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방관의 기도
오영환 지음 / 쌤앤파커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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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각장래 희망을 얘기해 볼까요..?"

"저는 대통령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씩씩한 군인 아저씨가 되고 싶습니다"

"저는 용감한 소방관이 되고 싶습니다"

 

그랬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학부모를 모셔다 진행하는 참관 수업때 꼭

의례적으로 있던 풍경이다. ​그때마다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남자아이들의 희망 직업..소방관!!

그때 소방관이 되겠다고 말하던 아이 중에 진짜 소방관이 된 아이가 있을까..

나는 가끔 궁금해진다.

철이 들고나자 소방관이라는 직업​이 결코 선망의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리고 살인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2년 전 여름 어느 날..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연이어 화재가 발생하는 일이 있었다.

잦은 화재로 방화를 의심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노후된 전기선에서 누전으로 인한 화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어쨌던 그 더운 여름에 장비를 풀세트로 갖추고

비지 땀을 흘리며 ​무거운 소방 호스를 어깨에 짊어지고 달리던

나이 많은 어느 소방관의 뒷 모습을 나는 보았다.

​그리고 내 마음 한구석에서 기어 올라오던 고마운 마음, 미안한 마음, 안스러운 마음과 든든한 마음​.. 그 복잡했던 마음들을 내내 기억하고 있다.

현직 소방관이 직접 쓴 ​현장에서의 리얼 경험담을 읽어볼 수 있다는 것은

그날의 ​고마웠던 마음을 다시 느껴 볼 수 있는 거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느 소방관의 기도"라는 책이 내 손에 들어왔을 때 그 어떤 책보다

경건한 마음으로 첫장을 넘겨다.​

저자인 오영환 소방관은 의무소방대원을 지냈고 산악구조대를 시작으로 ​구급대원으로 현장에서 발로 뛰며 흘린 땀으로 글을 쓰고 있다.

그의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나는 고마운 마음보다 미안한 마음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현장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수없이 대하게 된다.

사이렌 소리에 차들이 조금만 더 길을 양보했어도 심장이 멈추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었을텐데..

골목길에 불법 주차가 된 차들만 없어서도 화마속에서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었을텐데..

일기가 나쁜 날에 구태여 산에 무리해서 오르지만 않았어도 한 사람의 생명의 사그라드는 일은 없었을텐데..

​그의 안타까움과 눈물 위로 우리들의 잘못들이 오버랩된다.

평생 나는 위험에 처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인 것이다.

결국 우리의 무관심과 안일한 생각들이 내 가족과 내 이웃을 죽음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자꾸 고개가 숙여진다.​

​국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기꺼이 위험속으로 뛰어드는 소방관들의 환경이 솔직히 그렇게 열악할 줄은 몰랐다.

사비를 들여 장비를 구입하고 사비를 들여 차를 수리한다는

대목에서는 얼굴마저 화끈 거릴 정도였다.

한국의 복지 정치의 수준이 선진국 수준으로 높다고 말하던 정부의 발언들은 빛좋은 개살구였던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 안녕을 꾀하고 국민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최우선 정책일텐데..그 일선에서 고군분투 하고 있는 한국의 소방관들의 처우가 과연 이 정도인가 싶어서 한편으로 자괴감마저 든다.

그러한 환경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그들은

언제 덮칠지 모르는 부상과 죽음의 공포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듬직해 보이는 그 등뒤에는 허리디스크를 달고 살고, 전국 소방공무원의 21%가 수면 장애를 앓고 있다.

항장애를 얻어 일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소방대원들도 있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발병률이 일반인보다 무려 10배가 높다고 하는 통계 수치를 보고 있자면

도대체 왜 이런 직업을 택했을까 라는 안타까움 마저 든다.

하지만 결국 그 누군가는 나서서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닌가.

투철한 사명의식 없이는 도저히 해 낼 수 없는 일..그게 바로 소방공무원의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유독 대한민국 소방대원들의 인권과 외국에 비해서 열악하기 짝이 없는

노후된 장비에 대한 뉴스를 많이 접했던것 같다.

어쩜 전에보다 그런 뉴스나 기사들이 무의식적으로 더 눈에 띄였던건지도 모른다​.

외국의 소방관들의 착용하는 장갑의 경우 칼로 베거나 심지어 망치로 내리쳐도 손을 다치지않는다.

거기에 비해 우리나라 소방대원들에게 지급되었다는 목장갑 한세트는 목구멍에서 욕지거리가 나올뻔 할 정도로 나를 분노케했다.

나는 오영환 소방대원의 이 책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켜

반짝 관심이나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그들의 처우와 복지와 안전을 바꿀 획기적인 새로운 바람이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할 것이고

가급적 많은 매체에 부끄럽지만 나의 리뷰를 올릴것이다.

한 평생 살아가면서 한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일반인들에겐 어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 고귀한 일을 위해 오늘도 언제 울릴지 모르는 출동벨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는 소방대원에게 감사와 격려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이런 책을 읽을 수 있었던 나의 작은 행운에도 감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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