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중년의 일상 탈출 고백서 - 어느 날 도망치듯 떠난 여행이 내 인생을 구했다
하이디 엘리어슨 지음, 이길태 옮김 / 탐나는책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어느 중년의 일상탈출 고백서


어느날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고 초라하게 느껴질때

지금껏 의지해온 삶의 나침판이 고장난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 책을 쓴 하이디 엘리어슨은 어린 나이에 딸을 낳았고 남편은 그런 그녀를 버려두고 집을 나가게 된다.

홀로 딸아이를 키우며 주택담보대출을 갚기 위해 매일매일 비전없는

회사에 출근해서 꼼짝없이 8시간 넘게 일을 한다.

자신을 돌볼 여유는 없다. 오로지 딸아이를 제대로 키워보겠다는 생각에 버티고 또 버틴다.

그렇게 키운 딸아이가 대학을 들어가고 엄마 품을 벗어나 새로운 대학생활에 적응해간다.

허전하지만 뿌듯하기도 하다.

딸 아이에게 남자친구가 생긴듯 하다. 크리스마스를 남친 가족과 보내겠다는 전화를 해왔을때

그녀의 마음 한구석은 커다란 구멍이 생겼을것이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그때서야 제대로 봤을터이다.

생기없고 초라한 중년의 여인이 서있는 것을 보고 무척 울컥했겠지.

혼자사는 중년 여인의 외로움, 그녀의 얼굴에 고스란히 들어난 피로, 목적조차 희미해진 삶,

출근길에 지하철의 노숙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평소 같으면 행여 눈이라도 마주칠까 잰걸음으로 지나쳤을 그들이

어느날 나 보다도

팔자 좋아보여 부럽기조차 하다.

이렇게 내 인생을 끝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도달했을 때

하이디는 여느 중년과 다르게 그녀가 노!!! 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녀는 더 이상 부엌창으로 바깥을 바라보며 한숨 짓지 않기로 결심한다.

 

집을 팔았다.

안식처이자 자신을 얽매었던 집을 팔고 캠핑카를 구입한다.

평생 자동차말고는 운전해본적이 없는 그녀에게 캠핑카는 거대한 괴물과 같았다.

전진은 하되 후진은 못한다. 이대로 길을 나설 수 있을까, 여자 혼자서 여행을 하면

위험할 수도 있을텐데 안전할까, 길 위에서 이 괴물 같은 캠핑카가 멈추면 어떻게 하지?

출발하기 전 그녀는 걱정으로 온몸이 옥죄어왔다.

하지만 위험은 길 위에서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안전하다고 믿는 집 안에서도

도둑이나 강도가 들수도 있고 화재로 위험해질 수 도 있는 법이니까..


그녀는 그린 몬스터로 이름 붙인 캠핑카에 그녀의 반려견을 태우고

지금껏 꿈꾸어왔던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페달을 밟는다.

상시 여행자로 캠핑카에서 먹고 자면서 길위에서 많은 여행자들을 만나고

자신과 비슷한 여성 여행자들을 통해 용기를 주고 받으며 생기없던 그녀에게

다시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캠핑에 문외한이었던 그녀는 좌중우돌 실수도 하고 우여곡절도 겪지만

집을 나서지 않았다면 결코 느껴보지 못했을 자유을 만끽한다.

자신의 젊음을 오로지 살기위해 앞만 보며 걸었던 그녀가 중년이 되어

길을 나선 후 비로써 뜨거운 피의 온도를 느끼고 살아있음 느끼게 된다.

그 온도가 느껴지는 그녀의 여행기는 매 순간 나의 폐가 찌릿할 정도로 자극을 주었다.


중년들 중에 남자건 여자건 무작정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까..

아직 공부를 다 마치지 못한 자식들, 늙고 연로하신 부모님에 대한 부양의무,

미처 다 갚지 못한 대출금..털어내지 못하고 어깨에 머리에 삶의 무게를

꾹꾹 눌러 얹고 그렇게 힘겹게 출근하는 이 땅의 중년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다시 한번 인생 제 2막을 꿈 꾸어 보지만 현실에 묶여 쉽게 털고 나서지 못한다.

누구나 꿈꾸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해낸 하이디가 진정 부럽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한편

아..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도 품게 된다.

그린 몬스터를 끌고 록키 산맥을 넘고 그랜드 캐니언을 지나 캐나다로 서부로

발길이 닿는대로 여행을 하는 동안  그녀는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없던 말라비틀어진 연애세포가

살아나고 가슴도 설레여보고 실연의 아픔도 느끼게 된다.

나는 이제서야 뭔가 사람답게(?)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좋았다.

나이든 중년이 아니라 홍조를 띈 소녀를 보는듯 했다.

마치 나의 일인양 그녀를 응원하며 함께 캠핑가에서 먹고 자며 조수석에 앉아

함께 여행하는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비가 오면 함께 비를 맞고 해변가를 거닐때면 코를 벌렁거리며 바다냄새를 맡고

험준한 산길을 오를때는 심장이 벌렁거리는 동안 내 안의 역마살이 스멀스멀

목구멍으로 기어나오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단순히 한 여성의 여행기를 적은 책이 아니라, 마른 화초처럼

시들시들해져 가는 중년들에게 영양제와 같은 책이라 할 수있다.

나도 하는데 당신도 할 수 있어요.. 라고 일면식도 없는 한 미국인이 그렇게 내게

말을 걸어오는듯 해서 내내 마음이 설레였다.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도망치듯 떠난 여행에서 그녀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다양한 경험을 하고 수 많은 곳을 다니며 피폐해졌던 자신의 내면을 윤기나게

만들었다.

책을 덮기 전까지 나도..나도.. 라는 말을 수없이 중얼거리게 만들었다.

나도 꼭 그녀처럼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보고 싶어진다.

그 꿈을 이룰때까지 내 가까이에 두고 싶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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