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고 남겨두길 잘했어 - 29CM 카피라이터의 조금은 사적인 카피들
이유미 지음 / 북라이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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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카피 라이터 이유미씨가 생활속 여기저기서 보게되는 짧지만 굵직한 카피들을 보고

자신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카피와 함께 소개한 에세이다.


작가의 직업이 직업이니 만큼 버스 안에서, 전철 안에서, 혹은 길거리 포스터에서

현수막에서 보게되는 서너줄의 카피 문구들을 허투로 흘려보내지 않고

일상을 담아 전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덕분에 글을 읽는 내내 때때로 웃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심하게

공감하기도 하였다.


나 또한 많은 카피 문구들을 접하게 된다.

보통은 흘려 듣고 흘려 봐서, 기억이 하루들 못가는 탓에 곧 잊어버리고 말지만

허를 찌르는 문구들 덕에 간혹 비싼 화장품을 사기도 하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일터인 가전 제품을 사기도 한다.

말하지면 홀린거다.

어쩌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몇 시간의 긴 설득보다

한두마디의 강렬한 글이 그 효력이 강할지도 모르겠다.


예컨데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꼭 모든 걸 직접 할 필요는 없어요.


라는 문구는 이케아 매장에 써여져 있는 문구다.

작가는 이 문구를 참 잘 쓰여진 문구라고 평가한다.


'너 혼자서도 잘 할수 있다'라는 적절한 칭찬과

그렇지만 '힘들면 꼭 네가 안해도 돼'라는 부드러운 회유.

덕분에 이케아에서 물건을 구매하고 직접 조립할 생각으로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게

'돈을 내면 이케아의 전문가들이 잘 조립해서 너네집까지 가져다 줄거야. 어서 카드 꺼내' 라는

낯뜨거운 말을 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지갑을 열게 된다.

이 문구에 많은 사람들이 혹 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용케 지갑을 열지 않고 집으로 가져왔지만 결국 조립은 작가의 남편분의 몫!

낑낑 거리며 몇시간을 조립하고 조이느라 뚝닥거렸을 부부의 일상이 사랑스럽다.


그리고 이런 예도 있다.


나 우리 아빠랑 놀러간다!

굳이 엄마가 아닌 아빠..라고 쓴것은 평소 일이 바빠 애들과 함께 못 놀아준 아빠와

드디어 오늘 함께 (어딘가 좋은 곳으로) 놀러간다는 기쁨이 느껴지긴 하지만

작가와 동일한 이유로 나는 이 문구가 조금 불편했다.

아빠 없는 애들은 어쩌라고..

대충보면 평소 주말엔 쇼파에 널부러져 있던 아빠랑 놀러나왔으니

신나고 즐거운 마음이겠구나 싶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빠 없는 아이들한테는 상처가 되겠구나 싶어져서 쫌 찡해진다.

이렇듯 카피 문구 하나를 만드는데도 참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하겠구나 싶어져

새삼스럽게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에 약간의 존경심마저 든다. 그리고 부러운 마음도..


회사일에 가사에 그리고 강연에 틈틈이 책도 써야하는 일인 다역을 하는 이유미 작가의

숨막히게 분주한 하루가 책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나 또한 워킹맘이라 야근에 지쳐 쉬어빠진 파김치 마냥 집에 돌아와

산더미같이 남겨진 집안일을 접견하고 나면

그나마 쥐꼬리 같이 붙어있던 의욕마저 상실하여 집안일은 파업하고 싶어지기 십상이다.

사표를 내고 싶어도 수리도 안될테고 대신할 사람이 없으니 짤릴 일도 없는

철밥통 평생 직장이라 욕을 하면서도 일은 한다만..

회사일과 가정일을 병행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건 대한민국, 아니 전세계 워킹맘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작가는 한술 더떠 책을 쓰고, 퇴근 후 강연회도 나간다.

어지간히 부지런하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부지런을 떠나 어진간히 좋아하는

일 아니면 쉽지 않은 일인데 글을 쓰는 일이 아마 그녀가 제일 잘하고 제일 좋아하는

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잊지 않고 남겨두길 잘했어]라는 책은 참 읽기가 편했다.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고 글을 담백하니 편하게 잘쓰는 작가의 재주도 더해져서 일것이다.

과하게 화장을 하여 얼핏 보면 이쁜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편한 그런 글이 아니라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가볍게 비비크림 정도 바르고 만나는 그런 편안함을 가진 책.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과 커피를 리필해서 마셔가며 장시간 얘기해도 질리지

않은 그런 책이다. 부담없이 읽어보면 색깔 없던 나의 일상에도 멋진 글귀 한 줄을 더해

색깔을 입혀보고 싶어지는 책이다.


그럴 때 책은 강력한 우군이 된다.

라는 문구처럼 이 책을 머그잔이나 베개나 핸드폰과 같은

일상의 사물로 만들어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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