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하도 - 문명의 조형 탐구
아청 지음, 김영문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혁명'은 어디에서나
- [낙서하도], 아청/김영문, 2014.


"하수(河水)에서 그림(圖)이 나오고(河出圖), 낙수(洛水)에서 글씨(書)가 나와서(洛出書) 성인이 그것을 법도로 삼았다."
- [주역], <계사전>


1.

남송의 주희(주자)가 제자 체계통을 불렀다.
주희는 체계통이 처음 찾아왔을 때부터 그를 친구로 여겼지 제자의 대열에 세우지 않았다고 하는데, 체계통에게 어딘가 탁월함이 있었나 보았다. 
체계통은 그 중 그림을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났단다. 주희는 그런 그에게 [주역(역경)]에서 말하는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를 찾아오라고 청했다. 

'하도'는 '하수', 즉 동아시아 문명의 큰 물인 '황하'에서 신룡이 몸에 새기고 나타난 '그림'이고, '낙서'는 주나라 문명(중국) 출발지인 '낙수'에서 거북이가 등딱지에 새기고 나온 '글씨'다.
즉, '하도낙서'는 동아시아 문명의 기원이다.

당대 유학의 대학자로부터 중책을 부여받은 체계통은 산 넘고 물 건너 대륙을 횡단하며 사천(쓰촨) 지역에서 드디어 '하도'와 '낙서'를 발견했고, '사방오위도'와 '팔방구궁도'를 주자에게 바치며 각각 '하도'와 '낙서'라 전했다.

이를 본 주희는 [주역]의 해설서와 같은 본인의 [주역본의]에서 '사방오위도'를 '하도'로, '팔방구궁도'를 '낙서'로 구분하여 이 '하도낙서'가 "변화를 생성하고 귀신을 움직이는 방법"이라 설명한다.

그러나 체계통에게는 한 장의 그림이 더 있었다.


2.

"인(仁)이란 비교적 낮은 경지이지만 기원전 500년 무렵에는 대단한 인간 각성의 기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선진(先秦)시대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바로 이 기점입니다."
- [낙서하도], <천극과 선진철학>, 아청, 2014.

중국의 작가 아청(阿城:1949~)은 중국 소수민족 묘(먀오)족의 복식과 고대 청동솥(정/鼎)의 문양 등의 조형에 나타난 '하도낙서'와 '천극'(북극성) 신화 및 이 신앙의 변천을 통해 동아시아 문명을 크게 그려보고 있다. 
원래 도상학과 디자인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에게 실시한 강의를 엮은 듯 한데 그림과 이미지 같은 조형과 이들을 통한 도상학적 접근으로 동아시아 문명사를 조망해 보고자 도판을 계속 증보하면서 재판을 거듭했단다.

결론부터 보면,
동아시아 문명과 철학 및 사상의 기점은 진시황의 진나라 최초통일 이전인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와 백가쟁명 과정을 통과해 온 공자유학의 '인(仁)' 사상이 동아시아 '자유' 인문학의 기원이자 중심이란 내용이다.

공자의 유학은 원래 세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자연철학' 보다는 인간세상에 초점을 둔 '사회철학'(기원전 당시는 '과학'이 없었다)이다. 이 사상이 12세기경에 이르면 우주운행의 원리까지 사고를 확장하는데 이를 이념적으로 집대성한 사람이 남송의 주희(주자)였다. 그의 '주자학'이 이후 유학 이념으로서 정립되는 '성리학'이다.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고 설명해야 했으므로 주희는 '변화의 경전'인 [주역(역경)]을 연구하고 해석했다. 아마도 이 과정에서 그림에 정통한 제자 체계통을 천하로 파견한 것이리라. 우주가 낳은 인류의 문명사에서 그 시초가 된다는 '하도'와 '낙서'의 원본을 주자 본인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했을 것이다.

체계통의 보고에 따라 주희는 '사방오위도'를 '하도'로, '팔방구궁도'를 '낙서'로 규정했으나, 사실은 그 두 그림 모두 '낙서'였다. 
체계통이 숨긴 세번째 그림은 '태극'의 원형과 같은 '음양도'였는데, 후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 '음양도'가 바로 '하도'였던 것이다.


이제, 아청의 이 책 [낙서하도]에서 서술하는 동아시아 문명의 기원을 순서대로 정리해 보자.

1) '낙서' 
신석기 후기 은(상)나라 거북점 등에서 보듯 낙수라는 강에서 신령한 거북이가 상형문자를 전했다. 실은 인류가 거북이 점을 이용해 갑골문자를 남겼다.

2) '하수' 
청동기 시대인 주나라 시기 신성한 제사용 솥(정)에 신령한 괴수를 그려넣었는데, 동서남북 사신 중 으뜸인 동청룡(신룡)으로 대부분 표상되니 황하에서 신룡 또는 [산해경]에서 용의 최고 단계인 응룡이 그림을 지고 나타났다. 이 응룡은 고대중국 황제와 치우와의 신석기-청동기 문명대전쟁에서 황제를 도와 치우천왕을 물리쳤고, 우임금의 치수(물관리)를 신령한 거북 '선구'와 함께 돕기도 했다. '하수'의 그림은 청룡 말고도 주작(봉황)이나 흉측한 괴수의 대표자 '도철'의 모습으로도 등장하는데 중요한 것은 이 괴수들의 이마 정중앙 마름모꼴이다.

3) '천극' 
동아시아인이 태양을 숭배한 것은 불교가 처음 들어온 후한 시대란다. 그 전까지 기원전 시대는 '천극'의 시대였는데, '천극'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북극성'이다. '하도'의 신룡이나 도철 이마 정중앙에 새겨진 마름모 또는 이후 변천된 소대가리 이마의 소용돌이 등이 바로 이 북극성을 표시한다. 이를 중심으로 신룡이 오르고 봉황이 나는 별자리도 보이는 것이다. '천극'을 숭배하는 사상은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본인이 '천극' 자체가 된 이후로 옅어진다. 이에 따라 천극과 수호신(용-봉황-도철-거북 등)을 새겼던 솥은 진나라 이후 문양없이 단순해진다. 이는 이후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농민황제 유방이 건국한 한나라에 이르러 '천인합일', 즉 황제가 하늘(또는 그 아들인 '천자')이라는 유학사상과 결합한다.

4) '축의 시대(Axial Period)'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원전 800년에서 기원전 200년 사이는 인류 사상사에서 공통된 '각성기'인 '축의 시대'라고 철학자 야스퍼스가 말했단다. 천극을 떠나 인간의 '자유의지'가 발견된 시대, 즉 공자나 석가,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같이 철학적으로 인간을 발견한 인문학 각성의 시대라는 것이다. 이 즈음부터 인류는 '동물성'을 버리고 '문(文)', 즉 '문화'와 '문명'을 발전시키며 '인문학'을 발견했다. 인류가 신 또는 하늘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하여 '자유의지'를 펼치기 시작하는데, 서양의 아리스토텔레스와 동양의 제자백가 등으로 나타났다.


"공자의 뜻, 즉 공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자유상태'입니다... 축의 시대 각성자로서 공자는 각성을 시작하면서 바로 각성의 궁극적 지점(자유상태)을 표현한 것이죠... (그러나) 기원전 500년 무렵의 공자는 내면의 '자유의지'라는 문제에서 대화상대가 없었던 셈이죠. 소위 '고독'이란 바로 이런 것이죠. 소위 '강함'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 [낙서하도], <천극과 선진철학>, 아청, 2014.

이상의 흐름을 통해 아청은 공자의 유학을 중심으로 '이질화'되지 않은 유학적 세계관을 펼치는데 역시 중국인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 역사의 보편적 기원으로서 [낙서하도]를 추적하는 아청에게도 공자는 여전히 사상의 뿌리다. 시진핑의 '일대일로' 슬로건이 내세우는 철학 또한 '인'의 정치의 세계적 실현 아니던가.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공자의 어록 [논어]에 "칠십세에 이르면(七十而) 마음이 가는대로 따라가도(從心所欲:종심소욕)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不踰矩:블유구)"라는 말이 있다. 오래전 각성시대(축의 시대) 이후 인문학 궁극의 목적지점이다.

아청이 '하도낙서'를 '낙서하도'로 바꿔 부르면서까지 추적한 인류문명의 결정적 지점이다.


3.

"상나라 시대 청동기에 구현된 '하도'의 나선형 문양, 지금의 중국 먀오족 전통의상에 그려진 나선형 문양, 그리고 우리나라 태극기에 그려진 태극 문양이 동일한 시원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 어느것 중심의 영향관계가 아니라 동일한 근원에서 함께 분파된 열매를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한국, 중국, 중국 소수민족, 일본, 동남아 등이 모두 천극성 신앙과 도작(벼농사) 문명이라는 동아시아 보편의 뿌리에서 공평하게 갈려나간 독자적인 문화담지체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 [낙서하도], <옮긴이의 말>, 김영문, 2023.

[낙서하도]의 저자 아청은 지금으로부터 11만년 전부터 약 1만년 전까지 지속된 마지막 빙하기의 후기에 중국과 한반도는 물론 일본까지 원래 하나의 대륙으로 연결되었던 그 시기부터 '낙서하도'와 '천극' 신앙, 도작(벼농사) 문명 등이 동아시아 인류 문명의 보편적인 바탕으로 존재한다고 추측하면서 책을 끝낸다. 
중국이 중심이라는 '중화주의' 사상이 아니라 오래전 '낙서하도'의 문명이 시작된 자리에 지금의 중국이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같은책, <동아시아 문명에 대한 추측>).

여기에 옮긴이 김영문 선생은 아청의 주장을 다시금 강조한다. 중국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가 보편적 문명을 공유하는 것이다.
'낙서하도'는 중국만의 것이 아니다.


내가 읽은 [낙서하도]의 내용은 또한 이렇다.

아청에 의하면, [역경]의 괘가 하나라와 상(은)나라 시기에는 건(하늘)과 곤(땅)이 반대였다. 아마 음양도 그랬을지 모른다. 이를 주문왕이 유리안치 시절 [역경] 괘를 [주역] 64괘로 재해석하며 원래 하늘이었던 '곤'을 땅으로, 원래 땅이었던 '건'을 하늘로 전환시켰다. 
아마도 땅을 중시하던 신석기 또는 하상나라 문명에서 하늘을 대리하려는 지배자의 시대인 청동기 문명으로 교체되는 문명적 '혁명'을 사상적으로 준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서쪽의 앙소문화(주나라)와 동쪽의 용산문화(상나라) 간 문명 대충돌의 '혁명'이 임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 이전의 상고시대에 벌어진 황제와 치우의 대전쟁 또한 평지의 도작문명과 고원의 속작문명 간 충돌이었을 수 있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해수면이 올라가면서 지금은 대륙붕 연안바다가 된 지역에서 벼농사를 시작한 도작문명이 조와 수수 등을 재배하던 속작문명의 영토를 침범하게 되었는데 치우가 도작문명 침략자를 대표한다는 설을 아청은 소개한다. 
원래의 땅을 지키던 황제 세력은 신룡과 거북 등 문명의 힘으로 요괴화된 침략자 치우 세력을 물리친다. '낙서하도'의 힘이다. 하지만 치우의 청동기 문화는 기존의 '낙서하도'와 융합된다. 이후 소빙하기로 추정되는 5~6세기 추워진 북방의 유목민족이 남방의 정착문명을 침략한 후 문명이 크게 또 다시 충돌하고 융합되는 것처럼, 문명은 언제 어디서나 '혁명'을 통해 진화한다.

원래 '하도'가 먼저 생기고 '낙서'가 뒤따른다는 설로 '하도낙서'라 불렸지만, 아청은 '문명의 조형 탐구'를 통해 신석기 시대에 낙수에서 거북이(선구)가 글자(상형갑골문자)를 지고 나타나는 '낙서'가 먼저 등장했고, 이후 청동기 시대에 청룡(신룡)이 황하에서 별자리와 같은 그림의 형태를 띄고 도상화되어 나타났으니, 기존의 '하도낙서'를 '낙서하도'로 순서를 뒤바꾸었다. 
도상학적으로도 '낙서'와 '하도'는 '혁명'적으로 전화된다.

'하늘'과 '땅'이 '곤건'에서 '건곤'으로 뒤집어지고, 음양이 뒤바뀌며, 신석기와 청동기 등의 문명이 충돌하고 융합되는 역사에서 '하도낙서'가 '낙서하도'가 되는 일련의 과정 자체가 인류 문명사에서 만물의 '혁명'적 전환으로 해석된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세상사 '만물유전(萬物流轉/panta rhei)'의 본질은 '혁명'이다.
인류 문명의 역사 또한 '혁명'의 역사 자체다.
'혁명'은 어디에서나 있다.

***

1. [낙서하도(洛書河圖) - 문명의 조형탐구](2014), 아청, 김영문 옮김, <글항아리>, 2023.
2. [산해경 괴물첩](2015), 천스위 그림, 손쩬쿤 해설, 류다정 옮김, <디지털북스>, 20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