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차 방앗간의 편지
알퐁스 도데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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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퐁스 도데라고 하면 별이라는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이다.
그는 선천적으로 민감한 감수성을 지녔고 섬세한 시인의 기질을 가졌다.
그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한편의 시를 읽는 것 같은 유연한 문체가 매력적이다.
또한 그의 고향인 프로방스 지방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읽고 있노라면
인상주의파 화가들의 한폭의 그림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풍파 방앗간 편지는 1866년부터 쓰기 시작해서 '프로방스의 연대기'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던 단편 소설들을 모아 [풍차 방앗간의 편지]라는 이름으로 출판하였다.
이 작품은 머리말을 포함하여 총 25편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단편을 읽다보면 이야기 잘하는 이야기꾼의 얘기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듣고 있는 청중이 된듯한 느낌이 들곤했다.
그의 작품에는 풍자와 해학이 있고, 인간미가 있고, 사랑스러움이 있다.




도데의 작품을 이야기하다보면 빠지지 않는 단편 소설이 있다.
프로방스의 어느 양치기의 이야기를 담은 [별]이라는 작품이다.

양치기가 짝사랑하는 주인집의 아름다운 스테파네트 아가씨와 우연히 
깊은 산속에서 하루밤을 같이 지내게 되는 이야기이다.

병이 난 머슴을 대신하여 보름치의 식량을 전달해주고 돌아가던 아가씨는 
소나기로 불어난 계곡을 건너다 물에 빠져 죽을뻔하고 흠뻑 젖어 추위에 떨면서
저녁무렵 양치기의 산장으로 울면서 돌아온다.
그날 밤 잠못 이루는 아가씨에게 모닥불 앞에서 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던
양치기의 어깨에 졸음을 이기지 못한 아가씨는 살며서 그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든다.

가슴이 약간 두근거리긴 하였지만 오직 아름다운 생각만을 하게 해 준, 
청명한 밤의 신성한 보호를 받으며 잠자는 아가씨의 모습을 지켜보며
 '가끔 나는 이 수많은 별 중에서 가장 곱고 가장 빛나는 별 하나가 길을 잃고
헤매던 중 내 어깨 위에 내려앉아 잠이 든 것이라고 상상했다'

소설을 이렇게 끝을 맺는다.

이 글은 내 기억으로 고등학교 교과서 실렸던 글이다.
양치기의 순수한 사랑과 수 많은 별이 반짝이는 동화같은 아름다운 밤.
사춘기 소녀에겐 더 할나위 없이 아름다운 이야기였고, 알퐁스 도데의 다른 작품을 
읽지는 못했지만 내 머리속에 도데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는 작가의 이미지로 굳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후 대학교에 진학하여 선후배들과 [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야..아가씨를 그냥 보내냐. 등신이네'하며 히죽거리던 남자 선배는 
나의 아름다운 소설을 더럽혔다는 죄목으로 그이후로 오랫동안 상종을 하지 않았던 웃픈 기억이 있다.





여러 작품중에서 유달리 가슴에 남는 작품은 [코르니유 영감의 비밀]이라는 소설이다.
증기 제분 공장이 세워지게 되자 풍차 방앗간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
얼마동안은 버텨보았지만 증기 제분 공장을 당해낼 수는 없는 법.
결국 하나 둘 풍차 방앗간은 문을 닫게 된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코르니유 영감의 방앗간 풍차는 꿋꿋하게 버티며 힘차게 빙글빙글 돌고 있다.

아무도 일감을 맡기지 않는데 어떻게 풍차방앗간이 돌아가는거지?
마을 사람들은 의문에 쌓인다. 
그리고 결국 꽁꽁 걸어잠군 영감의 풍차방앗간에 들어가 본 모습은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코르니유 영감이 누구도 몰래
석고를 밀처럼 빻아대고 있는 모습이었다.
코르니유 영감의 사정을 알게된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 일감을 들고 영감의 방차방앗간으로
몰려든다.

'가엾은 영감이 포대를 열고 방아를 살피느라 동분서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모두 눈물을 글썽였지.'

괜히 나도 눈시울이 뜨끈해졌다.
참으로 따뜻한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지 않을 수 없다. 
이로써 도데에 대한 나의 믿음과 신뢰는 한층 더 두터워진듯하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으로 인해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청년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인
[아를의 여인]은 이후 비제에 의해 작곡됨으로써 더욱 애절한 작품으로 남아있다.
[세미양트호의 최후],[세관원]에서는 인간의 죽음과 고단하고 버거운 삶이지만
묵묵히 살아가는 서민층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비극적 슬픔과 삶에 대한 
애환을 엿볼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좋았다.

나는 이 작품들이 쓰여지기 시작한 1866년도 한국은 어떠했을까 생각을 해봤다.
아이러니하게도 천주교박해로 인해 프랑스군이 함대를 몰고와 강화를 침략하는
병인양요가 터진 해이다.
고종이 즉위해있던 조선말기 이미 일본의 입김이 쎄지고, 낯선 서양의 문물을 만나기
시작하는 그때 그 시절을 살았던 가난하지만 소박하고 순진했던 민초들을 떠올렸다.
한참후의 소설들이긴 하지만 감자, 운수좋은 날, 메밀꽃필 무렵등의 소설을 
생각하면 비슷할려나 싶기도 하다.

아마 도데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방앗간 주인, 세관원, 군인들, 양치기등도 그 시절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프로방스에서 소박하게 살아갔던 서민들이겠지.
그들을 소재로 아름답고, 따뜻하고, 섬세하게 그려낸 도데의 감수성에 감탄을 
멈출 수가 없다.

한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프로방스의 푸른 숲과 향기로운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들녘,
먼지를 날리며 언덕을 오르는 노새가 이끄는 마차, 황홀한 붉은 노을..
아름다운 모습들을 머리속에 그리며 그의 소설을 읽는 동안 행복했다.

자극적인 소재도 없고, 위해요소도 없어서 아이들에게도 읽어보기를 권해주고 
싶은 [풍차 방앗간의 편지]는 알퐁스 도데의 수작들만 담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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