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상고사
신채호 지음, 박기봉 옮김 / 비봉출판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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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다"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 신채호, <일신서적>, 1988.


"역사란 무엇인가? 인류 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으로 발전하고 공간으로 확대되는 심적 활동 상태의 기록이니, 세계사라 하면 세계 인류가 그렇게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요, 조선사라 하면 조선 민족이 이렇게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다...반드시 본위인 아가 있으면 따라서 아와 대치하는 비아가 있고, 아 가운데 아와 비아가 있으면 비아 가운데에도 아와 비아가 있다. 그리하여 아에 대한 비아의 접촉이 잦을 수록 비아에 대한 아의 분투가 더욱 맹렬하여... 역사의 전도가 완결될 날이 없다. 그러므로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의 기록인 것이다."
- [조선상고사], 신채호, <1편. 총론>, 1924.


일제강점기 조선의 역사가이자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1880~1936)은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 규정하며 [조선상고사]를 시작한다. 우리 한반도 조선 민족을 '아'로 두고 그 기원을 고조선 이전 상고시대부터 연구하고자 한 거대한 기획은, 1924년도에 <총론>의 완성으로 시작되어 1931년부터 신문에 연재되었으나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 백제의 멸망과 연개소문 사후 정국에서 멈춘 미완의 역작이다.
식민지 현실에서 일제에 대항하여 투철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옥사한 신채호가 '역사의 전장'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내부의 주적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였다. 조선이라는 '아(我)'의 역사에서 사대적 유교주의자 김부식은 역사의 '비아(非我)'였으니 이를 물리치고 '역사의 승리자'가 되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부식이 진압한 고려 중기 '묘청의 난'은 "조선 1천년 역사상 제1대 사건"이 되었고, 고구려의 마지막 중흥을 꾀한 '혁명가' 연개소문은 위대한 '민족의 영웅'으로 부각된다.

"고대 아시아 동부의 종족이 1) 우랄 어족, 2) 지나 어족의 두 갈래로 나누어졌는데, 한족(중국), 묘족, 요족 등은 후자(지나 어족)에 속한 것이고, 조선족, 흉노족 등은 전자(우랄 어족)에 속한 것이다. 조선족이 분화하여 조선, 선비, 여진, 몽고, 퉁구스 등 종족이 되고, 흉노족이 이동하고 분산하여 돌궐(지금의 신강족), 흉아리(헝가리), 토이기(터키), 분란(판란드) 족이 되었다."
- [조선상고사], 신채호, <2편. 수두시대>

조선 역사의 기원을 추적하니 인류 문명의 '대혁명'인 '불의 발견'에서 시작하는데, "동서를 물론하고 고대의 인민들이 다 불의 발견을 기념하여 그리스의 화신, 프러시아의 화교, 지나의 수인씨 등 전설이있고", 조선은 "더욱 불을 사랑하여" 인명이나 지명을 지었는데 요동의 송화강을 중심으로 한 '부여'라는 공동체명의 유래가 '불'이라고 한다.
또한, 중국 정사 [삼국지]의 <위서> 말단에 '오환,선비,동이전'(이른바, '위지동이전') 변방에서 '위나라 동쪽의 여러 나라들' 중 하나인 '조선족'이 원래는 중원의 동북방을 지배한 민족이며(서북방은 '흉노족') 여기서 '여진, 선비, 몽고' 등의 민족이 분화되었다. 이는 더 거슬러 올라가면 탁록 전투에서 중국 황제 헌원씨와 싸운 치우천왕이나 중국 은(상)나라의 '용산 문화'의 뿌리가 '조선족'이라는 것이다.


"연개소문은 1) 고구려 9백년 이래로 전통의 호족공화의 구체도를 타파하여 정권을 통일하였고, 2) 장수왕 이래 철썩같이 굳어온 서수남진 정책을 변경하여 남수서진의 정책을 세웠고, 그래서 국왕 이하 대신 호족 수백 명을 죽여 자기의 독무대로 만들고, 서국 제왕 당태종을 격파하여 지나 대륙의 침략을 시도했는데... 당시에 고구려 뿐 아니라 동방 아시아전쟁사 중에서 유일한 중심 인물이다."
- [조선상고사], 신채호, <11편. 고구려와 당의 전쟁>

[조선상고사] <총론>에서 신채호는 고려까지 [삼한고기], [해동고기], [삼국사] 등의 역사서가 있었으나, '사대주의 유교도' 김부식이 평양에 도읍을 두고 북벌을 하자는 '화랑 무사사상'의 불교도 묘청의 난을 진압한 후에 "동, 북 두 부여를 떼어버려 조선 문화가 유래한 곳을 진토 속에 묻고 발해를 버려 삼국 이래 결정된 문명를 초개 속에 던지면서"(총론) 이후 불행한 몽골 섭정기를 거치면서 김부식류의 '사대적 역사관'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 역사서인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신채호가 보기에 "앞뒤가 모순되고 사건이 중복된 것이 많아 거의 사적 가치가 없다."(총론)

"... 송 신종이 왕안석과 더불어 국사를 논의하며 말하기를, '당태종이 고구려를 쳤는데 어찌 이기지 못하였는가' 하니, (왕안석이) 말하기를, '개소문은 비상한 사람입니다' 하였다. 그렇다면 소문도 또한 재사인데 능히 바른 도로써 나라를 받들지 못하고 잔인과 포학을 자행하여 대역에 이른 것이다."
- [삼국사기], 김부식, <열전9. 개소문전>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연개소문의 성을 '천'씨로 바꾸는데, 이는 당나라 고조의 이름이 이'연'이라 같은 한자를 피해 쓰는 사대적 발상이며 김부식에게 연개소문은 "재능은 있으나 잔인하고 포악한 대역죄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의 자료나 소설 '갓쉰동전'은 연개소문이 젊어서 중국 일대를 '서유'하며 당태종 이세민을 만난 적도 있음을 추정케 하는 바, 중국 정사인 [신,구당서]에서 "방자하고 야심찬 개소문" 등으로 묘사하는 이유는 당태종과 중국인들이 그만큼 '영웅' 연개소문을 두려워했음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고구려 서부대인 대대로직을 물려받게 되는 연개소문은 수나라를 망하게 한 고구려의 기상을 이어서 신생국 당나라에게도 외교강경책을 주장하는데, 중국과의 평화책을 고수하는 영류왕과 호족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스스로 대막리지가 되었으며, '고구려-당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는 국제정치의 숙적 당태종 이세민이 "더 이상 고구려를 넘보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게 만든다.

"연개소문은 요동의 싸움을 안시성주 양만춘과 오골성주 추정국 두 사람에게 맡기고 정병 3만으로 적봉진 등지를 습격하니... 당태종은 곧 군사를 돌이키려고 하였다. 오골성주 추정국과 안시성주 양만춘은 연개소문이 이미 목적지에 이르렀음과 당태종이장차 도망할 것을 짐작하고... 당태종은 말이 수렁에빠져서 꼼짝을 못하고, 양만춘의 화살에 왼쪽 눈을 맞아 거의 사로잡히게 되었는데, 당의 용장 설인귀가 달려와서 당태종을 구하여... 가까스로 달아났다."
- [조선상고사], 신채호, <11편>

안시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안시성주가 양만춘이라는 기록은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 시작된다. 연개소문은 안시성주와 오골성주에게 요동을 위임하고 대당 전쟁을 총지휘하며 신성 등의 큰 성에서의 승리와 효과적인 보급로 차단 및 양동작전 등으로 당태종을 물리쳤다. 한편, 중국의 역사에서는 당태종이 은혜를 베풀며 군사를 물렸다고 기록한다. 

신채호는 고구려의 '영웅' 연개소문이 추진한 대외정책을 '남수서진'이라 했다. "남쪽을 지키고 서쪽으로 진출한다." 고구려가 중국 동남쪽 변방이 아니라 중원과 아시아를 동서로 나누는 동등한 국가라는 의미다. 장수왕 이래 '서수남진'을 혁파하고 이를 주장하는 기득권을 척결했던 '혁명가' 연개소문. 한때 연개소문에게 감금당하기도 했고 당나라를 조선 민족 내전에 끌어들인 신라 무열왕 김춘추는 고구려의 멸망을 보지는 못했으나 이후 문무왕이 되어 삼국통일을 이루는 아들 김법민으로 인해 역사에서 살아나는 반면, 연개소문의 아들들은 내분으로 인해 망국의 원인을 제공하면서 연개소문은 중국과 김부식류가 날조한 '실패한 독재자' 이미지로 누누이 전해져 오기도 했다. 

중국 한무제에 이르러 사마천이 자신들의 역사를 아득한 '삼황오제'부터 시작하는 '통합족보'로 [사기]에 담았다면, 우리 조선족의 족보는 일제강점기에도 불구하고 단재 신채호 선생이 [조선상고사]를 통해 주체적으로 기초를 닦았다고 본다. 
그리하여 이후의 진정한 우리 역사가는 신채호라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역사를 보아온 것 아닌가.

(2020년 3월 15일)

***

1. [조선상고사], 신채호, <일신서적>, 1988.
2. [새로쓰는 연개소문전], 김용만, <바다>, 2003.
3. [삼국사기], 김부식, 최호 역해, <홍신문화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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