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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눈보라 구슬
김휘 지음 / 작가정신 / 2014년 7월
평점 :

말라 붙은 핏자국..!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껴졌던 색깔과 냄새는 피비린내와 말라 붙은 핏자국색인 암적갈색이였다. 가슴 한구석에서 묵직한 통증이 느껴지는 책이였다.
작가 김휘의 첫번째 소설책인 [눈보라 구슬]은 살인,공포,거짓,위선,은폐,왕따,도둑질등 우리가 하루도 빠짐없이 신문지면을 통해 듣게 되는 부정적인 측면들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에 동조하거나 방관하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치부해버리며 애써 눈감아 버리는 인간군상들에 대한 작가의 따끔한 지적도 엿볼 수 있다.
이 책에는 모두 7개의 중,단편 소설로 소개되어있다.
상처입은 영혼들의 몸부림과 울부짖음이 페이지마다 베어있는 섬뜩하리만큼 괴기스럽고 공포스러운 책이다.
7개의 단편들에서는 결코 평범치 않은, 우리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고 있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뭔가에 쫓기듯 불안하고 상처입어 절뚝이며 벼랑끝으로 내몰린 짐승같이, 더 나아갈곳도 되돌아 갈곳도 찾지 못한 채 불안한 눈알을 굴리는 듯한..
자신이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된 이들이 죄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덕이는 모습들을 보고 있자면 독자들의 심기도 편치 못하다.
목격자
아르고스의 눈
괴담 라디오
아트숍
감염
나의 플라모델
동물소통중개소
7개의 중,단편의 소재들이 지금까지 내가 읽어보지 못한 쟝르를 다루고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무척 신선함을 느낀다. 애써 관여하고 싶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들을 하나씩 꺼내서 그 소재로 삼고 있다.
주인공들이 겪고 있는 심적 불안과 억울함에 내지르는 울부짖음이 고소란히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무겁고 아프고 공포스럽다. 나로써는 새로운 체험이다.
첫번째 단편인 [목격자]의 경우, 주인공은 첫사랑을 닮은 친구의 애인을 목졸라 죽인다. 하지만 그는 또 하나의 인격체를 만들어 놓고 "그 놈"이 그녀를 죽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은 목격자일뿐 그녀의 죽음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놈"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한다.
피해망상증과 이중인격의 소유자인 것이다.
작가는 그런 주인공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나가고 있다.
5번째 소설인 [감염]의 경우 공포영화에 등장할 듯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말기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주인공의 아버지는 제약회사에서 운영하는 재활센터에 아버지를 보내게 된다.
암이나 각종 병으로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무료로 돌보는 재활센터의 실상은
신약개발을 위한 실험도구로 임종을 앞둔 환자들을 사용하였고, 그 부작용으로 환자들은 무시무시한 괴물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제약회사와 그 위의 거대한 조직은 사건을 축소, 은폐하고 괴물들을 무참히 처지하는데..
주인공은 아버지가 괴물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기막힌 사실을 알게 되자 재활센터로 보낸 자신을 탓하게 된다.
6번째 중편 소설인 [나의 플라모델]은 우리사회에 스며들지 못하는 탈북자 이야기를 소재로 쓰고 있다. 주인공인 종안은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왔지만 무한경쟁 사회인 남한 사회에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
북한 말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종안은 또래들로부터 업신여기고 무시당한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온전히 동정표를 줄 수 없는 건..종안이 그가 일하는 가게에서 플라모델을 상습적으로 훔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처럼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본인들이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가 되어버린 기막힌 일들을 겪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온전히 주인공의 편을 들어 줄수도, 돌아서 욕할 수도 없는 애매한 입장이 되어버린다.
저자는 왜 이렇게 독자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일까...
대답은 바로 아래에 있다.
살아가는 일이란 끊임없이 '너'에게 빚을 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것들, 그러니까 책임이나 속죄나 반성 같은 것들을 내려놓은 채 황급히 제 갈길을 가곤 한다.
(작품해설-범인은 바로 우리 中)
자신이 다른 누군가의 삶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또한 자신이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거대한 폭력의 메커니즘에 연류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악은 계속해서 힘이 세질 것이다.
그래서 어떤 자들은 필사적으로 알아차리고자 하고 빠져나오고자 한다.
(작품해설-범인은 바로 우리 中)
이 책을 읽은 독자에게 작가의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윤리의식이다.
이 사회에 넘쳐나는 폭력적인 메커니즘을 똑바로 인식하고 올바른 목소리를 내라는 저자의 메세지를 이 책을 통해 전달 받았다.
섬뜩한 공포와 함께 전달되어진 저자의 강렬한 메세지가 무척 인상 깊었던 소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