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작가 10주기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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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박완서 선생님의 책에 제대로 빠져 허우적 거렸던 작품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작품이었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었기에 더욱 생생하게 전해져왔었다.

일제시대때 소학교를 다니던 깡총한 단발머리의 어린 소녀에게서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을 느끼며 한동안 가슴 먹먹한 여운을 느꼈던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았던 분들은 비슷한 상황을 겪었을 것이다. 

나의 어머니도 한국 이름 '금자'대신 '이마코'라는 일본이름으로 불리며

국민학교를 다니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가끔 본인의 어린 시절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다.

박완서 선생의 소설속의 이야기는 내가 어머니한테서 들었던 이야기와 너무나 닮아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누워 그 옛날 이야기를 듣는듯 하였다.

그래서 한장 한장 기대와 떨림으로 책장을 넘겼던 기억이 있다.

그 작품 이후로 나에게 '작가 박완서'는 정말 넘사벽 한국 최고의 작가가 되었다.

나는 뒤늦게나마(돌아가시고 난 후) 박완서 선생의 작품을 애써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분의 책속에서 유년시절의 이야기가 나올때면 나는 어린 소녀였던

나의 어머니와 조우한듯 하여 심장이 뛰곤했다.

이번에 '세계사'에서 박완서 작가 10주기를 맞아 선생의 작품중에서 베스트 에세이들을 모아

책을 내었다고 했을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나이 마흔의 늦깎이 작가로 등단하여 돌아가시기 전까지 80여편의 단편과 15편의 장편소설,

그리고 660편의 산문을 쓰셨다고 하니 선생의 집필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느껴진다.

아직 내가 다 읽지 못한 책이 아직도 많으니 곶감 나무에서 곶감빼먹듯 아끼며 살살 읽어봐야겠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이 책에는 총 35편의 산문을 모아 놓았다.

일상에서 느낀 작가의 시점에서 본 소박하고 소소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선생의 글은 간결하고 읽기 쉽지만 고집과 강단이 느껴진다.

치마두른 여장부같다.

 

 

수록된 산문들을 읽으며 때로는 피식피식 웃기도 하고 때로는 깊은 생각이 빠지기도 하고

울컥 목이 메이기도 했다.

이중 내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깔깔거리며 웃었던 작품은 [유쾌한 오해]편이었다.

여담이지만  평소 아침에 즐겨듣는 클래식 전문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는데

유명 연기자였던 진행자가 가끔 신간중에서 독자와 함께 하고 싶은 책을 읽어주는 코너가

있는다. 그런데 얼마전에 진행자는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중에서[유쾌한 오해]편을

꽤 시간을 할애하여 낭독했다.


한낮 무더위가 남아있는 전철안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내 옆에

뚱뚱한 중년 남자가 매너없이 비집고 들어와 앉는다. 내 치마자락은 그 남자의 엉덩이에

깔리고 반소매 밑에 드러난 땀에 젖은 끈끈한 팔로 양쪽 사람을 밀치듯 앉은 그 남자의

자세가 여간 거북하고 불쾌하지 않았다.

게다가 호랑이 우는 소리처럼 '어흥!!"하고 큰 소리로 하품을 한다.

짜증을 달래볼 심산으로 방금 전철을 탄 젊은 여자를 바라보았다.

맑은 피부에 화려하고 어여쁜 모자를 들고 있는 젊은 여자를 바라보던 그때

내 옆의 그 뚱뚱하고 무신경하고 매너없는 중년의 남자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모자든 여자에게 손짓을 했다. 50는 넘어보이는데 20대 젊은 여자한테 추파라도

던지나 싶어 째려보고 있었는데 그 젊은 여자가 얼른 양보받은 자리에 앉더란다.

그때서야 그 여자가 만삭이였고 3살쯤 되어 보이는 딸까지 동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젊은 만삭의 여자는 어린 딸을 무릎에 앉혔다.

그 뚱뚱한 남자를 공연히 미워하고 오해한게 풀렸다.

다시 한번 쳐다본 그 남자는 듬직하고 근사하게 보였고 그는 매우 만족스러운듯 했다.

그도 그럴듯이 자기 한 몸이 자리를 내줌으로써 세 식구를 앉힐 수 있었으니 흐뭇할 수 밖에..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람들의 외모와 행동으로 그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갖는경우가 많다.

번듯한 외모와 화려한 말빨에 세상없는 매력적인 신사로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추악한

성범죄자였던 사실을 알고 경악해했던 적이 있으니 사람을 쉬이 내 잣대로 판단하는 오류는

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할머니와 베보자기]란 글은 내마음을 아릿하게 만들기도했다.


국민학교 6학년때 서울에서 개성으로 수학여행을 가서 겪은 이야기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개성에서 20리쯤 떨어진 시골에 살고 계신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가 개성으로 수학여행을 온다고 하니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었던 할머니는 수학여행 당일날 새벽에 떡을 지어 개성역으로 마중을

나오셨다. 하지만 개성에서도 20리나 떨어진 두메 시골 촌부인 할머니가 부끄러웠던 나는

제발 할머니가 200여명의 고만고만한 아이들 속에서 나를 찾지 못하길 간절히 바랬다.

그런데 어디선가 "완서야, 완서야"하고 부르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그러나 모질게 마음먹고 할머니의 부름에도

나서지 않았다.

그러자 할머니는 "보꾸엔쇼야, 보꾸엔쇼야"하며 일본어로 부르시는 것이었다.

그것은 할머니가 입에 담으신 최초의 일본말이자 마지막 일본말이었으리라.

그러니 그 발음이 오죽했을까..어린 마음에도 할머니가 부르시는 소리는

목놓아 울고 싶도록 슬프게 들렸다. 나는 슬픔과 미움과 사랑이 뒤죽박죽된 견딜 수 없이

절박한 마음으로 할머니한테로 뛰어갔다.

나는 [할머니와 베보자기]편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사실은 눈물이 찔끔나서 입고 있던 셔츠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내새끼 먹이겠다고 새벽을 떡을 지어 이고지고 왔던 할머니의 정성에 울컥했고,

커다란 보따리에 뻣뻣하게 풀 먹인 당목 치마저리를 입고 계신 할머니의 촌스러움에

동무들에게 챙피해서 땅속으로 꺼져버리고 싶었다는 어린 소녀의 마음도 알듯했다.

이제와서 회한이 가슴에 사무친들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30년도 지났다는 나이든

작가의 말도 왠지 유리파편이 되어 내 가슴에 꽂혔다.

이 처럼 35편의 산문들은 어느새 중년이 된 나의 마음과 비슷도 하여

나를 되돌아보게끔 만들었고 가끔 반성하게도 만들다.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작품에서는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울컥 하기도 하며

작품에 감정이입하여 울다 웃으며 한편 한편을 보물처럼 읽어갔다.

소박하고 따뜻하지만 거침없는 필체의 작가 박완서는 정말 우리 문단에서 반짝이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특히 나에게는 최고의 작가다.

작고하신지 벌써 10주년..너무 늦게 박완서 선생에게 입문을 하여 아쉽다.

나는 살아생전 그분이 우리에게 남겨두고 가신 작품들을 해마다 곱씹으며

나름대로 나의 최고의 작가를 추모하고자 한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서술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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