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뢰성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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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하면 극락, 후퇴하면 지옥.
전국 방방곡곡 전쟁이 없는 땅은 없어 수많은 집들이 생겨나고 또한 사라져갔다. 기아와 질병, 전쟁은 서로 나쁜 인과를 초래하는 악인과 악과가 되어 현세를 고통으로 채웠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힘차게 전진하라, 싸우다 죽으면 극락왕생이 보장된다. 전진하면 극락, 후퇴하면 지옥! 함성은 끝도 없이 되풀이되었다. p.13


덴쇼 6년. 1578년 일본의 전국시대는 그런 시대였다. “모두가 죽고, 죽인다. 남김없이 베고 태워 죽이는 일도 흔한 세상 p.497”. 오늘의 아군이 내일은 적군이 되고, 언제든 모반이 일어나는 것이 이상하지 않던 혼란의 시대. 오닌의 난이 일어난지 백 년이 지난 1578년 겨울. 쇼군보다 땅이 많고 힘 센 사람이사람이 최고가 되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심지어 부자 사이에서도 권력 싸움은 상당했다.


결단력이 빠르고 과감했던 오다 노부나가는 천하를 통일하고자 하는 열망이 굉장히 강했다. 전국시대 패권을 눈앞에 둔 오다 노부나가의 무장 ‘아라키 무라시게’가 갑자기 모반을 일으키고, 아리오카성에서 저항을 시작한다. 그런 무라시게를 설득하기 위해 오다의 군사 ‘구로다 간베에’가 찾아오지만, 무라시게는 그의 제안을 거절하고 그를 지하 감옥에 가둔다. 죽이거나, 살려 보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무사의 도이거늘, 무라시게는 살리지만 보내지 않는 편을 택하고 만다. 그 후 겨울, 봄, 여름, 가을이란 10개월의 시간동안 아리오카성 안에서 기괴한 사건이 연이어 일어난다.


인질로 잡혀 있는 소년의 죽음, 누가 적장의 머리를 베었는가에 대한 다툼, 밀사인 수도승의 죽음.. 그 사건의 배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무라시게는 속내를 보이고 의논할 상대가 없음을 깨닫는다. 그럴 때마다 조용히 지하감옥에 가둔 간베에를 찾아가 지혜를 구한다.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며, 간베에는 무라시게에게 어떤 힌트를 줄 것인지…


“어찌하여 그런 짓을. 사자는 돌려보내는 것이 규칙, 돌려보낼 수 없다면 베어 버리는 것도 무사의 규칙이거늘. 세상의 이치에 어긋나는 짓을 하시면…”
“…. 인과가 돌아올 겁니다.” p.27


성 안에 있으면서 언제 공격해올지 모르는 오다의 군을 방어하고, 자신을 도우러 와줄 아군을 기다리는 무라시게. 전쟁을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전쟁의 이유는 희미해지고, 그럴 때일수록 리더를 믿지 못하는 무사들은 늘어나고 흉흉한 소문은 금세 퍼지기 마련. 그럴 때 우리가 리더에게 요구하는 리더쉽은 어떤 것일까? 개인의 윤리와 공동체 윤리가 다를 때 참 리더는 무엇을 따르는 사람인지, 내가 리더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뒤로 갈수록 물어오는 질문이 참으로 묵직했다.


시대의 배경을 익혀야 하는 초반에 헤매는 시간만 감수한다면 정말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일본 이름이 워낙에 갸가 갸 같고, 야가 야 같아서 헤맸지만 픽션과 논픽션의 조합은, 거기에 미스터리라는 요소는 독자로 하여금 몰입해서 읽게 만들었다. 데뷔 20주년을 맞이한 요네자와 호노부의 집대성!! 제 166회 나오키상 수상작을 비롯해 전무후무한 9관왕을 달성한 흑뢰성. 역사와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주저없이 권한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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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피시 - 커다랗고 아름다운 어느 여자아이에 관한 커다랗고 아름다운 책
리사 핍스 지음, 강나은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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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림받는 게 그렇게 싫으면 네가 살을 빼면 되잖아.” p.10

“넌 정말 예쁠 거야…. 살만 빼면.” p.49

“남들이 뭐라 하건, 너를 너답게 하는 것들을 사랑하도록 해, 엘리.” p.66

“뚱뚱한 여자아이의 규칙이 왜 문제냐면, 네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뿐 아니라 자기가 누구인지까지도 그 규칙에 따라 결정하기 때문이야.” p.206


열세 살의 엘리. 여섯 살에 언니가 놀리듯이 했던 “첨벙이”란 말을 들은 후, 자신의 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 게다가 몸무게, 음식, 옷까지 통제하는 엄마, 심지어 부모로서 해 줘야 하는 것에도 “살을 빼면”이란 조건을 붙이고, “이 뚱뚱한 것”이란 혐오적인 말까지 내뱉는다. 뚱뚱한 동생이 사라졌으면 싶은 오빠와의 갈등은 끝이 없다. 엘리의 상황은 학교에서는 더욱 좋지 않다. 상어처럼 이를 박고 물어뜯는 아이들 탓에 학교 생활조차 쉽지 않다.


엘리의 엄마는 엘리의 비만만 고칠 수 있다면 못할 것이 없다. 엄마에게 엘리는 “고쳐야”하는 대상이다. 엘리의 몸을 고치기 위해 강제로 비만 수술을 시키려 한다. 자신을 놀리고 괴롭히고 조롱하는 이들에게 저항하기 보다는 그런 행동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부당하지만 당연하다고.. 난 그런 대우를 받을 존재라는 생각을 한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니까.
그럴 수록 ‘뚱뚱한 여자아이의 규칙’은 늘어만 간다. 살이 출렁거리지 않게 조심조심 움직이기, 음식 허겁지겁 먹지 않기, 수영장에서 물보라 일으키지 않기, 어두운 색 옷 입기.. 남들 눈에 띄면 안 된다.

#2022프린츠아너상 #청소년문학계노벨상


나의 몸에 백퍼센트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저 얼굴로 하루만 살았으면 싶은 배우들도 얼굴과 몸에 컴플렉스가 있다고 하니 말이다. 우린 너무도 쉽게 타인의 외모를 지적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어떤 저항도 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내면에 그 말을 차곡차곡 쌓아둔다. 그리고는 나를 통제하기 시작하고, 내가 당했던 방식으로 타인을 지적하기 시작한다. 나보다 못한 이들에게 우월감을, 나보다 나은 이들에겐 열등감을 느낀다. 이 괴로움을 멈추고 싶지만 방법을 알 수 없고, 이 괴로움도 내가 못나서, 못생겨서, 뚱뚱해서라고 자책하기에 이른다.


열세 살 엘리가 받았던 몸에 대한 억압과, 놀림과 서러움은 얼마나 클까? 자신의 정체성이 한창 만들어져야 할 나이에 스스로가 창피한 아이. 늘 웅크렸던 엘리에게 이제 편히 몸을 펴라고 말해줘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된다고 해 줘야 하지 않을까?
늘 부끄럽던 몸, 지적 받아야 했던 자신의 몸을 긍정하기 시작한 엘리의 모습은 그래서 뭉클하다. 아프다고 버겁다고 슬프다고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때는 눈물이 난다.


어떤 몸이든 존중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존재는 어떤 조건이 아닌 존재만으로 아름답다. 미디어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몸이라는 허상이 아닌 자신의 몸을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는 자아상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운문 형식으로 풀어낸 글을 읽는 동안 청소년 시절 혹독한 다이어트를 하느라 힘들었던 나의 모습도 떠올랐다. 자신의 몸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모든 “엘리”들에게 권한다. 엘리가 그랬 듯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길,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안아주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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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미술관 -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이야기
이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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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이란 책으로 이유리 작가님을 처음 만났었다. 이 책은 남성 화가 중심의 작품에 가려졌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던 작품이었고, 작품과 화가들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유리 작가님은 그림을 매개로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는 글을 쓰기로 유명한데, 이번에 나온 책인 “기울어진 미술관” 역시 그러하다. 진부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은 금물! 작가님이 소개하는 작품과 작품에 숨겨진 이야기, 역사에 대해 알면 알수록 놀라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권력관계가 존재한다. 현대사회도 그럴진데 마네, 드가, 루벤스, 미켈란젤로 같은 화가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어떠했을까? 그 사회에는 더 많은 억압과 더 많은 권력관계가 만연했던 사회였고, 예술에도 그 권력은 존재했다. 예술이 돈과 권력을 떠나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는 힘들었기에 권력을 쥔 이들의 입맛에 맞는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대가 변했고, 과거의 그림, 화가와 후원자의 관계를 현시대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이 과하다 할 수도 있겠으나, 이유리 작가님의 말처럼 그것이 비단 과거에만 존재하는 일인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고, 책을 읽는 내내 그것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확인하게 된다.


책은 총 4부고 구성되어 있다.
1부 기울어진 그림을 부수는 존재들
-그림 속 흑인, 장애인, 병든 사람, 성소수자에 대해
2부 그림 속 소품이길 거부한 여성들
-성노동자, 그림자노동, 가부장 사회의 밑돌로 착취당하며 여전히 혐오의 대상인 여성의 차별에 대해
3부 뒤틀린 권력에 균열을 내는 그림들
-사회에 만연해 있는 어린이, 노인, 가난, 전염병 혐오에 대해
4부 선전 도구에 저항하는 예술가들
-동물관, 환경오염, 선전 도구로 사용되어지는 예술에 대해.


가장 기억에 강렬하게 남았던 것은, 선천적 다모증을 앓고 있는 7세 소녀인 ‘안토니에타 곤살부스’ 에 관한 그림이었다. 얼굴 전체가 털로 뒤덮여 있는 소녀는 호화로운 드레스를 입고 있다. 귀족인가? 했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16세기 유럽 궁정에서는 짐승처럼 털이 난 사람을 ‘애완’하는 게 유행이었고,이 궁전 저 궁전에서 ‘눈요기용 선물’로 거래가 된 소녀였다고 한다. 자신처럼 선천성 다모증을 앓고 있던 아버지에게 받은 외모로 인해 이 소녀는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결정되어졌다고 한다.


미술 작품에 관련된 책을 좋아한다. 그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그렇기에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는 상당하다. 하지만 그림 안에 감춰진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내면 때론 너무 섬뜩하기까지 하다.
기울어진 미술관이란 책을 읽는 동안에도 수많은 마이너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울부짖는 것만 같았다. 늘 타자화 되고 대상화 되어버린 이들이 드디어 주체가 되어 세상에 나오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피부색, 성소수자, 장애, 가난, 어린이, 노인, 여자, 동물이란 이유만으로 억압되고 터부시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이제는 우리가 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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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찾아서
박산호 지음 / 더라인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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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한 엄마, 베스트셀러 작가인 아버지를 둔 선우. 자신의 존재가 아닌 행위로 인정받는 선우는 성적 하나로 밥버러지가 됐다 남들에게 과시할 수 있는 트로피가 되기도 했다. 친한 친구 없이 조용하고 우울하게 지내던 어느 날, 앞집에 한 여자가 이사를 온다. 갓난쟁이 아이를 데리고.. 남편은 없는 거 같다.
자신의 방에서 건넛집을 보던 선우는 아이를 안고 어르고 젖을 먹이는 여인의 모습을 보고 반한다. 자신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따스한 보살핌을 아이에게 온전히 부어주는 여인에게 선우는 빠져들고 만다.


그녀의 이름은 아랑. 선우보다 열 살이 많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난봉꾼 아비의 아들, 자살한 엄마의 아들, 박복한 팔자를 타고난 아이가 아닌 선우 존재를 궁금해하는 사람을 처음 만났는데…

▫️어린 나는 몰랐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상대를 순수하게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마음이라는 것. 아랑은 바로 그 선물을 내게 준 사람이다. 처음이자 유일한 사람. p.66


그런데 그녀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대체 아랑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선우는 사고로 아비를 잃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한쪽 다리를 잃게 되지만, 여러차례의 재활로 일상생활은 가능한 상태가 되었고, 한국대학교의 영문과 교수가 되었다. 사고를 당하고 어떤 기억이 뭉텅이로 빠져버린 선우지만 어떤 작별 인사 없이 헤어진 아랑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은 그대로 간직한 채 아랑을 찾아 10년을 헤맨다. 그런데 아랑을 찾아 헤메는 또 다른 이들이 있었다. 아랑의 행방을 쫓다 선우와의 연결고리를 발견한 이들은 선우에게 다가가는데….


‘툼스톤’의 원작 소설 [무덤으로 향하다]를 시작으로 ‘월드워Z’의 원작인 [세계대전 Z], 영화 ‘차일드 44’의 원작, 토니와 수잔, 토마스 해리스의 [카리 모라] 같은 스릴러 명작들을 20년 가까이 번역한 박산호 번역가의 첫 장편소설이 세상에 나왔다. 어느 날 클래식 연주회에서 문득 떠오른 한 남자의 이미지에 사로잡혀 그 남자의 이야기를 3개월 간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써내려갔다. 2008년 등단 이후 살벌한 작업량을 보여주며 장르소설의 네임드로 자리매김한 전건우 작가에게 피드백을 받으며 이야기를 다듬어 나간다. 전건우 작가가 혼자 보기 아깝다며 책으로 출간할 것을 권해서 세상에 나온 작품이다.


20년간 스릴러 명작들을 번역하면서 스릴러 문법과 구조를 익혀온 작가답게 물흐르듯 이어지는 이야기는 책을 펼치자마자 바로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가스 사고 폭발 현장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이후로 세 사람의 관점으로 서술되어지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커다란 직소퍼즐이 하나씩 완성되어 간다. 직소 퍼즐을 다 맞춘 후 멀찍이 떨어져서 작품을 감상할 때 보여지는 것은, 슬픈 사랑, 남겨진 이들의 고통, 섬처럼 떠 있는 외로운 이들의 뒷모습이었다. 엄청 심쫄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몰입하며 읽게 만드는 힘!! 그리고 마지막 하… 하게 만드는 반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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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2 - 개정판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신승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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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들어, 이 친구야,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이 나라는 달라지지 않아. 나 같은 조선인들은 여길 떠날 수도 없지. 우리가 어디로 가겠어? 고국으로 돌아간 조선인들도 다를 바 없어. 서울에서는 나 같은 사람을 일본 놈이라고 불러. 일본에서는 내가 얼마나 돈을 많이 벌든, 얼마나 좋은 사람이든 더러운 조선인일 뿐이야. 도대체 어떡하라는 거야? 북한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죄다 굶어 죽거나 공포에 떨고 있다고.” p.209


해방 이후 일본에 남게 된 선자네 가족. 한수의 도움으로 선자의 엄마인 양진도 일본에 함께 살게 된다. 가난에 찌들었어도 자신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강한 책임감을 갖고 있던 요셉은 어느 새 가족의 짐이 되어버린 자신의 몸뚱아리를 저주한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는..
노아와 모자수는 차별과 멸시, 갖은 모욕을 겪으면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살 방법을 궁리한다. 일본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떳떳하게 살고 싶었던 노아는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일본의 명문대인 와세다대학에 합격을 한다. 입학금도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도쿄에 집을 마련해줄 수 없는 가족은 애가 탄다. 그런 그들을 뒤에서 조용히 도와주는 노아의 친부 박한수는 노아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다. 등록금, 자취방, 생활비까지.. 든든한 후견인으로 노아를 돕는다.


한편 모자수는 일본인들의 차별을 견디지 못하고 고등학교를 그만 두게 된다. 그리고 파친코 사장 밑에 들어가 밑바닥부터 일을 배우게 된다. 공부에 소질이 없었지만 일 머리는 탁월했던 모자수. 그를 이쁘게 본 파친코 사장은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지배인의 자리에까지 앉히게 된다. 그러는 가운데 노아는 알아선 안 될 사실을 알게 됐다. 자신의 아버지가 백이삭이 아닌 박한수라는 것을… 야쿠자의 피가 자신에게 흐른다는 사실을 감당하기 어려운 노아는 학교를 관두고 훌쩍 떠난다. 그리고는 일본인이 되겠다고 결심한다. 자신의 존재에 수치심을 느낀 노아는 가족과 연락을 하지 않은 채로 살아간다.


오랜 세월이 흘러 모자수는 결혼을 하고 어렵게 아들 솔로몬을 얻게 된다. 늘 미국을 꿈꿨던 모자수의 아내는 결국 미국 땅은 밟아보지도 못하고 숨을 거두고, 솔로몬은 가족의 도움을 받고 똑똑한 아이로 성장하지만 조선인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 한계 앞에 좌절했던 솔로몬 그리고 노아.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하며, 그것을 지켜봐야 하는 선자의 마음은 어떨까…


나라는 해방을 했지만, 전쟁으로 폐허가 되고 이념 때문에 남북으로 갈라져버렸다. 일본에 남아있는 재인조선인은 일본에서도 본향에서도 이방인일 뿐이다. 그들은 가진 것이 많고, 배움이 많아도 재일조선인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다. 여전히 그들은 가난하고 더러운 조센징일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어디서든 살아남아야했고, 그랬기에 천하게 여겼던 파친코 사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결과를 알 수 없는 예측불허의 삶과 도박은 맞닿아있었다. 특히나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는 그들의 삶을 ‘파친코’라는 단어에 담아낸 작가의 통찰력에 박수를 보낸다.


파친코는 디아스포라 문학이지만 그 안에는 살면서 만날 수 있는 인생의 모든 문제들이 다 들어있다.
가족, 사랑, 이별, 돈, 정체성, 삶의 가치 등….
그리고 각자 개개인이 그 문제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맞서는지 보여주는 개인의 역사를 담은 책이기도 하다. 그 역사가 나에게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같은 질문을 건네는 것 같다. 당신은 당신의 삶에 어떻게 맞설 것이냐고 말이다.


장로교 목사인 아버지는 하나님의 계획을 믿었고, 모자수는 인생이 파친코 게임과 같다고 믿었다. 다이얼을 돌려서 조정할 수 있지만,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로 생긴 불확실성 또한 기대한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모자수는 고정돼 보이지만 무작위성과 희망의 여지가 남아 있는 파친코를 왜 손님들이 계속 찾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p.80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기록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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