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 D. H. 콜의 산업민주주의 시민 교양 신서 8
G. D. H. 콜 지음, 장석준 옮김 / 좁쌀한알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동자를 '협업자(partner)'로 인정하라!"
- [산업민주주의](1957), G.D.H.Cole, 장석준 옮김, <좁쌀한알>, 2021.


"진정 배척돼야 할 것은 상호대등한 교류를 파괴할 정도로 큰 부의 격차, 권리와 의무의 상호 의존관계를 방해할 정도로 광범해진 지위의 차이다. '평등'의 가장 중요한 근저에 있는 것은 만인에게 개방된 교육 기회이고, 시민권의 정치적 측면 뿐만 아니라 일상의 노동 및 서비스 활동에서도 성인들의 삶에 제공되는 '협업자(partnership)'라는 만족스러운 지위다... 오늘날 정치 영역에서 우리 모두는 투표할 권리를 지닌 시민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동료 인간에 대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생산을 담당하는 (산업의) 영역에서는 왜 우리 모두가 정치 영역과 마찬가지로 시민이어서는 안되는가?"
- G.D.H.Cole, [산업민주주의], <11장. 결론>, 1957.


냉전이 격화되기 전인 1950년대 유럽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가지 고민과 실천을 했다. 정통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도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을 추종하며 국제적 연쇄혁명을 도모하는 세력, 의회 다수를 점하면서 서서히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세력. 전자는 '혁명적 좌파', 후자는 '유로 코뮤니즘'. 보통 후자는 '사회민주주의'로 불리지만 러시아공산당도 원래는 '사회민주노동당'이었다.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를 결합한 좌파의 공통이념이었다. 북유럽 복지국가로 흘러간 '사회민주주의'의 '민주주의'는 아마도 정치적 '민주주의'로서 투표를 통한 '대의민주주의'를 뜻하는 것이었으리라. 유럽의 '사회민주당'들은 그만큼 강력한 산별노조로 조직된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보통선거권을 획득한 정치적 '시민' 노동자들에 의해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면서 교육과 의료, 주거권 등의 기본권리에 있어 '보편복지'를 인류사회에 정착시켰다. 그러나 이들 '좌파' 대중정당들이 제도권에 안착하면서 좌-우 거대 정당의 '양당정치' 양상이 반복되었고, 이제는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를 새롭게 접목하려는 세력은 거의 '고유명사'화 되어버린 '사회민주주의'라 하지 않고 '민주적 사회주의'라 부른다. 지금은 '대의민주주의'의 '대리주의'적 사고를 벗어난 다수 대중의 '직접민주주의', 다수의 '직접행동'만이 사회를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 '정통 좌파'의 노동/자본 계급투쟁 전선을 확대하고 다양화, 중층화한 '신좌파' 운동은 계급투쟁 뿐만 아니라 가부장제 철폐와 양성평등, 인종차별 철폐 등의 소수자운동 및 소비자운동 등의 다양한 구호로 기존 자본주의 질서에 균열을 내기 시작하였는데, 이들 '신좌파' 학생운동의 지도이념으로 독일의 프랑크푸르트학파가 있었다면 한편으로 영국의 '길드사회주의'도 있었다고 한다.

G.D.H.콜(George Douglas Howard Cole : 1889~1959)은 영국의 사회주의자로서 '길드사회주의' 이론가이다. '길드(guild)'는 중세사회 기능인들의 조합으로 장인들의 공동체로서 동일 기술을 지닌 장인들이 뭉쳐 서로의 삶을 챙겨주는 모임인데 필요할 경우 자체 무장력으로 도시간에 정치적 영향력까지 행사할 수 있었던 일종의 '산업적 결사체'였기도 하다. 이들은 자본주의 공장제 생산방식의 확산으로 영향력을 상실했으나, 자본주의 계급철폐를 위한 정치투쟁은 별도로 하고 노동계급의 일상적 산업현장의 일상을 '공동체'적으로 함께 조직하고 운영하는 모티브로 작용하여 발전한 사상이 '길드사회주의'이다. 이는 이후 에른스트 비그포르스(Ernst Wigforss : 1881~1977) 등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좌파의 기본이념이 되기도 하는데, 산업별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이 모여서 사회민주당을 무기로 정치권력을 장악한 후 국가를 일종의 거대한 '공동체'로 운영한다는 전략이다. 이것이 스웨덴 복지자본주의를 넘어서려던 비그포르스의 '나라 살림의 계획'(노동운동 전후강령, 1944년)이며 그 이념적 토대는 영국의 '길드사회주의'였다. '길드사회주의'는 스웨덴에서 1920년대 '잠정적 유토피아', 1940년대 '나라 살림의 계획'과 1970년대 '임노동자기금' 등의 '좌파' 정책으로 나타났다.

콜의 만년이었던 1957년에 발간된 [산업민주주의](장석준 옮김)의 원제는 [The Case for Industrial Partnership]인데, 옮긴이에 의하면 '산업 동반자론' 또는 '산업 협업자론'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콜의 주장은 노동자가 "열등한 종류의 자본가나 자본주의 이윤참여자(같은책,5장)"가 되는 '동업자' 비슷한 '동반자(co-partner)'가 아닌, "해고당하기에 충분한 잘못을 스스로 저지른 경우가 아니라면 해고당할 위험이 없는 기업 내 지위(같은책,3장)"인 '협업자(partner)'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선거권과 투표권을 통해 정치적 '시민권'을 얻은 다수 노동계급은 당연히 본인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산업(경제)'의 영역에서도 민주적 '시민권'을 획득해야 한다. 콜의 '길드사회주의'는 이것을 '산업민주주의'로 줄곧 주창하고 있다.
'동반자(co-partner)'가 노동자를 자본가와 함께 기업을 이끄는 '동업자'와 같다면, 콜이 자본가에게 줄기차게 인정하라고 주장하는 '협업자(partner)'는  자본가의 일방적 기업운영을 통제할 수 있는 대등한 '지위(partnership)'을 의미한다. 그런 만큼 콜은 '이윤공유제'나 '노동이사제' 같은 제도는 반대한다(같은책,5장). 즉, 노동의 대가인 임금은 노동자가 자본주의적 이윤추구에 '동업자'처럼 동참하여 나누는 '이윤공유' 형식이 아니라, 노동자가 산별노조를 중심으로 소비와 생활이 함께 섞이는 전체 생산과정에서 기업의 생산활동을 통제하고 노사간 산업별 단체교섭을 통해 쟁취하는 것이다. '노동자 이사' 역시 "그들이 기업 이사로서 임무를 수행한다면 동시에 노동자를 대변할 수는 없다(같은책,5장)"며 "실제로 늘 소수 입장일테니 별로 할 수 있는 것도 없다(같은책,5장)"고 단언한다. 


"사회주의자로서 나는 자본주의에 반대하며, 자본주의의 모든 장치에 반대한다. 또한 나는 결코 노동자를 열등한 종류의 자본가로 전환시키길 바라지 않으며, 노동자가 외양만 조금 바뀐 자본주의 착취 체제의 수용에 얽혀들게 만들길 원치 않는다... 나는 노동자 급여를 정하는 방식은 노동조합이 모종의 사용자 기구...(중략)...와 협상하는 단체교섭이라고 생각하기에 '이윤공유제'에 반대한다."
- G.D.H.Cole, 같은책, <5장. 이윤공유제는 반대한다>, 1957.


콜은 명백히 '사회주의자'로서 자본주의에 분명히 반대한다. 그는 "민중이 모든 핵심 생산수단을 소유할 날을 고대한다(같은책,5장)." 그러나 당시로서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현실적으로 '국유화' 형태로 실현되었다. 콜은 이를 넘어 지자체나 협동조합 형식의 '사회화'도 그 특성에 따라 실시할 것을 제안하는데, 이 또한 '길드사회주의' 영향이다. 국가권력 장악을 통한 생산수단 '사회화'인 국유화는 전력(에너지)과 철도(교통), 보건(의료) 등 보편적 기간산업(공기업)에 적용하되 다른 산업(사기업)은 지역적, 산업적 특성에 따라 지자체나 협동조합 형식으로 '사회화'할 수도 있다. 사회주의 운동에서 확장된 '공통적인 것(commons)'의 '사회화'는 어떤 형식으로든 그것을 생산하고 소비하며 그로 인해 일상을 영위하는 공장과 가정 현장의 다수 민중들이 소유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현재의 '사회화'다.


"'평등'은 본질적으로 '소득격차 해소'보다는 '사회적 지위'와 더 관련된 문제다."
- G.D.H.Cole, 같은책, <1장. 서론>, 1957.


사회주의자로서 콜의 주요 개념은 역시 '평등'이다. 보통선거권으로 정치적이고 형식적인 '평등'을 쟁취한 노동계급이 산업의 현장에서 경제적이고 실질적 '평등'을 쟁취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산업민주주의론'이다. 이는 '분배'에 중점을 둔 '경제민주주의'를 넘어선다. 소득격차 해소도 중요하지만, 산업의 영역에서 자본가와 실질적으로 대등한 '협업자' 지위를 획득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렵고 더디더라도 우리 모두의 삶의 현장을 통제하고 이의를 제기하고 저항할 수 있으며 동시에 민주적 '단체교섭'을 통해 스스로가 '생활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적이고 어찌보면 낙관적인 주장이다. 

콜의 '산업민주주의론'의 가장 중요한 전제는 국가가 책임지는 '완전고용'이다. 그러나 이는 20세기 초중반 대공황 이후 당시 자본주의 국가 조차도 케인스주의를 받아들이고 '완전고용'을 수용하던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겠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 승리 후 자본주의 주류는 '완전고용' 자체를 무력화시키고 '민영화'에 열을 올리면서 '길드사회주의' 주장을 무시해 버렸으며 노동자들은 더더욱 기업의 '소모품'이 되어갔다. 노동자가 산업의 영역에서 자본가와 대등한 '협업자'가 되는 길은 더 멀어져 보였다.

그러나 21세기 초중반을 향하는 이제 다시 시대는, 노동계급 뿐만 아니라 체제에 의해 억압받는 여성, 인종, 소수자, 그리고 자연(환경/기후위기)까지 더이상은 참을 수만은 없는 때가 되었다. 이제 다수가 '공통적인 것'을 함께 소유하고 영위하는 시대에서 '포퓰리즘'의 벽을 넘는 것은 '산업민주주의'를 통한 새로운 '공동체'를 조직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사회주의자 콜은 [산업민주주의](1957)에서 '생산수단 사회화' 같은 사회주의적 주장까지 나가지 않는다. 다만 그 전제로서 "노동자를 대등한 '협업자'로 인정하라!"는 주장을 줄기차게 제기한다. 
생산과 소비, 생활의 주체로서 당당히 '공동체'를 조직하는 다수 민중의 모습, 콜의 '길드사회주의'가 변함없이 우리에게 남기고자 하는 사상적 유산이다.

탁월한 진보정치 이론가인 옮긴이 장석준 선생의 <해제>는 콜의 '길드사회주의'와 '산업민주주의론'으로부터 현재의 '민주적 사회주의' 운동의 흐름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한편의 훌륭한 논문을 읽는 듯 하다. 
콜의 원문보다 먼저 읽기를 추천한다.


***

- [G.D.H.콜의 산업민주주의 - 노동자를 협업자로 인정하라](1957), G.D.H.콜, 장석준 옮김, <좁쌀한알>, 20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