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km - 열입곱 살 미치루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다
가타카와 요코 지음, 홍성민 옮김 / 작은씨앗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처음 이 책의 시놉시스를 읽었을때 놀랍게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의 '야간행군'생각이 떠올랐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방도시의 카톨릭 미션스쿨을 다녔던 나는 성당에서 주최하는 성경여름캠프에 어렵게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참가하게 되었다.

카톨릭 청년부의 단합과 성경 공부라는 의도였지만 내심 우리들은 남녀공학이 흔치 않았던 그 시절,

같은 또래의 남녀학생들이 공식적으로 허락받은 미팅정도를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신나고 재미있는 캠프를 기대하며 캠프 몇주부터 다들 마음이 들떠있었던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와는 너무나 다르게 캠프의 첫 시작은 성당에서부터 밤을 새워 걸어서 캠프지에 도착하는 것이였다. 정확하게 거리가 어느정도였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대락 40,50km는 족히 되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첫 시작은 즐겁고 흥겨웠다. 특별할것 없는 여느때의 여름방학과든 달리

친구들과 밤새워 얘기하면 걷는다게 얼마나 신났던지 처음엔 다를 재잘재잘 말도 많았었다.

하지만 밤이 깊어가고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행군에 다리는 아파오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즐거운 나들이"는 점점 고역으로 변해갔다.

 

다를 말수도 눈에띄게 줄어들었고 여기저기서 끙끙대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들의 신부님과 수사님은 사랑과 포용은 커녕 우리에게 군인정신(?)을 부르짖으셨고 다리뼈들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릴때쯤 뜬금없이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맨날 토닥토닥 싸우기만했던 동생이 갑자기..한없이 그리워졌다. 왜 군대를 간 다 큰 남자어른이 "지금 이 순간

제일 그리운 사람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천편 일률적으로 "고향에 계신 부모님입니다"라고 대답하는지 그 이유가 납득이 되는 순간이였다.

 

몸이 고되고 말이 없어지면서 오히려 머리속은 맑아지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것 같다.

한 밤의 힘겨운 행군은 논두렁에서 울어대는 개구들의 울음소리가 동행해주었고, 별똥별들이 함께 해주었고 그리고 친구들의 격려가 있었기에 낙오하지 않고 새벽녘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리들은 서로 얼싸안고 반쯤 울었고 부모님의 은혜를 부르라는 신부님의 명령(?)에 다들 목놓아 울었다.그리고 나의 18살의 아주 특별했던 추억하나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나의 경험담과 싱크로율 99%인 주인공 미치루의 얘기를 담은 책이다.

주인공인 미치루는 아버지 없이 엄마와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매사에 정확하고 똑부러지고 흐트럼없는 엄마는 혼자서 아버지의 몫까지 거뜬하게 해내는 커리어우먼이다. 그런 엄마가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다리를 다쳐걷지도 못하게 되었다. 병원에 입원한 엄마는 평소 미치루가 알고 있던 엄마의 모습과는 너무 달랐다. 넋을 놓은듯 희망없는 눈동자는 미치루를 알수없는 불안으로 내몰았다.

 

이런 상황에 매사 엉뚱한 외삼촌은 평소 조카들에게 용돈한번 주지 않더니 뜬금없이 100km 걷기 대회에 거금 만이천엔의 참가비를 내고선 미치루의 허락도 없이 참가신청을한다. 이런 얼토당토 않은 대회따윈 절대 참석하지 않을거라 했던 미치루는 동생의 빈정거림에 욱해서 걷기대회에 심드렁하게 참석하게 된다.

화려한 스포츠 의상과 장비들을 갖춘 천5백명의 참가자중 초라한 행색을 한 미치루도 끼여있다.

 

모양새 안나는 학교 체육복에 낡은 운동화, 초등학교때 구입한 싸구려 배낭에다 일행 한명 없이 혈혈단신 출전한 사람은 미치루 혼자뿐인듯하다.

혼자 걷는 길은 의외로 힘겹다. 걸으면서 미치루는 생각한다.

"내가 100km를 완보하고 나면 어쩌면 엄마도 사고전의 활기찬 모습으로 되돌아 올지도 모른다"지쳐가는 자신을 채찍질하며 걸음을 내딛는 미치루..

100km미터를 구역마다 정해진 시간안에 도착해야지 기권처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매순간쳐지지 않도록 신경을 쓰면 걸을 수 밖에 없다.

미치루가 점점 지쳐갈때 무나카타 할아버지를 만나 얼마동안 같이 걷게 된다.

할아버지가 건네는 초콜렛 몇알과 몇마디 말은 지쳐가던 미치루에게 큰 힘이 되었다.할아버지에게 우비도 선물받고 30km 체크포인트에 도착해서 둘은 기념 사진도 함께 찍는다.

불과 몇분전에 만난 생면부지의 할아버지인데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그렇게 가까워 질 수 있다는게 미치루는 의아할 정도다.

 

결승점에서 만나자라는 할아버지의 인사말과 함께 다시 혼자가 걷게되는 미치루.

8시간 반을 꼬박걸어 절반인 50km에 도달했을 무렵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할아버지한테서 받은 우비가 없었다면 낭패를 볼뻔했다.

운동화도 젖고, 바지도 젖고, 체온도 내려가 한발 디디는것이 여간 고통스럽지 않다.비틀거리며 걸으며 미치루는 자기어깨를 누르고 있는 현실이 너무 버거움을 느낀다.온몸에 붕대를 감고 병실에 누워있는 엄마, 철딱서니 없는 동생, 외삼촌은 어른이 되서자기 앞가림도 못하고, 엄마의 부재로 집안일은 온통 내차지이고..서러움에 복받쳐

그렇게 비오는 밤길을 미치루는 꺼이꺼이 울면서 혼자 걷는다.

"눈물은 좀처럼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어두운 밤길, 가끔식 자동차가 지나가는 좁은 길을

그렇게 펑펑 울면서 하염없이 걸었다. 빗속에 쉴곳도 마땅치 않아 기권하고 싶어도 도리가 없어 계속 걷는 수밖에 없었다 (본문중에서)"

우리네 고단한 인생처럼 미치루 또한 포기할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는 길을 걷고 또 걷는다.

 

60km체크포인트에 도착한 미치루는 더이상 걸음을 내딛을 수 없을만큼 지쳐있었다.이쯤해서 기권하고 기권버스에 오르면 더이상 걷지 않아도된다.따뜻한 차안에서 편히쉴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 미치루는 요이치라는 소년을 만나게된다.

소년과 함께 다시 걷기 시작한 미치루..

"사실 나는 몇번이나 기권하려 했었다.(중략)..신기하게도 그때마다 누군가가,

아닌 무언가가 나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했다. 나의 등을 밀어주었고, 나의 손을 잡아끌며 같이 걸어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지금도 이렇게 걷고 있는 것이다(본문중에서)"

 

마지막 8km를 남겨두고 있을때 미치루는 무나카타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된다.

무척이나 지쳐있는 할아버지는 이쯤해서 포기해야할듯하다고 한다.

"할 수 있어요, 도착할 수 있어요,할아버지!"

미치루는 큰소리로 할아버지를 격려한다. 얼마전 할아버지한테서 격려를 받았던 미치루는어느새 걸어온 거리만큼 강해져있었다. 할아버지와 미치루 그리고 요이치 그 세명은 지친몸을 그렇게 서로 위로하며 100km미터 결승점에 도달한다.

미치루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린다.

"지금은 알 것 같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만큼 분명하게 알 것다. "축하합니다!"

라는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기분 좋은 말인지!

힘들때 "힘내!"라는 그 평범한 한마디가 얼마나 고마운 말인지를!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느낄 때 갖게 되는 감사의 마음이 얼마나 깊고 따뜻한 것인지를!(본문중에서)

 

결승점에서 휠체어를 탄 엄마가 미치루를 기다리고 있다.

"장하다 장해, 우리 딸!"

"엄마는 네가 자랑스러워"

"나도 엄마 딸인게 자랑스러워!"

 

이야기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나는 이 소설을 펼쳐서 끝까지 단숨에 읽었다. 그녀와 함께 100km를 꼬박 함께 걸었다.

한 밤에 혼자걷는 미치루의 한발 뒤에서 격려하며 또 격려하며 함께 걸었다.

비속을 울며서 걷는 미치루의 뒤에서 나도 함께 울었다.

지치고 힘든 미치루의 등을 밀어주고 주저앉은 그녀의 팔을 잡고 일으켜 세우며 함께 걸었다. 17살 어린 소녀가 걷는 그 길이 왜 그렇게 내 마음을 흔들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미치루보다 조금 어린 딸을 두고 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나는 이 책을 딸에게 선물하고자 한다. 내 딸이 이 책을 읽고 많은것을 느끼기를 원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인생이란 이렇게 밤길을 혼자 걷는것 처럼 두렵기도 하고 비를 맞아 춥고 지치고 힘들기도 하지.

길을 걷다 보면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단다. 걷다 보면 정말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때도 있겠지만

너는 혼자가 아니다. 너에겐 함께 손잡고 걸어줄 가족이 있다는걸..

엄마는 네가 그걸 꼭 기억해주길 바래.

그러니 아무리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마라. 네 길을 꿋꿋하게 그렇게 걸어가야 한다.

나는 언제는 너를 응원할 것이며 네가 세상에 밀리지 않고 강해지길 바란다.

사랑한다.. 내 딸....!

 

그리고 미치루... 장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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