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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우지 않아도 삶에 스며드는 축복
정애리 지음 / 놀 / 2020년 12월
평점 :
연기자 정애리님은 1980년대 한국의 여배우 트로이카로 미모와 연기력으로 이름을 알린 배우다.
정애리님의 에세이 "채우지 않아도 삶에 스며드는 축복"이라는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에
꼭 읽고싶다고 느낀건 그녀가 이름이 알려진 인지도 있는 연기자여서가 아니다.
오히려 연기자, 운동선수, 정치가들의 자서전이나 에세이는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읽다보면 흔한 자기 자랑과 자기 연민에 빠진 책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남들 앞에 내세우기 좋아하고 자랑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솔직히 질리도록 많이 봐온 터라 사양하고 싶다.
내가 정애리님의 에세이에 반응을 한 것은 그녀에 대한 나만의 [이미지]때문일 것이다.
월드비젼 홍보대사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연탄은행, 생명의 전화등 소외받고 있는
이웃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더 투게더'이사장직을 맡아 어려운 이웃들에게
사랑을 전하고자 애쓴다.
그녀가 아프리카의 뜨거운 검은 땅에서 병과 굶주림으로 타들어가는 아이들을 안고
애타 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녀가 '한국의 오드리햅번'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얼굴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구나 싶었다.
나는 이런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시기도 질투도 못느끼고
무조건 KO패다.
채우지 않아도 삶에 스며드는 축복을 읽으며 나는 정애리님이 삶에 대한
애착과 작고 소소한 것을 소중히 여기고 일상의 작은 행복에 감사할 줄 아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려한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그녀의 생활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고
소박하고 겸손했다.
김밥 한줄, 지천에 널린 세잎클로버, 눈내린 날 길거리에 놓여있는 조그만 눈사람,
호수에서 자맥질하는 오리들, 바람, 단풍, 나무 한그루, 전봇대, 거리를 딩구는 낙엽..
너무나 흔해빠져 지나치게 되는 그 모든 것들에게 다정한 눈길을 주고
애써운 삶에 대한 격려와 위로와 감사를 전하는 따뜻한 마음을 고스란히 책에 남겨놓았다.
나도 꽤나 감성적인 사람이지만 책에서 느껴지는 그녀만의 사물에 대한 깊은
고찰과 빼곡히 전해지는 애정에 대해 솔직히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렇게 물기 가득한 가슴을 하고 있는 그녀는 시인이구나 싶었고
갱년기에 허덕이며 하루가 다르게 마음이 매말라 가는 나는 그녀가 부러웠다.
전봇대 연가
전봇대
전봇대를 만나면 고개 들어 인사를 합니다.
사람 사는 어느 곳이든 있으니 자주 위를 올려다보지요.
왠지 어깨가 무거운 가장 같은 전봇대.
가족들 일이라면 몸이 부서져라 희생하는 엄마.
죽어라 공부하고 준비해도 내 일자리 못 찾은 취준생.
윗사람 아랫사람 일에 지친 직장인.
이리 치이고 저리 치어
눈알 튀어나오게 힘든
나.
그대.
열심히 이고 지고 버텨내고 있지만
보기 흉하다고까지 합니다.
그러나
전봇대가 있기에
당신의 오늘이
깜깜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전봇대들이여.
당신을 찬양합니다.
그랬다. 길거리 전봇대를 올려다보며 가장의 무게를, 엄마의 고단함을,
취준생의 서글픔을 헤아리고 위로와 격려의 말도 잊지 않고 전하는
그녀의 헤아림에 마음이 찌릿하게 흔들리며 울컥했다.
아...이러한 마음으로 아프리카 오지로 달려가고, 추운날 연탄을 이고 지며 나르고,
헛되이 생을 포기하려는 벼랑끝의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구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아프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 없으니
함께 견뎌보자며 따뜻한 말을 건내고 그녀의 진정성 있는 말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보았을까..
이 책을 다 읽을때쯤 나는 내가 얼마나 많이 가졌고 내 주변에 행복이
흐드러지게 널려 있는지를 느끼게 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을 저당잡히고 발목이 묶였지만 아직 그 무서운 병에
걸리지 않고 나름 건강하니 이 또한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따뜻한 홍차 한잔에 책을 읽는 소중한 시간을 감사하고,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는 이 시간도 행복하고.. 돌아보면 감사하고 행복투성이인
삶이라는 걸..알고는 있었지만 너무나 자주 잊고 지내는 진리를
다시 깨닫게 해준 책이었다.
여담이지만 딸아이 이름으로 지난 10년간 월드비전에 후원을 해왔다.
월드비전 후원 10주년 기념 증서도 받았다.
딸아이는 10년을 채우고 외국으로 떠나 아직 학업중이다.
아쉽게도 딸아이가 한국을 떠나있는 동안 후원이 끊어졌다.
올해 3월 졸업을 하고 한국으로 무사히 돌아오면 가족들 이름으로 다시 후원을
시작하고자 한다.
그 이야기를 지인에게 했더니 '아니 우리나라에도 굶고 지내는 애들이 많은데,
먼나라 아프리카를 .. 그것도 도와줘도 도와줘도 미래가 안보이는 곳에 후원을 해야하니?'
라는 소리를 들었다.
나의 대답은 "우리 나라는 최소한 굶어죽지는 않잖아. 저 아이들은 지금 우리가
돕지 않으면 죽을수 밖에 없는거니까.. 커피값, 점심값 정도 아끼면 되잖아.."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에도 같은 질문에 정애리님은 나와 같은 답을 한 내용이 실려있었다.
책의 인세 전액과 판매 수익금의 일부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인다는 작은 문구를
발견하고는 역시 정애리!! 라고 생각했다.
참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이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