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미식가 - 외로울 때 꺼내먹는 한 끼 에세이
윤시윤 지음 / 답(도서출판)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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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를 짚어보는 내 손바닥에 뜨끈함이 전해진다.

직감적으로 큰일이다 ​싶었다.

어지간하면 그냥 피해가겠는데 이러다가는 정말 나중에 큰 코 다치지 싶어 휘청휘청 취한 사람마냥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선생님의 내 상태를 보시더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는 표정을 지으시며

"열이 38도를 넘었어요. 지금도 아프시겠지만 더 아플겁니다" 하신다.

과하다 싶을 정도의 항생제와 소염제 진통제를 하루 3번 한줌씩 먹어야했다.

연일뉴스에 나오던 A형 독감이었던가 보다.

그렇게 나는 3주동안 지독한 근육통과 열과 기침에 시달려야했고..

그리고 딱 그 기간 동안 기가 막힐 타이밍으로 정말 철저하게 나는 혼자였다.​

독감보다  더 지독한건 외로움이였다.

외로움의 맛은.... 목구멍에 걸려서 좀체 내려가지 않는 쓰디쓴 감기약​ 맛이다.

그렇게 정의를 내리고 나서 난 아픈 와중에도 혼자 깔깔 웃었다.

윤시윤 작가의 흉내를 내고 있는 내가 웃겼던 것이다.​

윤시윤 작가의 "외로운 미식가"라는 책을 받아서 막 펼치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나는

지독한 독감에 걸리고 말았다.

몸이 아프니 입맛이 없어지고.. 속이 허해지니 마음이 비어갔다.

그렇게 텅텅 소리가 날 정도로 내 마음이 비어가던 그때..

유일하게 빈 깡통같은 내 마음을 알아채고 위로의 말을 건내주었던 것이

바로 "외로운 미식가" ..이 책이였다.

부제목에 적혀 있는 [외로울때 꺼내 먹는 한 끼 에세이]

정말 이 말이 나한테 기가막히게 들어맞는구나 싶어 책 표지를 볼때마다 가슴이 뭉클거렸다.

윤시윤 작가는 다수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동하고 있는 18년차 예능작가이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아직 이상적인 사랑을 기다리며 남들이 흉내내지 못하는

톡톡튀는 감성으로 글을 써가는 예능작가이다.

그런 작가의 이력과 그녀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색깔 고운 그림과

그리고 살아가는 일상의 소소함을 작가 특유의 맛으로 표현하는 그 센스가 ​

나는 너무 부럽다.

 

이별, 바람의 맛...은 풀맛!

"왜 어릴때 길에 있던 풀 씹어 먹은 적 없어? 그때 그 맛이 오늘 바람 같아"

이별을 하고 긴 머리를 자른 후

짧아진 머리칼을 바람이 살랑 불어와 건딜고 지나간다.

이별한 후의 바람에서는...달큰하면서도 씁쓸한 풀맛이 나는구나..

그 어떠한 구체적인 표현보다 더욱 절실하게 전해졌던 이별의 맛...

나는 그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수줍은 고백은 포도맛 탄산음료

고3시절 어느 남학생이 불쑥 건내준 포도맛 탄산음료 한병.

그 시절 순수한 청춘들이 건내는 서툴고도 상큼했던 고백은 포도맛 탄산 음료로 기억된다.

어쩜 첫사랑의 맛으로 포도맛이라니...너무 환상적이지 않은가..

 

사랑할때의 공기의 맛은...

핑크 레모네이드 맛이 나는 4월의 공기 맛...

그 표현은 듣는 순간..내 마음까지 싱그러워졌다.

투명하고 깨끗한 핑크색이 심장을 설레게 하고 달달하면서도

톡 쏘는 상큼함.. 사랑할때에만 느낄 수 있는 그 맛..!!

 

독감으로 한동안 입맛을 잃었던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죽어있던 내 미각이 살아나는 느낌을 받았다.

작가가 표현하는 그 모든 맛들..그 톡쏘면서도 상큼하고 떨뜨름하면서도

시큼하고 달달하면서도 짭조롬한 모든 맛들이 사실 일상속에 묻어 있다.

그 살아있는 온갖 맛들을 진하게 느껴보고 싶다는 욕구가 내 혓바닥 아래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내가 살고 있는 오늘 바로 지금..

이 순간을.. 매 순간을 느끼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싶다는 강한 욕구..

그건 그 어떤 보약보다 더욱 나를 정신차리게 만들었다.

그녀의 책속의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자극했고..기운내라고 격려하는듯했다.

그래서 어쩌면 조금은 구질해보일 수 있는 나의 일상도 따지고 보면

그렇게 떨뜨름한 맛은 아닐거라는 기대감에..

나는 드디어 지독한 독감을 털고 기운을 차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어느 휴일날 아침..

소박하지만 정갈한 어느 시골 밥집에서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여나오는 청국장과

맵지도 짜지도 않은 산나물 반찬들을 오랫시간을 들여

천천히 씹어서 삼켰다.

까끌까끌하던 내 입안에 엄마가 해주시거 같은 그 음식 그 맛을 느끼는 순간..

나는 비로소 몇주동안 나를 죽일듯이 달려들던 지독한 독감이라는 녀석과

볼장 다 봤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번 속으로 생각했다.

 

삶은 청국장 뚝배기에 가라 앉아 있는 콩알갱이처럼..

천천히 오래오래 씹으면 씹을수록 구수하고 깊은 맛이 나는 것이라고..

나의 일상도 이렇듯 화려하지 않지만 깊은 맛이 나고 자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그런 맛이 나기를 나는 간절히 원한다.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 더 많은 맛을 느낄 수 있는 삶이기를 원한다.

 

많이 아프고 외로웠던 시기..

핸드백 무게마저 버겁게 느껴질 정도로 힘들었던 그때

묵직한 화장품 파우치를 포기하고 핸드백 속에 넣어다녔던 책..

'외로운 미식가'

딱 나를 닮았던 그 책 한권이 있어서 버텨 낼수 있었던 그 시간..

고맙고 또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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