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 너머 한 시간
헤르만 헤세 지음, 신동화 옮김 / 엘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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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는 독일 출신 소설가로 194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청소년 시기의 성장 소설로 잘 알려진 데미안을 비롯하여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유리알 유희등이

정말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을 발표하였습니다.

헤세의 작품 중 '자정 너머 한 시간'은 그의 첫 산문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정 너머 한 시간'은단편, 중편들을 모아 출판한 책으로 헤세가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크게 주목받기 전의 초기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어서 그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선물 같은 책이될듯 합니다.

이 책을 출판한 이는 오이겐 디더리히스라는 출판인으로 그는 헤르만 헤세의 원고를 읽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이 상업적으로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은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의 문학적 가치를 확신합니다."

맞는 말인거 같습니다.

아직 무명이었던 그의 작품은 상업적으로 잘 팔릴만큼의 통속적인 재미라든가 해학은 없습니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만약 내가 독일어를 알았더라면 그가 사용하는 말들이 얼마나 멋스럽고 아름답게 느껴질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정 너머 한시간. 이 제목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로지 시간적인 관념에서 생각한다면 깊은 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사색과 고독의 시간을

의미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헤세도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네요

"자정 너머 한 시간의 산문 습작들에서 나는 자신을 위해 예술가의 꿈나라를, 미의 섬을 창조했고

그 시적 특징은 낮 세계의 풍파와 저속함에서 밤과 꿈과 아름다운 고독으로 물러나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라면 최소한 나와 헤세는 코드가 맞는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그가 말한 습작들은 이 시간에 가장 잘 어울릴지는 작품들인듯 합니다.

첫번째 작품인 "섬 꿈"에서 주인공은 바다를 표류하다 어느 섬에 도착하게 되는데 그 섬에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가득합니다.

그곳에서 환대를 받은 주인공은 무리의 여왕과 얘기를 나누게 되고

그의 오랜 기억속에까맣게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녀가 이 말을 하는 동안, 내 눈앞에서 마치 영상처럼 나의 온 청춘이 정리되어 펼쳐졌고

학대당한 아이의 눈으로 슬피 나를 바라보았다"

그가 도착했던 그 섬은 삶에 지쳐 허우적거리다 찾은 천국이었을까요?

아니면 힘든 현실을 피해 도망간 피난처였을까요?

깊은 밤, 꿈 속에서 찾은 지친 삶의 피난처인 섬은 지친 심신을 치유받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힘을 얻는 곳인지도 모르겠네요.

작별이란 아무리 배워도 끝이 없는 예술이죠. 단신이 언젠가 돌아와 내게서 빛을 얻어 갈 걸

나는 알아요. 언제가 당신에게 더 이상 노가 필요

없을 때 말이예요

'말 없는 이와의 대화' 라는 단편 소설도 헤르만 헤세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와의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이야기는.. 대화라기 보다는 화자의 독백같은 이야기는

도대체 누구를 앉혀놓고 이렇게 열심히 떠드는(?)거야..라는 1차원적인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아무런 대꾸도 없는 이를 향해 열심히 묻고 이야기하는 쪽은 한사람.

결국 이 작품은 이야기 하는 화자의 혼자만의 대화가 되지만 반응없는 '말 없는 이'의

존재에 대해 궁금증도 희미하게 하고는 말하는 이의 이야기에 빠지게 되죠.

누군가가 내 얘기를 듣는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채 묵묵히 듣고만 있다면 결국은

내가 내 뱉은 질문들에 대한 답은 내가 내게 마련인거죠.

어쩌면 헤르만 헤세도 같은 맥락으로 이 '말없는 이'의 존재를 앉혀놓은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듭니다.

어떤때는 성의없는 대답이나 추임새보다 그저 말없이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기도 하니까요.

나는 또 내 육신의 한 부분처럼 널 사랑하고, 동트는 날처럼 널 사랑하며

너 자신의 모상처럼, 나의 악마와 나의 섭리처럼 널

사랑해.

그런데 너는 날 어떻게 사랑하지?

"게르트루트 부인에게'라는 단편에서는 게르트루트 라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우정을

이야기합니다.

"잠든 나의 꿈속에서 자주 당신 몸의 형체가 보이고 당신의 고상한 손에서

마디가 섬세한 흰 손가락들이 그랜드 피아노와 건반에 놓인 것이 보여요"

밤의 시간은 어쩌면 가장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하는 이의 형상을 그려내고 맘껏

그리워하는 시간입니다.

'야상곡'또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하루중 밤의 정서를 담아 작곡된 음악 장르를 야상곡이라 하듯

밤의 정서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단편 소설입니다.

밤의 산책같은 느낌의 이 글 또한 어둠이 주는 신비롭고 꿈 속을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의 글입니다.

헤르만 헤세가 초기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밤이라는 소재는 그 이후로도 헤세가 자주 작품에게

사용하는 중요한 소재입니다. 밤이 주는 고요와 사색의 자유로움, 그리고 고독과 두려움을

밤이라는 시간적 장치를 통해 마음껏 표현하였고, 그러한 작품들에 앞서 써내려간 작품들이

'자정 너머 한 시간'이라는 책에 고스란히 모여 있으니, 헤세의 팬들이라면 분명 반가울 책입니다.

분량은 많지 않으나 헤세의 작품들의 시작을 접할 수 있고, '상품성은 없으나 문학적인 가치는 확신한다'는

출판인의 말처럼 그의 문학적인 깊이를 이해하기에 좋은 책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오래도록 곱씹으며 생각하게 되는 책을 만나게 되어 반가운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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