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츠키 : 테러리즘과 공산주의 레볼루션 시리즈 5
레온 트로츠키 지음, 슬라보예 지젝 서문, 노승영 옮김 / 프레시안북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하여
[프롤레타리아 독재/테러리즘과 공산주의:혁명의 자연사에 관한 고찰](1918), 칼 카우츠키 지음, 강신준 옮김, <한길사>, 2006.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 사이에는 하나의 사회가 다른 사회로 전환하는 '혁명적 이행시기'가 있다. 이 시기는 정치적 이행기에 해당하며 그 국가형태는 다름 아닌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독재'일 수밖에 없다."
- 칼 마르크스, [고타강령 비판], 1875.

독일 사회민주당은 1875년 고타에서 페르디난트 라살레의 '독일노동자총연맹'과 빌헬름 리프크네히트와 아우구스트 베벨의 '사회민주노동당'이 합당하면서 탄생한다.
비스마르크식 강력한 보수주의 국가와의 결탁을 통해 사회주의를 달성하려는 '라살레주의'와 '계급지배의 도구'인 국가권력과 대결하는 '마르크스-엥겔스주의'가 결합하는 순간,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포기한 [고타강령]을 맹렬하게 비판한다.
[고타강령 비판](1875)은 '공산주의'로 가는 '정치적 이행기'로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전면 제기한다. 그러나, 마르크스 조차도 당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현실적으로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었기에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다만, 1871년 '파리 코뮌'이 바로 그 현실태라고 규정했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다름 아닌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 선 프롤레타리아의 지배'라고 이해할 수 있다."
- 칼 카우츠키, [프롤레타리아 독재], 1918.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에 대하여 정면으로 비판한 카우츠키의 1918년 저작이다. 제헌의회 소집과 보통선거권을 거부하고 착취자와 피착취자의 계급관계를 토대로 한 '계급민주주의'에 기반하여 중앙집중 권력을 구축한 레닌의 '소비에트 민주주의'에 '일당독재'의 맹아가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카우츠키의 방식으로 증명하고 있다. 
러시아 볼셰비즘 비판의 본질적 근거는 보통선거권과 '의회주의'에 기반한 '민주주의'였다. 카우츠키에게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다름아닌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 선 프롤레타리아의 지배라고 이해할 수 있다"는 한 문장의 규정으로 요약된다. 

카우츠키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란 다음과 같다. 

"민주주의는 때때로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사고를 억누르기도 하지만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획득하고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만큼 성숙해 가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수단이다… 그런 조건에서 프롤레타리아가 국가권력을 잡게 될 경우 프롤레타리아는 즉각 경제발전의 방향을 사회주의로 향하게 하고, 즉시 사회의 전반적 복지를 증대시킬 수 있는 충분한 물적·정신적 권력수단을 갖게 될 것이다."
- 칼 카우츠키, 같은책.

레닌은 카우츠키의 이 저작에 대하여 그 유명한 '배신자' 낙인을 유래시킨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라는 글을 통해 '의회주의'의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아닌 '계급민주주의'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핵심임을 주장하였고, 카우츠키는 [테러리즘과 공산주의:혁명의 자연사에 관한 고찰]이라는 위 반박문건을 통해 1789년 프랑스혁명의 자코뱅주의(이른바 '1차 파리코뮌')와 1871년 파리코뮌(이른바 '2차 파리코뮌')의 역사를 고찰하면서, 러시아 볼셰비즘을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가 아닌 '테러리즘'으로 규정하기에 이른다. 
카우츠키는 이 문건에서 "전세계에서 프롤레타리아는 운동에 돌입해 있으며 그들의 국제적인 압력은 매우 커져서 이제 어떤 경제적인 발전도 자본주의적인 성격은 물론 사회주의적인 성격을 함께 띠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면서 사회주의 이행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토대로 "의회주의와 민주주의는 국민의 유형과 그 계층에 따라서 다양한 내용과 형태를 가질 수 있다. 의회 내에서 부르주아 정당들이 우세할 경우 '의회주의'는 부르주아적 성격을 띤다… 그러나 의회 내에 사회주의 다수파가 자리를 잡게 되면 이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규정하며 사회주의 혁명에서 '국민의회'의 역할을 다시금 강조한다. 
이러한 카우츠키식 '사회민주주의'는 이후 [에르푸르트 강령]으로 다시금 구체화된다.
'민주주의'와 '독재'를 철저히 구분하는 카우츠키의 결론은 다음과 같은 문장들로 요약된다. 

"보통 및 평등선거권으로 이루어진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적 지배의 특징이 아니다.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의 혁명 시기에 평등선거를 도입한 것이 아니라 차별선거를 도입했으며… 오랜 기간의 힘든 투쟁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프롤레타리아들이 보통 및 평등선거권을 쟁취했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인데… 보통 및 평등선거권으로 이루어진 민주주의는 주먹에 의한 계급투쟁을 머리에 의한 계급투쟁으로 바꾸는 방법이며 자신의 적들에 비해서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더욱 성장해 있는 계급만이 승리를 거둘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 칼 카우츠키, 같은책.


이에 대해 1920년 레온 트로츠키는 같은 제목인 [테러리즘과 공산주의]라는 글로 다시 카우츠키의 '진화론적이고 자연법적'인 사회주의 이행강령을 비판하게 된다.
 
"코뮌은 형식적 민주주의의 살아있는 부정이었다."
- 레온 트로츠키, [테러리즘과 공산주의], 1920.

위 저작은 카우츠키의 논문인 [테러리즘과 공산주의:혁명의 자연사에 관한 고찰]을 같은 제목을 걸고 반박한 레온 트로츠키의 글이다. 
스탈린의 '일국 사회주의'에 대한 평생의 비판자이며 '불구대천의 원수', 한편으로는 영구혁명론자이자 이후 소비에트연방에서도 끝내 복권되지 못한 트로츠키답지 않게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후 '일당독재'와 '노동의 군사화'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외부적으로 유럽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혁명을 기다리면서 러시아 내부적으로는 부르주아 계급은 물론 러시아 사회혁명당 및 멘셰비키 등 사회주의 혁명의 적들에게 포위된 상황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인 '의회주의'와 보통선거권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철저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독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이 글의 요지다.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 중요하다는 관점에서는 수긍이 갈 수 밖에 없다. 사회주의 적들과의 내전으로 인해 파괴된 러시아 산업을 지키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볼셰비키의 배타적 권력이 필요하다는 절실함이 묻어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후의  스탈린주의와 교차점을 이루는 주장이기도 하다. 
트로츠키에게 '프롤레타리아 독재'로서 "코뮌은 형식적 민주주의에 대한 살아있는 부정이었다". 
그럼에도 슬라보예 지젝에 의하면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궁극적 차이점은 이것이다.

"스탈린에게 '레닌은 영원히 산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외설적 영혼, 권력의 도구가 되어 인공적으로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영혼으로 말이다. 트로츠키에게, 죽은 레닌은 조 힐(누명을 쓰고 죽은 미국의 노동운동가)처럼 살아 있다. 같은 이데아를 위해 투쟁하는 민중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그도 살아 있다."
- 트로츠키의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에 대한 슬라보예 지젝의 <서문>, 2007.


결국, 1917년 소비에트 러시아혁명 이후 정세를 뺀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무의미하지만, 두 인물의 '철학적 논쟁'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와 '독재'라는 정치적 개념을 추출하게 된다.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에 있어서는, '모든 민주주의는 계급독재'이다."
- 에티엔 발리바르, [민주주의와 독재 -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하여], 1976.

스탈린식 '일국 사회주의'에 대항하여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재정립하려는 프랑스 공산당 이론가 루이 알튀세르의 제자이자 동료였던 에티엔 발리바르는 레닌의 [국가와 혁명](1917)의 정식화를 소환하면서 '계급사회'에서 "모든 민주주의는 계급독재"라 규정한다. 부르주아 사회의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계급의 '독재'를 은폐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노동계급에 의한 광범위한 '대중민주주의'라는 것이다.

더 나은 세상으로의 '혁명'과 그 '정치적 이행체제'로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은 정치권력의 정점으로 '국가론'이 중요하던 시대의 심각한 논쟁이었을 것이다.
이제, '정치권력' 못지 않게 '시민사회'에서의 '헤게모니 투쟁'이 중요한 시대에서는 오래된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럼에도, 다시 되물어 보자.

지금 우리 시대 '의회 민주주의' 같은 '형식적 민주주의'는 '자본 독재'의 다른 이름은 아닌지.

***

1. [프롤레타리아 독재/테러리즘과 공산주의:혁명의 자연사에 관한 고찰], 칼 카우츠키 지음, 강신준 옮김, <한길사>, 2006.
2. [트로츠키:테러리즘과 공산주의], 슬라보예 지젝 서문 / 레온 트로츠키 지음, 노승영 옮김, <프레시안북>, 2009.
3. [민주주의와 독재], 에티엔 발리바르, 최인락 옮김, <연구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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