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튀세르 효과 프리즘 총서 7
진태원 엮음, 강희경 외 옮김 / 그린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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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튀세르를 읽던 시간 : 1998~1999년
- [마르크스를 위하여] / [자본론을 읽는다] / [레닌과 철학] / [철학과 과학자들의 자생적 철학] / [마키아벨리의 고독] 외 유고집


1.

"간단히 말해 철학은 분열한다는 냉혹하고도 기본적인 사실에 관한 의식이다. 과학이 하나로 된다면 철학은 분열한다. 철학은 분열함으로써만 하나가 될 수 있다… 철학적 꼬뮈니까씨옹(communication)이란 없다. 철학적 토론이란 없다."
- 루이 알튀세르, [레닌과 철학], 1968.


또 다시 아버지에게 대불효를 저지르고 말았다. 
설 명절연휴 전날 마감일이 잘 풀려서 즐거운 마음에 퇴근 후 오랜만에 집에서 맥주 한 잔 하며 가족끼리 대화 중 아버지가 성질을 내시고는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버리신 거였다. 
친구들과 한 잔 마시고 들어와 떠들어대던 아들과 함께 기분이 좋아진 아버지가 역시 '이 때다!' 싶어 이번 대선 얘기를 꺼내시며 남한의 '공산화'를 심히 걱정하셨고, 암환자를 모시는 삼대 가정의 평화를 위해 집안에서 정치경제와 사회문화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는 가풍을 확립해 왔던 나는 순간 뜨끔했다. 

"에이, 뭐 그런 얘기를 하세요~" 하며 예사롭게 대처해야 했다. 하지만 한 잔 마신 나도 대뜸 할 말은 하자 싶었다. 

"폐암 4기인 아버지가 중증환자로 등록되어 의료비의 5%만 지급해도 된 후로 저는 월급에서 나가는 국민건강보험료가 전혀 아깝지 않아요. 우리 식구들 힘들게 살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무슨 상관입니까?"

"너가 아직도 잘 몰라서 그래. 지금 나라가 공산화 다 되어 있어. 나라 다 망하게 생겼어."

"보세요. 아버지가 잘 가르쳐주신 덕분에 제가 아버지보다 조금 더 알고 정보도 많잖아요. 현실 공산주의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평등하기를 꿈꾸는 이상사회로서 공산주의는 나쁜 것만은 아니예요."

"너 지금 우리나라 안보가 다 무너진 걸 모르고 하는 소리냐?"

애초에 대화가 될 수 없는 사안의 또 다시 반복이다. 대저 부자간의 이런 대화는 서로 답을 정해놓고 주장을 펼치기에 '토론'이 성립되지 않는다. 반론을 펼수록 서로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꼬투리에 꼬투리를 물다가 궁극에는 아들의 태도를 지적하며 아버지가 토론종료를 선언하는 게 상례다. 우리 부자도 항상 그랬었고 젊은 시절의 나는 토론 중 퇴장전술을 주로 썼으며, 시간이 흘러 중년의 아들과 마주한 늙어진 아버지는 주로 '너는 아직 세상을 모른다'라는 말과 함께 일방퇴장을 하신다. 

암선고를 받은 아버지와 부자지간의 정을 나눌 시간도 부족하니 사회문제, 특히 정치경제 얘기 말고 신변잡기 개그를 나누자던 다짐을 잠시 소홀히 한 결과 늙고 병약한 아버지가 다시금 골방과 태극기 휘날리는 유투브 세상으로 침잠하시고 말았다.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 : 1918~1990)는 '철학자'다. 후기의 수차례 '자기 반성' 전이었던 1960~1970년대의 이 철학자는 세계의 '우연'한 현상들 속에서 '필연'의 '법칙', 즉 궁극의 '진리'를 집요하게 추구하는 정통 철학의 입장을 견지했다. '과학'의 발전과 세상의 복잡다단한 변화 속에서도 그는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인 '철학' 본연의 임무를 잊지 않으려 했고, 세상만사의 현상들을 통합하는 '과학'의 성과에 비해 이 사실들을 다시금 분열시키고 논쟁시키는 '철학'의 본질적 성격을 분명히 했다. 
'철학'은 일관되고 통합된 '진리'를 추구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과학'적 사실들 간 경계선을 긋는 역할만 하게 되고 이런 '철학'간의 분열은 새로운 '과학'의 성과로 다시금 통합되는 것이지 결코 '철학'적 '토론(커뮤니케이션/꼬뮈니까시옹)'을 통해 '진리'에 도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철학자' 알튀세르에게 "철학적 꼬뮈니까시옹이란 없다. 철학적 토론이란 없다".



2.

"마르크스의 이론적 혁명은 그 답의 변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변경에 있다는 것, 따라서 마르크스의 역사이론의 혁명은 마르크스가 이데올로기의 지형으로부터 과학의 지형으로 옮긴 ‘제요소의 변경’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 루이 알튀세르, [마르크스를 위하여], 1965.


인문대 부학생회장인 국문과 후배에게 단과대 [자본론] 읽기모임을 공식사업으로 제안했던 1999년에는 나 나름대로 '절박'했다. 제대 후 복학하니 오래전 후배들을 잡아주던 복학생 형들은 당연히 온데간데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학회소모임 사상운동은 무너졌다. 단과대학 각 학회에서 암약하던 정치경제, 노동사회, 문사철(文史哲) 학회들도 보이지 않았다. 뛰어난 운동가는 아니었던 나는 단과대 단위에서라도 [자본론]을 함께 읽으며 좌파사상의 단초를 다시 만드는데 작게나마 기여하고 싶었다. 수년 전 89~91학번 복학생 선배들의 자리를 어떻게든 지켜야 했다. 감감 무소식이던 부학생회장 후배는 슬금슬금 나를 피했고 나는 여전히 도서관에서 '자습'이나 하고 있었다.




1994년 내내 레닌을 읽던 나는 우연히 같은 단과대 89학번 선배를 통해 알튀세르를 접했다. 마르크스도 엥겔스도, 레닌도 마오쩌뚱도 '철학'은 다루었지만, 그들 모두는 시대의 '사상가'였고 '혁명가'였지 '철학자'는 아니었다.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중 마지막 '열한번 째 테제'에서 "지금까지의 '철학'은 세계를 '해석'해 왔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 '철학'은 세계를 '변혁'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적었다. 이로부터 100년 후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이를 수정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새로운 철학의 실천'이 아니라, '철학의 새로운 실천'이다(루이 알튀세르, [레닌과 철학], 1968.)"라고 말이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의 '철학'의 '실천'과 이를 변화된 유럽정세에서 혁신하려던 그람시의 새로운 '실천철학'을 넘어 '철학' 자체로 돌아간다. 즉, '새로운 (실천)철학'이라는 것이 있는 게 아니라 '철학'의 '새로운 실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렇게 철학자인 루이 알튀세르는 '철학' 자체로 돌아가되 헝가리 미학자 게오르그 루카치처럼 '총체성'이라는 철학의 자루 안에 모든 개념들을 모호하게 쓸어담지 않고 '철학' 자체는 무엇인가 명확하게 확립을 하고는 사유의 여정을 출발한다.

알튀세르에게 '철학'은 학문적 '대상'을 갖지 않는다. 대상을 지닌 것은 '과학'으로서 비단 자연과학 뿐만 아니라 정치나 경제, 역사 등의 사회과학도 각 분야의 대상이 있고 그에 관한 연구와 혁신을 향해 나아가니 '과학'이다. '철학'은 다만 별도의 '대상'이 없이 이러한 '과학'적 성과들을 대상으로 하여 이들을 분류하고 경계선을 그으며 정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계급사회에서는 방향성 없이 생산된 온갖 과학적 성과들을 계급적으로 구분하고 경계선을 그으면서 "철학은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알튀세르, <마치오키와의 대담>, 1968.)"을 표현하게 된다. '철학'의 '대상'은 '학(學)' 자체라는 헤겔을 비롯한 대철학자들의 전통 위에 알튀세르도 서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루이 알튀세르는 빼도박도 못하는 '철학자'일 수 밖에 없다.
다만, 그리스 탈레스로부터 플라톤까지 고대 철학에서 발견한 첫번째 '과학'의 대륙이었던 '수학'의 대륙과 중세 데카르트로부터 갈릴레이까지 두번째 '물리학'의 대륙 발견이 인류의 철학적 여정에서 중요한 발견이었던 것처럼, 근대의 마르크스가 발견한 세번째 대륙인 '역사'의 대륙은 계급투쟁의 사회사상에서 혁신적 세계관으로서 '역사적 유물론'을 정립하게 했다. 이러한 '과학'적 패러다임의 혁신 과정에서 '철학'은 지리하고 분열적인 지적 투쟁을 노정하지만, 새로운 '과학'의 대륙이 발견된 후에야 그 경계선을 구획하는 본연의 역할을 할 뿐 '철학'적 세계관 사이의 투쟁에서 '토론'은 없다. 
이것이 알튀세르의 입장에서 '철학'과 '과학'의 상호관계이며 '과학자의 자생적 철학'이 유물론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나는 제대 후에도 소설가의 꿈을 꾸었지만, 당시 나에게 소설이란 문학이라기 보다는 세계를 '변혁'하는 도구 중 하나였다. '혁명가'는 못 되었으니 '문학'이라는 무기를 들고 싶었으며 이 총에는 '철학'이라는 실탄을 장전하고 싶었다. 입대 전 만난 알튀세르를 전역 후에 다시 찾아 그의 저서 [자본론을 읽는다](1966)를 통해 마르크스의 [자본론] 원전을 읽게 되었다. 내가 단과대 학생회에 제안했던 '[자본론] 읽기' 모임은 실상 루이 알튀세르와 그의 동지 에티엔 발리바르처럼 [자본론]을 '철학'적으로 읽는 모임이었다. 알튀세르와 동지 철학자들의 공동저작인 [자본론을 읽는다]는 당시 표준적인 자본주의국가 영국을 분석하되 그 나라의 구체적인 체제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저자들은 영국이 아니라 "표준적이고 이상적인 모델(같은책)"로서 자본주의체제 자체를 연구하며 영국을 표본으로 삼은 것 뿐이었다. 이는 역시 100년 전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 1권을 통해 당시 최고로 발전한 자본주의국가 영국을 분석하면서 자본주의체제 일반의 성격과 비밀을 폭로한 '철학'적 전통을 잇고 있다.
레닌과 알튀세르 모두 "모든 진리는 구체적이다"라는 명제와 함께 '철학'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실천'을 주장했지만, '알튀세리앵(알튀세르주의자)'을 자처하던 나는 다시금 알튀세르를 앞세워 예전처럼 '철학'의 가면을 쓰고자 했을지도 몰랐다.

결국 단과대 학습모임은 불발되었는데, 설령 공식출범했다 한들 당시의 내가 알튀세르의 [자본론을 읽는다]를 잇는 그 '철학'적 위업을 흉내나 제대로 낼 수 있었을지 잘 모르겠다. 구체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못했던 당시의 나는 '혁명가'도 '소설가'도, 그렇다고 '철학자'도 아니었다. 내가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신춘문예로 등단할 소설이나 몇 편 써보는 것 뿐이었다. 물론, 학보사 문예상에서도 나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은 먹히지 않았고 마지막 교문을 나서기 전 제출한 신춘문예 신문사들로부터 답신은 오지 않았다. 
'실천'도 '철학'도 못했던 나는 결국 '소설' 마저도 제대로 못했다.

알튀세르는 20세기 말 남한에서 그렇게 잊혀졌다. 소비에트의 붕괴 이후 "다시 마르크스 자체로 돌아가자!"는 슬로건을 내건 좌파의 흐름에서 1990년대를 휩쓴 '포스트 모더니즘' 등의 사조를 타고 잠시 머물다 떠나간 이론가 중 하나로서 잠시 명멸했다가 사라졌다. 철학자이자 공산주의 이론가인데 평생 정신분열증으로 살다가 아내를 목졸라 죽이고 정신병원에 유폐된 그는 1970년대 후반까지 프랑스 공산당에 대한 비판을 끝으로 더이상 저작을 발표하지 못하나, 이후 편집자들에 의해 '유고'들이 속속 출간된다.

'인간주의'적 청년 마르크스와 '구조주의'적 노년 마르크스 사이의 '인식론적 단절(절단)',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으로서의 '철학'과 '유물론'일 수 밖에 없는 과학자들의 '자생적 철학', '주체 없는' 사회구성체에서의 경제적 '최종심급'을 인정하면서도 상부구조와 상호관계되는 복합적 '중층결정', '이데올로기'의 '현실적 힘'으로 확장한 '국가론', 그리고 '과학'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등은 알튀세르가 한국에 들여온 사상들이었다. 이후 몇 번의 '자기 비판'과 에티엔 발리바르 등 제자들과의 결별이 그의 '정신분열'의 영향이었는지는 나는 알 수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의 글과 사상은 어렵다.


3.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은 레닌주의의 용어로 말하자면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위치, 계급관계, 그러므로 세계적 차원과 국민적 차원에서 동시적으로 제국주의적이고 프롤레타리아적인(이 두 측면은 분리 불가능하죠) 계급투쟁의 상태로 필연적으로 향하는 그러한 분석을 말하는 것입니다."
- 루이 알튀세르, [검은 소], <2장. 22차 당대회의 모순>, 1976.


1976년 프랑스 공산당은 22차 당대회를 통해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폐기한다.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완성'을 선언하고 하나의 '현실 정치체제'가 된 후 유럽 선진 자본주의 각국에서 '의회주의'를 병행하는 유럽 공산당들은 노선 전환을 시도한다. 마르크스주의 '과학'인 '역사유물론'에서 '필연'적 이행기인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포기하고 '인간적인 자본주의'로 수정하는 '유로 코뮤니즘'의 출현이었는데, 이런 정국에서 루이 알튀세르와 에티엔 발리바르 등의 마르크스 철학자이자 공산주의 이론가들은 이 기획에 '이론적'으로 반박하기 시작한다. 그 중심 테마가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다.

알튀세르를 비롯한 일련의 공산주의 '철학자'들에게 계급투쟁의 인류역사에서 '민주주의'와 '독재'의 개념은 '구체적'으로 또는 현실적으로 동일했다. 그러므로 다수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는 다수대중에 의한 민주주의라는 논리적으로 필연적인 결론을 도출한다. 이러한 체제이행의 필연적인 개념을 포기한 1976년 프랑스공산당 22차 당대회는 역시 100년전 마르크스의 [고타강령비판]의 정세의 현대적 반복이었다. 알튀세르와 동지들은 '프롤레타라아 독재'의 '철학'적 '필연성'에 관한 일련의 저작들과 주장을 열심히 제기했지만, '철학'은 결코 당대 현실 '정치'를 이길 수 없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프랑스공산당 강령에서 결국 삭제되었고 알튀세르는 공산당에서 사라졌으며 그의 동지들은 분열하고 결별했다.

이후 알튀세르는 '자기 비판'을 통해 후기 사상으로 접어들었다. '계급투쟁'의 '이론적 무기'로서의 '철학'의 '새로운 실천'을 지향했지만, 구체적 진리를 담보하지 못한 채 1980년대에는 사변적 골방 철학자가 되었고 프랑스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따위에 소환되는 처지가 되었다. 그리고 결국 정신분열로 아내를 목졸라 죽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아무도 몰라주는 '고독'에 싸인 자신을 선학인 마키아벨리나 마르크스에 빗대어 '마키아벨리의 고독'이나 '마르크스의 고독' 따위를 언급하고 그들의 '침묵'처럼 본인도 '침묵'의 철학자가 되었다. 이것이 그의 후기 사상으로서 '고독'과 '침묵', 그리고 '우연'의 철학이다.

한참 후 1990년대에 남한사회 '알튀세리앵'을 자처했던 일련의 학자들이 [알튀세르 효과]라는 책을 엮었고, 21세기 초 [마키아벨리의 가면](2001) 이후 잊고 살던 알튀세르를 2018년에 나는 그의 '유고집'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검은소]는 1976년의 어두운 정국에서 앞길을 가늠해볼 수 없었던 은유('검은소')로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 관한 알튀세르의 철학적 고뇌를 담고 있으며, [무엇을 할 것인가]는 마르크스주의 계급투쟁론과 국가론을 견지하면서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을 역시 '철학'적으로 결합한 알튀세르 후기 글들을 엮었다. 
이미 [마키아벨리의 가면] 당시 내가 읽은 알튀세르는 더이상, 세계의 '필연'적 '법칙'으로서 '진리'를 집요하게 추적하던 정통 '철학자'가 아니었다. 자기 비판과 자기 반성을 통해 '고독'과 '침묵'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알튀세르는 '필연'을 버리고는 우연'적 '만남'과 '유물변증법'을 혼란스럽게 접목시켰고 그가 추구하던 '진리'는 그의 정신분열적 '가면'을 쓰고 있었다. 아마도 정통 물리학과 상대성이론을 넘어 확률과 우연의 양자 물리학의 '과학'적 성과를 의식해서였을는지도 모른다.

이전의 나와 '단절'된 지금의 나는 폐암 4기인 아버지의 주장이 아닌 마음을 읽으려 노력하고, 주변 동료들에게도 나의 주장만이 아닌 그들의 생각을 들으려 노력한다. 
중요한 건 '철학'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20세기말 알튀세르와 결별하면서 깨닫기 시작했지만, 사실 나의 '철학'은 변함이 없다. 끊임없이 분열하고 토론도 불가한 '철학'의 전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불변의 진리' 혹은 '단 하나의 방정식'을 찾는 노력을 기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실천'도 부족하고 '철학'도, '소설'도 부진했던 내가 지금껏 모자란 머리로 책을 읽는 이유다.

알튀세르를 읽던 시간이었던 지난 세기말 이후로도 내가 버리지 못하는 습성이다.


***

1. [자본론을 읽는다](1966), 루이 알튀세르, 김진엽 옮김, <두레>, 1991.
2. [마르크스를 위하여](1965), 루이 알튀세르, 고길환/이화숙 옮김, <백의>, 1990.
3. [레닌과 철학](1968), 루이 알튀세르, 이진수 옮김, <백의>, 1991.
4. [철학과 과학자들의 자생적 철학](1967), 루이 알튀세르, 김용선 옮김, <인간사랑>, 1992.
5. [마키아벨리의 가면](1972~1986), 루이 알튀세르, 오덕근/김정한 옮김, <이후>, 2001.
6. [검은 소 - 알튀세르의 상상 인터뷰], 루이 알튀세르, 배세진 옮김, <생각의 힘>, 2018.
7. [무엇을 할 것인가? - 그람시를 읽는 두 가지 방식], 루이 알튀세르, 배세진 옮김, <오월의 봄>, 2018.
8. [알튀세르 효과], 에티엔 발리바르/서관모 외, 진태원 엮음, <그린비>,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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