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행복
김미원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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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불안을 기억하며 행복해진다.


김미원 작가님의 수필집 [불안한 행복] 표지에 적혀 있는 문구다.

나는 이 말을 몇일째 머리 속에 넣고 다녔다.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을 

곱씹어 보았다. 곧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이 말에 깊이 동조할 수 있었다.


몸이 피곤할때 나는 에세이를 찾아 읽는다.

다른 이들의 일상을 엿보고 함께 공감하는게 편안해서이다.

간혹 어설프게 자기의 자랑을 늘어놓거나 애써 글을 미화하고 치장하려는 작가들의 글을 읽을때도 있다. 마치 화장이나 옷 치장이 너무 과해서 오히려 천박해보이는 

사람처럼, 꾸며서 쓴 글도 나에게 마찬가지로 느껴진다. 

이런 책을 읽으면 오히려 피곤이 몰려온다.


김미원 작가의 [불안한 행복]을 읽다가 나는 핸드폰을 열고 인스타그램에다

글을 올렸다.

너무나 내 얘기 같은 중년들의 이야기라며 친구들에게 읽어보기를 권했다.



김미원 작가님의 글에는 어슬픔이나 호들갑은 전혀 없다.

진중하고 묵직하여 금속관에서 중저음을 토해내는 튜바의 음색같다.

오래 들어도 질리지 않은 악기소리처럼 작가의 글은 비슷한 나이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속에 깊은 울림이 되는 글들이라 생각한다.


특히 나이든 어머니, 돌아가신 아버지, 점점 육체가 쇠퇴해져가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쓴 

'운다고 사랑이' '목소리를 읽고 나는 쓰네' 옥니, 곱슬머리 최여사'를 읽을 때는

그분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서, 돌아가시기 전의 나의 어머니, 아버지를 바라보던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무수한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다 지우지 못한 그리움 한조각을 붙잡고 울컥거리며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사람 많은 전철 안에서 이 책을 읽지 않은걸 다행이라 생각했다. 




'불안한 행복''눈물, 그 인생의 함의''바람처럼 자유롭게'라는 글에서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는 인생 선배의 이야기에 크게 공감했다.

차 한잔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면 참 좋겠구나 라는 생각도 했다.


나이가 들고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짧다고 느껴지는 어느날부터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애써 외면하는 사람도 있을거고,내일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을듯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집을 나설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속옷을 제대로 갖춰입고 외출한다는 작가의 친구의 

이야기처럼, 어느날 갑자기 '그것'이 찾아왔을때 경황없이 허둥대지 않고

내 차례구나 하고 숙연하게 받아 들이겠다는 작가의 이야기에도 공감한다.


좋은 것은 아껴두고 싶고, 귀한 것은 서랍 속 깊숙한 곳에 넣어 두고 싶어지듯 

아.. 정말 행복해..라는 생각이 들때면 그 마음을 소중히 아껴두고 싶다.


나는 온몸의 솜털이 일어나서 흔들릴 정도의 행복감은 느낄때, 혹시나 이 행복 뒤에

얄궂은 불행이 시샘하듯 밀치고 들어올까봐 불안함을 느낄 때가 있다.

나의 행복은 불안함 위에 위태롭게 올려놓은 작은 조약돌이 아닐까 싶을때가

많았다.

작은 흔들림이나 바람에 또르르 굴러 떨어질까봐 불안한 마음에 

손에 꼭 쥐고 있던 작은 행복! 

작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흔적들을 책 여기저기서 발견하면서 

그냥 조금 기뻤다.


이렇듯 이 책은 중년을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한편 한편 읽으면서 오늘 하루를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새록하게 들게 된다.

삶이 지루하다 싶은 분들에게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삶은 불안을 기억하며 행복해진다.


여담이지만 이 말에 딱 맞는 경험을 얘기해보고 싶다.


작년쯤인걸로 기억한다. 

늦게 잠이 드는 버릇때문에 꽤 깊는 밤, 겨우 잠이 들었다 싶었는데 딸아이가 

내 방으로 뛰쳐들어오며 나를 흔들어깨웠다. 우리 아파트에 불이 났다는 것이다.


방금 로그아웃한 컴퓨터에 전원 버튼을 눌러도 각종 프로그램들이 제대로 돌아가는데

몇 초 정도가 필요하듯 자다깨서 뭔 소린지 이해하기까지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상황 파악을 마치고 이불을 박차고 베란다로 가서 아래를 내려보니 이미 십여대의 

소방차들의 경광등으로 요란했고, 잠자던 아들을 깨워서 현관문 밖으로 뛰쳐 나가자

불이난 우리집 위층에서부터 계단과 엘리베이트로 물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제 죽었건가 싶었던 순간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불안에 떨던 그 순간, 

불을 끈 소방관들의 약간은 지친 모습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집안으로 다시 들어섰다. 다행히 큰불은 아니었다.


잠옷 바람에 머리는 헝클어진 몰골이었지만 다행이야 하면서 씨익 웃으면

다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놀란 마음에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와 달리, 아이들의 방에서는 금방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깊은 밤, 우리 가족을 지켜주는 작지만 안락한 집이 있고, 깊이 잠든 아이들 방을

기웃거리며 나는 비로소 깊은 안도감을 느끼며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한순간 한순간 행복이 왼쪽 뺨 언저리에서 속삭이는데 우리는 고개를 돌려 기껏 

먼데만 바라보며 한숨 짓고 있는 건 아닌지..

이 책을 읽으며 평범하게 보낸 하루의 행복을 곰곰 생각해본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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