순하고 가장 평범하고 가장 대량적인 것 등등으로부터 시작하면,... 이미 이 속에는 (헤겔이 천재적으로 지적하였듯이) '개별은 보편이다'라는 '변증법'이 존재한다... 이리하여 대립물(개별적인 것은 보편적인 것에 대립한다)은 동일적이다.
'변증법'은 다름아닌 (헤겔과) 마르크스의 '인식론'이다."
- V. I. Lenin, [철학노트], <변증법의 문제에 대하여>, 1915.

레닌에 의하면, 마르크스가 [자본론]이라는 '정치경제학' 이론서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를 분석하는 방식은 가장 단순하지만 자본주의 일반을 담지하는 '상품'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시작으로 그 운동을 일반화하는 것이었다. 현실에서는 체제 속에서 '상품' 개념을 추출했으나, 서술방식은 헤겔이 [정신현상학]이라는 주저에서 '이성'의 자기운동을 통해 '절대이성'이 지배하는 관념론적 세계관을 완성했던 방식을 따랐던 것인데, [자본론을 읽자]던 알튀세에 의하면 [자본론]은 현실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것이 아니라 당시 영국의 정치경제 체제를 순수하게 '이론적으로' 연구한 저서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주저 [자본론]은 어느 특정한 시대가 아닌 자본주의 체제 일반을 분석하고 '정치경제학'적으로 비판한 책이다.

"... 면화는 경작지와 공장이라는 두 단계의 노동집약적 생산과정을 거쳐야 했다. 사탕수수와 담배는 유럽에서 대규모 산업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양산하지 않았지만 면화는 그랬다. 담배는 새로운 거대 제조기업의 등장을 초래하지 않았지만 면화는 그랬다. 인디고를 재배하고 가공하는 과정은 유럽의 제조업자에게 거대한 새시장을 제공하지 않았지만 면화는 그랬다. 아메리카에서 쌀경작은 노예제와 임금노동의 폭발을 가져오지 않았지만 면화는 그랬다. 그 결과 면산업은 다른 어떤 산업과도 다르게 세계 전역에 널리 분포했다. 새로운 방식으로 여러 대륙을 연결한 면화는 근대세계를 이해할 열쇠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근대세계의 특징인 심각한 불평등과 글로벌화의 오랜 역사,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본주의의 정치경제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도 함께 제공한다."
- S. Beckert, [면화의 제국], <서론>

미국 근대역사가 스벤 베커트(Sven Beckert)는 [면화의 제국 - 글로벌 자본주의의 새로운 역사](2014)라는 저서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를 일관하는 역사를 분석하면서 '면화'라는 구체적 사물을 짚어낸다. 
사람들을 농촌에서 쫓아내어 도시의 '임금노동'에 기반한 거대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출현시킨 것, 거대 산업의 발전, 글로벌 신시장 개척 등을 가능케 한 것은 '면화'의 역사 속에 다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추상적 '정치경제학 비판'이 아니라, 미국의 '자본주의 역사'의 관점에서 구체적 '상품원료'를 캐내고 있다.
[면화의 제국]은 방적/방직 산업의 원료, '면화'를 통해 현대 글로벌 자본주의의 역사를 서술한 책이다.

[면화의 제국]은 19~20세기 '제국주의' 시대를 '전쟁자본주의'와 '산업자본주의'로 구분한다. 
'전쟁자본주의'는 노예제(강제노동), 식민지(원주민) 약탈, 제국팽창, 무력동반교역, 사람과 토지를 장악한 기업가 등을 특징으로 하는데, '면화' 재배 및 방직산업의 성장과 신시장 개척을 위해 강력한 '국가'가 필요해진 상인(또는 '자본가')들이 이미 한계에 다다른 '흑인노예제'를 '임금노동'으로 대체하면서 '산업자본주의'로 넘어간다.

"산업자본주의가 국가의 힘을 더 증폭시키면서도 눈에 덜 띄게 했다는 점이 역설적이다... 국가의 역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지만 그럴수록 전세계 국가들의 역량은 불평등해졌다."
- [면화의 제국], <3장. 전쟁자본주의가 치른 대가>

미국의 역사가 중심이므로 이 책에서 '세계를 뒤흔든 전쟁'이라며 9장에서 다루는 사건은 1861년 미국 남북전쟁이다. '흑인노예제'에 기반한 면화재배에 한계가 드러나면서, '자유노동'이라는 명목으로 '임금노동'이 태동하던 미국 북부연방과 남부연합의 대지주들간의 내전을 거쳐 '임금노동'에 기반한 자본주의적 혁신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남북전쟁으로 인해 기존 수공업적 면화생산이 주를 이루던 인도, 중국, 오스만제국, 이집트 등의 지역에서도 급격한 공업화가 추진되었고, 전세계적으로 자본주의의'글로벌화'가 시작되었으니 '세계를 뒤흔든 전쟁'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발산지 유럽은 물론 전세계 식민지 전체적으로 대공업과 '임금노동'으로의 본격적 전환의 계기가 남북전쟁이라는 것인데 다분히 미국중심적 사고이기는 하나, 어쨌든 국가가 자본주의 혁신의 주요장치로 등장하는 '국가자본주의'의 시작이다. 
'제국주의' 국가는 "실력행사에 적극적인 전혀 새로운 형태의 국가"(9장)인 것이다.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자본가들에게는 한때 그들의중요한 권력의 원천이었던 강력한 국가에 의지하는것이 이제 가장 크고 유일한 약점이 되었다. 그러한 국가 덕분에 결국 노동계급이 작업현장과 정치에서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실 자본가들에게 국가는 양면적인 존재였다. 국가는 지구전역의 농촌지역에서 노동력을 동원한 일을 포함해 산업자본주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지만 자본가들에게는 '덫'이 되기도 했다. 노동자들이 노동조건과 임금을 향상시키기 위해 국가정책에 접근해 이용했기때문이다."
- [면화의 제국], <13장. 남반구의 귀환>

대공업과 대자본가, 독점자본의 출현으로 사실 '자유노동'이 아닌 '강제노동'으로서 '임금노동'의 본질이 드러나고 노동계급과 노동자 진보정당이 '노동시간단축'과 '보통선거권 쟁취' 투쟁을 통해 국가권력에 개입하게 되면서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가들에게 '양면성'을 갖게 되었고, 노동계급은 끊임없이 국가권력을 둘러싼 투쟁을 전개한다.
한편으로, '면화'를 시작으로 산업자본주의를 발전시킨 대자본과 국가는 신시장 개척을 위해 철도, 항만 등의 기반산업은 물론 '정보'와 '지식'을 독점하면서 자본주의의 글로벌화를 선도한다.
이러한 근현대 자본주의 역사 전체가 '면화'의 역사 속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다.

"폭력의 여러 형식들 중에서도 특히 노예제, 식민주의, 강제노동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핵심에 놓여 있었다.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특정지역에서 특정한 방식으로일할 것을 강요하는 일은 '면화의 제국' 전 역사를 통틀어 변함없이 등장하는 요소였다."
- [면화의 제국], <14장. 에필로그: 씨실과 날실>

'면화'의 역사를 통해 '글로벌 자본주의'의 역사를 서술하는 미국 역사가인 저자가 마르크스 [자본론]처럼 자본주의 체제 일반을 비판하고자 했을지, 최근 유행하는 [사피엔스]류의 '빅히스토리' 서술방식을 현대 자본주의 분석에 적용해본 것인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20세기 '제국주의'로 인한 '탈식민화' 투쟁에서 '면화'로 시작된 "최초의 글로벌 산업의 진화와 그것을 모델로 삼은 다른 여러 산업의 진화에서는 '문명'과 '야만'이 하나로 연결"(14장)되어 있다는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

(2020년 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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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 캔자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토마스 프랭크 지음, 김병순 옮김 / 갈라파고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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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성주의'를 타파하는 진보정당]
- 토머스 프랭크,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2004.


"철학은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이다."
- 루이 알튀세


프랑스 철학자이자 구조주의 맑스주의자 알튀세의 사상은 위 한 줄의 명제로 함축됩니다.


자본주의 현실은 계급투쟁이고 현실의 반영인 철학은 계급투쟁의 이론적 실천이라는 말인데, 맑스의 새로운 테제 중 '해석이 아닌 새로운 실천적 철학'(포이어바흐에 관한 12번째 테제)이 사실은 '철학의 새로운 실천'이며, 철학은 계급투쟁으로 새롭게 실천되어야 하지만 그 관념적 본질상 세계를 '계급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합니다.


알튀세를 인용한 이유는 바로 '계급투쟁'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미국의 선거를 다룬 책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에서 토머스 프랭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바로 잊혀진 '계급투쟁'이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은 이제 더 이상 하루하루 점점 더 포악해지고 점점 더 오만해지는 자유시장 체제의 파국적 종말에 대해서 민중들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민주당은 한때 자신들과 공화당을 확연하게 구분했던 계급용어를 폐기함으로써 지금까지 물질적 관심사인 경제문제에 가려져 사람들의 마음을 끌지 못했던 환각적 호소력을 지닌 총기 소지나 낙태 문제와 같은 문화적 분열 쟁점에 스스로 취약한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공화당이 계급에 대해서-확실히 말하자면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반면에 민주당은 계급 이야기를 불러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에필로그> 중


미국 공화당은 유럽의 보수당처럼 왕정이나 귀족, 봉건지주를 토대로 하는 보수가 아니라 당명 그대로 미국의 '민주적 공화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보수당입니다. 미국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하는 보수주의 자체가 '공화주의'라는 것입니다.
왕조와 식민지를 거치면서 친일-친미-사대를 뿌리로 하는 우리의 수구반동과 다른 점입니다.


공화당은 민주당의 텃밭이었던 미국 중서부 노동계급에게 기독교 사상과 낙태 반대 등의 사안을 최대한 단순화시켜 '계급투쟁'을 은폐하고 '문화전쟁'을 촉발하여 지지세를 얻습니다.
미국을 성장시킨 '산업역군'(우리에게 참 익숙한 세대론)은 신의 계시에 따라 우둔하나 믿음직하게 미국을 지키는 반면, 유럽에 가까운 미국 동부의 '지식인', 엘리트들은 반전평화, 여성주의, 히피적 행태로 '잘난체 하며' 미국을 흔든다는 것이지요.


미국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까지 '사회당'이라는 진보정당이 있었습니다. 전설적 철노노동자 유진 뎁스, 사회주의적 목사 노먼 토머스, 진보정치인 로버트 라폴레트 등의 진보정당 운동을 통해 민주당을 왼쪽으로 이동시켰고,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케인즈주의와 뉴딜정책을 가능케 했으며, 미국 민주당의 '계급적' 입장을 강화시키기도 했지요.


토머스 프랭크는 공화당을 비판하기 보다, 그들의 단순한 '문화전쟁'을 통해 굳어진 '영웅주의'와 '반지성주의'의 승리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계급투쟁'을 져버린 민주당의 패착이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단순무식 '문화전쟁'이 아니라,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diot, It's the Economy!)"라은 슬로건으로 성공한 빌 클린턴 민주당 정부에서부터 노동계급을 버리고 월스트리트를 등에 업고 친기업 정책을 선택한 과오가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20세기 초, 미국의 사회당은 유럽의 사회민주(노동)당들과 다르게 노동조합의 강력한 지지를 기반으로 만들지 못했기에 단명했고, 이제 불가역적인 거대 양당체제로 인해 이 책의 대안은 얼핏 민주당의 '계급투쟁'을 복원하여 공화당의 '영웅주의'와 '반지성주의'를 타파하자는 것으로 확대해석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보수주의' = '반지성주의' = '영웅주의'를 타파하는 대안은 '빅텐트' 거대 양당체제가 아닌 강력한 진보정당 운동이며, 지금의 진보정당이 전통적인 거대한 '운동형 진보정당'(독일과 스웨덴의 사민당이나 브라질 노동자당 등)일지 선거연대블록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형 진보운동'(그리스 '시리자'나 스페인 '포데모스' 등)일지는 아직 알 수 없을지 모릅니다.
또한, 버니 샌더스의 '민주적 사회주의'에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단지, '큰 개혁과 작은 혁명'의 변증법적 관계를 통해 '계급투쟁'을 버리지 않고 실질적 '민주주의'의 불가역적 승리를 단호하게 옹호하는 진보정당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아직, 우리 사회는 강력한 진보정당 운동을 통해 '반지성주의'를 타파하고 '계급투쟁'에 복무하는 '새로운 철학적 실천'이 필요합니다.


참고로,
브렉시트 국면에서 영국 노동계급을 단순화시켜 노동당을 패배시킨 영국 보수당의 선거방침,
'빨갱이' 타령으로 연명하는 한국의 수구보수 집단과 '조국사태', '문빠' 양산으로 재미보는 한국의 민주당의 모습도 이 책과 함께 고민해보면 좋을 듯 합니다.


(2020년 2월)


***


참고 -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 - ‘큰 개혁’과 ‘작은 혁명’들의 이야기], 장석준 지음, <서해문집>, 2019.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18세기 말 ~ 19세기 초의 세계사를 기술하면서 ‘이중혁명’의 시대라 규정했다. 프랑스(대혁명)에서 극적으로 전개된 민주주의 혁명과 영국(산업혁명)에서 본격 시작된 자본주의 혁명, 이 두 혁명이 동시에 전개됐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두 개의 큰 운동은 여전히 민주주의의 전반적인 확산과 자본주의의 끊임없는 갱신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혼란의 밑바탕에는 민주주의 혁명과 자본주의 혁명의 격렬한 충돌이 있다. (진보)좌파정당이란 바로 이 충돌에서 단호히 민주주의 혁명의 편에 서는 정당이다. 민주주의 편에서 자본주의에 맞서고, 타협을 만들어 내더라도  민주주의 원리가 우위에 선 타협을 위해 노력하며, 종국에는 민주주의 혁명이 자본주의 혁명을 제압하고 극복하는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정당이다.”


- 같은책, <서문>


우리 진보정당 운동의 정책과 교육 분야에서 활동하는 장석준 선생의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는 현재의 ‘진보정당’을 이해하기 위해 ‘이론’보다는 ‘역사’를 돌아보는 책이다.
‘역사’를 다루고 있으니 이야기책을 보듯 한 장 한 장 아껴가며 재미있게 읽었는데, 수구 자유한국당과 보수중도를 못 벗어난 민주당의 실질적 양당구도인 우리 정치에서 ‘진보정당’,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기에 강력한 산별노조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강력한 진보정당이 우리 사회를 바꾸는 대다수 민중의 ‘무기’가 되어야 한다는 기대를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21세기 진보정당’ 형태일 수 있는 그리스 ‘시리자(급진좌파연합)’와 스페인 ‘포데모스(할 수 있다)’보다 지난 역사로서 독일 사회민주당이나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브라질 노동자당의 역사를 서술한 장이 더 잘 읽힌 이유일 것이다. 
아마도 현재의 진보정당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논하기 위해 ‘이론’보다는 ‘역사’를 다룬 저자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읽은 것일지는 모르나, 세계 진보정당의 소중한 역사를 저자의 방대한 참고문헌과 연구를 바탕으로 더 넓고 깊게 증보하기를 기대한다.
E.H.카가 ‘러시아혁명사’를 연구하고 방대한 저술로 남겼듯이.


끝날 수 없는 진보정당 운동사의 ‘중간 정리’로서 ‘결론’을 독자로서 다음과 같이 분류해 본다.


‘지금도 반복되는 진보정당의 고뇌’인 ‘작은 개혁’과 ‘큰 혁명’의 관계는 이제 이 책의 부제에 나온 것처럼 ‘큰 개혁’과 ‘작은 혁명’으로 치환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큰 테마다. 민주주의 무대에서 ‘혁명’을 잊지 말고 끊임없이 ‘개혁’하자는 것이 하나의 ‘이론적 결론’이다.


또한, 현재의 진보정당은 진보의 다원성을 강화하고 연대하는 ‘좌파블럭’을 변혁의 주체로 하여 당시 정세에 맞는 ‘진보적 대중연합’(그람시의‘역사적 블록’)을 구축해야 하며, 다수 대중이 이러한 사회변혁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무기’는 여전히 ‘진보정당’이라는 것이 또 하나의 ‘역사적 (잠정)결론’이다.


“소수의 자본 소유자와 다수의 노동대중 사이에는 뿌리 깊은 구조적 차원을 지닌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작동한다. 진보정당운동의 과제는 이 권력관계를 돌이킬 수 없게 역전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일상 시기에 기존 세력균형을 끊임없이 격동시키고 조금이라도 변형하려는 노력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계급 권력관계의 심층에 자리한 구조들에 손을 대는 급진개혁으로 발전해야 한다. 선거를 통한 집권은 이러한 과정을 가속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야만 한다(그렇지 않다면 의미가 없다).그래서 궁극적으로는 계급권력구조 자체를 해체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일반화’하여 견지해야 할 마르크스-엥겔스 정치이론의 핵심 메시지일 것이다.”


- 같은책, <결론>


지난 150년의 역사 속에서 ‘운동형 정당’으로 현상했던 진보정당의 형태가 21세기에는 대중의 분노와역동성을 더욱 기반으로 하는 대중연합적 ‘정당형 운동’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개혁’이라는 ‘최소강령’만을 목표로 타협하고 균형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강한 소수에 비해 약한 다수에게 세력관계가 ‘불가역적으로’ 역전되는 것이 바로 ‘혁명’이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대다수 민중의 ‘무기’는 그람시의 말대로 ‘현대의 군주’인 ‘(진보)정당’이다.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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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진보정당 운동사 - 큰 개혁과 작은 혁명들의 이야기
장석준 지음 / 서해문집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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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역시, ‘현대의 군주’인 ‘진보정당’이 다수의 ‘무기’다!
-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 - ‘큰 개혁’과 ‘작은 혁명’들의 이야기], 장석준 지음, <서해문집>, 2019.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18세기 말 ~ 19세기 초의 세계사를 기술하면서 ‘이중혁명’의 시대라 규정했다. 프랑스(대혁명)에서 극적으로 전개된 민주주의 혁명과 영국(산업혁명)에서 본격 시작된 자본주의 혁명, 이 두 혁명이 동시에 전개됐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두 개의 큰 운동은 여전히 민주주의의 전반적인 확산과 자본주의의 끊임없는 갱신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혼란의 밑바탕에는 민주주의 혁명과 자본주의 혁명의 격렬한 충돌이 있다. (진보)좌파정당이란 바로 이 충돌에서 단호히 민주주의 혁명의 편에 서는 정당이다. 민주주의 편에서 자본주의에 맞서고, 타협을 만들어 내더라도  민주주의 원리가 우위에 선 타협을 위해 노력하며, 종국에는 민주주의 혁명이 자본주의 혁명을 제압하고 극복하는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정당이다.”

- 같은책, <서문>

우리 진보정당 운동의 정책과 교육 분야에서 활동하는 장석준 선생의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는 현재의 ‘진보정당’을 이해하기 위해 ‘이론’보다는 ‘역사’를 돌아보는 책이다.
‘역사’를 다루고 있으니 이야기책을 보듯 한 장 한 장 아껴가며 재미있게 읽었는데, 수구 자유한국당과 보수중도를 못 벗어난 민주당의 실질적 양당구도인 우리 정치에서 ‘진보정당’,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기에 강력한 산별노조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강력한 진보정당이 우리 사회를 바꾸는 대다수 민중의 ‘무기’가 되어야 한다는 기대를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21세기 진보정당’ 형태일 수 있는 그리스 ‘시리자(급진좌파연합)’와 스페인 ‘포데모스(할 수 있다)’보다 지난 역사로서 독일 사회민주당이나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브라질 노동자당의 역사를 서술한 장이 더 잘 읽힌 이유일 것이다. 
아마도 현재의 진보정당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논하기 위해 ‘이론’보다는 ‘역사’를 다룬 저자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읽은 것일지는 모르나, 세계 진보정당의 소중한 역사를 저자의 방대한 참고문헌과 연구를 바탕으로 더 넓고 깊게 증보하기를 기대한다.
E.H.카가 ‘러시아혁명사’를 연구하고 방대한 저술로 남겼듯이.

끝날 수 없는 진보정당 운동사의 ‘중간 정리’로서 ‘결론’을 독자로서 다음과 같이 분류해 본다.

‘지금도 반복되는 진보정당의 고뇌’인 ‘작은 개혁’과 ‘큰 혁명’의 관계는 이제 이 책의 부제에 나온 것처럼 ‘큰 개혁’과 ‘작은 혁명’으로 치환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큰 테마다. 민주주의 무대에서 ‘혁명’을 잊지 말고 끊임없이 ‘개혁’하자는 것이 하나의 ‘이론적 결론’이다.

또한, 현재의 진보정당은 진보의 다원성을 강화하고 연대하는 ‘좌파블럭’을 변혁의 주체로 하여 당시 정세에 맞는 ‘진보적 대중연합’(그람시의‘역사적 블록’)을 구축해야 하며, 다수 대중이 이러한 사회변혁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무기’는 여전히 ‘진보정당’이라는 것이 또 하나의 ‘역사적 (잠정)결론’이다.

“소수의 자본 소유자와 다수의 노동대중 사이에는 뿌리 깊은 구조적 차원을 지닌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작동한다. 진보정당운동의 과제는 이 권력관계를 돌이킬 수 없게 역전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일상 시기에 기존 세력균형을 끊임없이 격동시키고 조금이라도 변형하려는 노력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계급 권력관계의 심층에 자리한 구조들에 손을 대는 급진개혁으로 발전해야 한다. 선거를 통한 집권은 이러한 과정을 가속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야만 한다(그렇지 않다면 의미가 없다).그래서 궁극적으로는 계급권력구조 자체를 해체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일반화’하여 견지해야 할 마르크스-엥겔스 정치이론의 핵심 메시지일 것이다.”

- 같은책, <결론>

지난 150년의 역사 속에서 ‘운동형 정당’으로 현상했던 진보정당의 형태가 21세기에는 대중의 분노와 역동성을 더욱 기반으로 하는 대중연합적 ‘정당형 운동’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개혁’이라는 ‘최소강령’만을 목표로 타협하고 균형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강한 소수에 비해 약한 다수에게 세력관계가 ‘불가역적으로’ 역전되는 것이 바로 ‘혁명’이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대다수 민중의 ‘무기’는 그람시의 말대로 ‘현대의 군주’인 ‘(진보)정당’이다.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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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 - 임노동자기금논쟁과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신정완 지음 / 사회평론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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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복지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 - 임노동자기금논쟁과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신정완 저, <사회평론>, 2012.


“애초의 기금안은 스웨덴 사민주의 운동의 전통적 정치노선이었던 국민정치 노선으로부터 이탈하여 계급정치적 의제를 전면에 부각시킨 계획이었다...
1975년 (마이드너 그룹의) 기금안 시안에서, 기금안정당화 논변의 초점은 무엇보다도 재산과 경제적 권력의 재분배 문제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1976년 LO총회에 제출된 기금안에서는 연대임금 정책으로 인한 초과이윤 문제가 가장 강조되었고, LO와 사민당이 공동으로 입안한 1978년 기금안과 1981년 기금안에서는 경제침체 극복을 위한 집단적 자본형성의 필요성이라는 새로운 정당화 논변이 전면에 부각되었다. 시간이 경과할 수록 기금안 정당화 논변에서 계급정치적 문제의 비중은 약화되고, 전통적인 개혁주의적, 국민정치적 문제의 비중이 커져간 것이다.”

- 같은책, 3장 <스웨덴 모델과 임노동자기금안>


읽고 싶은 책이 없어 예전 책들을 뒤지다가 몇 년전에 읽었던 [복지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를 다시 읽었는데,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꽃’을 내려올 때 보았다.

그 ‘꽃’이 바로 저자가 결론적 대안으로 지지하는 ‘중앙집권적 시민기금안’인데, 몇 년전 처음 읽을 때는 비록 스웨덴 모델에서 실패했지만 노동계급 중심의 배타적 ‘임노동자기금안’만 머릿속에 남았더랬다.
‘임금노동자기금안’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한 스웨덴 ‘연대임금 모델’에서 고수익 대기업의 ‘초과이윤’을 기금으로 하여 대기업의 주식을 점진적으로 소유하면서 궁극에는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이룬다는 체제이행의 거대한 기획이다.
아마도 ‘임노동자기금안’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전투적 노동계급이 살아있고 ‘재벌개혁’이 경제 민주화의 주요 테마인 한국 모델에서는 적용 가능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또한, 스웨덴 정치이념 중 그나마 마르크스주의를 버리지 않았던 비그포르스와 그들의 사상을 구현하는 마이드너의 사회개조안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 임노동자기금안 입안자들이 구상했던 경제체제 모델은, (1) 시장경제의 존속을 통해 경제적 효율이 확보되며, (2) 복지국가의 유지를 통해 시장경제의 문제점들이 완화되고, (3) 임노동자기금을 통해 노동조합이 민간 대기업들을 소유함으로써 직접 생산자에 의한 생산수단의 소유라는 사회주의의 고전적 이상이 구현되는 경제체제였던 것이다.”

- 같은책, 4장 <기금사회주의 모델>


아마도 성년이 된 후 처음으로 겪었던 촛불 ‘시민’ 항쟁의 기억 때문이리라. ‘배타적’ 노동계급만이 아니라 시민대중이 함께 하는 것이 ‘혁명’이라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 것은.
알튀세의 제자였던 발리바르는 어디에선가 말했다.
“공산주의 혁명은 비공산주의자 대중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산수단의 사회적 전면 쟁취가 아니라 그 다양한 ‘기능’에 따른 분산 점유를 주장한 스웨덴 ’기능사회주의자’ 칼레비의 좌파적 계승안으로서 ‘중앙집권적 시민기금안’은 아마도 ‘생산수단 사회화’라는 고전적 체제이행 과제를 공세적으로 내건 노동계급의 ‘임노동자기금안’의 ‘배타성’을 견제하기 위해 일련의 ‘자유주의자’들이 내놓은 반대안이었을 수 있지만, 지금 우리 시대에는 다시금 논쟁할 수 있는 체제이행의 대안 중 하나 아닐까 한다.


“중앙집권적기금안은 스웨덴 사민주의 운동의 주류 입장이었던 복지국가주의 또는 기능사회주의 노선에 한층 밀착해 있다. 민주적 방식으로 구성된 국가의 개입을 통해 자본주의 경제의 문제점들을 완충, 해소한다는 복지국가주의의 논리를 생산수단의 소유 문제에까지 연장 적용시킨 것이다.”

- 같은책, 4장 <기금사회주의 모델>


지금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거쳐 ‘사회적 민주주의’로서 ‘복지국가’ 논쟁을 또 넘어서 ‘경제 민주주의’를 이루어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생산수단) 사회화 계획의 내용은 가능한 한 사민주의 정치의 전통적 노선인 국민정치 노선에 잘 부합되는 형태로 마련하고, 사회화 기획을 관철하는 방식으로는 이념적, 정치적 정면대결 노선을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먼저 사회화의 주체는 노동조합 등 임노동자 집단만을 대표하는 조직보다는 국가나 준국가적 공동기구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존하는 유일한 제도는 정치적 민주주의 원리에 의해 구성, 운영되는 국가다. 또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의 존재론적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정치적 민주주의 원리에 기초할 때, 국민대중의 일반적 이익을 담지하는 공적조직으로서 정치적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조직은 국가 외에 달리 없기도 하다. 또 사회화는 대다수 사회 성원의 삶의 조건을 크게 바꾸는 기획이기 때문에, 사회화된 생산수단의 소유와 관리 문제는 모든 사회 성원에 의한 정치적 의사결정의 범위 내에 있도록 하는 것이 규범적으로 바람직하다.”

- 같은책, 5장 <복지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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