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 네 생각이 났어 - 영화 속 편지에 이어 써내려간 19통의 답장들
이하영 지음 / 플로베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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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시, 해시, 묘시..같이 두시간 단위로 두리뭉실 시간을 나누던 옛날과 달리

현대인들은 매일 매순간 초 단위를 시간을 끊어 사는것 같다.

해가 뜨고 시간에 휘둘려 휘청거리다 보면 또 해가 진다.

우리를 주변엔 온통 기계화 되어 밥도 전기밥솥이 하고 청소도 로봇 청소기가 하고

빨래도 세탁기가 한다. 업무도 컴퓨터로 하고 지구 반대편의 거래처와 카톡으로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진행을 할 수 있다.

모든것이 빠르고 편해졌는데 편해진만큼 시간이 단축 된 만큼 우리들은 왜 편해지지 않고

더 바쁘고 더 쫓기며 사는 걸까...


일상에 지쳐갈때 쯤이면 내 마음 속에서 아나로그적 감성이 올라온다.

수첩을 꺼내고 펜을 꺼내서 뭔가를 끄적끄적 하기 시작한다.

키보드로 타다닥...글자를 치는게 아니라

한자한자 글자를 적어가는 것..

틀리면 안되니까 정성들여 글을 써내려 가는것..


이쁘게 글씨를 쓰기위해서 내 손가락에 착 감기는 볼펜을 찾기 위해

문구점에서 수십자루의 펜을 잡았다 쥐었다 폈다 하면서 까달을 부린다.

그리고 그렇게 골라골라 딱 마음에 드는 펜을 사고서는

창가가 넓은 까페로 가서 아이스 까페라테를 한잔 시키고..

수첩을 꺼내 끄적거린다. 딱히 적을 것도 없건만 한참을 뒤적거리며

적는다.


나의 이러한 버릇은 아마 일기를 쓰고 편지를 많이 썼던 감수성 예민했던 학창시절의 그리움에서

시작된듯 하다. 글을 쓰고 있을때 뭔가 마음이 채워지는 듯한 그런 느낌

편지지를 채우고 일기장이 메꾸어질때 느꼈던 포만감

어쩜 그걸 다시 느껴보며 지친 몸과 허해진 마음에 영양제를 넣어주고 싶어서 일거다.


그래서 영화속 장면에서 주인공이 잉크를 묻혀서 .. 펜을 꾹꾹 눌러가며.. 연필심에 침을 묻혀가며..

한자한자 편지를 써내려 가는 장면이 나오면 나는 뜬금없이 가슴이 뭉클해진다.

동경하던 나의 아나로그 감성을 건드려 주는듯 해서 나는 그 영화가 어떤 장르인지

상관없이 그냥 좋아진다.


영화를 보다 네 생각이 났어.. 라는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작가의 이력과 소개글을 두어번이나 읽었다.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 글을 잘 쓰는 거지? 누군가의 필력이 질투날 정도로

부러웠던 적이 있었던가..


간혹 가수중에 말을 하듯 힘 안들이고 노래하는 가수들이 있는데

(나는 이런 창법을 쓰는 가수들에게 열광하는 경향이 있다)

이하영 작가는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듯 글을 썼다.

(나는 이런 필력을 가진 작가에게 열광하는 경향이 있다)

울퉁불퉁 한데 없이 아주 매끈하게 미장을 한 것처럼.. 걸리는데 한군데 없는

글솜씨를 오랫만에 본듯 하다.


작가는 수년간 방송 작가로 일했던 이하영씨가

영화 속에서 편지가 나오는 장면을 보고

친구, 여동생, 선생님에게 그동안 못다했던 이야기를 편지로 써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로즈, 오네긴, 그을린 사랑, 그녀, 아가씨. 일 포스티노등 우리가 봤음직한 영화와

아직 내가 보지 못한 영화에 나왔던 편지들을 소개되고

영화의 줄거리와 그리고 중요한 소재로 작용하는 편지에 대한 내용..

그리고 작가가 지금껏 살면서 소식을 못 전했던 지인들에게 보내지는 편지로 이어진다

잘 지내니?로 시작하는 안부 편지와..

그때 미처 말하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 고마운 마음등을 편지에 전한다.

읽고 있는 동안 마음이 저릿해진다.

나에게도 미처 내 마음을 전하지 못한 지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디에서 사는지 연락처도 없고 주소도 없어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있는..

뭔가 빚을 진듯한.. 뭔가를 꾸고 되돌려주지 못한듯한  마음이 남아 있는..


​편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흔한 SNS에 흔적이라도 남기면 좋으련만

아직 미처 정리되지 못한 것은 내 마음이 아니라

내 용기일지 모르겠다.

키보드의 Ctrl+v 를 하면 붙여 넣기가 된다.

딸깍 딸깍 몇번에 같은 내용 수십번이 복사된다.

받는 이의 이름만 살짝 바꾸고 나서 엔터를 누르면 메세지는 순식간에 상대방에게 띠리링 날아간다.

빠르고 편리하다.

그런데 참... 멋대가리 없다.

반면 편지는 절차가 복잡하다. 편지지를 사고 글을 쓰고 우표를 붙여서 우체통에

넣거나 우체국까지 가야 한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귀찮다.

귀찮다는 이유로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는 전자와 쉽게 손을 잡는다.

하지만 장담컨대 후자의 경우가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고

관계의 깊음을 표시하는데 적격일 것이다.

오늘 나는 오랫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한 너에게 몇자 적어보고 싶다.

잘 지내니?

나는 요즘 너무 잘지내고 있어.

하루하루 바쁘지만 무척 행복하게 보내고 있단다.

그러니 행여 내 걱정을 하거나 내 소식 궁금해 하지 않아도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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