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건 있더라고 - 야루 산문집
야루 지음 / 마이마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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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 낡은 것을 좋아하는 작가 야루의 에세이집을 읽게 되었다.

작가는 타자기, 재봉틀, LP, 괘종시계 등 오래된 옛 물건을 바라보면 그것들을 통해

가슴 따뜻했던 추억들이 마구마구 샘솟는다고 했다.


그말에 100%공감하는 나는 문뜩 작가의 나이가 궁금해졌다.

아직은 꽤나 젊은 나이일텐데 오래된 물건들의 맛을 알까..싶어서 읽기 시작한 글과 사진에서

추억과 그리움을 끄집어 내는 것들은 모두 각자의 나이만큼의 세월을 입은 것이라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희를 넘겼건, 지천명을 넘겼건,이제 겨우(?) 30대에 들었건

각자의 나이에 따라 추억 돋는 물건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것.


지금은 구하기 녹녹찮은 LP판,

드르륵 드르륵 태엽을 감아야 돌아가는 오래된 시계,

플로피 디스켓과 늘어지기 십상인 카세트 테이프,

다 큰 자식의 늦은 귀가를 걱정하시는 어머니의 등짝에 남은 부황자국,

허름한 골목 안,어수룩한 가게의 따뜻한 밥한릇,

번쩍거리는 화려함도 세련됨도 없는 그 낡고 투박한 것들이 주는 푸근함을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야 겨우 알게 되었다.

눈을 감았다 뜨면 세상은 한참이나 변해 있고 조금만 주춤하면 유행에서 뒤지고

한물간 구닥다리 취급을 받게 된다. 세상은 너무 빠르고 따라가자니 숨이 찬다.

'변하지 않은 건 있더라고' 이 책은 앞만 보고 달리다가 숨이 턱까지 차서 헐떡이는

사람들에게 쉼표가 되어줄만한 책이다.

이 책은 대단한 격식을 차리며 적어 내려간 책은 아니다.

대단한 필력으로 꼼짝달싹 못하게 독자에게 헤드락을 걸지도 않는다.

담백하고 솔직하게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자 하는 그의 글들은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딱 맞아 떨어지면서 페이지마다 친근감이 풀풀 풍겨져나온다.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책을 읽고 있고 있는데 딸래미가 무슨 책 읽느냐며 읽던 책을 스윽 뺏어간다.

그리고는 깔깔 때고 웃기 시작했다.

뭐가 그리 재미있냐고 물어봤더니 큰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내 방에 쌓여있는 오래된 물건들과 서랍 속에 빼곡히 가득 찬

어릴 적 추억들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엄마는 그런 내 방을 보실 때마다 늘 혀를 차시곤 한다.

대체 쓸데도 없으면서 하나라도 버리면 지랄지랄 한다고 잔소리까지

덧붙이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 쓸데 있다면 능글맞게 엄마의 어깨를

조잘 조잘 잘도 주무른다.

마치 자기 이야기 같다면 재미있다고 내 책을 뺏어가서 한참을 읽다 돌려주었다.



코로나 때문에 거리두기만 하다가 오랫만에 까페에서 차 한잔을 마셨다.

책을 꺼내서 읽고 있었는데 마침 친구가 내 모습을 보더니 뭔 책이냐며

슬며서 자기쪽으로 책을 당긴다.

책 읽는걸 즐겨하지 않은 친구라 금방 돌려줄거라 생각했는데..

한참을 팔랑팔랑 넘기며 캬~~~오우~~ 헤헤~~ 거린다.

뭘 보나 했더니 역시나 그림만 열심히 본다.

카세트 테입이랑 LP판 사진등을 보며 감탄사를 뱉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밑도 끝도 없이 옛날 얘기를 꺼낸다. 뭔가가 그의 감성을 건드린 것이리라..

그랬다. 이 책은 그림을 보다가 글을 읽다가 격한 공감을 하고,

아련한 추억을 꺼내어 서로 묵혀두었던 추억을 소환하여

도란도란 얘기 나누기 좋은 책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정체되어 있는 건 사회 악이고,

새롭게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게 된듯하다.

혁신적이고 세련되어야지만 주목받게 된다. 그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말이다.

주목받기 위해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경쟁속으로 뛰어들기도 하고,

내몰리기도 하며 심리적인 부담과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그런 불편한 심기를 달래주는 건,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그자리 그대로

지키고 있는 것들이지 싶다. 언제나 내편 같은 존재들말이다.

부모님의 사랑, 오래된 친구들의 우정, 정많은 사람들의 오지랖,

버스 정류장앞 포장마차등등..

우리의 지친 마음을 토닥거려 주는건 늘 한박자 느린 그런 것들이었다.

나는 이 책을 쉬엄쉬엄 읽었다.

길지 않은 문장들을 또박또박 읽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나보다 젊은 그에게 심한 친밀감이 느껴졌다.

한번쯤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숨 한번 고르고 갈때가 필요하다면 

지금 바로 감성 듬뿍 담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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