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밥상에는 슬픔이 없다
정제성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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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밥상에는 슬픔이 없다..



​아버지는 치매와 노환으로 병원에서도 별다른 치료를 해드릴 수 없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맏이인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동생들을 대표하여 아버지를 요양병원으로 모시자고

말을 꺼내지만 아흔의 어머니는 '집으로 모실거다'라며  단호하게 말씀하시고

병원에서 포기한 아버지를 모시고 시골 집으로 돌아온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방을  최고의 vip 1인실 입원실로 만드시고

집 안팎을 밝게 꾸미는 시작하셨다.

아버지를 위한 작은 화단을 만들고, 틈틈이 텃밭을 가꾸었다.

아버지가 방문을 조금만 열어도 보이도록 만들었다.


치매에 걸려 흐려지는 기억들 속에서 한 가닥씩 끌어올릴 수 있는

음식들로 어머니는 매끼 아버지의 밥상을 차리신다.

음식은 기억이며 추억이다.

어머니가 차려내시는 밥상을 받기 시작하면서 아버지가  타고 계신

[죽음으로 달려가던 버스]는 잠시 정류장에 정차한듯 하다.

한시름 놓게 된것이다.


늙은 엄마는 당연한 듯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러 하지 않았다.

남편에 관한 한, 모든 것들을 스스로 주관하고, 관찰하며 그 수많은

약들을 조절한다.

날마다 닦아주고 소독한다. 분노와 요구를 다 보듬어 준다.

추억으로 기억을 붙잡아 주기 위해 동무처럼 말을 걸어준다.


엄마 밥상의 위대한 힘.. 그때는 몰랐지만 새삼스럽게 고마움과 그 힘을 느끼게 된다.


유리창 틈으로 들어온 아침 햇살을 받아 윤이 나는 하얀 쌀밥이 바로 옆자리

총각무에 붙어 있는 살얼음을 녹이고 있었다.

청국장 국그릇에서 피어오르는  굵은 김과 쌀밥의 가느다란 김은

서로 섞이지 않은 채, 찬 공기를 뚫고 위로 올라간다.

나는 밤새 공부를 끝내고 퀭한 얼굴로 아침밥을 기다리는

하숙생처럼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엄마는 5 남매를 키우면서 자식이 시험 치는 날에

미역국을 끓인 적이 없었다.

입시만이 아니라 하다 못해 월말 고사를 볼 때도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다.

미역국을 사시사철 먹었는데도 말이다.

옛날 미역은 거의 줄기 채 그대로 말린 것들이었다.

요즘 파는 것은 조금만 물에 담가놓아도 금방 풀어지고 오래 끓이지 않아도

연해지는데 어렸을 때 먹었던 미역은 몇 시간씩 푹푹 삶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책에서 계절마다 각각 다른 음식들을 내놓는 엄마의 모습을 그려놓았다.

그리고 그 음식을 먹는 식구들과의 추억, 친구들과의 추억들을 그린다.

소환당한 추억들속엔 구수한 청국장 냄새와 쑥국 냄새,갈치 조림 냄새가 난다.

고단한 시기였지만 엄마의 밥상이

고단함도 비루함도 잊게 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 어떤 순간에도 엄마는 약하지 않았다.

가족을 잇는 강한 결속력은 바로 엄마였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순간순간 놀랐다.

장을 넘길때 마다 살짝씩 전율도 왔다.

​그건 우리 집과 놀랍게도 씽크로율 100%였던 소설 책 속의 줄거리때문이었다.

어쩜 살아계셨다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나이쯤 되셨을

나의 부모님들의 모습과을 보는듯 했다.


엄마의 밥상은 늘 항상 정답이었다.

신통찮은 재료들도 엄마의 손맛을 타게 되면 몸값이 12배는 상승한다.

엄마가 가진 여러 개의 장점 중의 하나는 단연 음식 솜씨였다.

음식 솜씨 좋은 조강지처는 내치지 않았다는 옛말처럼

아버지의 까탈스러운 성격과 입맛을 감당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엄마 뿐이었다.


노환으로 아버지가 쓰러지시자 엄마가 병간호를 하셨다.

간병인은 쓸 엄두도 못냈다.

아버지의 깐깐하고 괴팍스러운 성격을 받아낼 사람은 엄마 뿐이었기 때문이다.

오롯히 엄마가  견뎌냈을 그 시간에 나는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에 있었다.

자식들 고생 시키지 않으시겠다며 엄마가 온몸으로 아버지의 뒷치닥거리를 하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신 엄마는 한동안 내 세상이구나..

하시면서 전국 여기저기 친구분들과 계모임 여행을 다니셨다.

평생 아버지와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셨던 엄마가 정말 인생을 즐겼던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딱 10년 정도 였던것 같다.

그런 엄마도 몇년전 돌아가셨다.

그 이후로 나는 엄마가 해주시던 경상도식 추어탕을 다신 먹지 못했다.

이름있는 유명한 추어탕 집에는 다 찾아가봤지만 엄마가 해주시던 그 맛을 대신하지 못했다.

잔뜩 찌푸린 흐린 하늘에서 후두둑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질때면

내장을 떼어낸 멸치를 한줌 넣어 시원한 국물맛이 일품인 멸치 육수에

밀가루 반죽을 뚝뚝 끊어서 넣은 수제비가 그립고...


고향인 마산의 명물인 미더덕을 듬뿍 넣어 만든 해물 찜과

잔 새우에 잘게 썬 무우와 각종 양념을 넣어 만든 새우 조림이 그립다.

엄마의 밥상은 나에겐 추억이고 그리움이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간절한 그리움을 내 가슴에 켜켜히 싸놓은 책..

읽는 내내 나를 뭉클 하게 했던 책

"엄마의 밥상에는 슬픔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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