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미술관 - 그림으로 보는 재앙의 역사
나카노 교코 지음, 이희재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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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는 모두에게도 놀이터
- [저주받은 미술관] / [내 생애 마지막 그림], 나카노 교코.


다시, 
나카노 교코다.

몇 해 전 [무서운 그림] 시리즈로 알게 된 일본의 미술사학자인데, 그림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림이 묘사하고자 한 인간군상의 무서움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후 그녀가 엮은 몇 권의 미술사 책을 읽었고, 이제 미술사를 좋아하는 내게 나카노 교코는 접하는 대로 무조건 읽게 되는 작가다.

이번에는,
[저주받은 미술관]과 [내 생애 마지막 그림]이다.


[저주받은 미술관](2022)에서 나카노 교코는 코로나 팬데믹 후인 지금, 인류사에서 오래된 감염병인 흑사병과 콜레라는 물론 결핵, 스페인 독감과 지금은 정복된 질병인 천연두 등을 그린 그림들과 30년 종교전쟁, 1차 세계대전 등을 통과했던 명화들을 소개한다. 물론 고대로부터 천재지변의 대명사인 대홍수와 화재 및 화산폭발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지상의 신이나 다름없는 왕, 그리고 신과 가장 가까운 성직자조차 제 수명만큼 살지 못하고 역병으로 죽었다. 이러한 '죽음의 평등주의'가 견고한 계급사회에 길들어 있던 소박한 민중을 얼마나 각성시켰을지 가히 짐작할만 하다. 특히 성직자에 대한 환멸은 컸다. 신자를 구하기는커녕 스스로도 구하지 못하면서 방관만 하던 교회의 권위가 형편없이 실추되었으니, 페스트 종식과 함께 중세가 끝나고 르네상스의 탄생, 나아가 종교개혁으로 이어지게 된 역사의 흐름은 자못 자연스럽다."
- [저주받은 미술관], <4장. 중세의 역병 - 팬데믹과 죽음의 무도>, 나카노 교코, 2022.


중세를 극복한 건 르네상스이기도 했지만, 어찌보면 이는 문명교체의 인문학적 징후였을 테고, 실제로는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들추는 존재"(같은책, <8장>)로서의 역병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현대사회는 어떨지 모르지만 중세의 지배계급은 민중들과마찬가지로 역병에 취약했고 그래서 역병은 '죽음의  평등주의'를 통해 기존 계급사회에 균열을 냈다.

가톨릭에 대항한 개신교 전통의 북유럽 플랑드르에서 활동한 16세기 민중화가 피터르 브뤼헐은 대대로 화가를 배출시킨 '브뤼헐가'의 시조다. 그는 종교 제단화나 신화화, 역사화 같은 대작 의뢰가 드문 북유럽 시민사회 출신이라 농민과 민중들을 주로 그렸다. 

그의 작품 [죽음의 승리](1562)에 담긴 페스트(흑사병)는 [로마의 페스트](1869)를 그린 19세기 화가 쥘 들로네 같은 비장함은 없다. 페스트가 만연하여 죽음의 우의로서 해골들이 마을 전체를 뒤덮었지만 엄중하다기 보다는 죽음을 쟁반에 올려놓고 사람들을 놀래키거나 하는 코믹한 장면을 담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피터르 브뤼헐의 스승은 북유럽의 이단아 히에로니무스 보스였단다.

[저주받은 미술관]의 표지 그림은 19세기 화가 폴 들라로슈의 [제인 그레이의 처형](1833)이다. 영국의 헨리8세 사후 메리 여왕과 왕위 다툼에서 밀려 즉위 9일만에 처형된 열여섯 살 제인 그레이의 처형 장면을 그린 작품인데, 홍수의 재난을 담은 게 아니라 1928년 런던 템스강의 대홍수로 유실되었다가 45년이 지난 1973년에 어느 신입 학예사의 성실한 탐사 끝에 부활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 후 내셔널 갤러리에 전시되었을 때 인기가 좋아 사람들이 많이 몰리던 통에 이 작품 앞 바닥이 무너지기도 했단다.

17세기 바로크의 거장 루벤스는 그 특유의 풍만한 여체가 여전히 돋보이는 '알레고리', 즉 '우의'적 표현을 담아 네덜란드 독립전쟁의 휴전기에 [전쟁과 평화](1629~1630)를 그렸고 개전 후에는 [전쟁과 공포](1637~1638)를 통해 또 다시 닥쳐온 전쟁을 역시 우의적으로 담았다. 루벤스의 신화적 알레고리 명작들은 출연자들이 담고 있는 신화적 상징을 읽고 해석하는 재미를 감상자들에게 선사한다고 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루벤스 특유의 여체 그림은 당시의 유명한 포르노그래픽으로서 주문자의 성적 취향도 고려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이 화가들의 '마지막 그림'들은 어땠을까.

나카노 교코의 2015년작 [내 생애 마지막 그림]은 르네상스부터 종교화, 신화화를 그린 보티첼리, 라파엘로, 티치아노, 엘 그레코와 루벤스의 전성기 그림들과 마지막 작품들을 비교하며 소개한다. 중세를 벗어난 보티첼리의 비너스는 금욕주의에 빠진 말년의 작품에서는 건조한 여체로 변했고 루벤스의 화려한 색채와 구도는 마지막 작품의 회색빛 풍경화에서는 더 볼 수가 없다.

벨라스케스와 반다이크, 고야 같은 궁정화가의 생애와 마지막 작품은 절대군주의 후원을 배경으로 화가 개인의 신분과 지위가 르네상스의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못지 않게 더욱 높아지는 절정기를 보냈지만, 어느덧 그들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었던 절대왕정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근대에 이르러 서양문화를 적극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동양은 마침 그 무렵 크게 인기를 끌었던 인상파 작품을 회화의 교과서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화폭에서 주제와 의미, 은유를 모두 걷어낸 채 오직 보고 느끼는 그림이 좋다는 인식이 생겼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인상파는 긴 회화사 가운데 그저 최신의 조류일 뿐이다. 서양회화는 먼저 신과 함께 존재했고, 왕후 귀족과 함께 존재했으며, 각 시대에 따른 민중의 생활과 함께 존재했다. 이 점을 알아두지 않으면 그림을 감상할 수 없다."
- [내 생애 마지막 그림], <3부. 화가와 민중 - 시민사회를 그리다>, 나카노 교코, 2015.


부르주아 시민사회의 태동기와 함께 등장한 일련의 민중화가들은 이른바 풍속화를 그렸고, 신분이나 지위 상승보다는 화가로서 독립적으로 개별화된 화가 개인들의 삶 또한 미스테리 일색이다. 

피터르 부뤼헐의 그림은 그를 모작한 아들 피터르와 구분하기 어렵기도 하고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등의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도 않으며 페르메이르의 마지막 작품인 [버지널 앞에 앉아 있는 여인](1670~1672)에 대한 위작 논란도 있단다. 남프랑스에서 고요한 농민 풍속화를 그린 밀레의 마지막 그림 [야간의 새사냥](1874)은 그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너무 역동적이다. 아마도 한 번은 그렇게 그려보고 싶었다는 듯이. 

고흐의 고단했던 예술가의 생애야 더 말해야 무엇할까마는, 마지막 그림 [까마귀 나는 밀밭](1890)의 노란색은 그 절정기의 색감과 어울리지 않게 죽음의 불길함을 예견한다. 고흐는 역시 그 해에 죽었다.


명화들은 미술사 작가에게는 화수분과 같다.
내가 믿고 읽는 우리나라 김선지 작가도 그렇고 일본의 나카노 교코도 명화를 중심으로 미술가와 그의 생애, 역사적 배경을 주제로 글을 연재하고 이 글들을 엮어 무한한 미술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전이 된 명화들은 이처럼 미술가의 삶과 죽음을 포괄하는 끝없는 이야기의 원천이자, 그림을 그리는 자 뿐만 아니라 보는 자들에게도 끝없는 감상과 해석의 보고가 된다.

명화는 작가나 감상자 모두의 놀이터가 맞는가 보다.

***

1. [저주받은 미술관](2022), 나카노 교코, <영진닷컴>, 2024.
2. [내 생애 마지막 그림](2015), 나카노 교코, <오브제>,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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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마지막 그림 - 화가들이 남긴 최후의 걸작으로 읽는 명화 인문학
나카노 교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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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는 모두에게도 놀이터
- [저주받은 미술관] / [내 생애 마지막 그림], 나카노 교코.


다시, 
나카노 교코다.

몇 해 전 [무서운 그림] 시리즈로 알게 된 일본의 미술사학자인데, 그림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림이 묘사하고자 한 인간군상의 무서움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후 그녀가 엮은 몇 권의 미술사 책을 읽었고, 이제 미술사를 좋아하는 내게 나카노 교코는 접하는 대로 무조건 읽게 되는 작가다.

이번에는,
[저주받은 미술관]과 [내 생애 마지막 그림]이다.


[저주받은 미술관](2022)에서 나카노 교코는 코로나 팬데믹 후인 지금, 인류사에서 오래된 감염병인 흑사병과 콜레라는 물론 결핵, 스페인 독감과 지금은 정복된 질병인 천연두 등을 그린 그림들과 30년 종교전쟁, 1차 세계대전 등을 통과했던 명화들을 소개한다. 물론 고대로부터 천재지변의 대명사인 대홍수와 화재 및 화산폭발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지상의 신이나 다름없는 왕, 그리고 신과 가장 가까운 성직자조차 제 수명만큼 살지 못하고 역병으로 죽었다. 이러한 '죽음의 평등주의'가 견고한 계급사회에 길들어 있던 소박한 민중을 얼마나 각성시켰을지 가히 짐작할만 하다. 특히 성직자에 대한 환멸은 컸다. 신자를 구하기는커녕 스스로도 구하지 못하면서 방관만 하던 교회의 권위가 형편없이 실추되었으니, 페스트 종식과 함께 중세가 끝나고 르네상스의 탄생, 나아가 종교개혁으로 이어지게 된 역사의 흐름은 자못 자연스럽다."
- [저주받은 미술관], <4장. 중세의 역병 - 팬데믹과 죽음의 무도>, 나카노 교코, 2022.


중세를 극복한 건 르네상스이기도 했지만, 어찌보면 이는 문명교체의 인문학적 징후였을 테고, 실제로는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들추는 존재"(같은책, <8장>)로서의 역병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현대사회는 어떨지 모르지만 중세의 지배계급은 민중들과마찬가지로 역병에 취약했고 그래서 역병은 '죽음의  평등주의'를 통해 기존 계급사회에 균열을 냈다.

가톨릭에 대항한 개신교 전통의 북유럽 플랑드르에서 활동한 16세기 민중화가 피터르 브뤼헐은 대대로 화가를 배출시킨 '브뤼헐가'의 시조다. 그는 종교 제단화나 신화화, 역사화 같은 대작 의뢰가 드문 북유럽 시민사회 출신이라 농민과 민중들을 주로 그렸다. 

그의 작품 [죽음의 승리](1562)에 담긴 페스트(흑사병)는 [로마의 페스트](1869)를 그린 19세기 화가 쥘 들로네 같은 비장함은 없다. 페스트가 만연하여 죽음의 우의로서 해골들이 마을 전체를 뒤덮었지만 엄중하다기 보다는 죽음을 쟁반에 올려놓고 사람들을 놀래키거나 하는 코믹한 장면을 담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피터르 브뤼헐의 스승은 북유럽의 이단아 히에로니무스 보스였단다.

[저주받은 미술관]의 표지 그림은 19세기 화가 폴 들라로슈의 [제인 그레이의 처형](1833)이다. 영국의 헨리8세 사후 메리 여왕과 왕위 다툼에서 밀려 즉위 9일만에 처형된 열여섯 살 제인 그레이의 처형 장면을 그린 작품인데, 홍수의 재난을 담은 게 아니라 1928년 런던 템스강의 대홍수로 유실되었다가 45년이 지난 1973년에 어느 신입 학예사의 성실한 탐사 끝에 부활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 후 내셔널 갤러리에 전시되었을 때 인기가 좋아 사람들이 많이 몰리던 통에 이 작품 앞 바닥이 무너지기도 했단다.

17세기 바로크의 거장 루벤스는 그 특유의 풍만한 여체가 여전히 돋보이는 '알레고리', 즉 '우의'적 표현을 담아 네덜란드 독립전쟁의 휴전기에 [전쟁과 평화](1629~1630)를 그렸고 개전 후에는 [전쟁과 공포](1637~1638)를 통해 또 다시 닥쳐온 전쟁을 역시 우의적으로 담았다. 루벤스의 신화적 알레고리 명작들은 출연자들이 담고 있는 신화적 상징을 읽고 해석하는 재미를 감상자들에게 선사한다고 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루벤스 특유의 여체 그림은 당시의 유명한 포르노그래픽으로서 주문자의 성적 취향도 고려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이 화가들의 '마지막 그림'들은 어땠을까.

나카노 교코의 2015년작 [내 생애 마지막 그림]은 르네상스부터 종교화, 신화화를 그린 보티첼리, 라파엘로, 티치아노, 엘 그레코와 루벤스의 전성기 그림들과 마지막 작품들을 비교하며 소개한다. 중세를 벗어난 보티첼리의 비너스는 금욕주의에 빠진 말년의 작품에서는 건조한 여체로 변했고 루벤스의 화려한 색채와 구도는 마지막 작품의 회색빛 풍경화에서는 더 볼 수가 없다.

벨라스케스와 반다이크, 고야 같은 궁정화가의 생애와 마지막 작품은 절대군주의 후원을 배경으로 화가 개인의 신분과 지위가 르네상스의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못지 않게 더욱 높아지는 절정기를 보냈지만, 어느덧 그들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었던 절대왕정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근대에 이르러 서양문화를 적극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동양은 마침 그 무렵 크게 인기를 끌었던 인상파 작품을 회화의 교과서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화폭에서 주제와 의미, 은유를 모두 걷어낸 채 오직 보고 느끼는 그림이 좋다는 인식이 생겼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인상파는 긴 회화사 가운데 그저 최신의 조류일 뿐이다. 서양회화는 먼저 신과 함께 존재했고, 왕후 귀족과 함께 존재했으며, 각 시대에 따른 민중의 생활과 함께 존재했다. 이 점을 알아두지 않으면 그림을 감상할 수 없다."
- [내 생애 마지막 그림], <3부. 화가와 민중 - 시민사회를 그리다>, 나카노 교코, 2015.


부르주아 시민사회의 태동기와 함께 등장한 일련의 민중화가들은 이른바 풍속화를 그렸고, 신분이나 지위 상승보다는 화가로서 독립적으로 개별화된 화가 개인들의 삶 또한 미스테리 일색이다. 

피터르 부뤼헐의 그림은 그를 모작한 아들 피터르와 구분하기 어렵기도 하고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등의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도 않으며 페르메이르의 마지막 작품인 [버지널 앞에 앉아 있는 여인](1670~1672)에 대한 위작 논란도 있단다. 남프랑스에서 고요한 농민 풍속화를 그린 밀레의 마지막 그림 [야간의 새사냥](1874)은 그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너무 역동적이다. 아마도 한 번은 그렇게 그려보고 싶었다는 듯이. 

고흐의 고단했던 예술가의 생애야 더 말해야 무엇할까마는, 마지막 그림 [까마귀 나는 밀밭](1890)의 노란색은 그 절정기의 색감과 어울리지 않게 죽음의 불길함을 예견한다. 고흐는 역시 그 해에 죽었다.


명화들은 미술사 작가에게는 화수분과 같다.
내가 믿고 읽는 우리나라 김선지 작가도 그렇고 일본의 나카노 교코도 명화를 중심으로 미술가와 그의 생애, 역사적 배경을 주제로 글을 연재하고 이 글들을 엮어 무한한 미술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전이 된 명화들은 이처럼 미술가의 삶과 죽음을 포괄하는 끝없는 이야기의 원천이자, 그림을 그리는 자 뿐만 아니라 보는 자들에게도 끝없는 감상과 해석의 보고가 된다.

명화는 작가나 감상자 모두의 놀이터가 맞는가 보다.

***

1. [저주받은 미술관](2022), 나카노 교코, <영진닷컴>, 2024.
2. [내 생애 마지막 그림](2015), 나카노 교코, <오브제>,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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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나오다 : SF 작가의 고전 SF 오마주 - 정보라·이경희·박애진·남세오·전혜진·구슬·박해울
정보라 외 지음 / 구픽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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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책에 갇히고 만다
- [책에 갇히다] / [책에서 나오다], SF 앤솔러지, <구픽>


1.

내가 '책'을 들고 다니기 시작했던 건 예닐곱 살 적부터였다. 
그렇다고 그 나이부터 활자 읽기를 좋아했다는 말은 아니다. 내 손에 들려져 있던 건 주로는 공룡이 나오는 어린이 백과사전 같은 책이었다.

어릴적 어머니는 집에 혼자 남을 나를 위해 16절 갱지 한 묶음과 모나미 볼펜 한 다스를 주고는 일을 나가셨고 나는 어두운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들고 다니던 책을 펼치고는 공룡 따위 삽화들을 따라 그렸다. 
어린 시절 내 꿈이 잠시 '고고학자'였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룡은 그 나이 때 나만 좋아했던 건 아니었을 테지만, 우연히 우리 집에 공룡이 나오는 생물 대백과사전 비슷한 책이 있었고 글을 잘 몰랐을 취학 전의 나는 그 유일한 어린이책을 들고 다니며 공룡 그림을 들여다 보았을 것이며 그것들을 따라 그려대는 나를 보며 어머니는 내개 종이와 펜을 쥐어주었을 거다. 모자라지 않던 갱지와 모나미 볼펜은 어린 나의 친구였고 그 속에서 노닐던 수많은 공룡들과 얼마전 할머니집에 살 때 텔레비전에 빠져들어서 보던 마징가, 태권브이 같은 로봇들은 나에게 어렴풋이 '고고학'이나 '과학자' 같은 꿈을 막연히 새겼으리라. 

책을 읽게 된 건 그 후로도 한참이나 지난 후였지만 나는 그 덕에 취학 전에 글을 읽을 줄 알게 되기는 했던 것 같다. 지금도 갱지의 냄새와 모나미 볼펜의 촉감은 내가 좋아하는 코드들이다. 

스무살이 되었을 때, 내 손에는 여전히 '책'이 들려져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 전국 각지에서 모인 동기와 선배들을 보며 나도 모를 모종의 위축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게 아마도 '책'이었던 것 같다. 일종의 열등감 극복을 위한 차별전략이었을 텐데, 집안 형편도, 외모도, 말주변도, 그렇다고 지능도 변변치 않던 나는 항상 '책'을 손에 들고 다녔다. 그리고 전철이든 버스든 그 어디서든 읽었는데 어떨 때는 읽는 척도 많이 했다. 의도는 여러 가지였다. 뭔가 있어 보이려는 신비주의 전략이었고, 아무하고나 대화하지 않는다는 자기보호 수작이었으며, 환경을 주체적으로 주도하려는 작전이기도 했다. 타인들은 나를 늘 책을 들고 다니며 읽어대는 녀석으로 인식했고, 내성적인 나는 타인들과 있을 때 눈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내가 뭔가를 하고 싶거나 말하고 싶을 때 내 마음대로 책을 잠시 덮었다. 그러다가 다시 책을 펼치면, 나는 눈과 마음을 둘 곳이 자연스레 생겼고 더 이상 뻘쭘하거나 어색해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다보니 한편으로는 네모난 '책' 자체가 주는 물질적 만족감 같은 게 생겼다. 
어릴 때와 달리 성년의 내게 네모진 '책'은 한 손에 딱 들어맞는 악세서리가 되었다. 21세기인 지금은 휴대폰이 들려져 있을 때도 많지만, 휴대폰이 없던 '90년대 초부터는 한 손에 딱 알맞춤한 그립감의 장신구이자 장난감이기도 했다. 

그렇게 지금도 나는 한 손에 잡히는 '책'을 매우 사랑한다.
이 지식을 담은 장신구로서 '책'의 기원은 약 1,700년 역사의 '코덱스'다.

"코덱스의 편리함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서기 400년 경이 되자, 고전적인 형태의 두루마리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대부분의 책들은 사각형으로 여러 장 모은 형태로 제작되었다."
- [독서의 역사], <책의 형태>, 알베르토 망구엘.

서기 4백년대에는 소장하고 읽기 불편했던 두루마리 형태에서 양피지를 접어 지금의 책 형태로 만든 '코덱스'가 발명되었다. 동양의 죽간이나 서양의 두루마리는 원자재 자체가 고급이라 복제가 쉽지 않았을 테니 기원전 1세기 죽간본이었던 사마천의 [사기]만 해도 세 번 베껴서 분리보관했단다. 그러다가 상대적으로 대량보급이 가능했을 원자재인 동양의 종이나 서양의 양피지에 베껴쓰는 '코덱스(codex)',  즉 지금의 '책'은 개인 소장의 편리성과 유용성이 한층 용이한 형태로 변형되어 왔다.

'코덱스' 시대와 함께 '문자'와 '지식'은 비단 외우는 것만이 아니라 소지하고 다니며 그 권위를 인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14세기에는 '안경'도 발명되었고, 드디어 15세기에는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술이 [성경]의 대량생산과 대중화에 혁혁한 공을 세운다. 한편, 15세기 인쇄술의 대중화는 육필 필사본의 화려한 장식적 필체 또한 대중화했기에 16세기에는 인쇄술의 발전이 육필 필사의 기술도 함께 발전시키게 된다. 
'책'의 주요한 역사다.

전자산업 발달에도 불구하고 '종이책' 고유의 양식과 질감, 냄새는 늘 인류와 함께 해왔다.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 알베르토 망구엘 또한 그랬던 것처럼, 사실 내게도 '독서'란 '문자'나 '지식'을 얻는 행위를 넘어 '책'이란 물질에 대한 일종의 '집착'이기도 하다. 
지금도 한 손에 '책'이란 물질이 없으면 허전하다.

그렇게 나는 오랜 동안 '책'에 갇혔다.


2.

출판사 <구픽>은 며칠 전 '프롤레타리아 장르 단편선'이라는 신예 단편소설 선집(앤솔로지)으로 알게 되었다. 최근 수년 전 놓고 살았던 소설이 땡겨서 몇 권 읽어본 김에 검색해 보니, '책'에 관한 신예 작가들의 단편소설들을 엮은 선집이 두 권 보였다.

한 권은 [책에 갇히다](2021).
전자문명의 발달로 인해 '코덱스' 형태의 네모난 '책'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지는 오래되었다. 그러나 아직 '책'이라는 물질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세대가 살아있다. 같은 세대라도 신문명 적응이 빠른 사람들은 어느새 빠르게 고전적 '책'을 폐기처분했겠지만, 나 같은 문명 부적응자는 마치 총포 앞에 검을 들고 선 사무라이처럼 무모하게 '책'이란 물질을 한 손에 집고 버틴다.

이처럼, 1,700년 역사와 전통의 '코덱스'로서 '책'을 지키는 건 일종의 문명전쟁의 성격도 있다. 그래서 [책에 갇히다]라는 주제로 모인 신예 소설가들의 영역은 대부분 SF다. 그렇다고 과학적이고 미래주의적이지만은 않다. 기왕에 닥쳐오기 시작한 '코덱스'와 물질적 '책'의 종말 앞에서 진정한 '책'을 찾기 위해 먼 길을 떠나지만 결국 오래전 그대로의 '책'을 찾지는 못하는 내용들이다. 물론 예상하다시피 물질적 '책'을 찾는 건 더 이상 불가능할 앞으로의 미래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진정한 '책'이 무엇일지 현재에 고민해 보자는 시도들로 가득하다. 전통적 형태의 '코덱스'로서 '책'에 갇혔지만, 그 '책'은 진정하고도 보편적인 '책'으로서 앞으로도 인류와 함께할 진리의 보고를 의미한다. 

진리를 추구하는 한, 
'책'은 영원하다.

'책'에 갇혔으니, 이제 나올 시간이다.
[책에서 나오다](2022)는 아예 대놓고 SF다. 주제 또한 'SF 작가의 고전 SF 오마주'로 잡았다. 신예 SF 작가들에게 주제를 던져주고 고전 SF 한 권을 선정하여 이와 관련한 SF 오마주 소설을 쓰게 해서 모았다. 예를 들어 전혜진 작가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을 뽑아 19세기 가부장제가 양산한 억압된 여성이라는 '괴물'을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또는 메리 셸리의 당시 일상으로 재구성하면서 보여준다. [프랑켄슈타인]에서 진짜 '괴물'은 피조물이 아니라 자신을 신문명 창조자로서 '프로메테우스'라고 믿었던 인간들의 확신과 오만이었다.

결국, [책에 갇히다]에서 [책에서 나오다]의 기획 속에서 나는 '책'의 영원성을 본다.

우리가 '갇혔던' 책은 '진리'와 동일자인 보편으로서의 '책'이었다.
한편, 우리가 '나오고'자 한 책은 결코 보편자로서의 '책'이 아닌, 개별적인 고전 SF 소설에서 그린 인류의 기존 문명이었다.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1,700년 동안 익숙했던 '코덱스'는 언젠가 사라질지라도,
현재 문명의 개별성을 극복하고 '나오면서'  보편적 진리의 담지자이자 전달자로서의 '책'에는 '갇힐' 수 밖에 없는 인류의 운명을 이야기한다.


3.

"스크립타 마네트(Scripta manet),
베르바 볼라트(Verba volat)"

중세 시대만 해도 '독서'는 눈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입으로 소리내어 암송을 동시에 해야 했단다.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수라 '신의 말씀'을 함께 읽고 들어야 했기 때문인데, 구텐베르크 인쇄 혁명을 통해 '문자'를 다수가 공유한 이후로 독자들은 어디에서든 혼자서도 조용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글로 쓰여진 것은 영원히 남고, 말로 표현된 것은 공기 속으로 사라진다(Scripta manet, verba volta)"는 라틴어 문구는 원래, 중세 암송 시대에는 "글은 조용히 죽은 것이고, 말은 생생히 날아오른다"는 의미였다지만, 근대 이후 묵독 시대에는 "글은 영원히 남고, 말은 공허히 날아간다"는 뜻이 되어 '지식'을 공유함에 '문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장이 되었다.

[독서의 역사]를 쓴 알베르토 망구엘에 의하면, 책은 '간단한 도구의 상징적 의미보다 훨씬 복잡한 상징적 의미를 독서가에게 부여'함으로써, '무지, 맹신, 지성, 기만, 교활함, 그리고 계몽을 통해 책읽는 사람은 원전과 똑같은 단어로 그 텍스트를 다시 쓰면서도 원본과는 다른 이름으로 재창조'한다고 말한다.
인류의 모든 문명은 문자로 남고 독자들은 다양한 상상력으로 그 문명을 발전시키기도 하고 퇴행시키기도 하지만 말이다.

인류와 '책'의 관계는 바로 이거다.
다수의 읽기와 쓰기를 통해 다양해지는 진리 추구로 소수의 지식과 정보 독점을 해체해 온 역사.

설령 '책'이라는 네모진 물질이 한 손에 착 감기는 그립감이 결국에 사라지고 말지언정,
낡은 것은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온다는 역사에서도 진정한 '책' 찾기는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책'에 갇히고 만다.

***

1. [책에 갇히다], '책과 서점에 관한 SF 앤솔로지', <구픽>, 2021.
2. [책에서 나오다], SF 작가의 고전 SF 오마주, <구픽>, 2022.
3. [독서의 역사(A History of Reading)](1996), 알베르토 망구엘, 정명진 옮김, <세종>,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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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갇히다 - 책과 서점에 관한 SF 앤솔러지
김성일 외 지음 / 구픽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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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책에 갇히고 만다
- [책에 갇히다] / [책에서 나오다], SF 앤솔러지, <구픽>


1.

내가 '책'을 들고 다니기 시작했던 건 예닐곱 살 적부터였다. 
그렇다고 그 나이부터 활자 읽기를 좋아했다는 말은 아니다. 내 손에 들려져 있던 건 주로는 공룡이 나오는 어린이 백과사전 같은 책이었다.

어릴적 어머니는 집에 혼자 남을 나를 위해 16절 갱지 한 묶음과 모나미 볼펜 한 다스를 주고는 일을 나가셨고 나는 어두운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들고 다니던 책을 펼치고는 공룡 따위 삽화들을 따라 그렸다. 
어린 시절 내 꿈이 잠시 '고고학자'였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룡은 그 나이 때 나만 좋아했던 건 아니었을 테지만, 우연히 우리 집에 공룡이 나오는 생물 대백과사전 비슷한 책이 있었고 글을 잘 몰랐을 취학 전의 나는 그 유일한 어린이책을 들고 다니며 공룡 그림을 들여다 보았을 것이며 그것들을 따라 그려대는 나를 보며 어머니는 내개 종이와 펜을 쥐어주었을 거다. 모자라지 않던 갱지와 모나미 볼펜은 어린 나의 친구였고 그 속에서 노닐던 수많은 공룡들과 얼마전 할머니집에 살 때 텔레비전에 빠져들어서 보던 마징가, 태권브이 같은 로봇들은 나에게 어렴풋이 '고고학'이나 '과학자' 같은 꿈을 막연히 새겼으리라. 

책을 읽게 된 건 그 후로도 한참이나 지난 후였지만 나는 그 덕에 취학 전에 글을 읽을 줄 알게 되기는 했던 것 같다. 지금도 갱지의 냄새와 모나미 볼펜의 촉감은 내가 좋아하는 코드들이다. 

스무살이 되었을 때, 내 손에는 여전히 '책'이 들려져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 전국 각지에서 모인 동기와 선배들을 보며 나도 모를 모종의 위축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게 아마도 '책'이었던 것 같다. 일종의 열등감 극복을 위한 차별전략이었을 텐데, 집안 형편도, 외모도, 말주변도, 그렇다고 지능도 변변치 않던 나는 항상 '책'을 손에 들고 다녔다. 그리고 전철이든 버스든 그 어디서든 읽었는데 어떨 때는 읽는 척도 많이 했다. 의도는 여러 가지였다. 뭔가 있어 보이려는 신비주의 전략이었고, 아무하고나 대화하지 않는다는 자기보호 수작이었으며, 환경을 주체적으로 주도하려는 작전이기도 했다. 타인들은 나를 늘 책을 들고 다니며 읽어대는 녀석으로 인식했고, 내성적인 나는 타인들과 있을 때 눈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내가 뭔가를 하고 싶거나 말하고 싶을 때 내 마음대로 책을 잠시 덮었다. 그러다가 다시 책을 펼치면, 나는 눈과 마음을 둘 곳이 자연스레 생겼고 더 이상 뻘쭘하거나 어색해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다보니 한편으로는 네모난 '책' 자체가 주는 물질적 만족감 같은 게 생겼다. 
어릴 때와 달리 성년의 내게 네모진 '책'은 한 손에 딱 들어맞는 악세서리가 되었다. 21세기인 지금은 휴대폰이 들려져 있을 때도 많지만, 휴대폰이 없던 '90년대 초부터는 한 손에 딱 알맞춤한 그립감의 장신구이자 장난감이기도 했다. 

그렇게 지금도 나는 한 손에 잡히는 '책'을 매우 사랑한다.
이 지식을 담은 장신구로서 '책'의 기원은 약 1,700년 역사의 '코덱스'다.

"코덱스의 편리함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서기 400년 경이 되자, 고전적인 형태의 두루마리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대부분의 책들은 사각형으로 여러 장 모은 형태로 제작되었다."
- [독서의 역사], <책의 형태>, 알베르토 망구엘.

서기 4백년대에는 소장하고 읽기 불편했던 두루마리 형태에서 양피지를 접어 지금의 책 형태로 만든 '코덱스'가 발명되었다. 동양의 죽간이나 서양의 두루마리는 원자재 자체가 고급이라 복제가 쉽지 않았을 테니 기원전 1세기 죽간본이었던 사마천의 [사기]만 해도 세 번 베껴서 분리보관했단다. 그러다가 상대적으로 대량보급이 가능했을 원자재인 동양의 종이나 서양의 양피지에 베껴쓰는 '코덱스(codex)',  즉 지금의 '책'은 개인 소장의 편리성과 유용성이 한층 용이한 형태로 변형되어 왔다.

'코덱스' 시대와 함께 '문자'와 '지식'은 비단 외우는 것만이 아니라 소지하고 다니며 그 권위를 인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14세기에는 '안경'도 발명되었고, 드디어 15세기에는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술이 [성경]의 대량생산과 대중화에 혁혁한 공을 세운다. 한편, 15세기 인쇄술의 대중화는 육필 필사본의 화려한 장식적 필체 또한 대중화했기에 16세기에는 인쇄술의 발전이 육필 필사의 기술도 함께 발전시키게 된다. 
'책'의 주요한 역사다.

전자산업 발달에도 불구하고 '종이책' 고유의 양식과 질감, 냄새는 늘 인류와 함께 해왔다.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 알베르토 망구엘 또한 그랬던 것처럼, 사실 내게도 '독서'란 '문자'나 '지식'을 얻는 행위를 넘어 '책'이란 물질에 대한 일종의 '집착'이기도 하다. 
지금도 한 손에 '책'이란 물질이 없으면 허전하다.

그렇게 나는 오랜 동안 '책'에 갇혔다.


2.

출판사 <구픽>은 며칠 전 '프롤레타리아 장르 단편선'이라는 신예 단편소설 선집(앤솔로지)으로 알게 되었다. 최근 수년 전 놓고 살았던 소설이 땡겨서 몇 권 읽어본 김에 검색해 보니, '책'에 관한 신예 작가들의 단편소설들을 엮은 선집이 두 권 보였다.

한 권은 [책에 갇히다](2021).
전자문명의 발달로 인해 '코덱스' 형태의 네모난 '책'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지는 오래되었다. 그러나 아직 '책'이라는 물질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세대가 살아있다. 같은 세대라도 신문명 적응이 빠른 사람들은 어느새 빠르게 고전적 '책'을 폐기처분했겠지만, 나 같은 문명 부적응자는 마치 총포 앞에 검을 들고 선 사무라이처럼 무모하게 '책'이란 물질을 한 손에 집고 버틴다.

이처럼, 1,700년 역사와 전통의 '코덱스'로서 '책'을 지키는 건 일종의 문명전쟁의 성격도 있다. 그래서 [책에 갇히다]라는 주제로 모인 신예 소설가들의 영역은 대부분 SF다. 그렇다고 과학적이고 미래주의적이지만은 않다. 기왕에 닥쳐오기 시작한 '코덱스'와 물질적 '책'의 종말 앞에서 진정한 '책'을 찾기 위해 먼 길을 떠나지만 결국 오래전 그대로의 '책'을 찾지는 못하는 내용들이다. 물론 예상하다시피 물질적 '책'을 찾는 건 더 이상 불가능할 앞으로의 미래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진정한 '책'이 무엇일지 현재에 고민해 보자는 시도들로 가득하다. 전통적 형태의 '코덱스'로서 '책'에 갇혔지만, 그 '책'은 진정하고도 보편적인 '책'으로서 앞으로도 인류와 함께할 진리의 보고를 의미한다. 

진리를 추구하는 한, 
'책'은 영원하다.

'책'에 갇혔으니, 이제 나올 시간이다.
[책에서 나오다](2022)는 아예 대놓고 SF다. 주제 또한 'SF 작가의 고전 SF 오마주'로 잡았다. 신예 SF 작가들에게 주제를 던져주고 고전 SF 한 권을 선정하여 이와 관련한 SF 오마주 소설을 쓰게 해서 모았다. 예를 들어 전혜진 작가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을 뽑아 19세기 가부장제가 양산한 억압된 여성이라는 '괴물'을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또는 메리 셸리의 당시 일상으로 재구성하면서 보여준다. [프랑켄슈타인]에서 진짜 '괴물'은 피조물이 아니라 자신을 신문명 창조자로서 '프로메테우스'라고 믿었던 인간들의 확신과 오만이었다.

결국, [책에 갇히다]에서 [책에서 나오다]의 기획 속에서 나는 '책'의 영원성을 본다.

우리가 '갇혔던' 책은 '진리'와 동일자인 보편으로서의 '책'이었다.
한편, 우리가 '나오고'자 한 책은 결코 보편자로서의 '책'이 아닌, 개별적인 고전 SF 소설에서 그린 인류의 기존 문명이었다.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1,700년 동안 익숙했던 '코덱스'는 언젠가 사라질지라도,
현재 문명의 개별성을 극복하고 '나오면서'  보편적 진리의 담지자이자 전달자로서의 '책'에는 '갇힐' 수 밖에 없는 인류의 운명을 이야기한다.


3.

"스크립타 마네트(Scripta manet),
베르바 볼라트(Verba volat)"

중세 시대만 해도 '독서'는 눈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입으로 소리내어 암송을 동시에 해야 했단다.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수라 '신의 말씀'을 함께 읽고 들어야 했기 때문인데, 구텐베르크 인쇄 혁명을 통해 '문자'를 다수가 공유한 이후로 독자들은 어디에서든 혼자서도 조용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글로 쓰여진 것은 영원히 남고, 말로 표현된 것은 공기 속으로 사라진다(Scripta manet, verba volta)"는 라틴어 문구는 원래, 중세 암송 시대에는 "글은 조용히 죽은 것이고, 말은 생생히 날아오른다"는 의미였다지만, 근대 이후 묵독 시대에는 "글은 영원히 남고, 말은 공허히 날아간다"는 뜻이 되어 '지식'을 공유함에 '문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장이 되었다.

[독서의 역사]를 쓴 알베르토 망구엘에 의하면, 책은 '간단한 도구의 상징적 의미보다 훨씬 복잡한 상징적 의미를 독서가에게 부여'함으로써, '무지, 맹신, 지성, 기만, 교활함, 그리고 계몽을 통해 책읽는 사람은 원전과 똑같은 단어로 그 텍스트를 다시 쓰면서도 원본과는 다른 이름으로 재창조'한다고 말한다.
인류의 모든 문명은 문자로 남고 독자들은 다양한 상상력으로 그 문명을 발전시키기도 하고 퇴행시키기도 하지만 말이다.

인류와 '책'의 관계는 바로 이거다.
다수의 읽기와 쓰기를 통해 다양해지는 진리 추구로 소수의 지식과 정보 독점을 해체해 온 역사.

설령 '책'이라는 네모진 물질이 한 손에 착 감기는 그립감이 결국에 사라지고 말지언정,
낡은 것은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온다는 역사에서도 진정한 '책' 찾기는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책'에 갇히고 만다.

***

1. [책에 갇히다], '책과 서점에 관한 SF 앤솔로지', <구픽>, 2021.
2. [책에서 나오다], SF 작가의 고전 SF 오마주, <구픽>, 2022.
3. [독서의 역사(A History of Reading)](1996), 알베르토 망구엘, 정명진 옮김, <세종>,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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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 - 니체, 마르크스, 비트겐슈타인, 프로이트의 신체적 유물론
테리 이글턴 지음, 전대호 옮김 / 갈마바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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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胃腸)의 유물론(唯物論)
- [철학자의 뱃속], 미셸 옹프레, 1989.


"인간 주체는 항상 어느 정도 자기 자신에게 낯선 자, 자신이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힘들에 의해 구성된 자다. 바로 이것이 유물론의 주장이다."
- [유물론], <유물론들>, 테리 이글턴, 2016.


영국의 문화비평가 테리 이글턴은 현재까지 "마르크스주의가 옳다"는 명확한 당파성을 고수하는 '유물론자'다.
그에 따르면 고전적 유물론의 주장, 즉 '물질'이 '정신'보다 우선한다는 것은 기본 전제이기는 하나, 기계적 유물론을 넘어서야 한다. 

20세기 초 레닌은 '정신' 또한 '뇌'라는 '물질'이 만들어낸 '최고 수준의 물질적 산물'이라는 식의 극단적 주장을 했는데, 사실 엄밀히 따진다면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 여부는 명확하지 않은 주장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철학적 관점으로는 다분히 이분법적이고 기계적인 유물론이다.

테리 이글턴의 '유물론'은 현대 철학에서 니체, 비트겐슈타인, 프로이트, 마르크스 등을 통해 '인간의 생체'가 중심이 되는 '신체적 유물론(Somatic Materialism)'으로 발전된다. 
그의 '철학 전장'에서는 '근본적인 사안들에서조차 합의에 이를 수 없는' 근대성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인해 인간의 욕망과 생체 모두를 아우르는 '신체적 유물론'만이 대안이 된다. 

과장을 섞으면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기독교적 관념론을 다른 편으로 하면서 한편으로는 '육체적, 성적 관계'를 가미한 그리스 신화의 '신체적 유물론' 같다.
과학의 발전을 철학적으로 반영하고자 했지만 뉴턴식의 전통적 물리역학을 초월한 현대적 양자역학에 놀란 전통적 유물론자들의 갈짓자 행보를 보면 그리스 신화의 비일관성과 일면 유사하다.

철학의 동력 또한,
모순과 비동일성 및 비일관성인 것이다.

그럼에도, 복잡한 '철학' 논쟁의 본질은 결국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이며, 그 극단을 이루는 질문은 세계 존재의 기원은 무엇인가'이다.


"음식학은 초월적인 세계의 문제가 아니라 몸이 살고 있는 이 내재적 세계를 설명하는 형이상학이자 실천적 '무신론이 된다. 육체는 이제 지식의 새로운 미학을 위해 나선다. 니체적 미식철학은 이 새로운 대륙(무신론)을 향한 통로가 될 것이다."
- [철학자의 뱃속], <6. 반기독교적 소시지 - 니체>, 미셸 옹프레, 1989.


프랑스 철학자 미셸 옹프레는 니체주의자다.
즉, 무신론자이자, 세계의 근원 같은 객관적 요소에 대한 근본문제 보다는 그 세계 앞에 우뚝 선 인간의 신체와 욕망 같은 주체적 요소가 그들 철학의 계보학적 테마다.

'세계의 근원은 무엇인가'라는 철학의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변을 과학이 이어받은지 오래되었으니, 철학은 더 이상 그런 문제에 골몰할 것 없이 인간 사유의 근원인 신체에 주목하자는 현대 서양철학의 흐름이다. 
이러한 철학의 시작은 19세기 말에 망치를 들고 견고한 객관적 세계체제를 깨부수며 세계운동의 필연성을 어떤 식으로든 부여하고자 하는 '신' 자체를 부정한 니체의 '무신론'이었다. 세계의 보편적 '필연성' 또는 그런 거대한 법칙과 모종의 프로그램은 기독교 같은 종교는 물론 종교와 철학의 내용이 동일하다던 헤겔의 객관적 관념론 뿐만 아니라 관념론을 거꾸로 뒤집으며 현실적 유물론을 주장한 마르크스주의 또한 끝내 탈피하지 못한 궁극의 패러다임이자 최대강령이었다.

역사 속 사건들의 우연성은 객관적 세계의 물질적 운동의 필연성을 드러내는 변증법적 관계의 실현이라는 것이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의 근간이다. 
19세기 말 기독교적 사고방식이 지금보다 더욱 강고했을 유럽에서 무신론은 미친놈의 다른 말이었을 텐데, 마르크스주의 유물론보다 한 발 더 나간 니체의 무신론은 당대에는 어떠했을지 몰라도 이후 미셸 푸코나 미셸 옹프레를 비롯한 프랑스 현대철학자들의 화두가 된다. 
주체적 욕망의 무신론이다.

그 중 한 명의 니체 추종자 미셸 옹프레가 1989년에 출간한 [철학자의 뱃속]은 형이상학으로서의 철학을 거부한다. 
세계를 탐구하는 최고의 학문이라 자처하는 철학의 비현실적인 초월성을 탈피하고 현실에 천착하기 위한 또 하나의 시도다. 
신이라는 보편적 거대 정신이나 개인이라는 개별적 주체가 우선이 아니라 주체 외부의 객관적 물질세계의 일차성을 주장하는 유물론과 다른 방향이기는 하지만 음식과 신체라는 감각적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점에서 보면 현대적인 '신체적 유물론'의 일종이기도 하다. 

니체식의 극렬과격 무신론의 입장에서 본다면 물질운동과 세계역사의 필연성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마르크스주의 무신론은 무신론도 아닐테고,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적 변증법의 입장에서는 세계운동의 경향성과 법칙성을 부정하는 니체의 무신론은 유물론이 아니기에, 
마르크스주의와 니체주의는 섞일 수가 없다. 

그럼에도 영국의 테리 이글턴이나 프랑스의 미셸 옹프레는 '신체적 유물론'이라는 신유물론의 범주 속에서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유물론과 현대적 니체주의 욕망철학을 화해시키고 있다. 
물론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자이기도 하다는 미셸 옹프레와 달리 테리 이글턴은 니체주의자는 아니지만.


"인간은 곧 그가 먹는 것이다. 
감각기관을 따르라! 
감각이 시작하는 곳에서 종교와 철학은 멈춘다."
- 루드비히 포이어바흐, [철학적 선언].


[철학자의 뱃속] 서문격인 <1. 철학의 식생활>에서 저자 미셸 옹프레는 헤겔의 관념론적 절대정신을 뒤집어 인간적 유물론을 처음으로 개시한 근대철학자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의 저서 [철학적 선언]의 문구를 인용한다. 인간의 감각을 우선으로 따르면 기존의 사상이 뒤집어지며, 식생활이라는 감각적 행위가 인간을 규정한다는 유물론적 '선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음식'은 신체적 유물론에서 피해갈 수 없는 주제가 된다. 아마도 식욕은 물론 성욕 같은 인간 주체의 일차적 욕망이 현대적 유물론의 주요한 테마가 되는 것일텐데, 옹프레는 음식을 선택했다. 그러면서 철학자들의 뱃속과 위장을 들여다 본다.


고대 그리스 견유학파 디오게네스나 근대 유물론의 시조격인 루소, 이탈리아 미래주의자 마리네티 등은 지향하는 바는 각자 다를지언정 당대 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디오게네스의 날고기 및 채소 그대로의 생식과 루소의 우유예찬 및 채식주의, 마리네티가 주창한 이탈리안 파스타 전통 식문화 폐지 운동이 그것이다. 
견유학파는 당시 그리스 문명을 부정하는 행위에 집착했기에 길거리에서 성교하고 인간의 내장을 썰어먹는 개같은 철학자가 되었다.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한 소박한 루소는 평화적인 채식주의를 강조했지만 그의 자연주의와 사회계약설은 수백년 후 히틀러식 채식주의를 예견하지 못했다. 육류를 안 먹는 인간도 충분히 폭력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마리네티는 이탈리아의 '미래'를 위해 수입밀로 만든 파스타는 이제 그만 좀 먹고 내수품목인 쌀을 장려하자고 주장했지만 운동의 성과는 무솔리니 파시즘의 몫이 되었다.

그 외 간소한 음식을 선호했으나 술을 항상 입에 달고 살았다는 칸트, 현재의 문명국과 미래의 조화국 간 음식전쟁 따위를 쓸데없이 연구하고 장황하게 서술한 공상적 사회주의자 샤를 푸리에 이야기는 그냥 그 철학자들의 경건했던 주요 사상 외에 이런 개인사도 있다는 식의, 저자 미셸 옹프레의 잡글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그의 잡글은 신체적 욕망을 부정하고 고귀한 사변을 즐긴 실존주의자 사르트르의 플라톤적 철학 전통을 설명해주는데, 가재와 조개, 굴 같은 갑각류를 혐오했던 사르트르가 결국 스스로 소설 속에서 갑각류가 되어 죽어갔다는 식의 이야기를 통해 사르트르의 일상과 사상 사이의 모순적 실존주의를 꼬집고자 한 듯 하지만, 글쎄 별 감흥은 없다. 

미셀 옹프레에게 중요한 철학자인 니체의 식생활을 보더라도, 니체가 게르만식의 기름진 식사를 증오하고 가벼운 소시지와 햄을 어머니한테 항상 주문했지만 그래도 실제로는 기름진 고기를 마다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통해 철학자들의 사상적 관념론과 위장적 유물론 사이에는 모순과 비일관성이 가득하더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닌가 싶다.


이쯤 되면 이제 알 것 같다.
니체주의자 미셸 옹프레가 철학자들의 뱃속을 들여다 보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음식이라는 일차적이고 물질적인 매개를 통해,
신체적 유물론과 인간 주체의 욕망을 혼합하려는 시도.
철학자라는 인간의 뱃속 위장을 열어보며,
초월적 형이상학을 탈피하고자 노력하지만 결국 이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 철학의 모순과 한계를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

이른바,
위장(胃腸)의 유물론(唯物論).

그럼에도,
인류의 철학은 시지프스의 숙명처럼,
다시 굴러내려올 것을 알면서도 계속 운명의 바위를 굴리며 언덕을 오른다.

***

1. [철학자의 뱃속(Le Ventre des Philosophes)](1989), 미셸 옹프레(Michel Onpray), 이아름 옮김, <불란서책방>, 2020.
2. [유물론(Materialism)](2016),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 전대호 옮김, <갈마바람>,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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