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역사 - 책과 독서, 인류의 끝없는 갈망과 독서 편력의 서사시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Scripta manet, verba volat (스크립타 마네트, 베르바 볼라트)
- '독서의 역사'와 '서술의 역사'의 역사


"... 책을 숭배하는 정신이야말로 문명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신조 중의 하나이다... 인민통치 집단이든 전체주의 통치 집단이든 국민 모두가 어리석은 존재로 남을 것을, 그리고 국민들이 자신들의 퇴행을 순순히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알맹이와 가치가 없는 것들을 소비하도록 부추긴다. 그런 상황에서 독서가들은 오로지 '체제전복'을 기도하는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
- [독서의 역사], <마지막 페이지>, 알베르토 망구엘, 정명진 옮김, <세종>, 2000.


'읽기(reading)'가 먼저인가, '쓰기(writing)'가 먼저인가.
읽을 것을 쓴 게 이미 있으니 '쓰기'가 앞섰던가, 이미 읽은 걸 서사로 풀어서 쓴 것이니 '읽기'가 앞섰던가.
'닭이 먼저인가, 계란이 먼저인가' 같은 무의미한 질문이겠으나 '읽기'와 '쓰기'의 '역사'를 보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인 알베르토 망구엘은 '우리 시대의 몽테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책들을 읽고 그 의미들을 회의하고 사색한 내공으로 [독서의 역사](1996)를 썼다. 그가 돌아보는 '독서', 즉 '읽기(reading)'의 역사는 '정치사'나 '비평사' 등의 연대기적 순서에 따르지는 않는다. 그가 말하는 '독서 행위(읽기)' 또는 독서의 역사'는 그 자체의 역사라기 보다는 '독서가'들의 역사이며, 그 역사는 보편적이거나 일반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독서가들 각자의 역사"(같은책, <마지막 페이지>)다. 따라서 생물의 진화나 자연과학의 진화 등 '과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연성'으로 점철된다. 모든 과학의 시작은 '우연'이었을지 모르나 그 진화과정은 '필연'의 논리가 있는데 비해, '독서가'들의 역사는 20세기 오스트리아 미술사가 에른스트 곰브리치가 말한 '미술이 아닌 미술가들의 역사'처럼 '과학적'이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모든 것의 '우연적 역사'가 사회경제 체제의 '필연적 역사'를 토대로 전개됨을 상기한다면 수긍할 만 하다.

기원전 10세기경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의 그림문자나 그 얼마 후 페니키아에서 알파벳 문자 또는 숫자 등의 기록이 등장한 동기는 '문명의 유지'와 '전승'이었을 것인데, 그 이후로도 오랜 시기 동안 '문자 문명'은 소수 지배계급의 특권에 불과했다. 극소수를 제외한 다수 피지배자들은 19세기까지도 '읽기'가 허용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수의 '읽기'는 그 다양한 해석과 창의력, 상상력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민주주의'를 동반하기 때문이었다.

19세기 쿠바의 담배공장에서 노동자들에게 책을 읽어주던 '독사(讀師)'는 글을 모르거나 읽을 시간이 없던 노동자들이 십시일반 모여 읽을 책을 선정하고 노동 중에 라디오처럼 글을 들려주었는데, 같은 세기 대서양 건너 영국의 공장에서 노동자들의 '단결금지법'처럼 법으로 금지되었다고 한다. 역시, 지배자에게 민중의 '독서'는 '체제전복'적이고 두려운 것이다.그래서 대부분의 '독서회'가 '탄압'받는 것인가.


"... 문장 하나만 읽을 줄 알게 되면 누구든지 금방 모든 문장을 알 수 있게 된다. 더욱 중요한 점은 독서가는 그 문장을 반추하고 그 문장에 따라서 행동하고 그 문장에 의미를 부여할 능력을 지닌다는 것이다... 인류가 창조한 다른 어떤 물건들과 달리 '책'은 독재에 맹독으로 작용해 왔다. 절대권력은 모든 독서를 공식적인 독서로 제한할 필요성을 느낀다. 다양한 의견이 담긴 도서관 대신 독재자의 말만으로 충분해야 했다."
- [독서의 역사], <금지된 책읽기>, 알베르토 망구엘.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가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건립하고 후속 왕조인 프톨레마이오스가 그 도시에 최초의 대형 도서관을 지을 때 수많은 두루마리들은 지배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인류 지식의 다양성를 담보했을 수도 있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신들은 '지식'을 의미하는 두루마리나 서판 등을 들고 있지 않았는데, '문자'를 통한 지식의 중요성이 크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기독교나 이슬람은 각각 '성경'과 '코란'이라는 '문자'를 매개로 '유일신'의 의지를 민중에게 전달했기에 성모 마리아가 대천사로부터 '수태고지'를 받을 때도 한 손에 '책'을 들고 있었고, '왕이 된 예수'였던 '예언자 무함마드'는 한 손에 칼과 다른 손에 '책'을 들었으며, '유일신'의 '사자' 또는 대리인들은 '책'과 '문자'를 중심으로 '이단'을 갈라냈다. 다수를 지배하는 중세의 교리는 '문자'라기 보다는 상징적 '아이콘'으로 가득한 '그림'이었지만, 항상 다수의 역사를 스스로 써온 인류는 이 '그림'을 '문자'로 전환시키고 이 '상징'들 또한 다수와 공유하며 언제 어디서든 '체제전복'을 기도한다.
다수 민중들의 '읽기'와 '독서'는 늘 그 자체로 '체제전복'적이다.


"코덱스의 편리함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서기 400년 경이 되자, 고전적인 형태의 두루마리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대부분의 책들은 사각형으로 여러 장 모은 형태로 제작되었다... (15세기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의 위대한 장점... 제작 속도, 텍스트의 동일성, 그리고 상대적으로 값이 싸다는 이점... 16세기는 인쇄의 시대일 뿐만 아니라 (또한) 육필 입문서의 시대이기도 했다."
- [독서의 역사], <책의 형태>, 알베르토 망구엘.


서기 4백년대에는 소장하고 읽기 불편했던 두루마리 형태에서 양피지를 접어 지금의 책 형태로 만든 '코덱스'가 발명되었고, '문자'와 '지식'은 비단 외우는 것만이 아니라 소지하고 다니며 그 권위를 인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14세기에는 '안경'도 발명되었고, 드디어 15세기에는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술이 [성경]의 대량생산과 대중화에 혁혁한 공을 세운다. 15세기 인쇄술의 대중화는 육필 필사본의 화려한 장식적 필체 또한 대중화했기에 16세기에는 인쇄술의 발전이 육필 필사의 기술도 함께 발전시키게 된다. 전자산업 발달에도 불구하고 '종이책' 고유의 양식과 질감, 냄새는 늘 인류와 함께 하는 것처럼. 망구엘이 고백한 것처럼 사실 내게도 '독서'란 '문자'나 '지식'을 얻는 행위를 넘어 '책'이란 '사물'에 대한 일종의 '집착'이기도 하다. 스무살 때는 '멋있게 보이려고' 들고 다닐 때가 더 많았다.
어쨌든, 다수 대중'의 독서는 그 머릿수 만큼이나 다양한 해석과 상상력을 쏟아 놓기에 정치권력의 독점적 권위는 자연스레 균열이 난다. '민주주의'의 문명적 토대가 싹을 틔운다.


"스크립타 마네트, 베르바 볼라트
(Scripta manet, verba volat)"


중세 시대만 해도 '독서'는 눈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입으로 소리내어 암송을 동시에 해야 했다.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수라 '신의 말씀'을 함께 읽고 들어야 했기 때문인데, '문자'를 다수가 공유한 이후로 독서가들은 자신의 침대에서 조용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글로 쓰여진 것은 영원히 남고, 말로 표현된 것은 공기 속으로 사라진다(Scripta manet, verba volta)"는 라틴어 문구는 원래, 중세 암송 시대에는 "글은 조용히 죽은 것이고, 말은 생생히 날아오른다"는 의미였지만, 근대 이후 묵독 시대에는 "글은 영원히 남고, 말은 공허히 날아간다"는 뜻이 되어 '지식'을 공유함에 '문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장이 되었다.
망구엘에 의하면, 책은 "간단한 도구의 상징적 의미보다 훨씬 복잡한 상징적 의미를 독서가에게 부여"(같은책, <상징적인 독서가>)함으로써, "무지, 맹신, 지성, 기만, 교활함, 그리고 계몽을 통해 책읽는 사람은 원전과 똑같은 단어로 그 텍스트를 다시 쓰면서도 원본과는 다른 이름으로... 재창조"(같은책, <책읽기와 미래예언>)한다.

인류의 모든 문명은 문자로 남고 독서가들은 다양한 상상력으로 그 문명을 발전시키기도 하고 퇴행시키기도 한다. 
아마도 발전의 사례가 대부분일 것인 반면, 진시황의 '분서갱유'나 기독교와 이슬람 또는 독재정권의 '금서목록', 파시즘이나 나치즘 등과 같은 전체주의자들의 반복된 '분서' 선동은 퇴행의 대표적 사례다.


"... BC 3천년대 말 즈음 인간 사이의 의사전달의 본질을 영원히 바꿔놓을 기술이 개발되었다. 바로 글을 쓰는 기술이다... 작가가 텍스트에서 손을 뗄 때에만 그 텍스트는 텍스트로서 존재의 영역에 들어오게 된다. 이 시점에서 텍스트는 한 사람의 독서가가 읽어줄 때까지 조용한 존재로 남는다... 이렇듯 모든 기록은 독서가의 아량에 크게 의존한다... 바로 시작 단계에서부터 '읽기'는 '쓰기'를 신격화해 주는 것이었다."
- [독서의 역사], <최초의 시작은 진흙조각에서>, 알베르토 망구엘.


19~20세기 독일 비평가 쿠르티우스는 "세상과 자연이 책이라는 생각은 카톨릭 교회의 수사학에서 비롯되어 신비주의 철학자들로 이어졌다가 마침내 보편적인 것이 되었다"(같은책, <책읽기의 은유>)고 했는데, 인류의 지식과 문명이 '문자'의 매개체인 '책'이라는 실물 뿐만 아니라 '문자' 이전부터의 '세상'과 '자연'이라는 '거대한 책'으로부터 추출된다는 것이지만 기원전 3천년경이 되면 인류는 '쓰기(writing)'를 통해 한단계 더 발전하게 된다. '문자'를 통한 '지식'의 독점의 기원은 바로 '쓰기'였으며, 이러한 저술에 대한 다양한 독해를 가능케 한 '서사의 힘'이었다.


"나는 역사를 역사답게 하는 것이 '서사의 힘' 또는 '이야기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역사는) 변하지 않는 인간의 욕망과 본성, 예측할 수 없는 우연, 사회제도와 자연환경이 뒤엉켜 빚어낸 과거의 사건들 가운데 당대의 역사가들이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을 언어로 엮어낸 서사다. 역사의 역사가 드러내 보이는, '발전'이라고 하는 몇 가지 역사서술 환경과 내용과 관점과 방법의 변화는 힘있는 서사로 구현할 때만 독자의 생각과 감정을 움직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역사의 역사에 남은 역사서들을 만나본 소감이다."
- [역사의 역사], <에필로그 - 서사의 힘>, 유시민, <돌베개>, 2018.


망구엘은 '독서'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역사를 쓰지 않았다. 본인의 독서 이력으로부터 유추되는 창의적이고 다양한 '독서가'들의 개별적인 역사를 서술하는데 그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독서가'들의 역사가 워낙 다양하므로 그 역시 본인이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들을 언어로 엮어낸 서사'로서의 저술인 것이다.


우리나라 '지식소매상'을 자처하는 유시민은 최근의 저서 [역사의 역사](2018)에서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 '역사가의 시조' 헤로도투스로부터 [사기]의 사마천, 14세기 이슬람 '문명사학자' 이븐 할둔, 유물사관의 칼 마르크스를 비롯하여 우리의 박은식과 신채호, 백남운 선생, [역사란 무엇인가]의 에드워드 카와 최근 '빅히스토리' 역사가 제레드 다이아몬드와 유발 하라리 등의 '역사서술(writing history)'의 역사를 일별한다. 즉, '역사'란 19세기 독일의 반동적 군주제 역사가인 레오폴트 랑케의 건조한 문헌적 역사가 추구한 '사실 그대로'의 서술이 불가능하며, 각 '역사가' 개인들의 시대적 한계와 나름의 '철학'적 관점, 정치적 성향에 따라 '취사선택'되어 기록되고 기억되는 것이므로 '역사서술의 역사'인 '히스토리오그라피(historiography)' 또는 '사학사(史學史)'를 주제로 하되 본인의 '쓰기'는 학술적인 것이 아니기에 '역사 르포르타주(르포)'라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읽기(reading)'와 '쓰기(writing)'의 역사적 관계는 인류 지식과 문명의 역사 자체로서 일목요연한 정리가 불가한 방대한 영역일 것이다. 망구엘이 '독서'의 역사가 아닌 '독서가'의 역사를, 유시민이 '서술'의 역사가 아닌 '역사서술'의 역사를 주제로 삼은 이유다. 

'역사'를 소수의 지배자가 독점하던 시대는 다수 피지배 민중들이 문자를 공유하고 독서를 통해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함으로써 오래전에 물러갔다. 그러나 인류의 '지식'과 '문자'를 다양화하고 보편화하려는 '민주주의'적 시도가 주춤하는 시점에서, 하나의 정치세력 진영을 숭배하고 추종하는 현상에서 '역사서술'의 독점과 전체주의적 폭력은 여전히 기생한다.

그리하여, 무엇이 우선인가는 중요하지 않을 지라도, 소수 '역사가'들의 '쓰기'에 의해 취사선택된 텍스트들은 다수 '독서가'들의 다양하고 창의적인 '읽기'에 의해 통제되고 재창조되어야 한다. 모든 '텍스트(text)'들은 이미 창작되고 나면 '작가'의 손을 떠나는 독립적 '생물체'가 되며, '정치'가 그러하듯 이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는 수많은 '독서가'들의 손에 의해 더욱 풍부해진다.
이것이 우리 '사피엔스' 문명의 역사 속 '민주주의'의 역사이며, 그것이 '역사서술'과 그 '독서의 역사'에서 유일한 '철학'적 방향이다.

이렇게 또한 "글은 영원히 남는(Scripta manet)" 것이다.


"헤로도토스에게 역사서술은 돈이 되는 사업이었고(낭독회), 사마천에게는 실존적 인간의 존재증명이었으며("하늘의 도는 무엇인가!"), 할둔에게는 학문연구였다. 마르크스에게는 혁명적 무기를 제작하는 활동이었고, 박은식과 신채호에게는 민족의 광복을 위한 투쟁이었다. 사피엔스의 뇌는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지만 뇌에 자리잡는 철학적 자아는 사회적 환경을 반영한다. 그들은 각자 다른 시대에 살면서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이야기를 남겼다. 그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즐거움과 깨달음을 얻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의 철학적 자아와 공명하기 때문이다."
- [역사의 역사], <제6장 - 민족주의 역사학의 고단한 역정, 박은식/신채호/백남운>, 유시민.


***

1. [독서의 역사(A History of Reading)](1996), 알베르토 망구엘, 정명진 옮김, <세종>, 2000.
2. [역사의 역사(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돌베개>, 20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