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 - 삶의 역풍도 나를 돕게 만드는 고전의 지혜
이상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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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경전, [주역]은 '변증법'이자 '유물론'이다
- [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 이상수, <웅진지식하우스>, 2014.


"... [주역]을 만든 사람들의 점에 대한 생각... 이들은 인간의 길흉을 결정하는 것은 점괘가 아니라 인간의 생각과 행동, '덕'과 '지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른 덕을 지니고, 바른 실천을 하고, '변화'에 바르게 대응하는 경우, 점을 쳐볼 필요도 없이 길하고 유리할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왕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자기 '운명'에 관심을 가진다는 전제 아래 [주역]을 만들었다...
...
나도 [주역]을 만든 사람들과 똑같은 주장을 하고 싶다. 정말 점을 치고 싶다면 주역점을 쳐라. 그것도 누구에게 의뢰하지 말고 스스로 쳐라. [주역] 번역서만 한 권 있으면 해결된다. 그것이 왕처럼 점을 치는 유일한 방법이다."
- [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 '19~20장', 이상수, <웅진지식하우스>, 2014.


[주역(周易)]은 '점(占)'을 치는 책이 아니다. 유학의 '4서 5경' 중 하나인 [역경(易經)]이다. 흔히 '점'으로 길흉을 본다 하여 '음양오행설'이나 도교적 시각으로 볼 수도 있으나 [주역] 또는 [역경]은 엄연한 유학의 '철학' 경전이며 상고시대부터 세상의 이치를 밝히고 설명하기 위한 집단지성 '과학서'다. 학문 분야로서 '과학'이 없었던 그 시대는 '과학'이 '철학'이요, '철학'이 즉 '과학'이었다.


[주역]은 '인류 문화의 시조'라는 중국의 복희씨가 '8괘'로써 만물의 이치를 정리했고 이 '8괘'들을 겹쳐 '8X8=64괘'로 확장했으며, 주나라 문왕이 은나라 주왕에 의해 핍박받고 격리되었을 때 '괘사', 즉 각 괘에 관한 해설을 지었다고 한다. 주문왕의 아들이자 주무왕을 도운 주공 단이 각 괘를 이루는 '효사'를 지었다고 하여 이를 [역경]이라 이르고 이후 공자가 이에 대한 10개의 '역전(易傳)'이라는 '10익'을 써서 이 모두를 [주역]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미래에 대한 길흉 예측의 '과학'이 그만큼 오래되었다는 의미일 터, 고대시대 국가의 앞날과 전쟁의 승패들을 점쳤던 기록들이 무수하게 축적된 데이터들이 발굴되면서 당시 수천년 '예측 과학'의 빅데이터 집적물 중 하나가 [주역]이었을 수도 있다고 한다. 거북이 등딱지를 태우는 '복점(卜占)'과 '시초(蓍草)'라는 풀의 줄기를 나누어 치는 '시초점' 두 가지 중 '복점'은 등딱지를 남겼고 '시초점'은 [주역]의 거대한 기록을 남겼다.
이후 3세기 중국의 위진남북조 시대 왕필(王弼)이 유가와 도가를 종합하고 지양하여 종합적 [주역주(註)]를 23세에 지었다 하는데 현재 널리 알려진 [주역]의 형태라고 한다.


"[주역]을 만든 사람들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간이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상황은 인간이 대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일과 닮았다고 보았다... 
...
그래서 [주역]은 자연물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주역]에는 하늘, 땅, 우레, 바람, 물, 불, 산, 연못 등 여덟 가지 자연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왜 하필 여덟 가지만 나오는 것일까?
고대 인도의 브라만교나 불교에서는 우주 만물이 '지수화풍', 곧 땅, 물, 불, 바람 등의 '네 가지 큰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또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엠페도클레스는 만물이 물, 공기, 불, 흙의 '네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고대인들의 공통된 사고방식이다. [주역]을 만든 사람들도 공기(하늘), 흙(땅), 물, 불의 '네 가지'가 만물을 구성한다고 생각한 점에서 다르지 않다. [주역] 지은이들은 이 '네 가지 원소'에도 각각 그늘과 볕의 성질을 부여했다."
- 같은책, '3장', 이상수.


고대인들이 보기에 세계를 이루는 '4원소'는 '공기(하늘)', '흙(땅)', '물', '불'이었는데, 동양에서는 [주역]의 '4괘'인 '건(하늘)', '곤(땅)', '감(물)', '리(불)'가 그것이다. 이것이 '태(연못)', '진(우레)', '손(바람)', '간(산)' 등으로 분화된 것이 '8괘'다. '괘(卦)'는 '음양(陰陽)'을 나타내는 막대기인 '효(爻)가 3개 겹친 형태다. 가장 작은 단위인 '효'는 '볕(양)'은 홀수이며 '-'로, '그늘(음)'은 짝수이며 '--'로 표현한다. 이 '효'가 아래로부터 1,2,3효로 세 개 겹친 각 형태에 따라 '건(乾)-태(兌)-리(離)-진(震)-손(巽)-감(坎)-간(艮)-곤(坤)'의 '8괘'로 교차하고, 각 '괘'가 교차한 조합들이 '8X8=64괘'가 된다. 
[주역]의 번역서들은 '양효'인 '-'가 여섯 개 겹친, 즉 '건괘' 두 개로 이루어진 '중천건괘'로부터 '음효'인 '--'가 여섯 개, 즉 '곤괘' 두 개로 구성된 '중지곤괘'로 이어지며 예순네 가지 변형를 거치는데, 생성하고 모이고, 변하다가 막히기도 하며, 나아가다 물러나는 각 '괘'들을 통해 세상사의 큰 궤적을 그리고 있다. 마치 헤겔의 '이성'이 '부정'의 과정을 거쳐 '절대이성'에 이르는 [정신현상학]의 '변증법'적 여정과 닮았으되 [주역]은 완성되지 않는다. 63괘인 '기제괘'는 '불(리)' 위에 '물(감)'이 있는 '수화기제'로 아래로 내려오는 물이 위로 올라가는 불을 끄는 완벽한 형태로 모든 일의 완성이다. 그러나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마지막 64괘는 '미제괘'다. '물(감)' 위에 '불(리)'을 얹은 '화수미제'는 마지막까지 왔으나 다 건너지 못한 상태로 불완전하게 마무리되고 있다. 
동양적 사고방식으로 끝없는 순환을 암시한다.

'변화(變化)'의 경전, [주역]은 만물의 운동과 대립물의 투쟁, 상호침투와 양질전화 모두를 아우르며 세계를 묘사하고 해석하는 '변증법(辨證法)'의 경전이기도 하다.
'볕(양)'과 '그늘(음)'을 나타내는 '-'과 '--'도 그 자체 '불변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젊은 볕'은 숫자 '7'로 시간의 양이 쌓이면 숫자 '9'인 '늙은 볕'이 되고 또 시간의 양이 더 쌓이면 이 '양'은 '음'으로 전환된다. 짝수인 '8'로 나타나는 '젊은 그늘'로의 질적전환 후 또다시 '늙은 그늘'인 숫자 '6'이 된다. '볕(-)'이라고 다 같은 '불변효'가 아니라, '그늘(--)'로 양질전화하는 '변효'도 공존하며 그 역도 마찬가지다.


"[주역]은 '변화'의 경전이다. '변화'를 어떻게 예측할 것인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예측은 반드시 조짐을 실마리로 삼는다. 오늘날 현대 과학의 어떤 예측도 결국은 조짐의 분석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일기예보나 지진예측도 대기의 흐름이나 특정 자연현상을 조짐으로 삼아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 조짐을 보는 눈은 혜안이다. 조짐을 보고 판단해낼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조짐을 보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눈을 감고 캄캄한 미래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같다."
- 같은책, '15장', 이상수.


서자 홍길동은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아버지 홍판서로부터 감금된 후 흉계에 의해 자객이 찾아오는 위급한 때 책상을 물리고는 '주역점'을 친다. 물론 자객을 죽인 것은 그의 도술이었으되, 홍길동은 격리된 어려움 속에서 [주역]을 연구했고 그 점괘의 결과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나 '의적' 또는 '반란의 무리'의 우두머리로서 인생의 '질적전환'을 도모한다.
주 문왕(周 文王) 서백 창(西伯 昌)은 격리된 곤란함 속에서 '64괘'를 연구하여 '괘사'를 지었고, 다산 정약용도 긴 유배시절 독창적으로 [주역] 연구서를 썼다.

그러나 '도적질' 같은 소인배의 길을 [주역]을 통해 예측할 수는 없다. '주역점'은 반드시 '군자'의 '도'와 '인의'의 '덕'을 중심으로 쳐봐야 하며 남에게 의탁하지 않고 스스로, 주체적으로 '왕'처럼 쳐야 한다. 꼭 '왕'이 되라는 게 아니라 그만큼 '주체성'이 [주역]의 중심이라는 의미다.


'주역점'은 "떳떳함이 있는 크나큰 시초를 빌립니다(가이태서유상:假爾泰筮有常)"하고 두 번 외친 후 점칠 내용을 명확한 명제로 읊고는 '시초(筮:서)'라는 풀줄기로 친다고 하는데,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시초든 성냥개비든 이쑤시개든 신성한 가지 55개(1에서 10까지 더한 수) 준비한다.

2. 6개(음양 분화전 태초의 태극)를 빼고 49개를 두손에 임의로 나눠 쥔다.

3. 각 손에 든 갯수에서 '4'의 배수로 남기는데  예를 들어 한 손에 22개면 2개를 덜고 20개를 남긴다.

4. 다시 합친 숫자를 다시 양 손에 나눠 쥔 후, 이 방식을 총 세 번 반복한다.

5. 최종 남은 수를 '4'로 나눈다. 아마도 숫자 '4'는 '건곤감리'의 '4원소'일 것이다.

6. '6', '7', '8', '9' 중 한 숫자만큼 남는데, '7'은 '젊은 볕', '9'는 '늙은 볕', '8'은 '젊은 그늘', '6'은 '늙은 그늘'에 각각 해당된다.

7. 위와 같은 방식으로 하나의 '효'를 얻는데, '젊은 효'는 '불변효'로 변하지 않는 '효'이며 '늙은 효'는 '변효'로서 '양'에서 '음'으로, '음'에서 '양'으로 전환될 운명이다.

8. 위의 방식을 여섯 번 반복하면 64괘 중 하나의 괘가 나오는데 이를 [주역] 번역서에서 찾아보고 앞날을 예측한다.

9. '변효'로 인해 64괘 중 얻은 결과가 다른 괘로 전환되는 내용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다.


[주역]은 '길흉'을 치는 점이 아니다. 
긍정의 괘가 나오더라도 그 안에 배태된 부정의 기미를 예측해야 하며 부정의 영향은 최대한 제거하도록 주의해야 한다. 
한없이 씩씩하고 당당한 '중천건괘'로 시작했지만 온갖 부침을 겪으며 결국 '화수미제'의 미완성으로 마무리되는 [주역]에는 완전한 '긍정'도 완전한 '부정'도 없다.
모든 만물은 운동하고 대립하며 서로 부정의 부정을 거듭하며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물러서기도 하는 '변증법' 자체다. 
한편으로 '운명'은 스스로 개척할 수 있으되, 자연만물의 이치로서 '숙명'에는 순응할 줄 아는 '유물론'이기도 하다.
조선을 건국한 고려말 '혁명가' 정도전의 '급진적 성리학'에서 보이는 '유물론'의 단초가 바로 [주역]이었으며, 그의 '혁명동지' 권근 또한 조선 건국 후 [주역] 연구서를 집필했다.
[주역]은 당시 '혁명가'들의 '자연변증법'이었다.


"[주역]을 지은 이들은 인간의 길흉을 결정하는 것은 점괘가 아니라 인간의 생각과 행동, '덕'과 '지혜'라고 생각했다. 바른 덕을 지니고, 바른 실천을 하고, 변화에 바르게 대응하는 경우에는 점을 쳐볼 필요도 없이 길하고 유리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왕과 같은 수준의 '책임의식'과 '주체성'을 가지고 점을 쳐야 한다고 했다. 주역점만이 아니다. 운명을 대하는 태도가 왕과 같지 않다면 우리가 어떻게 운명을 이겨낼 수가 있겠는가."
- 같은책, '20장', 이상수.


[주역]은 '변화'의 경전이며, '유물론'에 기초한 '변증법'의 경전이다.
우리가 '덕(德)'과 '지혜(智慧)', '책임의식(責任意識)'과 '주체성(主體性)'을 가지고 [주역]을 읽는다면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갈 수 있다.

[주역]을 읽는 우리 모두가 '왕'이고 '홍길동'이다.


***

1. [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 이상수, <웅진지식하우스>, 2014.
: 21세기초 [오랑캐로 사는 즐거움]을 쓴 전 한겨레신문 기자 이상수는 뛰어난 [주역] 전공자다.

2. [주역 - 왕필 주](3세기), 왕필, 임채우 옮김, <길>, 1998~2013.
: 64괘에 관한 왕필의 주석

3. [주역 - 64괘 384효의 본질], 신창호, <역사인>, 2019.
: 명나라 학자 호광의 [주역전의대전]이 저본

4. [인생의 공식 64], 장경, <청림출판>, 2019.
: 전공자는 아니지만 작가의 [주역] 해설 내공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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