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죽을 거니까
우치다테 마키코 지음, 이지수 옮김 / 가나출판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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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치다테 마키코 .. 저자의 이름은 다소 생소하지만 73세인 그녀의 작품에서는 

팔딱팔딱한 생생함과 위트와 재미가 느껴져 작가의 나이를 의식할 사이도 없었다.


73세의 할머니 작가에 의해 탄생한 78세의 할머니 케릭터 '오시 하나'도 

그 나이쯤되면 의례 상상하게 되는 꼰대 노인네의 느낌이 전혀 없다.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가발을 쓰고, 네일을 하고 멋진 스카프에 어울리는 옷을 갖춰 입는

세련되고 아름다운 멋쟁이 할머니다.


혹자는 그 나이에 주책이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나이를 먹었으니, 곧 죽을 나이니까 라며 말끝마다 노인임을 강조하고 

뒷방 늙은이 같이 쳐져 있는것 보다 내눈엔 사실 훨씬 더 좋아보인다. 


동창회에서 만난 도저히 같은 나이로 보이지 않던 영락없이 그 나이의 할머니, 

할아버지인 동창들의 모습을 보며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자신의 젊고 세련된 모습에 

속으로 환호하고, 재능없는 그림을 그리며 어설픈 화가 흉내를 내는 꽤재재한 

모습의 큰 며느리도 탐탁치않다.


도쿄의 아자부라는 지역에서 주류도매업을 하는 그녀에게는 평생 종이접기가 취미이고

가게를 성실히 이끌어오던 남편이 있었다.

남자의 취미치고는 수수하다 못해 답답스러워 보이지만 평생 한눈 팔지 않고

'하나는 나의 보물이야', '평생 내가 가장 잘한 일은 당신과 결혼한 일이야'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남편이 옆에 있다.

평생 일궈온가게를 장남에게 물려주고 맨션에서 보내는 노부부의 소소하면서도 유유자적한 삶..

이정도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던 그녀였다.

적어도 남편이 급사를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루 아침에 의지하던 남편을 잃은 그녀는 모든것이 다 허허롭다. 

차라리 이대로 어서 남편을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외출할때는 치장을 한다. 

본인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남들의 입방아에 '그렇게 죽어라 멋을 내더니 남편이 죽고나니 별수 없구만."

이라는 소리를 죽기보다 듣기 싫은 그녀의 자존심 때문에라도 치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사건이 터지게 된다.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뜻하지 않는 곳에서 발견된 남편의 유서.

평소 유서따윈 절대 쓰지 않을거라고 늘 입에 달고 살던 남자가 친필로 쓴 자필 유서라니..

법원 집행관까지 입회한 가운데 개봉한 유서에는 정말 뒤로 나자빠질만한 일이 적혀 있었다.


평생 한눈팔지 않고(그렇게 믿고) 취미라고는 시시껄렁한 종이 접기가 다였던 남편한테 

40년동안이나 숨겨둔 내연녀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 30대 중반의 아들이 있다는 것..

살다살다 이렇게 된통 뒷통수를 맞아본 적이 있을까 싶은데..


남편의 과거를 찾아간 '하나'는 여의사인 세컨드와 의젓하게 자란 남편의 아들 앞에서도

악다구리를 쓰기는 커녕 품위을 지키며 꼿꼿하게 그리고 예의를 갖춰

그들의 잘못을 요목조목 일깨워주는 '일본식' 복수극도 통쾌하게 펼친다.



한국의 드라마였다면 아마 귀싸대기 몇 대도 모잘라, 

얼굴들고 못살게 만들겠다며 동네방네 부정한 여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을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40년이나 감쪽같이 자신을 속인 남편과는 '사후이혼'을 하고

자신은 죽어서도 남편 옆 무덤에 들어가는 걸 거부한다.

한국식 복수와 일본식 복수는 정서적 차이도 있어서 많이 다르다 싶은데

'하나' 할머니의 복수는 일본인들의 눈에는 꽤나 고소하고 통쾌한 복수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쩜 모두 불행해질 수 있었던 일이었지만 우리의 멋쟁이 할머니 '하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멋드러지게 정리하고 

아들, 딸, 손주, 며느리..심지어 세컨드의 아들에게 조차 '노인의 품격'을 갖춘

멋진 할머니로 추앙 받으며 그녀답게 그녀의 방식으로 

곧 죽을테니까.. 

곧 죽을거지만.. 

곧 죽는다해도.. 고고하고, 세련되고, 품격을 잃지않고 오늘을 살아간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젊었을때 살았던 일본에서의 생활과 한국과 꽤나 다른

그들의 사고방식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였다.

종종 전철에서 위아래, 모자까지 깔맞춤한 조금은 요란하게 멋을 부린 

일본의 할머니들을 만날때가 있었다. 


물론 다 그런건 아니겠지만 내가 많이 봐왔던 한국의 할머니들은

그만한 연세라면 빠글빠글한 짦은 파마머리에 

헐렁한 월남치마나 몸빼바지, 그리고 헐렁한 셔츠를 입고 이 나이에 편한게 최고!

라고 외칠듯한데,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치장을 하고 외출을 했을까 싶었던 할머니들을 모습은 

그 당시 어린 나에게는 좀 우스꽝스럽고 이해가 안되는 모습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아무것도 모르는 오만했던 생각이었다. 


화장을 하고, 자신을 가꾼다는 것은 그 만큼 삶에 열심이라는 것을

지금 이 나이가 되니까 비로소 알것 같다. 

자신을 가꾸는 것은 자신의 삶에 깊은 애착과 의욕이 있을때에만 (그 귀찮은게) 

가능하기 때문일것이다.


주인공 하나 할머니는 '곧 죽을거니까' 이 나이에 내가 하고 싶은거 하고 살란다고 한다.

이왕이면 '곧 죽을거니까' 아무렇게나 대충 느슨하게 사는것보다 얼마나 임펙트 있은 

삶인가.. 

엄지척을 해드리고 싶다.


78세의 할머니의 이야기는 오늘 대충 널부러져 있고 싶은 나를 털고 일어나게 해주었다.

오늘은 더욱 알록달록하게 살아야겠다.




*본 포스팅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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