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사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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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외국작가 코너에 가게 되면 필히 눈에 띄는 작가가 있다.

일본의 최고 베스트 셀러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다.

그는 다작을 하는 작가로써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소설 작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어느새 내 책장에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이 더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을 훑어보면 추리소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탁월한 감각으로

잘 엮어내는 천부적인 글쟁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 책의 원 제목인 [片想い]는 혼자하는 사랑이라는 뜻으로 한국어로는 외사랑,

짝사랑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짝사랑보다는 외사랑이라는 어감이 더 애잔하고 아련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래서 그런지 책을 끝까지 읽어내려가다보면 애잔한 먹먹함이 남게 된다.


이 소설은 젠더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화해내기 어려운 이야기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살짝했지만

작가의 명성답게 조리있고, 스토리에 무리가 없이 이야기를 끌고 가서

위화감없이 읽어내려 갈 수 있었다.






주인공인 데쓰로는 대학교때 미식축구부에서 활동하던 에이스 쿼터백이다.

11월 세번째 금요일, 그 당시 함께 필드를 뛰었던 미식축구부원들의 정기 모임이 있는 날이다.

쿼터백도, 런닝백도 라인맨도 이제는 중년으로 넘어가는 나이가 되었다.

배도 나오고, 어깨와 등에 살도 붙고, 좀 움직이면 숨이 차는 아저씨들이

되었지만

한해의 끝무렵에 술 한잔을 나누며 날렵하게 필드를 뛰어다녔던 청춘의 그날을 공유한다.


남자들중 상남자들만 할 수 있다는 미식축구부원들의 이야기에서 강자만이

이기는 숫컷들의 세상과 찐한 우정을 엿볼 수 있다.

술자리를 끝내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데쓰로와 스가이는 미식축구부의 매니저로 있던 히우라 미즈키를 10년만에 만나게 된다.

오랫만에 만난 그녀는 어딘가 좀 낯설었다.


성정체성으로 인해 오랫동안 고통 받았다고 고백하는 미즈키의 이야기에 데쓰로는 크게 당황한다.

한때 미즈키와 잠자리를 했던 적이 있었던 데쓰로는 과거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때의 미즈키는 분명 여자였는데...' 지금은 목소리마저 굵은 남자가 되어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미즈키의 고백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자의 몸을 하였지만 남자의 정신을 가진채 더 이상은 결혼 생활을 견딜 수

없어서 집을 나와 남자로 모습을 바꾸고 바에서 바텐더로 일을 하였다.

그런데 같은 바에서 일하는 호스티스를 상습적으로 스토킹하던 저질 변태같은

남성과 싸움끝에 목졸라서 죽였다고 한다.


여자였던 미즈키가 남자로 나타난것도 놀라운데 살인을 하였다니..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아니 그..를 지키기 위해 데쓰로와 그의 아내 리사코는

사건속으로 깊숙히 개입하게 된다.

한때 미즈키의 연인이었던 고스케도, 살인 사건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는

스가이도, 신문기자로써 자신의 신념대로 글을 쓸 수 밖에 없다던 하야타도

우정으로 미즈키를 지켜낼려고 한다. 사건속으로 들어갈수록 이야기는 반전과 추리와 뒤섞여 재미를 더하게 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매번 그랬지만 7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도

순신각에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가독성이 좋다.

그의 장점중의 최대 장점이다.


소설 외사랑은 1999년부터 주간문춘에 연재되기 시작했으니 20여년전의 소설이다.

지금도 사회적으로 민감한 젠더에 대한 이야기를 그 시절에 다루었다니 어찌보면 작가에게도 도전이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 소설이 쓰여지기 몇년전.. 나는 학생신분으로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 당시 신주쿠 부근의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워낙 주변이 번화가라 저녁이 되면 빵집 앞을 지나는 사람들도 많았고

인기 많은 빵집이라 가게를 찾는 손님들도 많았다.

저녁이 되면 종종 평범하지 않은 손님들도 가게에 들어와서 빵을 사가기도 했는데 푸르스름한 수염자리가 역력히 보이는 얼굴에 거친 화장을 하고 긴 머리

가발에 여성복을 입은 사람들을 보게된다.

한국에서는 도통 보지 못했던 모습이라 적잖이 당황했지만 당황한 표정을 숨길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남자 아니 여자를 따라다니며 희롱비스므리하게 남자들도

함께 가게에 오기도 했다.

곰곰 생각해보면 이미 그때에도 남자의 몸을 하고 있으나 여자의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던거 같다.

다만 한국과 다른 점은 한국에서는 그런 모습으로 다니게 되면 사회적으로 매장되기 쉬운데

일본은 한국보다는 비교적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이 쉬웠고, 주변 사람들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던 것 같다. 어느새 나도 그런 모습에 익숙해져서

무덤덤해졌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이 세상에는 3가지 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남성, 여성, 그리고 소수의 제3의 성..

이제는 조금 더 열린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남녀의 경계는 모호하니 남자, 여자 2분법으로만 나누지 말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절대적인 기준은 존재하지 않으니 사회통념으로 억지로 선을 긋으면 탈이 날 수 있다.


그래서 성정체성 장애를 안고 어렵게 버티고 있는 이들이 타인의 손가락질에 상처입고

더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이 없기를 바래본다.

신의 실수인지 모르겠지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그 어떤 모습이든

존엄성을 존중받아야 하는거 아닐까..

소설의 말미에 이런 저런 생각을 보태게 된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이 뫼비우스 띠 위에 있어요.

완전한 남자도, 완전한 여자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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