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 100년, 가치와 문화 한국 민주주의 토대연구 총서 2
김동춘 외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외 엮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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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을 위한 민주적 '공화주의'
- [한국 민주주의 100년, 가치와 문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엮음, <한울아카데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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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100년, 가치와 문화](2020)
&#39;공공성&#39;을 위한 민주적 &#39;공화주의&#39; | &#39;공공성&#39;을 위한 민주적 &#39;공화주의&#39;- [한국 민주주의 100년, 가치와 문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엮음, &lt;한울아카데미&gt;, 2020. &quot;서구에서도 &#39;민주주의&#39;는 언제나 혁명이나 직접행동의 결과로 도입되었지, 지배세력이 양보하여 순순히 민주적 제도를 도입한 적은 없다. 특히 왕을 몰아내고 공화제를 실시한 것이나 보통선거권을 확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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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에서도 '민주주의'는 언제나 혁명이나 직접행동의 결과로 도입되었지, 지배세력이 양보하여 순순히 민주적 제도를 도입한 적은 없다. 특히 왕을 몰아내고 공화제를 실시한 것이나 보통선거권을 확보한 것도 모두 봉건귀족 세력과의 유혈투쟁, 전쟁과 내전, 봉기와 집단저항의 결과였고, 그러한 투쟁에 나선 주체는 일반 대중, 노동자들이었다... 지식인들의 사상과 이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중이 어떤 의미 부여 작업을 통해 그런 가치나 구호에 공명해서 그처럼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건 봉기와 투쟁을 감행했는지 물어야 할 것이다."
- 김동춘, 같은책, <서문>.


누구나 앞에서는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시대다. 신체의 일부와도 같은 손 안의 SNS를 통해 정보독점이 갈수록 약화되고 다수 민중의 정보활용과 연대의식이 무한 확장되고 있는 지금은, 30여 년 전 '민주화' 같은 용어가 무색할 정도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누구나 '민주주의'를 옹호하지는 않는다. 거대자본과 정치권력의 편에 선 자들에게는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극소수이므로 소수에 의한 다수 지배체제는 당연한 것이고, '선민의식'을 버리지 못한 586 민주화 형님들은 본인들이 소싯적에 이미 겪은 '민주주의'만으로는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거대 기득권 양당구조로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시민들은 민주당 원외인사들이 생산하는 자극적인 뉴스들을 무기로 또 다른 파시즘을 양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이후 시대인 지금, 모든 현상은 '민주주의'로 포장된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산하 한국민주주의연구소가 1919년 3.1 운동 100주년 기념으로 2019년 발간한 연구총서 [한국 민주주의, 100년의 혁명 1919~2019]에 이어 2020년에 발간한 책이 [한국 민주주의 100년, 가치와 문화](<한울아카데미>)다. 
우리 헌법의 기초가 된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민주공화정' 불을 당긴 3.1 운동부터 1960년 4.19 혁명, 1970년 전태일 열사,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 1987년의 민주화 대투쟁, 2002년부터 현재까지의 촛불시위 등의 거대한 '민주주의' 투쟁의 역사를 기반으로, 1부에서는 '자유', '평등', '민주공화주의', '토지공개념' 등의 '가치'를, 2부에서는 '저항', '정당정치', '미투(젠더)', '학생운동' 등의 '문화'를 다룬다. 
그 이전 역사도 가끔 거론되나 조선이라는 마지막 '왕조'의 몰락 후 주로 한국 현대사 100년의 역사 속 '민주주의'의 '가치'와 '문화'가 주제다.

'민주주의'가 유래한 고대 그리스의 페리클레스가 연설에서 사용한 '자유'의 희랍어 '엘레우테리아(eleutheria)'는 '노예가 아닌 상태'나 '속박되지 않음'을 뜻한다는데 우리 조선 후기에도 비슷한 의미로 '자유'라는 용어가 등장한다지만, 계급사회에서 지배계급이 말하는 '자유'는 그들만의 '자유'였고 피지배계급에게는 노동에 구속되거나 굶어죽을 '자유'만이 허락되었다. 일제강점기 진정한 '자유'는 식민지 상태로부터의 독립과 해방이었고, 현대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 시대의 '자유'는 무한증식을 위한 '자본의 자유'에 불과하다. 사상의 '자유'를 제한하는 '자유민주주의'는 그 용어 자체가 역설이다. 즉, '자유'라는 용어는 보편화되고 '평등'해져야 한다. 이렇게 각 개인의 '자유'가 모든 사람들 '자유'의 기초가 되는 진정한 '자유'의 조건은 '평등'이다. 근대적 의미의 '평등' 이전인 조선 시대 '민본주의'는 '균(均)'이라 표현했다. 우리 역사 최초의 대학 '성균관(成均館)'은 '균(均)을 이루는 교육기관'이었으며, 조선을 건국한 정도전의 '경자유전' 원칙과 '과전법'의 토지개혁의 이념이 바로 '균(均)'이었다. 정약용도 '나라를 고르게 하는 것이 정치'라 했단다. 우리 제헌헌법에서도 단호하고 원칙적인 '평등'보다 현실적이고 정책적 개념인 '균등'을 선호했는데, 정치-경제-교육의 '균등' 강령인 조소앙의 '삼균주의' 영향일 수도 있고 '반공'의 이념적 영향도 있다. 그럼에도 조선 후기 농민봉기와 동학농민전쟁 및 동학의 기치는 단호한 '평등'이었음을 잊지 말 것이며, 현재는 과정과 절차를 우선하는 '공정성'과 결과로서의 '평등'의 연대를 지향해야 한다.

스스로 물러나는 기득권이나 적폐세력은 없다. 일제에 의해 패망하기까지 조선왕조는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와 일본을 끌어들였다. 외세의 군대로 내국민들을 죽이고 짓밟는 것을 서슴치 않은 결과 외세에 의해 국권 자체를 상실했다. 제국주의 열강들 경쟁에서 이긴 일제가 아니었더라도 다수 조선민중의 힘으로 무너졌을 조선이었겠지만, 왕조가 실제로 무너진 1907~1910년 이전 우리 역사 최초의 시민단체였던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헌의6조' 같은 '민주주의'는 '입헌군주제'를 벗어나지 못했다. 

'민주공화국'은 왕조도 몰락하고 식민지 근대화가 폭력적으로 이식되던 1919년 3.1 운동 이후에야 상상 가능한 정치체제였다.




"임시정부가 내건 '민주공화국'이라는 비전과 구호는... '민주공화국과 관련하여 최초로 개념의 민주화가 시작'된 것이었다... '민주'라는 수식어를 결합한 용어 '민주공화'를 '임시헌장'에 삽입한 기초자들의 독창성, 그리고 그것이 이후의 역사에서 한 단어로 확고하게 굳어진 용어의 확정력은 '공화'의 개념사에서 적극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민주공화주의'가 애국지사들이 일본의 강점에 대항하기 위해 서구사상을 수용하여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정치철학 이념인 것은 확실하다."
- 정상호, 같은책, <3장. 헌법 제1조의 기원과 변화로 본 '민주공화국'으로서 대한민국>.


3.1 운동과 같은 동시대적 20세기 초 전세계 대중운동은 우연이 아니다. 유럽은 19세기 중반부터 다수의 노동계급에 의한 산업별 노동조합 투쟁과 정치세력화로 사회민주당 같은 진보정당이 보통선거권을 쟁취하기 시작했고 소비에트 노동자 정권도 등장했던 역동의 시기라 다수대중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시대정신이었다. 한반도는 해방 후 불행하게 남북 분단정권의 등장으로 남한 단독정부의 제헌헌법은 '반공'의 한계를 넘지 못했고 이 헌법이 담은 '민주공화정' 또한 그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초기 제창자 유진오의 해석에 따르면 삼권분립, 의회, 정당, 선거 등의 '절차적' 민주주의에 그친다. 자본주의 체제 모순을 '창조적 기업가정신'으로 극복하자는 조지프 슘페터 같은 학자의 '최소주의'적 '민주주의'와 같은 제헌헌법의 반공주의적 '민주공화국'은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시기 국고보조금 나눠먹기로 살아남은 제도권 거대정당들의 장기독재 획책을 저지한 다수대중의 저항과 투쟁을 통해 더욱 대중화되었고 21세기 '촛불투쟁'으로 등장한 대중민주주의 투쟁으로 '실질적' 민주주의의 길에 접어든다.

고대 로마 시대 '전제군주'의 명목상 임무는 '공화정'을 지키는 것이었다. '공화정'이 '군주정'과 대립된 정치체제가 된 것은 근대에 이르러서였다. '공화정'은 서양의 'republic', 즉 '공공성'의 어떤 표현이었고, 근대 이후 동양에 유입되면서 중국 주나라에서 폭군을 쫓아낸 재상정치체제로서 '공화'로 번역된 것인데, 권위있는 해석의 우리 문헌은 없지만 우리 독립운동사와 민주주의 역사는 '민주주의'와 '공화정'을 어울린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치철학을 남북한 헌법 1조에 공히 선언하고 있다. 

- 남한 헌법 제1조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 북한 헌법 제1조 :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전체 조선인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주적인 사회주의 국가이다.

물론, 두 체제 모두 헌법 1조만큼 실질적 '민주주의' 공화국인지는 별론으로 하고, 남한인 대한민국은 다수 대중의 참여민주주의 확산을 통해 '실질적' 민주공화국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것이 최근 30여 년간의 실증적 역사다.

이탈리아의 헌법은 '노동에 기초를 두는 민주공화국'을, 대혁명의 국가 프랑스 헌법은 '민주적, 사회적 공화국'을 국체로 선언하지만 우리 '임시헌장'의 '민주공화국'보다 시기상 늦다. 그 용어 자체로 '사회성'과 '공공성'을 담보하는 '공화주의'는 지금 시대 참여민주주의를 통해 더욱 실질적으로 확대되고 공고화되어 대한민국은 더욱 민주적이고 사회적이며 공공성을 우선하는 '공화국'이 되어간다.




"조소앙의 (지공주의) 토지개혁론에서 중요한 것은 국유화 그 자체보다는 '평균지권'의 실현이었다. 국유화 후 토지분배는 (삼균주의) 조소앙이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고안한 방책이었다... 조선 시대 과전법도, 조소앙의 토지개혁론도 토지를 농민에게 한 번 나눠주고 끝내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골고루 나눠준 토지가 다시 소수의 수중에 흘러 들어가 불평등하게 소유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국전의 원칙이었다."
- 전강수, 같은책, <4장. 한국의 토지소유 이데올로기는 어떻게 변천해 왔을까?>.


책의 1부는 '민주공화국'의 주요 가치로서 '소유권'의 '공공성' 주제를 다루는데, 역사적으로 '공공소유'의 대상이었던 '토지', 즉 '토지공개념'의 주제를 다룬다. 고려시대 전시과와 조선의 과전법은 '국전'의 형태였다. 소유권은 국가였고 조세 수취권을 부여하거나 토지생산물을 농민이 소유하도록 하는 제도로 '평등지권'을 실현하는 정책이었다. 고려 말 권문세족이나 조선 후기 신분제의 망조는 대토지소유로 드러났고 조선이나 '민주공화국'의 새로운 세상의 시작은 '토지개혁'으로부터 출발했다. 토지공개념은 단순한 '국유화'가 아니라 토지의 사적 소유와 투기의 이념인 '지주(地主)주의'를 토지의 공공소유 이념으로서의 '지공(地公)주의'로 대체하면서 '평등지권'을 지향하며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지공주의'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군사독재정부는 국민들의 소유욕을 부추기는 '지주주의'를 강화하여 이 나라를 '부동산공화국'으로 만들어왔는데, 1987년 '민주화' 이후 다수 민중의 '사회공공성' 열망으로 노태우 정권은 토지공개념 정책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으나 '세계화'와 'IMF' 체제 이후 '지공주의'가 약화되어 왔다.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보유세 강화의 장기적 계획 정책화를 시도했으나 '지주주의' 기득권 세력에게 패배했으며 이후 보수정권은 부동산과 토지를 아예 투기대상으로 굳혔다. 문재인 정부도 '지공주의'를 정책화하는데 실패하고 있는데, 여전히 "권력이 시장에게 넘어갔다"는 이유를 대고 있는지 모르겠다.


민주주의적 소유권은 '지공주의' 소유권처럼 '평등(평균)지권'이 본질이다. 실질적으로 노동하고 만들며 전유하는 다수가 그 생산물을 소유하고 처분한다는 '공공소유'가 그 내용이 된다. 

민주적이고 사회적인 '공화주의'의 본질은 '공공성(公共性)'이다.


***

- [한국 민주주의 100년, 가치와 문화], 김동춘 외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엮음, <한울아카데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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