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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의 인생 꽃밭 - 소설가 최인호 10주기 추모 에디션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23년 9월
평점 :
내가 세월의 빠름에 화들짝 놀랄때가 있다.
어린 아이들이 커서 어느샌가 성년이 되었다는 이야기와,
고인이 되신 분들의 10주기, 20주기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그저 세월이 쏜살 같이 앞으로 내달려가는걸 물끄러미 쳐다볼 수 밖에 없게 된다.
우리 시대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였던 최인호 선생님이 타계하신지
올해로 10주년이 되었다고 한다.
<바보들의 행진>, <고래사냥>,<겨울나그네> 등 70년대 말부터 80년대까지
그의 많은 작품들이 영화화되어 스크린에 올랐고, 그때마다 우리들은 친구들과
극장을 찾아서
젊음의 특권인냥 영화를 만끽하곤 했다.
소설가 최인호 선생님의 10주기 추모 에디션으로 나온 '최인호의 인생 꽃밭'은 드물게
소설이 아닌 에세이다.
주변의 사소한 이야기들을 꾸밈없이 적고 있다. 특히 많은 부분에서 그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내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어릴때의 추억과 종교에 관한 이야기, 자신의 작품에 관한 이야기, 친구들과의 이야기
일상의 이야기들을 풀고 있는 그의 에세이에서 인간 최인호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된다.
특히 그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얘기하는 부분은 울림이 되어 전한다.
"어린 시절 나는 엄마에게 꾸중을 들으면 엉엉 우는 버릇이 있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요즘도 나는 이 세상의 모든 고통에 신음하고 통곡한다.
인간은 존재하는 것 자체로 상처입고, 슬퍼하는데, 작가인 내게 있어
문학은 그 고통에 감응하는 눈물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쓰는 문학은 어린 날 내가 울던 하소연의 눈물과 같은 것이다."
그가 천재 작가, 우리 시대 최고의 작가로 손 꼽히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것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무게와 고통을 공감하고
작품으로 탄생시키기까지 그가 지새웠을 밤의 깊이를 헤아릴 수 있을것 같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이 지금껏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에세이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아내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게 읽었다.
"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내의 잔소리를 좋아한다.
겉으로는 신경질 내고, 듣기 싫어하는 척하지만 아내의 잔소리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는다.아내의 잔소리는 침을 놓은 것과 같다.
아내는 내 정신과 육체의 급소를 기가 막히게 말고 있다.
아내는 언제 그 급소에 침을 놓아햐 하는지 타이밍까지 알고 있다."
함께 나이들고 늙어가는 배우자를 향한 신뢰와 애정을 담은 작가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평균 수명이 늘어났으니 나를 낳아준 부모님보다 더 오랫동안 삶을 함께 하는
이가 배우자일 것이다.
공기처럼 너무 익숙해져서 함께하는 고마움을 모르고 불평불만만 하고 살아가는 부부들이 참 많다.
서로에 대해 측은지심의 눈길로 본다면 힘들고 빡빡한 인생 여정에 이만큼 나를
잘 알고 있는 든든한 친구같은 이도 없을텐데, 아내의 잔소리(또는 남편의 잔소리)조차
잔소리가 아닌 조언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현명함을 가져야겠다.
태양이 내려비춰주는 햇빛을 사랑했던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열정이
사그라들지 않기를 바랬다. 뜨겁게 한 시대를 살았던 작가 최인호의 에세이를 통해
나 또한 그렇게 나다움을 잃지 않고, 몸은 쇠퇴해져가지만 열정만큼은 젊음을
유지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갖게 된다.
" 오, 테양이여, 오 나의 태양이여, 너 참 아름답다.
폭풍우 지난 후 더더욱 찬란핟.
우리의 삶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는 없으나
이 지상에 머물러 있는 그때까지 나의 태양이여, 나에게 뜨거운 열정을 다오"
사람들과의 교감, 가족에 대한 사랑, 일상의 사소한 이야기, 자신에 대한 반성,
소설이 아닌 에세이를 통해 꺼내놓는 작가 최인호의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와 더욱 친숙해진 느낌을 받게 된다.
나이를 먹으면서 오히려 편협되고 세상사에 뽀족해 질때가 있는데,
부족함 많은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나의 가족과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너그러움과
애정어린 시선을 보내고 부드럽고 안온한 삶이 되도록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