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 식객이 뽑은 진짜 맛집 200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1
허영만.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제작팀 지음 / 가디언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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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유년 시절, 엄마가 해주셨던 반찬들은 하나같이 시골스러웠다.

분홍색 쏘세지가 최고의 세련된 반찬으로 점심시간 도시락 반찬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었을 때, 나의 반찬통엔 엄마의 멸치 볶음, 계란말이, 나물무침,콩자반, 짱아치 등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우리집이 시골 동네에선 꽤나 잘 살았던지라 돈이 없어서 안 사주신건 아닌것 같고

공장에서 가공되어 나온 음식들은 몸에 좋지 않다는 엄격하신 아버지의 고집때문인걸로 알고 있지만,

어째건 나는 그후로도 오랫동안 그토록 맛나다는(?) 분홍색 쏘세지 부침을 먹어보질 못했다.

심퉁에 식사때마다 입에 댓발로 나오곤 했다. 그땐 그랬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나이를 한살한살 먹으면서 기름진 음식이나 다른 나라의 낯선 음식보다는

30여년전 엄마가 해주셨던 그 맛을 닮은 음식들이 그냥 좋다.

매끼 엄마가 장을 보고(때론 집앞 텃밭에서 따온) 다듬고 씻고 데치고 썰고 무쳐서

만들어 주셨던 그 음식들이 미치도록 그리워질때가 있다.


그래서였을까..식객 허영만 선생의 백반기행을 봤을때, 앗 소리가 나왔다.

집밥 같은 백반!! 우리 엄마가 만들어준듯한 그 맛을 찾아 떠나는 맛집 기행이라니

이 얼마나 설레고 멋진 일인가..


초딩 입맛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초딩에게는 초딩에게 맞는 입맛이 있고

중년에게는 중년에게 맞는 입맛이라는게 있다.

나 같이 입맛이 촌스럽고, 역류성 식도염과 동거동락중인 중년의 여인네에게는

화려하고 거창한 음식보다 맛있고, 소화 잘되는 순박한 음식이 최고다.

그래서 단언컨데 중년을 훨씬 넘어 70대의 저자가 소개해준 맛집들은

최소한 중년 언저리의 나이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취향이 비슷하여 꽤나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책에서 맛집 소개는 지역별로 나누어져 있다.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7지역으로 나누어 지역의 맛집까지 골고루 소개하고 있다.

특히 인상 깊은 맛이 있거나 기억에 남는 곳은 따로 일러스트와 함께 코멘트를 달아놓았다. 완벽한 맛집 일기다.

 

종로 맛집으로 알려진 탑골 공원 뒷편의 유진 식당은 익히 다녀보던 곳이다.

동네 사람들이 냄비, 들통을 들고 가서 줄서서 사온다는 망원동 뼈해장국 집 또한

쉬는날이면 달려가는 곳이다.

책 속에 소개된 맛집 중엔 이미 내가 단골로 다니는 곳도 있어서 

최소한 (이미 먹어본) 내가 맛을 보장할 수가 있다.

단골로 다니고 있는 식당이 책에 소개되어져 있으면 유치하게도 세상 뿌듯해진다.

이로써 소개되어진 나머지 맛집들에 대한 신뢰도가 수직 상승한다.


사진 몇장과 가게 이름과 주소, 영업 시간, 주메뉴등만 간단히 소개되어 있다.

​가장 중요한 음식 가격은 나와 있지 않다.

하긴 맛집 블로그를 보고 찾아 갔는데 알고보니 몇년전 포스팅한 글이여서

가격이 꽤나 올라 오히려 기분이 언짢았던 경험이 있는지라 가격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면

포탈사이트에서 찾으면 될테니 ​이정도면 충분하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들이 99%나 되는 맛집 가이드 북은 나를 설레게 한다.

이렇게나 다양한 곳을 하나씩 찾아가서 맛볼 수 있다면 지리멸렬한 일상의 이벤트가 될것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소확행의 정점이 될듯 싶다.

내 머리가 슈퍼컴퓨터가 아닌 이상 이 많은 가게들을 일일히 기억하지 못할테니

가능한 이 책은 차 안에 적당한 자리에 항시 비치를 해두어야겠다.

그리고 드라이브 하다가, 업무상 이동하다가 낯선 곳에서 뭘 먹을까 고민할때

슬쩍 꺼내서 팔랑거리며 찾아보면 좋겠다.

 

또한 점심 시간만 되면 뭘 먹을지 고민하는 것은 천만 직장인들의 골치거리 해결에도 도움이 될것이다.

책장을 넘겨 이동 가능한 곳의 숨겨진 맛집을 찾는 재미 또한 꽤나 솔솔찮을듯 하다.



맛집을 소개한 책이나 블로그들은 넘쳐난다.

나조차도 먹어보고 맛있는 가게의 소개를 가끔 블로그에 올리곤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sns는 리얼 후기보다는 상업적인 목적의 가게 홍보글이

교모하게 아닌척하며 검색 상단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들이 많아서

블로그만 믿고 갔다가 실망을 잔뜩하고 오기도 한다.


책에서 소개해준 맛집들이 저자의 호평과는 다르게 내 입맛에 안 맞을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상업적인 목적으로 쓰여지진 않았을테니 실패률도 현저히 떨어질것이다.

약간의 용기와 부지런함만 갖춘다면 훨씬 풍족하고 재미진 인생을 맛볼 수 있을것이다.


여담이지만 고향인 마산에도 몇군데 맛집이 소개되어 있길래

고향 친구들과 함께하는 단체 채팅방에 올렸더니

나는 이미 가봤다는둥, 다음에 다같이 가자는둥, 회사 근처니까 동료들과 한번 가봐야겠다는둥..

조용하던 단체 방에 잠깐이지만 활력이 넘쳤다.


음식이란 그런건가 보다.

함께 먹고 나눔으로써 사람과의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고, 친근해질 수 있는 매개체!

이왕이면 좋은 음식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며

입과 눈과 코로 음식을 느끼며 추억을 만들어 가고 싶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꽤나 소중한 책이 될듯하다.

보석을 캐듯 이 책을 손에 들고 백반 순례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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