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드롭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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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하고 밝은 둥근 달빛, 달빛을 받아 푸르게 반짝이는 나무들, 그리고 밤을 달리는 기차가 그려진

그림이었습니다.

'여행 드롭'이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멋진 표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표지를 들여다 보고 있으니 얼마전 목포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KTX의 의자에 몸을

기댄채 어두운 바깥 풍경을 내려다보던 내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에세이의 주제는 '여행'이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여행'은 가방을 이고매고 끌고 집밖을 나가지 않더라도

여행지에서 챙겨온 작은 기념품, 사진 몇장, 버리지 않고 넣어두었던 여행지의 입장권,

그런것으로도 충분히 여행을 되새길 수 있다는 것을 그녀의 특유의 시크하면서도

담백한 문체로 써내려 가고 있습니다.

하긴 나도 책 표지를 보면서 목포 여행을 떠올렸으니 시공간을 초월하여 떠날 수 있는

여행이란 얼마나 멋진 일인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보면 여행을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늘 살짝 고독함을 느낍니다.

여행전의 기대와 설레임을 여행지에서 하얗게 불태우고 영혼이 좀 털린듯한 모습으로

일상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솔직히 좀 우울한 일이기도 하죠.

마치 월요병에 시달리는 직장인마냥 목포여행에서 돌아오는 밤 KTX안에서 혼자만의

고독과 외로움을 음미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도 '밤의 신간센은 외롭죠'라는 글에서 이런 말을 남겼네요.

밤의 신칸센은 외룝죠

혼자 타고 있어서 외롭고

차창에 사람들 모습이 비쳐서 외롭고

모두들 지쳐서 잠든 것도 외롭고

그녀와 같은 마음이라 반갑고 기쁘네요.





에쿠니 가오리가 남편과 함께 하코네의 온천여관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그곳에서 태풍을 만났다고 합니다.

기분 좋을 정도로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우, 안구는 물론 내장까지 씻기는 듯 비가 내렸습니다.

바람은 휭휭 불어대고 나무들은 휘청휘청하고, 번개도 쳤습니다.

하지만 그녀와 남편은 온천을 들락거리며 쏟아지는 폭우를 즐겼다죠.

다음날 도쿄로 되돌아 오기 위해 여관을 나섰는데, 그때서야 버스도 전철도 다 끊긴걸

알게되었다네요. 아마 그후로 그녀는 천둥치고 번개치며 쏟아지는 비를 볼때마다

하코네를 떠올릴듯 합니다.

저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코타키나발루로 여름 휴가를 떠났을때의 일입니다.

어찌된 일이지 우리 가족만 무료 객실 업그레이드를 받아 숲속 빌라로 배정이 되었습니다.

말레시아 전통을 살린 단독 빌라였는데 새소리에 눈을 뜨게 되는 정말 환상적인 곳이었습니다.

이틀째 되는 날 아침에 앞이 안보일 정도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발코니로 나와서 쏟아지는 비를 보고 들었습니다.

얼마나 세차게 비가 내리는지 옆에서 하는 말소리도 안들릴 정도였습니다.

천둥도 치고 번개도 치더군요. 에쿠니의 말처럼 내장까지 씻기는 느낌이었죠.

여행지의 숲속 빌라의 발코니에서 느꼈던 그 해방감이라니..

몇년전에 다녀왔던 코타키나발루로 다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인터넷 라디오를 산 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온 방을 가득채우는 소리의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었다는 에쿠니 가오리.

북유럽의 방송을 틀면, 밤의 공기가 단박 북유럽처럼 달리지고, 미국 방송을 틀면

실내가 바로 미국으로 바뀌게 되며 그 나라들을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고 합니다.

요즘은 라디오보다는 아무래도 인터넷 세상이라 저는 얼마전에 엡을 하나 깔게 되었습니다.

CCTV가 설치되어 있는 세계 여러나라의 거리의 모습을 라이브로 볼 수 있는 앱입니다.

(이걸 왜 깔았을까요.)

암튼 미국, 프랑스, 동남아 이쪽 저쪽을 살펴보다가 일본의 신주쿠의 횡단보도를

비추고 있는 라이브를 찾게 되었는데 신호등이 바뀌면 사람들이 리얼타임으로

우루루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이 보입니다.

소리도 안나오고 화면 뿐인데 그걸 보고 있으면 저도 마치 도쿄의 신주쿠 거리의 횡당보도를

건너 로손 편의점으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에 빠질정도로 신선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방구석에서 리얼 타임으로 세계를 여행하는 느낌이 듭니다.

에쿠니씨에게도 권해드리고 싶네요.





여행이란 집에서 어디까지 벗어나야지 여행일까.

에쿠니 가오리씨는 어릴때 살던 동네에 오랫만에 찾아갔을 때, 아주 먼 곳에, 아주 다른 시대에 있는듯한

착각이 드는데 이것을 당일치기 여행으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같은 세타카야구 라고 해도, 낯선 동네, 가보지 못한 곳을 서너시간 외출하여

다녀오는 것도 그녀에게는 여행이 됩니다.

그러고 보니 얼마전에 모임이 있어서 도봉구 쌍문동에 간적이 있었습니다.

우리집과는 전철로도 상당히 거리가 있는 곳이었는데 같은 서울인데도 뭔가 좀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낯선 동네, 낯선 가게들, 낯선 골목, 전철도 지하가 아닌 지상으로 달리는게 여간 신선한게

아니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님의 시선으로 보면 전 분명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온거네요.

하~~ 늘상 여행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여행의 정의를 좀 더 넓혀보니

이렇게 신박한 여행 방법이 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니 몹시 억울하지만

몹시 기쁘기도 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에쿠니 가오리와 함께 이곳 저곳 참 많이도 여행을 갔다온 느낌입니다.

그녀의 시선에 촛점을 맞추니 저의 추억속의 여행들이 다시 반짝이는 느낌이었습니다.

머리 속을 조금 비우고 담백하게 살아가고픈 날에 에쿠니 가오리의 '여행드롭'을

권해드리고 싶네요.

무언가에 결박당한듯 답답했던 몸과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 들거예요.

지독한 감기몸살로 2주동안 앓아 누웠습니다.

회사도 5일이나 결근을 하였습니다.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길래 병원을 3군데를 옮겨다니고서야

발작성 기침을 가라 앉히는 호흡기를 처방 받고서야 조금씩 좋아지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제일 먼저 한게 동남아 휴양지 검색이었습니다.

검색하면서 웃었습니다.

다 죽어가더니 살만해지자 마자 여행지를 검색하는 게 웃겼고, 가방을 이고 지고 끌고

대문을 나설 생각만으로 행복해서 웃었고, 그리고 죽을때까지 두고두고 되새김질할 추억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뻐서 웃었습니다.

매일을.. 일상을.. 여행같이 살아갑시다.




함께 온 이쁜 다이러리는 어떻게 사용하는게 좋을지 고민고민하다가

여행지의 정보를 정리하고, 나만의 여행계획을 세울때 쓸까합니다.

밤의 신칸센 표지를 볼때마다 아련해지겠네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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