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야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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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노 게이고의 장편 소설은 첫장을 넘길때부터 아쉽다.

맛있는 건 음미하며 조금씩 아껴 먹고 싶고, 멋진 옷은 좋은 자리에 나갈때만 입고, 

좋은 작품은 천천히 머리속에서 그림을 그려가며 읽고 싶다.


히가시노의 작품들은 문맥이 간결하고 짤막짤막하여 읽기가 쉽다. 

그래서 한번 읽기 시작하면 좀처럼 중간에 끊기가 어렵다. 

아주 늦은 밤까지 읽어내려갈 때도 많고 주말에는 아예 작정을 하고 밤을 세워 읽기도 한다.

이번 작품 환야도 예외일 수 없었다.


이 작품이 언제 발표된 작품인지 궁금하여 야후재팬을 검색해보니 2004년 1월에 발표된 작품으로 

일본에서는 드라마화하여 방영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은 미스테리 추리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입맛에도 잘 맞아서인지

유달리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는 작품들이 많다.


환야1, 2는 거진 500페이지씩이나 되는 장편이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특히 이 작품은 1995년 한신.아와지 지진과 도쿄 사린가스 테러 사건과 같이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크고 작은 지진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일본이지만 1995년의 한신.아와지 지진은 

수평 지진이 아닌 수직 지진이었다. 수직지직은 쉽게 설명하면 건물이나 구조물들이 공중으로 

한번 솟아올랐다가 그대로 땅에 곤두박질 쳐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내진설계로 어지간한 지진에도 끄떡없는 일본의 건물들도 한신.아외지 지진에는 속수무책으로 

6,300명이 넘는 사망자와 어마어마한 재산 피해가 났다.

이 지진으로 나 또한 일본인 지인과의 소식이 끊겼다. 


한신.아와지 지진이 자연재해라면 도쿄 사린가스테러 사건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명백한 테러행위였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독가스인 사린 가스테러 사건으로 5,000여명이 눈과 코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12명이 사망을 했다. 이 사건으로 일본사회는 완전히 패닉 상태로 

빠졌고 사람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안고 시작하는 소설은 그때의 상황을 아는 이들이라면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감을 의식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소설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몰입감을 느끼게 된다.


한신.아와지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날 밤, 미즈하라 마사야는 몇명의 아버지의 지인들과 고모부를 

모시고 조촐하게 집에서 장례식을 치르게 된다. 

버블 경제가 무너지고 일본의 사회가 급격하게 무너져내리던 시기, 아버지는 운영하던 

작은 공장의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빚만 잔뜩 남긴채 목을 매어 자살을 했다. 

아버지의 사망 보험금 중 대부분은 빚을 갚는데 쓰일것이다. 

그리고 남은 얼마간의 돈도 고모부가 내민 차용증대로 고모부에게 넘어가겠지.


아버지가 생전 고모부에게 빌린 돈이라고 하지만 고모부가 멋대로 주식에다 투자를 하면서 

생긴 빚이다. 그런데 장례식 다음날 일본지진 관측상 최대의 지진이 일어나고 

집과 공장이 무너져내렸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마사야는 건물 석가래 아래에 깔려있는 

고모부를 보게 되었고, 무슨 생각인지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고모부를 기와장으로 

내리쳐 살해해버린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가 있었으니 신카이 미후유..

그녀는 지진으로 부모님을 모두 잃었다.



살아 남은 이들은 여진의 공포에 시달려가며 대피소에서 추위에 떨며 턱없이 부족한 

보급품과 배급된 비상식량으로 버티고 있다. 민심은 삽시간에 흉흉해져 여기저기서 약탈과

유부녀 겁탈이 일어나고 있었고 신카이 미후유도 괴한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기 직전에

미즈하라 마사야에 의해 위험에서 벗어나게 된다.

둘 사이는 서로의 약점을 묵인해주고 도움을 주며 뭔가 모를 동질감으로 이어졌고 미후유는

마사야에게 함께 동경으로 떠나자고 제안한다.


미후유는 누가 봐도 눈이 번쩍 뜨이는 미인이다. 그녀는 동경 긴자의 유명한 보석상에 점원으로 

취업을 하게 되고, 나름 고속 승진을 한다.

미사야는 미후유의 도움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공장과 비슷한 조그마한 금속제조 공장에 취업하여

넉넉하지는 않지만 하루하루 건조하지만 평온하게 지내게 된다.

간혹 미후유가 그의 집으로 찾아오고 둘은 육체적인 관계를 갖는 사이가 된다.



우리는 밤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어. 가령 사방이 낮처럼 밝아도,

그건 가짜 낮이야. 

그건 이제 단념해야 해. 

미후유는 성공에 대한 집착이 강했고 살인 사건을 묵인해준 그녀에 대한 고마움으로 

미사야는 철저히 그녀의 조력자로 그녀가 시키는 일을 묵묵히 수행한다.

그것이 어떠한 일이건 그는 그녀의 말을 따른다. 

그것이 살인이더라도, 원치 않은 여성과 관계를 가지는 일이더라도.. 

미후유,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미후유의 주변에서 스토커, 실종, 강도등의 일들이 일어난다. 

일련의 사건들은 그녀의 성공에 방해가 되는 인물들이 하나씩 제거 되는 과정이었다. 

그녀는 남자를 꼼짝하지 못하게 하는 팜므파탈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미모에 홀려 그녀에게 다가가고 쓸모가 없어지면 

결국 그녀에 의해 처절하게 인생이 망가져버린 이들.


사건을 조사하던 형사 가토는 일련의 사건들의 공통 분모을 찾게 되고

결국 신카이 미후유를 주목하게 된다.

그녀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그녀 주변을 탐문하며 그녀를 서서히 그물속으로 몰아간다. 


그리고 늘 그랬지만 마지막 결말부분에서 독자들은 뒤통수 한대를 똬악 맞게 된다.

일이 이렇게 끝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순식간에 종료 버튼이 눌러져버렸다.

마지막 책장을 덮기가 힘들다. 

뭔가 뒷얘기가 더 있을것 같은데, 이렇게 끝나면 어쩌라구..

독자들은 한참을 애를 태울 수 밖에 없다. 예상이 벗어났을때 보이는 대다수의 일반적인 

반응일거고, 작가는 영리하게도 이 점을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아주 적절히 잘 써먹는다. 


이래서 히가시노 게이고를 이야기꾼이라고 하나보다.

그는 다른 작가에 비해 수 많은 다작을 남기고 있고 하나같이 호평을 받고 있다.

명실 상부한 일본의 대표적인 미스테리 작가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것은 

매 작품마다 보이는 치밀한 구성, 다양한 소재,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독자들을 홀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홀린지 이미 오래된 독자다.


그가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엔지니어로 일을 했다는 이력 또한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대단한 이야기꾼이 기계만 다루다 자신의 재능을 영영 발견하지 못했다면 

우리 또한 책 읽는 재미를 그 만큼 못느끼고 살았지 않을까 싶다.

여러모로 억울할뻔 했다.


제목인 환야(幻夜)의 뜻이 궁금하여 찾아보았다.

幻 - 일체의 사상에는 실체성이 없고, 오직 가상[]을 나타내고 있음에 불과하다는 것.

즉 '환야'는 사방이 낮처럼 밝다 해도‘가짜’일 수밖에 없는..

현실 같지 않아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 허무한 밤을 뜻한다.


미즈하라 마사야의 마지막 말을 자꾸 되새김질 하게 된다.


비록 그녀와의 밤이 환상일지라도...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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