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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별이 만날 때
글렌디 벤더라 지음, 한원희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아이는 요정이 버리고 간 아이일지도 모른다.
파리한 얼굴, 헐렁한 후드 티와 바지를 입은 모습이 노을 진 숲으로 희미하게 번져갔다.
발은 맨발이었다.
아이는 한쪽 팔을 히코리 나무 몸통에 감고 미동 없이 서 있었다.
차가 우두둑 소리를 내며 자갈로 된 진입로 끝까지 들어와 몇 미터 앞에서 멈춰 섰는데도
꼼짝하지 않았다.
소설의 첫 부분부터 강렬한 임펙트로 다가온 소설이었다.
요정이 버리고 간 아이.. 9살의 얼사는 그렇게 요정이 버린 아이처럼 조의 앞에 나타난다.
암에 걸린 엄마를 간병하다 자신 또한 엄마와 같은 암이라는 것을 알게 된 조.
가슴과 난소를 제거하고 항암 치료를 마친 그녀가 다시 박사논문을 위해 대학으로 되돌아 왔을때
그녀를 대하는 남자들의 시선은 전과 달랐고 남자친구 또한 그녀를 떠났다.
그녀의 여성성과 함께 소중했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은 조는
깊은 외로움을 가슴속에 눌러 담고 조류학자를 꿈꾸며 박사 학위 논문을 위해
유리멧새의 부화 성공률에 대한 조사를 위해 숲에서 지내고 있다.
달걀 파는 젊은 남자 게이브는 조의 이웃집격인 농장에서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농장일을 하는 남자다.
어머니의 외도로 태어난 출생의 비밀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게이브는 마음 깊은
곳에 상처를 끌어안고 그를 괴롭히는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갑자기 나타난 얼사는
자신은 외계에서 온 외계인이며 '5개의 기적'을 모두 만나면 자신의 별로 되돌아갈거라는
모를듯한 말만 한다. 꾀죄죄한 차림에 창백한 얼굴,온몸에 나 있는 멍과 상처..
학대받은 집안에서 도망쳐나왔을거라고 조는 생각하고 부모를 찾아주고자 이웃집 게이브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면서 이 세사람의 우정과 사랑이 시작된다.
[숲과 별이 만날 때] 라는 제목처럼 신비롭고 슬프지만 아름다운 소설이다.
숲속에서 하루 왠종일 유리멧새를 관찰하는 육체가 망가진 조.
숲속에서 누나의 경멸을 견디며 어머니의 간병을 하는 가족에게 갇혀버린 마음이 망가져버린 게이브.
그리고 바람개비 은하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몸과 마음이 망가져버린 얼사.
숲이었던 조와 게이브.. 별에서 온 얼사..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타인의 상처를 알아본다.
각자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보듬어주며 가족이 아닌 타인으로부터 진심어린 위로를 받는다.
[숲과 별이 만날 때]는 환타지로 시작하였지만 읽을수록 진하디 진한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의지할데 없던 이들이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마음의 빗장을 열고 서로에게 다가가는 과정의 가슴 따뜻한 포근함과 설렘을 함께 느꼈다.
가족보다 더 따뜻한 타인들이 만나 새로운 가족이 되어가는 모습은
지치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깊은 감동임에 틀림없다.
여성으로써 가슴 제거 수술을 하고 난소마저 들어내는 대 수술을 한 조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하는 게이브.
엄마의 불륜으로 태어난 사생아라 생각하며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혀온 게이브를
사랑하는 조.
마약을 사기 위해 몸을 팔야했던 엄마가 살해되는 장면을 지켜봐야했던 얼사의
망가진 영혼을 치유해주기 위해 필사적인 조와 게이브.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과 꿈이 되어 주는 이들의 이야기는 깊은 밤 숲속에서 빛나는
별처럼 아름다웠다. 탄탄한 구성력과 독자의 마음을 빼앗을 정도의
흡인력을 가진 소설이 '글렌디 밴더라'라고 하는 신인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도 놀라웠다.
이 놀라운 신인 작가의 새로운 작품을 기대하며 응원하고 싶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마음 한켠에 서늘함이 느껴지며 따뜻한 커피 한잔이 생각날때
그 곁에 놓여 있으면 완벽한 가을날을 만드는 세트가 될것같은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