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선생
곽정식 지음 / 자연경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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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때 시골에서 자랐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유년 시절에는 항상 산이 있었고 들판이 있었고 개울물이 있었다. 

덕분에 주변엔 잠자리, 나비, 매미, 사마귀, 방아깨비, 메뚜기들이 항상 있었다.

약간은 뜬금없지만 한때 아버지의 과한(?) 취미로 우리집 옥상에는 

8개 정도의 벌통이 있었고, 가끔 마당에서 뛰어놀다가 이유도 없이 

벌에게 쏘여서 소위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경험도 많았다.


장난감이 별로 없었던 그 시절에 동네 꼬마 아이들의 장난감은 곤충들이었다.

재수없이 꼬마들 손에 잡힌 잠자리와 방아깨비 거미등은 반나절을 시달리다

시시해진 꼬마들의 방면으로 구사일생으로 도망가기도 하고, 가끔은 짖궂은 머슴아들의 

손에 의해 능지처참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미안한 일이다. 


시골이라 생각했던 그 곳도 개발의 바람이 불어 들판들이 사라지고 집들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개울을 복개를 하여 도로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나의 어릴적 곤충 벌레들을 보기가 쉽지 않아졌다. 


이 나이쯤 되니 어릴적 추억마저 희미해져 가물가물했는데, 

출판사 자연경실에서 나온 [충선생] 이라는 책을 보자 갑자기 반가운 생각과 함께 

어릴때 장난감이자 친구 역활을 톡톡히 해줬던 곤충들에 대한 그리움과 호기심이 생겨

무척이나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 책의 저자는 곽정식님으로 대학에서 정치와 경영을 공부하였고 

기업에서 근무하다 스위스 제네바 소재의 UN과 지방정부에서 수년간 일하셨다.

벌레하고는 크게 연관이 없는 일을 하셨는데 싶어 조금 의아하게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을 내려가면서 나는 저자의 동서양을 아우르는 해박한 지식과 

연푸른 감수성에 감동하고 말았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공부하셨으면 이만큼의 지식을 풀어놓을 수 있는건지

깊이 모를 학식의 풍부함에 빠져들어 매 페이지를 외울듯한 기세로 읽었다.




이 책에는 총 16종의 곤충과 개구리 두꺼비 뱀과 같은 4종의 '충선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각각의 곤충들에 대한 생물학적 특징과 곤충과 관련된 어릴적의 추억, 

곤충과 연관된 한자어와 뜻풀이, 그리고 그 곤충에게서 인간이 배워할 점등을 

조목조목 정성껏 서술하고 있다. 

대충 읽어도 방대한 자료와 문헌을 뒤적였을것이라 짐작이 될 정도로 자세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예를 들어보면.. 한여름이 되었음을 알리는 곤충중에 매미()를 빼놓수가 없다.

매미는 곤충들 중에서도 몸집이 크고 볼륨감이 있어 어릴때 방학숙제인 곤충 채집에서

귀하신 몸으로 대우를 받았다. 

참매미는 온도가 섭씨 23도 이상일때 울고 시작하고 말매미는 섭씨 27도부터

운다. 낮에는 도시가 시골보다 덥고 말매미는 도시의 소음을 이길 정도의

큰 소리로 울어야하기 때문에, 시골 매미보다 도시매미가 더 크게 운다는 말이 맞다.


매미의 울음소리는 구애를 위해서이기 때문에 수컷만 운다. 암컷 매미는 울지 않는다.

수컷 매미는 옆구리 근육을 비벼서 내는 소리를 배 속의 빈 공명실로 보내

소리를 증폭시킨다. 


매미 알들은 나무껍질 속에서 일년을 지내고 부화하여 유충이 되면 스스로 나무에서 떨어져 

나무뿌리 수액을 빨아먹으며 5년간 네번의 허물을 벗고 성충이 된다. 

그리고 6~7년만에 나무 위로 다시 올라가 우화와 탈피를 거쳐 비로서 매미가 된다.

매미의 탈피를 의인화 하여 매미가 허물을 벗는다는 뜻의 금선탈각(金蝉脱殻)은 

유방이 항우에게 포위되었을때 부하가 유방으로 변장하고 대신 잡히고 그 틈을 타고 

유방이 무사히 도망갔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게되면 매미 소리가 잡자기 뚝 끊긴다.

매미는 조금만 한기를 느껴도 울지 못하고 힘을 잃는다. 가을 매미를 한선()이라고 하는데

찬바람을 맞은 매미처럼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는 것을 금약한선(噤若寒蝉) 이라고 한다. 


'매미는 머리의 파인 줄이 선비의 갓끈과 비슷하니 지혜를 갖추었고, 

이슬이나 나무의 수액을 먹고 사니 맑으며, 

농부가 지은 곡식을 축내지 않는 염치가 있고, 

다른 곤충과 달리 집이 없으니 검소함이 있다. 

여기에 때를 봐서 떠날 줄 아는 신의의 덕까지 가지고 있다'

이것을 매미의 오덕(다섯가지 덕목)이라고 한다.


이처럼 매미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풍부한 읽을 거리와 지식이 담겨있다.

책을 통해 지식을 얻는 것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나로써는 보물같은 책이 

아닐 수 없다.

생명에는 귀함과 천함이 없듯이 길지 않은 생을 살아가는 한낱 미물 같은 곤충들의 삶에서도 

우리는 많은 교훈을 얻게 된다. 

곤충에 관심이 있거나 어릴때 추억이 있으신분들이라면 분명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책이라 생각된다.


이제는 낮에는 봄기운이 완연하다. 

곧 더위가 찾아올것이고 우리 주변에는 수 많은 곤충들이 풀숲에서 하늘에서 각자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예전 보다 개체수가 많이 줄고 지금은 보기가 어려운 곤충들도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이 작은 친구들을 위해서 우리가 뭐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곤충 얘기를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신이 나서 여담 한가지를 소개하고 싶다.


내가 어렸을때는 국민학교(그때는 국민학교라고 불렀다) 학생들도 도시락을 

싸들고 다녔다. 

시골의 도시락 반찬이 거기서 거기이기 마련인데, 어느날 점심 시간에 도시락 반찬통을

열다가 기겁을 한 적이 있다. 

난데없이 내 도시락 반찬통에 수십마리의 메뚜기 볶음이 가득 들어있었던 것이다.

우리 엄마는 무슨 생각으로 도시락 반찬으로 메뚜기를 볶아서 넣을 생각을 하셨는지

여쭤보고 싶지만 이미 돌아가셔서 여쭤볼 수도 없다.

속이 상해서 울상이 되어 먹긴 했지만 그날의 메뚜기 볶음은 약간의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하여 짭조롬하고 바싹하고 고소했다. 

그 이후로 나는 메뚜기 볶음을 먹어보지 못했다.

먹어는 보고 싶은데 파는데를 못봤다. 메뚜기에게는 미안하지만 가끔 이 이야기를 

동창들을 만나 맥주라도 한잔 할때 안주삼아 꺼내놓곤 하는 나의 가장 놀랍고

재미있는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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